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시간 읽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5.

 


  한 해에 책 한 권조차 사지 않는 사람이 꽤 많다는 통계가 해마다 나온다. 나는 이 통계가 몹시 못마땅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 식구들 도시에서 살아가던 때, 도시 골목동네 이웃 가운데 한 해에 한 차례조차 책방마실을 안 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그렇다고 이들이 문화나 사회나 살림을 모르는 이들은 아니다. 집일을 도맡는 분은 집일을 도맡는 대로 바쁘고, 돈벌이를 맡는 분은 돈벌이를 맡는 분대로 바쁘다. 게다가, 교사는 교사대로 바쁘고, 예술쟁이는 예술쟁이대로 바쁘며, 정치꾼은 정치꾼대로 바쁘다. 더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끝없이 바쁜 삶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그 바쁜 삶을 쪼개거나 나누어 책방마실을 한다.


  도시에서 살며 책방마실을 자주 즐기던 때,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안 바쁜 사람은 없기에, 바쁜 나머지 책방마실이 만만하지 않다. 그렇지만 죽도록 불티나게 바쁘기까지는 하지 않기에, 이 죽도록 불티나게 바쁜 틈을 쪼개거나 나누어 책방마실을 하고, 책방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을 다시금 더 겨를을 마련하거나 내어 책을 읽으리라.


  여느 살림과 일거리로 바쁘다면, 고단하거나 지친 몸을 쉬느라 술을 한잔 걸치거나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아야 한다. 여느 살림과 일거리에다가 스스로 꾀하는 어떤 꿈과 길이 있어 더없이 바쁘다면, 고단하거나 지친 몸으로 내 꿈과 길로 나아가고자 날마다 새롭게 내 몸과 마음을 다스리면서 갈고닦아야 하니까, 책방마실을 하고 책을 읽는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으면, 나는 하루에 한 시간쯤 짬을 마련해 식구들과 함께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가서 식구들은 놀면서 책이랑 사귀고, 나는 흐트러진 책을 갈무리하고 새 책꽂이를 벽에 붙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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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햇살 책시렁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4.

 


  봄햇살이 책시렁으로 스며든다. 겨울에는 골마루 쪽으로는 햇살이 들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아마 봄부터 가을까지는 골마루 쪽으로도 햇살이 드는구나 싶다. 옛 초등학교 건물이기 때문일까. 햇살이 아주 포근하게 스며든다. 옆지기가 보던 책을 골마루에 새로 세운 커다란 책꽂이에 꽂자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꽂는데, 곱게 스며드는 저녁햇살을 느낀다. 하루에 한두 시간 바지런히 꽂는다. 한두 시간쯤 책을 꽂노라면,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날마다 조금씩 하노라면 어느새 일을 마무리짓겠지.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천천히 오래도록 할 뿐이다. 100쪽짜리 책이든 300쪽짜리 책이든 날마다 조금씩 읽으며 한 권을 마무리짓는다. 한꺼번에 읽는 책이 아니라 차근차근 읽는 책이요,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차근차근 삶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는 책이다.


  좋은 봄햇살을 받는 책들마다 좋은 기운이 찬찬히 아로새겨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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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4-0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우라 아야꼬는 지금의 60~70대 여성들이 젊은 시절 좋아한 작가죠.빙점!
김남주, 프란츠 파농 책도 눈에 들어오네요.

숲노래 2012-04-08 06:25   좋아요 0 | URL
아직 책을 제대로 끌르지도 못했어요.
차근차근 잘 갈무리해야지요~

진주 2012-04-09 00:06   좋아요 0 | URL
괜시리 노이에자이트님 꼬리잡기를 합니다^^

미우라 아야꼬-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길은 여기에'자서전을 보면서 비로소 일본나라 사람을
일본놈이 아닌 일본인으로 인정하게 된 책이죠ㅋㅋ
애국심 충만하던 여고시절에 그 책을 만났거든요)

노이에자이트 말씀대로라면
저는 너무나 조숙했어요. 60~70대 여성들이라닠ㅋㅋ
조숙해도 너무 조숙했었군요, 제가 ㅎㅎㅎ

카스피 2012-04-1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넘 많으시네요.책장은 직접 다 만드셨는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저 책들을 보니 인천에 있었던 된장님 책방은 이제 완전히 문을 닫으셨겠지요?
 


 서재 도서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31.

 


  도서관 책꽂이를 3.5톤 짐차에 가득 실어 가져왔다. 순천에 있는 헌책방 사장님이, 순천 쪽 어느 도매상이 문을 닫을 때에 책꽂이를 통째로 빼냈다고 한다. 문닫은 도매상에서 책꽂이랑 7톤어치 책을 빼내는 데에 일꾼을 이백만 원어치 썼다는데, 책꽂이를 나누어 받아 짐차에 싣고 도서관에 부리고 보니, 일꾼들 일삯으로 그만 한 돈을 쓸밖에 없겠다고 느낀다.


  책꽂이는 참 크다. 생각해 보건대, 이제 문닫고 만 도매상이 처음 문을 열면서, 가게 안쪽에 나무를 쌓아 벽과 가게 너비에 맞게 짠 책꽂이였을 테지. 한 번 짜서 벽과 가게 안쪽에 촘촘히 붙이고 나면, 두 번 다시 이곳에서 빠져나갈 일이 없도록 했을 테지.


  벽과 바닥에 단단하게 붙은 채 서른 해 남짓 수십 수백만 권을 얹었을 책꽂이는 거의 다친 데 없이 떨어졌다. 높이와 너비가 꽤 되어 둘이 마주 들어도 팔다리가 덜덜 떨리는 커다란 녀석 또한 휘어지지 않고 잘 떨어져 우리 도서관까지 왔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녀석은 문짝을 다 떼내고 창문을 다 떼어도 들이지 못할 만큼 크다. 하는 수 없이 벽이 기대 놓는다. 못을 빼고 나무칸을 뜯은 다음 다시 못질을 하고 싶지 않으나, 이렇게 떼지 않고서야 안으로 들일 수 없으리라.

 


  커다란 책꽂이 하나를 교실 벽에 대 본다. 벽을 높직하게 잘 채운다. 못을 박는다. 나 또한 이 책꽂이가 다시 떨어지지 않기를 꿈꾸며 벽이랑 바닥에 못질을 한다. 골마루 바닥인 교실이기에 못이 잘 박힌다.


  도매상에서 쓰던 책꽂이는 책을 더 많이 꽂도록 빈틈 거의 없을 만큼 알뜰히 짰다. 칸이 휘어지지 않을 만큼 사이를 댄다. 서른 해 남짓 책을 받쳤다지만 휜 자국이 거의 안 보인다. 그래도, 나는 이 책꽂이를 뒤집어서 박는다.


  어느 책을 꽂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퍽 아끼는 손바닥책을 꽂기로 한다. 정음문고이든 박영문고이든 을유문고이든 중앙문고이든 전파과학문고이든 신구문고이든 삼성문고이든, 헌책방을 돌며 호를 빠짐없이 맞출 수 있는 노릇이지만, 나는 그때그때 내가 즐겁게 읽을 만큼 하나씩 사서 모았다. 내가 읽을 수 없는 책이라 한다면, 굳이 사서 어떤 쓸모가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못 읽은 책을 내 아이가 읽을까. 내가 못 읽은 책을 다른 사람더러 읽으라 내밀 수 있을까.


  내 도서관은 내 서재라고 느낀다. 내 서재는 내 도서관이라고 느낀다. 새로 옮긴 이곳에서 아직 ‘새 봉투’와 ‘새 이름쪽’을 마련하지 않았는데,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쓸는지, 아니면 ‘사진책 서재도서관’이라고 새롭게 이름을 붙여 볼는지 찬찬히 헤아려 본다. ‘사진책 서재’라고만 해 볼까. ‘도서관’이라는 말은 아예 덜고, 다른 이름을 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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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장갑 끼고 매듭 풀고 맺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1.

 


  지난해에 마지막으로 책짐을 꾸리자며 책을 묶을 때까지 맨손으로 책을 묶었다. 맨손으로 책을 묶으면, 여느 때에 으레 집일을 많이 하느라 꾸덕살 딱딱히 박힌 내 손은 더 투박하고 더 딱딱하게 바뀐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실장갑을 낀 손으로는 책을 묶거나 풀면 손느낌이 썩 와닿지 않았다. 올들어 이 책들을 끌르며 곰곰이 생각한다. 실장갑을 낀 채 아주 가뿐하게 책을 묶기도 하고 끈을 끌르기도 한다. 끌른 끈을 실장갑 낀 손으로 슥슥 펴서 휘리릭 매듭을 짓고는 빈 상자에 휙 던져서 톡 넣는다.


  내 나이를 돌아본다면 책을 읽은 햇수가 꽤 길다 할는지 모르겠는데, 여태껏 책을 읽은 햇수 못지않게 책을 만진 햇수도 길다. 1995년부터 해마다 살림집을 옮기느라 책짐을 늘 묶고 끌르고 다시 싸고 또 풀고 하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언제나 내 등짐으로 책을 날랐다. 출판사에서 영업부 일꾼으로 한 해 동안 일하며 창고 책을 갈무리하느라 또 책을 수없이 만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한나절 동안 등짐으로 마흔 권짜리 전집 상자 270개를 혼자 등짐으로 나른 적 있다. 이오덕 님 남은 책을 갈무리한다며 또 책을 끝없이 만지작거렸다. 몇 만 권에 이르는 이오덕 님 책을 내 머리속에 찬찬히 아로새기며 어디에 어느 책이 있고 어디에 어느 원고가 있는가를 외우고 살았다.


  두 아이와 살아가기에 하루 한나절 겨우 책 갈무리에 쓸락 말락 한다. 고작 한나절 책을 만지는데 실장갑이 새까매진다. 집에서 건사하며 곱게 돌보려 하는 책들인데, 이 책들을 한나절 만지는 데에도 실장갑은 새까매진다. 내가 읽어 건사한 책들은 헌책인가 새책인가 그냥 책인가. 책을 털고 쓰다듬으며 제자리에 꽂느라 막상 책을 읽을 겨를을 내기 힘들지만, 오늘 하루는 이 책들을 만지작거리는 겨를을 냈다는 대목을 고맙게 여기며 싱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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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풀려나는 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0.

 


  지난해 유월부터 구월까지 아주 신나게 책을 묶었다. 이 책들은 끈으로 묶인 채 짧으면 여섯 달 남짓, 길면 아홉 달이나 열 달 즈음 지내야 했다. 이제 이 책들을 하나하나 끌른다. 겨우 숨통을 트는 책들은 오래도록 묶인 나머지 끈 자국이 남는다. 돌이키면, 이 책들은 2010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이에 앞서 2007년 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고, 2005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며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나는 이 책들을 얼마나 자주 묶고 얼마나 자주 날랐으며 얼마나 자주 쌓거나 쟁여야만 했던가. 부디 다시는 더 끈으로 묶지 않기를 빈다. 앞으로는 고운 손길 예쁘게 타면서 살가이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새 책꽂이 먼지를 닦고 차근차근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은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천천히 풀려나는 책들이 좋아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좋고 책들도 좋다. 나도 기쁘고 책들도 기쁘다. 너덧 시간 쪼그려앉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며 책을 끌르고 꽂지만 힘들 줄 모른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로소 팔다리 무릎 어깨 등허리 몽땅 쑤시고 결리며 저리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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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14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도 사름벼리가 함께 했군요 ^^
마음은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제목에 쓰셨듯이 천천히 해나가세요.
묶고, 끌르고...그게 우리 사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숲노래 2012-03-15 04:14   좋아요 0 | URL
묶고 끌르는 삶에서
사랑하고 아끼는 삶으로
천천히 거듭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