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뿌리를 심다가



  밤 한 시 사십오 분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가방을 꾸립니다. 아침 일곱 시 첫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새벽 다섯 시 무렵 소리쟁이잎을 썰어 설탕에 재웁니다. 소리쟁이잎은 어제 낮에 뜯어서 씻고 말려 놓은 뒤 저녁에 한창 썰어서 재웠는데, 마개까지 꽉 찼어요. 하루 지나면 조금 숨이 죽어 더 들어가리라 여겼습니다. 참말로 하루(라기보다 몇 시간) 지나니 소리쟁이잎 석 줌을 더 넣을 수 있습니다. 어제 심으려다가 미처 못 심은 파뿌리 다섯을 새벽 여섯 시에 심습니다. 곰밤부리를 호미로 훑어서 자리를 마련하고, 훑은 곰밤부리는 새로 심은 파뿌리 둘레에 고이 깔아 놓습니다. 지난해 봄께 심은 파는 겨울에도 씩씩하게 잘 살았고, 한 해 동안 꾸준하게 새 줄기를 내주었습니다. 지난겨울부터 심은 파뿌리도 저마다 씩씩하게 새 줄기를 올리면서 우리한테 고맙게 새 줄기를 내주어요. 가볍게 다 심고서 들딸기꽃을 바라보고 갓꽃을 바라봅니다. 소담스레 붉은 꽃송이로 온통 잔치를 이룬 동백나무를 바라보다가 직박구리 한 마리가 초피나무 가지에 앉아서 한참 나를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엽니다. 2017.4.1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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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쓰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나는 ‘그냥 하기’입니다. 내가 잘하는 일 하나는 ‘아무튼 해 보기’입니다. ‘될까 안 될까’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해 봅니다. 이렇게 해 보고서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거나 길을 돌립니다. 이렇게 해 보고 또 해 보고 자꾸 해 보면서 비로소 몸이 새롭게 깨달으면서 내 나름대로 나아갈 자리를 알아차립니다. 나는 1994년부터 2016년까지 헌책방 한 곳 이야기만 썼습니다. 2009년에 딱 한 번 마을책방 이야기를 썼고, 2016년에 두 번째 마을책방 이야기를 썼는데, 2017년 올해에는 여러모로 전국 곳곳에 있는 이쁜 마을책방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드디어 오늘 새벽 이 이야기 하나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한 걸음입니다. 2017.3.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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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아나〉를 보다



  영화 〈모아나〉를 아이들하고 보았어요. 이 영화파일을 장만한 지 한 달 만이지 싶어요. 요새는 디브이디가 아니어도 ㄴ에서 영화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으니 시골에서 지내며 ‘우리 집 극장’을 누리면서 여러 차례 다시 보며 고마워요. 이 영화를 앞으로 몇 차례 더 차근차근 보고서 느낌글을 써야겠다고 느껴요. 무척 아름다우면서 깊은 뜻이 흐르거든요. 모아나도, 마우이도, 할머니도, 아버지와 어머니도, 닭도, 테피티도, 저마다 다 다른 뜻으로 이 땅에 내려와서 ‘마실길(여행길·여정)’을 나서는 이야기가 새삼스럽습니다. 2017.3.2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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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는 핑계



  두 아이를 이끌고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짐을 하나씩 들어 줍니다. 그렇다고 해 보아야 퍽 가벼운 짐이지만, 이렇게 두 아이가 “나도 하나씩 들겠어” 하고 얘기해 주면 한결 홀가분하다고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읍내 버스역으로 가야 합니다. 셋이서 나란히 걷다가 언제나처럼 작은아이가 콩콩 가벼운 발놀림으로 앞서갑니다. 작은아이가 어느 건물 앞을 지나갈 무렵 문득 오른쪽에서 하얀 자동차가 불쑥 튀어나옵니다. 이러면서 작은아이를 가볍게 칩니다. “보라야, 옆을 보렴.” 하고 작은아이를 부릅니다. 작은아이는 이 소리에 오른쪽을 보더니 자동차가 멈추지 않고 뒷걸음처럼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한 걸음 물러섭니다.


  하얀 자동차는 유리 문을 열지 않은 채 그냥 뒷걸음으로 빠져나오려 합니다. 한길에서도 다른 자동차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유리 문은 아직도 안 엽니다. 다른 자동차가 빵빵거리니 그제야 멈춥니다. 나는 아이를 이끌고 운전석 쪽으로 가서 운전수를 부릅니다.


  “아저씨, 문 여세요. 그냥 가면 안 됩니다.”


  하얀 자동차는 문을 한동안 안 열다가 15초쯤 지나서야 유리 문을 올립니다. 하얀 자동차를 모는 이는 할아버지.


  “아저씨, 자동차가 빠져나오려 할 적에는 뒤를 잘 살피셔야지요. 그냥 나오면 안 되지요.” “내가 늙어서 그래요. 늙어서 못 봤어요.” “늙었다고 못 볼 수 없어요. 늙었다고 하시지 말고, 늙으셨으면 더 잘 살피고 다니셔야지요.” “네, 네, 내가 늙어서 그래요.” “아저씨, 아저씨가 뒤로 나오면서 안 살피다가 아이를 쳤어요. 사람을 쳤다고요.” “네, 네, 내가 늙어서 그렇습니다.”


  하얀 자동차를 모는 분은 ‘늙은 사람’이기 때문에 둘레를 안 살펴도 될까요? 할아버지가 자동차를 몰면 다른 자동차는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리고 사람을 함부로 치고 그냥 내빼도 될까요?


  저는 이분한테 “늙어서 못 봤다고 하지 마시고, 늙어서 잘 안 보인다면 더 찬찬히 살펴서 더 천천히 다니셔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다음부터는 더 천천히 더 살피고 다니셔요.” 하는 말을 남기고 우리 길을 가기로 합니다. 자동차 뒷걸음질로 아이를 쳤으나, 이를 이 운전자한테 잘잘못을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 아이가 안 다쳤기에 안 따지려는 생각이 아닙니다. 골목에서든 건물 앞에서든 자동차를 모는 이는 사람을 더 잘 살필 노릇이고, 더욱이 아이는 더더욱 잘 살펴야지요. 자동차를 모는 이라면 이를 아주 마땅히 늘 헤아려야 한다는 대목을 제대로 이야기해 주려고 했습니다.


  작은아이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이내 다른 놀이를 떠올리면서 싱긋싱긋 걷습니다. 버스역에 닿아 아버지가 표를 “자, 표를 들어 주겠니?” 하고 내미니 더 좋다면서 군내버스를 기다립니다. 모처럼 커다란 자동차(버스)를 타면서 읍내마실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모처럼 과자도 하나 장만해서 집으로 들어가니 좋은 아이입니다.


  아이한테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어요. “얘야,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다른 사람더러, 그러니까 길을 가는 사람더러 ‘비켜!’ 하고 말할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돼.” “왜?” “자동차는 너무 빨리 달리기 때문에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걷는 사람을 안 살피면 사람들이 크게 다쳐. 그런데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잘 안 살필 때가 있어. 그러니, 보라 네가 걸을 적에 골목이나 자동차가 있는 곳에서는 더 살피면서 잘 가자.” 2017.3.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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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글 하나를 쓰다가
눈이랑 머리를 쉬다가
깜짝 놀란다.

며칠 앞서 보낸 책 소개 기사가
토요일 저녁에 등록이 되었는데
머릿기사로 올라갔다.

나는 이 머릿기사와 같은 이름(제목)을 뽑지 않는데
가만히 보니
이런 이름(제목)이 꽤 재미있고 좋다.

자연과생태 출판사 책은
언론사 홍보로 1권도 안 보낸다고 할 만큼
스스로 알차고 아름답게 짓기로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이름이 높다.

이 소개글에 나온 <거미 이름 해설>도
나는 다른 "자연과생태 책을 챙겨 읽는 이웃님"처럼
인터넷서점 찾기창에서 '새로 낸 책이 있나' 하고 살피다가 알았고
두 달에 걸쳐 찬찬히 읽고서 소개글을 썼다.

부디 이 책을 비롯해서
다른 책들도 두루 널리 이쁘게 사랑받기를 비는 마음....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7775&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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