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31) 있다 9 : 의존하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바다에 안겨 있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의 품에 안겨 살아갑니다. 물고기의 생활이 바닷물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생활은 자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마사키 다카시/김경옥 옮김-나비 문명》(책세상,2010) 35쪽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고, “자연의 품에 안겨”는 “자연 품에 안겨”로 다듬습니다. “물고기의 생활(生活)”은 “물고기 삶”으로 손보고, ‘의존(依存)하고’는 ‘기대로’로 손보며, “인간(人間)의 생활(生活)”은 “사람 삶”이나 “사람살이”로 손볼 수 있어요.

 

 바다에 안겨 있는 것처럼
→ 바다에 안긴듯이

 

  즐겁고 알맞게 쓰는 말투는 즐겁고 알맞게 퍼집니다. 얄궂고 어리숙하게 쓰는 말투는 얄궂고 어리숙하게 퍼집니다. 생각을 기울이며 가다듬는 말투는 다른 생각을 잇달아 일으킵니다. 생각을 기울이지 않으며 찬찬히 살피지 않는 말투는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한 마디 두 마디 알맞게 돌봅니다. 한 마디 두 마디 제대로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말잘못이 잇달아 드러납니다. 이 보기글을 살피면, 두 줄에 ‘있다’ 꼴이 세 차례 나옵니다. 굳이 붙이지 않아야 올바른 말투이기도 하지만, 군더더기로 들러붙는 말투인 줄 깨닫지 못하니까 자꾸자꾸 이곳저곳에 나타납니다.

 

 바닷물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 바닷물에 기대듯이
 자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자연에 기댑니다

 

  생각을 할 때에 말이 살아납니다. 생각을 안 할 때에 말은 살아나지 않습니다. 생각을 해야 비로소 말과 넋이 싱그럽게 빛납니다. 생각을 안 하면 말이고 넋이고 빛날 수 없습니다.


  좋은 꿈 한 자락 내 말마디에 살포시 싣습니다. 기쁜 사랑 한 꾸러미 내 글줄에 가만히 얹습니다. 좋은 나날이 되도록 좋은 말글을 엮습니다. 기쁜 이야기가 되도록 좋은 숨결을 일굽니다.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물고기가 바다에 안겨 살듯이 사람은 자연 품에 안겨 살아갑니다. 물고기 삶이 바닷물에 기대듯이, 사람 삶은 자연에 기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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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32 : 멀리 보는, 장기적인 안목

 

“멀리 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해.” “그리고 하나 더 당부하고 싶은 건 작은 일부터 실천하자는 거야.”
《고성국·남경태-덤벼라, 인생》(철수와영희,2012) 226쪽

 

  ‘안목(眼目)’은 ‘눈’이나 ‘눈길’이나 ‘눈썰미’로 다듬을 만합니다. ‘필요(必要)해’는 ‘있어야 해’나 ‘갖춰야 해’나 ‘추슬러야 해’나 ‘다스려야 해’로 다듬습니다. “당부(當付)하고 싶은 건”은 “얘기하고 싶은 하나는”이나 “말하고 싶은 대목은”으로 손보고, “실천(實踐)하자는 거야”는 “하자는 얘기야”나 “몸으로 옮기자는 소리야”로 손봅니다.


  보기글 첫머리에 “멀리 보는”이라 말하고는, 이내 “장기적인 안목”이라 적습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데, 첫머리는 한국말이요, 잇달은 말마디는 한자말입니다. 이 말꼴은 꼭 “잘 가, 바이바이.” 하고 같습니다. “고마워, 땡큐.”라든지 “가득 넣어 주셔요, 만땅이요.”와도 같다 할 만해요.


  ‘장기적(長期的)’은 “오랜 기간에 걸치는”을 뜻한다 하며, 국어사전에 실립니다. 아무래도 ‘단기적(短期的)’과 짝꿍이 되어 쓰일 텐데, 한국말로 얘기하자면 ‘오랜 동안’과 ‘짧은 동안’입니다. 간추려 ‘오래’와 ‘짧게’예요.

 

 멀리 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해
→ 멀리 볼 줄 알아야 해
→ 멀리 보아야 해
→ 멀리 보는 눈을 길러야 해
→ 멀리 보는 눈썰미를 키워야 해
→ 멀리 보는 매무새로 살아야 해
 …

 

  사람들 스스로 멀리 보는 눈길과 가까이 살피는 눈썰미를 북돋울 수 있으면 기쁘겠어요. 저마다 하는 일뿐 아니라 저마다 누리는 놀이와 저마다 일구는 삶을 멀고 가까이 헤아리며 곱게 건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삶부터 여러모로 알뜰히 살피며 돌볼 때에 넋과 말 또한 여러모로 알뜰히 살피며 돌보거든요. 삶부터 깊이 들여다보거나 두루 돌아볼 때에 얼과 글 또한 깊이 들여다보거나 두루 돌아보는구나 싶어요.


  ‘멀리보기’와 ‘가까이보기’를 생각합니다. ‘톺아보기’가 있고 ‘살펴보기’가 있습니다. 한국말로 ‘먼눈’이나 ‘앞눈’ 같은 새 낱말을 빚어 봅니다. 나 스스로 내 머나먼 삶을 헤아리며 오늘 하루 알차게 여미려는 뜻을 ‘먼눈’이라는 낱말에 실어 봅니다. 앞을 바라보며 오늘 이곳에서 차근차근 내 걸음걸이 즐기는 모습을 ‘앞눈’이라는 낱말에 담아 봅니다.


  어쩌면, ‘멀리보기’와 ‘당겨보기’를 생각할 만합니다. ‘멀리보기’와 ‘옆보기’, 여기에 ‘뒤보기’와 ‘앞보기’와 ‘둘레보기’를 떠올릴 만합니다. 내 말결에 울타리를 세우지 않으면 말길을 환하게 틉니다. 내 말씨에 껍데기를 씌우지 않으면 말넋을 따사롭게 빛냅니다. (4345.4.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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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71) 직관적 1 :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그 영혼이 태아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 단지 우연이 아니라 엄청난 치유와 은혜를 지닌 의도와 목적이 있는 것이라는 직관적 지식이 깔려 있었다
《조안 엘리자베스 록/조응주 옮김-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민들레,2004) 64쪽

 

  “그 영혼(靈魂)”은 “그 넋”으로 손보고, “연결(連結)되어 있다는 말을 전(傳)하기 위(爲)해”는 “이어졌다는 말을 들려주려고”나 “이어졌다는 말을 하려고”로 손보며, “나타났다는 것을”은 “나타났음을”이나 “나타났다고”나 “나타난 줄을”로 손봅니다. ‘단지(但只)’는 ‘다만’이나 ‘그저’로 다듬고, “엄청난 치유(治癒)와 은혜(恩惠)를 지닌 의도(意圖)와 목적(目的)이 있는 것이라는”은 “널리 달래고 사랑하려는 뜻과 생각이 있다는”으로 다듬으며, “깔려 있었다”는 “깔렸다“로 다듬어 봅니다.


  ‘직관(直觀)’은 “(1) 감관의 작용으로 직접 외계의 사물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얻음 (2)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을 뜻하고, ‘직관적(直觀的)’은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을 뜻한다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직접적으로 파악하는”이 ‘직관적’인 셈입니다. 그러면 ‘직접적(直接的)’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다시 들춥니다. 이 한자말은 “중간에 제삼자나 매개물이 없이 바로 연결되는”을 뜻한다 해요. 그러니까, ‘직관적 = 바로 연결하여 파악하는’을 뜻하는 한자말이요, 한국말로 더 쉽게 풀이하면 ‘직관적 = 바로 이어서 헤아리는’인 셈이고, 간추리자면 ‘직관적 = 곧바로 보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관적 판단을 하다
→ 곧바로 생각하다 . 곧장 생각하다 . 막바로 생각하다
 직관적인 인식
→ 곧바로 깨닫기 . 곧장 느끼기 . 막바로 알아차리기

 

  찬찬히 생각합니다. 어떤 낱말을 골라서 써야 알맞고, 어떤 낱말을 가려서 이야기를 빛내야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을 곧바로 드러내기 좋은 낱말을 돌아봅니다. 내 넋을 누구나 금세 알아차리도록 이끄는 말마디는 어떠한가 헤아립니다.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 곧바로 알아차렸다 . 금세 알아차렸다 . 바로 알아차렸다

 

  더 쉽게 써야 하는 글이라기보다 한결 알아차리기 좋게 쓸 글이면 즐겁다고 느낍니다. 여러모로 꾸미는 글보다 살가이 보듬거나 보살피는 손길로 추스르는 글이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한자말 ‘직관’이 쓸 만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말 ‘바로보기’를 쓸 수 있어요. ‘바로생각’처럼 새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로 생각하는 힘을 스스로 끌어올리는 일이 훨씬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4337.11.13.흙./4345.4.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그 넋이 태아와 이어졌다는 말을 들려주려고 나타난 줄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 그저 우연이 아니라 널리 달래고 사랑하려는 뜻과 생각이 있다고 알아보는 지식이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736) 직관적 2 : 직관적으로 느꼈다

 

나는, 아아,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걸 직관적으로 느꼈다
《엔도 슈사쿠/김석중 옮김-유모아 극장》(서커스,2006) 136쪽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걸”은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나 “좋은 사람이라고”로 다듬어 봅니다. 앞에 ‘아아’ 하는 느낌말이 있으니, “이 사람은 좋네, 하고”나 “이 사람은 좋구나, 하고”처럼 다듬어도 괜찮아요.

 

 좋은 사람이라고 직관적으로 느꼈다
→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 좋은 사람이라고 곧바로 느꼈다
→ 좋은 사람이라고 그대로 느꼈다
→ 좋은 사람이라고 문득 느꼈다
 …

 

  보기글에서는 ‘느끼다’라는 말마디를 뒤에서 바로 쓰니까, 굳이 ‘직관적’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있는 그대로 쓰기만 하면 넉넉합니다. 한편, ‘어떻게 느꼈는지’ 힘주어 말하고 싶다면 여러모로 풀어 볼 수 있어요. 곧바로 느꼈다고, 또는 그대로 느꼈다고, 또는 문득 느꼈다고, 또는 불현듯이 느꼈다고, 또는 어렴풋이 느꼈다고, 또는 ……. 사람마다 누군가를 만날 때 받는 느낌이란 다 다르기 마련이니, 이 다 다른 느낌을 ‘느꼈다’ 앞에 살짝 넣어 봅니다.
 (4339.12.4.달./4345.4.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나는, 아아, 이 사람은 좋구나 하고 금세 느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47) 직관적 3 : 직관적으로 작업한다

 

그의 영화들은 늘 어떤 유형성을 보이며 세심하게 조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계획 없이 직관적으로 작업한다고 한다
《박태희-사진과 책》(안목,2011) 158쪽

 

  “그의 영화들은”은 “그가 찍은 영화들은”으로 다듬고, “어떤 유형성(類型性)을 보이며”는 “어떤 틀을 보이며”나 “비슷한 틀을 보이며”로 다듬습니다. “세심(細心)하게 조작(造作)된 것처럼”은 “하나하나 빈틈없이 짠 듯이”나 “꼼꼼하게 짜거나 엮은 듯이”로 손보고, ‘대부분(大部分)’은 ‘거의 모두’로 손봅니다. “계획(計劃) 없이”는 “미리 짜지 않고”나 “미리 생각하지 않고”나 “어떤 틀을 먼저 세우지 않고”로 손질하고, “작업(作業)한다고”는 “영화를 찍는다고”로 손질합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추스른 다음, “그가 찍은 영화들은 늘 비슷한 틀이 보이며 빈틈없이 짠 듯이 보이지만 거의 모두 어떤 틀을 미리 짜 놓지 않고 그때그때 느끼는 대로 찍는다고 한다”처럼 보기글을 통째로 다시 적어 봅니다. 말뜻과 말마디를 한결 또렷하게 밝히면서, 어느 대목을 어떻게 더 추슬러야 좋은지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느끼리라 생각해요.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글도 말도 넋도 삶도 한결 넉넉하거나 따사로이 보듬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쏟는 만큼 글이나 말이나 넋이나 삶 또한 더 알차거나 싱그러이 북돋울 수 있어요.

 

 직관적으로
→ 생각나는 대로
→ 떠오르는 대로
→ 느끼는 대로
 …

 

  느낌을 잘 살리면서 넋과 말을 살리면 좋겠습니다. 생각을 잘 추스르면서 꿈과 사랑을 빛내면 기쁘겠습니다. 마음을 잘 가꾸면서 삶과 이야기 또한 아름다이 일구면 고맙겠습니다.


  생각으로 빛내는 말이고, 생각으로 살찌우는 글입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살리는 말이요, 마음을 활짝 열면서 갈고닦는 글입니다.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그가 찍은 영화들은 어떤 틀을 보이며 빈틈없이 엮은 듯 보이지만, 으레 그 자리에서 느낌을 살려 찍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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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4-06 09:44   좋아요 0 | URL
음...직관적이라는 말은 저도 자주 쓰는 말인데 우리말로 어떻게 쓰면 좋을지, 쉽지 않군요. 말씀하신대로'곧바로 알아차렸다, 금세 알아차렸다, 바로 알아차렸다' 도 좋지만 이말은 알아차린 '시간'이 무척 짧았다는 쪽에 집중되지 않았나 싶어요. '직관'이라는 말에는 그 이상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숲노래 2012-04-06 12:52   좋아요 0 | URL
'바로'나 '곧'은 시간만 가리키지 않아요.
시간과 장소를 아우르는 낱말이에요.

잘 생각하고 헤아려 보시면
좋은 길을 찾으시리라 믿어요.

hnine 2012-04-07 06:39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바로는 직관적이라는 말은 시간, 장소, 그 외에도 다른 의미가 더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숲노래 2012-04-07 10:48   좋아요 0 | URL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생각하며 쓰지 못해서 그렇지,
'직관적'이라는 낱말에만 여러 가지 뜻이 더 담기지 않아요.
한국사람 스스로 '직관적'을 여러 곳에 쓰기 때문에
여러 가지 뜻이 담기게 돼요.

이와 마찬가지예요.
한국말 '곧'과 '바로' 또한 뜻 테두리가 아주 넓어요.
국어사전을 한 번 살펴보시면,
이 낱말 뜻과 쓰임을 한국사람 스스로 얼마나 모르고
얼마나 못 살리는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곧, '곧'과 '바로'가 가리키거나 나타내는 넓고 깊은 테두리를 살피면
'직관적' 같은 말은 아주 쉽게 스스로 풀어낼 수 있어요.
 

묶음표 한자말 168 : 말(言)


여기서 나의 말(言)은 풀 한 포기 흔들지 못한다
《박영근-솔아 푸른 솔아》(강,2009) 126쪽

 

  ‘나의’는 ‘나 + 의’ 꼴입니다. 이 말투는 일본 말투 ‘私 + の’를 한글로 옮겨 적은 꼴입니다. 겉으로 보는 생김새는 한글이지만, 말씨로 헤아리면 한국말이 아닙니다. ‘blue’를 ‘블루’로 적는다 해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블루’로 적으면 한글로 적었을 뿐입니다. 옳고 바르게 한국말로 하자면 “나의 말”은 “내 말”이라 적어야 합니다.

 

 나의 말(言)은
→ 내가 읊는 말은
→ 내가 외는 말은
→ 내 말마디는
→ 내 말소리는
 …

 

  글쓴이는 ‘말’이라는 낱말을 꾸밈없이 적바림하지 못합니다. ‘말’이라고만 적으면 입으로 읊는 말이랑 들짐승 말이랑 헷갈릴까 싶어서 이처럼 적었는지 모릅니다. ‘言’이라는 한자를 나란히 적을 때에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며 헷갈리지 않을 만하다고 여겼구나 싶습니다. 어떤 이는 ‘눈’이라는 낱말을 사람들이 헷갈려 할까 봐 ‘눈(目)’과 ‘눈(雪)’으로 적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눈’이 되든 ‘말’이 되든, 한국말은 길고 짧은 소리로 둘을 가릅니다. 또한, 글흐름과 말흐름에 따라 두 낱말을 갈라요. 따로 한자를 밝힌대서 낱말을 한결 또렷이 헤아리도록 돕지 않습니다. 힘들여 한자를 넣어야 글흐름이나 말흐름이 환히 살아나지 않아요.


  한자 아닌 영어를 넣는들 글흐름과 말흐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평화를 ‘평화(peace)’처럼 적거나, 사랑을 ‘사랑(love)’으로 적어야 잘 헤아리거나 옳게 읽을 수 있지 않습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가누면서 한국글을 한국글답게 돌보아야 가장 알맞고 아름답습니다.


  보기글에서 ‘말’이라고만 적을 때에 흐름이 엉뚱해질 수 있겠다 싶으면, 한국 말투를 살리도록 사이에 다른 꾸밈말을 넣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나 “내가 읊는 말”이나 “내가 들려주는 말”이나 “내가 쓰는 말”이나 “내가 적은 말”이나 “내가 외치는 말”이나 “내가 품은 말”처럼, ‘나’와 ‘말’ 사이에 알맞게 징검돌을 놓습니다.


  또는 ‘말소리’나 ‘말마디’나 ‘낱말’이나 ‘말투’나 ‘말씨’나 ‘싯말’이나 ‘노랫말’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말삶을 생각하며 길을 살핍니다. 말꿈을 피우며 넋을 북돋웁니다. 말사랑을 보듬으며 빛을 나눕니다. (4345.4.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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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6) 초록의 4 : 초록의 도시

 

5월,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는 계절이 시작되었다. 도쿄는 초록의 도시다. 어딜 가든, 상큼한 초록색이 마음의 선도를 -도쯤 신선하게 해 준다
《안수연-케이타이 도쿄》(대숲바람,2007) 124쪽

 

  “잎이 무성(茂盛)해지기 시작(始作)하는 계절(季節)이 시작(始作)되었다”는 “잎이 우거지는 철이 되었다”로 손질합니다. ‘초록색(草綠色)’은 ‘풀빛’이나 ‘푸른빛’으로 손보고, “마음의 선도(鮮度)를”은 “마음빛을”이나 “마음 빛깔을”이나 “마음을”로 손봅니다. “신선(新鮮)하게 해 준다”는 “싱그럽게 해 준다”나 “싱싱하게 해 준다”나 “산뜻하게 해 준다”로 손볼 수 있어요. 이 글월에서는 ‘-’라고만 적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읽을까 궁금합니다. ‘빼기’로 읽는 사람이 있을는지, 아니면 온통 ‘마이너스(minus)’로 읽기만 할는지요.

 

 도쿄는 초록의 도시
→ 도쿄는 푸른 도시
→ 도쿄는 푸른빛 도시
→ 도쿄는 풀빛 도시
→ 도쿄는 푸른 빛깔 도시
 …

 

  도시 가운데 ‘기업이 새로 생겨 돈벌이 하기 좋다’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푸른 숨결 마음껏 들이마시며 흙을 느끼기 좋다’는 곳이 있을까 없을까 모르겠습니다. 한국 바깥쪽에는 ‘푸른 내음 짙은’ 도시가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한국 안쪽에는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도시란 아직 한 곳조차 없다고 느낍니다. 도시 한복판에 푸른 잎사귀 우거진 나무로 숲을 이룬 흙땅과 풀잎 빛깔 흐드러진 흙바닥을 실컷 누빌 만한 데가 하나조차 없다고 느껴요. 한국 도시는 온통 잿빛 도시입니다. 어디를 가도 시멘트요 아스팔트인 도시입니다. 어디를 가도 건물뿐이고, 자동차가 흘러넘칩니다. 바람과 물과 햇살과 흙과 풀과 나무를 한갓지게 누릴 터를 널찍하게 마련하는 도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입니다.


  숨을 쉴 틈을 마련하지 않으니, 사랑스레 생각할 틈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숨을 쉴 겨를을 헤아리지 않으니, 사랑스레 이야기꽃 피우는 꿈을 품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 싱그러이 빛나는 숨결입니다. 풀 한 포기는 싱싱하게 빛나는 숨소리입니다. 햇살 한 조각은 산뜻하게 빛나는 숨넋입니다. 흙 한 줌은 상큼하게 빛나는 숨녘입니다.


  삶이 싱그러울 때에 말이 싱그럽습니다. 삶이 싱싱할 때에 말이 싱싱합니다. 삶부터 산뜻하지 못하니 말이 산뜻하기 바라지 못합니다. 삶조차 상큼하지 못하니 말마저 상큼하기를 바라지 못해요. 한국말은 언제쯤 어디에서 누가 예쁘게 보살피며 살릴 수 있을까요. (4345.3.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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