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 시골에서 책을 고르고.읽고.쓴다는 것
최종규 지음 / 스토리닷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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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요즈음 [책을 냈습니다]라는 이름으로

시민기자 가운데 책을 낸 사람들 스스로

이녁 책을 소개하는 꼭지를 마련했어요.

그래서 저도 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 봅니다.


이 글은 2017년 7월 21일에

수원 한림도서관에서 '노란등대/수원한살림'에서 마련한 이야기자리에서

함께 주고받은 생각을 바탕으로 썼어요.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놓고서뿐 아니라

시골살림과 '진 사람(패배자/루저)'이란 무엇인가를

즐겁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빌어요.

고맙습니다 ^^


+ + +



‘루저’가 시골에서 책을 쓴 뜻

― 우리는 모두 졌어요, 마음하고 마음이 이어지는 책읽기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사회에서 보기에 어느 모로 ‘진 사람(패배자·루저)’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없고, 2003년 9월부터는 따로 몸담고 지내면서 일삯을 받는 일터를 다니지 않았어요.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살고, 자가용이 없어요. 옷 한 벌을 새로 사는 일은 몇 해에 한 번 있을까 말까인데다, 책을 써내는 사람으로서 굵직한 이름을 드날리는 출판사에서는 책을 내지도 않습니다.


  저는 제가 ‘졌다’는 대목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네, 저는 ‘진 사람’이에요. 아마 앞으로도 이처럼 진 사람으로 살아갈 테고요.


  다르게 본다면 저는 진 사람이되, “빚을 진 사람”이나 “다툼에서 진 사람”보다는 “꿈을 진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제 어깨에는 꿈을 짊어지려고 해요. 한쪽 어깨에는 꿈을 짊어져요. 다른 한쪽 어깨에는 사랑을 짊어지려 하고요. 사회에서 저를 두고 ‘졌다’고 말한다면, 서글서글하게 “참말 그렇네. 나는 졌네. 나는 꿈을 지고 사랑을 졌네.” 하고 대꾸하는 살림이에요.


  저희는 두 아이를 ‘졸업장 따는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졸업장 따는 학교’를 다니지 않아요. 우리 집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우리 집 학교’입니다. 홈스쿨링이 아닌 우리 집 학교예요. 우리 집에서 살림을 함께 배우고, 우리 집에서 생각을 새로 살찌웁니다. 우리 집에서 신나게 뛰놀면서, 나무랑 풀이랑 꽃이랑 풀벌레랑 벌나비랑 바람이랑 해님을 고이 맞이합니다.


  사회에서는 졸업장을 따는 곳만 학교인 듯 여겨요.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배울 수 있는 곳일 때에 학교라고 생각해요. 어른하고 아이가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터가 바로 학교라고 생각해요.


  사회에서 말하는 학교는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거머쥐도록 이끄는 곳이기에, 우리로서는 두 아이를 이러한 곳에 맡길 뜻이 없어요. 우리 집 두 아이는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아니라, 삶을 스스로 짓고 사랑을 손수 가다듬는 즐거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2016년 12월에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스토리닷 펴냄)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어제 출판사 대표님이 쪽글을 보내 주셨는데, 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문학나눔’으로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도 뽑혔다고 알려주셨어요. 스토리닷이라는 출판사는 대표님이 혼자 모든 살림을 맡고 편집과 배본과 홍보까지 이끌어요. 1인출판사에서 야무지게 낸 책이 세종도서 문학나눔으로 뽑히니 반가운 일이에요. 제 책이 그러한 상을 받아서 반갑다기보다, 제 책이 받는 사랑이 발판이 되어서, 스토리닷이라는 1인출판사에서 앞으로 새로 펴낼 책에 보탬이 될 씨앗돈이 모이겠구나 싶어서 반가웠어요.


  제가 책을 써내는 마음이라면, 또 제가 쓴 책을 커다란 출판사가 아닌 작은 출판사나 1인출판사에 맡기는 마음이라면, 책 하나를 더 많이 알려서 더 많이 팔기보다는, 책 하나를 살뜰히 사랑해서 두고두고 이웃님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마음입니다. 들하고 숲을 채우는 수많은 꽃은 한 가지만 있지 않아요. 그야말로 수많은 꽃이 옹기종기 도란도란 알콩달콩 사이좋게 어우러집니다.


  한두 가지 꽃만 잔뜩 핀 꽃밭이나 뜰도 이쁘겠지요. 벚꽃잔치나 튤립잔치나 장미잔치 같은 꽃잔치를 으레 하잖아요? 이런 꽃잔치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꽃송이가 소담스러운 함박꽃을 비롯해서 꽃송이가 아기 손톱보다 작은 봄까지꽃이나 코딱지나물꽃이나 곰밤부리꽃이나 꽃마리꽃이나 괭이밥꽃이나 냉이꽃이나 …… 이런저런 수많은 들꽃이 어우러지는 자리는 더없이 이쁘다고 느껴요.


  우리가 이름을 아는 꽃만 핀 곳보다, 우리가 이름을 아직 잘 모르는 숱한 들꽃이 어우러진 곳이 참말로 들판답고 숲다우며 마을답지 싶어요.


  사월에는 들딸기꽃으로 싱그러워요. 오월에는 붓꽃으로 흐드러져요. 유월에는 찔레꽃으로 환해요. 칠월에는 하늘타리꽃으로 싱그러워요. 이러면서 옥수수꽃이 피고요, 곧 나락꽃이 피지요. 나락꽃이 지며 이삭이 여물 즈음에는 어느새 들판이나 멧자락마다 산국이 곳곳에서 돋아요. 이러는 사이에 살살이꽃이라든지 해바라기꽃이라든지 접시꽃이라든지 갖은 꽃이 살가이 어울립니다.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이라면, 숲과 냇물과 흙과 나무와 풀과 풀벌레와 벌나비와 새와 들짐승이 모두 어우러지는 큰 터전에서 사람이 어떻게 제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일구는가 하는 살림을 읽는 즐거움이라고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삶터만 시골이 아니에요. 마음터가 시골이고, 생각터가 시골이며, 사랑터가 시골입니다. 이야기터와 샘터와 빨래터가 모두 시골입니다. 꿈터와 배움터와 노래터도 시골이에요.


  시골스럽게 숲을 노래하려고 시골살림을 지으면서 글 한 줄을 씁니다. 시골스럽게 바람을 마시면서 흙을 보듬다가 글 두 줄을 씁니다. 시골스럽게 낫질하고 호미질을 하면서 땀을 훔친 뒤에 글 석 줄을 씁니다. 시골스러운 밤하늘에서 미리내를 날마다 마주하는 기쁨을 고스란히 옮기는 글 넉 줄을 씁니다.


  그러고 보면 그런데요, 미리내를 늘 보는 곳에서 살림하는 사람하고, 미리내는커녕 달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곳에서 살림하는 사람이 마음에 품는 생각은 사뭇 다를 만해요. 흐르는 냇물을 언제나 두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살림짓는 사람하고, 페트병에 담긴 먹는샘물을 돈으로 사다가 마셔야 하는 곳에서 살림짓는 사람이 마음에 담을 생각도 사뭇 다를 만하지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과 마음으로 만난다고 느껴요. 비록 서로 다른 삶터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더라도, 책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마음으로 만나지 싶어요.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피어나는 맑은 숲바람이 구름을 밀면서 서울로 갑니다. 서울을 거친 숲바람이 평양이나 의주로도 나아가고, 이 바람은 러시아하고 핀란드를 돌아서 호주랑 태평양을 가로지르더니 일본을 스쳐서 전남 고흥으로 다시 옵니다.


  돌고 도는 바람이에요. 한쪽에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이 바람을 타고 온누리를 어루만져요. 한쪽에서 기쁨으로 짓는 살림이 바람과 함께 골골샅샅을 쓰다듬어요.


  더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사랑을 배우려는 기쁨으로 책을 읽어요. 더 많은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거머쥐기보다는 스스로 살림을 아이하고 함께 지으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기쁨으로 책을 읽어요.


  서울서 사는 분들은 자연농이나 유기농으로 키운 먹을거리를 제값을 치르고 장만해 주는 따스한 손길을 베풉니다. 돈이 넉넉하거나 많아서 자연농이나 유기농 먹을거리를 장만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가난하거나 팍팍한 살림이더라도 제값을 치러서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누릴 적에 시골에서 제대로 키운 제대로 된 곡식하고 남새를 돌보는 밑힘을 얻을 수 있는 줄 알기에 기꺼이 제값을 치러 준다고 느껴요.


  일하는 사람이 땀방울에 값하는 일삯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면 이 땅에는 언제나 평화와 민주와 평등이 흐를 만하다고 생각해요. 더 싼 것을 찾거나 더 값싸면서 많은 것을 찾는 손길이 자꾸 비정규직이나 차별이나 불평등을 끌어들인다고 생각해요.


  생각해 봐요. 값이 싼 책을 100권이나 1000권이나 10000권을 장만할 적에 기쁠까요? 값싸게 파는 책을 읽으면 즐거울까요?


  아니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담은 제대로 된 책을 제값을 치르고서 장만할 적에 기쁠까요? 제대로 엮은 이야기를 담은 제대로 지은 책을 읽을 적에 즐겁지 않나요?


  우리는 아무 책이나 읽지 않아요. 우리는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우는 책을 읽어요. 우리는 아무 책이나 책꽂이에 모셔 두지 않아요. 우리는 틈틈이 다시 꺼내어 되읽고 되새기며 되돌아볼 만한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고이 모셔요.


  장만해 놓고 한 번도 안 입을 옷을 옷장에 가득 채우면 집안이 어떻게 될까요? 값이 싸서 사 놓기는 했는데 한 번도 안 쓰는 이불이나 세간을 집안에 가득 쟁이면 어떻게 될까요?


  즐겁게 읽을 책을 즐겁게 제값을 치러서 즐겁게 내 틈을 내어 읽습니다. 기쁘게 되새기며 배울 책을 기쁘게 일해서 얻은 돈으로 장만하고는, 기쁘게 내 짬을 내어 새로운 마음으로 읽습니다.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낸 뜻을 더 적어 볼게요. 우리가 사는 곳이 서울이나 인천이나 부산이나 광주나 대전이나 울산이라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숲을 사랑하고 바람을 노래하며 별을 그리는 생각이 흐른다면, 우리는 늘 마음으로 시골에서 살면서 시골스럽게 살림을 짓는다고 느껴요. 고흥이나 장흥이나 해남이나 고성 같은 고장에 살아야 시골사람이지 않아요. 사는 터를 넘어서 생각이 하나로 모이거나 만나는 어깨동무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숲지기가 되고, 숲동무가 되면서, 숲놀이를 즐기는, 숲살림으로 나아가 보면 좋겠어요. 서로서로 아낄 줄 아는 따사로운 손길이 되면 좋겠어요.


  나무 곁에 서서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도 책읽기예요. 구름이 흐르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들마실이나 골목마실을 할 수 있어도 책읽기예요. 귀뚜라미나 매미가 노래하는 소리에 가슴이 뭉클할 수 있어도 책읽기예요. 밥 한 그릇이 되어 준 나락과 빗물과 흙과 햇볕을 느낄 수 있어도 책읽기예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살림을 지으며 ‘우리 집 배움터’를 가꿀 수 있어도 책읽기예요.


  종이가 되어 준 나무를 생각하기에 책읽기예요. 종이로 바뀐 숲을 헤아리기에 책읽기에요. 종이로 거듭나면서 이야기를 온몸에 담는 나무와 숲을 돌아보기에 책읽기입니다.


  우리 함께 시골지기가 되어 보면 좋겠어요. 우리 함께 숲지기도 되고 풀지기나 꽃지기나 바람지기나 하늘지기나 별지기나 구름지기가 되어 보면 좋겠어요. 물 좋고 바람 맑은 시골을 건사할 적에 서울사람 누구나 맑고 싱그러우며 정갈한 먹을거리를 누릴 수 있다는 대목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시골사람이 시골스럽게 웃음지을 적에 서울사람도 시골벗을 그리면서 날마다 새롭게 살림꽃을 피울 수 있다는 대목을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다툼에서 이기고 지는 길은 이제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꿈을 지고 사랑을 지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길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시골에서 시골책을 읽고 서울책을 읽습니다. 시골에서 바람을 마시고 풀을 베면서 하루를 읽습니다. 시골에서 부르는 노래가 나락 한 톨에 담겨 서울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2017.7.2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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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푸름이 스스로

한국말을 슬기롭게 바라보며

사랑스레 가꾸는 길을 이야기하려고 쓴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 나왔어요.


주말에 인쇄 제본을 마쳤고

이주에 책방에 들어가요.


어린이와 푸름이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이기에

어른도 즐겁게 함께 읽을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머리말, 차례, 맺음말을 붙일게요.


+ + +


이야기를 여는 말 :  말과 넋과 삶을 사랑하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우리가 쓰는 모든 말에는 뜻이 있어요. 이 말을 처음 지어서 쓰던 사람들이 품은 뜻이 있어요. 뜻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말뜻이고, 다른 하나는 느낌이며, 또 다른 하나는 생각이요, 새로운 하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나 꿈입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말뜻’과 ‘느낌’, ‘생각’을 주고받아요. 말뜻을 주고받는 일이란 너나 내가 한 말을 서로 알아듣는 테두리입니다. 다음으로 ‘느낌’을 주고받을 적에는 어떤 일을 놓고서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테두리인데, 좋으냐 싫으냐 반갑냐 서운하냐 모자라냐 넉넉하냐 하고 느끼는 결을 살피지요. ‘생각’을 주고받을 적에는 스스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로 나아가는 테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말뜻 한 가지만 바라보며 그칠 수 있어요. 이때에는 시험공부라든지 학습 능력을 따지지요. 이른바 시사 상식이나 지식이 되어요. 말뜻을 넘어 ‘느낌’을 살피려 한다면, 나를 둘러싼 이웃이나 동무를 바라보는 자리가 돼요. 여기에서 ‘생각’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디디면 ‘스스로 짓는 하루’를 어떻게 바라보아서 손수 움직이느냐 하는 자리가 되어요.


  우리는 말 한마디를 들려주거나 내놓으면서 삶을 북돋우거나 살림을 가꾸거나 사랑을 꽃피우거나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말뜻·느낌·생각’을 거쳐서 ‘이야기’가 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나 꿈으로 거듭나려는 새로운 숨결이 될 적에, 내가 나를 살려내는 길을 찾을 수 있어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어린이 여러분이 스스로 ‘말삶’을 지어서 ‘말넋’을 가꾸는 ‘말길’을 여는 자리에서 길동무가 되려고 합니다. 먼저 말뜻(말풀이)을 읽고, 다음으로 말결(말느낌)을 돌아보며, 이 다음으로 말넋(말생각)을 키우다가 바야흐로 말삶(말에 담는 삶·살림·사랑·꿈을 짓는 슬기)을 가꾸는 기쁨으로 곱게 다스리는 기운을 스스로 얻기를 바라요.


  한국말사전에 ‘집전화’라는 낱말은 없어요. 그렇지만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 생기면서 ‘전화’라는 물건을 놓고 “들고 다니는 전화”하고 “집에 두고 쓰는 전화”를 갈라야겠다고 여겨서, ‘집전화·손전화(휴대전화)’라는 새 낱말이 태어나기도 해요. 이때에는 어른들 스스로 생각을 잘 밝혀서 재미난 말을 지은 셈이에요. ‘집’은 보금자리를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쓰고 가게를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써요. 그러니 ‘회사전화’도 ‘집전화’일 수 있어요. 회사에서 쓰는 전화를 따로 가르고 싶다면 ‘일터전화’나 ‘가게전화’라는 낱말을 새로 지을 만해요. 짧게 줄여 ‘일전화’로 쓴다면 ‘손전화·집전화·일전화’처럼 나눌 수 있겠지요? 또 팩스라고 하는 기계를 놓고는 ‘그림전화’라 할 수 있어요. 팩스라는 기계는 종이에 얹은 모든 그림을 그대로 보내는 구실을 하거든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어린이 여러분이 스스로 살고 배우고 지내고 놀고 어울리고 꿈꾸는 마을에서 말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살리거나 사랑할 때에 아름답고 즐거운 삶으로 거듭날 만할까 하는 대목을 다루려 합니다. 앞서 선보인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이 태어난 자리는 ‘숲’이라는 대목을 밝히면서, 우리가 숲을 가꾸고 사랑할 때에 말을 가꾸고 사랑하는 슬기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어요.


 ‘마을’이란 ‘여러 집이 어우러진 터전’입니다.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으로, 어린이 여러분이 저마다 곱게 살림집을 이루면서 사는 동안 이웃하고 동무를 살가이 사귀면서 나눌 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느낌을 찬찬히 깨닫고, 우리 생각을 차근차근 갈고닦으며, 우리 삶을 손수 짓는 기쁜 사랑과 꿈을 아름답게 펼치는 길에서 ‘말 한마디’가 어떤 힘이 있는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딱딱하게 굳은 말이 아닌 보드랍게 열린 말을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말 한마디에 담는 마음을 살필 수 있기를 바라요. 말 한마디마다 흐르는 숨결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한다지만 천 냥 빚을 지기도 한다고 해요. 다시 말해서, 말 한마디를 어떻게 살려서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은 더 아름다울 수 있지만, 아름다움하고 동떨어질 수 있어요. 아주 작은 말 한마디를 슬기롭고 즐겁게 쓰면서 맑으면서 밝은 꿈을 사랑스레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하고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을에서 말과 넋과 삶을 살리는 기쁜 웃음을 짓는 노래”가 흐를 수 있기를 바라요. 상냥하고 넉넉하게 웃는 기쁜 눈길로 읽어 주셔요. 고맙습니다.


한국말사전 배움터 ‘숲노래’ 이야기지기 최종규




+ + +


차례


1. 마을에서 노래하는 말

골목꽃·골목놀이·마실·마을돈·마을신문·어귀


2. 집이 모여 이웃이 손잡는 말

동무집·두레·모둠집·석 간·숲집·쪽마루·하늘바라기집


3. 가게에서 사이좋게 나누는 말

길장사·닷새마당·에누리·우수리·이웃가게·저자·흥정


4. 잔치로 환하게 어우러지는 말

겨울잔치·곰국·국·누리잔치·예순잔치·잔칫밥·큰잔치


5. 모임을 이루어 넉넉한 말

갈무리·노래모임·동아리·두레누리·사랑모임·어깨나라


6. 배움님이 되어 나누는 따뜻한 말

글쓰기·또래·배움동무·배움바라지·배움책


7. 쉬다 보니 기운이 샘솟는 말

겨를·깁다·느린밥·느린배움·말미·버스터·쉬는차


8. 책으로 이야기꽃 피우는 말

삶말·숲책·오늘이야기·책손질·책쓰기·책찻집


9. 누리마다 고이 퍼지는 말

골·별내·사랑누리·온둥이·울·잘·즈믄·한가람·해누리


10. 그림으로 날아오르는 말

권정생 집·그림터·동화나라·부산책누리·살림그림·한글집


11. 이음고리가 되어 살가운 말

누리그물·누리글·누리날개·누리놀이·누리님·셈틀·열린터·풀그림


12. 탈것을 누리며 마실하는 말

널방아·부름차·쇠돈·아기수레·왼돌이·이음목·타는곳·하늘길


13. 이름마다 서린 그윽한 말

만들다·빚다·손질·짓다·일컫다


14. 믿음을 보듬는 말

넋·부뚜막할매·비손·서낭·신·얼·지킴이·한울


15. 사랑으로 살뜰히 쓰다듬는 말

그리다·다짐글·반하다·사랑·좋다·한사랑·홀리다


16. 살림을 알차게 건사하는 말

나라살림·반짇고리·살림꽃·세간·옷밥집·장이·쟁이·즐김이


17. 텃밭에서 꿈꾸는 말

그릇밭·나눔밥·마음밭·봄걷이·터·텃새·한마당


18. 길을 거닐며 떠올리는 말

거님길·길바늘·길벗·길손집·느린걸음·징검돌


19. 어른으로 자라는 옹근 말 

다소곳하다·셈·약돌이·애늙은이·오롯하다·옹글다·철·철모름쟁이


20. 책상맡에서 생각에 잠기는 말

걸음쇠·네글벗·모둠상·앉은뱅이책상·연필주머니·책상물림·책시렁


21. 놀이터에서 뛰어오르는 말

공놀이터·깍두기·깨끔발·소꿉·손바닥놀이터·추임새


22. 건널목에서 기다리는 말

두찻길·빗물닦이·빠른길·어린이길·오솔길·지름길·차둠터


23. 힘이 나는 놀라운 말 

바람힘·별빛·손놀림·손힘·전기힘·햇볕힘


24. 곳마다 꽃으로 거듭나는 말

곳곳·새로짓기·숲정이·자투리땅·질그릇·처네·하늘숨


붙임말 1 : 책에 나온 낱말 뜻 헤아려 보기

붙임말 2 : 인터넷에서 쓰는 말 손질해 보기



+ + +


이야기를 마무르는 말: 이야기꽃을 피우며 꿈꾸자


  일을 끝맺을 적에 ‘마무리하다’라고 해요. 이와 비슷하지만 살며시 결이 다른 ‘마무르다’라는 낱말이 있어요. ‘마무르다’도 어떤 일이 잘 끝나도록 다스리는 몸짓을 가리켜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으로 스물네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마무르는 말을 붙여 볼게요.


  지난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에서는 “수수께끼 놀이 하자” 하는 말로 책을 마물렀어요. 이 책에서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꿈꾸자” 하는 말로 마무릅니다. “수수께끼 놀이”란 우리한테 궁금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묻고 우리 스스로 풀어 보자는 뜻이에요. “이야기꽃 피우는 꿈”은 스스로 궁금한 이야기를 풀었으면, 이렇게 풀어낸 실마리를 마음껏 펼쳐서 날개돋이를 해 보자는 뜻입니다.


  말길을 활짝 트면서 생각을 활짝 트면 좋겠어요.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날아오르는 마음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모두 우리한테 돌아오는 줄 잘 되새기면 좋겠어요. 예부터 어른들이 들려주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처럼,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먼저 고운 말을 즐겁게 지어서 쓸 수 있기를 빌어요. 둘레에서 아무리 우리한테 밉거나 싫은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싱긋 웃음을 띠면서 고운 말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요.


  생각해 봐요. 둘레에서 우리를 괴롭히려고 밉거나 싫거나 궂은 말을 퍼붓더라도 우리가 그런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귀로 흘리면서 고운 말을 상냥한 눈빛으로 건네면, 우리 둘레에서는 아마 깜짝 놀랄 테지요. 남이 나한테 주는 사랑스러운 말이 아닌, 내가 바로 나한테 주는 사랑스러운 말이랍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선물한 사랑스러운 말을 둘레에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어요.


  생각하는 말이 사랑하는 말이 되어요. 사랑하는 말이 생각하는 말이 되지요. 꿈꾸는 말이 꽃처럼 피어나는 말이 되고, 꽃처럼 피어나는 말이 꿈으로 다시 샘솟는 말이 되어요. 말꽃잔치 벌어진 이 한마당에 온누리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기쁨누리를 가꾸려는 손길로 글월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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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7-06-26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마치 제 일인양 즐겁습니다..

숲노래 2017-06-26 17:42   좋아요 0 | URL
축하해 주시는 분은
모두 하느님이라고 생각해요 ^^

기쁘게 반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7년 6월 7일!

코앞에 다가오고서야

이러한 멋진 행삭가 있는 줄

알리는 글을 띄우네요

ㅠ.ㅜ


6월 7일에 이어

6월 10일에도 하는데

6월 10일은 책방마실을 해요.


이틀 모두 오신다면

그대는 아름다운 '책방 사랑이'입니다 ^^

이틀 가운데 하루를 잡아서 오셔도

그대는 멋진 '책방 사랑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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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이

짠!! 태어납니다.


지난 2014년에 나온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하고

한짝을 이루는 책입니다.


한짝을 이루는 책이 세 해 만에 나오네요 @.@

열 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쓴

새로운 우리말 이야기는

'숲말'하고 '마을말'에 이어서

아마 2019년쯤이 되지 싶은데

'별말'까지 쓰면 세 가지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습니다 ^^


이렇게 세 권을 하고 나면

"어린이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쓸 수 있을 테고요.


이제 슬슬 편집디자인이 끝나갈 텐데

책에 실을 그림을 맛보기처럼 걸쳐 봅니다.


책이 나오면 기쁘게 반겨 주셔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아직 만나지 못하신 이웃님이라면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하고 함께 맞이해 보셔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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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쳔 Question 2017.3 - Vol.07
인터뷰코리아 편집부 / 인터뷰코리아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3월이 저물면 더는 살 수 없는 책이랍니다 ^^;;;
3월이 가기 앞서 부디 즐거이 사랑해 주셔요 (__)

+ + +

제가 잡지 ‘표지 인물’이 되었어요
― 사전 짓는 살림 담아 준 《퀘스천》 7호(2017.3.)


  고등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신문배달 일을 하고, 출판사 영업부에 들어가서 책을 팔고, 이러다가 《보리 국어사전》 짓는 편집장 노릇을 하고, 돌아가신 이오덕 님 글하고 책을 갈무리하고, 이러는 동안에 저한테 ‘책’은 늘 남이 쓴 글로 이루어진 종이꾸러미였습니다. 2004년에 제 첫 책을 내놓으면서 ‘책’은 내 글로 이루어진 종이꾸러미가 될 수 있구나 하고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신문배달 일을 하며 ‘우리말 소식지’를 낼 적에 더러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찾아와 만나보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른바 ‘인터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수많은 기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을 뿐이었어요. 작은 자리에서 작게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를 머릿기사로 쓸 일은 없었으리라 느껴요.

  2017년 3월에 나온 《월간 퀘스천》이라는 잡지에서 뜻밖에 ‘표지 이야기’로 제 얼굴이 실렸습니다.

  잡지를 받아보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낯익으면서도 낯선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거울이 없고, 제가 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도 없어서, 막상 잡지 겉그림에 나온 제 모습을 보면서도 이이가 나인지 남인지 한동안 헷갈렸습니다.

“검정 고무신 신고 새롭게 살려낸 한국말사전”

  잡지 《월간 퀘스천》 7호(2017.3.)는 이렇게 이름을 뽑습니다. 지난 2016년 여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냈는데, 이 작은 사전이 발판이 되어 인터뷰를 했습니다. 작은 사전을 내고서 두 번째로 한 인터뷰이자, 종이매체로는 처음 한 인터뷰였어요.

  처음에는 ‘학회나 단체나 출판사나 대학교나 대학원이나 연구소가 아닌 한 사람’이 어떻게 사전을 낼 수 있느냐고 여쭙는 자리로 여겼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사전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전 가운데에서도 한국말사전을 어떻게 엮거나 짓는지 궁금할 수 있어요. 으레 사전을 ‘여러 사람’이 짓는다고 여길 수 있는데, 막상 어느 나라에서든 사전은 ‘한 사람’이 짓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공이 여럿이면 배가 앞으로 못 가요. 사공은 오직 하나여야 합니다. 사공은 하나이되, 곁에서 사공을 이끄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공을 돕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요. 이러면서 사공이 배에 태울 손님이 있어야 할 테지요.

  사전을 짓는 사람이 여럿이면 말풀이가 뒤섞이고 말아요. 사전은 한 사람이 짓되, 이를 여러 사람이 되읽고 되살피면서 가다듬습니다. 교정·교열은 여러 사람이 하지요.

QUESTION : 학교는 안 보내고요?
최종규 : 학교를 안 보내는 게 아니라 우리 집 학교를 다니지요. 여기가 우리 집 학교고, 저희가 도서관을 하니까 도서관 학교고, 또 여기를 숲으로 가꿀 생각이니 숲 학교도 되는 거지요 … 저희는 일반 학교에 보낼 생각이 없어서요. 졸업장 따는 학교는 보낼 생각이 없어요. 여긴 졸업장이 없는 학교이지만, 여기가 더 좋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요. 다른 분들은 아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직업, 회사원이나 공무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졸업장 따는 학교에 보내 교과서 맞춰서 배우는 거고요.

  사전을 하나 써냈고, 새로운 사전을 하나 더 쓰고, 앞으로도 새로운 사전을 꾸준히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함께 배우고 도서관학교를 꾸리면서 사전을 쓸 수 있는 힘이라면, 아무래도 ‘졸업장을 안 땄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제가 대학교 졸업장을 땄다면 그 졸업장에 얽매인 길을 갔으리라 생각해요. 졸업장이 아닌 삶·살림·사랑을 찾고픈 마음이었기에, 온갖 굽이진 길을 돌고 거쳐서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바라보는 자리에 왔구나 싶어요.

  제 이야기가 ‘표지 이야기’로 나온 잡지를 더듬더듬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같은 인터뷰 하나로 그동안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오늘 걸어갈 길을 되짚은 뒤, 앞으로 나아갈 꿈을 새삼스레 추스를 만하구나 싶어요.

QUESTION : 사전 짓는 일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종규 : 저는 시 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말과 글을 가르치다 보니까 저절로 시를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짤막하게 요만 한 엽서 종이에다가 이야기를 하나 엮어서 써 주는 거예요. 여러 가지 말을 골고루 섞어서. 섞으면 여러 글씨로 보지만 그거를 이제 이리저리 말을 바꿔서 훈련시키는 셈이지요 … 같은 토박이말을 쓴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사전에 있는 죽은 말을 쓰고, 어떤 사람은 몸으로 느끼는 늘 살아가는 말을 쓰는 거고, 요즘 문인들은 살림이 없이 그냥 머리로 외운 말을 탁탁 끼워 맞추는 거예요. 컴퓨터로 쉽게 조합을 해 버리는 거지요. 그러니까 재미가 없는 거예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잡지 편집부에서 ‘알아서 알맞게’ 자를 말은 자르면서 기사로 싣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웬걸, 제가 들려준 이야기를 거의 모두 잡지에 담아 주셨습니다. 편집부 입맛으로 거른 이야기가 아닌, 제가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통째로 살린 이야기가 실렸어요.

  잡지에서 표지 이야기 주인공으로 실리면 이럴 만할까 하고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잡지를 엮는 분들은 어떤 잣대나 틀로 가르기보다는, 살아가는 한 사람이 품은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려는 뜻으로 이렇게 할 수 있을 테고요.

  스스로 표지 이야기 주인공이 된 잡지를 읽으며 두 가지를 놓고 잔잔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나는 ‘졸업장 안 따는 학교’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둘은 ‘사전이란 시를 쓰듯이 엮는 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말을 담은 그릇인 사전은, 기호나 수식이나 도표가 깃든 책이 아니라고 느껴요. 죽은 말이 아닌 산 말을 담는 그릇인 사전이라고 느껴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쓰는 말을 그냥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람들이 삶과 살림과 사랑을 곱게 여미도록 북돋우는 말을 가리거나 살려서 담는 그릇이라고 느껴요. 사전 한 권이란 ‘말로 이룬 엄청나게 아름다운 시’가 모인 책일 때에 뜻있고 값있다고 느껴요.

  그렇다고 어렵게 꼬거나 알쏭달쏭하게 뒤튼 시일 수는 없어요. 손수 짓는 살림을 수수하면서 투박한 손길로 상냥하게 담아낸 시일 때에 비로소 사전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듯 말을 받아먹을 수 있게끔 짓는 사전이리라 생각해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듯 말을 갈무리하기에 사전이 된다고 생각해요.

QUESTION : 애들이 만화라든가 그런 걸 통해서 내성이 생기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그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냥 경험 아닐까요?
최종규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 줘요. 저 사람들이 왜 저런 말을 쓰는가, 저 사람들은 저런 말로 책을 읽어 왔고, 저 사람들은 학교를 다녀서 저런 말을 써, 그건 저 사람들이 쓰는 말이야, 네가 읽은 책에서 나온 말들이, 그게 다 옳거나 좋은 말이 아닌 줄 알아야 해, 그건 그 사람이 쓴 그 사람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는 말이야, 너는 그 말을 모르지, 모르면 그걸 따라하지 말고, 네가 네 마음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을 써, 네가 모르면 아버지 어머니한테 물어, 그럼 너한테 그 말을 풀어서 얘기해 주잖아, 풀어서 얘기해 주는 말을 쓰면 돼, 그리고 네가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놀아도 돼, 네가 읽고 싶은 거 있으면 스스로 쓰면 되고.

  인터뷰 끝자락에 ‘대학 졸업장 없어도 즐겁게 한국말사전 엮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처럼 고등학교만 마친 학력으로도 얼마든지 책을 쓰거나 사전을 지을 수 있다는 모습을 이웃님한테 알려주고 싶어요. 대학입시로 고달픈 아이들한테도 ‘너희가 굳이 대학교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알려주고 싶기도 해요.

  대학교에 가야 길이 열리지 않아요. 길을 스스로 찾아야 길이 열려요. 이루려는 꿈을 품어야 이 꿈대로 길을 열어요. 스스로 지어서 이웃하고 나누려는 사랑을 그려야 이 사랑에 맞추어 길을 내고요.

  작은 손길로 작은 시골에서 작은 사전을 지은 마흔 몇 해 걸음걸이가 잡지 표지 이야기로 나왔어요. 우리 삶터 골골샅샅에 작은 눈길로 작은 보금자리를 아끼며 작은 일을 사랑스레 하는 이웃님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앞으로 이 아름다운 이웃님 이야기도 잡지를 고이 빛내는 표지 이야기로 나올 테지요? 작은 씨앗 한 톨이 들려주는 작은 목소리가 흐르는 작은 마을에서 오늘 하루도 작게 꿈을 꾸면서 살림을 짓습니다. 2017.3.2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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