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한 줄, 예쁘게 읽는 책

 


  우리 집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모두 병원에서 낳고 말았습니다. 옆지기와 나는 병원 아닌 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느긋하게 아이를 맞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미국사람 메리 몽간 님이 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 59쪽을 읽습니다. “출산은 과학이 아니다. 해부학도 아니다. 또한 의사나 조산사, 간호사의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은 부모와 아기의 것이다.”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벌써 아이를 둘 낳았고, 다섯 살 두 살 두 아이는 무럭무럭 크는데, 나는 굳이 ‘아이낳기’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 두 아이를 집에서 사랑스레 낳지 못했으나,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더 커서 스무 해쯤 뒤가 되면, 이 아이들도 아이를 낳을 때가 될 테지요. 이때에 우리 아이들이 병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집에서 사랑스레 아이를 낳도록 돕자면, ‘앞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옆지기와 내’가 오늘 ‘아이낳기’를 예쁘고 사랑스레 다시 배워야 해요.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을 쓴 메리 몽간 님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병원에서 낳고 말았다지만,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 커서 아이를 낳을 무렵 당신이 지난날 겪은 아픔과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꿈꾸면서 ‘히프노버딩’이라는 ‘아이를 사랑스레 낳는 길’을 마련했다고 해요. 메리 몽간 님은 105쪽에서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하고 덧붙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내가 바라는 꿈을 곱게 헤아릴 때에 참으로 내가 바라는 꿈이 곱게 이루어집니다. 내가 바라는 꿈이 아니지만, 내 둘레에서 이래저래 떠돈다 해서 귀를 기울이거나 눈길을 둘 때에는, 뜻밖에도 내가 안 바라거나 내가 안 좋아하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할 때에는 사랑이 태어나요. 내 마음속에 미움이 깃들 때에는 미움이 나타나요.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적바림한 책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한글샘,2011) 119쪽을 살피면, “사람의 소명은, 주위의 모두를 깨닫고 우주에 훌륭함을 짓는 것이야. 지구를 닮은 것을 다른 은하계에 짓는 거야. 그리고 새 세상 모두에게 지은 훌륭한 창작을, 지구에 더하는 거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일이란 ‘훌륭한 삶을 짓기’라는 말마디를 되새깁니다. 나부터 스스로 오늘 하루를 훌륭하도록 아름답게 누리고, 이렇게 훌륭하도록 아름답게 누리는 삶을 내 옆지기와 아이들과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곱게 나눌 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숨결이 된다는 이야기를 되읊습니다.


  예쁘게 나누는 말은 예쁘게 나누는 사랑입니다. 내가 예쁜 말을 보낼 때에 나한테 예쁜 말이 돌아옵니다. 나는 예쁜 말을 보내지 않으면서 나한테 예쁜 말이 오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나는 노상 밉거나 궂거나 모진 말을 보내면서 나한테만큼은 예쁜 말이 오기를 바란다면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요시노 겐자부로 님이 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 52쪽을 읽습니다. “진심으로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야 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도, 네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때도 그 감정은 언제나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단다.” 하는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면서 내가 좋아할 만한 내 삶이어야겠지요. 어깨너머로 기웃거린다든지 겉치레로 꾸민다든지 내 뚜렷한 줏대 없이 휘둘리거나 휩쓸린다면, 나 스스로 하나도 재미없는 삶이 되리라 느껴요.


  좋은 봄햇살을 누립니다. 좋은 여름햇볕을 누립니다. 좋은 가을햇빛을 누립니다. 좋은 겨울해님을 누립니다.


  봄부터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되는 네 철은 사람들 누구한테나 기쁜 선물입니다. 따스함과 시원함과 더움과 추움과 넉넉함과 푸름과 빛남과 어두움과 환함을 골고루 누리면서 내가 지을 가장 좋은 내 사랑스러운 삶을 돌아봅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16권 114쪽을 보면, 종교전쟁을 일으키는 우두머리 한 분이 아들을 옆에 두고 이렇게 얘기를 나눠요. “왕자여, 저 일출을 보아라.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느냐.” “정말 아름답습니다.” “왕자여, 나는 해의 신을 모시고 해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아, 아. 아름다운 해를 보며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려 하면 참으로 예쁠 텐데요. (4345.7.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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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9-08 09:23   좋아요 0 | URL
큰 아이 표정은 언제나 밝아서 참 좋아요

숲노래 2012-09-09 03:46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 모두 늘 잘 웃어서 좋습니다~
 


 내 삶에 한 줄, 반갑게 읽는 책

 


  두 아이 새근새근 자는 새벽녘에 조용히 일어납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습니다. 희뿌옇게 트는 동에 기대어 책을 펼칩니다. 헌책방에서 고맙게 만난 《바보라도 살고 있는 거야》(성광문화사,1992)를 몇 쪽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일본사람 후꾸이 다쯔우(福井達雨) 님은 1962년에 ‘지양학원’이라 하는 장애 어린이 보육원을 열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아직 장애교육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던 무렵이라 사회와 정부와 마을과 여느 어버이조차 장애 어린이를 바라보는 눈길을 차갑기만 했다는데, 바로 이 차갑기만 하던 눈길이 슬프고 안타까운 나머지, 모든 아이들이 골고루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을 꿈꾸었다고 해요. “진짜 법률은 어떠한 작은 생명이라도 살리는 것입니다(67쪽).” 하고 말하며 공무원과 의사하고 싸웁니다. 무엇보다 후꾸이 다쯔우 님을 비롯해 지양학원 교사들은 “이 아이들은 육체가 아니고, 한 생명입니다(51쪽).” 하고 말할 줄 압니다.


  날마다 몇 쪽씩 읽으며 새 기운을 북돋웁니다. 책에 나오는 일본 장애 어린이도, 우리 집에서 이른새벽부터 씩씩하게 일어나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도, 모두 아름다운 목숨이에요. 맑은 사람이고 밝은 눈빛이며 고운 몸뚱이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시계를 바라보며 더 자거나 덜 자려 하지 않아요. 몸이 개운하게 잠을 깼으면 놉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으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나무토막을 쌓고 무너뜨리며, 책을 읽기도 하고, 연필로 곳곳에 그림을 그립니다. 넘치는 기운을 마음껏 온 사랑으로 누립니다.


  홍동기 님이 그리고 가리 님이 글을 넣은 《술술술》(미우,2012)이라는 만화책 첫째 권을 읽다가, 238쪽에서 “단맛에 길든 사람들 미각이 원래의 막걸리를 독하다고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너도 나도 달게 만드느라 이것저것 섞고. 하지만, 내가 마신다고 생각하면 나는 못 섞어. 쌀도 수입쌀을 쓰면 수지타산이 맞지만, 내가 농사지은 쌀에는 쥐가 들어도 수입쌀 더미엔 쥐가 안 들더라구. 그걸 보고는 수입쌀이 무서워서 내가 지은 쌀로만 만들어요. 사람 몸에 들어가는 거니까 말여.” 하는 대목을 봅니다. 좋은 기운으로 밥을 짓습니다. 좋은 생각으로 ‘밥이 될 쌀이 되는 벼’를 흙(논)에 심어 거둡니다. 볍씨를 갈무리해서 모판을 만들 때부터 언제나 좋은 꿈을 꿉니다. 나쁜 꿈이나 나쁜 생각이 깃들면, 좋은 밥을 짓지 못해요. 맨 처음 씨앗일 때부터 좋은 손길로 좋은 흙에 심으려고 마음을 기울여요. 그러니까, 누구나 흙을 일구는 사람이었던 지난날 시골마을에서 ‘손수 지은 곡식’으로 술 한 동이를 빚을 때에는 언제나 가장 좋은 기운이 서린 사랑으로 술을 빚었으리라 느껴요. 내가 먹을 곡식을 내가 살아가는 땅에서 일구어요. 내가 먹을 곡식을 갈무리해서 내가 마실 술을 내 보금자리에서 빚어요. 내가 사는 마을 들판과 멧골을 함부러 더럽히는 사람이란 없어요. 내가 사는 보금자리를 예쁘고 정갈히 건사하기 마련이에요. 내가 먹고, 내 어버이가 먹어요. 내가 마시고, 내 아이들이 마셔요. 내가 먹고, 내 동무하고 나누어요. 내가 마시고, 내 이웃하고 함께 즐겨요.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뒷골목 고양이》(지호,2003) 36쪽을 살피면, “우리에 갇힌 어미 고양이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먹을 것과 물은 충분했지만, 자유가 몹시도 그리웠다.”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마을 고양이들은 우리 집 마당도 우리 옆집 마당도 홀가분하게 드나듭니다. 어느 때에는 돌로 쌓은 울타리를 새끼들 이끌고 천천히 밟으며 지나갑니다. 때로는 돌울타리를 잘못 디뎌 와르르 무너뜨립니다. 마을에 들고양이가 여럿이지만, 가을에 나락을 베어 푸대에 담으면 으레 쥐들이 쏠아 쌀알을 파먹는답니다.


  빗소리를 듣습니다. 거세게 부는 바람 따라 세차게 지붕과 마당을 때리는 빗줄기 소리를 듣습니다. 한창 이삭이 팰 무렵 이렇게 거센 비바람이 찾아들면 어쩌나 싶지만, 들판에서 흙에 뿌리내리고 햇살을 바라보는 볏포기는 씩씩하게 비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작은아이는 가슴에 안고 큰아이는 걸리며 논밭 사잇길을 걷습니다.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바람이 부는 결을 헤아립니다. 이 빗속에서도 노랫소리 나누어 주는 풀벌레를 생각합니다. 빗속 풀벌레 노랫소리는 어느 살림집 처마 밑에서 들려올까요. 아니면 마루 밑에서 들려올까요. 아니면 감나무 밑이나 석류나무 밑에서 들려올까요. 한여름에 깨어나 나무를 타고 오르던 매미들은 세찬 비바람을 어디에서 그을까요. 나뭇가지 한쪽에 조그맣게 웅크리면서 날이 개기를 기다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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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웃으며 읽는 책

 


  오제 아키라 님이 그린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셋째 권 144쪽부터 146쪽까지 여러 차례 되읽습니다. 일본 나리타시에 있는 자그마한 시골마을 ‘산리즈카’에서 1962년부터 오늘날까지 그치지 않는 ‘공항 건설’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인데, 온삶을 들여 흙을 일구는 할아버지는 공항 건설 공무원을 앞에 두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항 만드는 거야 좋은 일이지. 자네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고. 그래서 첨에는 조금 신경이 쓰였어. 다짜고짜 반대를 외치는 게 말여. 그러니까 그게, 내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근디 생각해 보니 말여, 그러면 우리 농사꾼이 하는 일은 대체 뭔가 싶더구먼. 자네는 ‘농사는 나라의 근간’이라는 그럴듯한 구절을 아는가? 아이들 교과서에 써 있다네. 난 이 구절을 알고서는 괜시리 뿌듯해지더란 말이여. 농지는 농사꾼의 것이되 농사꾼의 것이 아니여. 많은 사람들을 배고픔으로부터 지켜 주는 생명의 원천이여. 그야 나도 농작물을 팔아서 먹고살고는 있지만. 근디 공항은 엄청난 돈을 벌지 않는가? 난 자네들 덕분에 농사꾼이란 것에 긍지를 갖게 됐어. 내 일이 공항에 뒤지지 않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는 일본에서 1992년에 나왔습니다. 한국에는 2012년 봄에 일곱 권이 옮겨집니다. 나는 지난 2000년 여름에 꼭 한 번 일본에 다녀온 적 있고, 이때에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에 내렸습니다. 그때에 공항에 내린 비행기가 참 오래 빙빙 도는구나 하고 느꼈고, 공항 둘레에 논밭이 길게 펼쳐졌는데, 시골집 분들이 참 시끄럽겠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공항을 둘러싼 시골마을 사람들이 ‘1962년부터 공항을 반대하며 고향마을을 꿋꿋하게 지키는’ 분들인 줄 몰랐어요.


  그러고 보면,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내가 늘 먹는 밥이 어떻게 나오는 줄 몰랐고, 내가 먹는 푸성귀나 김치를 어떻게 얻는 줄 몰랐어요. 내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기까지 ‘밥이 되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곰곰이 살피거나 헤아린 적이 없다 할 만합니다. 아마,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 누구나 엇비슷하겠지요. 저마다 회사나 학교에서 온갖 일로 바빠요. 모두들 집 안팎에서 이것저것 걱정하느라 힘들어요. 한 끼니만 굶어도 배고프다고 느끼면서, 정작 배고픔을 달래며 새힘을 북돋우는 밥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는가를 생각하지 못해요.


  시인 김해화 님이 엮은 《당신을 사랑합니다》(삶이보이는창,2012)라는 책 38쪽을 읽으면, 시골에서 태어나 죽는 날까지 흙을 일구던 할머니 목소리가 생생하게 나옵니다. “그때는 시어머니가 산에 가라면 젤로 좋아. 산에 가서 도라지 캐고 고사리 꺾고 나무 함서 시엉도 꺾어 먹고 다래도 따 먹고……. 시어머니헌티 매도 안 맞고, 어쨌든 산에는 먹을 것이 있으니께.” 참말, 산에 가고 들에 가면 풀이랑 나무하고 벗삼으며 마음을 쉽니다. 풀이랑 나무는 잎사귀와 열매를 내어줍니다.


  김소월 님 시를 그러모은 《옷과 밥과 자유》(민음사,1977)라는 책에 담긴 시 〈깊고 깊은 언약〉을 읽습니다. “몹쓸 꿈을 깨어 돌아누울 때, / 봄이 와서 멧나물 돋아 나올 때, / 아름다운 젊은이 앞을 지날 때, / 잊어버렸던듯이 저도 모르게, / 얼결에 생각나는 ‘깊고 깊은 언약’.”


  김소월 님은 도시사람이었을까요, 시골사람이었을까요. 김소월 님은 흙을 일구며 살았을까요, 시내나 읍내 같은 데에서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았을까요. 김소월 님 싯말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느끼는 삶’ 이야기가 한 줄 두 줄 깃듭니다. 봄날 한철을 돌아보면서 “봄이 와서 멧나물 돋아 나올 때”를 노래합니다.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 《작은 새가 좋아요》(크레용하우스,2002)를 다섯 살 아이하고 함께 읽습니다. 그림책 끝자락 29∼30쪽에 “새들의 말을 배울 테야, 그러면 새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잖아.”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래요, 새들이 노래하는 말을 배우면 새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어요. 흙이 속삭이는 말을 배우면 흙하고 이야기꽃 피울 수 있어요. 바람과 햇살과 지렁이와 개구리가 주고받는 말을 배우면 바람과 햇살과 지렁이와 개구리하고 이야기잔치 열 수 있겠지요.


  식구들 모두 발포 바닷가에 가서 바다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름에는 뒷산에 올라 멧딸을 따고 비탈논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을에는 누런 벼 가득한 논뙈기랑 이웃 할아버지 낫자루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4345.7.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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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에서 두 달에 한 번 내는 <경기문화나루>에 싣는 글입니다. 7-8월호치에 실리는 글이기에, 이제 이곳에 함께 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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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즐거이 읽는 책

 


  나카야마 세이코 님 청소년문학 《산촌유학》(문원,2012)을 금세 다 읽습니다. 갓난쟁이 둘째를 가슴에 얹혀 재우면서 이 책 하나 훌러덩 읽습니다. ‘산촌유학’이란 도시에 사는 아이를 시골로 보내 배우게 한다는 일로,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살림집 가운데 한 곳으로 ‘도시 아이가 들어가서’ 그 집 아이와 똑같이 살아가도록 합니다. 26쪽을 보면, “별이 이렇게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쩐지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본은 어디든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소리, 냄새, 색깔, 빛, 바람 …… 여기는 내가 사는 곳(도쿄)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참말, 시골 밤하늘 별은 밝습니다. 도시 밤하늘에는 별이 밝지도 않으나, 별이 뜰 수조차 없습니다. 아니, 도시에서 살아갈 때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고, 밤하늘을 생각할 일마저 없곤 합니다.


  경기 파주 책도시 한켠에서 5월 한 달, 제 사진잔치를 마련했습니다. 사진잔치를 나 스스로 기리며 식구들하고 먼 마실을 떠납니다. 들새 소리와 바람 냄새와 햇살 빛깔과 들풀 빛무늬 어여쁜 시골집을 떠나 여러 날 파주에서 머물렀습니다. 시골집 날씨와 여러 날 묵을 일을 헤아리며 두 아이 옷가지를 챙겼는데, 막상 파주 책도시에 닿으니 복사열이 대단해 두 아이 모두 더위에 시달립니다. 더욱이, 걸을 만한 들길이라든지 오를 만한 멧자락이라든지 쉴 만한 나무그늘이라든지 마실 만한 냇물이라든지 먹을 만한 들풀이라든지 하나도 없습니다.


  청소년문학 《산촌유학》에 나오는 도쿄 청소년들은 ‘시골에 편의점이 없어 과자나 청량음료를 사 마실 수 없겠다고 걱정’합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볼일 보러 아이들 이끌고 찾아간 우리 식구는 ‘도시에 쉬고 걸으며 먹을 너른 들판과 숲이 없다고 새삼스레 깨달으며 걱정’합니다.


  복사열과 아스팔트와 시멘트집에 시달린 끝에 시외버스와 여러 차를 갈아타고 예닐곱 시간만에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짐을 풀고 벌렁 드러누워 달게 잔 이듬날 아침, 아이와 함께 그림책 《루비의 소원》(비룡소,2003)을 읽습니다. 1900년대 첫무렵 중국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책으로 빚었다 합니다. 사내로 태어난 사람만 글을 가르치고, 가시내로 태어난 사람은 집일과 살림을 배우느라 글을 배울 수 없다던 지난날, 그림책 주인공 ‘루비’는 이녁 할아버지를 깨우칩니다. 루비네 할아버지는 루비한테 “아가, 네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정말로 알고 싶구나. 남자 아이들에게 어떻게 더 잘 해 준다는 거니?” 하고 물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던 루비는 할아버지가 알아들을 만한 가장 쉬운 보기를 찾습니다. 이를테면, 전병을 줄 때에 사내한테는 더 달콤한 자리를 떼어 주고, 가시내한테는 퍽퍽한 데를 떼어 준다는 말을 들려줍니다.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곁에서 누군가 깨우쳐 주지 않으면 참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곁에서 쉽고 살가우며 따스한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나 말길로 깨우쳐 주더라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림책 할아버지는 당신 손녀가 넌지시 깨우쳐 주는 말마디를 잘 삭힙니다. 가시내를 대학교까지 보내는 일이 아주 없다던 때에 그림책 주인공 루비는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화책 《사원 시마, 주임 편》(서울문화사,2008)을 읽습니다. 첫째 권 70쪽에 ‘평사원 시마’가 “우직해도 좋다. 출세 못해도 좋다. 난 이런 자세를 관철하고 싶다.”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평사원 시마 주임은 이처럼 혼잣말을 하지만, 만화책 흐름을 보면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며 전무와 이사를 거쳐 사장에 이릅니다.


  마음을 쉬고 싶어 《어머니전》(호미,2012)이라는 책을 펼칩니다. 섬마을에서 ‘스스로 고향이 된’ 할머니들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섬할매 한 분은 “자식들 있어도 다 객지 가 사요. 큰아들은 서울서 살고, 나는 이라고 삽니다. 이게 편합니다. 시골 사람은 시골 사는 게 좋습니다(111쪽).”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할 만한 곳에서 가장 좋아할 만한 삶을 일구며 사랑을 합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들길을 거닐며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꿈을 읽다가, 우리 집 처마 밑 제비들 노랫소리 들으며 삶을 읽습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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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사랑스레 읽던 책

 


  앤소니 드 멜로 님 삶을 그러모은 이야기책 《사랑으로 가는 길》(삼인,2012) 132쪽에,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깨어 있어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그때 당신은 사랑이 무언지를 알 것입니다.” 하고 읊는 대목이 있습니다. 밑줄을 천천히 긋습니다.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한 해 삼백예순닷새 언제나 함께 지내는 옆지기를 바라볼 때이든, 두 사람 사랑으로 낳은 아이들하고 여러 해째 같이 얼크러지내며 서로서로 마주할 때이든, 꾸밈없이 서로를 느끼며 어깨동무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이 꽃송이처럼 피어나는구나 싶어요. 더 오래 함께 있대서 사랑이 꽃송이처럼 피어나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아주 살짝 눈을 마주치더라도 마음을 나누고 읽으며 보듬을 수 있으면, 멀리 떨어진 채 살아야 하더라도 사랑이 곱게 꽃송이처럼 피어난다고 느껴요.


  우니타 유미 님이 빚은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08) 둘째 권 65쪽에, “우선은 장래보다 코우키의 현재를 지켜봐 주고 싶어요. 한 2년 정도 지나면 같이 있고 싶어도 자기들이 피해 다니게 될 테니까요!” 하고 외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밑줄을 예쁘게 긋습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를 사랑스레 돌보며 살아가는 젊은 어머니가 ‘아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걱정하기’보다는 ‘아이랑 오늘 하루 더 즐거이 어울리며 놀고 웃으며 떠들겠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아이와 바로 오늘 사랑을 꽃송이처럼 피우고 싶을 뿐이라는 넋을 느끼며 참 좋구나 하고 느낍니다.


  생각을 담은 책을 읽으며 즐겁습니다. 사랑을 들려주는 책을 읽으며 기쁩니다. 삶을 곱게 누리면서 이야기 한 자락 어여삐 보듬는 책을 읽으며 흐뭇합니다.


  나는 어떠한 책이든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읽고 싶습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지식을 얻거나 저런 정보를 쌓고 싶지 않습니다. 돈을 한껏 잘 버는 솜씨를 굳이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름을 널리 드러내는 재주를 애써 북돋우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마을 어느 골목을 나들이 할 수 있으면 퍽 좋더라 하는 말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시골마을 어느 논둑길을 걷더라도 즐겁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들새 소리를 듣습니다. 휘파람새인가, 직박구리인가, 노랑할미새인가, 찌르레기인가, 어떤 새인가 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갓난쟁이는 품에 안고 다섯 살 개구진 아이는 앞세워 걸리며 봄나무를 바라봅니다. 막 꽃송이 터뜨린 매화나무를 바라봅니다. 아직 새눈 조그마한 모과나무를 바라봅니다. 천천히 꽃송이 터뜨리는 동백나무랑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네 식구 나란히 시골마을 곳곳을 두 다리로 걷는 나날을 즐깁니다. 면 소재지까지 사십 분 남짓 천천히 걸어갑니다. 우체국에 들러 편지 한 통 부치고는 다른 길로 에돌아 오십 분 남짓 걸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멧골짝 안쪽에 깃든 절집 언저리까지 한 시간 반 남짓 걸어 오르다가는 풀숲에 깃듭니다. 네 식구 모두 벌러덩 드러누워 풀과 가랑잎과 흙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 받습니다. 한창 뒹굴며 노는 동안 멧새 지저귀는 소리를 고즈넉하게 듣습니다. 골짝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들이를 하는 동안, 우리 집 마당에 드리운 빨랫줄에 넌 갓난쟁이 기저귀며 식구들 옷가지며 따순 봄햇살 마음껏 들이마시며 보송보송 마를 테지요.


  한 시간 사십 분 남짓 다시 천천히 멧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흙길은 흙길대로 즐겁고, 시멘트길은 시멘트길대로 즐겁습니다. 마늘밭 풀 매는 이웃 할머님한테 인사합니다. 시골집 두루 도는 우체국 일꾼한테 인사합니다. 나와 온 식구한테는 종이에 아로새긴 책도 사랑스럽고, 저마다 얼굴에 아로새긴 웃음도 사랑스럽습니다. 까무잡잡 싱싱한 빛 구수한 흙땅 곳곳에 새로 돋는 봄풀과 봄꽃 모두 사랑스럽게 읽는 책입니다. 봄까지꽃, 별꽃, 광대나물꽃, 냉이꽃, 제비꽃 모두 귀엽게 맞이하는 책입니다. 먼 멧등성이 따라 노랗다가 발갛다가 하얗다가 파랗게 빛나는 아침녘 햇살과 하늘 모두 고맙게 마주하는 책입니다. 내 삶에 한 줄 사랑스레 아로새기는 책은 바로 좋은 보금자리에서 누리는 좋은 이야기입니다. (4345.3.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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