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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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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2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까닭
― 서서비행
 금정연 글
 마티 펴냄,2012.8.17./13800원

 


  시골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달동네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꾼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정치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신문기자는 사건 현장과 사고 현장에 발빠르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문에는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아주 잘 실립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신문기자는 어느 작가 한 사람을 취재한다고 해서 ‘어느 작가 한 사람이 쓴 글과 책을 두루 읽’지 않아요. 무턱대고 찾아가서 무턱대고 물어 봅니다. 곧, 오늘날 신문에는 ‘어느 작가 한 사람 이야기’가 깊거나 넓거나 알차게 실리지 않습니다.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을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는다 하는 신문이라 하더라도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을 뿐입니다. 나는 잡지를 안 읽습니다. 잡지를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잡지에 글을 싣는 분들은 으레 교수이거나 학자이거나 지식인인데, 이들은 모두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분이 드물고,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사귀는 분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곧, 신문도 잡지도 시골마을 시골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요. 어쩌다 한두 번, 가뭄에 콩 나듯 귀퉁이에 조그맣게 다룰 뿐입니다.


  이제는 이야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불거지던 때, 정작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시골마을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시골사람이 어떻게 힘든가 하는 대목을 옳고 바르며 알차게 담은 신문은 없습니다. 4대강 삽질을 다룬대서, 이 4대강 삽질이 시골마을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시골사람을 얼마나 죽이는가를 깊고 넓으며 알맞게 다루는 잡지는 없어요. 왜냐하면, 4대강 언저리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글로 빚는 분이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 정작 출간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생명을 잃은 책이, 희소성으로 인해 뒤늦게 전설의 성배 취급을 받는 일이 이 동네에서는 왕왕 일어나곤 한다 … 하루키는 농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작품을 사 주는 것은 고맙지만, 프루스트 정도는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말하자면 K에게는 박노자의 입장에 대해 가타부타할 자신의 입장이랄 게 없었던 것이다 ..  (29, 48, 271쪽)


  나는 퍽 어릴 적부터 ‘아줌마’가 쓰는 글을 좋아했습니다. 예전에는 왜 좋아했는지 잘 몰랐으나, 요즈음은 환하게 깨닫습니다. 아줌마들은 글을 쓸 적에 으레 ‘아이와 복닥이는 하루’ 이야기를 섞어요. 아저씨들은 글을 쓰며 ‘아이와 부대끼는 삶’ 이야기를 거의 못 써요.


  나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을 볼 적에도 그리 대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만 한 사진책조차 나오기 몹시 어렵기 때문에, 참 훌륭하며 멋스러운 사진책이라고 느낌글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윤미네 아저씨는 바깥일로 너무 바쁜 나머지 밤늦게 돌아오거나 주말에 겨우 짬을 내어 아이들을 만나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않아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기에, 윤미네 아저씨는 윤미가 어릴 적에 ‘매우 재미나며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얼굴 겨우 보는 아버지인 터라, 윤미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 사진기를 안 쳐다보’고 싶습니다. 윤미는 아버지하고 얼굴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가끔 얼굴 스치는데 사진으로만 찍히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사랑하는 짝꿍 둘이 만나는데, 서로 먼 데 떨어져 지낸 터라 얼굴 보기조차 어렵다면, 이렇게 지내다가 겨우 얼굴 한 번 볼 틈이 났을 때에, 서로 무얼 할까요. 사진을 찍을까요? 아니지요. 조금이라도 더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맞추든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든 하겠지요. 윤미네 아저씨로서는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적바림하고 싶은 때’가 있었겠지만, 윤미한테는 ‘아버지하고 새롭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대목을 미처 짚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윤미네 아저씨 아닌 윤미네 아줌마가 사진기를 손에 쥐어 윤미 사진을 찍는다 할 적에는, “윤미네 집”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저씨들 바깥일 얽매인 삶으로는 도무지 못 담고 도무지 생각 못하며 도무지 깨닫지 못할 깊고 넓으며 아름다운 이야기 그득그득 길어올릴 수 있어요.


.. 나는 알아야 했다.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를 말해 줄 책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까닭도, 낯선 도시를 개처럼 돌아다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 가을이 언제나 가을인 것처럼, 김훈은 여전히 김훈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도저한 허무다 …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이다. ‘광고 속 그들’이 노래하는 대한민국은 소비자의 팀일 뿐이다. 적어도 나의 팀이 아니다 ..  (165, 170, 286쪽)


  겨울비가 내립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 겨울비가 내립니다. 이 한겨울에 우리 식구는 겨울비를 누립니다. 따스한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니 따스한 겨울비를 누립니다. 추운 곳에서 살아가면 겨울눈을 누리겠지요. 멧자락 시골집에서는 펑펑 쏟아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볼 테고, 도시 한복판이나 한켠에서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물결을 바라보겠지요.


  삶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숲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숲을 생각합니다. 아파트와 공장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아파트와 공장을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삶이라면 돈을 생각합니다. 이름값 드날리는 삶이라면 이름값을 생각합니다. 풀밭에서 노래하는 풀벌레를 늘 만나는 삶이라면 풀벌레와 풀노래를 생각합니다. 맑은 냇물이 집 곁에서 흐르는 삶이라면 맑은 냇물을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아름다운 삶을 부릅니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즐거운 삶을 부릅니다.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사랑스러운 삶을 부릅니다.


  더 낫거나 더 나쁘다는 삶은 없습니다. 누리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더 기쁘거나 더 슬프다는 삶은 없습니다. 좋아하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 그들은 별 생각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공허한 당위와 텅 빈 대의. 아무려나. K는 상명하달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거기에 일종의 가족주의가 혼합된 특유의 조직 문화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터였다 … 말하자면 K는 출구 없는 회로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건 차라리 무척 느린 자살에 가까우니까.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당장 그만둘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이 바로 K가 ‘만들어 낸’ 현실이었다 … 온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픈 책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짐심어린 각자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것이다 ..  (264, 269, 379쪽)


  금정연 님이 쓴 《서서기행》(마티,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책이란 삶을 담는 이야기꾸러미인 만큼, ‘삶을 읽는 삶’이요 ‘삶을 말하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곧,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지만, 늘 ‘삶을 읽’는 나날입니다.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쓰’지만, ‘삶을 읽은 느낌을 글로 씁’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누구이든 이녁 삶 아니고는 아무것도 쓸 수 없습니다. 곧, 글쓰기란 삶쓰기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삶을 읽고 삶을 쓴’다고 할밖에 없어요.


  나날이 ‘책 말하는 책’이 자꾸 나오는 까닭은 ‘삶 말하는 삶’이 재미있거나 즐겁거나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책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내 이웃 삶을 좋아하며 마주하는’ 삶입니다. 입으로 말을 주고받아 이야기꽃을 피우듯, 손으로 글을 써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글 한 자락으로 태어납니다. 글 한 자락이 모여 책 한 권으로 태어납니다. 책 한 권을 읽어 새로운 삶을 생각합니다. 새로운 삶을 생각하며 느낌글 하나 갈무리합니다.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오직 하나 있겠지요. 내가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니까요. 책을 읽는 까닭이라면 바로 하나 들 만하겠지요.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 살아가니까요. 삶결이 책결이요, 생각무늬가 글무늬입니다. 삶빛이 책빛이며, 생각자락이 글자락입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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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22 14:35   좋아요 0 | URL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 저도 글을 쓰면서 결국 제가 세상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구나, 생각 들어요. ^^

숲노래 2013-01-22 18:30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래서 늘 pek0501 님 삶과 생각을 즐겁게 읽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강예린.이치훈 지음 / 반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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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 읽는 곳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5] 강예린·이치훈,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

 


- 책이름 : 도서관 산책자
- 글 : 강예린·이치훈
- 펴낸곳 : 반비 (2012.10.25.)
- 책값 : 16000원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을 읽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이 아니라면 굳이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읽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이 아닐 때에는 대여점에서 빌린다든지 여느 책방에서 사다 읽어도 될 테지요. 그러나, 싱그러운 책이 아니라 한다면, 굳이 내 아름다운 겨를을 내어 읽어야 할까 궁금해요.


  싱그러운 책이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습니다. 싱그러운 책이기에 새책방에서 주머니를 털어 장만해서 읽습니다. 싱그러운 책이기에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진 책을 오랜 품과 겨를을 들여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즐겁게 사들여서 읽습니다.


  조금 더 생각한다면, 싱그러운 이야기라고 느낄 때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야지 싶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싱그러운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고 여길 때에 책방에서 책을 갖추어 꽂아야지 싶습니다. 많이 팔릴 만하거나 널리 읽힐 만하기에 책을 만들 수 있을 테지만, 많이 팔린다거나 널리 읽힌대서 ‘싱그러운’ 이야기가 되지는 않아요. 신문 1쪽에 나오거나 방송 맨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이기에 ‘싱그러운’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들려주지는 않아요.


  찬찬히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신문 1쪽에 큼지막하게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나 하루 뒤나 한 달 뒤나 한 해 뒤에도 기쁘게 떠올리거나 되새길 이야기가 되나요. 방송에서 흐르는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나 하루 뒤나 한 달 뒤나 한 해 뒤에서 즐거이 돌아보거나 아로새길 이야기가 되나요.


.. 형무소 옆 도서관에는 책이 수감되어 있는가? 지식이 지혜로 교정될 때까지 책은 세상에서 격리되는가? ‘경성감옥’ 옆에 서 있는 도서관을 보노라니, 자연스레 도서관 역시 감옥처럼 근대적인 ‘훈육’의 공간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 훌륭한 도서관을 짓고자 하는 건축가라면 그 안에서 사람이 교류하는 구체적인 모습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  (27, 48쪽)


  어느 모로 본다면, 도서관에서는 ‘싱그럽’지 않은 책도 건사할 만합니다. 싱그럽지 않은 책도 알뜰히 갖추면서 ‘책으로 삶을 읽’도록 돕는 구실을 할 수 있어요. 날마다 나오는 신문을 하나하나 모아서 ‘신문으로 사회를 읽’도록 이끄는 몫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다른 눈길로 본다면, 도서관에서 구태여 싱그럽지 않은 책을 건사해야 할까 알쏭달쏭해요. 싱그러운 책만 즐겁게 찾아서 읽는 데에도 온삶을 다 바쳐도 다 못 읽는다 할 만큼 많은데, 꼭 ‘안 싱그러운’ 책을 도서관이 갖추어야 할까요. 지나치게 많은 ‘안 싱그러운’ 책이 가득 꽂히는 바람에, 사람들은 막상 ‘싱그러운’ 책을 못 찾거나 못 보거나 못 느끼지 않나요. 싱그러운 책은 싱그럽지 못한 책 사이에 낑기거나 눌리면서 햇볕을 못 보다가는 ‘대출실적 0’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폐휴지로 버려지지는 않나요.


  굳이 모든 책을 건사해야 한다면, 모든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은 딱 한 군데만 있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딱 한 군데 도서관을 빼고는 ‘싱그러운’ 책만 건사해야지 싶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는 사람이 “이 책 갖추어 주셔요” 하고 바란다 할지라도, 도서관을 지키는 일꾼이 “갖추기를 바라는 책”을 하나하나 훑으면서 ‘싱그러운’ 책만 추려서 갖추어야 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이러고 나서, 도서관 지키는 일꾼이 할 일이 생깁니다. 무엇이냐 하면, 도서관에서 꾸준히 사들여 갖춘 ‘싱그러운’ 책을 누구보다 도서관 일꾼이 먼저 즐겁게 읽은 뒤에 ‘싱그러운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써서 ‘도서관신문’이나 ‘도서관잡지’를 만들어야지요.


  ‘새로 들어온 책 목록’만 띄운다면, 도서관으로서 제구실을 못 한다고 느껴요. 출판사에서 쓴 ‘보도자료’만 붙인다면, 도서관 일꾼으로서 제몫을 못 한다고 느껴요.


  도서관 일꾼이란, 도서관에 들여오는 책을 맨 먼저 읽고 ‘줄거리에 깃든 넋’을 받아들인 다음, 이 아름다운 넋을 ‘도서관에 찾아오는 이웃’한테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넋’을 읽고 되새기면서 새롭게 태어나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도서관 3층으로 올라가면 어른들의 열람실이 나온다. 도서관을 지을 때 공부하는 방을 만들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건축주는 ‘책 읽는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했다고 한다. 전과와 문제집처럼 남이 추려 놓은 지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추려지지 않은 지식과 이야기를 스스로 탐구하는 것이 갖는 힘과 의미를 알리고 싶었겠지 싶어 … 집에서 가져온 책으로 공부하는 열람실, 독서실은 우리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일제 시절부터 내려온, 근대적인 훈육식 교육 경험을 도서관이 물려받은 결과라고 한다 ..  (32∼34, 45쪽)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싱그럽게 가꾸는 기운을 얻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을 읽는 까닭은 나 스스로 싱그러운 넋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내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이웃이랑 동무를 사랑합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나무와 풀과 꽃을 아낍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껴안고, 기름진 들판과 푸른 숲을 어루만집니다.


  싱그러운 책을 읽는 나는 싱그러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책을 읽기에 거듭나지는 않아요.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싱그러운 씨앗’ 하나가 움을 터요.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찬찬히 줄기를 올리지요. 싱그러운 책을 읽고 싱그러운 말을 나누며 싱그러운 일을 하면서, 시나브로 내 마음속 싱그러운 씨앗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책에는 길이 없으나, 책을 읽으며 스스로 길을 찾는 기운을 얻습니다. 책에는 길이 없으니, 책을 읽으며 길을 찾다가는 헤매기만 할 뿐이에요. 책을 읽으며 길을 헤매면,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으며 온갖 책지식을 잔뜩 쌓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책지식으로 무엇을 할까요. 책지식으로는 사랑을 하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꿈을 꾸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풀씨를 받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나뭇가지에 새로 돋는 잎사귀를 느끼지 못해요.


.. 동서양 모두 자연에서 소요하며 책을 읽는 것은 조금 더 높은 경지에 닿고자 하는 마음과 통한다. 자연에서 머리를 맑게 헹구고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을 닦는 일에 가깝다 … 사진책도서관은 최종규 관장님 말씀처럼 ‘육지에서 섬 빼고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인 전남 고흥에 자리잡고 있다. 이 먼 곳까지 작정하고 오는 동안 독자는 사진책을 읽을 마음의 폭을 마련한다. 사진책은 대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느릿한 읽기를 통해서만 이미지를 찬찬히 감상할 수 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시대에도 고흥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이곳에 자리잡았다는 관장님의 말씀은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진책과 분위기가 맞춤하다 ..  (83, 160∼161쪽)


  책을 읽듯 사람을 읽습니다. 사람을 읽듯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듯 꽃을 읽습니다. 꽃을 읽듯 책을 읽습니다.


  가을을 느껴 보셔요. 겨울을 느껴 보셔요. 봄과 여름을 느껴 보셔요. 다 다른 철에 다 다른 날씨를 느껴 보셔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인지 느껴 보셔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고을에서 다 다른 꿈으로 살아내며 쓴 책을 천천히 읽어 보셔요. 책을 읽을 때에는 숲으로 가서 나무 밑에 앉아 읽어 보셔요. 열 쪽이나 백 쪽쯤 읽었다면 책을 살짝 덮고는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구름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바라보고, 들새가 몇 마리쯤 날아가며 노래하는가 들어 보셔요.


  겨울이 코앞이라 풀벌레가 모두 고이 잠들었나 싶다가도, 빈 들판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울려퍼져요. 아마 이른겨울까지 적잖은 풀벌레가 시골마을 들판에서 어여삐 노래를 부르겠구나 싶어요. 들새와 멧새는 한겨울에도 먹이를 찾으며 노래를 부르겠지요. 우리 집 어린 아이들도 마당에서 볼이 빨개지도록 뛰놀며 노래를 부를 테고요.


  책을 읽으며 삶을 읽습니다. 삶을 읽으며 책을 읽습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삶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쥡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꿈을 그리면서 책을 손에 듭니다.


.. 이렇게 서고에서 길을 잃는 것은 책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주석이나 인용에 이끌려 다른 책으로 계속 손을 옮기며 책이 열어 주는 여러 갈래의 길로 들어서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말을 걸어 오는 저자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 … 개인이 구매하기 어려운 책을 도서관이 대신 구비해 주는 것이 옳지만, 도서관으로서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찾는 사람이 많은 책을 더 구입하는 쪽으로 기운다. 그래서 사진책은 어지간한 규모의 도서관이 아니면 만나기 힘들다 ..  (136, 158쪽)


  강예린 이치훈 두 분이 쓰고 엮은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라는 인문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는 두 분은 건축일을 한다고 합니다. 창녕에서는 도서관을 짓도록 함께 슬기를 모았다고도 해요.


  《도서관 산책자》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 ‘도서관 나들이’를 할 만할 수 있을까?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서울에 있는 도서관’이랑 ‘부산에 있는 도서관’이랑 ‘순천에 있는 도서관’이 다를까?


  나는 ‘전국 헌책방 나들이’를 즐깁니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이랑 부산에 있는 헌책방이랑 순천에 있는 헌책방은 책시렁이 저마다 달라요. 남원에 있는 헌책방이랑 진주에 있는 헌책방이랑 춘천에 있는 헌책방은 책꽂이가 사뭇 달라요.


  대전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대전사람들 삶을 헤아리는 책을 만납니다. 전주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전주사람들 삶을 톺아보는 책을 만납니다. 인천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인천사람들 삶을 그리는 책을 만나요.


  도서관은 어떠할까 궁금해요. 인천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인천사람 인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의정부에 있는 도서관에는 ‘의정부사람 의정부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제주에 있는 도서관에는 ‘제주도 사람 제주도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인문책 《도서관 산책자》에서는 한국에서 도서관은 도서관 아닌 ‘독서실’ 노릇을 한다는데, 이 말은 썩 알맞지 않아요. 왜냐하면 ‘독서실’은 “책을 읽는 방”이거든요. 또 한국사람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고 해서 말썽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 또한 알맞지 않아요. 왜냐하면 ‘공부’는 “시험점수 더 잘 따려고 문제집이랑 참고서를 외우는 짓”하고 동떨어지거든요.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사람은 ‘도서관’도 ‘독서실’도 ‘공부’도 제대로 몰라요. 도서관이 어떤 책을 건사하며 사람들하고 나누어야 아름다운 책터가 되는가를 깨닫지 않아요. 독서실이라 할 때에는 어떤 곳에 어떻게 마련할 때에 ‘책읽기’ 즐기도록 돕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공부가 무엇이며 공부를 하는 삶은 어떠한 사랑으로 피어나는가를 생각하지 않아요.


  한 마디로 간추리면,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시험지옥 공장’이랄 수 있습니다. 칸막이로 좁게 나누어 조용히 문제집 풀기를 하느라 고개를 처박아야 하는 데는 도서관도 독서실도 아니에요. 이런 곳은 그야말로 불지옥이에요. 가시방석 입시지옥일 뿐이에요.


  강예린 이치훈 두 분은 ‘입시지옥’으로 나뒹구는 데가 아닌, 참말 ‘책읽기’가 싱그러이 숨쉬는 곳을 찾아 “도서관 나들이”를 합니다. 이러면서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여태껏 “도서관 나들이”를 하면서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어쩌면 아예 없는지 몰라요.


  작은 책씨앗 구실을 하는 《도서관 산책자》일 테지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이제 겨우 “도서관 나들이”를 할 만큼 되었다고 할 테지요. 앞으로는 “도서관 한살이”라든지 “도서관 사랑짓기”라든지 “도서관 숲살림”을 다루는 이야기책도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책으로 읽는 삶을 헤아리고, 책을 발판 삼아 저마다 눈부시게 열어젖히는 고운 생각날개가 이야기숲처럼 흐드러지기를 빌어요.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인문책은 삶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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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小출판사 순례기 -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박지현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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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읽기 삶읽기 114] 고지마 기요타카,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저마다 책을 읽습니다.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든다 여기는 책을 읽습니다. 소설책이든 자기계발책이든 스스로 가장 눈길이 닿기에 살포시 집어들어 읽습니다. 일 때문이든 독후감 때문이든, 스스로 어느 책 하나 읽어야겠다고 느끼기에 읽습니다.


  저마다 집을 마련합니다. 맞돈을 치러 내 집으로 마련하든 달삯을 치르며 지내든 누구나 제 집을 마련합니다.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달동네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다닥다닥 붙은 조그마한 집에 딸린 방 한 칸짜리 보금자리일 수 있고, 옥상에 있는 방 한 칸짜리 보금자리일 수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 보금자리일 수 있으며, 도시 변두리 보금자리일 수 있고, 시골마을 보금자리일 수 있어요.


  저마다 삶을 누립니다. 즐겁거나 기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슬프거나 괴롭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쁘거나 고단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느긋하거나 흐뭇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어요. 따사로운 햇살과 같이 삶을 누릴 수 있고, 상큼한 바람과 같이 삶을 누릴 수 있어요.


.. 편집부 다섯 명, 모두 열 명이 근무하는 사쿠힌샤처럼 작은 출판사는 전통이라는 게 없는 만큼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고가 직접 반영된다 … 작은 출판사지만 사쿠힌샤는 스스로에게 어려운 숙제를 내며 수준 높고 매력적인 양서를 간행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고 있다 ..  (16, 19쪽)


  사람들이 책을 읽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글 바로쓰기》 같은 책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녁 말글을 슬기롭게 헤아립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얼마쯤 읽다가 덮고는 하품을 합니다. 때로는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을 읽기도 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빛을 느껴 삶을 새롭게 가다듬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 줄거리를 알뜰히 풀어놓으나 삶은 그대로입니다. 누군가는 ‘한 해 독서계획’으로 이 책을 읽을 뿐, 스스로 삶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 해 독서계획’이라든지 ‘백 권 읽기’라든지 ‘천 권 읽기’란 덧없는 외침과 같구나 싶습니다. 책이란 어떤 틀을 세우면서 읽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책은 삶과 같아요. 삶을 어떤 틀을 세우면서 누릴 수 없어요. 어떤 틀에 따라 움직이거나 흐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결에 따라 움직이거나 흐르는 삶이에요. 어떤 틀에 따라 읽거나 아로새기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결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면서 마음을 넉넉하고 아름답게 돌보는 책이에요.


  곧, 책을 읽으며 지식이 늘지 않습니다. 책을 가까이하며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기에 정보를 가득 누리지 않습니다. 책과 함께하는 삶이라서 슬기롭지 않습니다.


.. 책방에 다니며 그저 책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정화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했다 … “책을 만들기 위해 편집이 있고 독자에게 책을 전달하기 위해 영업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만듭니다. 정말 이상해요.” ..  (20, 38쪽)


  지식을 바라는 사람은 지식을 얻겠지요. 정보를 꾀하는 사람은 정보를 쥐겠지요. 자격증을 따고 싶은 사람은 자격증을 따요. 시험성적 높이고 싶은 사람은 시험성적 높일 수 있어요.


  그런데, 삶이란 무엇일까요. 내 삶 한 자락에서 내가 누릴 빛은 무엇일까요. 나는 무엇을 하면서 내 사랑을 다스리고 내 꿈을 키울까요. 내가 즐길 사랑은 무엇이요, 내가 가꿀 꿈은 무엇일까요.


  내 삶에서 지식이 가장 대수롭다 할 만할까요. 내 삶에서 정보를 가장 크게 북돋아야 할까요. 내 삶을 사랑 아닌 독후감 같은 책으로 채워야 하나요. 내 삶을 꿈 아닌 자기계발 같은 책으로 엮어야 하나요.


  책을 읽으려고 하기 앞서,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일구려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사랑과 꿈으로 하루를 빛내려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주입식 교육이 아닐까 … 나가오는 마르크스나 루소의 사랑을 지식으로만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 경제학 이론과 생활인으로서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  (40, 50쪽)


  책읽기와 책쓰기는 같습니다.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사람은 삶을 빛내며 읽는 사람입니다. 책을 엮어 책방에 내놓는 일꾼 또한 삶을 빛내며 쓰는 사람입니다. 출판사 일꾼이든 글을 쓰는 일꾼이든, 저마다 삶을 빛내는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니까, 책을 빚는 일이나 밥을 짓는 일이나 같아요. 책을 읽는 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이나 같아요. 책을 쓰는 일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나 같아요. 모든 일이 한동아리가 되어 흐릅니다. 모든 일이 한 물결처럼 움직입니다.


  책을 읽으며 삶을 읽고, 삶을 읽으며 생각을 읽습니다. 생각을 읽으며 내 이웃을 읽고, 내 이웃을 읽으며 풀과 나무를 읽습니다. 풀과 나무를 읽으며 햇살과 바람을 읽고, 햇살과 바람을 읽으며 흙과 벌레를 읽어요. 바야흐로 지구별을 읽습니다. 이윽고 목숨을 읽습니다. 비로소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읽든 만화책을 읽든, 책을 읽는 길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는 데로 이어집니다. 어느 책을 쓰든, 곧 사람들 스스로 어느 글을 쓰든, 또는 어느 책을 빚든, 모든 삶과 넋과 일은 한 갈래에서 만나요.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고 ‘사랑이 무엇인가’를 밝히며 ‘꿈이 무엇인가’를 들려줘요.


.. 마이너리티적 발상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업출판사에서 마이너리티적 기획은 하지 않는다.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책은 보면 알 수 있다. 판권을 보거나 책을 잡은 순간 느낄 수 있다 ..  (134, 153쪽)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책을 참답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참답게 좋아합니다. 책을 마주하는 결이 삶을 마주하는 결입니다.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느냐 하는 매무새는 어느 이웃을 생각하거나 살피느냐 하는 매무새입니다.


  책만 알뜰히 아끼지 못합니다. 밥만 알뜰히 짓지 못합니다. 자가용만 알뜰히 돌보지 못합니다. 내 아이들만 알뜰히 보살피지 못합니다. 책한테 하듯 지구별한테 해요. 책하고 마주하듯 둘레 사람하고 마주해요. 책 한 권 장만하는 매무새가 저잣거리에서 물건 하나 장만하는 매무새예요. 책을 읽어 삭히는 몸가짐이 이웃사람 말을 듣고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몸가짐이에요.


  책 하나에 깃든 ‘글쓴이 넋’이나 ‘책마을 일꾼 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요. ‘책을 읽는 내 마음대로’ 바라보는가요? 글을 쓰거나 책을 엮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살피면서 바라보는가요?


  고지마 기요타카 님이 쓴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7)를 읽습니다. ‘소출판사’라니, 소를 잡는 출판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일본사람은 ‘小’라 말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작은’이라 말하잖아요. 한국사람 읽을 책이라면 ‘작은 출판사’라 말해야지요.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작은 출판사’는 하나도 작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출판사’일 뿐입니다. 크거나 작다는 갈래는 어느 누구도 나누지 못해요. 그저 출판사요 그저 책을 빚습니다. 널리 팔리는 책이라서 ‘큰’ 책이 되지 않고, 적게 팔리는 책이라서 ‘작은’ 책이 되지 않아요. 언제나 책이에요. 많이 팔린 책이라서 사람들이 ‘옳게’ 읽거나 ‘슬기롭게’ 아로새겨서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찾아 씩씩하게 거듭나도록 이끌까요.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는 재미나게 쓴 책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출판사 일꾼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기에 재미나게 쓴 책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글쓴이는 짚어야 할 대목을 짚지 못합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어떤 즐거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가를 또렷하게 짚지 못합니다. 출판사가 처음 생긴 때가 언제요, 어떻게 해서 생겼으며, 그동안 어떤 책을 냈는가 하는 이야기는 그리 재미나지 않고 즐겁지 않은데다가 궁금하지 않아요. 다 다른 출판사 일꾼이 다 다른 사랑과 꿈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털어놓도록 이끌면서, 이 생각을 알뜰살뜰 담을 때에 이 책이 참으로 빛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그러면, 수많은 출판사 일꾼들이 ‘책을 어떻게 좋아하’고 ‘책을 얼마나 좋아하’며 ‘책을 좋아하는 꿈’을 둘레 이웃하고 어떻게 나누려고 책을 만드는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며 책을 꾸며야지요.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녁이 살아가는 마을도 참으로 좋아하고, 이녁을 둘러싼 이웃도 참으로 좋아해요. 책을 참으로 좋아하듯 멧새 한 마리를 참으로 좋아할 테고, 풀벌레 노랫소리 한 가락을 참으로 좋아하겠지요. (4345.9.1.흙.ㅎㄲㅅㄱ)

 


―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고지마 기요타카 글,박지현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2007.3.1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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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 도 -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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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느낌글(서평)'은 나중에 따로 쓸 생각이지만, 이에 앞서, 내 책을 다룬 꼭지에서 잘못 적은 대목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렇게 붙인다. 부디 잘못 적은 곳은 낱낱이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로잡은 결과를 '실물'로 나한테 보내 주기 바란다.

 

..

 


 파란여우(윤미화) 님, 《독과 도》를 읽다가
 ― 《사진책과 함께 살기》 잘못 다룬 곳 짚기

 


  2012년 6월 15일에 나온 《독과 도》(북노마드)를 읽다가, 내가 쓴 책 가운데 하나인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다룬 대목을 자꾸 잘못 말하기 때문에, 몇 가지 바로잡고자 이 글을 쓴다. 벌써 종이에 찍혀 나온 《독과 도》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달리 어찌할 길이 없으니, 이렇게 ‘바로잡기’를 한다.


 01. 책이름 잘못 적음
  알라딘서재에서 ‘된장’이라는 이름을 쓰는 내(최종규)가 지난 2010년에 내놓은 책 가운데 하나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이다. 그런데, 파란여우(윤미화) 님이 쓴 《독과 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 책과 함께 살기”로 적는다. 왜 띄어쓰기를 바꾸는가? 게다가 ‘사진집’은 붙여서 적으면서 ‘사진 책’은 띄어서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 내가 인천에서 2007년부터 꾸리다가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긴 서재도서관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이다. 내 서재도서관 이름을 밝힐 때에도 ‘사진 책’을 띄어야 할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 머리말을 살피면, 머리말 끝자락에 ‘사진책’이라는 낱말을 일부러 쓰려고 한 까닭을 밝혔다. 한국 사진문화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고 싶기 때문에 ‘사진책·사진밭·사진말·사진읽기·사진찍기·사진마을’ 같은 새 낱말을 나 스스로 지어서 썼다. 이와 같은 대목을 처음부터 옳게 살피지 않는다면,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 담은 줄거리와 고갱이는 어떻게 돌아볼 수 있을까.


 02. 사진책 비평 갈래
  파란여우 님은 234쪽에서 “‘사진 책 서평집’이라는 장르는 물론 없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있다. 없을 까닭이 없으며, 없어야 할 까닭도 없다. 이 갈래로 나온 책이 한국에는 몇 가지 없고, 도서관 분류법에 제대로 나누어지지 않았대서 이 갈래가 없다 할 수 있을까. ‘사진책 서평’이란 곧 ‘사진읽기’를 뜻하고, ‘사진비평’이다. 사진책을 말하는 책이 바로 사진비평인데, 이러한 갈래가 없다는 말은 할 수 없다.


 03. 헌책방에서 건진 사진 책 위주로 썼다 (234쪽)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모두 1·2·3부로 나눈다. 이 가운데 3부는 ‘새책방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사진책만 다룬다. 1부는 도서관에서 찾아볼 만한(그러나 아직 한국 도서관에서는 알뜰히 못 갖추는) 사진책을 다룬다. 2부는 사진책을 널리 장만할 수 있는 좋은 헌책방을 소개하면서, 이 헌책방에서 장만한 사진책을 다룬다. “헌책방에서 건진 사진 책 위주”란 무엇일까? 더욱이, “헌책방에서 건진”이라는 말마디는, 이렇게 ‘건지기’까지 품을 많이 팔아야 하거나 다른 책들은 썩다리라는 뜻을 풍긴다. 나는 헌책방을 다닐 때에 “책을 건진” 적이 없다. 《독과 도》라는 책을 쓴 분이 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를 모르지 않으리라. 나는 언제나 “책을 살” 뿐이다. 살림을 장만하듯 “책을 장만한”다.


 04. 글쓴이의 주관적 견해가 많은 (234쪽)
  모든 글은 스스로 쓰니까 모든 글은 ‘주관’이다. 《독과 도》는 주관인가 객관인가? 《독과 도》를 쓴 사람 눈길로는 ‘주관’이라 하더라도, 이 주관이란 무엇인가. 게다가, 서평이든 비평이든 모든 ‘평가’란 주관이 내리는 평가이지, 객관이 내리는 평가일 수 없다. 스스로 읽은 다음 느낌을 말하는 일이 평가요, 서평이나 비평이 된다.


 05. 사진의 속내를 통해 (235쪽)
  내가 쓴 글이라면서 따온 대목인데, 나는 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토씨 -의’하고 ‘통(通)해’라는 말투를 어느 한 곳에서도 안 썼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런 말투를 ‘내가 쓴 말투’인 듯 따온글로 적어 놓았다. 몇 쪽에 이런 말투가 나오는지 밝혀 주기를 바란다(교정지에서 바로잡았으나 출판사에서 나한테 말하지 않고 이런 말투로 책을 냈으면, 내 책 또한 새로 고쳐야 하니까). 글쓴이 말투가 아닌 글을 마치 따온글이라면서 함부로 적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


 06. 상업광고에서 나타나는 감각적인 스타일은 애초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사진은 여러 갈래이고, 사진책도 여러 갈래이다. 상업사진과 상업사진책을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안 다루었대서 내가 이러한 갈래에 아예 눈길을 안 둔다는 투로 말하는 일은 얼마나 올바른 서평이나 비평이 될까. 내 알라딘서재(blog.aladin.co.kr/hbooks)에서 사진책 비평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읽으면 알 테지만, 나는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이나 ‘사진을 말하는 책’을 모두 다룬다. 다만, 이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는 상업사진이나 상업사진책은 굳이 안 다루어도 된다고 여겼고, 출판사에서도 이렇게 하자 해서 이와 같이 나왔을 뿐이다. 책 하나만 서평으로 다룬다 하더라도, 어느 책 하나를 쓴 사람이 펼치는 ‘글누리(작품세계)’를 찬찬히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07.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 살면서
  사람은 ‘골목길’에서 살 수 없다. 내가 쓴 다른 책 《골목꽃,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에서도 여러 차례 밝히지만, 사람은 ‘골목동네’에 산다. ‘길’은 오가는 자리이다. 그리고, 나는 ‘배다리 골목동네’에만 살지 않았다. 내가 산 곳은 ‘인천 골목동네’이고,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쪽에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를 세 해 반 열다가 시골로 삶터를 옮겼다.


 08. 사진 책 도서관 (235쪽)
  앞서 내 책 이름에서도 말했지만, 내 책이름도 이름이고, 내 도서관 이름도 이름이다. 이름을 옳게 읽지 못하고 옳게 말하지 못하는 일이란 더없이 슬프다. 내 도서관은 ‘사진책 도서관’이다.


 09. 최종규는 골목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236쪽)
  비평이나 감상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평과 감상을 들을 사람’ 눈높이에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야기를 내 보금자리에서 사진으로 찍었을 뿐, 나는 어떠한 모습도 그림도 ‘수집’한 적이 없다.


 10.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이야기는 대개 ‘잊혀 가는 것들’이거나 ‘이미 잊은 것들’이다. 그래서 책은 굴피집 사진과 지금은 원로가 된 복서들로부터 시작한다 (237쪽)
  거듭 말하지만, 비평이나 감상은 자유다. 그러나 ‘잘못 읽기’는 자유가 아니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잊혀진 이야기를 한 가지도 다루지 않는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오직 ‘사진’을 다룬다. 오직 ‘사진’을 다루기 때문에, 사진책과 사진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매우 대단한 《굴피집》이 첫머리에 들어갔고, ‘일본 사진문화’를 돌아보면서 ‘한국 사진문화’를 견주는 첫 책으로 ‘일본 사진쟁이가 찍은 한국 권투선수 이야기’ 사진책 이야기 또한 첫머리에 들어갈 만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제대로 읽어야지, 잘못 읽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굴피집》은, 내가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37권 사진책 가운데 첫째 꼭지였으나, 《Korean Boxer》는 여섯째 꼭지이다. 여섯째 꼭지로 다룬 글은 맨 처음에 나오는 글이 아닌데, 왜 파란여우 님이 이렇게 글을 썼는지 아리송하다.


 11. 1967년에 나온 주한미군 기념사진 책 《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에는 주한미군 범죄 행위가 붙어 있다고 한다 (237쪽)
  주한미군 기념사진책 이름은 《7th BN(HAWK) 2nd ARTY》이다. 왜 엉뚱한 이름을 붙였을까? 《7th BN(HAWK) 2nd ARTY》라는 사진책을 이야기하다가, 끝자락에 오연호라는 기자가 쓴 《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 이야기를 살짝 곁들였다. 두 가지 책을 헷갈려서 섞으면 안 된다. 이 대목 또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마치 내가 엉뚱한 글을 쓴 사람처럼 되고 만다.


 12. 최종규는 헌책방 순례자다. 지금은 사라진 책이거나 품절된 책을 다루는 그는 이미 헌책방을 주제로 한 책을 펴냈다 (237쪽)
  나는 ‘헌책방 순례자’가 아니다. 나는 새책방도 가고 헌책방도 간다. 나는 “책방에 책을 사러 가는 사람”이다. 헌책방에 순례하러 다니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내가 읽을 책을 사는” 사람이지, 사라지거나 없어진 책을 다루지 않는다.


 13. 《우리말과 헌책방》
  내 책 가운데 하나 이름을 또 잘못 적었다. 내가 한동안 내던 1인잡지 이름은 《우리 말과 헌책방》이다. 나는 ‘우리 말’처럼 띄어서 적는다. 왜냐하면, ‘우리 글’, ‘우리 옷’, ‘우리 문화’, ‘우리 강’, ‘우리 겨레’처럼 띄어서 적는 말법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14.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언급한 대부분 사진 책이 헌책방에서 찾은 책이다 (237쪽)
  앞에서 이 말이 잘못이라고 밝혔으니 덧붙이지는 않는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독과 도》라는 책에서 자꾸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


 15.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까지 (237쪽)
 일본 ‘아이돌 화보집’ 《I♥U》를 말하는 듯한데, 이 사진책은 ‘실제 중학생’을 ‘아이돌 그라비아 사진책’으로 만드는 일본 사진문화를 돌아보면서, 한국에서 상업사진을 하는 이들이 사진책을 빚으려고 얼마나 애쓰거나 어떠한 눈길로 사진책을 빚는가 하는 이야기를 할 때에 다루었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라니, 참 듣기에 남우세스럽다.


 16. 최종규가 최민식의 《HUMAN》을 두고 쓴 글이다 (239쪽)
  그러나, 이 따온글은 최민식 님이 손수 쓴 글이지, 최종규가 쓴 글이 아니다. 최종규가 쓴 글인지 최민식이 쓴 글인지 헷갈릴 만큼 책을 제대로 안 읽었는가.


 17. 케빈 카터 사진 이야기 (240∼241쪽)
  케빈 카터 님이 찍은 사진은 그이가 찍은 수많은 사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사진과 얽힌 이야기를 더 꼼꼼히 더 널리 더 찬찬히 헤아린 다음 고쳐쓰기를 바란다. 파란여우 님은 케빈 카터 님이 ‘어린 소녀’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적는데, 케빈 카터 님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지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곳에는 도움을 받아야 할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 수백 수천인데, 어느 한 아이만 도와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케빈 카터 님은 ‘사진을 찍으며 그곳 아이들을 돕는 사람’이다. 케빈 카터 님이 찍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가슴속으로 따스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곳 아이들을 돕도록 이끄는 사람이다. 그 아이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돕는다’면 훨씬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이런 ‘가설’은 함부로 들추지 않기를 빈다. ‘외신 전속 사진가’이든 ‘프리랜서 사진가’이든, 저마다 계약한 회사에 보내줄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에, 부자도 아니고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사진가한테 왜 자원봉사자 노릇을 바라는가. 그곳에 있는 다른 자원봉사자가 이 아이를 알아보지 못한 일을 탓해야 하지 않는가. 아이를 돕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 아이를 도울 어버이와 자원봉사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곧, 케빈 카터 님 사진을 파란여우 님이 이야기하면서 “사진 찍기에 앞서 사진 읽기가 안되는 현실을 개칸하는 최종규는 사진 학교의 꼬장꼬장한 훈장님 같다(241쪽)” 같은 대목은 하나도 올바르지 않다. 최종규는 케빈 카터 님 사진과 삶을 파란여우 님이 《독과 도》에서 적은 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최종규가 마치 이렇게 ‘훈계하는 훈장님’이라도 되는 듯 끼워넣는 일은 바람직하지도 옳지도 알맞지도 않다. 나는 케빈 카터 님 사진을 ‘파란여우 님 말처럼 비판’하지 않는다.


 18. 최종규의 책에선 회화적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다. 요컨대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사진 생태학적 해석에 가까운 평론을 펼친다 (242쪽)
  모든 사진은 ‘회화’를 보여준다. 모든 사진은 ‘이미지’이다. 어떤 사진을 들여다보든 ‘회화 이미지’를 찾기 마련이다. 이러한 회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달리 느낀다. 그래서 나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는 ‘주관 감상’을 따로 적지 않았다. 파란여우 님은 《사진책과 함께 살기》가 ‘주관 해석’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사진 어떤 책 어떤 작품’을 놓고도 ‘주관 해석이나 감상’을 달지 않았다. 부디, 내 책을 제대로 읽고서 제대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란다. ‘주관 해석이나 감상’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 몫이기에, 굳이 어떤 비평가나 평론가가 애써 안 밝혀도 된다. 시를 읽는 사람이 시를 느끼지, 평론가가 시를 느끼는가. 아니, 평론가가 느낀 시를 독자가 똑같이 느껴야 하는가. 평론가는 다른 대목을 말하는 사람이다. 시를 평론하든 사진을 평론하든 똑같다. 파란여우 님은 사진책을 평론하는 일을 너무 모르는구나 싶다. 더군다나,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여러 사진책 가운데 《Photograms of the year 1929》라는 사진책을 다룬 꼭지는 안 읽으신 듯하다. 다른 사진책에서도 어엿하고 번듯하게 숱한 ‘회화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데, 파란여우 님 스스로 못 느끼거나 안 느끼면서, 이처럼 말하는 일이야말로 ‘주관 해석과 감상’이라고 느낀다. 그나저나, ‘사진 생태학적 해석’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19. 우리나라 독자로부터 인기를 얻었던 에두아르 부바 사진 책 《뒷모습》도 벗은 사진을 표지로 삼았다 (244쪽)
  틀린 말이다. 프랑스에서 나온 이 사진책은 ‘발레하는 소녀’ 뒷모습이 표지로 들어간다(이 얘기는 내 알라딘서재에도 사진을 올리면서 밝힌 적 있다). 한국판을 펴낸 출판사에서 ‘한국 (남자) 독자 눈길을 사로잡아 책을 많이 팔려는 생각’으로 표지 사진을 바꾸었을 뿐이다.


 20. 결국 최종규가 말하는 사진의 정수란, 삶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날것이자 삶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다. 최종규는 이럴 때 ‘사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246쪽)
  파란여우 님 ‘주관 해석과 감상’을 존중하고 싶다. 《독과 도》라는 책은 틀림없이 파란여우 님 ‘주관 해석과 감상’으로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아름다운 사진’이란 “삶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날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한없는 애정”도 아니다. 또한, 이럴 때 “사진을 즐길 수 있”지도 않다. 나는 어느 사진책을 비평하거나 다루더라도 언제나 이야기하는데, ‘스스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만큼 사진을 찍는다’고 밝힌다.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언제나 이와 같다. 사진기를 손에 쥔 이가 모델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마음결에 따라 사진이 달라진다. ‘사진 의뢰한 회사’에서 이래저래 조건을 붙인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매무새와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지, 기계질에서 사진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모델은 마네킹이 아닌 사람이니까. 사람 아닌 마네킹을 찍어도 똑같다. 애써 사람인 사진가가 사진을 찍어야 할 까닭이 없다면, ‘사진 의뢰하는 회사’는 왜 비싼값을 치르면서 여러 이름나거나 훌륭한 사진가를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맡기겠는가. 사진을 어느 사진가한테 맡기지 말고, 자동사진기로 찍어도 될 노릇 아닌가. 회사마다 스스로 사진을 찍으면 될 노릇 아닌가. 나는 ‘날것 사진’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날것을 찍으면 그냥 날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즐기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즐기고 사랑을 즐기면 된다. 스스로 좋아하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좋아하고 사랑을 좋아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와 ‘날것’ 얘기는 한참 동떨어진다.


 21. 끝으로 덧붙이면, 《독과 도》 3부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사랑을 찍는 것〉이라는 자리는 거의 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놓고 쓴 글인데, 책 뒷날개에 붙은 “파란 여우가 탐닉한 책”에는 수전 손택 책이 실렸다. 꽤나 뜬금없구나 싶었으나, 내 책을 내 책 그대로 즐기지 못했구나 하고 느끼고 보니, 이렇게 뒷날개에 딴 사람 책을 적은 일이 외려 참 고맙구나 싶다.

 

..

 

http://blog.aladin.co.kr/hbooks/5700614

(에두아르 부바 사진책 <뒷모습>이 어떠한 책인가 하는 느낌글을 새로 썼다. 이 글을 함께 읽는다면, 파란여우 님이 내 '사진책'을 이야기하며 든 다른 책들 이야기란 너무 안 어울릴 수밖에 없다고 느끼실 수 있을까... 파란여우 님 또한 <뒷모습>이라는 사진책이 어떤 사진책인지 옳고 바르게 헤아리시기를 바란다. 한국 번역판 <뒷모습>은 표지부터 원본 프랑스책과 달리 잘못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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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Library & Libro 2012.3
Library & Libro 편집부 엮음 / 도서관미디어연구소(잡지)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도서관과 라이브러리, 책과 리브로
 [책읽기 삶읽기 101] 도서관미디어연구소,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

 

 

 


  도서관과 책을 이야기하는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를 읽습니다. 2012년 3월에 33호이니 아직 얼마 안 되었지만, 이제부터 꾸준히 내놓을 수 있으면 머잖아 50호를 넘고 100호를 넘으며 200호를 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내놓은 책이기에 뜻있거나 값있지 않고, 새로 내놓는 책이기에 어설프거나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책이든, 책을 일구는 사람들이 따사롭고 사랑스레 글 하나 빚을 수 있느냐에 따라 뜻이랑 값이 달라집니다.


.. 도서관은 독서실 정도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지식을 탐구하는 곳인 동시에,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곳이 도서관이다. 이 두 속성을 공간적으로 푸는 과정에서 도서관 전체를 하나의 도시처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  (12쪽/독일 건축가 이은영)


  대학교에 문헌정보학과가 있습니다. 사서자격증이 있고, 나라 곳곳에 크고작은 도서관이 섭니다. 대학교에도 도서관이 있고, 중·고등학교는 입시지옥인 한편 크고작은 도서관을 이럭저럭 갖춥니다. 초등학교에 도서관 마련하는 일이 널리 퍼졌으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한켠에도 아이들 읽힐 책을 꽂곤 합니다.


  사람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에는 으레 도서관이나 책꽂이를 갖춥니다. 책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책을 들어 사람을 배웁니다. 곧, 책 하나는 이야기 하나 담는 그릇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틀과 흐름과 넋을 보여주는 길동무나 길잡이 구실을 함께 합니다.


  사람은 어린이일 때나 어른일 때나 배웁니다. 어린이도 서로서로 가르치고, 어른도 서로서로 가르칩니다. 나이 다섯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마흔다섯 살이든 여든다섯 살이든, 싱그러이 살아가는 넋이라면 언제나 배우고 늘 가르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마움과 즐거움을 누릴 때에는 무엇이든 기쁘게 배우고 예쁘게 가르칩니다. 오늘 하루 어제 하루 고맙고 즐겁게 누린다고 느끼지 못할 때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어느 것도 가르치지 못해요.


  스스로 즐거울 때에 스스로 즐겁게 배웁니다. 스스로 고마울 때에 스스로 고맙게 가르칩니다. 어떤 지식이라서 배우지 않고, 어떤 지식이기에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자격증을 배우지 않으며, 어떤 자격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삶을 배워요. 삶을 느끼고 삶을 좋아해요.

 

 


.. 좋은 시는 우리를 무감하게 길들이지 않고 매일 새롭게 아파하며 신생하게 한다 ..  (26쪽/이은정의 시읽기)


  날마다 즐거이 누릴 삶인 줄 느낄 때에는 시를 읽으며 내 넋이 온통 시가 됩니다. 언제나 고맙게 누리는 사랑이라고 느낄 때에는 그림 하나 읽으며 내 얼이 가득 그림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글 한 줄은 글 한 줄이 되어 즐겁습니다. 노래 한 가락은 노래 한 가락이 되어 기쁩니다. 그림 한 장은 그림 한 장이 되어 아름답습니다.


.. 서점에 가서 비닐에 포장된 이 책을 뜯어 보지 말자. 책값을 아까워 하는 사람은 영혼이 가난해진다 ..  (29쪽/류대성의 청소년책 읽기)

 


  논밭에서 땀흘리기를 아까워 할 때에는 곡식이든 푸성귀이든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땀방울 알뜰히 흘릴 때에 맛나게 먹을 곡식이랑 푸성귀를 거둡니다. 나무는 언제나 힘껏 길어올린 밥과 물을 가지마다 골고루 보내며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소담스레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사랑스레 여길 때에 아이가 씩씩하고 맑게 자랍니다. 아이하고 부대끼는 하루를 살가이 보듬을 때에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큽니다.


  책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책으로 일굴 넋이 말라비틀어집니다. 품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내 삶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손 맞잡으며 마실을 다니거나 아이하고 밭고랑이 나란히 앉아 김매기를 싫어할 때에는 내 밥그릇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고운 말 어여쁜 말 섞기를 귀찮다 여길 때에는 내 말이 말라비틀어집니다.

 


.. 지난 2월 24일 ‘손바닥TV’에 출연해서는 “시인이 시는 안 쓰고 왜 그런 곳에 가 있느냐고 하는데, 이게 모두 시”라며 웃었다 ..  (39쪽/송경동 시인 만나기)


  모든 하루가 모든 책입니다. 모든 삶이 모든 이야기입니다. 시가 아닌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태어나지 않는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빚지 못할 삶은 없습니다. 시로 영글 수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소설로 태어납니다. 모든 이야기는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철학이든 다른 이름 다른 옷을 입고 태어납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며 시를 쓸 줄 알기에 삶을 쓸 줄 압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할 줄 알기에 시를 쓰며 삶을 누릴 줄 압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래며 끙끙 앓기에 시를 쓰고 삶을 읽을 줄 압니다.


  아이한테는 어버이 말 한 마디가 사랑밥입니다. 어버이한테는 아이 말 한 마디가 믿음밥입니다.

 


..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영어를 쓰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담으며 사랑할 말을 이렇게 놓치거나, 잃거나, 버렸구나’ 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넋으로 곱게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  (42쪽/《뿌리깊은 글쓰기》 소개)


  좋은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좋은 넋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밥상을 차리지 못합니다. 좋은 꿈이 아니고서는 좋은 말이 샘솟지 않습니다.


  삶을 책 하나로 꽃피우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할까요. 삶을 책 하나로 갈무리하며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할까요.


  다달이 나오는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는 어떤 사람들 어떤 삶과 어떤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을까요.

 


.. 우리 도서관(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의 요즘 동향을 보면 교과 과정에 연계된 책들이 가장 많이 대출된다. 다른 도서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몇 학년과 연계된 문학 읽기라든가, 과학 교과서와 연계된 과학 원리와 같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통계를 보는 입장에서 문학이나 학습 원리를 순수하게 바라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  (84쪽/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 대표 김윤순)


  아이들이 학교 교과서를 더 잘 외우도록 돕는 부교재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다 하면, 도서관이 설 뜻은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지식을 외우고 점수를 따는 시험만 치르도록 하는 학교라면, 학교가 설 값어치는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아이들 삶을 사랑하며 아이들 꿈을 밝히는 책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이들 믿음과 이야기를 북돋우는 어버이하고 하루하루 예쁘게 누리지 못한다면, 아이들한테 도서관은 어떤 뜻인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동무를 곱게 사귀며 즐거이 어깨동무하지 않고서, 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점수따는 겨루기를 일삼는다면, 학교란 이 지구별에서 아무 값어치를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98쪽짜리 조그마한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하나로 어떤 삶을 밝힐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는 사람들 삶에 얼마나 스며들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에 서린 이야기 하나는 우리들 아름다운 터전을 얼마나 따사로이 품을 만한 손길이 될까요.

 

  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잉글리쉬 존’처럼, ‘코리아’ 아닌 한국땅이지만, 도서관보다는 ‘라이브러리’를 말해야 합니다. 책을 책이라 적기보다는 ‘冊’으로 적어야 맛이라 여기는 지식인이 꽤 많고, ‘book’으로 적는 기자가 무척 많으며, 그예 ‘리브로’를 이야기하는 책일꾼이 많습니다. (4345.3.16.쇠.ㅎㄲㅅㄱ)


―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 (도서관미디어연구소 엮고 펴냄,2012.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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