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가을비 (도서관학교 일기 2016.10.8.)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가볍게 비가 내리는 날, 가볍게 낫을 쥐고 풀을 벱니다. 처음에는 슬슬, 나중에는 차츰 힘을 붙여서, 마지막에는 신나게 낫질을 합니다. 가볍게 내리는 가을비는 시원하고, 가벼이 흩날리는 가을비는 낫날이 한결 잘 들도록 도와줍니다. 큰아이는 사다리에 앉아 얌전히 책에 사로잡히고, 작은아이는 그림책으로 탑을 쌓으며 조용히 놀이를 즐깁니다. 풀을 베고 눕히고, 비가 오고 그치고, 해가 나고 지고, 이렇게 하루하루 흐르면서 우리 도서관학교 둘레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쁘장한 모습으로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도 서두르지 않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하자고 되새깁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도서관학교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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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장난감 (도서관학교 일기 2016.10.11.)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여섯 살이 꽉꽉 차면서 곧 일곱 살로 접어들 작은아이는 요즈음 한 가지를 알아챕니다. 작은아이가 누리는 모든 장난감을 굳이 ‘우리 작은 집’에 다 펼쳐 놓지 않아도 된다는 대목을 천천히 알아채요. 그래서 “이 장난감은 도서관에 갖다 놓을래.” 같은 말을 합니다. 방이며 마루이며 온통 장난감을 다 깔아 놓아서 발을 디딜 틈이 없게 하는 일이 날마다 잇달아 “제발 걸어다닐 자리는 내어 주렴.” 하고 얘기하는데, 집이 아닌 도서관에서도 얼마든지 장난감 놀이를 할 수 있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면 장난감이 아니어도 풀밭에서 되게 신나게 놀 수 있고, 사다리를 탄다든지 골마루를 달린다든지 새로운 놀이도 얼마든지 있다는 대목을 헤아립니다.


  책길을 걷는 이웃님 한 분한테 책을 선물하려고 하는데, 한 권 더 보낼까 하면서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세 권 네 권이 되더니 어느새 상자 하나만큼 됩니다. ‘


그 이웃님이 우리 도서관 지킴이가 되어 준다고 하지도 않았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도로 빼고 한 권만 부치려 하다가도, 어차피 부치는 선물이라면 주섬주섬 모아서 부치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힙니다. 선물하고도 넉넉히 남고도 남을 만큼 살림이 넉넉해지면 될 노릇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나는 풀베기를 하고, 큰아이는 책을 읽고, 작은아이는 장난감 놀이를 하고, 이렇게 두 시간을 보내고서 자전거를 달려 면소재지 우체국에 책을 부치러 갑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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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귀 내보내기 (도서관학교 일기 2016.10.1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낮에 도서관학교에 가니 큰아이가 문득 외칩니다. “사마귀 들어왔네! 아버지 사마귀도 손으로 잡아서 내보낼 수 있어?” 속으로 생각합니다. ‘얘야, 아버지를 시키지 말고 네가 스스로 해 보면 돼.’ 그나저나 창문을 모두 닫았는데 사마귀는 어느 틈으로 들어왔을까 아리송합니다. 마침 풀사마귀는 골판종이에 앉았으니 굳이 손으로 안 잡아도 됩니다. 큰아이한테 보여줍니다. “자 보렴, 얘가 여기 있으니 이 종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서 ‘자, 나가렴’ 하고 말하면 돼.” 큰아이는 골판종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서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그런데 풀사마귀는 좀처럼 종이에서 안 떨어지려 합니다. 입김을 후후 부니 그제서야 종이에서 떨어집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엊그제 내 가방에 흙사마귀 한 마리가 알을 낳더니, 이 풀사마귀는 우리 도서관학교 안쪽 어딘가에 알을 낳으려고?


  사진책하고 그림책을 놓은 교실 천장에 등불을 붙입니다. 사다리를 받치고 드라이버 하나로 구멍을 내어 붙입니다. 단추를 딸깍 눌러 불이 켜지니, 작은아이가 외칩니다. “아버지 불 들어와! 우리 이제 밤에도 도서관에 와서 그림책 볼 수 있겠네? 이따 밤에 와서 그림책 보자!” 속으로 생각합니다. ‘얘야, 밤에는 고이 잠들어 꿈을 꾸어야지.’


  전등을 한 군데에 단 뒤에 낫을 쥐고 건물 앞쪽으로 갑니다. 며칠 앞서 한 번 풀베기를 한 자리로 갑니다. 건물 앞쪽에 거님길을 내어 큰나무까지 이을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까마득해 보였으나 날마다 두 시간씩 풀베기를 하니 차츰 일이 수월합니다. 오늘도 모레도 글피도 조금씩 풀을 베며 길을 내면 어느새 이 자리도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 마당이 되리라 봅니다.


  한창 풀을 베는데 운동장 너머 교문 있는 자리에 웬 짐차가 와서 시멘트 쓰레기를 붓습니다. 뭔 짓이래? 낫을 던지고 달려가서 짐차를 세웁니다. “왜 저기에 시멘트를 부어요?” “상수도 공사하는 사람인데요, 마을 이장님이 폐교에다 부으라고 하셔서요.” “마을 이장님이 말했대서, 여기 학교에다 부어도 되나요? 여기를 교육청한테 빌려서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빌려서 쓰는 사람들한테 말하고서 해야지요.” 공사업자는 마을길 시멘트를 걷어낸 뒤 곧장 큰 짐차에 이 시멘트 쓰레기를 실어서 버려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번거롭다며 함부로 아무 데나 쌓아두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시멘트 쓰레기를 학교 운동장 한쪽에 부으면 그 땅은 시멘트 쓰레기 때문에 오랫동안 못 쓰게 되는 줄 생각조차 안 하는 셈입니다.


  풀을 마저 벱니다. 전등을 둘 더 붙입니다. 붙일 전등이 모자랍니다. 전구도 모자라고요. 요새는 ‘레일전등’이 있다고 하니 그걸 장만해 볼까 생각합니다. 교실 천장에 전등이 없는 자리를 어림하니 레일전등을 스물네 개 붙여야지 싶습니다. 레일전등 스물넷이면 전구는 아흔둘. 꽤 목돈이 들어갈 일입니다.


  저녁 여덟 시에 온식구가 도서관학교에 다시 나옵니다. 해 떨어졌으니 빨리 가서 불을 켜고 놀고 싶다는 작은아이가 앞장섭니다. 문을 열려는데 작은아이가 외칩니다. “어, 여기 사마귀가 또 알을 낳았네!” 서너 시간 사이에 새로 사마귀알이 유리문 귀퉁이에 생겼습니다. 도서관학교에 불을 밝히니 아이들이 아주 신납니다. 이제는 너희들 잠자리에 들기 앞서도 다녀야겠구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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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를 놓다 (도서관학교 일기 2016.10.9.)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한글날이라 하고 일요일이라 하던 날, ‘도서관학교 숲노래’에 전기가 들어옵니다. 이웃지기님이 도와주어서 이제 우리 도서관학교에서도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2011년 여름에 전남 고흥으로 옮겨 자리를 잡은 뒤 이제껏 전기를 쓰지 못하던 살림이었는데, 여섯 해 만에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이제는 햇빛이 들지 않아도 도서관학교를 열 수 있어요. 전기를 쓸 수 있으니, 도서관학교 한쪽에 셈틀을 놓을 수 있지요. 선풍기라든지 전기난로를 놓을 수도 있고요. 아, 전기주전자를 놓아 물을 끓여서 책손님한테 차 한 잔을 드릴 수도 있네요.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세 곱이나 많이 모과를 따서 모과차를 담아 놓았으니 겨우내 모과차를 한 잔씩 드릴 수 있겠군요. 곧 전등갓하고 형광등을 장만해서 달 생각입니다. 전등갓하고 형광등 값이 그리 많이 들지는 않겠지요? 교실 두 칸하고 골마루에 달아야 하니 꽤 많이 장만하기는 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큰길부터 도서관 문간까지 그동안 베어 놓은 풀은 나날이 잘 마르면서 ‘걸어서 들어오는 길’다운 티가 조금 납니다. 바닥돌을 놓을까 싶다가도, 마른풀하고 흙을 밟는 느낌이 훨씬 좋기에 이대로 풀만 잘 베어 놓자는 생각이 듭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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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말 24 (도서관학교 일기 2016.10.10.)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제주에서 고흥으로 삶터를 옮기려는 분이 있어서 아침에 도서관 문을 엽니다. 제주라는 곳도 예쁜 삶터가 되리라 생각해요. 고흥도 예쁜 삶터가 될 테고요. 우리는 어느 고장에서든 스스로 기쁨씨앗을 심으면서 알뜰살뜰 살림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흥은 워낙 나그네가 들지 않는 고장이면서 조용해요. 수수하고 조용하게 살림을 지으려는 마음이 있는 분이라면 고흥이 한결 나을 수 있어요.


  도서관 손님이 가신 뒤에는 도서관 소식지 〈삶말〉 24호를 바지런히 꾸밉니다. 오늘 읍내에 나가서 복사를 할 생각입니다. 도서관 이야기책 〈숲노래〉 19호도 거의 다 엮었으니 이제 소량인쇄 주문을 넣을 생각이에요. 작은아이는 집에서 놀겠노라 하고 큰아이만 읍내마실을 따라갑니다. 큰아이는 〈삶말〉 24호를 복사해 달라며 맡길 적에 묻습니다. “아버지, ‘복사’가 뭐야?” “‘복사’는 똑같이 그리는 일을 가리켜. 우리가 어떤 글이나 그림을 그린 뒤에, 이 글이나 그림을 종이에 똑같이 찍는 일도 가리키고. ‘똑같이찍기’쯤 될까.”


  큰아이가 ‘복사’라는 낱말을 물었기에 이 한자말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냥그냥 쓰던 낱말인데, 우리는 이런 낱말 하나도 그저 그냥그냥 쓸 뿐, 우리 나름대로 재미있거나 새롭게 한국말로 지어내지 못했다고 깨닫습니다. 그냥 쓴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어요. 다만, 그냥 쓰기만 할 뿐 ‘생각을 새롭게 지어 보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가슴이 뜨끔합니다. 어느 말이든 그냥 쓸 수 있는 말은 없어요. 어느 말이든, 아주 작거나 하찮거나 흔하다 싶은 말에도 온사랑을 담아서 새롭게 지어 쓸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도서관학교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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