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책순이



  고흥집을 떠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하고 이모 이모부 집에서 지낸 지 이틀째 되는 날, 우리 집 책순이는 “내가 읽을 그림책이 없어.” 하면서 힘들어 합니다. 다른 놀이를 실컷 했으니 책도 실컷 읽고 싶은데 마땅히 읽거나 볼 만한 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도 큰아이가 읽을 책이 없지만, 이모 이모부 집에서도 큰아이가 읽을 책이 없다 할 만한데, 이제 이모 이모부 집에는 아기가 있어요. 이리하여 이모 이모부 집에는 책순이가 그리워하는 책이 있어, 이모 이모부 집에서 이것저것 놀이를 한 뒤에는 책꽂이에 있는 모든 책을 하나씩 꺼내어 그야말로 몽땅 읽어냅니다. 그러게, 네가 읽을 책을 네 가방에 한 권쯤 챙겨 오면 되었을 텐데. 곰곰이 돌아보면 이제껏 바깥마실을 할 적에 아버지가 으레 책방마실을 했기에 책방마실을 하며 ‘어디에서나 새로운 책을 쉽게 얻어’ 보았으니 아쉽다고 여길 일이 없었을 테지요. 오늘까지 사흘 동안 몸으로 실컷 뛰놀며 기운을 옴팡 쓴 아이들이 시외버스에서 달게 곯아떨어지고서 우리 고흥집에서 다시 책순이가 될 모습을 그립니다. 2016.9.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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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두 권 담은 책

 


  한가위를 앞두고 일산마실을 하려고 짐을 꾸리며 책을 두 권 챙깁니다. 혼자 하는 마실이라면 책을 대여섯 권쯤 챙길 텐데, 딱 두 권만 챙길 뿐 아니라 어제오늘 책방 가까이 가지도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맞추고, 느긋하게 아침저녁을 보냅니다. 2016년 한가위 언저리에 내 가방에 챙긴 책으로는 《토끼가 새라고?》하고 《C.라이트 밀스》입니다. 두 권 모두 제법 두껍고 무거우니 여느 책 여러 권을 챙길 적하고 비슷한 무게이기는 합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마 ‘읽을 종이책은 없을’ 텐데, 시외버스에서 고요하게 마음을 다스리자고 생각합니다. 늘 책을 읽던 사람이 며칠 동안 책을 안 읽거나 못 읽더라도 그리 허전하지 않네 하고 새삼스레 느끼는 하루입니다. 2016.9.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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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며 읽는 책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이웃님을 만나기로 합니다. 낮부터 저녁까지 여러 가지 볼일을 보느라 다리가 몹시 지쳤습니다. 더는 걸을 수 없구나 싶어서 책방 한 곳으로 찾아갑니다. 마침 이 책방에 느긋하게 쉴 수 있는 걸상이 있어서, 걸상에도 앉다가 바닥에도 앉다가 벽에 기대기도 하다가, 이래저래 몸을 쉬면서 책을 읽습니다. 이웃님을 만나기까지 한 시간 반 남짓 기다리며 책을 얼추 스물다섯 권은 읽었지 싶습니다. 스물다섯 권이라니, 이만 한 숫자로 셀 만큼 책을 읽으며 나도 스스로 놀라서 더 읽지 않고 수첩을 꺼냅니다. 수첩을 꺼내어 짤막하게 글을 씁니다.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얼크러지면서 누린 즐거운 이야기를 재미난 노래로 엮어 봅니다.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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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콕콕



  아이들이 책을 읽다가 으레 손가락을 들어 콕콕 짚습니다.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다고 하는 말을 혼자서 종알종알 늘어놓으면서 손가락으로 콕콕 찍습니다. 어른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림이나 글에 손가락으로 콕콕 짚거나 찍을까요? 아마 어른이 되면 이렇게 손가락까지 써서 책을 읽지는 않을 테지요. 여느 어른은 거의 다 눈으로만 책을 읽지 싶어요. 아이들은 온몸으로 책을 읽고 온마음으로 책을 마주하기에 언제나 온몸을 골고루 쓰면서 책을 읽네 하고 느낍니다. 피와 살이 되기도 하지만, 놀이도 되고 꿈도 되고 사랑도 되는 책읽기입니다. 2016.8.2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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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딴 옥수수를 손에 쥐고



  옥수수를 갓 따서 껍질을 벗기다가 반짝반짝 고운 알을 쓰다듬어 봅니다. 어쩜 이렇게 빛나면서 매끄러우면서 어여쁠까 하고 생각합니다. 해를 머금은 기운을 새삼스레 돌아보고, 흙에서 자란 숨결을 새롭게 어루만집니다.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눈부신 열매를 먹으면서 눈부신 몸이 되고, 눈부신 몸으로 눈부신 일을 짓고, 또 눈부신 살림을 빚어 눈부신 아이를 낳으니, 언제나 눈부신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느껴요. 2016.8.1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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