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림공부방 소식지와 둘째 아이 (도서관일기 2012.6.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 넷째 교실을 갈무리하면서 내 오래된 물건과 예전 신문글과 여러 가지 물건을 들여다본다. 다른 세 교실은 내 책들로 꾸미고, 넷째 교실은 내 물건과 묵은 신문과 온갖 자질구레하다 싶은 물건으로 꾸민다. 어찌 보면 참 자질구레하달 수 있는데, 이 자질구레한 짐을 이제껏 끌어안고 용케 살았다. 짧으면 서너 해짜리 자질구레한 물건이요, 길면 스무 해가 넘는 자질구레한 물건이다. 어느 물건은 내 국민학생 때 것이니까 서른 해를 묵었고, 어느 물건은 내 아버지 것이니까 마흔 해를 묵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스무 살 즈음 된다면, 이즈막에 건사한 자질구레한 물건조차 그무렵에는 스무 해나 묵은 어떤 이야기가 되겠지. 스무 해 뒤에는 내 아버지 물건은 우리 아이들한테 예순 해 묵은 할아버지 이야기가 될 테고.


  그런데 이런저런 자질구레하다는 물건은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냥 쓰레기이다. 따로 건사해서 상자에 담아, 살림집 옮길 때마다 낑낑대며 지고 날랐으니 쓰레기 아닌 어떤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은 어느 해묵은 상자에서 인천 송림동에 있던(또는 아직 있는) ‘송림공부방’ 소식지 하나 나온다. 〈솔밭아이들〉이라 이름붙은 이 소식지를 낸 공부방은 2012년에도 그대로 살았을까. 1988년이나 1989년에 공부방 교사가 등사판으로 만들어 나누던 소식지였을 텐데, 어떻게 이 소식지가 내 자질구레한 물건 사이에 깃들 수 있었을까. 일손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본다. ‘4332.4.18.해.창영동 아벨서점’이라 적은 글월이 있다. 곧, 내가 이 소식지를 4332년, 이른바 1999년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 〈아벨서점〉에서 장만했다는 소리인데, 아마 이 공부방에 아이를 보낸 어느 집에서 이런저런 책과 함께 이 소식지를 묶어 밖에 내놓아 헌 물건으로 버렸다가 이래저래 흐르고 흘러 헌책방까지 들어왔겠지. 신문이나 잡지와 함께 묶여 폐휴지로 버려졌을 작은 소식지인데, 이런 작은 소식지 하나 알뜰히 건사해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 얌전히 꽂아 주었기에, 나는 이 작은 소식지를 고마우면서 즐겁게 돈 몇 푼 치러 장만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식지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지면서 인천과 인천 송림동과 인천 송림동 송림공부방을 떠올릴 누군가한테 좋으면서 애틋하고 그리우면서 반가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스밀 수 있겠지.


  한참 소식지를 들여다보다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나기에 골마루를 바라본다. 둘째 아이가 뚜벅뚜벅 어설피 걸음을 옮긴다. “아버지, 보라가 걸어요.” 하고 첫째 아이가 말한다. 돌날에는 그토록 걸어 보라 해더 안 걷더니, 돌을 지나고부터 제법 씩씩하게 여러 걸음 뗀다. 그래, 신나게 걸으렴. 씩씩하게 걸으렴. 머잖아 뛰고 달리면서 네 누나하고 훨훨 하늘도 날아다니면서 온누리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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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실 사진과 석류꽃 몽우리 (도서관일기 2012.6.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멧딸을 따며 놀다가 둘째 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둘째 아이가 잠든 김에 수레를 끌고 도서관까지 가기로 한다. 둘째 아이는 수레에 앉은 채 깊이 잠들었고, 아주 살짝 도서관 넷째 칸 갈무리를 해 본다. 몇 해째 상자에만 박힌 채 햇볕을 쬐지 못하던 여러 가지를 들춘다. 내가 고등학생 적 모은 최진실 님 사진 여러 장 나온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들어간 대학교에서 오려모은 박재동 님 그림판도 몇 장 보인다. 다섯 학기를 다닌 대학교 학보가 여러 장 나오고, 이무렵 내 밥벌이를 하며 지낸 신문사지국에서 돌리며 드문드문 모은 신문이 나온다. 1995년에 1995년치 신문을 모으며 ‘이 신문이 언제쯤 낡은 신문이 될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금세 낡은 신문이 되겠지.’ 하고 여겼는데, 몇 해 흐르면 벌써 스무 해나 묵은 신문이 된다. 헌책방에서 그러모은 1970년대 〈이대학보〉가 보이고, 1970년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꽤 재미나구나 싶다. 아무튼,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그야말로 바지런히 오려모으거나 통으로 갈무리하던 신문꾸러미를 그냥저냥 꽂기도 하고 반듯이 눕히기도 한다.


  수레에서 자는 둘째한테 자꾸 모기가 달라붙는다. 도서관 갈무리는 그만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첫째 아이는 마을 이웃집 석류나무 밑으로 들어간다. 떨어진 석류꽃을 줍겠단다. 몽우리에서 봉오리로 맺지 못하고 만 누런 석류꽃을 본다. 아이는 석류나무 옆 감나무에서 흙땅으로 떨어진 감꽃을 두 손 가득 주워서 보여준다.


  도서관에는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도서관이니까 책이 있어야 할 테고, 이런저런 낡은 신문이 있어도 좋겠지. 그런데, 이런 책 저런 신문 못지않게, 나무가 있고 풀이 자라며 꽃이 피어야 도서관다우리라 느낀다. 아무래도 가장 좋다 싶은 도서관은 숲이 아닐까. 가장 사랑스럽다 싶은 도서관은 어린이가 아닐까.

 

 

 

 

 

 

 

 

 

 

 

(석류꽃 몽우리 사진은 다른 글에서 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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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개구리 (도서관일기 2012.6.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교실 넉 칸 가운데 마지막 칸을 치우면서 책꽂이 자리를 잡기로 한다. 어쨌든 바닥을 쓸고 책꽂이를 놓는다. 마지막 칸에 남은 걸상은 한쪽 벽에 높이 쌓는다. 내 것으로 사들인 옛 학교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옛 학교가 문을 닫으며 남긴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해서 한쪽 벽에 쌓는다.


  먼지를 잔뜩 마시며 일한다. 오늘은 아이들 안 데리고 와서 혼자 일하는데, 외려 잘 한 노릇이라고 느낀다. 아이들까지 이 먼지를 마시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 며칠쯤 혼자 먼지를 실컷 마시며 치우고 나면, 이제 아이들이 와서 뒹굴거나 기어다녀도 이럭저럭 괜찮을 만큼 될 테지.


  면내 철물점에서 나뭇가지 자르는 가위랑 낫을 장만했다. 학교 나무를 우리가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되지만, 등나무 가지와 덩쿨이 너무 뒤죽박죽 뻗기에, 때때로 이 가지를 치고 잘라야겠다고 생각한다.


  교실 넉 칸 가운데 마지막 칸을 조금씩 치우기로 하니, 이제 어느 만큼 꼴을 잡는다 하겠지. 올여름이 다 갈 무렵이면 사람들을 부를 만큼 갈무리 마칠 수 있을까. 오늘은 책꽂이며 이것저것 사진으로 찍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세 시간 즈음 쉴새없이 일하다가 땀에 젖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무렵, 빗물 새는 벽 한쪽에 조그마한 푸른개구리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본다. 그래, 네 모습은 사진으로 찍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살갗으로 느끼는 이야기만 스스로 알아챌 수 있다. 몸으로 부대끼고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때에만 책 한 줄 내 삶으로 스며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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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룻바닥에 누워서 놀아라 (도서관일기 2012.5.3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전기도 물도 쓸 수 없지만, 첫째 아이를 낳고 출생신고를 할 적에 동사무소에서 선물이라며 주던 물휴지로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우리 집은 아이들한테 물휴지를 안 쓴다. 여느 집에서는 갓난쟁이가 똥을 누면 종이기저귀를 갈며 물휴지를 쓸는지 모르나, 우리 집은 천기저귀를 쓰고 물로 씻기니까 물휴지를 쓸 일이 없다. 다섯 해 가까이 한쪽 구석에 처박은 물휴지인데, 새삼스레 이제 와서 쏠쏠히 쓸모가 있다.


  둘째 아이가 좀처럼 걸으려 하지 않으니까,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천천히 이곳저곳 닦는다. 아이가 기어서 다닐 만한 데를 샅샅이 닦는다. 기다가 손을 뻗을 만한 데까지 헤아리며 닦는다. 아이가 기지 않고 걸었으면 도서관 바닥을 샅샅이 닦을 생각을 했을까. 이때에도 맨발로 돌아다니거나 바닥에 드러누울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으로 닦았겠지. 그러니까, 나로서는 두 아이가 하루라도 더 일찍 더 즐거이 뛰놀 터전으로 보듬고 싶으니 바닥을 꼼꼼히 닦는다.


  바닥 닦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첫째 아이가 묻는다. “바닥은 왜 닦아요?” “동생이 기어다니니까.” “동생이 기어다니니까, 동생 손 지저분해지지 말라고 닦아요?” “네.” 동생이 기어다녀도 손바닥이 지저분해지지 않을 즈음 되니, 첫째 아이가 다시 묻는다. “왜 신을 신고 다녀요?” “아직 아주 깨끗하지는 않으니까.” 첫째 아이가 슬쩍 신을 벗는다. 맨발로 뛰어다닌다. 이윽고, 두 녀석은 도서관 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드러눕는다. 마치 집에서 놀듯 논다.


  그래, 모레에도 글피에도 또 닦고 다시 닦을 테니 너희들 마음껏 신나게 뒹굴며 놀아라. 여기는 너희들 책터이기 앞서 놀이터란다. 여기는 우리들 삶터이고 살림터란다.


  둘째 아이가 바지에 똥을 한가득 누었기에, 가슴으로 안아 이웃 보건지소 수돗가로 가서 밑을 씻기고 바지를 빨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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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맞이 바쁜 날 (도서관일기 2012.5.1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5월 19일 손님맞이를 앞두고 여러 날 아주 바쁘게 책을 치운다. 2012년 5월 21일은 둘째 아이 첫돌. 돌날이 낀 토요일, 충북 음성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찾아오시기로 해서, 찾아오시는 김에 도서관에도 들르실 테니, 도서관을 이모저모 바쁘게 치운다. 그러나 도서관만 치울 수 있나. 집안도 치우고 쓸고닦아야지. 아이 돌보랴, 아이 밥해 먹이랴, 아이들 옷가지 빨래하랴, 빨래한 옷 걷어서 개랴, 아이들 놀자고 달라붙을 때 놀랴, 나는 나대로 나한테 주어진 몫 일을 하랴, 여러모로 눈코 빠지고 등허리가 휜다.


  그러나, 이렇게 손님맞이를 헤아리며 바지런히 손을 놀렸기에, 도서관 모양새가 한결 깔끔하게 모양이 잡힌다.


  어르신들은 어떻게 여기실까. 아직 제대로 치우며 활짝 문열고 손님을 널리 받기까지는 먼 듯하지만, 그럭저럭 볼 만하다고 여기실까. 아직 갈무리를 마치자면 멀었지만, 이제부터 손님을 받을 만하다고 여기실까. 다음주에는 바깥에 이동화장실 하나를 들이려 한다. 이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우리가 통째로 쓸 수 있을 때에 전기와 물 시설을 들이고 싶다. 아직 반쪽도 아닌 반반쪽이거나 반반반쪽짜리 도서관이지만, 좁다랗고 찻길과 건물에만 둘러싸이던 인천에서 도서관을 하던 때하고 느낌이 사뭇 다르다. 흙이 있고 풀이 자라며 나무가 선 곳에 책터를 꾸리니 나부터 한결 맑아진다고 느끼며, 우리 책들도 더는 곰팡이가 피지 않으면서 맑은 숨을 마음껏 들이마시는구나 싶다. 참말, 도서관은 도시 아닌 시골에 있어야 한다. 참말, 사람은 도시 아닌 시골에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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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멋지네요.
사진을 볼 때마다 수많은 책에 감탄하기도 하고..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보라의 수레가 정말 멋진걸요.

숲노래 2012-05-20 00:43   좋아요 0 | URL
보라에 앞서 벼리가 탔고, 벼리에 앞서 수천 권 넘는 책을 실어나른 수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