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쟁터로 간 책들 - 진중문고의 탄생
몰리 굽틸 매닝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8



군대에서 책보다 값어치 있는 것은 없었다

― 전쟁터로 간 책들

 몰리 굽틸 매닝 글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6.6.25. 15000원



  미국이 독일하고 일본과 전쟁을 치르던 1940년대에 책 한 권이 전쟁터 군인한테 어떤 구실을 했는가를 살핀 《전쟁터로 간 책들》(책과함께,2016)을 읽습니다. 이 책을 쓴 몰리 굽틸 매닝 님은 그무렵 벌어진 전쟁과 얽힌 자료를 꼼꼼이 다루면서 ‘진중문고’ 이야기를 씁니다.


  1940년대 미국 군부대에서는 처음에 ‘승리도서’를 모았다고 합니다. 전쟁터에 있는 군인이 마음을 쉬거나 달래도록 도울 만한 책을 ‘민간 기부’라는 틀로 그러모아서 보내 주었다고 해요. 수만 권도 수십만 권도 아닌 수백만 권을 모아서 전쟁터로 책을 보냈다는데, 한국 역사를 헤아린다면 꿈만 같은 숫자이자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는 1940년대 첫무렵에 ‘사람들한테 책을 읽히자’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아직 어렵기도 하지요. 그때에는 식민지살이를 하며 ‘말’마저 빼앗겼으니까요.



동유럽에서 로젠베르크 부대는 무려 375개의 문서 보관소, 402개의 박물관, 531개의 연구소, 957개의 도서관을 불태워버렸다. 나치는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서는 모든 책의 절반, 러시아에서는 5500만 권의 책을 불태운 것으로 추정된다. (33쪽)


책은 치료 효과를 발휘하여 병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과 비극을 더 잘 견디게 해 주었다. 육군의 정신과 의사들은 책이 병사들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위로를 준다고 동의했다. (77쪽)



  독일은 1930∼40년대에 이웃 여러 나라로 쳐들어가면서 그 나라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그야말로 아작을 내었다고 합니다. 독일이 내세우는 제국주의하고 어긋나는 생각을 다룬 책은 샅샅이 캐내어 불살랐다지요. 책을 불사르면 사람들을 ‘독일주의’로 이끌 수 있다고 여겼구나 싶어요. 책을 없애고 학교에서 제국주의를 가르치면 사람들을 모두 바보로 길들일 수 있다고 여긴 몸짓이라고 느낍니다.


  미국은 독일하고 맞서는 전쟁을 치르면서 거꾸로 ‘새로운 책을 엄청나게 찍으려’ 했답니다. 다만, 전쟁을 치르면서 자원을 모조리 전쟁에 쏟아붓느라 나라마다 ‘책을 찍을 종이나 천’가 모자랐다고 해요. 이때에 ‘새로운 페이퍼백’을 생각해 냈고, 아주 적은 돈과 종이를 써서 아주 많은 책을 찍는 길을 새롭게 열었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주머니에 담배를 가득 챙기고 초코바를 한 움큼씩 집어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은 뭐니 뭐니 해도 진중문고였다 … 마침내 상륙함에 타게 되었을 때 자신의 배낭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달은 군인들은 부두 근처에 불필요한 물건들을 내버리고 휴대물품을 가볍게 했다. 이렇게 버려진 물건들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쌓였지만, 그 지역을 청소한 군인들은 그 물건들의 무더기들 사이에서 “진중문고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47쪽)



  《전쟁터로 간 책들》 끝자락을 보면, 전쟁 끝무렵 연합군한테 포로가 된 독일군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일군 포로는 수용소에서 ‘미국에서 찍은 영어로 된 진중문고’를 읽으면서 시름을 달래기도 했답니다. 전쟁터에 나간 미국 군인한테 둘도 없는 벗이 된 책일 뿐 아니라, 연합군한테도, 또 독일군한테마저 ‘책’은 더없이 살가운 벗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전쟁터 군인들이 얼마나 이 책(진중문고)을 아꼈는가 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벌일 적에도 다른 물품은 버리더라도 책은 거의 안 버리더라고 합니다. 가까스로 바닷가에 닿아 포격을 겨우 벗어나기는 했으나 몸이 다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군인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그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고 해요. 병원으로 실려가서 수술을 받을 적에도, 수술을 받고 아픈 몸을 달랠 적에도, 책은 늘 군인 곁에서 가장 가까운 벗으로 있어 주었다고 합니다.



일부 군인들은 영어로 된 책이나 낯익은 잡지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으며 그리하여 이후 평생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167∼168쪽)


“도서관에 진중문고 한 상자가 들어오자 수병들은 초콜릿 상자를 받은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책을 집어들기 시작하더군요. 진중문고는 바다를 항해하던 많은 나날 동안 수병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했습니다.” 또 다른 수병은 이런 글을 남겼다. “입대한 이후 저는 진중문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177쪽)



  오늘날 한국 군대는 어떠한지 잘 모릅니다. 나는 내가 군대에 있을 무렵을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나는 1990년대에 군대에 있을 적에 한 달에 한 번씩 ‘책 태우기’를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흔히 ‘관물 검사’를 하는데, 이때에 웬만한 책은 거의 ‘불온도서’ 딱지를 받습니다. 이런 책을 쓰레기하고 함께 태우도록 시켜요.


  책은 그냥 태우면 잘 타지 않으니 북북 찢어서 태워야 합니다. 옆에서 중대장은 책을 제대로 찢어서 제대로 태우는가를 지켜봅니다. 등에 따가운 눈길을 받으면서 책을 찢어서 태우다가도 중대장이 자리를 비우면 잿더미에 몇 가지 책이나마 슬쩍 숨겨서 다 태운 척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잿더미에 묻은 뒤 밤에 몰래 내무반에 돌릴라 해도 중대장은 불쏘시개로 잿더미를 구석구석 뒤지기 일쑤라, 책을 제대로 안 태웠다고 한소리를 듣고 얼차려를 받곤 했습니다.


  책이란 읽지 말고, 책하고는 담을 쌓으며, 그저 위에서 시키는 짓만 하라는 한국 군대나 사회였다고 느낍니다.



이등병이 말했다. 고작 8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포탄이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상황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신 그는 “운명에 자신을 맡기고” 책장을 넘기면서 주변 환경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책에 빠진 그는 차분하게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190쪽)


“영국 친구들은 미국 군인들이 받는 대우에 놀라면서 자기 나라에 불만을 토로하더군요.” 많은 영국 군인은 왜 정부가 페이퍼백을 제공함으로써 영국군의 사기를 북돋우지 않는지를 의아해했다. (226쪽)



  전쟁터로 간 책들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꿈꾸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쟁터로 간 책들은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던 젊은이들한테 꿈을 꾸는 마음을 심어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눈앞에서 삶과 죽음이 엇갈리더라도 책 한 권을 뒷주머니에 꽂으면서 다시금 기운을 차려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되새겼구나 하고 느껴요.


  참으로 큰 몫을 맡은 책이로구나 싶은데, 책이 이런 큰 몫을 맡는다면 전쟁터 아닌 여느 삶터에서도 똑같이 큰 몫을 맡을 만하리라 봅니다. 시름을 달래어 주고, 꿈을 지피도록 북돋우고, 사랑을 그리도록 이끌고, 생각을 새롭게 가꾸도록 돕는 책이니까 말이지요.


  어리석은 전쟁을 멈추고, 어리석은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면서, 삶자리와 마을에 아름다운 꿈이 흐를 수 있기를 빕니다. 총을 들지 않고 책 한 권을 들 수 있기를, 철조망이나 탱크가 아니라 도서관을 세울 수 있기를, 군부대가 아니라 평화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을을 가꾸는 데에 힘을 쏟을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2016.7.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33



아름다운 삶을 문학에서 읽는 눈

―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테리 이글턴 글

 이미애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2016.1.15. 16000원



  우리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아름답게 빚으면 이를 ‘문학’이라고 합니다. 그냥 쓰는 글로는 아름다운 숨결이 되지 않아서 문학이라 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병뚜껑에 적힌 ‘돌리세요’ 같은 글이라든지, 과자 봉지에 적힌 ‘뜯는 곳’ 같은 글은 따로 문학이라 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나 선풍기를 새로 장만할 적에 받는 설명서를 놓고도 문학이라 하지 않아요. 지식이나 정보를 들려주기만 하는 글은 그냥 ‘지식 글’이나 ‘정보 글’이에요.


  그렇다고 문학에서 지식이나 정보를 안 다루지는 않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이 붙는 글은 지식이나 정보조차 아름답게 다루는 글이라 할 수 있어요. 정치나 경제 이야기도 아름다움이 흐르는 문학으로 빚을 수 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도 얼마든지 아름다움이 숨쉬는 문학으로 엮을 수 있어요.



텍스트의 해석에 옳은 방법과 그릇된 방법이 있습니까? 어떤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더 타당하다고 입증할 수 있을까요? (19쪽)


어쩌면 이 시는 여기서 가을을 묘사하면서 부지불식간에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61쪽)



  2013년에 “How to Read Literature”라는 이름으로 나왔다고 하는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책읽는수요일,2016)을 읽습니다. 영어로 나온 책이름을 곰곰이 헤아린다면 “어떻게 문학을 읽는가”나 “문학을 어떻게 읽는가”라 할 만합니다. 한국말로 나온 책에서는 ‘어떻게’가 빠졌어요. 다시 말하자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이라는 책은 ‘독자’라는 눈을 넘어서 ‘비평가’라는 눈으로 문학을 바라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글을 읽을 적에 ‘독자 자리’에 얌전히 머물지 말고, ‘우리 스스로 저마다 다른 비평가 자리’에 서서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연극은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존재의 환영적 속성에 관한 진실입니다. (97쪽)


많은 사실주의 소설은 독자가 그 인물들과 동일시하기를 요청합니다. 독자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떠할지 느끼리라고 예상합니다. (145쪽)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쓴 테리 이글턴 님은 ‘비평가 눈’은 한 갈래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는 테리 이글턴이라고 하는 분 눈길로 ‘문학을 읽는 길’을 보여주는데, 우리는 ‘테리 이글턴처럼’ 문학을 읽을 수도 있고, ‘테리 이글턴이 안 하듯이’ 문학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대학교수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중학생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시골지기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청소부로서 읽을 수 있고, 누군가는 의사나 간호사로서 읽을 수 있어요. 시장으로서 읽을 수 있고, 전업주부로서 읽을 수 있어요.


  그러면 가장 나은 눈은 있을까요? 문학을 읽는 가장 훌륭한 길은 있을까요? 문학을 비평하고, 문학을 말하며, 문학을 다루는 가장 놀라운 눈이 따로 있을까요? 문학을 이야기하는 가장 재미나거나 즐거운 길이 참말 따로 꼭 한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사적 경험을 맹목적으로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끌어 내라는 조언을 이따금 받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 너머의 그 어떤 경험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가 기록하는 고뇌의 감정은 순전히 허구적일 수도 있지요. (254, 255쪽)



  문학책이 아닌 만화책을 읽을 적에도 ‘한 갈래 눈’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읽기 마련입니다. 나이에 따라서 다르게 읽기 마련이고, 살아온 발자국에 따라서 다르게 읽기 마련이에요. 같은 만화책을 놓고도 가시내하고 사내가 다르게 읽겠지요. 군인과 민간인이 다르게 읽을 테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하고 평화를 안 믿는 사람은 또 다르게 읽을 테지요.


  그런데 우리가 문학을 어떻게 읽든 문학은 늘 문학입니다. 내가 이 문학을 썩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이 문학은 언제나 이 문학 그대로예요. 내가 이 문학을 몹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학은 늘 이 문학 그대로입니다. 남들이 어느 문학을 손가락질하거나 깎아내린다고 하더라도 늘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 생각’일 뿐입니다.


  문학은 추켜세울 수도 없고 깎아내릴 수도 없습니다. 잘 쓴 글이나 못 쓴 글이 있다기보다 ‘잘 썼다고 여기는 눈’이 있고, ‘못 썼다고 여기는 눈’이 있을 뿐이에요. ‘즐겁게 바라보는 눈’이 있고, ‘안 즐겁게 바라보는 눈’이 있어요. 그리고, 이처럼 사람들마다 다르게 읽을 수 있기에 문학은 비로소 문학다우리라 느껴요. 문학을 가리켜 ‘생각과 느낌을 아름답게 빚은 글’이라고 할 적에는 참말 사람들마다 다 다른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슬픔이나 짜증이나 보람이나 사랑을 문학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가창 독창적이지 못한 비평 양식은 작품의 줄거리를 그저 다른 말로 바꿔 얘기하는 것입니다. (280쪽)


각각의 예술 작품은 기적과 같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것은 신의 세계 창조 행위의 모방이자 반복이지요. (329쪽)


이누이트족의 풍부한 시를 탐구하는 데 몰두한 영국인 독자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양쪽 모두 다른 문명의 예술을 즐기려면 자신의 문화 환경 너머로 나아가야 합니다. (345쪽)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쓴 테리 이글턴 님도 이야기하듯이, ‘작품 줄거리’를 읊는 글은 비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글은 그저 ‘줄거리 소개글’일 뿐입니다. 줄거리를 늘어놓기만 한다면 ‘줄거리 늘어놓는 글’이에요.


  비평이라는 눈으로 바라보자면, ‘작가 스스로 작가 나름대로 품은 생각과 느낌을 담은 글’을 읽은 ‘비평가 스스로 비평가 나름대로 품은 생각과 느낌을 담아서 말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작가 목소리를 내야 ‘창작’이요,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비평가 목소리를 내야 ‘비평’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스스로 노래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어야 해요. 내 꿈을 내가 손수 밝혀서 드러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어야지요. 내 사랑을 내가 기쁨으로 나누려고 하는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요.


  문학을 빚는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삶을 글로 아름답게 빚습니다. 문학을 누리는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삶을 문학이라는 글에 비추어 새롭게 읽습니다. ‘문학쓰기’는 작가 나름대로 펼치는 ‘삶쓰기’라면, ‘문학읽기’는 비평가(또는 독자) 나름대로 즐기는 ‘삶읽기’라고 할까요.


  작가 한 사람은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길을 걸으면서 문학을 빚는다고 봅니다. 비평가(또는 독자) 한 사람은 삶을 아름답게 지으려는 길을 바라보려고 문학을 읽는다고 느낍니다. 작가와 비평가는 서로 아름다움으로 만나고, 우리는 이 아름다움을 기쁘게 마음밥으로 먹으면서 문학책 한 권을 손에 쥡니다. 2016.2.2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동네서점의 유쾌한 반란
백창화.김병록 지음 / 남해의봄날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3

 

 

기쁨 누리는 ‘책마실’로 마을 살리기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백창화·김병록 글·사진
 남해의봄날 펴냄, 2015.8.15. 16500원

 

  전남 순천에 〈형설서점〉이라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오래된 책방입니다. 순천 버스역에서 걸어가면 7분쯤 걸리는 이곳을 틈틈이 찾아갑니다. 제가 사는 전남 고흥에서는 서울이나 광주나 부산이나 인천 가는 버스는 있으나 다른 고장으로 가는 버스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구나 진주를 간다든지, 또 장흥이나 음성이나 전주나 아무튼 다른 고장에 가야 한다면 으레 순천으로 가서 다른 시외버스로 갈아탑니다. 고흥에서 장흥으로 가자면 벌교만 거쳐서 가도 됩니다. 그렇지만 굳이 순천까지 조금 더 돌아서 갑니다. 왜냐하면 애써 마실을 하는 김에 순천에 있는 헌책방에 들러서 책마실도 함께 누리면 한결 즐겁거든요.

  헌책방이라고 하는 곳은 아주 뜻있고 재미있는 책터이면서, 책문화를 밝히는 잣대 구실을 하기도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헌책방이 있는 고장’은 ‘사람들이 책을 좀 사서 읽는 곳’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있어야, 이 새책이 흘러서 헌책방으로 갈 수 있습니다.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드물거나 너무 적으면 새책방도 버티기 힘들 테지만, 헌책방은 아예 생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책을 널리 즐기는 사람’이 꽤 있어야 헌책방이 자리를 지킵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이 있는 고장’은 ‘책을 읽는 숨결이 그윽한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 한 곳이나 여러 곳이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책이 돌면서, 마을책방에서 새책을 꾸준히 사서 읽는 사람이 넉넉히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들은 일부러,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찾아온 것이다. ‘책’을 찾아. (18쪽)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방 대도시에서는 도서관 붐이라고 할 만큼 괄목할 만한 성장이 이어졌지만 지방 소도시, 특히 주민이 많지 않은 시골 마을에는 여전히 책문화라고 할 만한 것도, 책 문화공간도 부족했다. (25쪽)

 


  백창화·김병록 두 분이 빚은 이야기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남해의봄날,201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백창화 님하고 김병록 님은 충청북도 괴산 시골집에 ‘숲속작은책방’에 열어서 ‘시골책방’이자 ‘마을책방’을 지킨다고 합니다. 시골로 삶터를 옮겨서 살기 앞서 경기도 일산에서 ‘도서관’을 열어서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분이 열어서 지킨 도서관은 국공립도서관은 아닙니다. 개인도서관입니다. 두 분이 아이하고 즐겁게 읽고 나누려고 하는 책을 다른 이웃한테도 널리 열어서 함께 즐기는 터전을 가꾸었다고 해요.


우리는 이곳 시골 마을 작은 책방에서 서점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서점이란, 그곳에 들어가면 반드시 책을 한 권이라도 사들고 나와야 하는 곳 … 이 서점들이 있어 주어서 고마웠던 이들, 이왕이면 내 집 옆에 술집이 있기보다는 서점이 있었으면 하는 이들이라면 서점에서 지갑을 열어 달라는 뜻이다. (39쪽)

  시골에서 책방을 꾸리는 두 분이 쓴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에서는 도서관이 도서관답게 서기 몹시 어렵습니다. 아직 한국 도서관은 ‘어린이책 분류’가 너무 어렵습니다. 아니, 어린이책을 따로 갈래를 나누어서 갈무리할 만한 틀이 제대로 서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린이책은 ‘어린이책 도서관’에 있으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책’이기 때문에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이건만, 이 대목을 제대로 바라보는 도서관 정책이나 문화가 거의 없다고까지 할 만해요.

 

  전국에 있는 수많은 국공립도서관을 보면, 건물이 제법 번듯해도 ‘한 해 새책 구입 예산’이 대단히 적습니다. 새로 나오는 아름다운 책을 모두 장만해서 갖출 수 없을 만큼 적어요. 때로는 ‘도서관 도서구입비’가 ‘예산 삭감’으로 잘려 나가기까지 합니다.


  나라에서 꾸리는 국공립도서관마저 이러하다 보니, 나라에서는 마을책방(새책방하고 헌책방 모두)을 제대로 돕거나 북돋울 만한 정책이나 제도나 행정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마을책방을 지키는 분들이 늘 짊어지는 임대료 걱정을 풀어 주는 일이 없어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명성을 듣고 찾아오지만 그들이 머무는 30여 분, 서점 안은 카메라 찰칵이는 소리만 가득하고 독자를 그리워하는 책들의 기다림은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스마트한 소비자들에게 서점이란 책의 실체를 확인하는 곳일 뿐, 구매의 장은 온라인이기 때문이다. (65쪽)


  책방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책방은 책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면, 책을 만나서 어떻게 할까요? 책을 만나서 ‘사는’ 곳이지요. ‘사서 읽을 책’을 만나는 곳이 책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도 책을 만나는 곳인데, 도서관은 한 마을에서 함께 사는 여러 이웃이 ‘서로 돌려서 읽을 아름다운 책을 만나는 곳’이고, 책방은 ‘내 삶을 스스로 가꾸는 길동무가 되는 고마운 책을 만나서 장만하는 곳’입니다.

 


왜 서점이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바로 그가 서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데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116쪽)

  책을 사는 까닭은 책을 읽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니 책을 삽니다. 책을 빌리는 까닭도 책을 읽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돈이 없거나 적거나 모자라다면 도서관에 가지요. 그리고 ‘굳이 우리 집에 갖추어 놓을 만하지는 않으나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 갑니다.


  책방에는 왜 갈까요? 두고두고 집에 갖추어 둘 만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고마운 책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수집품이나 장식품이 아니라, 아니 수집품이나 장식품으로 책을 사도 좋아요. 사치품을 가득 장만해서 집을 꾸미기보다는 아름답고 멋지며 훌륭한 책을 넉넉히 사서 집을 꾸며도 대단히 좋아요. 돈이 많은 이라면 집안을 책으로 꾸미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돈이 많은 이들은 그 많은 돈으로 책을 왕창 사들여서 집안을 꾸미되, 석 달마다 책갈이를 해 주면 아주 좋지요. 똑같은 책으로 석 달 넘게 ‘장식하는’ 일은 그리 예쁘지 않아요. 돈이 많은 이들은 멋지고 훌륭한 책으로 집안을 장식하되, 석 달마다 이 책들을 모두 헌책방에 내놓아 줄 노릇입니다. 이러면서 ‘돈이 많으니까’ 새로운 책을 다시 왕창 사들여서 집안을 새롭게 꾸며 주어야지요. 그러면 돈이 적지만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수많은 이웃들은 즐겁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책은 스스로 읽으려고 장만합니다. 스스로 다시 읽고 되읽고 자꾸 읽으면서 ‘내 손때’를 묻히려고 책을 장만합니다.


  빌려서 읽는 책은 아주 깨끗하게 읽고서 돌려줍니다. 사서 읽는 책도 정갈하게 읽고 건사할 노릇인데, 사서 읽는 책에는 내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책 귀퉁이에 적어 넣기도 해요. 밑줄도 긋고 동그라미도 하면서 ‘온누리에 오직 하나 있는 내 책’으로 다스립니다.

시골로 이사하기 위해 도서관 문을 닫고 쉬면서 순전히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책 구입과 독서를 시작했다. 도서관 운영비 걱정을 할 일이 없으니 생활에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만큼 무지막지한 책 구매가 이어졌다. (94쪽)

 

이곳이 카페가 된다면 사람들이 오히려 책을 사 가지 않고 차 한 잔 마시면서 공짜로 책을 보는 곳이 될 것 같았다. 아끼는 책들을 커피 한 잔 가격에 마구 망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149쪽)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함께 쓴 두 분은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 두 사람이 도시를 기쁘게 떠나서 시골에서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려 하면서 빚은 ‘시골책방’ 이야기입니다. 둘째, 두 사람이 시골에서 씩씩하게 지키는 ‘마을책방’처럼 한국에서도 마을에 뿌리를 내려서 씩씩하게 한길을 걷는 아름다운 이웃을 만나러 나들이를 다닌 이야기입니다.


  저는 ‘책마실’이나 ‘책방마실’ 같은 말을 지어서 씁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책마실을 다닙니다. 도서관에 간다든지 ‘책 많은 이웃집’에 가는 일은 책마실입니다. 책 한 권이랑 도시락을 자전거 바구니에 담고서, 나무그늘이 싱그러운 곳으로 마실을 다녀오는 일도 책마실입니다. 책방마실은 ‘책을 살 수 있는 곳(새책방과 헌책방 모두)’으로 가는 일입니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보면 서울과 부산에 있는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뜻있는 책터를 두루 보여줍니다. 여기에 전국 여러 곳 책터를 살며시 곁들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전라남도 마을책방’ 이야기는 없더군요. 나중에 뒷이야기를 쓰실 수 있다면 그때에는 전라남도 마을책방도 두루 돌면서 쓰실 수 있겠지요. 백창화 님하고 김병록 님이 시골에서 마을책방을 하시는 만큼, 서울이나 부산에 있는 ‘꼭 소개하지 않아도 잘 알려진 책터’보다는 시골이나 작은도시에서 씩씩하게 책삶을 짓는 이웃님들한테 조금 더 눈길을 쏟을 수 있었으면 이 책이 한결 야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 옆에 있는 인천이나 부천에 있는 다부지고 사랑스러운 책터 이야기도 이 책에는 빠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주에 반디앤루니스가 아니라, 영풍문고가 아니라, 진주문고가 있어야 할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우리들은 지역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이름을 잃자 이야기도 잃었다. 이야기를 잃으면 삶은 껍데기만 남는다. (172쪽)

  경상남도 진주는 참 재미있는 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충청북도 청주와 전라북도 전주도 진주와 함께 아주 재미있는 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주와 청주와 전주에는 그 고장에서 무척 오랫동안 터를 닦은 멋진 ‘새책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주와 청주와 전주에는 작은도시이지만 ‘헌책방’이 꽤 많습니다.


  오랜 지역 책방이 새책방과 헌책방으로 여러 군데 함께 있는 세 고장(진주와 청주와 전주)은 작은도시 가운데 젊은이가 퍽 많은 고장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책을 읽는 숨결’이 흐르는 고장에서는 젊은이가 그 고장에서 즐겁게 뿌리를 내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책방이 있어야 젊은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책방조차 없는 고장’에서는 지역을 살리거나 살찌우려고 하는 숨결이나 기운이 여리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지역 책방은 ‘책을 만나는 곳’일 뿐 아니라, ‘책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역을 가꾸거나 살리려고 하는 사람들 몸짓’이 새롭고 새삼스레 모여서 ‘작아도 알차’고 ‘작지만 씩씩’한 지역문화를 북돋우는 일을 크고작게 벌입니다.

 


책이란 삶의 다른 말이다. 다른 이의 삶의 역사와 흔적 없이 오늘 우리들의 삶이란 없다. (275∼276쪽)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쓴 두 분은 괴산에서 ‘숲속작은책방’을 앞으로도 알차고 야무지게 가꾸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 있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방이웃’하고 ‘책이웃’을 두루 만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다음 이야기도 쓰실 수 있기를 빌어요. 전국에 있는 작은 책방이 “책 쫌 파는” 이야기를 넘어서 “삶 쫌 짓는” 이야기와 “사랑 쫌 나누는” 이야기도 새록새록 길어올릴 수 있기를 빌어요.


자연 속에서 책을 보자! 어쩌면 이 말은 그저 허울 좋은 구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시골 마을로 귀촌한 이후 우리가 발견한 최대의 수확은 바로 자연 속에서 책을 보는 경험이다. (190쪽)

  창문을 열고 가만히 들바람하고 숲바람을 마십니다. 수많은 풀벌레하고 멧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가을에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봄에는 봄 하늘을 올려다보지요. 아이들하고 마당이나 고샅을 씩씩하게 달리기도 하면서 놀다가, 조용히 책을 들여다보다가, 자전거를 함께 타고 들길을 누비기도 합니다.


  책은 종이책도 책이면서 삶도 삶책이라고 느끼기에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여러 가지 책을 함께 누립니다. 자전거를 몰아 바닷가에 가면 ‘바다책’을 읽습니다. 자전거를 낑낑거리면서 고갯길을 달리면 골짜기에서 ‘골짝책’을 읽습니다. 마당에서 뛰놀면 ‘마당책’이고, 우리 집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톡톡 따서 먹으면 ‘나무책’입니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해님책’이요 밤마다 쏟아지는 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바라기를 하면서 ‘별님책’입니다.

 

  오늘 하루도 전국 곳곳에서 기쁘게 아침을 열고 즐겁게 저녁을 마무리지으면서 마을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아름다운 ‘책방이웃’을 헤아려 봅니다. 책방이 마을을 살리는 삶을 헤아리고, 마을이 책방을 살리는 사랑을 헤아려 봅니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97



삶을 사랑하는 책 한 권이 여기에 있으니

― 책으로 가는 문

 미야자키 하야오 글

 송태욱 옮김

 현암사 펴냄, 2013.8.8. 13000원



  나는 맨발로 다니기를 즐깁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맨발로 뛰놀기를 즐깁니다. 맨발로 땅을 디디면 발바닥을 거쳐서 땅바닥 기운이 온몸으로 퍼집니다. 이때에 이 지구별이 어떤 숨결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맨발로 풀밭이나 마당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지구별도 사람처럼 콩닥콩닥 숨을 쉬네 하고 느낍니다.


  지구별이 숨을 쉬는구나 하고 느끼면, 우리가 사는 이 별에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없습니다. 사람과 똑같이 숨을 쉬는 지구별이네 하고 느낄 적에는, 우리가 사는 이 별에 아름다운 바람이 볼 수 있도록 슬기롭게 하루를 짓자는 생각이 듭니다.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합니다. 꿈을 꾸는 넋으로 아이들하고 보금자리를 가꾸자고 생각합니다.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몸짓으로 빨래를 하고 밥을 짓자고 마음을 다스립니다. 모든 날은 기쁨이요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처음으로 다 읽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말로 내뱉으면 소중한 뭔가가 빠져나가버릴 것만 같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습니다. (18쪽)


애니메이션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작은 비할 데 없이 멋진 이야기입니다. 학창 시절 저는 이웃에 사는 여자 친구에게 푸우 이야기를 읽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음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36쪽)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쓴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어릴 적에 읽은 여러 동화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뒤에, 요즈음 아이들한테 ‘이런 아름다운 책을 읽어 보지 않겠니?’ 하고 알려주는 책입니다.


  쉰 권에 이르는 책을 짤막하게 소개합니다. 줄거리를 밝히거나 교훈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쉰 권에 이르는 책을 ‘어른으로 선 오늘’에 되새기면서 ‘아이로 있는 이웃이 오늘 누릴 꿈’을 북돋우려고 하는 말마디가 흐릅니다.



이 사람의 작품은 모두 보물입니다.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됩니다. 찬찬히 몇 번이고 읽고, 소리 내서 읽고, 그러고 나서 마음에 울리는 것이나 전해 오는 것에 귀를 기울이며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 며칠 지난 후에 다시 읽고, 몇 년 지나고 나서도 읽고, 잘 일지도 못하는데 왜 눈물이 나는 것일까 생각이 들고 (46쪽)


저자는 정신의 광채 같은 것을 지닌 사람인 듯합니다. 무척 선량하고 지혜로우며 단단하고 반짝반짝하며 따뜻합니다. (51쪽)



  곰곰이 헤아려 보면, 모든 어린이문학(동화책, 동시집)은 어른이 아이한테 베푸는 선물입니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은 ‘아이들이 이 책을 많이 사서 읽어서 돈을 잘 벌어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은 ‘문학상을 타야지!’라든지, ‘작가로서 이름을 드날려야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오늘 아이로 사는 이웃한테 오늘 하루를 마음껏 누리면서 기쁘게 뛰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어린이문학을 씁니다. 온몸을 움직여서 뛰노는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쁘게 웃기를 바라기에 어린이문학을 씁니다. 한참 뛰놀다가 지친 아이들이 땀을 훔치면서 책 한 권을 살며시 펼치기를 바라면서 어린이문학을 씁니다. 몸을 가꾸고 마음을 돌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자라기를 바라니 어린이문학을 씁니다.



아이들 놀이 세계는 현실과 공상의 경계가 없습니다. 공간에도 시간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나카가와 리에코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몇 번이나 서로 울리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손을 잡고 돌아갑니다. (99쪽)



  삶을 사랑하는 책은 온누리 곳곳에 있습니다. 책이 된 나무가 자라는 숲도 아름다운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무를 베어서 종이를 얻은 뒤에 글씨를 잉크로 박아서 넣을 때에만 책이지 않습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푸른 바람이 살랑이는 숲도 통째로 책입니다.


  나무에 둥지를 튼 멧새도 책입니다. 숲에서 날갯짓하는 나비도 책입니다. 나무 둘레에서 곱게 피어난 들꽃도 책입니다. 두더지와 지렁이도 책이요, 구름하고 빗물도 책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날씨를 헤아리던 옛사람 매무새도 책을 읽는 몸짓이라고 할 만합니다. 모시풀에서 실을 얻어서 모시옷을 짓던 옛사람 살림살이도 책을 읽는 몸짓이라고 할 만해요.


  씨앗을 심어서 거두던 몸짓이 오롯이 글쓰기에다가 책읽기입니다. 밥을 지어서 차리는 어버이 손길은 옹글게 글쓰기이면서 책읽기입니다. 자장노래를 부르고, 이불깃을 여미며, 젖을 물리는 어버이 손짓도 사랑스레 글쓰기이면서 책읽기예요.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55쪽)



  《책으로 가는 문》은 ‘책으로 가는 수많은 길’ 가운데 하나인 ‘종이책 읽기’를 다룹니다. 어린이문학을 쓴 수많은 어른이 저마다 어떤 사랑을 글 한 줄에 담았는가를 들려주면서, 아이들이 기쁜 선물을 반가이 받아들이면서 너른 꿈을 그득그득 키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아이들한테 선물인 어린이문학은 어른한테도 선물입니다. 명작동화나 고전동화가 아닌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을 함께 누리는 어른이 되어 보셔요. 어린이하고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해맑은 웃음으로 노래하는 어른이 되어 보셔요. 어린이문학을 즐기는 어른이라면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이라면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이나 핵무기에는 눈길 한 번 안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을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어른이라면 모든 거짓을 지구별에서 활활 불태워서 모든 참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힘쓰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읽을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따사롭고 넉넉하게 빚은 선물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한테도 삶을 사랑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산들바람 같은 선물입니다. 4348.7.2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소책방 책방일지 - 동네 작은 헌책방 책방지기의 책과 책방을 위한 송가頌歌
조경국 지음 / 소소책방(소소문고)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8



작은 헌책방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꽃

― 소소책방 책방일지 1호

 조경국 글·사진

 소소문고 펴냄, 2015.6.30. 1만 원



  경남 진주는 여러모로 예쁜 곳이라고 느낍니다. 진주를 가로지르는 남강도 예쁘고, 남강을 둘러싼 나무도 예쁘며, 남강 숨결을 느끼면서 이곳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도 예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쁜 고장에 아기자기하게 깃들어 ‘마을 책살림’을 가꾸는 조그마한 책방도 예뻐요.


  진주 고속버스터미널 건물 2층에 〈소문난 책방〉이 있습니다. 남강 다리 둘레에 〈동훈서점〉이 있습니다. 봉곡광장 네거리 한쪽에 〈형설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건너편 2층에 〈소소책방〉이 있습니다.


  이들 헌책방은 저마다 다른 숨결로 책을 다룹니다. 저마다 아기자기하면서 알뜰살뜰 책을 아끼는 손길로 책손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네 군데 헌책방을 찾아나서려고 기쁘게 진주마실을 할 만하고, 진주사람은 네 군데 헌책방을 신나게 나들이를 할 만합니다.



지난 시절 즐거이 다녔던 책방들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중앙서점, 문화서점, 지리산, 송강서점, 그 외 사라진 많은 책방들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조차 선명하지 않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글 한 줄,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6쪽)




  《소소책방 책방일지》(소소문고,2015) 1호를 읽습니다. 진주에 있는 예쁜 헌책방 네 곳 가운데 2013년 11월 11일에 문을 연 〈소소책방〉 책방지기 조경국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넣어서 엮은 ‘헌책방 잡지’입니다.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잡지로는 서울에 있는 〈공씨책방〉에서 모두 아홉 권으로 선보인 《옛책사랑》이 있습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나왔습니다.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에서 모두 열한 권으로 선보인 《우리말과 헌책방》도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나왔습니다. 여기에, 진주에서 곱게 책살림을 가꾸는 〈소소책방〉이 《소소책방 책방일지》라는 이름으로 2015년 여름에 ‘헌책방 잡지’ 1호를 선보입니다. 예쁜 책살림에 걸맞게 예쁜 꾸밈새로 태어난 자그마한 책은 앞으로도 한결같이 이야기꽃을 길어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책방은 완전 난리법석입니다. 새해를 맞아 서가를 더 들이기 위해 내부 정리 중입니다. 계속 책은 느는데 공간이 부족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다음주까진 아마 어수선하겠군요. 공방에서 열심히 서가를 만들고 있는데, 혼자서 하고 있는지라 진도가 더딥니다. (14쪽)



  헌책방 〈소소책방〉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곳 누리집(http://sosobook.co.kr)에 들어가면 읽을 수 있습니다. 헌책방 책살림을 꾸리는 책방지기 가운데 ‘책방일지(책방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책방일지를 쓰더라도 공책에만 쓰시곤 하는데, 서울 홍은동에 있는 〈기억속의 서가〉 책방지기 한 분은 책방 누리집(http://cafe.naver.com/daeyangbook)에 틈틈이 책방 이야기를 올립니다.





제가 보기에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서관이나 책방에 부모님이 함께 가는 겁니다. (40쪽)


이리저리 골목을 훑으며 책방이 있는지 찾았지만 건물 안에 번듯하게 있는 책방은 딱 두 군데였고, 대부분은 사진처럼 난전을 펼쳐놓고 책을 팔았다. 추위도 아랑곳 않고 사진 속 책방 어르신은 책읽기에 몰두했다. 손님이 와도 조용히 인사만 건네고 읽기를 계속했다. 책방지기의 제일 큰 즐거움은 책을 파는 데 있지 않고, 들어온 책들을 열심히 읽는 데 있다는 것을 무시로 깨닫는다. (54쪽)



  작은 헌책방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작은 헌책방을 가꾸는 일꾼이 책을 만지면서 느낀 온갖 생각을 갈무리해서 ‘이야기씨’를 책시렁마다 심으면, 작은 헌책방으로 찾아온 책손은 책시렁을 살며시 둘러보면서 ‘이야기씨’를 얻고, 이 이야기씨는 무럭무럭 자라서 잎이 돋고 꽃이 핍니다. 책방지기하고 책손이 도란도란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에 이야기꽃은 고요히 지고, 이야기꽃이 지면서 ‘이야기알(이야기 열매)’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작은 헌책방에서 ‘이야기씨’란 무엇일까요? 바로 책 한 권입니다. 작은 헌책방 일꾼은 ‘버려진 책’을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살핍니다. ‘되살릴 책’을 차곡차곡 그러모아서 정갈하게 닦고 손질합니다. 헌책방지기 손을 탄 책 한 권(이야기씨)는 헌책방 책시렁에 얌전히 놓이고, 이 책을 알아보려고 책방마실을 한 사람(책손)은 기쁘게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가슴에 책 한 권을 품습니다.


  책손이 책방마실을 하면서 가슴에 책 한 권을 품기에, 비로소 이야기씨가 싹을 틀 수 있습니다. 책손이 책 한 권을 장만해서 첫 쪽을 넘기기에, 비로소 ‘싹이 튼 이야기씨’에 잎이 돋습니다. 책손이 책 한 권을 즐겁게 읽는 동안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책손이 마지막 쪽을 덮고서 눈을 가만히 감고 생각을 갈무리하는 사이에, 어느덧 이야기알이 맺혀요.


  씨앗을 심어서 싹이 트고 잎이 돋으며 꽃이 피도록 마을 한쪽에서 ‘이야기밭’이요 ‘이야기터’ 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마을책방(동네책방)’입니다. 작은 책방 한 곳은 작은 텃밭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작은 이야기터 노릇을 합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모일 만한 광장은 못 되지만, 여러 사람이 도란도란 모여서 웃음꽃으로 이야기잔치를 벌이는 다락방 같은 자리가 되는 마을책방입니다.




“아빠, 왜 사람 죽이는 이런 책을 읽어?” 아이가 서가에 있는 책들을 보고 물었습니다 … 대답은 “공부하려고.”였죠. 궁색한 대답이긴 하나 일부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명쾌하게 이 책들을 읽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더군요.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곤 더 이상 호기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요. (84쪽)


달력이나 질긴 사료부대 속종이를 잘라 책싸개를 했죠.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오래된 일인 듯하군요. 제가 나이를 그리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먼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이군요. 하하, 며칠 전 아이에게 새 교과서 책싸개를 해 줄까 물었는데, “촌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14쪽)



  진주에 있는 예쁜 헌책방 〈소소책방〉 책방지기는 이녁이 삶으로 늘 마주하고 겪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들려줍니다. 딸아이하고 나눈 이야기를 적고, 혼자서 생각에 잠긴 이야기를 적으며, 책 한 권을 읽다가 깨달은 이야기를 적습니다.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책방일지로 남긴 뒤, 《소소책방 책방일지》로 묶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책방지기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돌보는 작은 책터에서 피어나는 모든 노래를 글 한 줄하고 사진 한 점으로 갈무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제껏 ‘다른 사람이 쓰고 엮고 펴낸 책’을 다루는 책방이었으면, 앞으로는 ‘책방지기가 손수 쓰고 엮고 펴낸 책’을 함께 다루는 책방이 됩니다.


  바로 이 책방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나눕니다. 바로 이곳 진주에서 책방을 가꾸는 마음을 실은 책을 나눕니다.




헌책방은 버려질 책들의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350권쯤, 꽤 많은 책이 들어왔는데 차에서 책을 내리며 바로 분류 작업을 했습니다. 폐지 모으는 어르신께서 버릴 책은 바로 챙겨 달라 부탁하셔서 책방으로 들이지 않고 바로 길에서 버릴 책, 살릴 책을 나눴습니다. 가져온 책 절반 넘게 어르신께 드렸습니다. 헌책방 책방지기로 보람을 느낄 때는 내 손을 거치지 않았으면 폐지가 되었을 책들을 살렸을 때죠. (117쪽)



  책은, 많이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즐겁게 읽으면 됩니다. 책은, 꼭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사랑으로 읽으면 됩니다. 책은, 지식이 아닙니다. 책은, 스스로 지식을 찾는 길에 동무가 되어 주는 숨결입니다. 책은, 결과가 아닙니다. 책은, 꿈을 이루는 삶길을 걸어가면서 생각을 북돋우는 이웃입니다.


  어떤 책을 손에 쥐든, 책을 손에 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책이 달라집’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면, 어떤 책을 읽더라도 가슴 가득 즐거움이 샘솟습니다. 시무룩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면, 어떤 책을 읽더라도 마음자리에 시무룩하거나 슬픈 기운이 감돕니다.


  슬픈 책이나 기쁜 책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슬픈 마음일 때에는 책을 슬프게 읽고, 기쁜 마음일 적에는 책을 기쁘게 읽습니다. 너르고 따스한 마음일 때에는 책을 너르고 따스하게 맞아들이고, 아프거나 지친 마음일 적에는 책을 아프거나 지친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게 더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존’을 위해 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경쟁 사회에선 저녁이 있는 삶을 찾는다는 건 사치에 가깝습니다. 주말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예전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독서가 쉽지 않더군요. 일이 아니더라도 저녁엔 무어 그리 약속이 자주 잡히는지. 책을 펴는 시간은 집에 돌아오고 한밤이 되어서야 가능할 때가 많았습니다. (159쪽)



  책을 즐겁게 읽으면서 삶을 즐기는 사람이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책을 사랑스레 읽으면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마을에 깃든 작은 헌책방이나 새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니는 사람이 차근차근 늘어날 수 있기를 꿈꾸어요. 경남 진주에 있는 예쁜 헌책방 〈소소책방〉에서 빚은 《소소책방 책방일지》는 인터넷서점에서 장만할 수 있지만, 일부러 진주마실을 하면서 책방에서 손수 장만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자그마한 책방은 기쁘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문을 엽니다. 서울에서 인터넷신문 기자로도 일했고, 사진책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기도 한 〈소소책방〉 책방지기인 조경국 님은 어릴 적부터 가슴속에 품은 꿈을 마흔 살 나이가 되어서 이루었다고 합니다.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책방지기가 꿈이었고, 헌책방 책방지기가 온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꿈을 날마다 삶으로 누리는 책방지기가 빚는 조촐한 글과 사진으로 묶은 《소소책방 책방일지》는 눈부시게 피어난 꽃으로 겉그림을 꾸밉니다. 언제나 꽃 같은 마음이요, 언제나 꽃 같은 책방이며, 언제나 꽃 같은 이야기입니다. 4348.7.2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5-07-22 14:17   좋아요 0 | URL
지난번에 숲노래님께서 소소책방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쓰셨지요~?^^
책이 책표지도 아주 예쁘고 미리보기로 본 내용도 참 좋네요.^^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5-07-22 17:00   좋아요 0 | URL
사진가이기도 하고, 책쟁이이기도 하며, 두 딸 아버지이기도 하고, 시골내기다운 투박한 웃음으로 헌책방지기를 하면서, 글도 쓰고, 이것저것 삶을 즐기는 사람이 진주 한켠에서 빚는 이야기가 appletreeje 님 가슴에도 아름답게 스며들 수 있기를 빌어요~~

책읽는나무 2015-07-22 16:05   좋아요 0 | URL
`소소하다`란 말을 좋아합니다.
책 제목이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들어갔네요^^
우리동네 찻집중 `소소봄`이란 찻집이 있어요~~저는 지나면서 항상 그이름이 예뻐 소소봄~소소봄~읊어 봅니다.
소소책방도 괜찮은데요?^^
진주에 살았다면 한 번 들러보고 싶은 책방이네요~

숲노래 2015-07-22 17:01   좋아요 0 | URL
저는 `소소하다`라는 한자말보다는
`수수하다`라는 한국말을 좋아하는데,
가만히 보면,
`소소하다`는 `수수하다`보다 여린 말로도 여길 만해요.

어찌 보면, 한겨레는 옛날부터 `수수하다-소소하다`를 한 갈래로 썼을는지 몰라요.
진주에 살지 않으시더라도,
일부러 이 책방 때문에 진주마실을 해 보실 수 있어요~

린다 2015-08-23 11:43   좋아요 0 | URL
점점 책방들이 없어지는 현실이 슬프네요.. ㅠㅠ 그래도 아직까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분위기가 너무 좋네요ㅎㅎㅎㅎ!

숲노래 2015-08-23 12:2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씩씩하게 새로 여는 책방도 언제나 있어요.
아름다운 책방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하루를 즐거이 가꿀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