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2. 읽지 않는 책은 찍지 못해요 - 뿌리서점 2011.1206.39

 


 사람들은 흔히 물어요. 내가 사들인 책을 다 읽느냐고. 이런 이야기가 궁금할 만한 값어치가 있을까요. 책 십만 권을 사들이는 사람이 십만 권을 다 읽든 열 권만 읽든 궁금할 만한 값어치가 있나요. 책 열 권을 사들인 사람이 열 가지 책을 백 번쯤 읽거나 즈믄 번쯤 읽는다면, 이러한 이야기가 궁금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가요.

 

 어떤 사람은 책 하나를 만 번쯤 읽어요.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책을 가까이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만 권에 이르는 책을 알뜰히 읽어요. 어떤 사람은 글을 배우지 못한 채 흙을 일구면서 살아요.

 

 문학을 짓는 사람이 있고, 문학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며, 문학을 즐기는 사람이 있어요. 더 나은 사람은 없고, 더 못난 사람 또한 없어요. 더 거룩한 문학이나 더 몹쓸 문학이란 없어요. 저마다 누리는 문학이에요. 저마다 사랑하는 문학이에요.

 

 나는 나한테 주어진 책을 저마다 다 다른 꿈을 담아 좋아해요. 나는 내가 찾아가는 헌책방을 저마다 다 다른 빛으로 느끼며 사랑해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나는 책을 읽어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아끼는 헌책방을 사귀어요.

 

 읽지 않는 책은 건사하지 못해요. 읽지 않을 책은 사진으로 담지 않아요. 사랑할 수 없는 사람하고 한집에서 살아가지 못해요. 좋아하지 못할 아이들하고 예쁜 삶꿈을 이루지 못해요. 사진은 내 넋이에요. (4344.12.12.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1. 내 사진은 흔들릴 수 없어요 - 흙서점 2011.1206.12

 


 내 사진은 흔들릴 수 없어요. 집안에서 아이들 담는 사진이라 하든 집밖에서 내 사진감 헌책방을 담는 사진이라 하든, 어느 사진이든 흔들릴 수 없어요. 때로는 살짝 흔들리거나 초점이 어긋났다 하지만 한결 따스하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나곤 해요. 흔들리지 않고 초점 잘 맞는 사진만 내 마음에 차거나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않거든요.

 

 나는 사진기를 처음 쥐어 내 사진길을 걷던 1999년부터 다짐했어요. 딱히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니지 않았고, 나라밖 어디로 배움길 다닌 적 없으며, 어떤 이름난 사진쟁한테나 이름 안 난 사진쟁한테나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혼자 사진기를 들고 사진찍기를 하며 사진을 배우면서 다짐했어요.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초점이 어긋났다면 다시 찾아가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즈믄 번이고 다시 찍어서 다시 얻어야 한다고.

 

 그저 찍고 또 찍고 다시 찍어요. 같은 자리에서 수없이 찍지만, 올해 지난해 다음해 언제까지나 찍고 또 찍고 다시 찍어요. 연대기 같은 사진을 생각하면서 찍지 않아요. 늘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이야기를 담으려는 사진을 찍어요. 언제나 가장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이야기를 실으려는 사진을 찍어요.

 

 나한테 1/20초라면 무척 빠르게 찍는 사진이에요. 1/15초나 1/10초도 제법 느긋한 사진이에요. 헌책방 살짝 어두운 불빛에서는 감도 1600으로 맞추고도 1/8초나 1/4초로 찍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리 넓지 않은 헌책방이니까, 아니, 퍽 좁은 헌책방이니까 세발이를 놓고 찍은 적이 없어요. 맨몸으로 안 흔들리며 찍을 뿐이에요. 다른 책손이 책읽기 할 때에 헤살 놓으면 안 되니 불을 터뜨리지 않아요. 오직 내 맨몸으로 부딪히면서 나한테 무지개 같은 꿈빛을 베푸는 헌책방 책빛을 담아요. (4344.12.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헌책방 사진 이야기] 12. 대구 대륙서점. 2010.3.17.


 헌책방에는 헌책이 있습니다. 새책방에는 새책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헌책방이니 마땅히 헌책을 갖춥니다. 헌책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새로 나온 책’을 ‘새로 장만하여 읽은’ 다음 내놓을 때에 붙습니다. 누군가 ‘새책’을 정갈하게 건사하며 읽고서 내놓았다면, 이 헌책은 ‘정갈한 헌책’이 됩니다. 누군가 새책을 아무렇게나 읽어 함부로 내놓았다면, 이 헌책은 ‘지저분한 헌책’이 됩니다. 헌책방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값싸게 사는 데가 아닙니다. 때때로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갖추면서 이 책들을 값싸게 팔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헌책방은 ‘가슴으로 아로새길 만하다고 여기는 묻힌 책’을 갈무리하는 몫을 맡습니다. 가슴으로 아로새겨서 오래오래 되새길 만하다고 여기는 책을 갈무리하고, 이 책을 고맙게 만나는 데가 헌책방입니다. 세월이라는 더께가 앉은 책이니 먼지가 제법 먹고 종이가 퍽 바스라지기도 할 테지요. 늙은 사람 주름살은 나이값이요 나이그릇이듯, 헌책 누런 종이나 먼지는 삶값이요 마음그릇입니다. 늙은 사람을 마주할 때에 주름살을 읽지 않고, 이녁이 살아낸 기나긴 나날에 걸친 슬기를 읽습니다. 헌책을 마주할 때에 겉껍데기나 먼지를 읽지 않고, 누렇게 바랜 종이에 깃든 아름다운 넋과 꿈을 읽습니다. (4344.9.17.흙.ㅎㄲㅅㄱ)


- 2010.3.17. 대구 대륙서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9-17 16:11   좋아요 0 | URL
계속 벼르다가 일산 끄트머리에 있는 헌책방을
추석 때 드디어 들렀답니다. 먼지내 풀풀 나는 곳에서 두시간을 버티며
이책저책 다 디비고 보고 향내 맡는 그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요, 결국
두 손 가득 책을 들고 나왔다지요........ ㅎㅎ

홍대 살 때, 거기도 굉장히 오랜 헌책방이 있었는데 없어진 소식에 맘 아팠어요.

숲노래 2011-09-17 16:53   좋아요 0 | URL
매장으로 가는 발길이 줄고,
매장으로 가더라도 '다 다른(다양한) 책'보다는
그때그때 실용으로 삼을 책에 더 눈길이 가는 세상 흐름이니까,
새책방도 동네책방은 힘들고 대형서점만 살아남을 수 있듯,
헌책방은 아주 힘들어요.

내 동네 어디 한켠에 헌책방이 있을 때에
고마이 아끼면서 즐겨 찾아가야 해요.

그래도 홍대 신촌 둘레에는 좋은 헌책방이 많아요.
새로 생기는 곳도 있고요~ ^^

카스피 2011-09-18 22:50   좋아요 0 | URL
대륙서점이라 예전에 대구에 갔을때 헌책방 몇군데를 돌은 기억이 나는군요.이거 혹 대구 시청 뒷골목에 있던 헌책방인가요??

숲노래 2011-09-19 03:13   좋아요 0 | URL
대구시청 뒷골목이라 할는지 알 수 없으나,
대구역과 동대구역 사이
큰길가에 있습니다.

카스피 2011-09-19 08:3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럼 맞는것 같기도 하네요^^ 또 언제 가볼지 모르겠군요.
 

[헌책방 사진 이야기] 11. 서울 책나라. 2009.봄.


 헌책방치고 큰길에 자리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드물게 큰길가 목 좋은 데에 자리하면서 책을 무척 많이 다루는 헌책방이 있습니다만, 웬만한 헌책방은 큰길가보다는 골목 안쪽에 자리합니다. 큰길가에 자리하더라도 사람 발길이 잦은 곳에 자리하기 벅찹니다. 헌책 팔아 가게삯을 치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살림을 꾸리는 분들은 해가 날 때에 해를 바라보면서 일을 하기를 바라고, 책손들이 햇볕을 쬐면서 따사로운 기운으로 책 하나 맞아들이기를 비손합니다. 생각해 보면, 헌책이든 새책이든 따사로운 햇살이 누구한테나 골고루 따스한 마음길을 베풀듯, 따사로운 넋이 깃든 책을 누구나 따사로운 발걸음으로 찾아나서면서 따사로운 손길을 북돋우고, 따사로운 눈길로 이 땅 곳곳에서 따사로운 땀방울을 흘릴 수 있으면 기쁘리라 꿈꿀 테니까요. 어른도 아이도 고운 책결을 느끼면서 고운 마음결을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4.12.불.ㅎㄲㅅㄱ)


- 2009.봄. 서울 회기동 책나라
 

 

 

(최종규 . 20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헌책방 사진 이야기] 10. 부산 대영서점 2010.9.11.


 어느 헌책방에 찾아가서 책을 고르고 나서 사진을 찍든, 헌책방 일꾼더러 사진으로 곱게 찍혀 주십사 하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따로 모델 사진을 찍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애써 헌책방 일꾼 얼굴이 드러나도록 사진을 찍어야 ‘헌책방 사진’이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일꾼 아무개가 손질하거나 만진 책인 줄을 알아야 어느 책 하나를 더 알차게 읽을 수 있지 않습니다. 그저 고마운 책 하나라고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주 드물게 헌책방 일꾼 모습을 두 눈으로 서로 마주보면서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 주면 좋겠다” 하는 말씀을 들을 때면 이처럼 찍습니다. 여느 때 여느 모습을 여느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퍽 홀가분한데, 다소곳하게 앉아 다소곳한 모습을 다소곳한 매무새로 사진으로 찍자면 진땀이 흐릅니다. 이러면서도 헌책방 일꾼 두 눈과 얼굴을 사진기로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어 고맙기도 합니다. 언제나 책 앞에서 바르게 살아온 얼굴입니다. (4344.4.6.물.ㅎㄲㅅㄱ)


- 2010.9.11. 부산 보수동 대영서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