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도서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31.

 


  도서관 책꽂이를 3.5톤 짐차에 가득 실어 가져왔다. 순천에 있는 헌책방 사장님이, 순천 쪽 어느 도매상이 문을 닫을 때에 책꽂이를 통째로 빼냈다고 한다. 문닫은 도매상에서 책꽂이랑 7톤어치 책을 빼내는 데에 일꾼을 이백만 원어치 썼다는데, 책꽂이를 나누어 받아 짐차에 싣고 도서관에 부리고 보니, 일꾼들 일삯으로 그만 한 돈을 쓸밖에 없겠다고 느낀다.


  책꽂이는 참 크다. 생각해 보건대, 이제 문닫고 만 도매상이 처음 문을 열면서, 가게 안쪽에 나무를 쌓아 벽과 가게 너비에 맞게 짠 책꽂이였을 테지. 한 번 짜서 벽과 가게 안쪽에 촘촘히 붙이고 나면, 두 번 다시 이곳에서 빠져나갈 일이 없도록 했을 테지.


  벽과 바닥에 단단하게 붙은 채 서른 해 남짓 수십 수백만 권을 얹었을 책꽂이는 거의 다친 데 없이 떨어졌다. 높이와 너비가 꽤 되어 둘이 마주 들어도 팔다리가 덜덜 떨리는 커다란 녀석 또한 휘어지지 않고 잘 떨어져 우리 도서관까지 왔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녀석은 문짝을 다 떼내고 창문을 다 떼어도 들이지 못할 만큼 크다. 하는 수 없이 벽이 기대 놓는다. 못을 빼고 나무칸을 뜯은 다음 다시 못질을 하고 싶지 않으나, 이렇게 떼지 않고서야 안으로 들일 수 없으리라.

 


  커다란 책꽂이 하나를 교실 벽에 대 본다. 벽을 높직하게 잘 채운다. 못을 박는다. 나 또한 이 책꽂이가 다시 떨어지지 않기를 꿈꾸며 벽이랑 바닥에 못질을 한다. 골마루 바닥인 교실이기에 못이 잘 박힌다.


  도매상에서 쓰던 책꽂이는 책을 더 많이 꽂도록 빈틈 거의 없을 만큼 알뜰히 짰다. 칸이 휘어지지 않을 만큼 사이를 댄다. 서른 해 남짓 책을 받쳤다지만 휜 자국이 거의 안 보인다. 그래도, 나는 이 책꽂이를 뒤집어서 박는다.


  어느 책을 꽂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퍽 아끼는 손바닥책을 꽂기로 한다. 정음문고이든 박영문고이든 을유문고이든 중앙문고이든 전파과학문고이든 신구문고이든 삼성문고이든, 헌책방을 돌며 호를 빠짐없이 맞출 수 있는 노릇이지만, 나는 그때그때 내가 즐겁게 읽을 만큼 하나씩 사서 모았다. 내가 읽을 수 없는 책이라 한다면, 굳이 사서 어떤 쓸모가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못 읽은 책을 내 아이가 읽을까. 내가 못 읽은 책을 다른 사람더러 읽으라 내밀 수 있을까.


  내 도서관은 내 서재라고 느낀다. 내 서재는 내 도서관이라고 느낀다. 새로 옮긴 이곳에서 아직 ‘새 봉투’와 ‘새 이름쪽’을 마련하지 않았는데,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쓸는지, 아니면 ‘사진책 서재도서관’이라고 새롭게 이름을 붙여 볼는지 찬찬히 헤아려 본다. ‘사진책 서재’라고만 해 볼까. ‘도서관’이라는 말은 아예 덜고, 다른 이름을 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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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장갑 끼고 매듭 풀고 맺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1.

 


  지난해에 마지막으로 책짐을 꾸리자며 책을 묶을 때까지 맨손으로 책을 묶었다. 맨손으로 책을 묶으면, 여느 때에 으레 집일을 많이 하느라 꾸덕살 딱딱히 박힌 내 손은 더 투박하고 더 딱딱하게 바뀐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실장갑을 낀 손으로는 책을 묶거나 풀면 손느낌이 썩 와닿지 않았다. 올들어 이 책들을 끌르며 곰곰이 생각한다. 실장갑을 낀 채 아주 가뿐하게 책을 묶기도 하고 끈을 끌르기도 한다. 끌른 끈을 실장갑 낀 손으로 슥슥 펴서 휘리릭 매듭을 짓고는 빈 상자에 휙 던져서 톡 넣는다.


  내 나이를 돌아본다면 책을 읽은 햇수가 꽤 길다 할는지 모르겠는데, 여태껏 책을 읽은 햇수 못지않게 책을 만진 햇수도 길다. 1995년부터 해마다 살림집을 옮기느라 책짐을 늘 묶고 끌르고 다시 싸고 또 풀고 하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언제나 내 등짐으로 책을 날랐다. 출판사에서 영업부 일꾼으로 한 해 동안 일하며 창고 책을 갈무리하느라 또 책을 수없이 만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한나절 동안 등짐으로 마흔 권짜리 전집 상자 270개를 혼자 등짐으로 나른 적 있다. 이오덕 님 남은 책을 갈무리한다며 또 책을 끝없이 만지작거렸다. 몇 만 권에 이르는 이오덕 님 책을 내 머리속에 찬찬히 아로새기며 어디에 어느 책이 있고 어디에 어느 원고가 있는가를 외우고 살았다.


  두 아이와 살아가기에 하루 한나절 겨우 책 갈무리에 쓸락 말락 한다. 고작 한나절 책을 만지는데 실장갑이 새까매진다. 집에서 건사하며 곱게 돌보려 하는 책들인데, 이 책들을 한나절 만지는 데에도 실장갑은 새까매진다. 내가 읽어 건사한 책들은 헌책인가 새책인가 그냥 책인가. 책을 털고 쓰다듬으며 제자리에 꽂느라 막상 책을 읽을 겨를을 내기 힘들지만, 오늘 하루는 이 책들을 만지작거리는 겨를을 냈다는 대목을 고맙게 여기며 싱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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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풀려나는 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0.

 


  지난해 유월부터 구월까지 아주 신나게 책을 묶었다. 이 책들은 끈으로 묶인 채 짧으면 여섯 달 남짓, 길면 아홉 달이나 열 달 즈음 지내야 했다. 이제 이 책들을 하나하나 끌른다. 겨우 숨통을 트는 책들은 오래도록 묶인 나머지 끈 자국이 남는다. 돌이키면, 이 책들은 2010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이에 앞서 2007년 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고, 2005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며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나는 이 책들을 얼마나 자주 묶고 얼마나 자주 날랐으며 얼마나 자주 쌓거나 쟁여야만 했던가. 부디 다시는 더 끈으로 묶지 않기를 빈다. 앞으로는 고운 손길 예쁘게 타면서 살가이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새 책꽂이 먼지를 닦고 차근차근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은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천천히 풀려나는 책들이 좋아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좋고 책들도 좋다. 나도 기쁘고 책들도 기쁘다. 너덧 시간 쪼그려앉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며 책을 끌르고 꽂지만 힘들 줄 모른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로소 팔다리 무릎 어깨 등허리 몽땅 쑤시고 결리며 저리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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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14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도 사름벼리가 함께 했군요 ^^
마음은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제목에 쓰셨듯이 천천히 해나가세요.
묶고, 끌르고...그게 우리 사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숲노래 2012-03-15 04:14   좋아요 0 | URL
묶고 끌르는 삶에서
사랑하고 아끼는 삶으로
천천히 거듭나고 싶어요.. @.@
 


 새 책꽂이 잔뜩 들이다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6.

 


 월요일에 올 듯하던 새 책꽂이가 화요일에 오다. 커다란 짐차에 잔뜩 실린 책꽂이를 풀밭에 내린다. 새 책꽂이라서 골판종이로 앞뒤를 댔다. 아침에 비가 그친 풀밭은 촉촉하지만 괜찮으리라 여긴다. 짐차 일꾼은 책꽂이만 내리고 떠난다. 내가 혼자 한 시간 남짓 책꽂이를 나른다. 그나마 네 칸짜리 칼라박스이니까 혼자 나를 만하지, 커다란 책꽂이였으면 어깨와 등허리가 얼마나 결렸을까.

 

 이럭저럭 갈무리를 마쳤다 싶은 자리에 책꽂이가 가득 쌓이니 다시 어수선하다. 이제부터 옆 교실 쌓아 두기만 하던 책을 하나하나 끌러 예쁘게 제자리를 찾아 주어야지. 이렇게 교실 두 칸 책들을 갈무리하고 나면, 바깥 길가에 푯말을 하나 세워 ‘임시 개관’을 할까 싶기도 하다. 임시 개관을 하고 나서, 다시 살림돈을 푼푼이 모아 새 책꽂이를 더 들이고, 이렇게 책꽂이를 마저 들이면서, 이곳 옛 학교를 우리 보금자리로 삼는 꿈을 꾼다.

 

 지난해 유월에 끈으로 묶인 채 언제 풀리는가 기다리던 책 가운데 노동책과 국어사전붙이를 드디어 끌른다. 다시는 끈에 묶이지 않게 하고 싶다. 이 고운 책들이 고운 사람들 고운 손길을 타며 곱게 빛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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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3-0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리하실 일이 산더미네요
님도 도서관을 꾸미시는 건가요? 순오기 언니처럼요?

숲노래 2012-03-07 12:51   좋아요 0 | URL
개인도서관을 2007년 4월부터 했어요.
인천에서 처음 열었고,
이제 전남 고흥으로 와서 책 정리 하고 집일 하고 그러느라 바쁘답니다 @.@

http://blog.aladin.co.kr/hbooks/5137783
(이 글을 보면 시골로 도서관 옮기며 끄적거린 얘기가 있어요 ^^;;;)

http://blog.aladin.co.kr/hbooks/5475603
(이 글은 오늘 써서 올렸는데, 이 글에 도서관 일대기를 살짝
간추려서 적었어요~)


저는 지자체나 문화부 같은 데에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
혼자서 도서관을 꾸리느라
좀 많이 빡빡하고 벅차기도 하답니다 @.@

이궁~

노이에자이트 2012-03-0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진왜란 종군기는 케이넨의 것인가요? 요즘은 도서관에서도 폐기처분된 책인데...

숲노래 2012-03-08 18:2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폐기하나요?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그러나요?
흠..

노이에자이트 2012-03-08 19:13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1차자료의 가치야 충분히 있죠.하지만 요즘은 내용과 무관하게 오래된 책을 없애더라고요.도서관 공간이 부족하다고.위 사진의 책들 중 80년대 것은 도서관에서 다 없어졌어요. 90년대 것도 많이 없어져서 가끔 고물상에서 발견되고 그러죠.

숲노래 2012-03-08 19:2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을
아주 고맙게 여기면서
알뜰히 그러모아요.

헌책방도 도서관도 참 좋은 곳이에요~
 


 만화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2.11.

 


 집에서 아이들이랑 복닥이는 나날이다 보니, 도서관으로 와서 책을 갈무리하는 겨를을 내기에는 만만하지 않다. 한 주에 한두 차례 도서관으로 와서 한두 시간쯤 책을 갈무리할 수 있으면 고맙다. 둘째가 스스로 걷고 뛸 무렵까지는 집에서 복닥이는 나날이 더 길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둘째가 스스로 걸을 무렵에는 뒤꼍 땅뙈기를 갈아엎어 푸성귀 심는 품을 많이 들여야겠지.

 

 아직 상자에 담긴 책이 많다. 겉에 아무 글을 안 적은 상자가 꽤 있어 하나하나 끌른다. 나중에 책꽂이 더 들인 다음에 끌릴 상자가 있고, 미처 알아보지 못해 뒤늦게 끌르는 상자가 있다. 어느덧 사진책, 어린이책, 그림책, 만화책, 교육책은 얼추 자리를 잡는다. 어디에 파묻혔나 싶던 책들이 나중에 끌르는 상자에서 하나둘 튀어나온다.

 

 사진책도 그렇지만, 만화책도 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만나기 참 힘들다. 어린이책은 꽤 오래도록 꾸준히 사랑받으니, 딱히 때를 놓칠 일이란 드물다. 사진책이나 만화책은 꽤 사랑받는다는 책마저 어느 결엔가 판이 끊어지거나 출판사가 사라지곤 한다. 그때그때 갖추어야 한다.

 

 흩어진 짝을 하나씩 찾으며 맞추다가, 이제 사라져 남은 짝을 찾을 길 없는 만화책을 쓰다듬다가, 내 곁에서 곱게 살아남은 만화책을 들여다보다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이 책들마다 어떤 삶 어떤 이야기 어떤 웃음 어떤 꿈이 깃들었을까. 우리 아이들하고 오래오래 나눌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은 이 만화책을 읽을 때에 어떤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받아먹을 수 있을까.

 

 도서관에는 훌륭하다거나 좋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책을 갖추어야겠지. 그런데, 훌륭하다거나 좋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책만 갖추면 도서관 몫을 다 하는 셈일까. 어버이로서, 어른으로서, 이만큼 하면 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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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2-2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실 때 엄청 나셨겠어요. 어느 정도 정리하시고 팔다리 안 쑤셨는지요?
저는 이제 책 모을 엄두가 안나요. 예전엔 절판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책은 나와는 인연이 아니다,란 생각을 가지고 살려고요^^
대단 하시긴 해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열정이 없으면 절대 못하는 일이죠.

숲노래 2012-02-21 17:42   좋아요 0 | URL
나른 책이 참 대단하기는 대단했어요.
그런 일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기에
부디 이모저모 오래오래 뿌리내리며
살아가고 싶답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