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나날



https://www.youtube.com/watch?v=PIBdfdz98iU

  곁님이 먼저 보고서 알려주었기에 밤에 함께 본 연속극이 있습니다. ‘강덕순 애정 변천사’인데, 뒷모습이나 차림새나 말씨를 놓고 본다면 매우 엉성하지만, 줄거리를 풀어내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 알차요. 더욱이 1926년에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 발자취를 사내 아닌 가시내 눈높이에서 가시내 몸짓으로 보여주려는 흐름은 무척 돋보입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나날이 발돋움하겠지요? 이 땅에서 우리는 참말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새로운 길을 여는 슬기롭고 상냥한 삶을 짓겠지요? 2018.2.2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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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만큼 떴어



  ‘높은 분’이 왔기에 다들 일어나서 차려 하며 서는 일을 떠올립니다. 높은 분은 아침이나 낮에 움직이시지요. 그러나 ‘낮은 놈’은 때나 자리를 가리지 않고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를테면, 군대에서 이런 일을 흔히 겪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낮 근무’하고 ‘밤 근무’가 있고, 비무장지대라고 하지만 정작 완전무장지대인 철책에서는 3교대를 해요. 3교대란 하루를 셋으로 갈라서 8시간 동안 꼼짝 없이 혼자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경계근무입니다. ‘높은 분’이 보기에 8시간 경계근무는 그리 안 어려울 수 있어요. 딱히 다른 일을 안 하고 그저 한 손에 총을 들고 여덟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서서 가만히 한 곳만 바라보면 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봐요. 00시부터 08시까지 여덟 시간 동안 경계근무를 섰다면 08시에 초소로 돌아와서 비로소 눈을 부치겠지요. 그리고요, 군대라는 곳에서 00시에 경계근무를 나가야 하더라도 21시까지 청소랑 이것저것 모두 마친 뒤에 22시까지 저녁점호를 받고서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는데 00시부터 여덟 시간 경계근무에 나가야 하면 적어도 23시 30분에는 일어나서 장비를 챙겨야 해요. 계급이 낮으면 저녁은 저녁대로 온갖 치다꺼리를 다 하고서 밤새 꼬박 쉴 틈이 없이 철책 곁에 멍하니 서서 아침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08시에 경계근무를 바꾸어 비로소 쉴 수 있어도 12시에 일어나서 낮밥을 먹어야 해요. 참 갑갑한 얼거리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대대장이건 연대장이건 사단장이건 군단장이건 뭔 놈이건 ‘전방 순시’를 한답시고 찾아오면 그나마 네 시간 눈붙이기조차 못 하고 일어나서 차려 하고 서야 합니다. 어깨에 꽃이나 별이라는 계급장을 단 분들은 으레 말하지요. “해가 저만큼 떴어!” 하고. 겨울올림픽에서 얼음판을 지치는 이상화라고 하는 선수하고 얽힌 이야기를 얼핏 듣고는 군대에서 겪은 일이 떠오릅니다. 그분들은 늘 말씀하시더군요. “아니, 이 녀석들, 한낮인데 왜 퍼질러 자고 지랄이야!” 속으로 그분한테 여쭈었지요. “이보셔요. 밤새 우리더러 한잠도 못 자게 했는데, 어쩌라고요?” 2018.2.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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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해



  공문서를 쉽게 손질해서 쓰도록 이끄는 글꾸러미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최영미 시인이 불을 지핀 문단성추행을 놓고서 뜬금없는 막말잔치를 벌인 이승철 시인이 갑툭튀를 하시는 바람에 하루 글쓰기 가운데 몇 시간을 그 이승철 시인 패거리가 열네 해 앞서 저한테 저지른 성추행하고 막말잔치를 되돌아보는 데에 썼습니다. 이러면서 다른 문단 어른이나 책마을 어른이 했던 짓을 떠올렸고요. 열네 해가 지난 일이어도, 찬찬히 떠올리자니 마치 그림처럼 또렷하게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도 오래오래 마음에 새기지만, 슬픔도 두고두고 마음에 새기네요. 2004년에 이승철 시인 패거리는 성추행을 일삼으면서도 뉘우치지 않고 되레 큰소리로 저를 꾸짖으면서 ‘문단·출판계’에 제가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거친 말을 읊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 문단이든 큰 출판사 언저리에는 안 갔습니다만, 퍽 가난하면서 고된 나날을 짊어지고 살았습니다. 다만 저는 가난하면서 고된 나날이었다고 하더라도 여태 슬프지 않았고 딱히 싫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 골라서 걸어온 가시밭길이니까요. 어느 모로 보면 그들이 그렇게 막짓을 했기에 우리 사회나 책마을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할 만합니다. 책마을에서 먹고살 길이 오랫동안 막히거나 끊긴 채 살았으니 한결 조용히 스스로 가다듬고 갈고닦는 나날을 보낼 만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지난 열네 해하고 다른 새로운 열네 해를 그려 봅니다. 이제껏 우두머리 자리에 앉거나 우두머리 곁에서 빌붙어 단물을 빨아먹던 분들은 부디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씨앗을 새로운 자루에 담아서 건사하고, 이 새로운 씨앗을 새로운 땅에 알뜰살뜰 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이여, 그대들이 참말로 스스로 어른이라고 여기신다면 흙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말없이 거름이 되어 주기를 바라요. 2018.2.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 <시골에서 ... 즐거움> 이 꾸러미로 내는 책은

책마을에서 따돌림받으면서 살아남은 자국일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저는 살아남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울타리를 친 곳에 안 들어가고

스스로 즐거보 씩씩하게 살아온 자국이라고 여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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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받친 길



  두 아이하고 순천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악에 받친 사람을 매우 많이 스칩니다. 삶이 너무 고달픈 탓일까요. 먹고살기 힘든 탓일까요. 어떤 슬프거나 아픈 일 때문일까요. 벌교 시외버스역에서는 시외버스가 오가는 어귀 한복판에 자가용을 대놓고 비킬 줄 모르는 분을 스칩니다. 이 시외버스를 모는 분은 스스로 듣지도 않으면서 사건·사고 이야기만 끝없이 흐르는 라디오를 틀어 놓습니다. 순천에서 시내버스를 타는데, 젊은이도 늙은이도 멀쩡히 한쪽에 선 사람을 치고 지나가지만 아무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는데, 치고 지나갈 만한 자리에 있지 않아도 그냥 치고 지나갑니다. 순천 아랫장에서는 짐 많은 아지매나 할매한테 ‘왜 화물차 안 타고 버스를 타느냐’고 타박하는 버스 기사랑 ‘세상에 이렇게 인심이 없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손님이 삿대질을 합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사람들이 겉으로는 상냥한 말씨를 쓰는 듯해도 속으로는 지치거나 고단한 몸짓으로 소리를 높입니다. 때로는 지치거나 고단한 낯빛 그대로 멱살잡이를 할 듯한 모습이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이 바깥마실을 멀리 다니고 싶지 않다고 으레 말하는데, 참말로 아이들 말이 맞습니다. 상냥한 이웃이나 어른이나 동무가 아닌, 악에 받친 사람들이 사회에 이렇게 가득하다면 굳이 사회살림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2018.2.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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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은 참 겨울에도 고흥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부엌 창문을 열고서 저녁을 짓습니다. 춥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저녁을 다 지을 즈음 방바닥에 불을 넣어야 아이들이 따뜻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으나 불넣기를 잊습니다. 곧 저녁 열 시가 되겠구나 싶어서, 아이들이 발을 씻고 자도록 이끌려고 하다 보니, 아차 아까 방바닥에 불을 안 넣었다고 떠오릅니다. 보일러를 살피니 방 온도가 22도. 어라, 불을 안 넣었는데 이 겨울에 방이 22도라고? 어쩐지,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하루 내내 집 안팎에서 일하고 돌아다녀도 춥다는 생각이 아예 없더니, 고흥은 참 겨울에도 고흥입니다. 어쩌면 산타 할배 또는 산타 할매가 이 고장 고흥에 겨울에 매우 포근한 날씨를 선물로 베풀어 주었을 수 있습니다. 2017.12.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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