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승. - 네 발 달린 도반들과 스님이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
진엽 글.사진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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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1



사형이 ‘개똥 줍는 스님’이라고 놀린다

― 개.똥.승.

 진엽 글·사진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6.11.13. 12000원



  스님 한 분이 개를 기른다고 합니다. 이 스님은 개를 기르니 늘 개똥을 줍는다고 합니다. 이 스님하고 함께 지내는 사형은 ‘개를 기르는 스님’을 보고 “개똥 줍는 스님”이라면서 놀린다고 합니다.


  개를 기르는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개똥을 주으니 ‘개똥을 줍는’ 모습이 맞습니다. 개똥을 주으면서 스님으로 지내니까 “개똥 줍는 스님”이 맞습니다. 개똥 줍는 스님은 이녁이 개하고 함께 살면서 배우고 느끼고 나누고 함께한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개.똥.승.》(책공장더불어,2016)이라는 책을 내놓습니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 한 아이가 (개) 선우에게 돌을 던진 모양이다. 다른 아이가 돌을 던지면 개가 아프다고 친구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던지는 아이와 말리는 아이. 던지는 아이는 어떤 아이며 또 말리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19∼20쪽)



  개한테도 사람하고 똑같이 ‘목숨이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한 아이가 돌을 던진다고 합니다. 개한테 돌을 던진 아이 곁에 왜 개한테 돌을 던지느냐고 말리는 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한 아이는 거의 아무 생각이 없이 개한테 돌을 던지면서 ‘괴롭히는’ 짓을 하는데, 괴롭히는 줄 안다면 아이로서 받은 생채기 때문일 터요, 괴롭히는 줄 모른다면 참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노릇일 테지요.


  거꾸로 개가 사람한테 돌을 던진다면, 우리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요? 개를 비롯한 온갖 짐승을 괴롭히거나 들볶는 우리 사람들이 거꾸로 개를 비롯한 뭇짐승한테서 돌을 맞거나 들볶이거나 시달린다면, 참말로 우리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달걀이 아이들의 식탁 위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찾아봤다. A4용지 3분의 2 크기도 안 되는 공간에 갇혀 기계처럼 알을 낳는 닭들. 이랬구나. 달걀을 생산하는 닭의 삶이란 것이, 소와 돼지의 삶이, 다른 생명들의 삶이. 몰랐다. 내가 먹지 않고, 내가 입지 않는다고 귀는 열려 있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고, 눈은 뜨고 있었지만 보려 하지 않았다. (34쪽)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는 묶인 개가 없었다.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 모이면 집개들도 함께 나와서 겅중겅중 뛰놀았다. 아이들은 모두 이웃집 개의 이름을 알았고, 우리 개 남의 개 구분 없이 밥을 먹었다. (42쪽)



  고기도 달걀도 안 먹는 스님은 ‘달걀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가 흔히 쉽게 먹는 달걀이 어떻게 나와서 가게에 놓이는지를 까맣게 몰랐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해요. 혼자 고기나 달걀을 안 먹는대서 ‘공장 축산’에서 시달리는 닭이나 돼지나 소나 온갖 짐승까지 모르쇠로 지냈구나 하고 깨달았대요.


  오늘날 손수 닭을 치는 집은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날 손수 돌보는 닭한테서 알을 조금씩 얻어 알뜰히 여기는 집은 얼마나 될까요? 손수 닭을 기르지 않기 때문에 닭이 낳는 알뿐 아니라 닭 몸뚱이로 얻는 살코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까맣게 모르는 우리 모습은 아닐까요? 집집마다 손수 닭을 키울 적에는 조류독감 걱정 따위는 없었을 텐데, 값싸고 손쉽게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는 달걀이나 닭고기가 되면서,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조류독감을 비롯한 무시무시한 ‘새로운 현대 사회 질병’이 퍼지는 셈이 아닐까요?



“우리가 스님이지, 선우가 스님은 아니지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내가 만든 잣대로 모든 것을 맞추려 했을까. 나는 스님이기도 하지만 선우의 보호자이기도 하니 잘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더 이상 고민할 게 없었다. (55쪽)


아침에 공양을 마치면 똥 봉투를 들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보물찾기를 하는 냥 마당 이곳저곳에서 개똥을 찾는다. 찾은 똥을 살피면서 아이들 건강 상태를 가늠한다. 누가 속이 안 좋은지, 누가 변비인지 알아보는데, 신기하게도 딱 보면 누구 똥인지 알 수 있다. 이건 선우 똥, 이건 파랑이 똥, 이건 오페라 똥. 사형이 ‘개똥 줍는 스님’이라고 놀린다. 그 말이 싫지 않다. 개똥을 줍는 스님. (70쪽)



  《개.똥.승.》을 쓴 진엽 스님은 이 책에서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개 한 마리를 곁에 두고 살면서 이 개가 자라는 흐름을 살피며 새롭게 배운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맣던 개가 앓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 끝에 다부진 어른 개가 되고, 이윽고 새끼를 낳는 어미로 살며, 새끼랑 어미가 오붓하게 함께 지내는 모습까지 두루 지켜보는 동안 ‘목숨 하나란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가’를 깨우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님은 고기나 달걀을 안 먹지만, 개를 생각해서 달걀을 마련하여 먹입니다. 스님은 고기나 달걀을 입에 안 대지만, 새끼를 밴 어미 개를 헤아려서 고깃국을 끓입니다. 나중에는 고기를 쓰지 않되 개뿐 아니라 아이들한테도 몸을 살찌울 수 있을 만한 국을 끓여냅니다.



“파랑이는 친구 있어요?” 파랑이는 친구는 없고 가족이랑 같이 산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있어야지요. 파랑이는 친구가 없으니까 내가 친구 해 줄래요. 파랑이한테 꼭 전해 주세요.” 아이는 신신당부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116쪽)


잘 도착하셨는지 묻는 전화 너머 어머니가 우신다. 이틀 집을 비웠더니 눈 내린 마당에 고양이 발자국이 빼곡하단다.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겠냐고, 배도 많이 고팠을 텐데 얼른 밥을 해서 고양이들 먹인다고 전화를 급히 끊으신다. 고양이 덕분에 혼자 계신 엄마가 끼니를 꼬박꼬박 챙기고, 인적이 많지 않은 곳인데 말벗도 생겨서 참 고맙다. (176∼177쪽)



  나그네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주는 사람은 길을 잃은 짐승한테도 먹이를 나누어 줄 줄 압니다. 이웃을 따스히 헤아리는 사람은 사람 곁에 있는 떠돌이 짐승도 따스히 살필 줄 압니다.


  스님을 낳은 늙은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마을고양이(길고양이)한테 밥을 챙겨 주신다고 합니다. 모처럼 어머니가 시골집을 하루 비우고 스님을 만나러 마실을 했다는데, 하룻밤 집 바깥에서 지내고 시골집으로 돌아가니 눈 덮인 마당에 고양이 발자국이 빼곡했대요. 스님 어머니는 마을고양이를 먹이려고 바쁘시대요.


  아마 스님은 이녁 어머니한테서 ‘이웃사랑’을 물려받았지 싶어요. 낯을 아는 이웃만 돕는 사랑이 아니라, 낯을 모르는 이웃도 기꺼이 반가이 도울 줄 아는 사랑을 물려받았을 테지요. 따스하고 너른 사랑을 물려받은 숨결이기에 이러한 손길로 작은 짐승이며 마을 아이들한테도 포근하며 곱게 마음을 나누어 줄 만하리라 느껴요.


  작은 그릇 하나에 밥 몇 술을 덜 수 있으면 돼요. 작은 손길로 사랑을 가만히 나눌 수 있으면 돼요. 우리를 살리고 서로서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곱고 따스하며 조그마한 사랑에서 비롯하지 싶어요. 개랑 똥이랑 스님(승)이 어우러져서 《개.똥.승.》이 태어났듯이, 우리 삶자리 어디에나 ‘이웃·사랑·살림’이 어우러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12.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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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새 도감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생물 3
최순규 지음 / 자연과생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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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2



‘살코기 아닌 이웃’인 새를 사랑하는 길

― 화살표 새 도감

 최순규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6.12.12. 22000원



  아무리 도시가 커지더라도 우리 곁에 있는 새가 있습니다. 도시가 너무 커진 탓에 삶터를 몽땅 빼앗길 뿐 아니라 목숨까지 잃은 새가 있습니다. 하늘을 날며 바람을 가르는 새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몸소 날아오르지는 못하더라도 비행기라는 기계를 만들어서 새처럼 마음껏 이리저리 다니기도 합니다. 우리가 새를 보지 못하거나 알지 못했다면 하늘을 나는 꿈도 못 꾸었으리라 느껴요.


  최순규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서 빚은 《화살표 새 도감》(자연과생태,2016)을 보면서 아직 우리 곁에 새가 이렇게 많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비록 열 해쯤 앞서하고 대면 크게 줄었고, 스무 해쯤 앞서하고 대면 대단히 줄었으며, 서른 해나 마흔 해쯤하고 대면 엄청나게 줄어든 새일 텐데, 작으면서 야무진 《화살표 새 도감》에 나오는 새는 제법 많다고 할 만해요. 더욱이 이 도감은 ‘우리 눈앞에 살짝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새를 한결 쉽게 잘 알아보도록 화살표로 콕콕 짚으면서 알려주기도 합니다.



예전에 황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던 텃새였으나 인구 증가와 산업화로 인해 습지가 부족해지면서 절멸했고, 지금은 아무르 강 유역 중국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철새로 날아와 천수만, 영암호, 남해안 일대에서 보인다. (30쪽)


(매 무리는) 높은 곳이나 공중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급강하해 땅 위에 있는 설치류, 새, 곤충 등을 잡아먹는다. 대부분 살아 있는 먹이를 사냥하며, 다리가 약해 빠르게 먹이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먹이의 목을 물어뜯어 순식간에 죽인다 … 매 무리도 대부분 먹이사슬 최상위에 위치해 환경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려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42쪽)



  《화살표 새 도감》은 먼저 ‘물새’하고 ‘산새’를 가릅니다.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 새랑, 숲을 좋아해서 숲(산)에 깃드는 새를 나누어요. 이 나눔법을 보니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참말로 새는 물가나 바닷가처럼 ‘물이 있는 곳’에서 사는 새가 한 갈래요, 숲에 깃들어 나무에 둥지를 짓고서 먹이를 찾는 새가 다른 한 갈래라고 할 만합니다.


  물새 갈래에서는 다시 아비·논병아리·가마우지·기러기·갈매기·백로·저어새·물떼새·도요새·황새·두루미·뜸부기·물총새·물까마귀·할미새·종다리로 가르며, 이 갈래에서도 조금 더 잘게 가르기도 합니다.


  산새 갈래에서는 수리·매·올빼미·꿩·까마귀·비둘기·두견이·딱따구리·직박구리·지빠귀·찌르레기·때까치·파랑새·후투티·쏙독새·팔색조·여새·제비·칼새·개개비·솔딱새·박새·동박새·오목눈이·동고비·되새·참새·멧새로 가르며, 이 갈래에서도 찬찬히 더 가르기도 해요.



(올빼미 무리는) 첫째날개깃 끝은 다른 새와 달리 아주 미세하게 갈라졌으며 이 부분으로 공기의 흐름을 제어해 비행할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다. 눈도 다른 새와 달리 얼굴 정면에 있어 사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44쪽)


(꿩 무리는) 대부분 수컷 하나에 여러 암컷이 모여서 번식하고 보통 알을 12개 정도 낳아 암컷이 품는다. 부화한 새끼는 깃털이 있으며 바로 걸을 수 있어 둥지에 머물지 않고 어미를 따라다닌다. 씨앗이나 열매, 곤충 등을 먹지만 주로 식물성을 먹기 때문에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는 소화가 덜 된 배설물을 다시 먹는 경우도 있다 … 꿩의 평균 수명은 27년 정도로 알려졌다. (46쪽)



  여러 갈래로 나눈 이름만 보아도 새를 살피기에 훨씬 수월하구나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여러 갈래로 나눈 이름에서 ‘사람들한테 익숙하거나 흔하구나’ 싶은 이름이 꽤 많지 싶어요. 비록 오늘날에는 바닷가나 냇가나 숲으로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새일지라도, 숱한 새는 이 지구에서 알뜰살뜰 살림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웬만한 새는 이름이 ‘한국말(토박이말)’이에요. 그만큼 새는 한겨레하고 오래도록 이웃으로 지내면서 어우러진 숨결이라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곁에서 늘 지켜보며 옛사람 나름대로 재미나고 사랑스레 이름을 붙여 주었으리라 느껴요. 이처럼 붙인 이름이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서 입을 타고 흐르면서 오늘날까지 이었으리라 생각해요.


  나중에 새 학자가 붙인 이름도 있을 텐데, ‘나그네새’나 ‘철새’나 ‘텃새’나 ‘길잃은새’ 같은 이름을 헤아려 보면 이 나라에서 새를 얼마나 곁에 두고서 살피는가 하는 대목을 엿볼 수 있기도 해요. 철을 살피는 철새요, 텃밭이나 텃논처럼 새 나름대로 저희 삶터를 한곳에 뿌리내리는 모습으로 텃새라 이름을 붙였으니, 그만큼 새는 한겨레하고 가까운 사이라 할 만해요.



(뻐꾸기 무리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자신의 새끼를 키우게 하는 습성(탁란)으로 유명하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이 무리의 40% 정도만 이런 습성이 있다 … 뻐꾸기 무리가 큰 소리를 내니 보기 쉬울 것 같으나 울창한 숲 속에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개체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번식기 이후에는 소리 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더욱 보기 어렵다. (52쪽)


제비는 양 극지방과 대양의 작은 섬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번식하며,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의 난대와 열대 지역에서 겨울을 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도 월동개체가 확인되었다. 제비는 인가 주변에 살면서 번식했던 둥지를 이듬해에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다시 돌아오는 비율이 10% 이내로 높지 않다. (64쪽)



  닭도 새입니다만, 요즈음은 닭이 새라고 하는 대목을 거의 잊고 살지 싶습니다. 꿩과에 드는 새인 닭일 테지만, 이제는 닭을 거의 닭우리에 가두어 알하고 살점을 얻는 고기로 여기거든요. 더구나 집에서 닭을 치는 일은 거의 사라졌고, 으레 가게에서 사다 먹기만 하지요. 오늘날 우리는 닭고기나 닭알(달걀)을 엄청나게 먹는데, 너무 커지고 만 ‘공장 축산’은 조류독감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새한테서 새다움을 빼앗은 탓에 사람들한테 무서운 병이 생기는 셈이라고 할까요. ‘산 목숨’을 아주 좁다란 우리에 가두어 햇빛조차 못 쬐도록 하면서 알하고 살점을 더 많이 뽑아내도록 닦달을 한 탓에 새(닭)한테도 사람한테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싶어요.


  이 때문에 ‘공장 축산’으로 기르는 닭도 난데없이 죽어야 하지만, 물가나 숲에서 조용히 사는 새도 피해를 입습니다. 예부터 사람이 새를 비롯한 수많은 들짐승이나 멧짐승하고 어깨동무를 하던 얼거리를 그만 깨뜨린 나머지, 사람도 새도 고단한 살림이 되지 싶어요.


  도시를 짓더라도 조금 더 작게 지을 수 있고, 발전소나 공장도 더 크기를 줄이면서 깨끗한 시설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닭우리를 크게 짓더라도 닭이 조금 더 ‘나은’ 터전에서 자라도록 바꿀 수 있어요. ‘생산·소비·경제’라는 이름을 벗고서 ‘삶·어울림·마을’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본다면, 사람한테도 새한테도 아름다운 터전으로 거듭날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화살표 새 도감》 같은 상냥한 책 한 권을 손에 쥐고서 아이들하고 ‘우리 곁에 있는 아름다운 새’를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먹이(알과 고기)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람하고 지구에서 함께 사는 이웃’으로 새를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16.12.2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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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
라오 핑루 글.그림, 남혜선 옮김 / 윌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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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2



눈물 한 방울 남기고 떠난 예순 해 사랑지기

―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

 라오 핑루 글·그림

 남혜선 옮김

 윌북 펴냄, 2016.9.30. 14800원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하루를 함께 있거나 한 달을 같이 있어도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샘솟으리라 생각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하루도 괴로울 테고 한 달이나 한 해쯤이라면 그야말로 고달프리라 생각해요.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예순 해를 함께 산다면? 예순 해라는 나날을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따사로운 숨결로 지낼 수 있다면?



소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내가 부모님 밥을 퍼 드렸다. 가족들이 가르쳐 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종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식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릇에 밥을 남겨서도 안 되고 밥알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26쪽)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창밖으로 학교에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며 노는 계집종 아이가 보였는데, 그렇게 즐거워 보이더라나. 부러워 죽겠는데 그렇다고 어쩔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업이 끝나면 둘이 같이 집에 갔다고 한다. (67쪽)



  라오 핑루라는 할아버지는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윌북,2016)라는 책을 쓰고 그립니다. 이녁하고 예순 해를 하루처럼 한마음으로 살아온 곁님 ‘메이탕’하고 얽힌 삶과 살림과 사랑을 글하고 그림으로 함께 엮어서 책으로 남겨요.


  이 책을 보면, 먼저 라오 핑루 할아버지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떤 어린 나날을 보냈는가 하는 대목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이야기를 붙입니다. 다음으로 이녁하고 예순 해를 함께 살아온 메이탕 할머니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떤 나날을 보내다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대목을 그림하고 글로 엮습니다.


  라오 핑루 할아버지는 ‘사진을 안 찍었’어도 사진처럼 또렷하게 지난날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기에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고 해요. 사진으로 찍기는 했으나 모두 불태워야 했거나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사진에 앞서 마음에 깊이 남은 삶’이었기에 알뜰살뜰 그림으로 빚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내 오른쪽 아래로 열 걸음 근처에 엎드려 있던 4반 반장 리아수이가 포탄에 맞아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맑고 구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다시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푸른 산으로 가득했다. 난 포성 속에서 갑자기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기가 내 무덤 자리가 될까?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무성하게 우거진 푸른 숲속에서 죽으니 그래도 의미는 있겠구나.’ (93쪽)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얼마나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난 화가가 아니라서 못 그리겠어!’ 하며 한발을 빼지는 않을까요. ‘사진으로 안 찍어 놨는데 어떻게 그림으로 그리니?’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는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화가나 작가가 아니기에 그림이나 글을 못 그리거나 못 쓴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화가가 아니어도, 또 사진으로 안 찍어 놓았어도, 누구나 우리 지난날을 그림으로 새롭게 그릴 만하지 싶어요. 바로 라오 핑루 할아버지가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라는 책으로 잘 보여주거든요.


  그림을 배워야 그리는 그림이 아니요, 글을 익혀야 쓰는 글이 아니라고 해요. 예순 해를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던 마음을 차곡차곡 떠올리고 되짚기에 참말로 또렷하게 떠올라서 그릴 수 있고 쓸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해요.



내가 노동 개조를 받으러 떠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출판사 인삭과에서 아내를 찾아와서는 나와 ‘확실히 선을 그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메이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메이탕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바람을 피웠으면 일찌감치 이혼했겠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도 아니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뭘 훔치고 마음대로 가져가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이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이혼을 해요?!” (236쪽)



  어릴 적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서 배운 살림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으면서 이녁 아이들한테 물려주었고, 이 살림을 고스란히 그림하고 글로 새로 엮는 라오 핑루 할아버지입니다. 일본군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살아난 이야기, 한 중국이 두 중국으로 갈리면서 ‘노동개조’를 받아야 하던 이야기, 스무 해가 넘는 노동개조가 드디어 끝나서 아이들하고 곁님 품으로 돌아가서 오붓하게 하루를 보내던 이야기, 그리고 곁님 메이탕이 마지막으로 눈물 한 방울 똑 흘리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 이야기, 이렇게 숱한 이야기가 라오 핑루 할아버지 마음을 고이 적시면서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라는 책에 흐릅니다.



메이탕이 떠났다. 평온한 모습이었다. 아들, 딸들은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문밖을 서성거렸다. 유일하게 줄곧 옆에 있었던 순쩡이 알려주었다. 메이탕이 정확히 오후 4시 23분에 떠나갔노라고. 젊어 연애할 적에 둘 다 먹고살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때 메이탕이 내게 말했었다. 둘이서 조용한 시골로 들어가 땅뙈기 하나 마련해 무명옷 입고 푸성귀 먹으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286쪽)



  작은 땅뙈기를 일구면서 무명옷을 손수 지어 입고, 푸성귀를 손수 길러 먹으며, 그야말로 수수하게 짓는 살림이란 참으로 조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중국이라면 베이징)에 굳이 가서 살아야 하지 않고, 드높은 이름을 날려야 하지 않으며, 어마어마한 돈을 모아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라오 핑루 할아버지하고 메이탕 할머니 마음자리에는 서로 아낄 줄 알고 서로 헤아릴 줄 알며 서로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랑이면 넉넉하다고 해요. 하루를 살든 예순 해를 살든 언제나 따사롭고 넉넉한 사랑으로 살림을 지을 수 있으면 된다지요.


  웃음 한 번 지으며 하루가 즐겁습니다. 눈물 한 방울 남기며 긴 삶을 고이 내려놓습니다. 웃음 한 번 짓기에 사랑스러운 살림을 짓는 기운이 납니다.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기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남기며 새로운 길을 나섭니다. 라오 핑루·메이탕 두 분이 예순 해를 사랑으로 지으며 살아온 나날은 이녁 아이들을 비롯해서 이 책을 읽는 우리들한테 아주 수수하면서 예쁜 이야기 씨앗을 심어 주리라 봅니다. 2016.11.1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그림(본문그림)은 윌북 출판사에서 보내 주었기에 이 글에 고맙게 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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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류동수 옮김 / 양철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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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09



기저귀도 달거리천도 손빨래하는 사내

―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글

 류동수 옮김

 양철북 펴냄, 2016.9.7. 14000원



  지난 2009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플라스틱 행성〉이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책으로도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4년에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오늘날 지구에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이 쏟아져나오는가를 다루고, 이 플라스틱을 기업과 정부가 얼마나 많이 쓰는가를 보여주며, 지구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이 이 플라스틱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는가를 밝힌다고 해요.


  오스트리아에서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린 어느 날, 수수하게 살림을 꾸리던 부부가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하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이들하고 얘기를 나누었대요. ‘영화를 본 일’로 그치지 말자고, ‘우리 집부터 플라스틱을 없애야겠다’고 했대요.


  그런데 막상 ‘우리 집 플라스틱 없애기’를 하자니 밑도 끝도 없었다지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플라스틱을 얼마나 많이 썼는가’를 날마다 새삼스레 깨달았다지요. 게다가 플라스틱을 따지고 보니 ‘자동차’는 몇 가지 쇠붙이를 빼고는 온통 플라스틱이었대요. 자가용을 안 타려 해도,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도 플라스틱이 엄청나게 쓰이니, ‘플라스틱 없이’ 살자면 자전거만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야만 했대요.



우리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믿을 만한 정보를 확보하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즉 어디서 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또 어떤 재료 속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는지 알아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만일 우리가 어느 슈퍼마켓에 가서 판매직원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실례지만 이 맥주병 마개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혹시 무슨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 건 아닌가요?” 판매직원의 뜨악해 하는 표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45∼46쪽)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님이 쓴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양철북,2016)는 글쓴이 말을 따르자면 ‘오스트리아에서 아주 수수한 아줌마 아저씨’가 아이들하고 함께 ‘플라스틱을 어떻게 줄이면서 없애는 살림’을 꾸릴 수 있는가를 적은 책입니다. 자연이나 생태에 좀 눈길을 두기는 했어도 딱히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던 수수한 사람들이요, 여느 회사원이자 여느 살림꾼으로 여느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녁은 처음에는 ‘수수한 집’에서 ‘수수한 살림’을 가꾸면서 어느 만큼 ‘플라스틱 없는 삶’이 될 만한가 궁금했답니다. 얼마든지 잘 할 만했다고 여겼대요. 그런데 막상 플라스틱이 없이 살려고 하니, 저잣마실을 가 보고서 아무것도 못 샀대요. 친환경이라든지 생태를 헤아린다는 제품조차 비닐로 포장을 하고, 생협매장에서도 거의 모두 비닐로 포장을 해 놓았으며, ‘비닐로 포장을 안 한 물건’을 거의 볼 수 없었대요.


  페트병이야 안 쓰기는 쉽지만, 맥주 뚜껑 안쪽에까지 플라스틱이 깃들었다지요. 손전화 기계도 온통 플라스틱이지요. 반찬을 담는 그릇도 플라스틱 아닌 유리나 스텐을 찾기 어려웠고, 애써 유리나 스텐 그릇을 찾아내어도 뚜껑은 온통 플라스틱이었다지요. 셈틀도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볼펜이나 만년필 껍데기까지, 잇솔이나 치약 튜브도, 샴푸를 담는 통도, 비누를 담는 껍데기도, 어디를 보아도 온통 플라스틱투성이였으니, 기막힐 뿐 아니라 코도 입도 눈도 막힐 노릇이었다고 합니다.



슈퍼마켓에서 마주치는 플라스틱의 홍수는, 꼭 그런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법한 채소 및 과일 코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기농 과일이나 채소를 왜 굳이 비닐로 포장해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73쪽)


시어머니는 느긋하게 반응했다. “네 말이 맞구나. 요새는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 많기도 하지.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잖니. 그때는 포장이 다 뭐냐, 죄다 그냥 팔았지.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았단 말이지.” (93쪽)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신 분처럼 우리 집에서도 ‘플라스틱 안 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셈틀 글판도 플라스틱이고, 아이들하고 흔히 쓰는 연필도 ‘그림이나 무늬’가 들어간 연필은 ‘플라스틱(석유 원료)으로’ 그림이나 무늬가 들어가기 미련이에요. 아이들이 쓰는 공책조차 ‘코팅 없는’ 공책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고, 우리가 흔히 읽는 책도 겉그림(표지)을 플라스틱 코팅을 하기 마련입니다. 책에 깃든 사진이나 그림도 ‘플라스틱(석유 계열) 잉크’로 찍기 마련이지요.


  이 책을 쓰신 분은 ‘플라스틱 안 쓰는 살림’을 꾸리려 하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안 할 수 있어서 한숨을 돌려요. 무엇인가 하면 ‘종이기저귀’를 안 써도 되기 때문입니다. 세 아이가 있으나 세 아이 모두 기저귀를 떼었다고 해요.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우리 살림을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집 두 아이를 오로지 천기저귀로 키웠습니다. 천기저귀를 쓰신 분은 알 텐데, 천기저귀로 아이들 똥오줌을 가리려면 돌이 될 무렵까지 날마다 서른∼마흔 장을 갈아야 합니다. 이 말은 날마다 서른∼마흔 장을 손빨래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아기만 천기저귀를 대면 될까요? 아니지요. 아기를 낳은 어머니도 달거리대(생리대)를 화학종이 아닌 천으로 써야지요. 아기 오줌기저귀뿐 아니라 어른 달거리천도 ‘화학소재 종이’가 아닌 ‘천’으로 써야 몸을 아끼는 길이 되니까요.


  나는 지난 열 해 동안 이런 손빨래를 열 해 즈음 해 왔습니다. 틀림없이 손이 제법 가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손빨래를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살림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느껴요.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절약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것이다. 절약 가능성은 정말 과감히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앨 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232쪽)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품은 너무 많은데 품질은 너무 시원찮다. 하지만 더 주된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너무 많이, 너무 값싸게 옷을 사는 건 아닐까. (280쪽)



  적잖은 사람들은 우리 살림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되묻습니다. 우리라고 플라스틱이 아예 없는 살림은 아닙니다만, 줄이거나 안 쓰거나 없애려 하면 얼마든지 줄이거나 안 쓰거나 없앨 수 있어요. 기저귀도 달거리천도 ‘아버지(사내)’가 손수 빨래를 해서 말리고 개며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집안이 더욱 넉넉하면서 평화로울 만해요.


  집안이 넉넉하면서 평화로울 수 있으면, 마을살이도 넉넉하면서 평화로운 길로 갈 테고, 나아가 나라살림도 달라질 만하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이 나라 ‘아버지(사내)’들은 아기 기저귀하고 곁님(가시내) 달거리천을 손수 조물조물 빨래하고 삶으면서 ‘살림짓기’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이럴 때에 비로소 평화와 평등이 무엇이요 어떻게 이루는가를 몸으로 깨달을 테니까요.


  우리 집에서는 설거지나 빨래를 할 적에 비누나 세제를 안 씁니다. 이엠발효액을 씁니다. 이엠발효액도 집에서 손수 마련합니다. ‘비닐 아닌 종이에 담긴 세제나 비누’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스스로 지어서 쓰면 ‘종이 포장 물건’을 애써 안 찾아도 됩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는 수수한 집안에서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한 다짐을 이루기가 얼마나 까마득하면서 어느 모로는 재미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은, 이 책을 쓴 분이 ‘집에서 손수 짓는 살림’까지 말하지는 못해요. 우리가 플라스틱 무덤에 둘러싸이는 까닭은 집에서 손수 짓는 살림하고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밥도 옷도 집도 집에서 스스로 지을 수 있다면 플라스틱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알맞게 쓰면 좋을 자리’에는 알맞게 쓰면서 더욱 즐거운 살림이 될 만합니다.


  한 가지를 덧붙여 본다면, 학교나 사회에서 성교육을 할 적에 ‘성’을 넘어서 ‘살림’도 함께 가르쳐야지 싶어요. 아기를 낳고 집일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내와 가시내 모두 기저귀와 달거리천을 손수 마련해서 손수 빨래하도록 가르치고 이끌 수 있으면 ‘플라스틱 말썽’뿐 아니라 ‘즐거이 짓는 삶’을 한결 깊고 넓게 돌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2016.10.3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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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정은석 옮김 / 더숲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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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0



새벽에 까마귀 노래를 들으며 일어나는 생물학자

―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정은석 옮김

 더숲 펴냄, 2016.9.19.16500원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가까운 시월 끝자락이니, 시골은 벼베기로 부산합니다. 벼베기를 마친 논을 겨우내 묵히기도 하고, 품앗이로 마늘을 심기도 합니다. 이제는 보릿고개라는 이름도 배고픔도 잊힌 지 오래라, 벼베기를 마친 논에 보리를 뿌리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한가을이나 늦가을 즈음이면 빈 들에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봄부터 첫가을 무렵까지는 까마귀가 한두 마리씩 따로 다니는데,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로 접어들면 수백 마리에 이르는 까마귀가 크게 무리를 짓고 한꺼번에 돌아다니곤 해요. 이에 질세라 까치도 수백 마리가 까마귀떼에 맞서서 들이나 하늘을 까맣게 덮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거닌다든지 자전거마실을 다니다가 이 까마귀떼하고 까치떼를 보면 걸음을 멈추거나 자전거를 세워요. 그야말로 하늘을 까맣게 덮으면서 우렁차게 우짖는 소리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스레 느끼고, 쫙 펼친 커다란 날개를 새롭게 느껴요.



수평선을 향해 내려가는 태양의 황금빛이 강물의 검고 파란 물방울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마라니쿡 호수 위에서 조용한 아비새 한 쌍의 검은색 실루엣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러더니 노랑솔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서 우리 쪽에 있는 버드나무 덤불로 가서는 맨 마지막 저녁 간식인 하루살이를 찾아다닌다. (361쪽)



  까마귀를 몹시 좋아하면서 까마귀 연구를 하는 베른트 하인리히 님이 쓴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더숲,2016)를 읽으며 까마귀떼나 까마귀를 문득 떠올립니다. 베른트 하인리히 님은 어린 까마귀를 이녁 아이처럼 살뜰히 아끼면서 돌보기도 하고, 다 자란 까마귀가 숲으로 돌아가도록 보내 주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헨리 데이빗 소로 님처럼 숲에 오두막을 짓고는 이 오두막에서 살며 까마귀를 비롯해서 숲살림을 곰곰이 살피기도 한대요. 이녁이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을 오두막으로 불러서 몹시 추운 겨울에 보름쯤 함께 먹고자면서 온몸으로 숲을 느끼고 살피도록 이끌기도 한답니다.



난 이 친구들을 정말 좋아한다. 이 땅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생생한 꿈을 꾸어 본다. 난 내 아들 스튜어트가 이 땅이 주는 굳건하고 안정적이고 친숙한 느낌을 느끼며 이곳에서 자라고,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길 바란다. 또한 내가 아름다운 대자연의 어머니 같은 여인을 나의 이브로 삼아 이곳에서 사는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한다. (139쪽)


나는 그가 어떻게 ‘삼림을 관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는 자격증 같은 것이 없다. 그냥 농부다. 하지만 그의 숲은 예일대학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삼림 감독원이 돌보는 숲처럼 아름답다. (329쪽)



  새를 연구하는 학자이니 학교에 머물 수 없을 테고, 도시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어렵겠지요. 새는 연구실이 아닌 들이나 숲에서 살기에 새를 연구하자면 연구실이나 실험실이나 강단이 아니라, 참말로 숲에 깃든 고즈넉한 오두막에서 조용히 살면서 새를 살필 수 있어야겠지요. 생물학자로서는 들이 배움터일 테지요. 숲이 학교요 멧자락이 책방이며 냇물이 도서관이 되겠지요.


  베른트 하인리히 님은 오두막집에서 홀로 살며 새를 비롯한 크고작은 짐승하고 푸나무를 살피면서 《홀로 숲으로 가다》를 쓰는데, 이 책은 자연관찰기이기도 하면서 문학이기도 합니다. 숲을 그리는 문학이요, 숲이 베푸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그리는 문학이며, 숲에서 깨닫는 삶하고 살림을 그리는 문학이라고 할 만해요.


  책을 읽다가 때때로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내가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살며 새벽마다 듣는 멧새 노랫소리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로 찾아드는 수많은 새가 베푸는 기쁜 노랫소리를 떠올립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에도 새로 깨어나서 팔랑거리는 나비를 헤아립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니 조물조물 깨어나는 갓잎하고 유채잎을 빙그레 웃으며 마주합니다. 가을볕에 열매가 익고 씨앗이 굵는 소리를 고요히 그리기도 하고, 바람이 들려주는 싱그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3일 후인 7월 14일, 금속을 두드리는 (까마귀) 잭의 빠른 걸음 소리와 지붕 위에서 부르는 듣기 좋은 노랫소리에 아침 5시 30분 잠에서 깨었다. 멋지군. 그러다 조용해졌다. 잭을 불렀다. 대답이 없다. 잠시 후 도로 근처에서 라이플 총소리가 들렸다. 밀렵꾼 놈들! (72∼73쪽)



  모든 사람이 생물학자 한 사람처럼 숲에 오두막을 짓고 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기도 해요.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자동차 구르는 소리에 파묻히는 풀벌레 가을노래를 잊는 이 도시를 차분히 돌아보면 어떠할까 싶지요. 높은 건물이 너무 많아서 ‘그 높다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틈이 거의 없는 이 도시를 다시금 돌아보면 어떠할까 싶어요.


  우리가 즐겁게 바라볼 곳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우리가 기쁘게 귀를 기울일 소리나 노래나 말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바쁜 도시살이를 하는 바람에 그만 잊거나 잃은 따사롭거나 넉넉한 품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요. 우리가 수수하게 되찾으면서 투박하게 어깨동무를 할 손길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30분일 수도 있고 한 시간 30분일 수도 있는 시간이 지나갔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처럼 쳐다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아마도 이곳에 온 지 5개월이 다 되는 동안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 매료되었고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주변의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잠길 수 있었다. (156∼157쪽)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가만히 몸을 맡깁니다. 해가 좋은 날에는 평상이나 마루에 앉아 해가 움직이는 결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 따라 춤을 추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나도 나무를 따라서 마당에서 춤을 추어 봅니다.


  10분도 좋고 30분도 좋아요.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살더라도, 한동안 셈틀을 끄고 손전화를 닫은 뒤에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어 보기를 바랍니다. 하늘빛을 올려다보고 큼큼 가을내음을 맡아 보기를 바랍니다. 가을이 되어 시드는 들꽃을 보려고 길바닥에 쪼그려앉기도 하고, 이 가을이 되니 새로 돋는 들꽃을 살피려고 골목을 걸을 수도 있어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어요. 사랑스러운 하루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을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또 숲과 바다에서도 함께 누려요. 2016.10.2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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