한국말 '슬기롭다'를 뒤로 밀고 한자말 '지혜롭다'만
자꾸 퍼지지 싶습니다. 그만큼 다들 한국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똑똑하다'는 어떤 모습을 가리킬까요?

..

슬기롭다·똑똑하다
→  “옳고 그름을 바르게 살피는 마음가짐”을 ‘슬기’라고 해요. ‘똑똑하다’는 또렷하게 바라볼 줄 아는 매무새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삶을 바르게 살필 줄 안다면 언제나 알맞거나 훌륭하게 일을 잘 하거나 말을 잘 합니다. 또렷하게 바라볼 줄 안다면, 제대로 살피는 모습이니, 일이나 말도 제대로 잘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리를 제대로 듣고 느낌도 제대로 알아차린다고 할 테지요.

슬기롭다
: 옳고 그름을 바르게 살필 줄 알다
 - 나는 알쏭달쏭해서 모르겠는데, 누나는 슬기롭게 실마리를 잘 찾아낸다
 - 마을에서 다툼이 생기면 할아버지는 늘 슬기롭게 맺고 푸신다
 - 할머니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슬기롭게 일을 해내십니다

똑똑하다
1. 보이는 모습·됨됨이나 들리는 소리가 흐리지 않다
 - 날이 맑으니 저 먼 봉우리까지 똑똑하게 볼 수 있다
 - 네가 받고 싶은 선물을 똑똑히 알려주라
 - 메아리가 똑똑하게 잘 들린다
2.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리거나 알아듣거나 헤아리면서 일하거나 말할 줄 알다
 - 너희는 모두 똑똑한 아이들이야
 - 너는 그 말을 참 똑똑하게 잘 알아들었구나
 - 한 마디만 해도 척척 알아들으니 동생은 무척 똑똑하다
3. 생각이나 셈이 바르거나 알맞다
 - 너는 셈이 똑똑하니까 책값이 모두 얼마인지 알겠지
 - 아무리 어지러운 곳에 있어도 똑똑하게 살펴야지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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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다와 서글프다가 어떻게 다르며

구슬프다는 또 어떻게 다른가를

오늘날 얼마나 잘 가려서 쓸 수 있을까요?

또 슬프다는 어떠한 느낌인지 얼마나 헤아릴까요?

한국말을 슬기롭게 생각하면서 쓰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


서럽다·섧다·슬프다·구슬프다·서글프다

→ 마음이 아플 때에 ‘슬프다’고 합니다. ‘슬프다’고 할 적에는 마음이 아프면서 눈물이 날 듯한 느낌입니다. ‘서럽다’고 할 적에는 뜻하지 않게 생긴 일 때문에 울고 싶도록 마음이 아픈데, 나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가리킬 때에 씁니다. 이래서는 안 되지만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든지, 작은 힘으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느낄 만큼 커다란 아픔, 갑자기 들이닥쳐서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아픔을 가리키는 자리에 ‘서럽다’를 써요. 뜻하지 않게 생긴 일을 나 스스로 어떻게든 바꾸거나 고치거나 바로잡을 수 있다고 느낄 적에는 ‘슬프다’를 씁니다. ‘구슬프다’는 노래나 울음이나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플 때에 쓰는 낱말입니다. ‘서글프다’는 마음이 텅 빈 듯한 느낌, 그러니까 허전하다는 느낌이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할 때에 씁니다. 안타깝거나 딱하다 싶은 일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안 좋을 때에도 ‘서글프다’를 씁니다. 이를테면, 들짐승이 길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모습을 본다든지, 사람들이 괴롭혀서 고달픈 짐승을 본다든지, 이럴 적에 ‘서글프다’를 씁니다.

서럽다

: 뜻하지 않게 생긴 안타깝거나 힘든 일 때문에 울고 싶도록 마음이 아프다

 - 전쟁 때문에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 새해를 맞이하지만 고향 나라에 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서러워 보인다

 - 이웃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사회에서 쓸쓸하며 서러운 사람들이 생긴다

 -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서럽게 우셨어요

섧다

= 서럽다

 - 오늘까지만 섧게 울고, 이튿날부터 다시 일어설 테야

 - 알에서 깨자마자 농약 때문에 몽땅 죽고 만 올챙이들은 몹시 섧겠지

슬프다

1. 답답한 일·뒤집어쓴 일을 겪거나 불쌍한 일을 보니, 마음이 아프면서 눈물이 날 듯하다

 -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이 겪은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잠이 안 오더라

 -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바느질을 못하니 슬프구나

 - 꾸중을 듣고 슬픈 나머지 눈물을 똑똑 흘린다

2. 어떤 일이 바람직하지 않아 안타깝거나 마음이 아프다

 - 숲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어른들 때문에 슬퍼요

 - 평화를 바라지 않고 전쟁무기를 자꾸 만드는 어른들을 보면 슬퍼요

 - 지구별이 무너지는데에도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으니 슬퍼요

구슬프다

: 노래·울음·소리가 쓸쓸하면서 마음을 아프게 하다

 - 오늘 밤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어쩐지 구슬프구나

 - 어머니가 할머니를 그리며 피리를 부는 소리는 참 구슬픕니다

 - 오늘 따라 힘든 일이 많은 탓인지 달빛에 어리는 개구리 소리조차 구슬프다

서글프다

1. 마음이 텅 빈 듯하면서 아프다

 - 오갈 데 없는 나그네는 서글프다면서, 어머니는 꼭 밥 한 그릇 차려 주신다

 - 우리가 한가위에 찾아와서 한참 놀다가 돌아가면 할머니는 왠지 서글프시대요

2. 어떤 일이 안타깝고 딱해서 마음이 안 좋다

 - 멧골에서 불을 피우다가 숲을 태우는 일이 생기면 몹시 서글퍼요

 - 자동차에 치여 죽은 들짐승을 볼 때면 늘 서글프다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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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보는 한국말사전이든 어린이가 보는 한국말사전이든

이 세 낱말을 알아보기 좋도록 풀이한 책은 

아직 한국에 없습니다.


거의 비슷하게 쓰거나 똑같이 쓰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세 낱말은 여러모로 닮기는 했어도

똑같지 않고, 다른 느낌과 빛이 있어요.


..


벌써·이미·어느새

→ “내 키가 벌써 이만큼 자랐어요”는, 생각보다 빠르게 키가 자랐다는 뜻입니다. “내 키가 이미 이만큼 자랐어요”는, 키가 이만큼 자란 지 한참 되었다는 뜻입니다. “내 키가 어느새 이만큼 자랐어요”는, 스스로 느끼거나 알지 못하는 동안 키가 자랐다는 뜻입니다. 더 살피면, ‘이미’와 ‘미리’는 비슷하다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낱말에서 ‘이미’는 지난 어느 때에 다 끝난 일을 가리키고, ‘미리’는 지난 어느 때에 다 끝냈어야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한편, “이미 먹은 밥”은, 다 먹어서 이 자리에 없는 밥을 가리켜요. “미리 먹은 밥”은, 나중에 바쁘다거나 없어지리라 여겨 일찌감치 먹은 밥을 가리킵니다.

 

벌써

1. 생각보다 빠르거나 일찍

 - 보글보글 소리가 나니, 밥이 벌써 다 되는가 보다

 - 저녁쯤에 올 줄 알았더니 벌써 왔구나

 - 벌써 오슬오슬 찬바람 부는 겨울인 듯하다

2. 한참 앞서

 - 할아버지는 새벽에 벌써 밭을 다 매셨다

 - 설거지는 벌써 다 해 놓았지

 - 내가 탈 버스는 벌써 떠났구나

3. 아주 많은 나날이 지나갔다고 느낄 적에 쓰는 말

 - 우리가 벌써 열 살이로구나

 - 우리 집 마당에 아왜나무를 심은 지 벌써 쉰 해가 지났대요

이미

: 어떤 때보다 앞서 (지난 어느 때나 다 끝난 때를 가리키며 쓰는 말)

 -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이미 늦어 문이 닫혔다

 - 이미 먹은 밥을 어떻게 내놓겠니

어느새

: 알거나 느끼지 못하는 동안

 - 동생은 어느새 훌쩍 자라 나보다 키가 크다

 - 아침에 눈발이 날린다 싶더니 어느새 수북하게 쌓였다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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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과 '자취'는 얼마나 다를까요. 이런 낱말을 갈라서 쓰는 한국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제는 한자말 '흔적' 아니고는 쓸 줄 모르는 한국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한국말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


발자국·발자취·자국·자취

→ ‘발자국’은 발로 만든 자국이고, ‘발자취’는 발로 만든 ‘자취’예요. 발자국과 발자취는 우리가 지나온 나날이나 삶을 빗대는 자리에 흔히 쓰곤 합니다. 그리고, ‘발자국’은 발로 밟아서 생긴 모양을 가리키며, ‘발자취’는 발로 밟고 지나가면서 생기는 모양이나 소리를 가리켜요. 쓰임새가 살짝 다릅니다. ‘자국’은 무엇인가 닿거나 묻으면서 생기는 모양을 가리킨다면, ‘자취’는 무엇인가 있는 동안 만드는 어떤 자리를 가리켜요.


발자국

1. 발로 밟은 자리에 남은 모양

 - 갯벌에 난 발자국을 보며 누구인지 알아볼까

 -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새와 고양이가 지나간 발자국이 마당에 있다

 - 보송보송한 흙길을 걸어가니 내 발자국이 생긴다

2. 한 발을 떼는 걸음

 - 옆으로 두 발자국만 가면 되겠어

 - 너하고 나 사이는 열 발자국만큼 떨어졌구나

3. 지나온 나날이나 삶

 - 어젯밤에는 어머니가 걸어온 발자국을 차근차근 들었다

 - 우리 할아버지가 걸어온 발자국이 이 책에 담겼다고 해

발자취

1. 발로 밟고 지나갈 때 남는 자취나 소리

 - 발자취가 없이 조용히 걸으면서 하늘을 본다

 - 네가 발자취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어

2. 지나온 나날이나 삶

 - 나도 내 발자취를 가만히 헤아려 보았습니다

 - 할머니는 여든 해를 살면서 어떤 발자취를 남기셨을까요

자국

1. 다른 것이 닿거나 묻어서 생기거나 달라진 자리

 - 유리창에 빗물 자국이 남았어

 - 책을 읽은 자국이 없는데, 읽기는 있었는지 모르겠네

 - 힘을 주어 꾹꾹 눌러서 썼는지 네 글씨 자국이 뒤에 있다

2. 다친 곳이나 부스럼이 생겼다가 다 나아서 사라진 자리

 - 여드름이나 사마귀는 자꾸 건드리면 안 없어지고 오히려 자국만 남는다

 - 자주 넘어져서 무릎에 성할 날이 없더니, 이제는 아무 자국이 없다

 - 내 손등에는 뜨거운 물에 덴 자국이 있어

3. = 발자국 1

 - 논에 들어가 모를 심으면 내가 지나간 데마다 자국이 생긴다

 - 아침에 일어났더니 눈이 소복소복 쌓여서 자국을 만들며 걸었어요

4. 무엇이 있었거나 지나가거나 겪은 뒤에 생긴 느낌이나 이야기

 - 그때 그 일은 나한테 크게 자국이 되었어

 - 처음 본 반딧불이는 내 마음에 커다란 자국으로 남았어

자취

1. 어떤 것이 있거나 생긴 동안 만든 자리

 - 어제 온 손님은 새벽에 아무 자취도 없이 떠났다

 - 댐이 들어서면서 수많은 마을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 저녁이 되자 낮에 북적거리던 사람들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2. 가거나 움직인 곳

 - 토끼가 어디로 숨었는지 자취를 못 찾겠어

 - 숨바꼭질을 하는데 동무들이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찾지 못하겠다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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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주저'가 퍽 널리 쓰이면서
한국말은 여러모로 쓰임새를 잃곤 합니다.
한국말을 곰곰이 살피면서 하나둘 익히면
자리와 때에 맞추어 재미나면서 즐겁게
우리 뜻과 느낌을 한껏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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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다·머뭇거리다·우물쭈물·엉거주춤
→ 시원스레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들인데, 느낌이 살짝 다릅니다. ‘망설이다’는 “생각만 이리저리 굴리”면서 못 움직이는 모습이고, ‘머무적거리다(머뭇거리다)’는 “자꾸 멈추는” 모습이요, ‘우물쭈물’은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모르는” 모습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모습이지만, 저마다 까닭이 다를 테지요. ‘엉거주춤’은 “이렇게 해야 할는지 저렇게 해야 할는지 모르는 채 몸을 구부정하게 있”는 모습입니다. ‘주춤거리다’도 “자꾸 멈추는” 모습으로는 ‘머무적거리다’와 비슷한데, ‘주춤거리다’는 다른 사람 눈치나 눈길을 살피는 느낌이 짙습니다. ‘갈팡질팡하다’는 “갈 곳을 몰라 헤매”면서 한 자리에 선 모습을 나타내요. ‘우물쭈물’은 큰말이고 ‘오물쪼물’은 여린말입니다. ‘엉거주춤’은 큰말이요 ‘앙가조촘’은 여린말입니다.

망설이다
: 뚜렷하거나 시원스레 움직이지 못하면서 생각만 이리저리 굴리다
 -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몰라 망설인다
 - 망설이다가 해가 넘어가겠네
머뭇거리다
: ‘머무적거리다’를 줄인 낱말
 - 어서 들어오지 않고 왜 머뭇거리니
 - 할 말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시원스럽게 털어놓으렴
머무적거리다
: 뚜렷하거나 시원스레 움직이지 못하면서 자꾸 멈추다
 -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머무적거리만 한다
 - 쑥스러운 나머지 뒷통수를 긁적이며 머무적거린다
우물쭈물
: 뚜렷하게 하지 못하면서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
 -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우물쭈물 말을 못 한다
 - 바쁘고 어수선해서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엉거주춤
1. 앉지도 서지도 않고 몸을 반쯤 굽히는 모습
 - 거기 엉거주춤 서서 무얼 하니
 - 깜짝 놀라 엉거주춤 몸이 굳었다
2.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
 - 이쪽으로 갈지 저쪽으로 갈지 엉거주춤 길 한복판에 섰다
 - 우는 아기를 안을지 업을지 모르는 채 엉거주춤 있다
주춤거리다
: 뚜렷하게 움직이거나 걷지 못하면서 자꾸 멈추다
 - 네가 뻔히 쳐다보니까 주춤거리는 듯해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주춤거리기만 한다
갈팡질팡하다
: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이리저리 헤매다
 - 어디라도 좋으니 갈팡질팡하지 말고 길을 나서자
 - 여기도 아닌 듯하고 저기도 아닌 듯해서 갈팡질팡한다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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