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Eugene Smith, 《Minamata》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 《Minamata》를 오늘 드디어 구경한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옆지기가 미국에서 한 권 찾아서 장만해 주었고, 오늘 항공우편으로 우리 시골집까지 날아왔다.


  사진책 《Minamata》는 미국에 있는 어느 헌책방에서 찾았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사지는 않았고,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적잖은 돈을 들여야 한 사진책이지만, 사진책 《Minamata》쯤 되면, 한국돈 백만 원을 들여서 장만할 만한 값이 넉넉하다고 생각한다. 1972년에 나온 첫판이라면 오백만 원쯤 들어야 하고, 유진 스미스 님 이름이 적힌 첫판이라면 천만 원쯤 들여야 한단다.


  한국에서는 이 사진책을 한국말로 만날 수 없을까. 어느 소설책은 선인세로 7억이니 10억이니 13억이니 하고 내주면서 펴내는데, 선인세 1억쯤 덜 주면서 사진책 《Minamata》를 한국말로 펴내어, 한국 사진문화와 책문화 모두 북돋우는 길을 걸어갈 뜻과 돈이 함께 있는 출판사는 없을까.


  한 장씩 넘기며 사진 몇 장 찍는데 더없이 애틋한 이야기를 새록새록 느낀다. 사진을 찍는 손길이 되려면, 사진을 빚는 눈길이 되려면, 사진을 나누는 삶길이 되려면,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어디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사랑을 씨뿌리며 돌보아 거둘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헤아려 본다. 사진책 《Minamata》는 미나마타병을 ‘고발’하는 책이었을까? 글쎄. 사진책 《Minamata》는 일본과 환경병과 돈에 눈이 먼 정치꾼과 기업인을 ‘꾸짖는’ 책이었을까? 글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읽는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꿈을 사진으로 만난다. 4346.8.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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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01 20:17   좋아요 0 | URL
평소 만나고 싶은 사진책을, 옆지기님께서 그 마음 잘 아시고
미국에서 찾고 장만하셔서 보내온 책이라 더욱 반갑고 좋으실 것 같아요~^^
책소포를 받고 그 포장을 조심스레 뜯고 여는..설레는 마음이 보이는 듯 해요~

숲노래 2013-08-01 23:0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미국까지 갔는데
남편 선물로 한 권쯤 찾아내 달라고 부탁하고 졸라서
겨우 얻은 책이랍니다.

책값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아직 잘 몰라요.
다만, 이 사진책 값은... 아주 엄청나답니다 ^^;;;;;

그래서, 다음에 올린 느낌글에
이 사진책 사진을 참 잔뜩 올렸어요.
어차피, 이 사진책 실물로 사서 보실 분
거의 없을 듯하고,
실물로 사서 보기란 아주 힘들거든요.
 

마을빨래터에서 읽는 《원주통신》

 


  박경리 님이 원주에서 흙 만지며 산 지 다섯 해 즈음 될 무렵 내놓았다고 하는 《원주통신》(지식산업사,1985)을 새롭게 읽는다. 곰곰이 돌아보니, 나는 이 책을 아직 도시에서 지낼 적에만 읽었고,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들여다본 적 없구나 싶다.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숨어있는 책〉을 나들이하다가 《원주통신》을 다시 만나면서 생각한다. 2010년 여름부터 식구들과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는데, 이제 이 책을 다시 읽으면 느낌이 남다르지 않을까 하고.


  ‘씨앗을 닮으려는 흙일은 즐겁다’라 이름을 붙인 글부터 읽는다. 박경리 님이 후줄그레한 차림새로 흙을 만지며 일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단다.


.. 언제였는지 내가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서 흙일에 열중해 있을 때 찾아온 사람은 적잖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선생님 오래 사시려고 일을 합니까 하고 말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나는 곧 분개를 했다. 상대가 관리였기에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요즘 유행인 핼드클럽에서 하는 운동으로 착각한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어디 그 사람뿐이랴. 대개 모든 사람들은 일하는 내 꼴을 보면 의외라는 표정이었고 이곳의 어느 소녀는 소위 여류작가인 나를 보고 실망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목걸이하고 귀걸이하고 매끄러운 손에 매니큐어나 하고 있어야만 여류작가냐? … 모리악은 소설가란 하나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씨앗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  (63∼64쪽)


  박경리 님이 아이들 낳아 돌보는 삶을 도시에서 그대로 이었다면, 아마 박경리 님 마음에도 “소설가는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있었으리라 느낀다. 이녁 스스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다 보니 “소설가는 씨앗을 닮으려는 사람”이라고 깨달았으리라 느낀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풀을 닮고 나무를 닮다가, 스스로 풀이 되고 나무가 되려는 사람’일 때에 아름다운 빛이 환하게 드리운다고 생각한다. 곧, 처음에는 씨앗을 닮으려 할 테지만, 어느새 스스로 씨앗이 된다고 본다. 마음속에 하느님을 품는다는 말은, 하느님을 닮으려고 애쓴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이 된다는 뜻이다.


  닮으려고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닮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되면’ 넉넉하다. 스스로 사랑이 되면 즐겁고, 스스로 꿈이 되면 기쁘다.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밝고, 스스로 하늘이 되고 흙이 될 때에 포근하다.


  마을빨래터 청소를 모두 마친다. 나도 큰아이와 함께 빨래터 바닥에 철푸덕 앉는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아이들 몸에 끼얹고 내 몸에도 끼얹는다. 시원하구나. 햇볕 고스란히 받지만, 졸졸 흐르는 골짝물 이어지는 빨래터에 온몸 맡기며 앉으니 더없이 시원하구나.


  아이들은 더 놀라 하고, 나는 《원주통신》을 조금 더 읽는다. ‘생명은 시행 아닌 진실 자체’라 이름 붙인 글을 읽는다.


.. 씨를 말려서는 아니 된다. 어떠한 것이든 생명인 씨를 말려서는 아니 된다 … 살구가, 자두가 여물 무렵이면 우리 뜰에는 어디서 오는지 꾀꼬리들, 까치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든다. 그러면 나는 인심 후하게 멀리서 새들을 숨어 본다. 먹고 살아라 새야 … 오늘의 문명은 날이면 날마다 세계 도처에서 도전과 승부욕에 불타게끔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서로가 적인가. 모든 생명은 모두 서로가 적인가. 자연도 인간의 적인가. 적이라 생각하는 한에 있어서 무서운 보복은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  (23∼25쪽)


  박경리 님이 1985년에 내놓은 《원주통신》은 책이름처럼, 시골마을에서 살아갔기에 쓸 수 있는 글을 모았다. 시골마을에서 햇살과 바람과 비와 흙과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와 짐승하고 얼크러지면서 시나브로 태어난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았다. 모처럼 눈을 트는 글 몇 줄 읽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빛 되는 이야기를 쓰는 한국 작가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오늘날, 맑은 삶 한 자락 고맙게 살펴 읽는다. 자, 아이들아 이제 집에 가서 더 놀자. 4346.7.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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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18 09:16   좋아요 0 | URL
먹고 살아라 새야...
함께살기님 덕분에 이 아침, 박경리 선생님의 <원주통신>이야기와
아름다운 글로 하루를 엽니다.
기쁘고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07-18 10:29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다른 판으로 나오는지 살펴본다고 했다가
미처 살펴보지 않았네요 @.@
에구구~
 

아직까지도 먼나라 《침묵의 봄》

 


  1962년 미국에서 처음 나온 《침묵의 봄》은 1974년에 한국말로 처음 나왔고, 1976년에 다시 한 번 나온 뒤, 1991년과 2002년에 새롭게 나옵니다. 화학공장에서 만든 살충제가 벌레만 죽이지 않고 모든 목숨을 끝내 죽이고 말아, 겨울 지나 새로 찾아오는 봄에 ‘죽음과 같은 고요함’만 있다는 이야기를 알리는 책입니다.


  살충제뿐 아니라 자동차와 공장이 가득한 곳에서도 봄은 조용합니다. 쥐 죽은 듯이, 아니 쥐도 죽고 벌레도 죽으며 새도 죽어서 조용합니다. 숲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데에는 자동차와 공장과 기계와 손전화 소리가 가득 퍼집니다. 싱그러운 소리란 없고 죽음을 부르는 소리만 있습니다. 목숨을 살리는 소리는 사라지고, 목숨을 짓밟는 소리만 넘칩니다.


  며칠째 시골마을 하늘을 짓찢는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날아다닙니다. 창문조차 열 수 없도록 떠도는 헬리콥터입니다. 마을 할배들 봄 여름 가을 가리지 않고 논밭에 농약 뿌려댈 적에도 숨이 막혀 창문도 못 열며 갑갑합니다.


  고속도로 곁에서 창문 활짝 열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공항 곁에서 창문 시원스레 열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공장과 발전소 곁에서, 또 골프장 곁에서 창문 마음껏 열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창문을 열지 못하고, 빨래를 널지 못하며, 아이들이 뛰놀지 못하는 데는, 어떠한 사람도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답게 살아갈 수 없는 죽음터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죽음터에서 죽음으로 치달으면서 아이들까지 죽음수렁으로 내몹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입시지옥까지 곁달리니, 이 나라 아이들은 그예 죽은 듯이 사는, 아니 산 듯이 죽은 숨결이 되겠지요. 4346.7.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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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와 사진엽서와

 


  그림쟁이 밀레 님 그림을 방에 붙여놓고 늘 들여다보며 살던 이오덕 님이다. 벽에 붙여놓는 그림이란 늘 그 사람 마음이 되리라 느낀다. 벽에 그림 하나 붙이기 힘들 만큼 어수선하거나 어지럽다면, 그 방이나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 마음도 어수선하거나 어지럽겠지.


  이오덕 님이 남긴 일기가 도톰한 책 다섯 권으로 태어났다. 이 책꾸러미를 받아서 열어 보니, 안쪽에 사진엽서가 다섯 장 들었다. 아스라한 이야기 품은 고운 사진들이다. 이 사진을 벽이나 책상맡에 붙여놓고는 늘 들여다보는 젊은이나 푸름이가 있겠지. 이 사진을 늘 바라보면서 이녁 마음에 맑으며 고운 빛 스며들기를 꿈꾸겠지.


  어여삐 꾸민 책에 스민 마음을 헤아려 본다. 어여쁜 책을 어여쁜 마음으로 읽을 때에 어여쁜 생각이 샘솟아 어여쁜 삶으로 거듭나는 기운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하루하루 마음 가다듬으며 일군 삶이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모이면서 어느덧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그야말로 시나브로 빛이 된다.


  마을 이장님이 새벽 다섯 시 이십 분에 마을방송을 한다. 엊그제는 새벽 네 시에 마을방송을 했다. 시골에서는 너덧 시면 모두 일어나 하루를 여니까, 이맘때에 마을방송을 할 만하다. 토요일 아침(새벽 다섯 시 반∼여섯 시)에 마을 빨래터를 청소한다고 알린다. 그래, 그러면 우리 두 아이와 오늘 먼저 가서 물놀이를 즐기면서 빨래터를 청소해야겠다. 아이들은 놀고 나는 일하면 되지. 천천히 일하고 느긋하게 아이들 바라보면서 쉬다가 시를 한 줄 쓰면 되지.


  오늘 하루도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연다. 오늘 하루도 한 땀 두 땀 바느질을 하듯 천천히 연다. 책상맡에 오래도록 둘 책이 하나 생겼다. 4346.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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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1 07:42   좋아요 0 | URL
책이 정말 너무나 예쁘네요.
그 안에 담겨진 이오덕님이 쓰신 이야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벌써부터 설레네요. 사진엽서도 그렇구요.

함께살기님께서 올려주신 사진들 보기만 해도
참 설레고 기쁩니다..
저도 어서 빨리 장만하고 싶어요. ^^

숲노래 2013-06-21 07:39   좋아요 0 | URL
사진엽서는... 아마... 5권 상자책 사는 사람한테만 주는 듯해요 ^^;;;
상자 안쪽에 깃들었더라구요~

appletreeje 2013-06-21 07:48   좋아요 0 | URL
낱권으로 사도 좋겠지만, 5권 상자책으로 마련하려 해요.
상자째 두고 보아도 예쁜 책꽂이가 될 것 같아요.~

숲노래 2013-06-21 07:54   좋아요 0 | URL
드디어 책을 받아서 살피니,
7월 13일에 출판기념잔치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한다고 알림글 하나 있더라고요.

그 자리에 누구나 갈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날은 두 아이 데리고
(아이 어머니가 미국에 있으니 ㅠ.ㅜ)
찾아가려고 하는데...
아무튼, 다 잘 되고 다 괜찮겠지요 ^^;;;;

행사 안내종이를 보니, 누구나 와도 되는 자리로군요.
7월 13일 토요일 16시네요.
그때 시간 되면 나들이 하셔요~~
 

이오덕일기

 


  1925년에 태어나 2003년에 숨을 거둔 이오덕 님 일기책이 나온다. 예전에 《이오덕 교육일기》라는 이름으로 1960∼70년대에 쓰신 일기를 묶어서 나온 적 있는데, 이번에 온삶을 가로지르며 쓴 일기를 추려서 다섯 권짜리 책으로 태어난다. 이오덕 님이 2003년 8월에 숨을 거둔 뒤, 이해 9월부터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 깃들어 선생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몫을 맡았다. 아마 2004년 이월쯤이었지 싶은데, 잔뜩 쌓이고 어수선하게 있던 상자들과 원고뭉치와 책더미 사이에서 선생님 일기꾸러미를 찾아내었다. 찾아낸 일기꾸러미는 모두 복사를 해 놓았고, 이 일기꾸러미도 언젠가 빛을 보겠지 하고 생각했다. 예쁘장한 옷 입고 태어난 선생님 일기를 사람들은 잘 읽고 슬기로운 넋 북돋아 주겠지? 아름다운 사랑과 꿈 깃든 고운 이야기를 즐겁게 받아먹으면서, 저마다 아름다운 삶 일구도록 이끄는 눈물겨운 책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빈다. 애틋하다.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직 배본은 안 되었을 테고, 다음주부터 배본이 되지 싶다. 출판사에서 책 모습을 손전화로 찍어서 보내 주었다. 얼른 이 책들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아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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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4 06:18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예쁘게 책이 나왔군요.
저도 이 아름다운 책 마련해 즐겁게 읽고 싶네요.
함께살기님께서는 더욱 각별하고 애틋하실 것 같아요. *^^*

숲노래 2013-06-14 07:14   좋아요 0 | URL
네... 아침에 이래저래 싱숭생숭해서
예전 글들만 자꾸 만지작거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