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을 때까지 기다리는 책



  책이 사람을 기다립니다. 책은 저를 읽어 줄 사람을 기다립니다. 책은 우리를 부르지 않아요. 책은 우리 손이나 발을 잡아끌지 않아요. 책은 늘 얌전히 우리를 지켜볼 뿐입니다. 우리가 손을 뻗어서 저희를 따스하게 어루만지면서 읽어 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발길을 멈추고 책을 손에 쥘 적에 책은 그예 온몸을 열어젖혀서 이녁한테 깃든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런데 책은 우리한테 제 이야기를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만큼 우리 나름대로 책에서 이야기를 읽을 뿐이에요. 때로는 넉넉히 이야기를 읽을 테고, 때로는 아무 이야기도 못 읽을 수 있어요. 책이 나쁘거나 모자란 탓도 아니지만, 책을 손에 쥔 우리가 나쁘거나 모자란 탓도 아니에요. 어떤 이야기를 언제 어느 만큼 받아들인가 하는 대목은 늘 달라져요. 언제나 우리 삶과 살림과 사랑에 맞게 우리 나름대로 이야기를 받아들여요. 오늘 내가 살아가는 만큼 책 한 권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리고, 오늘 내가 살림하는 만큼 책 한 권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며, 오늘 내가 사랑하는 만큼 책 한 권에서 이야기꽃을 피워요. 내가 읽을 때까지 언제까지나 고이 기다리던 책은, 우리 아이도 기다리고, 우리 아이가 앞으로 낳을 아이도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고요히 잠을 자고, 아니 기다리는 동안 늘 새롭게 꿈을 키웁니다. 눈부시게 피어날 싱그러운 이야기꽃을 책들은 저마다 저희 가슴에 품으면서 꿈을 키워요. 2016.8.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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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책읽기



  1초가 길다면 얼마나 길까요. 1초가 짧다면 얼마나 짧을까요. 오늘 〈갓 오브 이집트〉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여러 가지를 헤아려 보는데, 하늘(air)을 다스리는 이집트 님(신)이라는 호루스는 작은아버지한테 빼앗긴 눈 가운데 하나를 되찾을 수 있던 때에 살짝 망설이다가 눈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길’로 몸을 던져요. 그야말로 삶하고 죽음이 엇갈리는 1초나 0.1초나 0.001초라고 하는 동안에 아주 살짝 망설이다가 아주 빠르게 몸을 던지지요. 나는 이 대목을 보다가 ‘내가 겪은 삶하고 죽음 사이’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살면서 몇 차례 ‘삶하고 죽음 사이’를 오간 적이 있는데, 이때에 느낀 1초(또는 0.1초나 0.001초)는 매우 길었어요. 자동차에 치여서 자전거가 찌그러지고 내 몸이 하늘로 붕 떠서 길바닥에 떨어지기까지는 옆에서 보자면 고작 1초도 안 되었을 테지만, 나는 이 1초도 안 되는 겨를에 그야말로 수만 가지 생각을 했고,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모든 발자취를 다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할 적에 흔히 몇 시간이나 몇 분쯤 쓸까요? 우리가 읽는 모든 책은 ‘글쓴이로서는 짧아도 몇 달이나 몇 해’를 바친 책이고, ‘펴낸이로서도 적어도 몇 달이나 몇 해’를 땀흘린 책이에요. 그런데 이런 책을 우리는 고작 몇 시간이나 몇 분쯤 들여서 다 읽을 수 있어요.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몇 시간만 들이면 ‘한 사람이 몇 해에 걸쳐 이룬 모든 땀방울’을 샅샅이 읽어내거나 알아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살짝 훑더라도 온마음을 기울인다면 책 한 권이 아니라 열 권이나 백 권도 빠르게 읽어내거나 알아낼 만하다고 느낍니다. 삶하고 죽음 사이에 놓이면서 수만 가지 생각을 아주 빠르게 떠올리는 마음이 된다면 이처럼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앞에 열 해나 백 해라는 제법 긴 나날을 놓더라도 마음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으면 책 한 권이나 글 한 줄도 엉성하게 짚다가 그만 알맹이 하나 못 건지리라 느껴요. 2016.8.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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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있는 집



  마당이나 마루를 누리지 못하는 집이 많습니다. 해바라기를 하다가 섬돌에 내려앉아 신을 꿰고는 곧장 마당으로 달려가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비바라기를 하기 어려운 집이 많습니다. 마당하고 집을 잇는 마루는 바람하고 햇볕이 드나듭니다. 마당하고 집 사이에 있는 마루는 걸터앉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면서 느긋하게 쉴 자리가 됩니다. 마루에 엎드려 그림책을 길게 펼치고, 마루를 무릎걸음으로 기면서 온갖 놀이를 합니다. 마루에 누워 바람을 쐬니 더위를 식히기에 좋습니다. 마루로 스며드는 여름노래를 가만히 들으면서 낮잠을 잘 만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만합니다. 2016.7.3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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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잔치



  문득 “그들 잔치”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들끼리 잔치를 벌이면서 마치 “우리 모두를 그들이 너른 마음으로 헤아리는 듯이 꾸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들 잔치”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니, 나도 어쩌면 그들처럼 “나 홀로 잔치”를 하면서 “나도 그들처럼 나 혼자만 헤아리는 주제에 마치 내가 다른 이웃님 모두를 헤아리는 듯이 멍청한 몸짓을 보이지는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그들 잔치”를 벌이거나 말거나 나는 나부터 똑바로 바라보아야지 싶어요. 나부터 “나 홀로 잔치”를 바보스레 하지는 않는지 차근차근 되새겨야지 싶어요. 내가 걸어갈 길을 슬기롭게 살피면서 내가 지을 살림을 사랑스레 가꾸는 몸짓이 되어야겠다고 느껴요. 2016.7.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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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달고 달리다



  한국에서 국가대표로 나오는 선수가 머리카락을 물들이거나 꽃머리띠를 단다면 받아들일까요? 이렇게 머리카락을 물들이거나 꽃머리띠를 했는데 성적이 안 나오면 어떤 말이 나올까요? 2015년 중국 북경에서 벌어진 세계육상대회에서 어느 자메이카 선수가 멋진 풀빛 머리카락에 꽃머리띠를 하고서 100미터 달리기에서 1등을 했어요. 이녁은 1등을 하지 않았더라도 멋진 사람이로구나 싶은데, 치렁치렁 날리는 풀빛 머리카락에 노란 꽃머리띠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요, 바로 이것이 삶이요 살림이며 사랑이지요. 2016.7.19.불.ㅅㄴㄹ


https://www.youtube.com/watch?v=qwPMChHW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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