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 - 다른 세대, 공감과 소통의 책·책·책
옥영경.류옥하다 지음 / 한울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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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30.

인문책시렁 275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

 옥영경·류옥하다

 한울림

 2022.12.30.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옥영경·류옥하다, 한울림, 2022)는 어머니하고 아들이 함께 여민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밝히는 책을 차근차근 읽고서, 이 책으로 온누리를 새삼스레 헤아리며 나아갈 길을 풀어내는 얼거리입니다. 두 분은 충북 영동이라는 삶터에서 하루를 봅니다. 시골사람으로서 시골빛을 품고서 온누리를 헤아려요.


  시골·서울 두 낱말은 사람이 이룬 삶터를 저마다 달리 나타냅니다. 오늘날은 시골·서울이란 말꼴로 굳었는데 옛말로 스가발·서라벌이란 말꼴이 있고, ‘골’은 ‘고을’을 줄인 낱말이면서 “멧자락에서 깊이 패여 샘물이 싱그러이 흐르는 곳”도 ‘골’이요, “불타듯 일어나는 부아처럼 일어나는 기운”도 ‘골’이고, ‘골백번’이라 할 적에 붙이는 ‘10000’이나 ‘숱하다’를 가리키는 우리말인 ‘골’이 있고, 움푹 들어간 자리를 ‘골’이라 하며, 무엇을 이루려도 짠 틀을 ‘골’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시-’라는 앞말은 ‘심·심다·씨’를 나타내고, ‘심·씨’는 ‘싱그러움·싱싱함(맑음)’을 가리킵니다. ‘서울·서라벌·새벌’이 모두 같은 말이자 땅이름이고, “새롭게 지은 너른터”라는 뜻이면서 ‘서·서다·세우다’하고 ‘새·새롭다·사이’라는 앞말에, ‘벌·벌판’이나 ‘울·울타리·우리·아우름’이라는 뒷말인 얼개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시골 = 심는 곳 + 싱그런 기운이 숱하게 일어나는 고갱이(알맹이)를 이루는 곳”인 얼개요, “서울 = 새로 선 곳 + 시골 사이에서 높이 올려 밝게 아우르면서 함께하는 곳”인 얼개입니다. 말밑하고 말뜻을 돌아본다면 “시골 = 스스로 살림을 짓도록 힘(심)을 들여 기운(빛)을 얻고 나누려고 풀꽃나무하고 숲을 품는 보금자리”라면, “서울 = 새롭게 일으키는 힘(심)을 하나로 함께 모으려고 사람들이 북적이도록 맺은 일터”라고 하겠습니다.


  시골은 숲빛으로 피어나는 삶자리이고, 서울은 일빛으로 북적이는 삶터예요. ‘자리 = 자위 = 가꾸는 땅’을 가리키고, ‘터 = 텃 = 가꾸는 땅’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시골은 잊히거나 내버리거나 등돌리는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시골일을 맨손으로 노래하면서 누리는 사람은 가뭇없이 사라져 한 줌도 안 남았습니다. 다들 ‘기름틀(기계)’을 부려요. 소똥구리가 없고 들노래가 사라진 시골이에요. 어깨동무하듯 뭉치며 일빛을 세우기에 새로 밝은 서울이어야 어울리는데, 이제 우리네 서울·큰고장은 그저 잿더미(아파트)를 끝없이 세우고 쇳덩이(자동차)가 끝없이 매캐하면서 돈벼락에 휩쓸리는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두 시골내기가 여민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에서 밝히는 ‘자유·불편’을 우리말로 옮기면 ‘나다움·거북함’입니다. 내가 나답게 날갯짓을 하는 길을 한자말로 ‘자유’라 합니다. 내가 나답게 날갯짓을 하지 못 하도록 억눌린 굴레를 한자말로 ‘불편’이라 합니다. 시골다운 시골이 사라지고, 서울은 서울답지 못 한 오늘날 이 나라를 바라보는 마음은 즐겁지 않을 만합니다. 그래서 시골내기나 서울내기 모두 ‘딱딱하고 골때리는 어려운 책’보다는 ‘부드럽고 푸르며 싱그러운 책’을 곁에 둔다면 사뭇 다르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슬픈 미나마타》라든지 《회색곰 왑의 삶》이라든지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든지 《모래 군의 열두 달》이라든지 《나무처럼 산처럼》이라든지 《영리한 공주》라든지 《펠레의 새 옷》이라든지 《미스 럼피우스》라든지 《작은 새가 좋아요》라든지 《작은 새가 온 날》 같은 책을 곁에 둔다면, 새길(대안)이 아닌 꽃길(평화)을 이야기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한 구석에》나 《맨발의 겐》이나 《천상의 현》이나 《80세 마리코》나 《블랙 잭》이나 《불새》나 《토성 맨션》이나 《미요리의 숲》이나 《은빛 숟가락》 같은 만화책을 곁에 둔다면, 생각도 꿈도 마음도 새삼스레 다독여 사랑빛으로 물들일 길을 스스로 밝히며 걸어갈 만하리라 봅니다. ‘인문사회과학책’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직 숱한 인문사회과학책은 ‘똑똑책’에 머물 뿐, 풀내음이나 숲내음이나 흙내음이나 비내음하고는 등진 터전에서 맴돌지 싶어요. 쉽고 부드러운 말씨로 어린이하고 소꿉살림을 짓는 사람이어야 어른이듯, 우리말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가부터 맨손으로 읽어내 보면, 모든 길은 스스로 찾고 열면서 가꿀 만합니다.


ㅅㄴㄹ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살아남으라고 했다. 나는 고쳐 말하기로 한다. 살아 있자! 같이, 함께 살아 있자. 나도 뭔가 해 볼게. 너도 내 뒤에 있어 주기를! 좋은 세상은 그렇게 온다. (52쪽)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가면 된다고? 어디가 안전한 곳인가? (83쪽)


한순간의 혁명이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두 힘이 경쟁하면서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117쪽)


아이들은 옷이 자기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자기 존재가 거기 있는 줄 안다. 그건 마치 더이에 사느냐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는 아파트 광고처럼, ……. (178쪽)


그러나 우리 너무 열심히 산다. 꽃 피고 새 울고 날 좋다. 삶에도 바람구멍 있어야지. 오늘은 구들더께 되어 주전부리 물고 뒹굴고 … 그리고 책 좀 볼까? (19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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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
화수분제작소 지음 / 화수분제작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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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7.

인문책시렁 268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

 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5.10.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쓴 분들은 아직 책집마실을 즐기지 않는구나 싶더군요. 아직 책집이 어떤 터전인가를 읽는 눈이 아니로구나 싶고요. 책집마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책집이 사라질 걱정’을 안 합니다. 그냥 책집으로 책마실을 갑니다. 책집마실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책집이 사라질 걱정’을 합니다.


  책집이 어떤 터전인가를 읽는 눈이라면, 책집마실을 할 적에 ‘아무 책이나 고르지 않’습니다. 책집이 마을에서 빛나는 길에 이바지할 책이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책을 고르고 장만할 줄 알기에 비로소 ‘책손’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책손’조차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래저래 잘 알려지거나 널리 팔리는 책을 ‘사들이는(소비하는)’ 사람은 ‘책손’이 아닌 ‘소비자’입니다.


  책집을 꾸리는 사람이 ‘책집지기’라는 이름을 스스로 쓰려면, ‘소비자한테 소비상품을 건네는 몫’을 넘어야겠지요. 책집지기는 늘 ‘팔리는 책을 팔아야 하느냐, 팔아야 할 책을 알려야 하느냐’를 놓고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책집지기라는 길이 ‘나라가 시키는 대로 졸졸 따라가는 허수아비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널리 알려진 책을 자랑하듯 잘 보이는 자리에 쌓아두는 짓을 안 합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 책시렁’을 놓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을 붙이려 한다면, 아직 ‘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집지기나 책손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려면, ‘읽고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바지하는 책’을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훌륭한 책이나 아름다운 책이나 놀라운 책이나 멋진 책’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읽으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스스로 배우면서, 오늘 하루를 사랑으로 살아낼 살림을 짓는 마음을 가꾸도록 북돋우는 책’을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삶을 노래하도록 북돋우는 책은 만화책일 수 있고 그림책일 수 있습니다. 사진책일 수 있고 노래책(시집)일 수 있습니다. 이름난 책일 수 있고, 묻혀버린 책일 수 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사읽는 책이 아닌, 우리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사읽을 책입니다. ‘눈치’란 무엇일까요? ‘이런 책을 읽어야 훌륭하다’는 눈치라든지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던데’ 같은 눈치가 있습니다. ‘세계명작이나 고전’이라는 눈치가 있고, ‘한국 작가를 읽어야 한다’는 눈치가 있어요.


  책집을 말하는 책을 쓰고 싶다면, ‘적어도 열 해에 걸쳐서 책집마실을 꾸준히 다니되, 적어도 이레마다 책집마실을 하루쯤 꼭 하면서, 적어도 이레에 두어 자락쯤 책을 읽는 나날’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제가 책집마실을 다니면서 책을 배울 적에 ‘책손’이라는 이름을 받고 싶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하고 알려준 ‘책어른’이 나라 곳곳에 꽤 있었습니다. 책어른이 알려주신 바로는, “‘책을 좀 본다’고 말하고 싶다면, ‘책집 손님’이라는 이름을 듣고 싶다면, 책집 한 곳을 스무 해는 다니고, 그 책집 한 곳에서만 사읽은 책이 3000 자락을 넘어야 하지 않을까?”입니다.


  우리 곁에 책집은 한 곳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손’이려면, 여러 책집을 두루 누릴 줄 아는 다리품을 팔 줄 알아야겠지요. 그리고 ‘숱한 책’을 두루 넓게 깊게 헤아리면서 ‘추천도서 목록이 아예 없는’ 책살림을 지을 줄 알아야 할 테고요.


ㅅㄴㄹ


‘책값은 결코 비싸지 않습니다.’ 캠페인이라도 하고 싶다. 필요한 일이다. (30쪽/산책)


재미있는 건, 헌책방의 기억이 있는 50∼60대 동네 분들은 꼭 책을 사간다는 것이다. (36쪽/산책)


전에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어느 동네에 갔는데 쉴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들어가서 다리도 풀면서 차 한 잔 마실 곳이 없는 것이다. 결국 무더운 날씨에도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주안동은 그런 동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이 동네 정말 재미있다. 또 오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75쪽/딴뚬꽌뚬)


어떻게 보면 역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들을 팔고 싶은데,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은 안 팔리는 책이기도 하다. 안 팔리는 책을 사다가 판다는 건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 책방에 자기계발서나 베스트셀러만 갖다 놓을 수는 없다. (85쪽/딴뚬꽌뚬)


같은 책을 동네책방에서 정가를 내고 살 때는 본인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후생을 그만큼 포기하는 거다. 따라서 그만한 반대급부를 동네책방에서 제공해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많은 동네책방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116쪽/사각공간)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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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들 - 내 나라를 떠나 사는 것의 새로움과 외로움에 대하여 들시리즈 5
이보현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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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9.18.


책집지기를 읽다

16 김포 〈책방 노랑〉과 《해외생활들》



  책은 따스히 손길을 받을 적에 새롭게 두근거리며 피어오르는 작은나무이지 싶어요. 아직 따스히 손길을 받지 못 한 책은 얌전히 기다리면서 꿈을 그립니다. “누가 나를 바라볼까? 누가 나를 알아볼까? 누가 나한테 다가올까? 누가 나한테 손길을 내밀까?”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으로 나무를 베어,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으로 살아낸 하루를,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으로 옮긴 글·그림·빛꽃(사진)을 얹어서 태어나는 책입니다. 떡갈나무라는 이름이더라도 숲에서 모든 떡갈나무는 다릅니다. 쑥이라는 이름이더라도 들에서 모든 쑥은 달라요. 넌지시 바라보다가 가만히 알아보려고 할 적에 비로소 다 다른 줄 느끼고, 다 다른 풀꽃나무 기운이 스민 책에서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가를 읽어낼 만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김포는 들(평야)이 드넓은 곳입니다. 이제 김포는 들빛으로 반짝이는 시골이 아닌, 높다랗게 솟은 잿빛집(아파트)이 빼곡한 고장입니다. 사람들은 들을 밀어 잿빛집을 올린 곳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집앓이(주거난)를 풀려면 얼른 잿빛으로 뚝딱뚝딱 올리고, 새까맣게 부릉길을 닦아서 매캐한 김이 뒤덮도록 해야 한다고 여겨요.


  푸른별은 동그란 터전입니다.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놓은 쓰레기는 바람이나 물결을 타고 이웃나라로 가요. 이웃나라에서 내놓은 잿더미는 물결이나 바람을 따라 우리나라로 오고요.


  총칼을 만들면 푸른별 모든 나라가 시달립니다. 사랑으로 짝을 맺어 기쁘게 아이를 낳는 수수한 사람이 하나둘 깨어나면 푸른별이 빛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길일까요?


  김포에 마을책집이 여럿 있습니다. 이 가운데 〈책방 노랑〉은 이웃나라에서 삶길을 헤아리면서 천천히 걸어온 길을 노랗게 물들이는 책밭으로 가꿉니다. 《해외생활들》은 푸른별살이를 아우르는 하루를 들려줍니다. 굳이 ‘우리나라’란 울타리에서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아닌 ‘보금자리’를 생각하면서 살림을 그릴 적에 모든 울타리를 걷어낼 만하다고 봅니다.


  울타리를 쌓기에 이쪽하고 저쪽을 갈라서 싸웁니다. 사람들은 총칼로만 싸우지 않아요. 주먹힘으로도, 돈으로도, 이름값으로도 싸웁니다. 입으로는 누구나 다르다고 읊으나, 막상 “이쪽만 옳다. 저쪽은 그르다.” 하고 갈라치기를 합니다. 숲에서 이 나무만 옳고 저 나무는 그를 수 없습니다. 들에서 이 풀꽃만 곱고 저 풀꽃은 미울 수 없습니다.


  다만, 돈·힘·이름을 거머쥐려는 속내를 감춘 책이 있다면, 이런 허울책은 좀 걷어내야겠지요. 어설피 잔재주를 부리며 돈·힘·이름을 얻으려는 책을 느꼈으면, 이런 거짓책은 살며시 털어낼 노릇이고요.


  숲에서 깨어난 책이라면 다 아름답습니다. 숲을 잊은 책이라면 다 시커멓습니다. 숲을 노래하는 책이라면 다 즐겁습니다. 숲을 밟는 책이라면 다 사납습니다.

  어느 풀꽃나무도 ‘민주·자유·평화·평등’을 안 말합니다. 그저 푸르게 일렁입니다. 사람이 짓는 글·그림·빛꽃은 무엇을 그리나요, 또는 무슨 목소리를 높이나요?


  책다운 책이란, 숲다운 숲빛을 품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란, 숲으로 수수하게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사랑으로 그려서 짓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마을 어느 터전에서든,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두 눈으로 마주하면서 온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삶·살림을 슬기로이 돌보는 사람으로 서리라 생각합니다.



《해외생활들》(이보현 글, 꿈꾸는인생, 2022.7.8.)



인종차별이 분명 존재하는 곳이었지만, 단 몇에 의한 차별일 뿐이었다. 언제나 독일인과 동등한 기준에서 평가되었고, 기화가 주어졌다. (40쪽)


내 발음을 처음 들어도 한 번에 알아듣는 이가 있다. 처음에는 나의 독일어를 탓한 적도 있었지만, 인사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을 만나며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43쪽)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우산을 쓰고 이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비가 가볍게 자주 내리는 독일에서는 사람들이 우산을 필수로 들고 다니기보다 비가 오면 그냥 맞는다. (97쪽)


동기가 알려준 노란 책은 2유로(한화로 2600원), 비싸면 5유로(6500)에 구입할 수 있었다. 보통 15∼20유로(16200∼26000원)인 책을 바구니에 담을 때와 달리 내 손도 신이 났다. (1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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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있습니다 - 대책 없이 부족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치열한 책방 미스터버티고 생존 분투기
신현훈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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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숲노래 책읽기 2022.8.23.


책집지기를 읽다

15 일산 〈미스터 버티고〉와 《버티고 있습니다》



  김영하 씨가 모처럼 글꽃(소설)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이녁이 쓰는 글이나 책은 쳐다볼 마음이 없습니다. 김영하 씨는 지난 2019년에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이제 서재로 가요. ‘밀리의 서재’. 어떡하죠? 지금 가는 서점에 이 책은 없을 텐데.” 하는 철없는 말을 읊으며 ‘밀리의 서재’에서 얼굴을 파는 장사치 노릇을 해오는데, 이때에도 그 뒤로도 뉘우치는 빛이나 말이나 글을 보인 적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요, 김영하 씨가 어느 누리책집에서 얼굴팔이를 하면서 읊은 “책을 사러 찾아가는 마을책집에 책이 없을 수 있”어요. 그런데 있잖습니까, 마을책집에 우리가 바라는 책이 없대서 뭐가 어떤데요? 모든 책이 다 있는 책집은 없습니다. 누리책집조차 없는 책이 수두룩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마저 없는 책이 아주 많아요. 이뿐인가요? 그럭저럭 책을 꽤 갖추었다는 국립중앙도서관이라지만, 정작 ‘찾기 어려운 책’을 손으로 만진다거나 빌려서 읽을 수 없기 일쑤요, 이곳 누리집으로 들어가서도 훑어볼 길이 없곤 합니다.


  책집에는 책만 사러 가지 않습니다. 마을책집에 가는 뜻은 ‘책만 사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집에는 ‘책’이 있을 뿐 아니라, ‘책을 다루는 마음’이 있고, ‘책으로 만나는 생각’이 있으며, ‘책을 사이에 놓고 마을살림을 새롭게 가꾸려는 꿈’이 있을 뿐 아니라, ‘어느 책을 아이들(뒷사람)한테 고이 물려주면서 오늘 지은 슬기로운 빛을 씨앗으로 남길 만할까’ 하고 돌아보는 넋이 있습니다.


  엉큼질(성추문)으로 글밭에서 거의 쫓겨난 고은 씨인데, 김영하 씨는 ‘책도 책집도 글도 글읽기도 얕보고 깔아뭉개는 막말을 일삼고서 뉘우치는 빛이 없는 이 몸짓’으로 글밭에서 쫓아낼 노릇 아닐까요? 우리는 김영하 씨 같은 이들이 앞뒤 다르게 장삿속으로 글팔이를 하는 민낯을 찬찬히 읽으면서, 우리 마음빛을 가꿀 글길을 가꿀 노릇이 아닐까요?


  경기 일산(고양시)에서 마을책집을 ‘버티는’ 살림살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버티고 있습니다》(신현훈, 책과이음, 2022.3.18.)를 읽었습니다. ‘버티다’는 ‘견디다’나 ‘참다’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입니다. ‘뻗다’하고 맞물리고 ‘벗’하고 얽히기도 하는 ‘버티다’예요.


  어느 곳에 마을책집 〈미스터 버티고〉가 있더라도, 이 책집으로 마을이웃하고 나누는 마음은 한결같이 흐르고 어우러지고 새롭게 자라리라 느낍니다. 버티고 또 버티다가 글벗이며 책벗이며 마을벗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밭을 일구는 하루를 천천히 느긋이 지으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은 껍데기로 읽지 않습니다. 책은 글이나 그림이나 빛꽃(사진)이라는 무늬로 옮긴 숨결로 읽습니다. 마을책집뿐 아니라 큰책집에도 모든 책을 건사할 까닭이 없습니다. 부스러기는 치울 적에 아름다워요. 김영하 씨 같은 글바치 책은 오직 ‘밀리의 서재’에서만 다루고, 어느 마을책집에서도 안 마주칠 수 있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ㅅㄴㄹ


지난해부터 고양시에서는 초중고 학생들한테 1만 5000원짜리 쿠폰을 무료로 나눠 주면서 동네책방에서 참고서와 만화책을 제외한 책을 사게 하고, 그 비용을 대신 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나름 호응도 좋다. (51쪽)


예전에는 서점에 책상은 물론이고 의자도 없어서 바닥에 앉아 읽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76쪽)


소설가 김영하는 어느 방송에 나와 “책은 산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사둔 책 중에 골라 읽는 것이다”라는, 전국의 책방 주인이 들으면 환호할 말을 했다. (79쪽)


오후 세 시까지 책을 보며 목 빠지게 첫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다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까치 한 마리가 마치 주문이라도 하려는 듯 카운터 앞에 앉아 고개를 까닥이는 모습에 헛웃음을 지은 적도 있다. (13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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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 미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도구들
이소영 지음 / 모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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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책숲마실 2022.7.28.


책집지기를 읽다

14 수원 〈마그앤그래〉와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빨리 걸을 수 있어야 낫거나 휼륭하지 않습니다. 많이 먹을 수 있어야 좋거나 뛰어나지 않습니다. 글을 잘 쓸 수 있거나 멋지게 쓸 수 있어야 대단하거나 빛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걸으면 됩니다.


  빠른걸음에 맞출 일이 없고, 느린걸음에 따라야 하지 않아요.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안 먹든, 누구나 스스로 누릴 만큼 노래할 적에 아늑해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살아가는 하루를 우리 손끝을 거쳐서 글로 옮깁니다. 남들이 쓰는 글을 배우거나 흉내내거나 훔칠 일이 없어요. 이름난 글지기한테서 글쓰기를 배울 까닭조차 없습니다.


  어린이는 누구한테서 글쓰기를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쓰고 싶을 적에 글을 씁니다. 어린이한테 남들이 놀이나 소꿉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 스스로 놀고 싶기에 놀아요. 어린이 스스로 짓기에 소꿉입니다.


  수원에서 마을책집 〈마그앤그래〉를 꾸리는 지기님은 틈틈이 책을 선보입니다.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는 그림지기(화가)가 곁에 어떤 그림감을 놓고서 그림빛을 밝혔는가 하는 삶자취를 차근차근 짚는 줄거리입니다.


  어떤 그림지기는 널리 이름이 남고, 어떤 그림지기는 알아주는 사람이 적습니다. 어떤 그림지기는 그림숲(미술관)에 그림이 걸리고, 어떤 그림지기는 그림숲에 그림이 걸린 적이 없습니다.


  이름난 그림지기라 해서 그림을 빨리 많이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들 제 삶결에 맞추어 그림을 빚고 펴고 나누고 남겼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를 헤아려 봐요.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어린이답게 어린이 숨결을 그림으로 옮기나요? 아니면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틀에 박힌 ‘작품’을 쏟아내는가요?


  푸른별 모든 어린이는 붓이 없이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마음껏 그림놀이를 합니다. 이따금 붓을 쥐면 종이뿐 아니라 담벼락이나 마룻바닥에도 그림소꿉을 지어요. 우리 집 어린이도 집 곳곳에 그림꽃을 피워 놓았습니다. 한창 마루에 담에 곳곳에 그림놀이를 하는 어린이 곁에 서서 묻습니다. “여기에 무엇을 그리나요?” “응, 우리 집이 예쁘라고 꽃을 그려. 아버지가 늘 사랑을 말하기에 ‘사랑’이라는 글씨를 써 봤어.” 큰아이는 어느 날 보꾹(천장)에 밤별잔치 그림을 척 붙였습니다. “우리는 집에 누워서 자도 밤하늘에 별이 뜬 줄 알잖아? 그런데 누운 자리에서 별그림을 보면 별을 더 잘 볼 수 있을 테니까.” 하고 덧붙여요.


  그림은 일본스런 한자말로 ‘회화·회화예술·회화작품’이나 ‘시각예술·이미지아트’일까요? 그림은 오롯이 ‘그림’일까요? 그림에 다른 이름을 굳이 붙여야 한다면 ‘그림꽃’이나 ‘그림씨·그림씨앗’이라고만 하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거는 곳은 ‘그림숲(미술관)’이라 하면 될 테고요.


  그림물감을 풀고, 그림붓을 쥐고서, 그림종이에, 그림꽃을 폅니다. 하나하나 일군 그림노래는 그림잔치를 펴도록 그림숲에 차곡차곡 그러모을 만합니다. 우리는 서로 그림동무요, 그림순이에 그림돌이입니다. 그림길을 걸을까요? 그림빛으로 반짝반짝 생각날개를 펴는 그림별이 되어 볼까요? 이 나라는 그림나라로 거듭나기를 바라요. 그림마을에 그림책집이 있고, 그림지기가 그림길잡이 노릇을 합니다.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이소영 글, 모요사, 2018.7.27.)


아이들에게 안전한 물감을 쥐어 주고 싶은 부모들도 인터넷으로 제작법을 배워 가며 템페라 물감의 명맥을 잇고 있다. (53쪽)


액자에 쏟아지는 관심은 높아졌지만, 연구하기는 쉽지 않다. 액자란 태생부터 작품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역할이므로 오랜 시간을 거치면 파손되고 마모되는 게 당연하다. (68쪽)


노팔 선인장에 붙어 사는 벌레들을 일일이 손으로 잡아야 한다. 1킬로그램의 코치닐을 얻는 데 10만 마리의 벌레가 필요하다고 하니 이 색을 얻는 일은 결코 수월치 않다. (101쪽)


과학자들은 크로뮴옐로가 녹색과 푸른빛에 특히 약해 LED 조명이 변색을 가속시킬 것으로 예측했다. (193쪽)


19세기에 새로 개발된 안료들도 화가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크로뮴과 카드뮴은 색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안료들이나 유독성 물질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화가들은 직업병을 앓았던 것이다.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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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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