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마음



  혼자 걷기도 하고, 함께 걷기도 합니다. 혼자 걸을 적에는 고요히 생각에 잠기면서 온누리를 홀가분하게 둘러봅니다. 함께 걸을 적에는 기쁘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온누리에 우리 웃음을 흩뿌립니다.


  우리가 이곳을 걷기에 이곳에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이곳을 걸으면서 이곳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가꿉니다. 우리가 이곳을 걷는 동안 이곳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함께 걷는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 있습니다. 나란히 걷는 사람은 서로 숨소리와 목소리와 마음소리를 모두 헤아릴 수 있습니다. 구름을 올려다보고, 흙을 내려다보며 앞을 바라다봅니다. 함께 기쁜 숲바람을 쐬면서 걷습니다. 4348.5.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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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으로 달리고 싶은 마음



  다섯 살 산들보라가 달립니다. 이제 산들보라는 어디에서나 저 앞으로 멀리 멀리 달립니다. 뒤도 안 보고 내처 달립니다. 아주 한참 달려서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구나 싶어서 큰소리로 부르면, 그제서야 뒤를 살짝 돌아보면서 “응?” 하고 대꾸합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누나가 달라붙을까 봐, 또는 누나가 저보다 앞서 달릴까 봐 저만치 앞서 달리는구나 싶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참말 누나가 산들보라를 아주 조금이라도 앞지르면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저보다 앞으로 가지 말라고 막거든요.


  몸도 크고 키도 크며 다리힘도 좋은 누나는 이제 저만치 혼자 앞서 달리지 않습니다. 작은아이는 앞으로도 저만치 앞서 달리면서 놀리라 느낍니다. 우리가 굳이 으뜸으로 달리지 않아도 되는 줄 느끼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모두 으뜸인 삶인 줄 깨달으면, 나란히 걸으면서 함께 노래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을 피우는 재미를 나누겠지요. 4349.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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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



  오늘날 한국에서 바다는 매우 슬픕니다. 바다답지 못한 바다만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왜 바다답지 못한가 하면,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죄 바다를 망가뜨리는 길을 걷는구나 싶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쓰레기터가 아닙니다. 바다에 함부로 쓰레기를 들이부어도 되지 않습니다. 공장 폐수나 핵발전소 열폐수를 바다에 내다버려도 되지 않습니다. 건설폐기물이라는 시멘트덩이를 갯벌에 파묻어도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관광’이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바닷가에 함부로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들씌워도 되지 않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은 물결이 빚습니다. 바람과 함께 물결이 치면서 흙과 모래를 바닷가 안쪽 깊숙한 데까지 실어 나르고, 다시 이 물결은 흙과 모래를 바다로 데려갑니다. 오락가락 하면서 바닷가 모래밭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그런데, 바닷가에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을 함부로 내면서 바닷가 모래가 모조리 바다로 쓸려 가기만 할 뿐,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게다가, 바닷가 시멘트길와 아스팔트길은 물결을 맞고 또 맞으면서 차츰 허물어지고, 볼꼴사납게 바닷가 여기저기에 흩어집니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바닷가라는 곳을 거닐다가, 이 바닷가에 시멘트덩이가 잔뜩 있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한참 이곳을 지켜보면서 속내를 알아챕니다. 이 슬픈 바다를 어찌해야 할까요.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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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낌글을 쓰는 마음



  지지난해부터 쓰려고 했던 느낌글을 이제서야 마무리짓습니다. 새를 사진으로 찍는 분이 있고, 이분이 1988년에 내놓은 사진책 《자연속의 새》가 있습니다. 이 사진책 이야기를 지지난해에 쓰려고 책상맡에 두고 곰곰이 마음을 기울였는데, 이태 남짓 글이 나오지 않아서 책만 만지작거리면서 다시 살펴보고 또 보기만 했습니다다. 이러다가 오늘 드디어 끝을 보았어요. 이러면서, 지난 몇 해 동안 책상맡에 모셔 두기만 한 다른 사진책 《한국 KOREA》를 만지작거립니다. 《한국 KOREA》를 내놓은 사람은 벨기에에서 한국으로 찾아와서 이 나라를 사랑하고 만 분인데, 이분 사진책도 거의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이분 사진책은 이분 이름보다 ‘이분 사진책을 디자인’한 사람 이름이 더 알려졌습니다.


  두 가지 사진책은 새책방에서 일찌감치 사라졌을 수 있고, 아직 몇 권쯤 남았을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이 두 가지 사진책은 여느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책이고, 웬만큼 큰 도서관에서도 안 갖추었다고 할 만한 책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진책을 놓고 느낌글을 쓰면, 이 사진책을 찾아보거나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뜻있고 마음있는 분이라면 힘껏 찾아보려 하거나 알아보려 하겠지요.


  새책방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책이나, 벌써 새책방에서 사라진 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책’입니다. 모든 책은 ‘돈만으로는 살 수 없’기 마련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책은 ‘물건’입니다. 우리는 물건을 사서 읽지 않으니, 여느 새책방에서 흔하게 있는 책이라 하더라도 ‘쉽게 사서 쉽게 버릴’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책을 사는 마음은, ‘나한테 돈과 시간이 많아서 사는 마음’이 아닙니다. 책을 사는 마음은, ‘내 사랑스러운 돈과 품과 겨를을 기쁘게 들여서 사랑으로 읽으려는 마음’입니다.


  느낌글 하나를 쓰면서 생각합니다. 사라진 책은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꿈꾸고, 사라지려는 책은 사라지지 않기를 꿈꿉니다. 모든 책이 골고루 사랑받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8.4.1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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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데기 줍는 마음



  큰아이가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하나 줍습니다. 큰아이 나름대로 예쁘다고 여긴 조개껍데기를 골라서 줍습니다. 큰아이가 한창 놀다가 작은아이한테 “보라야, 이 조개껍데기 예쁘지? 한번 봐 봐.” 하고 보여줍니다. 작은아이는 “어디? 어디?” 하면서 누나 손에 있던 조개껍데기를 덥석 쥐어서 제 손으로 옮기더니 누나한테 돌려주지 않습니다.


  큰아이한테 “괜찮아. 다른 조개껍데기 많으니까 새로 주우면 돼.” 하고 말한 다음, 천천히 모래밭을 맨발로 거닐면서 살핍니다. 마땅한 조개껍데기를 헤아려 봅니다. 아까 큰아이가 주운 조개껍데기보다 크고 단단한 새 조개껍데기가 눈에 뜨입니다. 잘 되었네.


  새 조개껍데기를 큰아이한테 줍니다. 큰아이는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이제 두 아이는 서로 사이좋게 놉니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 되어 작은아이가 누나한테 조개껍데기를 돌려주려 합니다. 이제서야 돌려주니? 큰아이는 “예쁜 조개껍데기 집에 가져가야지. 아버지, 집에 가져가도 돼요?” “응,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그런데 큰아이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아버지, 조개는 바다에 있었으니까 바다에 두고 갈래. 안 가져갈래.” 하고 말합니다. “그래? 그렇게 하겠니? 그러면 그렇게 해.” 조개껍데기를 도로 제자리에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마음은 어디에서 샘솟았을까요. 자전거를 몰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릅니다. 4348.3.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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