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물 책읽기



  내가 왜 기계빨래를 그리 안 좋아했는가를 돌아봅니다. 딱히 기계빨래를 거스를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두 손으로 비벼서 빨래를 하면, 내 옷가지에 그동안 깃든 땀내음이나 먼지내음을 고스란히 헤아릴 뿐 아니라, 빨래를 하면서 빨랫물이 얼마나 나오는가를 모두 지켜볼 수 있어요. 기계가 빨래를 해 주는 일을 싫어한다기보다 ‘전기 없는 삶’이라면 옷을 어떻게 건사하려 하느냐는 마음으로 늘 ‘손으로 짓는 살림’을 헤아리려 했습니다. 이러다가 요 며칠 사이에 문득 새롭게 하나를 깨닫는데, 내가 손빨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빨랫물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구나 싶어요. 되살림비누를 쓰더라도 빨랫물에 거품이 생긴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거품이 생긴다면, 이 거품은 무엇이겠느냐 하고 돌아봅니다. 어제부터 설거지를 할 적에는 이엠발효액만으로 하는데, 꽤 잘 되고 깨끗합니다. 설거지물도 한결 깨끗하고요. 빨랫물을 쳐다볼 수 있다고 해서 빨래나 살림을 더 잘 헤아리지도 못했다는 대목을 깨달으면서,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다고 해서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제대로 헤아린다고는 할 수 없다는 대목을 새삼스레 배웁니다. 우리가 읽을 것이라면 ‘책’이 아니라 ‘살림’일 테지요. 애써 책을 읽는다면 ‘책에 깃든 살림’을 읽어야 할 테고요.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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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책읽기



  내가 군대에 끌려가던 무렵에 나한테 군대에서 어떻게 지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둘레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아예 없지는 않았어요. 내가 군대에 끌려가던 1995년 무렵을 돌이키니, 다음 같은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ㄱ. 누가 널 때리면, 넌 그놈을 죽지 않을 만큼 때려라.

ㄴ. 웃사람(고참)한테는 개기지 말아라, 비록 웃사람이 너보다 어려도.

ㄷ. 뭐든 주면 고맙게 먹어라, 안 그러면 굶고 갈굼 받는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무렵에서는 군대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으리라 느낍니다. 나는 군대에서 여러 가지 죽음도 보았고 총질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참말로 해 줄 만할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날 젊은 사내한테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받거나 듣지 못한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내가 오늘날 젊은 사내한테 새롭게 들려주거나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다음처럼 생각해 봅니다.

각해요.


ㄱ. 누가 널 때려도, 너는 아무도 때리지 말아 주렴.

ㄴ. 누가 널 욕해도, 너는 아무한테도 욕을 하지 말아 주렴.

ㄷ. 누가 널 괴롭혀도, 너는 아무도 괴롭히지 말아 주렴.


  내가 맞았대서 남을 때리거나, 내가 욕을 들었대서 남을 욕하거나, 내가 괴롭힘 받았대서 남을 괴롭히면, 참으로 언제나 고스란히 이 굴레에서 되풀이되더군요. 한 번 이 굴레에 빠져들면 빠져나오기가 몹시 힘들어요. 게다가 이 굴레는 군대에서만 그치지 않아요. 사회에서도 똑같고, 집에서도 똑같지요. 남한테서 맞은 일은 곧 풀리지만, 내가 누군가를 때린 일은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지워지거나 풀리지 않아요.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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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듣지 않는 책읽기



  나는 여러모로 책을 쓰기도 하고 사진책도서관을 꾸리기도 하기에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곧잘 찾아오거나 전화를 합니다. 이때에 나는 그분들한테 여러모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만 나는 그분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 ‘한자말을 한 마디도 섞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 말하듯이 ‘한자말이 없이 쉬운 한국말로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막상 신문이나 잡지나 책이 나올 적에 들여다보면 “따옴표”를 친 자리에 ‘내가 안 쓴 한자말’이 버젓이 나오기 일쑤입니다. (한자말을 안 써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안 쓰는 낱말이나 말투가 뚱딴지처럼 뜬금없이 거시기하게 좔좔좔 흐른다는 소리입니다)


  내가 한 마디도 두 마디도 쓰지 않은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나 번역 말투를 버젓이 “따옴표”를 붙여서 글을 쓴 기자나 작가나 편집자한테 묻고 싶지요. 이보셔요, 그대는 내 말을 어떻게 들었나요? 귀로 들었나요, 발로 들었나요? 녹음기로 녹음도 하셨는데 어떻게 내가 안 한 말을 마치 내가 한 말처럼 종이에 떡하니 찍어서 보여줄 수 있는가요?


  그러나 그분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럴 수밖에 없을 때가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마음을 열고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저 좋을 대로 아무렇게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고 또 묻고 거듭 물으면서 ‘제대로 알아들을’ 때까지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가 안 한 말’이나 ‘내가 한 말’이 무엇인지 모를 수밖에 없을 테지요.


  책을 읽을 적에도 글쓴이 뜻이나 마음이나 생각을 엉뚱하게 건너뛰거나 넘겨짚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없고, 사랑하려는 마음이 없으며, 서로 이웃이 되어 사이좋게 꿈꾸는 노래를 부를 마음이 없으니, 자꾸만 ‘귀담아듣지 않는 몸짓’이 불거지는구나 싶습니다.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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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려 하지 않는 책읽기



  배우려 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합니다. 배우려 하면 배웁니다. 배우려 하지 않으면 눈을 뜨지 못합니다. 배우려 하면 눈을 뜹니다. 배우려 하지 않으면 마음을 열지 못하고, 배우려 하면 마음을 엽니다. 나는 이를 잘 안다고 말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나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는 몸짓’하고 ‘배우려 하는 몸짓’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배우려 하지 않는 몸짓일 적에는 몸이며 마음이 함께 굳으면서 즐거움이 없어요. 그러니 웃음이나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배우려 하는 몸짓일 적에는 몸이며 마음이 함께 가벼우면서 즐거움이 흐릅니다. 남이 나를 즐겁게 하지 않아요. 배우려 하는 몸짓일 적에 스스로 즐겁습니다. 그러니 이때에는 웃음이나 노래가 저절로 흐릅니다.


  배우려 하는 사람은 학력이나 재산이나 계급이나 이것저것 아무것도 따지거나 가리지 않습니다.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학력을 비롯해서 돈이나 계급이나 이것저것 모조리 따지거나 가립니다. 배우려 하기에 돈이 없어도 배워요. 배우려 하지 않기에 돈이 있어도 배우지 못해요. 배우려 하기에 책이 한 권조차 없어도 배우고, 배우려 하지 않기에 책을 멧더미처럼 잔뜩 쌓았어도 배우지 못해요. 배우려 하기에 어떤 책을 읽든 넓고 깊이 배울 수 있고, 배우려 하지 않기에 매우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책을 마주하더라도 아무것도 못 느끼고 말아요. 2016.6.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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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는 책



  즐겁게 읽기에 모든 책은 ‘즐거운 책’이 됩니다. 좋아하려는 손길로 집어서 좋은 마음을 가꾸려 하기에 모든 책은 ‘좋은 책’이 됩니다. 사랑스레 읽어서 사랑스레 누리려 하면 모든 책은 ‘사랑스런 책’이 될 테지요. 내 마음자리에 따라서 책이 달라지고, 내 마음결에 맞추어 책이 거듭나요. 내 생각이나 눈길이 흐르는 대로 책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요. 아이들이 책 한 권을 수없이 되읽듯이 어른도 책 한 권을 수없이 되읽을 만합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이나 만화책 한 권을 천 번쯤 가볍게 되읽듯이 어른도 어느 책 한 권을 천 번쯤 가볍게 되읽으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만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운 웃음으로 맞이하면서 즐겁게 읽을 책 하나를 바라봅니다. 2016.6.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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