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32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소심한책방·손목서가·고스트북스·달팽이책방·유어마인드·동아서점

 2019.12.27.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소심한책방·손목서가·고스트북스·달팽이책방·유어마인드·동아서점 쓰고 펴냄, 2019)는 여섯 책집이 글을 한 자락씩 나누어서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여섯 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꾸리는 책살림에 맞추어 마을에서 노래하는 책빛을 풀어냅니다.


  여섯 책집이 길어올린 여섯 이야기는 바로 이 여섯 책집에서 만나는 조그마한 꾸러미입니다. 저는 여섯 책집 가운데 〈달팽이책방〉에서 내는 ‘달팽이신문’에 한손을 보태는 읽새(독자)이기에 ‘달팽이신문’을 받을 적에 책도 얹어서 보내 달라고 여쭈었습니다.


  자그마한 꾸러미는 여섯 빛깔 책노래를 조촐히 들려주는데, 여섯 빛깔 책집은 따로 낱책을 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뿐 아니라 모든 마을책집은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눈빛으로 다 다른 책빛을 마주하기 마련이니, 한 해치 이야기이든 다섯 해치 이야기이든 열 해치 이야기이든 주섬주섬 여미어 소담소담 엮어서 선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마을책집은 마을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리며 마을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쉼터이자 배움터이자 모임터이자 생각터이자 나눔터이자 숲터라고 느낍니다. 거의 서울에 몰린 출판사에서 내놓는 책도 한켠에서 다루되, 책집 스스로 짓는 이야기를 책집마다 스스로 조촐히 여미어서 선보인다면 훨씬 좋아요. 오로지 마을책집 목소리만 담아내는 새뜸(신문)이나 달책(잡지)이 있어도 좋겠지요.


  우리는 굳이 품이며 길삯을 들여 이웃 마을책집으로 찾아갑니다. 오늘날 새삼스레 책으로 마음을 나누는 이웃이기에 사뿐사뿐 반가이 찾아갑니다. 앞으로도 책으로 마음을 가꾸고픈 이웃이니 살몃살몃 바람을 타고 구름이랑 놀면서 신나게 찾아갑니다.


  자, 생각해 봐요. ‘교보문고 부산집’이나 ‘영풍문고 광주집’이나 ‘알라딘 전주집’을 찾아가면 재미있나요? 그저 시끌벅적 어수선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어떤 책을 어떤 이야기로 마주할 적에 즐거우며 사랑스러운가 하는 이야기를 한 줌조차 못 누리지 않나요? 마을 한켠에 책집이 있기에, 이 책집 한 곳으로 마을빛이 새롭습니다. 책 하나를 씨앗으로 삼아 마을을 새롭게 짓는 바탕인 책밭이자 책숲인 책집입니다.


ㅅㄴㄹ


“거기서 뭘 파우과?” “책이요, 시나 소설 같은, 책을 팔아요.” “그럼 장자, 맹자도 있수과?” “아니요. 그런 책은 없어요.” “논어나 주역 같은 책을 팔아야 진짜 서점이지.” (25쪽)


어린이책을 많이 읽어 보고 싶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어린이책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57쪽)


나는 내가 보낼 시간을 책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63쪽)


대형서점들은 베스트셀러와 신간을 가장 먼저 눈에 띄게 배치한다. 인터넷서점과 오프라인 대형서점은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라인업을 갖춘 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팔기로 결정한 책과 그들의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선전하기로 결정한 책이 아니면 총판이 공급조차 거부하는 시스템이라니. (68쪽)


울진에서 온 아이들에게 포항은 대도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공이란 얼마나 상대적인 일인가. 나는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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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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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54


《책에 바침》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글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쌤앤파커스

 2020.2.10.



  《책에 바침》(부르크하르트 슈피넨 글·리네 호벤 그림/김인순 옮김, 쌤앤파커스, 2020)을 읽으며, 이 책은 책이라는 길을 기리는 꾸러미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글님 나름대로 여러 자리 여러 책을 짚어 나가는데, ‘짚는구나’ 싶을 뿐, 책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펴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구나 싶거든요.


  책을 몇 자락 놓은 길손집(게스트하우스)이 제법 있습니다. 길손집에 묵으며 ‘길손집 책시렁’을 둘러볼 적에 ‘나를 사로잡을 만한 책’을 만나기란 참 힘들었습니다. 글님도 이렇게 느끼네 싶어 새삼스러운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웃나라에서도 ‘길손집 책시렁’은 엇비슷하네 싶군요. 길손집이란 곳은 느긋이 오래 지내도록 이끌기보다는 살짝 머물다 떠나도록 하는 곳이기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따분하거나 얼른 손을 뗄 만한 책을 두는 마음일까요.


  《책에 바침》 첫머리는 1900년으로 접어들 무렵까지 말하고 수레를 널리 쓰던 터전을 대놓고 나무라고 비웃습니다. 요즈음 씽씽이하고 찻길하고 갖가지 살림을 기리거나 높이는데, 1900년 무렵 사람들이 바보스럽고 어리석다고 핀잔하는 이야기에 섬찟합니다.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저마다 다르게 가꾸는 삶길이요 삶터입니다. 지난날 사람들이 부리던 말이 곳곳에 똥을 누더라도, 이 말똥은 말려서 땔감으로 삼습니다. 말똥은 안 더럽습니다. 씽씽이가 내뿜는 매캐한 방귀야말로 더럽지 않나요?


  더 높은 책도, 더 낮은 책도, 더 좋은 책도, 더 나쁜 책도 없겠지요. 때랑 곳에 따라 바라거나 찾는 책이 있을 뿐이겠지요. 다만, 이름값에 매인 책이 있고, 장삿속에 빠져든 책이 있고, 벼슬자리를 노리는 책이 있고, 나라에 빌붙어 떡고물을 바라는 책이 있습니다. 눈속임이나 거짓말로 뒤덮는다든지, 이웃한테서 훔친 이야기를 슬쩍 끼워넣은 책이 있습니다.


  《책에 바침》은 ‘덩이가 된 꾸러미’인 책은 여러모로 짚으려 하면서, 정작 ‘종이꾸러미가 된 나무하고 숲’은 거의 못 짚거나 안 짚습니다. 숲이 없이 책이 태어날 길이란 없고, 책이라는 이야기꾸러미를 읽으면서 삶과 넋을 살찌우는 사람이 나아갈 길이란 슬기롭게 살림을 사랑하는 생각길일 텐데, 책 곁에서 숲을 헤아리지 못하는 대목도 허전합니다.


  나무가 자라고 우거지고 풀밭이 퍼지고 들짐승이며 새가 노닐기에, 이 별은 푸르게 빛나면서 사람은 이 곁에서 숨을 쉽니다. 우람하게 퍼진 숲이 있기에, 사람은 나무 몇 그루를 얻어 집을 짓고 세간을 짜고 종이를 얻어 글을 쓰고 책을 묶습니다. 나무하고 숲을 새삼스레 헤아리면서 사랑하는 착하고 참한 마음빛을 가꾸는 길동무가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을 놓친다면 “책에 바침”이라는 말은 쳇바퀴에 갇힌 말잔치(이론·탁상공론)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1900년경의 사람들이 말에게 품었던 신뢰와 믿음에 대해 비죽이 웃게 된다. 그 신뢰와 믿음이 옳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17쪽)


나는 그 책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던가! 그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엄숙한 예배를 드리는 것과도 같았다. (67쪽)


나는 한 번도 그런 게스트하우스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에 매료된 적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겸손함을 길러 준다. 그 책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보게 작가 양반, 하늘과 땅 사이에는 당신이 당신의 세계 속에서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이 있다네.” (100쪽)


제후들의 통치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개인적으로 소장했던 많은 책들이 공공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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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책방입니다
임후남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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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마을책집

인문책시렁 147


《시골책방입니다》

 임후남

 생각을 담는 집

 2020.5.6.



서울을 떠나고 보니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무엇보다 집값이 서울과 차이가 났다. 주택에 살아 보니 아파트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았다. (20쪽)


자유롭게, 자기만의 숨소리를 갖고 있는 이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을 통해 배운다. 특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틀 속에 자기를 가두지 않고, 자기의 모습을 갖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36쪽)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이 모든 걸 해주지는 않는다. (64쪽)


학교 앞뿐만 아니라 내가 살던 동네 버스 정거장 바로 앞에도 서점이 있었다. 그 서점 바로 옆에는 레코드 가게도 있었다. 서점이 그렇게 이곳저곳에 있는 것은 당연했다. (178∼179쪽)



  책을 노래하기에 책집이요, 책을 나누니 책가게입니다. 책을 펼쳐서 알리니 책터요, 책을 놓고서 이야기를 지피니 책쉼터입니다. 책은 글꾸러미나 그림꾸러미인데, 글이랑 그림으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야기는 줄거리를 짜서 풀어내지요. 줄거리를 담는 이야기는 모두 다른 터전에서 모두 다른 사람이 손수 지은 삶입니다.


  책을 노래한다면 삶을 노래한다는 뜻입니다. 책을 나눈다면 삶을 나눈다는 말입니다. 책집이란, 책이란 모습인 종이꾸러미를 사이에 놓고서 이야기를 지피는 터전이라고 할까요.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자리를 잡은 이야기를 담은 《시골책방입니다》(임후남, 생각을 담는 집, 2020)를 읽습니다. 풋풋한 줄거리가 흐릅니다. 갓 시골사람이 된 삶을 옮기거든요.


  시골에 오래 살아야 시골살림을 더 잘 말하지는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이웃을 마주하면서 헤아리니, ‘오래 산 사람’보다 ‘즐겁게 사랑하며 노래하는 사람’이 시골을 제대로 밝히거나 이야기하는구나 싶어요. 오래 살면서 즐겁게 사랑하고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으뜸꽃일 테고요.


  오늘은 풋풋하게 시골책집이라면, 앞으로 열 해 뒤에는 어떠한 풀내 꽃내 나무내 숲내로 감싸는 시골책터로 이어갈까요? 서울 같은 큰고장을 밝히는 마을책집도, 고즈넉한 시골 한켠을 품는 마을책집도, 하나둘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책을 사이에 놓고서 노래하는 길을 열면 좋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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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생존 탐구 - 출판평론가 한미화의 동네책방 어제오늘 관찰기+지속가능 염원기
한미화 지음 / 혜화1117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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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49



《동네책방 생존 탐구》

 한미화

 혜화1117

 2020.8.5.



생각해 보면 나의 읽기는 동네책방과 더불어 자랐다. 소도시 변두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내가 처음 만난 서점은 버스정류장 근처 고갯마루에 있던 작은 책방이다. (4쪽)


동네책방이 필요한 독자는 대략 두 가지 유형으로 거칠게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독자다. 이들은 험한 파도를 헤치고 등대를 정박하는 배처럼 동네책방으로 모여든다 … 또 언젠가부터 책과 냉담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비독자로 살았던 이들이 있다. 가끔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책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33쪽)


하지만 최윤복 대표가 꾸린 〈완벽한 날들〉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속초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완벽한 날들〉에 짐을 풀고 조용히 책을 읽고, 골목길을 산책한다. 호수에서 부는 바람을 느끼고, 쨍한 바닷가의 하늘을 보며 고요히 하루를 누린다. (75쪽)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이름하고 얽힌 생각이나 마음이 같이 흐릅니다. ‘오래되었구나’하고 ‘깊다’하고 ‘낡다’하고 ‘구식’은 서로 나타내려는 생각이며 마음이 다릅니다. ‘시골’하고 ‘촌’도, ‘마을’하고 ‘동(洞)’도 다르지요. 예부터 우리가 살던 터전은 ‘마을·고을·말·골’이었으나, 총칼을 앞세운 이웃나라가 쳐들어오면서 ‘동(洞)’이란 이름을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총칼나라에서 풀려낸 뒤로 ‘사직동·도화동’을 적어도 ‘사직마을·도화마을’로 고치지 못했고, 더 나아가 ‘복사마을(←도화동)’이나 ‘밤골(←율목동)’처럼 돌려놓지 못했어요.


  이제는 좀 달라질 수 있을까요? 마을이웃을 생각하고, 마을배움터를 헤아리며, 마을길을 살피고, 마을사람으로 즐겁게 어울리고, 마을가게를 가꾸고, 마을책집을 노래하는 길에 설 수 있을까요? 《동네책방 생존 탐구》(한미화, 혜화1117, 2020)를 읽는 내내 아쉬웠습니다. 이 책에 깃든 글은 진작에 ‘아침독서신문’으로 읽기도 했습니다만, ‘책집으로 나서는 길’이 아닌 ‘책집이 살아남을 길’을 바라보려는 이름을 붙이면,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 매이기 마련입니다.


  먹고사는 길도 대수롭겠지요. 그런데 먹고살기(경제성장)에 매달리는 나라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요? 먹고산 다음에 삶과 살림과 사랑을 생각하자면, 그때에는 참으로 늦지 않을까요? 덜 먹더라도 조금조금 나누는 길을 가면 즐겁지 않을까요? 덜 먹지만 서로 나누면서 얼크러지는 마을길을 가면 아름답지 않을까요?


  도서정가제란 이름이지만, 좀 뜬구름 같아요. 왜냐하면, 책마을을 오래 쳐다본 사람이라면 이 이름에 서린 뜻을 알 테지만, 책마을을 굳이 안 들여다본다든지, 가끔 책을 사다 읽는 사람한테는 참 낯설고 어려운 이름인 ‘도서정가제’입니다. ‘공급율’도 쉬운 이름이 아닙니다. 생각해 봐요. 마을가게가 살면서 마을살림을 북돋우려면, 마을에 덤터기를 씌워서는 안 되겠지요. 마을이 무너지면 어찌 될까요? 이때에는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종살이를 하거나, 돈·이름·힘을 혼자 차지한 큰일터(대기업)가 휘두르는 대로 얌전히 종살림을 하기 마련입니다.


  책이야기(출판평론)를 펴는 분으로서 《동네책방 생존 탐구》 같은 책을 썼기에 반갑습니다만, 스스로 붓꾼(지식인) 아닌 마을사람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눈썰미였다면 사뭇 다르게 이야기를 폈으리라 느낍니다. 마을책집을 가꾸는 일꾼은 먼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이웃입니다. 동무입니다. 사뿐히 찾아가서 책을 만나도록 이끄는 이웃이자 동무인 책집지기입니다.


  우리는 먹고살 뜻으로만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쓰지 않으며, 책을 사고팔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을 아름답게 즐기는 사랑어린 살림을 하려고 책을 읽고 쓰고 사고판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이 대목이 퍽 얕아서 아쉬워요. 알맞게 벌고, 알맞게 나누어, 알맞게 하루를 즐기려는 마음이기에 나라 곳곳에서 마을책집을 여는 듬직하고 의젓한 이웃님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먹고사는 걱정은 치워 주셔요. 같이 나누면서 함께 노래하는 책을 손에 쥐어요. 그렇게 하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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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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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636


읽는 직업》

 이은혜

 마음산책

 2020.9.25.



글을 쓰는 동안 여명을 자주 봤다.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려고 동트기 전 집을 나설 때면 늘 어스름한 하늘 아래서 집 앞에 놓인 파란 쓰레기봉투를 치워주던 키 큰 청년과 마주쳤다. (10쪽)


하지만 출판 시장의 상황에 따라, 혹은 자기 욕망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관계가 삐걱거릴 계기는 도처에 널려 있다. 노년에 이른 작가의 문제의식이 치밀해질수록 글은 더 빽빽해지기 마련이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청년과 중년의 독자들을 모두 뒷걸음질치게 만든다. 청년은 아직 그와 공유할 만한 세계가 별로 없는 반면 중년에 이른 독자들은 그나마 그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정치적·역사적 이슈에서 양자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져갔다. (22쪽)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면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오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2쪽)



책이름부터 누가 썼는지 알 만한 《읽는 직업》(이은혜, 마음산책, 2020)을 읽었다. 나는 ‘쓰는 일’을 하지만, ‘쓰는 일’을 하자면 ‘읽는 일’을 무섭도록 해야 한다. 읽지 않고서는 쓰지 못한다. 거꾸로, ‘읽는 일’을 하자면 어찌해야 할까? 아주 쉽다. ‘읽는 일’을 하자면 ‘쓰는 일’을 해야 한다. 《읽는 직업》을 쓴 분은 이 책을 쓰기 앞서까지 ‘쓰는 일’을 얼마나 해봤을까? ‘했을까’가 아닌 ‘해봤을까’이다. ‘읽는 일’이란 거의 일터에 나가서 하지만, ‘쓰는 일’은 여러 갈래인데, 집에서 하거나 길에서 한다. 숲에서 하거나 서울에서 한다. 자다가도 하거나 아기를 돌보면서 한다. 똥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씻기다가 하며, 밥을 지어 차려놓고서 후다닥 쓰기도 한다.


아무래도 ‘읽는 일’만 하는 사람은 ‘쓰는 일’을 아예 모른다고도 할 만하다. ‘쓰는 일’을 하자면 아이들 자장노래를 몇 시간을 부르고 토닥이느라 손에 붓을 못 쥔다. ‘쓰는 일’을 하자면 마감이 닥친 글이 있어도 아이들을 달림이(자전거)에 태워 바람을 쏘이고 같이 놀아야 한다. ‘쓰는 일’을 하자면 나무를 타고 열매도 따고, 밭자락을 돌보며 나물을 훑고, 설거지에 비질에 하루가 더없이 길다. 그러나 ‘쓰는 일’을 하기에 구름빛하고 별빛을 고루 누린다. ‘쓰는 일’을 하기에 구태여 서울에 안 살고 시골에 고즈넉히 깃들 만하다. ‘쓰는 일’을 하기에 하루 내내 밥을 안 먹고서 오롯이 마음을 불태워 새 이야기를 짓곤 한다.


새삼스럽지만 “노년에 이른 작가”는 나이만 먹지 않는다. 두 갈래이다. 한켠은 나이·이름·돈·힘을 먹으면서 고리타분하다면, 다른켠은 살림·사랑·삶·슬기를 먹으면서 짙푸르면서 새롭다. 젊은이라 해서 안 슬기롭지 않고, 젊다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다. ‘읽는 일’만으로는 이 길을 헤아리지 못하니, 적잖은 출판사 엮음이는 ‘속글 아닌 겉글’을 훑다고 그치곤 한다.


이래저래 ‘쓰는 일’을 모르기에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야 만다. 참(팩트체커)을 말하는 사람이 왜 차가울까? 참을 찾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차갑지 않은가? 참을 말하는 사람은 ‘거짓을 참으로 여기는 사람’을 가르칠 마음이 없다. 그저 스스로 참을 알고 참답게 살아가고 싶기에 참을 찾을 뿐이요, 애써 찾아낸 참을 혼자만 알 까닭이 없다고 여겨 누구나 알도록 열어 놓는다.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삶길에서 찾아낸 참빛을 그저 스스로 누리다가 혼자만 건사할 뜻이 없기에 누구라도 읽도록 풀어낸다. 그리고 풀꽃나무를 읽고, 구름별을 읽으며, 눈비바람을 읽는다. 《읽는 직업》을 쓴 분은 엮음이로 열다섯 해를 살았다는데, 이 책을 쓴 이해가 ‘참다운 엮음이로 첫발을’ 디딘 셈이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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