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때에


 《아나스타시아》 여섯 권을 읽을 때에 맑고 밝으며 고운 풀소리가 바람결에 살랑거리면서 햇살을 머금는 터전에 있지 않다면, 애써 《아나스타시아》를 손에 쥐었어도 부질없는 앎조각만 머리를 채우겠지요. 삶을 아름다이 다스리자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참말 삶을 아름다이 다스리는 길을 걸어야 해요. (4344.10.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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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쓴 책을 선물할 때


 네 식구가 함께 살아가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돕는 분들이 있다. 사랑을 나누어 주는 이분들한테 고맙다는 뜻으로 인사하려고 책을 선물하곤 한다. 내 책이 태어나며 생기는 글삯만큼 책을 사서 하나하나 봉투에 담아 우체국으로 가져가서 부친다. 이렇게 하자면 먼저 출판사에서 나한테 책을 보내야 하니 우표값을 치러야 하고, 나 또한 우표값을 치러야 한다. 봉투값도 들이고, 우체국까지 가는 품과 겨를과 찻삯이 든다.

 내 손으로 책을 부칠 때에는 책 안쪽에 글월 몇 줄 적바림할 수 있으나, 겹으로 우표값을 치르는 셈이다. 내 책을 내가 누리책방에서 사서 보내면, 요즈음은 책 한 권마저 거저로 보내 준다고 하니까, 나로서는 우표값을 치르지 않을 뿐더러, 엉뚱하지만 나한테 10% 덤돈이 쌓인다. 책 한 권 부칠 때에 이래저래 1400원쯤 치인다 한다면, 누리책방으로 책을 보내면 20%를 에누리하는 셈이기도 하다. 나는 출판사에서 70% 값으로 책을 사지만, 이렇게 산다 한들 출판사에서 나한테 책을 보내며 들일 우표값이나 품값이 있으니, 굳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책을 보내 달라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다.

 보금자리를 옮기려고 집을 비울밖에 없는 나날이다 보니, 이렇게 누리책방 손을 빌어 책을 선물해야겠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내가 고맙다고 느끼는 분들한테 선물하고 싶어 책을 쓴다 할 만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옆지기와 두 아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식구들 옷가지를 빨래하며, 어줍잖으나 집안을 치우는 조그마한 집일이다. 여기에 글조각 보듬고 사진조각 보살피는 자그마한 손일이 있다. 선물이란 즐겁고, 선물할 수 있는 삶이란 그지없이 신난다. 주는 선물이든 받는 선물이든 즐겁다. 선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물받을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대단하면서 거룩할까. 무엇을 어떻게 선물하느냐에 앞서, 선물이라는 대목에서 반가우면서 아름답다고 느낀다.

 선물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글을 쓴다. 선물할 수 있다는 보람으로 사진을 찍는다. 선물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책을 내놓는다. (4344.10.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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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조복성 님 책


 나는 조복성 님 책을 2001년에 처음 만났다. 2001년 가을, 서울 명지대학교 옆 헌책방 〈문우당〉에서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고려대출판부,1975,비매품)를 처음으로 보았다. 이때 나는 출판사에서 국어사전을 기획하는 일을 했고, 함께 국어사전을 만들던 윤구병 님을 비롯해 여러 출판사 사람들한테 보여주면서 이만 한 책을 하루 빨리 되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모두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이태가 지난 2003년 7월 9일, 서울 성신여대역 둘레 헌책방 〈이오서점〉에서 《곤충기》(을유문화사,1948)를 만났다. 이무렵 나는 하루에 두어 군데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책을 사서 읽었다. 하루에 두어 군데였기에 한 해라면 800 군데쯤 되는 헌책방을 다니는 셈이요, 이태 만에 조복성 님 다른 책을 만났으니까, 헌책방을 1600 군데쯤 다닌 끝에 비로소 다른 책 하나를 만났다 하겠다.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에 이어 《곤충기》를 만났기 때문에, 이제는 더 아쉬울 대목이 없다고 느꼈다. 1948년에 나온 《곤충기》이지만, 2003년까지 나온 한국땅 곤충학자 곤충책하고 견주어 줄거리가 알차고 글투가 단출하면서 쉬웠다. 이무렵 더 알아보니 조복성 님은 1968년이던가, 아무튼 1960년대에 금성출판사였는지 민중서관이었는지, 어린이 과학백과 같은 묶음책 가운데 곤충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여태껏 찾아내지 못했다. 어린이 과학백과 뒤쪽에 적힌 광고글에서만 이러한 책이 있는 줄 읽었을 뿐, 도무지 이 책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나 《곤충기》라면, 어른들이 사서(또는 얻어서) 읽는 책이요, 어른들이 사서 읽는 책은 ‘전쟁이나 이사나 이민이나 무슨무슨 일 때문에 사라지는 일’이 있어도, 어른들 스스로 버리지 않는다. 여느 잡지책이나 소설책이라면 가볍게 버리기도 하지만, 인문책이나 전문학술책은 이 책을 갖춘 사람이 숨을 거두기까지 버려지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책을 갖춘 사람이 숨을 거둘 때에는 이 책들이 비로소 헌책방으로 나온다.

 이와 달리, 어린이책은 아이들이 중학생이 될 때부터 함부로 버려진다. 우리네 1950년대 어린이책은 거의 찾을 길이 없다. 1960년대 위인전조차 대단히 드문 옛책이 된다. 1970년대 어린이책마저 아주 드물다. 이제는 1980년대 어린이책이 차츰 드문 책이 되려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린이책을 사서 읽힌다지만, 쉽게 사서 읽히고 쉽게 버리고 만다.

 조복성 님 책 두 가지를 찾은 기쁨을 누리면서, 자연책이나 생태책이나 환경책을 내는 출판사 사람들한테 책 실물을 보여주면서 되살리는 길을 여쭈었다. 책을 살핀 출판사 사장이나 편집자들은 하나같이 “조복성이라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이러한 책이 나오면 이 나라 학문과 출판에 크게 이바지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막상 책으로 되살리려고 애쓴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어느 출판사 편집자가 책으로 낼 기획을 하겠다며 책을 빌려갔는데,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를 그만 잃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고 했다.

 잃어버렸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닭 목아지를 비튼다고 동이 틀 수 없듯, 잃어버렸다는 사람 손목아지를 비튼다고 책이 나올 수 없다. 다시금 여러 해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겨우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 한 권을 새로 장만했다.

 얼마 앞서 조복성 님 책 두 가지(《곤충기》와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를 한데 묶어 말끔하며 번듯한 책으로 되살려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뜨인돌’ 출판사에서 《조복성 곤충기》(황의웅 엮음,2011)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나 말고 조복성 님 책을 되살리려고 애쓴 분이 있는 줄 처음 알았고, 이분 또한 참 힘들게 ‘손사래질’을 겪으면서 힘들었구나 싶다. 그런데, 이분이 조복성 님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다니는 이야기 가운데 어딘가 아리송한 대목이 있다.


.. 2004년 가을 고서적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앞 헌책방 이오서점에도 그 책은 없었다. 먼지 쌓인 서고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조복성 곤충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동아일보〉 2011.9.8.


 나는 《곤충기》를 2003년 7월 9일에 찾았다. 2003년 7월 9일에 이 책을 찾은 이야기를 2003년 7월 24일에 갈무리해서 내 누리집에 글로 썼고, 이 이야기를 2003년 7월 29일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띄웠다. 이때에 〈오마이뉴스〉는 내가 쓴 글에 내가 붙인 이름(제목)을 엉뚱하게 고쳐서 몹시 짜증스러웠는데, 어찌 되었든, 이때에 올린 글이 퍽 알려지고 읽혀서 조복성 님 이름과 《곤충기》라는 책이 오랜만에 햇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성신여대 옆 헌책방 〈이오서점〉은 내가 이 글을 쓴 지 이레 만에 문을 닫았다. 왜냐하면, 2003년 7월 20일 즈음(날짜가 언제였는지는 모른다)에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기 때문.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서둘러 〈이오서점〉 사진을 뽑아서 찾아갔다. 헌책방지기가 흙으로 돌아간 헌책방은 더없이 쓸쓸했고, 이 책들을 건사할 마땅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2003년 7월 9일에는 책방 얼거리만 사진으로 담았고, 〈이오서점〉 사장님은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이리하여, 사장님 얼굴이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고, 애써 〈이오서점〉을 담은 사진조차 사장님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동아일보〉에 난 기사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03년 7월 끝무렵에 문을 닫아 2003년 8월에는 책이 모두 빠졌는데, 2003년 가을조차 아닌 2004년 가을에 〈이오서점〉을 찾아갔다고 하니, 뭔가 잘못 안 셈 아닌지? 아니면, 내가 〈이오서점〉에서 《곤충기》를 찾아내어 〈오마이뉴스〉에 알린 글 이야기를 잘못 이야기하고 다닌 셈 아닌지? 또는, 〈동아일보〉 기자가 기사를 엉터리로 썼을까?

 내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을 읽은 사람들한테서 《곤충기》를 ‘팔라’는 물음글을 참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수집가’도 ‘장사꾼’도 아닌 ‘책마을 일꾼’이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팔지 않았다. 또한, 내 책시렁에 이 책들을 ‘꽁꽁 감추지’도 않았다. 나는 이 책을 내가 2007년에 인천 배다리에서 연 개인도서관 책꽂이에 잘 보이도록 놓고는 누구한테나 보여주었으며, 두 손으로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구경한 사람이 꽤 많다. 그런데, 《조복성 곤충기》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온 책 ‘엮은이 말’에조차 좀 엉뚱하다 싶은 이야기까지 적혔다.


.. 을유문화사에서 1948년에 출간되었던 조복성 선생의 『곤충기』 원본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0년대 말, 나는 이 책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 고서점과 헌책방 등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서에 눈독 들인 도서관이나 전문 수집가들의 서고 속으로 숨어 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별다른 기대 없이 들른 어느 고서점에서 『곤충기』와 만났다. 분명 우연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곤충을 유난히 좋아했을 뿐 아니라 몇 년 동안이나 이 책을 애타게 찾아 헤매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운명처럼 느껴졌다. 금세라도 바스러질 듯한 누런 책장을 한장 한장 조심스레 넘기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 책을 어두운 서재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하자!’ ..  (《조복성 곤충기》 엮은이 말)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책을 되살리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 몫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넋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고 느낀다. 부디, 서로서로 아름다운 빛줄기를 일구면서 아름다운 꿈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책을 기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손길을 베풀면 그지없이 기쁘겠다. (4344.9.9.쇠.ㅎㄲㅅㄱ)
 

 

(곤충기는 여행기보다 책이 작다. 실물을 놓고 보면 이만 한 비율이 된다) 

 

내가 2003년 7월 9일에 찾은 책 모습. 이 모습 그대로 있던 책이었다. 

 

내가 책을 사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슬프게도 가게문을 닫고 말았다. 책이 다 빠진 뒤, 셔터에 쪽지만 덩그러니 붙었다. 2004년에는 이 책방이 남지도 않았다. 

 

아름다운 책을 되살리면서 왜 이런 말을 썼을까? 부끄럽다고 느끼기를 바란다. 

 

내 예전 싸이월드 누리집에 올린 <이오서점> 글 목록. 

 

나는 2003년 7월 24일에 내 누리집에 첫 글을 띄웠고, 이 글을 띄운 날 저녁,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3년 7월에 쓴 글 가운데. 

 

오마이뉴스에 띄웠던 기사 한 토막. 오마이뉴스는 기사 제목을 저희들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바꾸어 달기 때문에 몹시 짜증스럽다. '콕 찍어 이오'가 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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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개책 뜨개손 뜨개머리


 아이 어머니가 뜨개를 한다. 다른 일은 도무지 할 수 없는 몸이지만, 바늘을 쥐어 실을 감으면서 뜨개는 할 수 있다. 모든 집일을 도맡는 아버지는 어깨가 무겁지만, 아이 어머니가 뜨개 한 가지를 할 수 있는 대목으로도 반가우면서 고맙다. 둘째가 태어나던 날부터 둘째랑 어머니가 모두 살아서 이렇게 곁에 있는 일이 반가움이자 고마움이요 웃음이자 눈물일 수밖에 없다.

 한글로 잘 엮은 마땅한 뜨개책은 찾아볼 수 없다. 아이 어머니는 영어로 된 뜨개책을 읽는다. 때로는 일본말로 된 뜨개책을 살펴야 한다. 영어를 아주 잘 하거나 일본말을 뛰어나게 잘 해야 뜨개책을 읽을 수 있지는 않다. 뜻풀이를 하나하나 새기면서 코를 잡고 바늘을 놀려야 한다. 한글로 적힌 뜨개법은 뜨개를 아주 빼어나게 잘 할 수 있게 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기 일쑤이다.

 집일을 도맡으며 반찬 또한 도맡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반찬은 몇 가지 안 되어 요리책을 몇 권 사서 읽어 보았다. 요즈음 나온 어느 요리책을 들추니 ‘브런치’를 다루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인다. 뜻도 쓰임도 생김도 알쏭달쏭한 ‘브런치’는 어느 나라 어느 겨레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즐기는 밥이 될까. 브런치를 말하는 요리책에 적힌 말은 어느 나라 어느 겨레 어떤 사람이 어떤 눈길로 읽으면서 헤아려야 할까.

 찬찬히 뜨개를 하며 양말에서 첫째 옷을 거쳐 작은 신과 덧신과 가방에 이어 머리띠를 빚는다. 가게에서 사서 쓰던 머리띠나 머리핀은 무겁거나 따끔거리거나 땀에 찌드는데, 뜨개로 빚은 머리띠는 가볍게 머리에 감기면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쓸모와 쓰임새와 쓸곳을 살폈으니까, 가게에서 파는 여느 머리띠나 머리핀으로는 아쉽던 대목을 잘 풀 수 있겠지.

 첫째 아이도 어머니가 뜬 머리띠 노릇 모자를 쓰며 웃는다. (4344.7.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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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7-26 12:2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대량생산 기성품 보다야 맞춤이 편안하잖아요^^ 솜씨가 좋으시네요~

숲노래 2011-07-27 04:05   좋아요 0 | URL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도 할 수 있어요.
마음을 쏟아 천천히 한 땀 두 땀 하면
누구나 예쁘게 빚을 수 있답니다~ ^^
 

http://cafe.naver.com/mphotonet/5926 

수채그림을 그리는 박정희 할머님 육아일기가 다시 나온다. 

할머니가 아직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돌보면서 살아가실 때에 

이 책이 다시 나오니 참으로 반갑다. 

새로 나오는 판은 예전에 나온 판이 편집을 너무 어수룩하게 해서 

책맛을 잃게 했던 아쉬운 대목을 잘 추스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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