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베짱이도서관입니다
박소영 지음 / 그물코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문책시렁 49


《어서 오세요 베짱이도서관입니다》

 박소영 글·그림

 그물코

 2018.11.10.



도서관 지붕 처마 밑에 새들이 삽니다. 아침마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듣고 있으면 꼭 여중생들 꽉 찬 교실에 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43쪽)


시와 노래가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요? (63쪽)


하루 종일 놀았습니다. 실컷 책 보고 음악 듣고 키타 치며 놀았더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99쪽)


지금도 우리 마을은 아름답습니다 … ‘노목, 거목, 희귀목’에 ‘특별히’ 지정되지 못한 우리 동네 나무들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올 한 해도 그대들 무사하기를. (195쪽)


도서관 앞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곤 하는 자리에 꽃을 심었더니 지나다니며 보는 재미가 꽤 있습니다. 전에는 누가 쓰레기를 버렸나 안 버렸나 살피고, 있으면 치우느라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이곳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221쪽)



  조용히 문을 열었지만 왁자지껄 노래하고서 다시 조용히 문을 닫은, 또는 살며시 쉬는 서재도서관이 있습니다. 오늘날 나라 곳곳에 작은책집이 꾸준히 문을 열듯, 여러모로 뜻있는 그림책도서관이나 전문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도 틈틈이 문을 열어요. 커다란 도서관이 들어서지 못하는 곳에는 마을사람 스스로 작은도서관을 열기도 합니다. 여기에 또 다른 도서관이 있으니 바로 ‘서재도서관’입니다.


  서재도서관이란 “우리 집 서재를 이웃하고 널리 나누는 책터이자 쉼터이자 모임터이자 만남터이자 놀이터로 가꾸는 도서관”입니다. 다만, ‘서재도서관’은 사전에 없는 말이고, 제가 지어 본 낱말입니다. 저는 2007년부터 이런 서재도서관을 가꾸거든요.


  경기도 광주에도 지난 여덟 해를 조용하면서 왁자지껄한 서재도서관이 한 곳 있었습니다. ‘서재도서관 책읽는 베짱이’란 이름인 곳인데, 이곳은 여덟 해를 이름 그대로 베짱이처럼 삶을 책을 사람을 아이를 마을을 시골을 노래하는 숨결로 이어왔지 싶습니다.


  서재도서관은 나라나 지자체에서 돕지 않는 곳이기에 언제나 ‘서재도서관지기’ 혼자 모든 일을 맡아서 해야 합니다. 다달이 들어갈 살림돈도 스스로 벌어서 스스로 대야 하지요. 그래서 서재도서관은 도움이웃을 두어 다달이 드는 살림돈에 보태기도 합니다. 도움이웃한테는 틈틈이 소식종이를 띄우고요.


  《어서 오세요 베짱이도서관입니다》(박소영, 그물코, 2018)라는 책은 ‘서재도서관 책읽는 베짱이’가 지난 여덟 해를 걸어온 길에 남긴 도서관일기를 그러모읍니다. 씩씩한 노래를, 벅찬 노래를, 반가운 노래를, 고된 노래를, 새로운 노래를, 아쉽지만 마지막 노래를 쉰아홉걸음으로 들려준 소식종이가 바탕이 되어 책 하나로 다시 태어났어요.


  다만 2018년 11월 21일에 이곳 베짱이도서관은 책을 묶고 책꽂이를 여미었습니다. 11월 25일에는 책하고 책꽂이를 모두 뺐지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절골(천진암로)이라는 곳에서 베짱베짱 노래하던 서재도서관은 바야흐로 겨울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도서관이란, 더욱이 개인이 꾸리는 서재도서관이란, 임대삯이며 책값이며 갖은 돈을 스스로 벌거나 도움이웃한테서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돈으로는 도서관살림이 더 버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 어떤 도서관이 있으면 즐거울까요? 더 높거나 더 번듯한 건물을 올린 도서관이 있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전문 학과를 마치고 사서자격증을 거머쥔 사서가 여럿 있는 도서관이 있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 흐름이 좀 달라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번듯하거나 큰 건물이 아니어도 좋고, 사서자격증 없이 ‘책을 해맑게 좋아하는 마음’인 아줌마나 아저씨가 도서관지기 노릇을 해도 좋아요. 도시뿐 아니라 시골 곳곳에 마을살림을 노래하는 베짱베짱 상냥한 서재도서관이 하나둘 싹을 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은 책만 빌려서 읽는 곳이 아닙니다. 도서관에서 노래잔치나 춤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이야기잔치나 책잔치도 열 수 있지요. 도서관에서 마을잔치라든지 여러 축하잔치를 열 수 있어요. 대입시험이나 중간·기말시험을 맞이하려는 공부보다는 마음을 새롭게 살찌우는 이야기가 흐르는 사랑스러운 책을 앞에 놓고서 도란도란 수다를 떨 수 있습니다.


  조용해야 하는 도서관은 아니에요. 왁자지껄할 수 있는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어른하고 아이가 도서관 마당 한켠을 텃밭이나 꽃밭으로 가꿀 수 있어요. 도서관 텃밭에서 함께 거둔 열매로 나눔잔치를 열 수 있고, 나눔잔치를 열면서 글쓴이·그린이 같은 책지은이를 불러서 널리 마당잔치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베짱이도서관입니다》는 이 서재도서관에 어서 오시라는 이야기로 글머리를 열지만, “살펴 가셔요” 하고 배웅말까지 합니다. 여덟 해를 쉬잖고 달려온 서재도서관이니, 한동안 느긋이 쉬는 겨울잠을 누려도 좋습니다. 이 겨울잠 끝에 넉넉하며 즐거운 책터를 새롭게 얻어서 한결 느긋하면서 두고두고 이야기로 꽃이 피고 노래로 사랑이 흐르는 한결 다부진 서재도서관이 똑똑 문을 열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과 책방의 미래 - 출판인.서점인.도매상 북쿠오카 끝장토론
북쿠오카 엮음, 권정애 옮김 / 펄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인문책시렁 47


《책과 책방의 미래》

 북쿠오카 엮음

 권정애 옮김

 펄북스

 2017.6.25.



카페에서 읽고 나면 이제 살 필요가 없잖아요?”라는 질문도 자주 받는데, 제 생각에는 카페에서 읽든 안 읽든 책을 사지 않을 사람은 사지 않습니다. (30쪽)


대형서점에서 일하면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합니다. (34쪽)


‘이런 서가를 만들고 싶다’는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책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89쪽)


헌책방의 시각에서는 지금 나오는 신간들은 헌책이 되어도 가치가 없고, 십 년이 지나도 가치가 오를 만한 책이 나와 있지 않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74쪽)


그 헌책 시장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언뜻 보기에는 얌전해 보이는 젊은 참가자가 눈을 빛내면서 손님에게 자신이 가지고 나온 책의 재미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399쪽)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은 사서 읽습니다. 책이 모든 삶길을 열어 주지 않으나, 우리 스스로 겪지 않거나 못하는 숱한 일을 들려주기에, 이웃살림을 책으로 느끼고 배우면서, 저마다 새로 가꿀 삶을 더 넉넉하면서 즐겁게 헤아립니다.


  책이 있는 집이 어떤 몫을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사뿐사뿐 책집마실을 합니다. 책집이 가장 훌륭한 곳이 아니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책집 한 곳은 크든 작든 도시에서 숲을 마실 수 있는 조촐한 쉼터입니다. 이 쉼터에 깃들어 숲내음을 물씬 마시면서 하루를 돌아보면 새롭게 기운을 얻습니다.


  《책과 책방의 미래》(북쿠오카 엮음/권정애 옮김, 펄북스, 2017)는 한국하고 대면 엄청난 책나라인 일본에서 책길이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하고 생각하면서 마련한 자리에서 온갖 사람이 주고받은 말을 갈무리합니다. 글이나 책을 쓰는 사람, 책집을 꾸리는 사람, 샛장수 일을 하는 사람, 책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모여 저마다 제 눈썰미로 책길이 앞으로 어떻게 새로울 수 있을까를 어림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참 일본다운 책이요 이야기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한국을 돌아봅니다. 한국에서도 책길을 걱정하며 마련하는 책수다가 더러 있습니다만, 몇몇 출판사나 지식인이나 비평가나 작가 언저리에서만 이야기가 맴돌 뿐입니다. 새롭다 싶은 이야기도, 작은 마을이나 시골하고 얽히는 이야기도, 숲을 아우르는 이야기도, 어린이와 푸름이를 살피는 이야기도, 아직 한국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책마을은 돈으로 꾸미지 않고, 손님(관광객)을 더 많이 끌어모으려고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공무원이나 지식인 가운데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즐거운 사랑을 누리려고 책을 오래오래 읽으며 슬기로운 마음인 분은 얼마쯤 될까요?


  일본하고 한국이 다른 대목이란, ‘일본 = 출판대국(출판강국)’이 아니라, ‘한국 = 아직도 입시지옥’인 모습이지 싶습니다. 이 바보틀을 벗어던질 때라야 비로소 나라꼴을 바꿀 만하지 싶습니다. 입시지옥에는 책 아닌 참고서가 넘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 넘어진 듯 보여도 천천히 걸어가는 중
송은정 지음 / 효형출판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문책시렁 28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송은정

 효형출판

 2018.1.20.



바람처럼 등장해 바람처럼 사라진 그를 뒤로한 채 나는 혼자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뒤늦은 부끄러움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뻗쳤다. 그가 책방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는 순간부터 안으로 들어와 말을 붙이기 전까지 나는, 중국집 배달원이 책을 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55쪽)


아주머니에게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젊은 친구가 예쁜 가게를 운영해 준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칭찬이었다. (112쪽)


가고파 미용실 아주머니로부터 묘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단 하나의 공통점도 없어 보이던 우리 사이에 다리 하나가 놓였다. 어쩌면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건 언제든 다리를 건너 자신에게 오라는 초대장과 같은 게 아닐까. (113쪽)


그저 책방 운영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고 있다. 이곳이 책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로부터 한없는 신뢰를 받고 있다. (138쪽)



  책집이 문을 닫는 까닭은 그 책집으로 책을 사러 갈 책손이 줄어든 탓입니다. 아무리 가게삯이 높다 하더라도 책을 신나게 팔면 가게삯 내는 일이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책집은 어떤 책을 어떻게 갖추어야 책손을 부쩍 끌어모을 수 있을까요? 저마다 다른 사람들 눈맛에 걸맞을 책은 어떤 눈결로 가리거나 찾아서 갖추어야 할까요?


  이 대목에서는 오랜 헌책집지기를 눈여겨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랜 헌책집지기는 헌책을 다루면서 책을 바라보는 눈결은 꾸준히 키웁니다. 흔히들 헌책집은 오래된 책만 있으리라 잘못 알기 일쑤이지만, 막상 헌책집은 모든 책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새책집은 새로 나온 책만 드나든다면, 헌책집은 새로 나온 책을 비롯해서 비매품, 보고서, 개인문집, 졸업사진책, 외국책, 보도자료, 논문, 소식지를 두루 아우르며 드나들어요. 그래서 헌책집을 꾸리는 이라면 이 모든 꾸러미를 알뜰히 살펴서 책손한테 어느 책이나 꾸러미가 어울릴까를 살피면서 ‘책맞춤’을 해 줍니다. 그저 책꽂이에 책만 꽂는 헌책집이 아니라, 책손이 새로 바랄 만한 책을 넌지시 책꽂이 한켠에 슬쩍 곁들여서 스스로 알아보도록 이끈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송은정, 효형출판, 2018)는 독립책집을 꾸린 분이 적은 일기입니다. 책집일기예요. 다만, 이 책집일기는 글쓴이가 독립책집을 씩씩하게 열어서 꾸리다가 그만 문을 닫습니다. 오늘도 문을 열고서 새 책을 살피면서 배우는 길은 그친 일기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책손을 맞이하면서 새 이야기를 들려주는 길도 그친 일기예요.


  문을 닫고 만 이야기를 다룬 일기라서 어둡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온누리에는 새로 여는 책집뿐 아니라 문을 닫는 책집도 많습니다. 책집지기가 나이가 들어서 문을 닫기도 하고, 장사가 힘들어 문을 닫기도 합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 그만두기도 하며, 가게삯이 벅차다 싶어 그만두기도 해요.


  책집을 둘러싼 어떤 이야기라 하든, 책을 아끼는 손길로 하루하루 살아낸 발자국은 서로 새마음이 되도록 북돋웁니다. 비록 책장사하고는 멀어졌어도, 책장사를 하며 ‘읽는이’ 아닌 ‘파는이’로서 책을 새로 보던 눈을 배웠고, 책을 좋아하는 이웃을 손님으로 마주할 적에 어떤 눈이 되는가도 배운 나날이에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문책시렁 13


《오늘도, 무사》

 요조

 북노마드 2018.6.25.



책방 앞에 두었던 길고양이 밥그릇이 두 번째로 없어졌다. 처음 없어졌을 때에도 어떤 의도를 읽긴 했는데, 이번에 분명해졌다. (119쪽)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며 그림책 출판을 고수하시는 민찬기 대표님의 멋진 고집, 그리고 ‘콘서트’니까 노래도 있어야 하고 춤도 있어야 한다며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고 춤도 추셨던 아이 같았던 최종규 작가님, 그리고 아직 풋내기인 나. (143쪽)


유시민 작가님과 정유정 작가님과 나란히 내가 있다! 묻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영원히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 틈에 묻어 다니고 싶다. (239쪽)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간판이 일부만 떨어져나간 나지막한 제주의 옛 건물이 있다. 누군가 귀띔해 주지 않는다면 그곳이 책방인 줄 모르고 지나갈 법한 공간, 바로 책방 무사다. (248쪽)



  누구나 책집을 열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여느 회사원이나 공무원도, 책을 사랑하는 여느 어린이나 젊은이도 책집을 열 수 있습니다. 배우나 시인으로 살다가도 책집을 열 만하고, 시장이나 군수로 살다가도 책집을 할 만합니다. 대통령으로 일하다가 책집을 열어도 되지요.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니까 읽을 수 있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책을 읽어 배움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숲에서 온 종이로 빚은 책은 사람들 앞에서 금을 긋지 않습니다. 누구한테나 열린 이야기꾸러미인 책이요, 어디에서나 시원스레 트인 이야기보따리인 책입니다.


  《오늘도, 무사》(요조, 북노마드, 2018)는 서울에서 연 책집을 제주로 옮긴 요조 님이 이녁 발자취를 그러모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에 실린 글을 〈책방 무사〉 누리집에서 먼저 읽었습니다. 뭇 책집지기가 저마다 누리집에 올리는 책집 일기를 즐겁게 읽던 터라, 이 일기를 곱게 묶은 책은 늘 반갑게 맞이합니다.


  글쓴이요 책집지기요 노래지기인 요조 님이 이 책에 살풋 쓰기도 했는데, 2016년에 이녁을 인천 어느 책수다자리에서 처음 마주하면서, 이분이 머잖아 책집 일기를 써서 책으로 낼 줄 알았습니다. 이태가 걸렸군요.


  어느 모로 보면 좀 이르게 책집 일기를 낸 셈입니다. 이 책은 이야기보다는 사진하고 빈자리가 좀 많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보다 사진하고 빈자리가 많은 일기란, 앞으로 새로 채울 자리가 많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책집(독립책방)은 책시렁을 굳이 빈틈없이 채워야 하지 않습니다. 책집지기가 사랑하는 책, 사랑할 만한 책, 사랑하려는 책, 사랑을 느끼는 책, 사랑을 배우는 책, 사랑을 노래하는 숨결이 반가운 책 들을 천천히 갖추어도 좋습니다. 더 많은 책손한테 더 많은 책을 팔기보다는, 즐겁게 책마실 나서는 이웃하고 상냥하게 책수다를 나눌 만한 책집이 되려는 쉼터 가운데 하나로 뚜벅걸음을 하려는 〈책방 무사〉가 되기를 빕니다.


  서른 해 뒤에도 책집지기일 수 있기를, 쉰 해 뒤에도 책집님일 수 있기를, 일흔 해 뒤에도 책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스토리닷 글쓰기 공작소 시리즈 2
이정하 지음 / 스토리닷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9


글쓰기를 넘어 ‘책쓰기’로 함께 가요
―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이정하
 스토리닷, 2018.4.15.


책은 독자가 책값을 치르고 보는 상품이다. 작가 자신만 읽고 좋으면 그만인 작품이 아닌 까닭에 책은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내가 책을 쓰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책을 알리고, 판매까지 이루게 할 것인가.’는 출판사만의 고민이 아니어야 한다. (27∼28쪽)


  ‘글쓰기’라는 낱말이 사전에 오른 지 스무 해가 채 안 됩니다. 스무 해쯤 앞서는 ‘글 쓰기’처럼 띄어서 써야 했습니다만, 이오덕 님을 비롯한 뜻있는 이들이 꿋꿋하게 ‘글쓰기’로 붙여서 썼기에 어느새 한 낱말로 굳으며 퍼졌어요.

  예전에는 ‘글짓기’라는 낱말을 으레 썼는데, ‘글짓기’가 한 낱말이 된 지는 쉰 해가 채 안 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거쳐 ‘작문(作文)’이란 한자말이 들어왔고, 해방 뒤에야 이를 ‘글짓기’로 손질해서 쓸 수 있었어요.

  그러면 옛날에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글지이’입니다. ‘글지이’는 “글을 짓는 사람”하고 “글을 짓는 일”을 아울렀어요. 먼 옛날에는, 밥이나 옷을 짓듯 글도 마땅히 ‘짓는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오늘 이곳에서 글을 놓고 돌아보면, 글을 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달삯 받는 기자가 아니어도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따로 글쓴이나 지은이 이름이 없더라고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아직 ‘책 쓰기’처럼 띄어서 써야 한다고 여길 테지만, 머잖아 ‘책쓰기’라는 낱말도 사전에 오르리라 봅니다.


나는 혼자 책을 쓰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수천,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다. 잘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이고 해외 사람들도 이 책을 읽는다고 할 때 정성을 들여 쓴 원고와 그렇지 않은 원고는 단박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50쪽)

정작 사람들이 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책 쓸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기 때문이다. (70쪽)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어쩌면 어떤 정보나 사실을 알기보다는 ‘저 사람(작가)은 어떤 사람일까?’ ‘그가 쓴 책은 어떤 책일까?’ 하고 궁금해서 책을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103쪽)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이정하, 스토리닷, 2018)를 읽으면서 글하고 책이 걸어온 길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한국말사전에 ‘글짓기’조차 오르지 않던 무렵에는 글은 아무나 지을 수 없다고 여겼어요. 학교에서 반공 글짓기를 억지로 시키던 때에 아이들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하도록 북돋우는 교사가 하나둘 늘면서 ‘글쓰기’를 가르칠 무렵에도 글은 누구나 쓰기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글쓰기’가 차츰 퍼지면서 ‘글쓴이’라는 낱말도 사전에 오릅니다. 예전에는 ‘지은이’조차 사전에 없었고, ‘저자(著者)·필자(筆者)·작자(作者)·작가(作家)’ 같은 한자말만 사전에 있었어요. 이런 한자말만 사전에 오르던 무렵에는 참말, ‘글은 아무나 못 쓴다’는, ‘전문가만 글을 쓴다’는 생각이 감돌았어요. 쉽고 수수한 한국말인 ‘글짓기·지은이·글쓰기·글쓴이’가 하나씩 사전에 천천히 오르는 사이, 누구나 삶을 글로 담아내는 물결이 일었고, 이제는 누구나 삶을 책으로 여미는 터전이 생깁니다.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는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여밀 수 있는 오늘날, 책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엮으며, 어떻게 내고, 어떻게 팔고, 어떻게 알리며, 어떤 이웃님하고 책을 나눌 적에 즐거울까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이제는 ‘책 하나라는 틀’로 헤아리면서 스스로 짜임새있게 써 보자는 이야기를 펴요.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옛말처럼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 그것은 어쩌면 힘들고 듣기 싫은 말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166쪽)

이제 책은 국문과를 졸업하거나 문학창작학과를 졸업한 사람들만 쓰는 시대가 아니다. 원래부터 책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192쪽)


  즐거워서 글을 쓰다 보면 글이 꽤 쌓이기 마련입니다. 이레마다 글을 한 꼭지를 쓰더라도 한 해라면 쉰 꼭지가 넘고, 다섯 해라면 이백쉰 꼭지가 넘습니다. 열 해라면 오백 꼭지가 넘을 테지요. 그런데 아무리 즐거워서 글을 쓰더라도 무턱대고 쓰기만 하면 나중에는 잔뜩 쌓여 스스로 헷갈리거나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책쓰기란, 책 하나를 헤아리면서 글을 쓰기란, 글머리를 처음부터 또렷하면서 알차게 잡아 보자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떻게 책을 써요?’ 하고 어려워하기보다는, 길면 열 해, 줄잡아 다섯 해, 짧으면 두세 해쯤 내다보면서 차근차근 글쓰기를 누려 보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글을 잔뜩 써 놓고 ‘이렇게 글이 많으니 책을 낼 수 있겠지요?’ 하고 묻기보다는, ‘잔뜩 쌓아 놓은 글을 갈무리하거나 고쳐쓰느라 애먹지 말’고, 처음부터 줄거리를 잡아서 ‘글로 담고 싶은 생각’을 차근차근 풀어내 보면 좋다고 할 만해요.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는 이 같은 실마리를 풀기 좋도록, 크게 세 갈래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먼저, 왜 글을 쓰고 싶은가를 스스로 묻자고 합니다. 큰그림을 짜기 앞서는 글을 쓰지 말자고 하지요. 다음으로는, 즐겁게 글을 쓰자고 합니다. 틈틈이 조금씩 쓰고, 모든 글을 빈틈없이 쓰려 하지 말며, 써 놓은 글을 스스로 읽고 되읽자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글벗하고 모여서 함께 써 보자고 해요.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마음 맞는 글벗하고 글을 돌려읽으면서 서로 도움벗이 되자고 합니다.


“모든 글은 하루만 지나도 옛날 글이 될 테니, 날마다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출판사하고 여러 차례 글손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첫 책이 태어났습니다.” (76쪽/인터뷰 최종규)

“사전을 읽어 주셔요. 비록 우리 한국말사전이 거의 모두 엉터리 말풀이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사전을 읽어 주셔요. 사전에 흐르는 돌림풀이하고 겹말풀이를 깨달으면서 한숨을 쉬어도 좋고, 우리 나름대로 사전 뜻풀이를 바로잡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쓰는 말을 우리 나름대로 제대로 풀이한 사전’을 공책에 찬찬히 적어서 엮을 수 있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면 누구나 ‘내 사전’이 있어야 합니다.” (80쪽/인터뷰 최종규)


  ‘글쓰기’란, 말 그대로 글을 쓰는 일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을 꾸밈없이 드러내어 적기에 글쓰기입니다. ‘글짓기’란, 말 그대로 글을 짓는 일입니다. 밥이나 옷이나 집을 지을 적에는 그냥 짓지 않습니다. 얼거리를 살펴서 차근차근 지어요. 참다이 글짓기를 한다면, 글로 밝힐 우리 삶이나 넋을 어떻게 여밀 만한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책쓰기, 또는 책짓기라고 한다면, 단출하거나 두툼하게 여밀 책 하나를 헤아리면서, 더하거나 덜어낼 이야기를 알맞게 가누는 길을 찾으려 한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이야기를 책 하나로 어떻게 여미면 좋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 하나로 어떻게 묶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멋지게 누린 여행길을 책 하나로 어떻게 담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글 한두 꼭지로는 마음이 안 차는 이야기라면 홀가분하게 책쓰기를 헤아릴 만합니다. 어떤 전문가가 나서서 써 주기를 바랄 까닭 없이,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배우고 살핀 삶을 즐겁게 풀어내어 책을 쓸 만해요. 글쓰기 한 걸음을 디뎌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를 살며시 지폈다면, 책쓰기 두 걸음을 내디디면서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를 가만히 꽃피울 만하지 싶습니다.

  이오덕 님은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우리 모두 글을 써요, 신나는 글쓰기”라 말씀했어요. 오늘 우리는 책쓰기를 함께하면서 “우리 모두 책을 써요, 아름다운 책쓰기”를 외칠 수 있습니다. 2018.5.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