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도서관을 찾아온 어느 분이 제게 묻습니다. 헌책방 가운데 책값 가장 싼 곳을 알려 달라고.

 “책값 싼 데 어디 있어요? 책값 싸다고 하면 탁 떠오르는 곳 있죠?” “무슨 책을 찾으시는데요?” “책값 가장 싼데요.” “글쎄, 책값이 싸다고 다 읽을 만한 책은 아닐 텐데요 …… 그러면 고물상에 가 보셔요.” “고물상에서도 책을 팔아요?” “헌책방 책이 고물상에서 많이 들어오니까요. 다만, 골라서 살 수는 없고 뭉텅이로 사야지요.” “고물상이 어디에 있나요? 인터넷에 ‘고물상’이라고 치면 나오나요?” “글쎄요, 저는 고물상에 가 보지 않아서,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4340.9.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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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책 좀 골라 주라.” “무슨 책?” “아이들 책.” “마, 아이들 책은 니가 공부해서 사 줘야지.” “내가 아이들 책을 어떻게 알아. 너가 많이 봤으니 좀 추천해 줘.” “어른인 네가 보는 책이라면 추천도 해 줄 수 있지만, 아이들이 보는 책은 추천해 주지 못하지.” “그냥, 아무 책이라도 추천해 줘.” “자식, 생각해 봐라. 너는 애인하고 어디 놀러갈 때 그냥 아무 데나 가냐. 또 애인한테 선물 사 줄 때 아무거나 사 주니.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려고 하는데 아무 책이나 사 줄 수 없지. 또 대충 추천하는 책을 사 줄 수도 없고. 애인한테 선물 사 주듯이, 네가 손수 공부해서 찾아서 사 줘야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책 사 주면 될까?” “네가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니? 그럴 바에야 그냥 돈으로 주는 게 나아.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참으로 아이들한테 좋은 책일까? 아이들 마음밭을 무너뜨리는 책이지는 않을까? 잘 생각해 봐. 그리고 네가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고 생각해 봐. 너는 네 아이한테 어떤 책을 사 읽힐 생각이니? 네가 먼저 살펴보고 좋은지 나쁜지를 가려낼 수 있은 다음, 네 아이한테 책을 읽혀야 하지 않겠어? 이 일이 쉽지 않겠지만, 아이를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대충 해서는 안 되겠지.”

 고등학교 적 동무가 제 일터인 도서관으로 찾아왔습니다. 선물할 어린이책을 사러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온 김에 저한테 ‘무슨 책을 골라 주면 좋을까 물어 보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제가 동무녀석한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 책이 좋다고 할 책이든 안 좋다고 할 책이든 네 스스로 골라라’입니다. 어쩌면 동무녀석은, 대충 전집 한 가지라든지, 낱권책 몇 가지를 골라 줄 수 있겠지요. ‘요새 아이들이 많이 본다는 책’을 추천받아서 사 줄 수 있고요. 그러면 동무녀석이 사다 준 그 책을 받아드는 아이는 얼마나 좋아할까요. 얼마나 반길까요.

 “아이들 책은 함부로 추천해 줄 수가 없어. 선물을 받을 아이는 몇 살이니?” “초등학교 5학년쯤.” “음, 초등학교 5학년이라. 그래, 아이들한테 책을 추천해 주기 어려운 건, 같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해도 눈높이나 지식이 달라. 어느 아이는 책을 좀더 많이 읽었을 테고 어떤 아이는 아직 책을 잘 못 읽을 수 있지. 아이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잖아. 이쪽에 있는 책들은 모두 그림책인데, 어떤 책은 지식 소양을 길러 주는 책이고, 어떤 책은 생태ㆍ환경을 이야기감으로 삼은 책이야. 그 아이한테는 동화책이 알맞을 수 있는데, 어느 동화책은 철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기도 하고 어느 동화책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담지. 책마다 성격이 다르고 갈래가 다르기 때문에, 그 아이한테 맞춰서 그 아이를 잘 생각하면서 골라야 한다고. 그러니 아이들 책은 아무나 추천해 줄 수 없고, 아이들 부모가 손수 공부해서 하나씩 사 줘야 해.” (4340.9.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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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이라는 긴소설이 1970년대 끝무렵에 조그마한 ‘손바닥책(문고판)’으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으나, 그 뒤로, 또는 그 앞으로 ‘긴 줄거리를 담은 책’이 손바닥책으로 나온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책이 새로 나온 뒤 얼마만큼 팔리게 되면, 손바닥책으로 보급판을 만드는 문화가 널리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토지》 같은 책도 일본에서는 손바닥책으로 나옵니다. 보도사진가를 이야기하는 어느 일본 손바닥책은 쪽수가 자그마치 1000쪽을 훨씬 넘는데 책 만듦새는 튼튼하여 책장이 안 떨어지고, 읽기에도 괜찮고 무게도 가볍습니다. 우리 나라였다면 이런 책을 큼직하고 무겁게 만들어서 들고 다닐 수 없게, 그러니까 책꽂이에만 모셔 두도록 했겠지요. 책값은 5만 원도 아닌 10만 원쯤 붙었을 테고요.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애장용’이라고 하며 양장에다가 책상자까지 만든 판이 나온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좀더 많은 사람이 가벼운 마음으로 값싸게 사서 널리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보급판’이나 ‘손바닥책’을 만들겠다는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토지》나 《혼불》 같은 긴소설도 손바닥책으로 만들겠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소설책을 한국처럼 두껍고 무겁고 비싼 고급종이를 써서 만드는 곳은 없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일본이든 다른 어느 나라이든, 소설책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그러니까 공부하는 책, 학문 깊이를 파헤친 책, 인문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어떤 전문 분야를 다룬 책도, 그림과 사진이 많이 들어간 예술 쪽 책도 으레 가볍고 튼튼하면서 보기 좋고 값싸게 만드는 편입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면서도,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장서로 갖추어 자료로 쓸 수 있는 판도 함께 만듭니다(도서관에서 기꺼이 사 주니 이렇게 할 수 있을 테지요).

 지금 우리는 어떨까요? 요새는 웬만하게 만들어서는 책이 안 팔린다고 해서 책값을 올리며 빛깔 곱게 꾸밉니다. 책마다 껍데기를 씌우거나 띠지 두르기는 유행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처럼 되었습니다. 그래, 책값을 올려붙인 책이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사 주지 않는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렇다면, 이런 책마을 흐름은 ‘어차피 이 책을 사서 볼 사람은 사서 보니까, 그렇게 사서 보아야 할 사람들 주머니를 털어내자’고 생각하는 도둑질은 아닐까요. 좀 지나친 말이라 하실지 모르겠으나, 우리네 책마을 모습이 이렇잖아요. ‘어차피 사서 읽을 사람’이라 한다면 ‘좀더 값싸고 즐겁게 사서 보도록’ 해 주어야 좋고, ‘이 책을 몰라보고 못 사는 사람한테도 널리 알리는 길’을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이 모든 문제를 출판사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우리들부터 ‘속에 담은 줄거리’를 살피며 책을 사 보는 버릇을 제대로 못 들이고, 또는 안 들이고 있으니까요.

 겉꾸밈(디자인이나 장정)이 좀 허술하더라도 속에 담은 줄거리가 알뜰해야 좋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졌거나 무슨 교수가 쓴 책이라 해서 훌륭한 줄거리를 담은 책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수없이 많은 책을 낸 역사 깊은 출판사라고 해서 ‘이곳에서 새로 내는 책마다 우리 삶을 밝히는 책’이 될까요. 우리들이 아직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이 써낸 책을 낯선 출판사에서 냈을 때, 이 책들은 찬찬히 살피며 돌아볼 값어치가 없을까요.

 제가 헌책방을 자주 다니며 책을 보는 까닭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① 겉꾸밈이 좋다고 모두 읽을 만한 책이지 않습니다. ② 이름난 사람, 학식과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해서 훌륭한 줄거리를 담은 책이지 않습니다. ③ 권위와 역사 깊은 출판사라 해서 한결같이 우리 삶을 밝히는 책을 내지는 않습니다. ④ 책크기(판형)가 작고 가볍고 값싸고 좀 질이 낮은 종이를 쓴 책이라고 해서 뭔가 좀 덜 떨어지거나 모자란 책이지 않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들은 사람이든 책이든 사물이든, 일자리든 자연이든 삶이든, 사진이든 연속극이든 영화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서 ‘좋고 싫고’를 가리기 일쑤입니다. 이름있는 대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일도 잘하고 똑똑할 것처럼 생각하지 않나요. 얼굴이 곱상하고 예쁘면 더 마음이 끌리지 않나요.

 참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일 때부터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일류대학교 들어가기 난장판’에 끌려들고 맙니다. 사물과 사람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자기가 참으로 좋아하고 즐길 만한 일자리를 찾기보다, 돈과 이름과 힘을 더 많고 높고 크게 얻을 수 있는 학벌과 연줄을 찾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따라갑니다. 형편이 이러하니, 책 한 권을 볼 때에도 속보다 겉을 더 따지거나 찾게 되지 싶어요. 요즘 들어서 드물게 나오지만, 못생긴 탤런트나 영화배우 숫자는 참 적어요. 연속극에 나오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잘나고 잘생기고 몸매 늘씬한 사람입니다. 장애인은 아예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만큼 ‘장애인 이동권’과 ‘장애인 활동권’이 막혀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더욱이 장애인 이야기나 푸대접받는 소수자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구경하기 힘들고, 어쩌다 나오는 책은 실천이 따르지 않는 구호를 벗어나지 못해요. 영어니 논술이니 하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동안 아예 한참 뒤로 밀려나 버리고 만 ‘우리 말과 우리 문화 이야기’를 다룬 책은 큰 책방 진열장에서도 구석진 자리에나 조금 있을 뿐입니다. 뭐, 이런 책을 사 보는 사람이 드무니 책방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요.

 사람 손은 하나라서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도 하나입니다. 욕심을 잡으면 나눔을 못 잡고, 명예나 돈이나 권력을 잡으면 사랑과 믿음과 즐거움을 놓칩니다. 겉멋을 잡으면 속멋을 놓치기 마련이고 학벌과 학력을 잡으면 참된 사람살이와 사람공부는 놓칠밖에 없습니다. 책 하나 만들어 사람들한테 읽히겠다는 책마을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는이 마음과 살림을 좀더 헤아리고 살피는 눈길을 잡지 않는다면 얄궂은 길로 갈밖에요. 책 하나 찾아내어 읽는 우리들도 겉꾸밈과 유명세 따위에 자꾸자꾸 빠진다면, 속을 잘 차리면서 알뜰하고 아름답게 가꾼 책하고 그지없이 멀어질 테고요.

 어제부터 《내 나이가 어때서?》(황안나 지음,샨티,2005)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예순다섯 나이에 두 다리로 남녘땅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걸어서 밟아나가는 여행을 떠난 할머니 삶과 생각을 담은 책입니다. “나 역시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하기에 ‘오늘’은 항상 가장 적합한 때이다.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 본단 말인가!” 하는 대목에서 한동안 책장을 덮습니다. 이 외침 그대로 우리들은 오늘을 살아갑니다. 오늘을 밝히는 책, 겉멋이나 유명세나 유행이 아니라 자기한테 지금 가장 쓸모있으면서 올곧음과 즐거움을 베풀어 주는 책, 달디단 설탕이나 짜디짠 소금이 아니라 구수하면서 하루 세 끼니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된장찌개 같은 책을 즐기는 일이 출판사한테는 ‘조그마한 책’ 조촐히 내는 마음을 일으켜세우고, 우리 자신한테는 ‘조그마한 책’ 가붓이 즐기는 마음을 잠깨울 수 있을까요. 조용히 믿어 봅니다. (4338.8.18.나무.처음 씀/4340.9.16.해.고쳐 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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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찾는 방법 1
 


 좋은 책을 찾는 방법이 있을까요? 글쎄, 제가 느끼기로는 자기한테 좋을 책을 저마다 하나하나 살피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지 싶습니다. 제가 읽어 본 어느 책이 참 좋다고 해서, 다른 분들한테까지도 그 책이 좋을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어느 분이 참 즐겁게 읽은 책이라 해서, 이 책이 저한테까지 즐겁지는 않겠지요. 이를테면, 저는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로 이어지는 야구단을 응원했지만, 어떤 분은 MBC 청룡-LG 트윈스로 이어지는 야구단을 응원하겠지요.

 한때는 야구를 좋아할 수 있고, 한때는 춤추고 노래하며 놀기를 좋아할 수 있고, 한때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할 수 있으며, 한때는 사랑하고 사귀는 일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다른 일을 좋아할 수 있고 다른 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차츰차츰 바뀌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하며 거듭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참 좋다’고 느끼는 책도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아무것도 아니네’ 하고 느낄 수 있으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하면서 새삼스레 값어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 저한테 “책을 많이 보셨으니까, 좋은 책 고르는 방법을 잘 아실 것 같은데, 한 말씀 해 주시지요?” 하고 곧잘 묻는 분들 앞에서, 딱히 어떤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늘 이렇게 대꾸합니다. “글쎄요. 자기가 읽어서 좋으면 좋은 책이지 싶은데요. 따로 좋은 책을 찾거나 나쁜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책 저 책 하나하나 살피면서, 가만히 책 하나를 맛본다는 생각으로 살펴본다면, 자연스럽게 자기한테 좋거나 반가운 책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남들이 읽었다고 하는 좋다고 하는 책을 자기도 사서 읽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책방에 가득 꽂혀 있는 온갖 책을 두루 살피고 읽어 보는 일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박지성 선수한테 ‘축구 잘하는 법’을 묻는다고 해 봤자, 이승엽 선수한테 ‘야구 잘하는 법’을 묻는다고 해 봤자, 이창호 씨한테 ‘바둑 잘 두는 법’을 묻는다고 해 봤자, 박수근 님한테 ‘그림 잘 그리는 법’을 묻는다고 해 봤자, 어떤 뾰족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는지요?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법이고, 자신한테 좋다고 느껴지는 책은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하는 법이라고 느낍니다. (4339.6.21.물.ㅎㄲㅅㄱ)


 좋은 책을 찾는 방법 2


 “알려고 하니까, 진짜 알아지는 기회가 오는데. 알아진 것 같지만, 고기 안에서 안주하려고 하면 알 수 없어.” (헌책방 〈아벨서점〉 아주머니 말, 2007.9.5.)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좋은 책을 나누는 잣대 또한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자기한테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지, 또 자기 이웃한테도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지, 자기 식구와 동무들한테 어떤 책이 좋을지를 깊이깊이 헤아리고 꾸준하게 살피고 두고두고 살피노라면, 저절로 눈이 트여서 책이 보입니다. 아니, 책이 우리 눈앞에 와서 엥깁니다. (4340.9.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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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낮, 헌책방 나들이를 하려고 서울로 전철을 타고 가는 길에 《하종강-길에서 만난 사람들》(후마니타스,2007)을 읽습니다. 73쪽, 다큐멘타리 영화를 찍는 태준식 감독 이야기를 읽다가 한동안 책을 덮습니다.


.. 그렇다. 사람은 ‘사상’이 아니라 ‘삶’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


 볼펜으로 꾹꾹 눌러 가면서, 책에 몇 글자 적습니다.

 사람은 그이가 써낸 책이 아니라, 그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로 평가를 받는다. 《무소유》라는 책이 아니라, 이 책을 쓴 분이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삶이 아닌 책으로 사람을 따진다.

 사람은 그이가 번 돈이 아니라, 그이가 어디에서 어떻게 돈을 쓰며 살았느냐로 평가를 받는다. 재산이 얼마요 땅이 얼마가 아니라, 그만한 돈을 번 사람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고, 이렇게 번 돈을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썼는가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그이가 무슨 짓을 했고 말고는 헤아리지 않고 돈크기가 얼마이냐만으로 사람을 잰다.

 사람은 그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동무나 이웃이나 피붙이)이 아니라, 그이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울리며 함께 일하고 노느냐로 평가를 받는다. 이름난 사람, 힘있는 사람, 돈있는 사람과 가까이 지낸다고 해서 이름이 나거나 힘이 있거나 돈이 있지 않다. 훌륭한 사람을 많이 알고 지낸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들 책을 많이 읽어서 알고 있다고 해서 그이도 훌륭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그이가 옆에 어떤 사람을 가까이 두고 있느냐를 놓고만 사람을 살핀다.

 사람은 그이가 얻거나 갖춘 지식이나 학벌이 아니라, 그가 어디에서 누구와 자기 지식을 베풀거나 나누었는가로 평가를 받는다. 아는 것 많아 똑똑하다거나 높은 학교를 마쳤다거나 나라밖으로도 공부를 다녀왔다고 해서, 그이가 세상을 좀더 두루 살펴볼 줄 알거나 깊이 파헤칠 줄 알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퀴즈대회에서 우승하고, 졸업장이나 자격증 숫자가 많으며, 온갖 어려운 학술 낱말로 자기를 감싸는 사람이 대단한 무엇을 보여주고 있기라도 한듯 떠벌리고 부풀린다. (4340.8.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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