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정원사 - 누구에게나 눈부신 날들을 위한 선물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김나현 옮김 / 휴먼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숲책/숲노래 책읽기 2022.11.12.

인문책시렁 248


《충실한 정원사》

 클라리사 에스테스

 김나현 옮김

 휴먼하우스

 2017.11.15.



  《충실한 정원사》(클라리사 에스테스/김나현 옮김, 휴먼하우스, 2017)는 땅과 나무와 씨앗과 하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책이름에 붙은 ‘정원사’라는 이름인 분들은 ‘따로 손을 대어 심고 가꾸는 일’을 가리키기에, 이 책이 들려주려는 이야기하고는 좀 어긋납니다. 차라리 “뜰을 돌보다”나 “밭을 보듬다”쯤으로 수수하게 옮기는 길이 나았으리라 봅니다. “살뜰히 푸른손”이나 “알뜰히 풀빛손”이라는 숨결을 느끼도록 말결을 가다듬을 만합니다.


  이 나라에서 쓰는 ‘정원’이라는 한자말은 ‘매만져서 꾸며 놓은 꽃나무밭’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와 달리 이 책은 ‘매만지지 않고 땅심을 지켜보고 해바람비를 맞아들이는 길’을 다루지요.


  우리말 ‘돌보다·가꾸다’는 억지를 안 쓰는 길입니다. 숨결을 고이 헤아리면서 품는 길입니다. ‘매만지다·꾸미다’는 억지를 쓰는 길이에요. 숨결보다는 겉으로 보기에 좋도록 하는 길입니다.


  해를 읽고 바람을 맞고 비를 누릴 적에는 어디나 저절로 숲을 이룹니다. 사람이 손을 안 대기에 애벌레가 잎을 알맞게 갉고서 나비로 깨어나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잎만 푸를 적에는 애벌레로 살고, 바야흐로 꽃이 피려고 할 즈음 고치를 틀어 꿈누리로 간 뒤, 어느덧 꽃망울이 터져 둘레를 밝힐 무렵 날개가 눈부신 나비로 거듭나는 숲이요 들이며 터전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뜰을 돌보는 눈길이라면 이 얼거리를 기쁘게 맞이하리라 생각해요. 시골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공원·정원’이 아닌 ‘풀밭·풀숲’을 누리고 나누면서 푸른손가락으로 살림을 다독일 만합니다.


  나무는 해바람비를 먹기에 튼튼히 자라요. 사람도 해바람비를 머금기에 튼튼히 삽니다. 오늘 우리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이 터에, 해바람비가 고루 깃들면서 푸른들에 파란하늘로 넘실거리기를 바라요.


ㅅㄴㄹ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 들판의 학교에서 모든 것을 배웠단다. 그 누구도 이 전쟁이 커다란 매처럼 급습하여 마을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릴 줄은 몰랐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도 몰랐어. (40쪽)


“여기에 뭘 심을 거예요?”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 심지 않을 거란다.” 삼촌이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는 거칠어진 땅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땅을 불태웠다. “왜 아무것도 안 심고 맨땅으로 두려는 거예요?” “아, 내 강아지야, 이건 초대장이란다.” (57쪽)


“가난한 사람이 나무도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굶주린 사람이 되는 거란다. 그런데 가난하지만 나무가 있다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가지 큰 부자가 되는 거지.” (58쪽)


“땅은 아주 인내심이 강하단다. 알겠니? 씨앗과 잡초, 나무와 꽃을 받아들이고, 비와 곡식의 낟알, 불을 받아들이지. 자신에게 오라고 초대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오는 걸 허락하기도 해. 완벽한 주인이지.” (59쪽)


#TheFaithfulGardener #ClarissaPEstes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옥남 지음 / 양철북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2.11.3.

인문책시렁 244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옥남

 양철북

 2018.8.7.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옥남, 양철북, 2018)을 읽었습니다. 1922년에 시골에서 나고자라서 시골사람으로 살아온 나날을 틈틈이 글로 남긴 할머니 삶길을 옮긴 책입니다. 무척 뜻있다고 여기지만 여러모로 아쉽기도 합니다. 이 책은 할머니 하루쓰기(일기)를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는데, 할머니 하루쓰기를 뒤죽박죽으로 엮었습니다. 철에 따라 나누었다지만, 해도 날도 오락가락일 뿐 아니라, 꼭지마다 글이름을 새로 붙였는데 ㄱㄴㄷ으로 벌이지도 않았어요.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할머니가 오랜 나날 이녁 삶을 옮긴 하루쓰기는 그저 ‘해·날에 따라’ 옮기면 됩니다. 모두 시골살이를 담았고, 모두 아이를 그리는 마음을 담았고, 모두 숲빛을 헤아리고 읽는 나날을 담았어요. 처음 쓴 글부터 맨 나중에 쓴 글까지 차곡차곡 담으면 될 뿐입니다. 할머니가 걸어온 나날을 할머니 손끝으로 읽도록 엮어야 알맞습니다.


  하나 더 아쉬운데, 글씨가 너무 커요. ‘할머니가 읽기에 좋도록 큰글씨’로 하려면 따로 내서 드려야지요. 할머니가 읽을 책도 어린이가 읽을 책도 아닌, ‘할머니를 이웃으로 여기면서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읽을 책’이라면 구태여 큰글씨로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씨를 줄여서 할머니 하루쓰기를 더 담아내어 보여줄 노릇입니다.


  그리고 책끝에 풀이말을 길게 안 적어도 돼요. 할머니가 적은 맺음말이면 넉넉합니다. 또한 책을 두툼종이(양장)로 여미었는데, 책이 무겁기까지 합니다. 할머니 하루쓰기를 넉넉히 담지 않은, 고작 224쪽짜리인데 왜 두툼종이까지 써서 책값을 올려야 할까요? 수수한 시골 할매가 투박하게 여민 글씨로 숲빛으로 들려주는 하루쓰기를 그야말로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숲빛으로 엮어서 선보였다면, 할머니하고 새록새록 마음읽기를 펼 뿐 아니라, 서울 아닌 시골이라는 터전을 새롭게 바라보는 길잡이로 삼을 만했으리라 봅니다.


  시골 할머니가 남긴 애틋하고 알뜰한 하루쓰기를 살려내지 못 한 엮음새가 대단히 아쉬운 책입니다.


ㅅㄴㄹ


큰딸이 온다기에 줄려고 개울 건너가서 원추리를 되렸다. 칼로 되리는데 비둘기가 어찌나 슬피 우는지 괜히 내 마음이 처량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2002.3.20./28쪽)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앞밭에 감자밭을 맸다. 풀이 재잔은기 어떻게 많이 올라오는지 매는기 더디다. 감자가 먼저 올라온 건 벌써 이파리가 너불너불하다. (2015.5.4.맑음./60쪽)


건너 밭에 깨 모종을 심었다. 어제 심다가 못 다 심어서 오늘도 가서 심었지. 심는데 새소리가 들리는 것이 별 새가 다 있다. 호호로 백쪽쪽 하고 버드낭그에 올라앉아서 우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겠는가 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못 찾아서 결국은 못 보고 말았네. (2003.6.26.흐림/86쪽)


오늘은 벌써 투둑새가 운다. 날씨는 추운데 봄은 가차운 모양이다. 안 울든 새가 다 운다. (2009.2.20.맑음/19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 기린 덕후 소녀가 기린 박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행복한 여정
군지 메구 지음, 이재화 옮김, 최형선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숲책/숲노래 책읽기 2022.10.29.

숲책 읽기 169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군지 메구

 이재화 옮김

 더숲

 2020.11.18.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군지 메구/이재화 옮김, 더숲, 2020)는 배움길을 새롭게 여는 삶을 조곤조곤 밝힙니다. 글님은 여러 앞길을 그리다가 긴목이(기린) 몸얼개를 살피는 갈래를 파고들었다지요.


  사람이 아닌 목숨은 푸른별에서 삶터를 아주 빼앗기거나 밀리는 판입니다. 터보기(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 시늉이지만, 풀꽃나무나 풀벌레한테 미리 물어보는 일이란 없습니다. 사람만 살려고 하면 사람도 죽을 텐데, 둘레에 누가 있으며 어떻게 하루를 누리는가 하고 만나려는 마음이 자꾸 잊혀요.


  별은 날마다 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스스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닌 ‘사람물결’에 휩쓸리는 서울로 쏠리면서 별빛을 잊어요. 별빛을 잊는 마음이기에 사랑이 사라져요. 별빛을 잊는데 사랑이 왜 사라지느냐고요? 사랑은 별빛이요 햇빛이요 꽃빛이요 풀빛이요 바람빛이거든요. “네가 좋아”는 사랑이 아닌 ‘좋음’입니다. 좋음은 한 가지만 보면서 마음이 끌리는 길이요, 더 좋거나 덜 좋다고 느끼면서 크기를 가르고, 안 좋다 싶으면 내칩니다.


  더 좋은 꽃이나 덜 좋은 꽃은 없어요. 더 나은 풀이나 더 나쁜 풀은 없어요. 별도 해도 꽃도 풀도 바람도 그저 그대로 흐르는 사랑이라는 숨결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숨결을 잊으면서 그만 ‘무리짓기’로 쏠리고, 무리를 지으면서 둘레 숨결을 잊다가, 시나브로 사랑을 잃는 수렁에 잠깁니다.


  목긴이를 살피는 아가씨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이 가는 길을 굳이 갈 까닭이 없습니다. 남들이 하는 일을 애써 할 까닭도 없어요. ‘남들처럼’이 아닌 ‘나처럼’을 바라볼 수 있을 적에 둘레를 꾸밈없이 헤아리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나처럼’을 잊고서 ‘남들처럼’ 나아가면서 좋거나 나쁘다고 가를 적에는, 그만 속빛이 아닌 껍데기에 얽매이면서 이웃하고 등집니다.


  스스로 사람빛이라면, 사람하고 숲이 같은 줄 느껴요. 스스로 잊은 사람몸이라면, 숲하고 사람을 동떨어진 남으로 여깁니다. 밤에는 별바라기를 하기를 바라요. 밤에는 일찍 불을 끄고서 몸을 쉬기를 바라요. 밤에 별빛을 헤아리지 않으면, 낮에 햇빛을 맞아들이지 못 합니다.


ㅅㄴㄹ


탐스런 털로 덮인 가죽 아래 칙칙한 적색 근육이 보였다. 몇 개의 근육 다발이 층층이 포개져 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어떤 이름의 근육일까. 어떤 역할을 할까.’ (51쪽)


니나의 해부는 대실패로 끝났지만, 지식은 확실히 내 안에 축적되어 있었다. 그 느낌이 정말 기뻤다. (79쪽)


근육이나 뼈의 이름은 이해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것을 이해한 뒤,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사용하는 도구다. 그리고 해부의 목적은 이름을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의 몸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다. (83쪽)


기린의 제1흉추는 흉추지만, 기능적인 면으로 봤을 때는 ‘8번째 목뼈’인 것이다. 남은 일은 이 내용을 논문으로 만들어 세상에 발표하는 것뿐이다. (192쪽)


같은 취약종인 아프리카코끼리의 야생 개체 수가 45만 마리, 하마가 12만 5천 마리인 데 비해 너무나 적은 기린 개체 수를 보면 암담한 마음이 든다. (214쪽)


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지식을 몸에 익히는 즐거움과 위대함을 배워 왔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억지로 지식을 쑤셔넣는 ‘공부’와 스스로 기꺼이 주체적으로 지식을 얻는 ‘학문’의 차이를 깨달았습니다. (221∼2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 내가 좋아하는 것들 7
이정하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삶책/숲노래 책읽기 2022.10.13.

인문책시렁 229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

 이정하

 스토리닷

 2022.4.26.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이정하, 스토리닷, 2022)을 읽었습니다. 거닐 수 있는 다리가 있으면, 이 땅에서 솟아나는 기운을 발바닥부터 찌르르 맞아들입니다. 거닐다가 문득 멈춰서 풀밭에 가만히 앉으면 햇볕이 바람을 타고서 뺨을 스치는 기운에 서린 노래를 받아들입니다.


  들풀도 바람도 언제나 노래합니다. 거닐지 않을 적에는 이 노래를 안 들을 뿐입니다. 해님도 별님도 언제나 노래하지요. 걷지 않기 때문에 이 노래를 여태 모를 뿐입니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면서 매캐하게 방귀를 뀌는 쇳덩이에 몸을 실으면, 우리 다리는 땅바닥하고 닿을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쇳덩이는 끝없이 매캐방귀를 일으키고, 아이들이 뛰놀 빈터를 빼앗으며, 풀꽃나무가 자라면서 푸른바람을 베풀 숲터를 짓밟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부릉부릉 매캐방귀 쇳덩이’를 걷어치우고서 두 다리로 사뿐사뿐 이 땅을 디디면서 땅빛하고 하늘빛을 두루 누리는 사람으로 설까요? 우리는 언제쯤 잿빛덩이(시멘트)로 올려세운 차가운 잿터(도시)를 말끔히 떠나서 풀바람이며 해바람이며 별바람을 노래로 숨쉬는 숲살림을 지을까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를 섣불리 쇳덩이에 안 태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두 다리로 달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두 손으로 다 만지고 쓰다듬고 돌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풀냄새를 맡고 싶으며, 꽃이름을 알고 싶으며, 풀벌레 곁에서 같이 노래하면서 놀고 싶습니다. 아이를 배움터에 맡기고서 잊어버린다면, 아이들은 땅한테서도 하늘한테서도 아무것도 못 누리고 못 받을 뿐 아니라 못 배워요.


  찬찬히 걷는 하루를 그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은 빨리걷기도 아니고 느릿걷기도 아닌 삶걷기라는 작은 발걸음을 들려줍니다. 일부러 몸풀기(운동) 삼아 걷지는 마요. 부릉부릉 안 몰고서 걸으면 돼요. 이 별(지구)을 지킬 셈으로 걷지는 마요. 이 별이 우리하고 나누고 싶은 숨빛을 나누고 즐기는 하루를 헤아리면서 걸어요. 걷는 사람은 구름을 봅니다. 걷는 사람을 새를 만납니다. 걷는 사람은 철이 바뀌는 바람결을 깨닫습니다. 걷는 사람은 오늘을 늘 노래로 가꿀 줄 압니다.


ㅅㄴㄹ


올해 목표가 또 하나 생겼다. ‘2022 책수다 책’은 우리 출판사 책이 선정되는 것. (32쪽)


산책하는 시간으로 옳은 시간은 없다. 제일 좋을 때란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때다. (51쪽)


어떤 이는 말한다. 산책할 만큼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고. 그런 이들에게 나는 답한다. 여유를 만들려고 산책을 한다고 말이다. (72쪽)


사람은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건강해진다. 몸만 그런 게 아니다. (116쪽)


어차피 그곳도 그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 전 그 사람들에게는 그저 산책길에 만나는 장소였으므로, 똑같이 그렇게 그곳을 둘러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18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대와 통하는 기후 정의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9
권희중.신승철 지음 / 철수와영희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숲책 2022.7.23.

숲책 읽기 177


《10대와 통하는 기후정의 이야기》

 권희중·신승철

 철수와영희

 2021.5.31.



  《10대와 통하는 기후정의 이야기》(권희중·신승철, 철수와영희, 2021)를 읽었습니다. 둘레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기후정의’라는 일본스런 한자말 이름을 들으면 늘 숨이 막힙니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익숙할는지 몰라도,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언제까지 이런 일본스런 한자말 이름을 외우도록 시켜야 할까요?


  푸른별 날씨가 뒤틀리도록 망가뜨린 사람은 어린이도 푸름이도 아닌 어른입니다. 이 나라에 배움수렁을 처음 파놓고 모든 어린이·푸름이를 괴롭히는 쪽도 언제나 어른입니다. 배움수렁뿐 아니라 모든 슬픈 수렁이나 구렁을 파놓는 쪽도 늘 어른이에요.


  어른들 가운데 어린이 눈높이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만, 배움턱이 높지 않은 수수한 어른은 쉽고 부드러운 말씨를 쓰지요. 오래 배우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어린이 눈높이하고 동떨어진 말씨를 내내 붙잡습니다.


  벼락날씨(기후변화)를 일으킨 어른들은 ‘바른날씨’를 말할 만한 마음일 수 있을까요? 바르게 다잡을 삶터라면, 늘 쓰는 우리말부터 바르게 다듬고 고칠 노릇이 아닐까요? 처음부터 ‘사회용어’였던 말은 없습니다.


  이 나라 어른이란 사람들이 참말로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려는 마음이라면, ‘바른날씨’뿐 아니라 ‘바른말’을, 아니 ‘착한말’에 ‘쉬운말’에 ‘숲말’에 ‘살림말’을 처음부터 새롭게 배우면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기를 바랍니다. 말부터 바른말을 쓰지 못하는 판에 바른날씨를 슬기롭게 찾거나 외칠 수는 없다고 느껴요. 말부터 살림말을 쓰지 못한다면, 집안살림에 나라살림에 마을살림도 곰팡틀(가부장제)에 갇히지 않을까요? 말부터 숲말을 쓰지 않는다면, 참말로 숲을 아끼는 몸짓이 맞을까요?


  저는 바람이(선풍기·에어컨)를 안 쓰고 부채를 쓰거나, 나무 곁에 섭니다. ‘에어컨을 못 쓰면 피해자’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에어컨을 써야 할는지요? 뒤틀린 날씨를 풀어가는 길은 ‘저소득 가구 에어컨 보유’ 따위로는 못 이룹니다. 모든 집에서 에어컨을 걷어내 버리고서 모든 곳이 숲으로 거듭나도록 하면 어디나 시원합니다. 모든 곳에서 흘러넘치는 부릉이(자가용)를 확 줄여서 풀밭길에 나무길로 돌려놓으면 무더위도 사라지고 강추위도 수그러듭니다.


  이 책 《10대와 통하는 기후정의 이야기》에도 살짝 나오는데, ‘2020년 문재인 민주당 정권 뉴딜’은 어마어마한 돈을 어디에 쏟아부었는지 알 길이 없고, ‘해상 국립공원’인 바다에 ‘해상 풍력·태양광’을 어마어마한 돈을 더 쏟아부어서 벌써 때려박았습니다. ‘바른날씨’란 뭘까요? 전기 쓸 일이 아주 적은 시골에, 더구나 깨끗한 바다에, ‘해상 풍력·태양광’을 때려박은 민낯을 똑똑히 밝히지 않고서 어떤 바른날씨를 말할 수 있을는지 영 모르겠습니다.


ㅅㄴㄹ


전기 요금을 내기 힘들어 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은 폭염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됩니다. 겨울에도 난방비 때문에 제대로 된 난방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혹한의 날씨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63쪽)


2020년 서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저소득 가구 중 에어컨을 보유한 가구는 다섯 가구 중 한 가구에 불과했습니다. 저소득 가구에 에어컨을 보급하는 일만 해도 수백억 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7쪽)


선진국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40%는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된다고 합니다. (109쪽)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도시에 재생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우선 전기는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을 이용해서 생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건물을 지을 때부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139쪽)


2020년 7월 ‘한국판 뉴딜 종합 계획’을 발표했고 …… 투자비를 보면 디지털 뉴딜에 58.2조 원, 그린 뉴딜에 73.4조 원, 사회 안전망 강화에 28.4조 원 등 총 160조 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155쪽)

.

.

이 글은

이 책을 나무라려는 글이 아니다.


‘기후정의를 들먹이는 모든 책’이

이론만 가득하고

정작 실천과 현장 이야기가 없는

대목을 나무라려고

이 글을 썼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