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깃든 밥상 3 : 한그릇 요리편 - 나를 위해 차리는 92가지 ‘자기 사랑 푸드’, 2010년 제 50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부문 최종후보작 평화가 깃든 밥상 3
문성희 지음 / 샨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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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47

 


손수 짓는 밥 한 그릇
― 평화가 깃든 밥상 3
 문성희 글
 김승범 사진
 샨티 펴냄, 2013.8.27. 15000원

 


  미역국 끓이려고 마른미역을 불리고 보니 너무 많이 불렸습니다. 이를 어쩌나, 조금 덜어 놓고 나중에 끓여야 하나, 아니면 큰 냄비에 잔뜩 끓여야 하나 생각하다가, 모처럼 미역밥을 할까 생각합니다. 옆지기가 물미역 잘 먹으니, 몇 차례 더 헹구어 반찬으로 물미역 내놓아도 되겠다고 느낍니다.

 

  미역밥을 하는 김에 무를 채썰기 해서 함께 넣습니다. 밥이 익고 국이 끓을 무렵, 밥불은 끄고 국불은 아주 작게 줄입니다. 마당으로 내려가서 식구들 먹을 풀을 뜯습니다. 풀을 뜯는 김에 까마중 까만 열매를 함께 땁니다. 까맣게 잘 익은 열매가 있고, 푸르게 맺힌 열매가 있습니다. 같은 까마중 줄기에서 돋는 꽃과 열매이지만, 맺고 피는 때가 다릅니다. 아마 까마중은 먼먼 나날 살아오면서 천천히 열매를 맺어야 더 오래 더 널리 씨앗을 퍼뜨릴 수 있는 줄 깨달았지 싶어요. 까마중 열매 한 번 맺으면 한 달 즈음 조금씩 열매맛을 볼 수 있어요.


  하얗게 꽃이 피는 부추풀 바라보면서 잎을 톡톡 끊습니다. 고들빼기도 몇 포기 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꽃이 피려고 애쓰는 키 큰 고들빼기 새잎을 날마다 고맙게 얻습니다. 돌나물은 가끔 물을 주면서 살을 오동통하게 키웁니다. 오늘은 이쪽에서 뜯으면, 다음에는 저쪽에서 뜯습니다. 뜯는 자리를 날마다 바꿉니다.


.. 햇빛과 바람과 물과 흙이 없이는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는데 햇빛은 빨강, 노랑, 초록(파랑), 하양, 검정색의 집합체예요 ..  (14쪽)


  아이들 먹도록 차리는 밥은 어른들 함께 먹는 밥입니다. 아이들한테 아침저녁으로 맛나며 즐거운 밥 차리고 싶은 마음이란, 어른인 나 또한 언제나 맛나며 즐거운 밥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밥때를 즐기며 살아갑니다. 아침과 저녁이면 어떤 밥 차릴까 가만히 생각하며 보내는데, 날마다 같은 밥을 차리면서도 날마다 다른 밥상 되도록 마음을 기울입니다. 밥상 모습을 일부러 사진으로 찍으면서 ‘눈으로 보기에도 고운 빛’이 나도록 마음을 씁니다.

 

  밥은 입과 코와 손과 눈과 귀를 비롯해 온몸과 온마음으로 먹는다고 느껴요. 밥이 되는 먹을거리는 햇볕이요 바람이며 물이자 흙이라고 느껴요. 쌀과 보리에 깃든 햇볕을 먹습니다. 미역과 돌나물에 담긴 빗물을 먹습니다. 들풀에 서린 흙과 바람을 먹습니다.


  밥을 먹는 일이란 내 몸을 해와 별과 바람과 흙과 물하고 하나가 되도록 가다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처럼 따사롭고 별처럼 빛나며 바람처럼 싱그럽고 흙처럼 구수하며 물처럼 맑은 몸과 마음이 되도록 밥을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차려서 내놓는 밥상에 앉아, 아이들도 나도 ‘고맙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밥을 맛나게 먹어 주니 고맙고, 내가 나를 헤아려 차린 밥이 고맙습니다. 나는 나한테 고맙다 인사하고, 아이들한테 예쁘게 크렴 하고 바라며 인사합니다.


.. 산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는 이불, 방석, 커튼, 옷은 바느질해서 직접 만들고 있어요. 내 손으로 지은 옷만큼 편안한 옷이 세상에 없더군요 ..  (58쪽)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요. 일터하고 가까운 데에서 살아야겠지요. 어떤 일터를 드나들면서 어떤 보금자리를 일구어야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울까요. 즐거운 일을 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며 사랑스러운 일을 하면 되겠지요.


  즐겁게 일해야 도시 한복판에서 살더라도 물 한 모금 싱그럽게 마실 수 있습니다. 아름답게 일해야 공장 그득한 데에서 지내더라도 바람 한 숨 맑게 들이켤 수 있습니다. 사랑스럽게 일해야 아이들과 하루 내내 떨어져 일하더라도 밥 한 그릇 고맙게 먹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밥과 바람과 물을 받아들여야 목숨을 잇는데, 삶은 즐거움과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으로 이루어진 밥과 바람과 물을 받아들여야지 싶어요. 영양소나 맞춤식단 아닌 즐거움을 먹고 아름다움을 마시며 사랑스러움을 누려야지 싶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밥을 누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 집밥은 사랑과 정성의 에너지가 가득해서 더 맛있는 게 사실이에요.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영양만 취하는 게 아니에요. ‘좋은 기운과 사랑이 담긴 맛’을 함께 취해야 진짜 살과 피가 됩니다 ..  (182쪽)


  문성희 님이 차리는 밥상 이야기 담은 《평화가 깃든 밥상》(샨티,2013) 셋째 권을 읽습니다. 문성희 님은 ‘사단법인 평화가 깃든 밥상’ 모임을 꾸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밥상 하나에 평화가 깃들 때에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줄 몸소 느끼며 일하다 보니, 시나브로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임까지 생기는구나 싶습니다. 스스로 바라고 꿈꾼 대로 하나씩 이루어지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즐겁게 차려서 즐겁게 나누고 싶은 밥상이 이루어집니다. 아름답게 빚어서 아름답게 먹고 싶은 밥상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스럽게 내놓아 사랑스럽게 즐기고 싶은 밥상이 이루어집니다.


.. 굳이 손님상 차림이 아니라 혼자 먹는 밥상을 차릴 때도 그릇 밑에 하얀 모시 수건을 깔아 주면 내 자신이 좀더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  (243쪽)


  먹는 대로 몸이 됩니다. 술을 마시면 술이 내가 됩니다. 정수기 물을 마시면 정수기 물이 내가 됩니다. 단팥빵을 먹으면 단팥빵이 내가 됩니다. 산삼을 먹으면 산삼이 내가 될 테지요. 미꾸라지를 먹으면 미꾸라지가 내가 돼요.


  그러니까, 밥을 먹을 적에는 ‘내가 되고 싶은 님’을 헤아려야 합니다. 밥을 차릴 적에는 ‘나와 살붙이가 되고 싶은 빛’을 살펴야 합니다. 아무것이나 될 수 없어요. 아무렇게나 될 수 없어요.


  손수 짓는 밥 한 그릇으로 삶을 손수 짓습니다. 손수 지어 나누는 밥 한 그릇으로 사랑을 손수 짓습니다. 손수 짓는 밥 한 그릇에 이야기 한 자락 손수 짓습니다.


  내가 차린 밥을 내가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남이 차린 밥을 얻어서 먹을 때에도 배가 부릅니다. 내가 차린 밥을 내가 사진으로 찍어서 돌아보아도 배가 부르며, 남이 차린 밥을 남이 찍은 사진을 이렇게 책 한 권으로 찬찬히 읽어도 배가 부릅니다. 우리 서로서로 즐겁게 밥을 차려요. 우리 다 함께 아름답게 밥을 먹어요. 우리 어깨동무하며 사랑으로 삶을 지어요. 4346.9.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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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05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미역밥도 있군요~
채썰기한 무를 넣은 미역밥, 색다른 맛있는 밥일 듯 해요~
저도 물미역 좋아하는데, 오늘은 미역국과 물미역으로 즐거운 밥상을
차려야겠습니다. ^^

숲노래 2013-09-05 06:27   좋아요 0 | URL
미역을 너무 많이 불렸으면, 다음에는 나물이나 다른 것하고 함께 볶아 보기도 할까 생각해 보았어요~
 
우주 리듬을 타라
디팩 초프라 지음, 이현주 옮김 / 샨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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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4

 


삶을 빛내는 가락
― 우주 리듬을 타라
 디팩 초프라 글
 이현주 옮김
 샨티 펴냄,2013.7.25./15000원

 


  비가 오는 소리가 즐겁습니다. 비가 오면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온갖 시끄럽거나 추레한 소리를 잠재웁니다. 빗소리는 사람들 손전화 소리도 잠재우고, 자동차 복닥거리는 소리도 잠재웁니다. 비가 쏴아 하고 몰아치면 사람들은 그저 창문 닫고 꽁꽁 숨듯 조용히 지냅니다. 비가 바람과 함께 휙휙 몰려들면 사람들은 집안에서 꼼짝을 않고 비와 바람이 가라앉기를 기다립니다.


  현대문명이나 물질문명을 뽐내던 사람들 어느 누구라도 비 앞에서 바람 앞에서 비바람 앞에서 아뭇소리를 못 냅니다. 아니, 어느 누구라도 비 앞에서는 빗소리를 듣고 바람 앞에서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비바람 앞에서는 비바람소리를 들어요.


  그런데, 이 빗소리 사이사이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 퍼집니다. 이 빗소리 살며시 가늘어진다 싶으면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 울립니다. 마을에 아이들 있으면, 비가 퍼붓든 비가 가늘든 온몸이 비로 젖으며 첨벙첨벙 빗놀이를 누리는 소리가 번집니다.


.. 사람들은 어째서 행복을 첫 번째 목표로 삼지 않는 걸까? 왜 이런 부차적인 수단들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걸까 …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낼 방법이 없는 것인가 … 우리는 지구별의 바다와 비슷한 바다를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 우리 몸의 60퍼센트 이상이 물이고, 지구별의 60퍼센트 이상이 물이다 … 바다나 숲에서 얼마쯤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우리 몸의 리듬을 자연의 리듬과 일치시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살아서 하늘의 별을 본다는 사실, 아름다운 숲을 산책한다는 사실, 기적 같은 삶을 경험한다는 사실만으로 당신은 행복하다 ..  (15, 20, 51, 99쪽)


  비가 내린 하늘이 해말갛습니다. 어느 청소 일꾼도 이렇게 하늘을 씻어내지 못합니다. 어떤 기계가 있어도 하늘을 이토록 쓸거나 닦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와 문명과 경제가 수 조원이나 수십 조원이나 수백 조원을 들이붓는다 하더라도 하늘빛이 눈부시도록 가다듬지 못합니다.


  비 한 줄기 내리면서 하늘빛이 새삼스럽습니다. 비 두 줄기 내리면서 하늘빛이 싱그럽습니다. 비 석 줄기 내리면서 하늘빛이 아름답습니다.


  비가 내릴 때에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비가 내리지 않을 적에 사람들이 아무리 물을 뿌리고 뿜어도 풀과 나무는 제대로 못 자랍니다. 사람들이 주는 물로는 풀과 나무가 싱그럽거나 씩씩하게 자라는 밑힘이 되지 못합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 구름으로 모이고, 구름이 흐르며 빗물을 뿌릴 적에 비로소 풀과 나무가 활짝 웃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비가 와서 냇물이 흐르고 골짝물이 흐릅니다. 비가 오면서 샘물이 솟고 우물물이 납니다. 비가 와서 흙땅으로 스며들어 땅밑으로 물이 맑게 흘러요.


  비가 안 오면 물이 흐르지 못합니다. 비가 안 오면 맑은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비가 안 오면 풀과 나무도, 사람과 짐승도, 어느 목숨도 제대로 삶을 잇지 못합니다.


.. 당신이 ‘당신 것’이라고 말하는 그 몸이 실은 땅, 물, 불, 공기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우주의 질료들이다. 창밖의 저 나무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당신은 당신 몸을 당신 것이라고 하면서, 저 별과 달과 창밖의 나무들은 당신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 마음과 물질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우리의 본질적 존재는, 마음과 몸이라는 거죽 층들을 벗기면, 마음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그 둘의 근원이다. 달리 말해서 사람 몸이 곧 사람 마음이라는 얘기다 … 당신의 몸-마음과 전체 우주를 만든 같은 지능의 장이 바로 당신이라는 진실을 안다면, 그것을 머리와 몸으로 안다면, 어째서 당신이 그 창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는가? 어째서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무한 의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겠는가? 어떻게 은총 안에서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 당신이 누군지를 진실로 안다면, 순수 의식의 어느 부분이 당신한테서 작용하지 않겠는가 ..  (24∼25, 36, 44쪽)


  햇볕을 먹습니다. 밝고 따스하게 내리쬐는 해를 먹습니다. 해를 마주하면서 살결이 까무잡잡 타는 동안 해를 먹습니다. 밥을 차릴 적에는 지난 한 해 햇볕을 듬뿍 머금은 쌀밥을 먹습니다. 풀을 뜯을 적에는 오늘 아침까지 햇볕을 잔뜩 머금은 풀을 먹습니다. 토마토에도 오이에도 무에도 햇볕이 깃듭니다. 감에도 옥수수에도 햇볕이 서립니다.


  사람들이 먹는 모든 밥에는 햇볕이 감돕니다. 물고기도 햇볕을 받습니다. 깊은 물속은 햇볕이 미치지 않는다지만, 물속은 물속대로 햇볕에 퍼져요. 또한, 해가 늘 바다를 비추기에 바닷속에서 바닷물고기 씩씩하게 헤엄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해를 먹기에 나무가 천 해 이천 해를 삽니다. 해를 먹으니 풀은 겨울이 되어 시든 뒤 이듬해 봄에 다시 돋습니다. 해를 먹기 때문에 풀벌레는 풀숲에 깃들어 풀노래를 부릅니다. 해를 먹으니까 멧새와 들새는 멧바람과 들바람을 마시면서 고운 멧노래와 들노래를 베풉니다.


  사람들은 해를 얼마나 먹을까요. 사람들은 해를 어떻게 먹는가요. 사람들은 날마다 해를 먹는 줄 느낄까요. 사람들은 늘 해를 먹으며 숨결을 빛내는 줄 헤아리는가요.


  밥을 비롯해 옷과 집도 해한테서 비롯합니다. 해가 있기에 흙이 살찝니다. 해가 있기에 빛깔이 환합니다. 해가 있기에 서로서로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따스한 사랑은 해가 있을 적에 태어납니다. 넉넉한 믿음은 해가 있을 적에 자라납니다. 고운 꿈은 해가 있을 적에 샘솟습니다.


.. 순수 의식이 당신의 몸과 마음을 비춰 주고 생기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그것은 힘이 있고 모든 것을 길러내고 상대할 적이 없으며, 경계가 없고 자유롭다 … 우리는 마음을 뇌에만 가두어 둘 수 없게 되었다. 온몸의 모든 세포들에 그 마음이 있는 것이다 … 우리 마음은 어디에도 자리를 두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 갇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 과거와 미래, 그때와 지금, 앞과 뒤는 없다. 오직 영원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 영혼이 진동하여 생각을 지어낸다. 영혼이 진동하여 몸을 지어낸다. 영혼이 진동하여 전체 우주를 지어낸다 ..  (33, 41, 54, 79쪽)


  삶을 빛내는 가락을 들려주는 《우주 리듬을 타라》(샨티,2013)를 읽습니다. 디팩 초프라 님은 삶을 빛내는 가락을 어디에서 듣거나 느끼거나 읽었기에 이러한 글을 써내어 사람들한테 예쁜 숨결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이 책을 마주할 사람들은 이녁 삶 어느 자리 어느 때에 예쁜 숨결이 빛나는 줄 깨달을 수 있을까요.


.. 다른 어떤 동물에게도 월요일과 화요일 사이의 구분이 없다. 월요일과 화요일이 어떻게 다른가 …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로 된다. 우리가 만지는 것이 우리로 된다 … 대부분 사람들이 사회가 만드는 생각의 희생자들이다. 사회가 만든 제반 조건들의 최면에 걸려 있는 것이다 … 암세포들은 죽음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세포들이다. 그래서 죽는 법을 모르고 영원히 살고자 하여 결국 제 생명의 바탕인 주인의 몸을 죽게 한다 … 우리는 두 살 때의 몸으로 죽어서 세 살 때의 몸으로 살아났다. 이 모든 차원에서 삶과 죽음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57, 60, 64, 80, 81쪽)


  물을 마시면서 생각합니다. 내 몸속을 정갈하게 돌보아 주렴, 하고 속말을 건넵니다. 입안에 한참 물을 머금으면서 물맛과 물내음을 헤아립니다. 비가 올 적에는 대청마루에 앉거나 누워서 빗소리를 내처 듣습니다. 빗소리에 스미는 빗물내음을 가만히 맡습니다. 빗물은 땅을 적시고 내 마음을 함께 적십니다.


  파란 유리병에 물을 받아 아이들한테 따라 줍니다. 아이들은 목이 마르면 스스로 파란 유리병을 기울여 저희 물잔에 따라서 마십니다. 파란 유리병에 따른 물은 파랗게 빛나는 별과 같다고 말하니, 아이들은 물을 마실 때에 곧잘 ‘내가 파란 별이 되네?’하고 묻곤 합니다. 아이들 말을 듣고는 나도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래, 너희 마음속에 새로운 별이 뜨고, 너희 아버지 마음속에 새로운 별이 돋는구나.


  시원스레 흐르는 물로 풀을 헹굽니다. 시원스레 흐르는 물을 냄비에 받아 밥을 안칩니다. 시원스레 흐르던 물은 밥으로 바뀌고 국으로 바뀝니다. 밥과 국으로 바뀐 물은 아이들 몸과 내 몸으로 나란히 스며듭니다. 곧, 아이들도 나도 온몸 구석구석 시원스레 흐르는 물이 새 기운을 북돋웁니다.


  우리 몸은 물로 이루어졌고, 우리 몸을 이루는 물은 바람을 마시면서 싱그러운 만큼, 옆지기와 나는 물과 바람을 싱그러이 누릴 시골을 찾아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물과 바람을 싱그러이 누리는 데가 바로 삶터 되고, 물과 바람을 싱싱하게 돌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 되며, 물과 바람을 시원하게 나누는 자리가 바로 보금자리 되어요.


  맑은 바람 부는 숲에서 맑은 나무가 자라지요. 맑은 물 흐르는 숲에서 맑은 풀이 돋지요. 그러니까, 맑은 바람과 물이 없다면, 나무도 풀도 맑기 어려워요. 맑은 바람과 물이 없다면, 나무와 풀뿐 아니라 사람도 맑은 넋과 몸이 되기 어려워요.


.. 나는 순수 가능성이다. 나는 우주이다. 나는 발생하는 모든 것이다. 밖으로 눈을 돌려 별들과 은하계를 보면 그것들이 바로 나이다. 내가 빛이고 그 빛을 보는 눈이 나이다. 내가 음악이고 그것을 듣는 귀가 나이다 … 그것은 항상 거기 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농부는 씨를 뿌리고서 그것을 자기가 싹틔우려 하지 않는다. 씨가 스스로 싹을 틔워낼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식물로 자라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이 씨알 하나에 들어 있음을 농부는 믿는다 … 놀라움은 감사를 낳고 감사는 더 많은 기적을 부른다. 그리하여 당신은 더 높은 의식 상태로 옮겨간다. 단조롭고 하찮은 세계에서 매혹적이고 기적 같은 세계로 눈길이 옮겨지면서 당신 인생 또한 매혹적이고 기적적인 것으로 바뀐다 ..  (86, 122, 160쪽)


  이야기책 《우주 리듬을 타라》는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삶을 밝히는 가락은 바로 우리 몸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삶을 빛내는 가락은 늘 우리 마음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내 몸을 읽을 때에 내 몸을 튼튼히 건사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읽을 적에 내 마음을 아름답게 보살핍니다. 내가 내 몸을 못 읽는다면 내 몸을 튼튼히 건사하는 길을 알 수 없어요. 내가 내 마음을 못 읽는데 내 마음이 아름답게 흐르는 길하고는 가까이 있지 못할 테지요.


  누군가 훌륭한 사람이 있어 우리 집과 마을과 나라를 훌륭히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도 우리 집과 마을과 나라를 훌륭히 밝혀요. 곧, 내가 안 훌륭한 사람이 되면 우리 집부터 안 훌륭하겠지요. 내가 바보스러우면 내 집부터 바보스러운 빛 감돌겠지요.


  내 눈길을 사랑스레 가누면서 내 살붙이한테 사랑스러움을 들려줍니다. 내 손길을 포근하게 가다듬으면서 내 동무한테 포근한 이야기 들려줍니다. 내 마음길을 너그러이 가꾸면서 내 이웃한테 너그러운 꿈을 들려줍니다.


.. 지속되는 행복의 열쇠는 더 이상 행복을 구하지 말고 이미 자기한테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 … 자기를 용서할 때, 더 이상 자기를 심판하지 않을 때, 그때 당신은 남들도 심판하지 않을 것이고 세상의 갈등 또한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 자신에게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살아간다 … 맑게 깨어서 자기를 지켜보도록 힘쓰라 … 당신 몸이 들려주는 지혜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 몸의 감각에 깨어 있어라. 그러면 전체 우주를 알게 될 것이다 ..  (103, 108∼109, 143, 191, 204쪽)


  은행계좌에 돈이 얼마쯤 있을 때에 즐겁지 않습니다. 아니, 은행계좌에 돈이 얼마쯤 있어도 즐거워요. 그런데, 밥 한 그릇 맛나게 먹는 동안 즐거우면, 어느 누구도 은행계좌는 생각조차 안 해요. 물 한 모금 맛나게 마시는 동안 즐거우면, 어느 누구도 은행계좌는 떠올리지 않아요. 바람 한 숨 맛나게 들이켜는 동안 즐거우면, 어느 누구도 은행계좌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오늘 하루가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언제나 오늘이 어제가 되고, 언제나 모레가 오늘로 다가옵니다.


  나는 오늘 두 아이 아침밥 차려서 먹입니다. 두 아이는 아침을 먹다가 배고픔이 가신 뒤에는 마루와 방을 가로지르면서 뛰어놀고 노래합니다. 마당에는 비가 오다 멎다 합니다. 마당에 내려가서 비를 맞으며 놀기도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뛰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땀을 내며 놉니다. 땀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면, 아이들은 어느새 새롭게 땀을 내며 놉니다. 또 땀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면, 아이들은 어느덧 또 또 또 새삼스레 땀을 내며 놀아요. ‘바로 오늘 이곳 이때’에 놀아야 즐거운 줄 알기 때문입니다. 4346.8.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을 밝히는 책,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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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2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오는 날 굉장히 좋아해요~!!
<우주 리듬을 타라> 함께살기님 아름다운 느낌글 읽으니
더욱 읽고 싶네요. 이현주님이 옮기신 책이라니 한층 더...^^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3-08-26 05:29   좋아요 0 | URL
번역 완성도는 살짝 아쉬웠어요.
<아나스타시아>와 <람타>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도 읽으며 반갑고 즐거웠는데
눈과 어깨와 손에서 힘을 빼고
어린이 눈높이로 가볍게 번역을 했다면
한결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해요.

늦여름 비가 오며
날이 아주 시원해졌어요~

바람이좋아라 2013-09-1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찾아보러 들어왔다가 책 밑에 실린 함께살기님 글을 보네요. 반가워요..망설이지 않고 바로 주문하네요~

숲노래 2013-09-11 19:32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책 즐겁게 읽으면서
고운 넋 누리시리라 믿어요~

c10847 2020-09-1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대박 글잘쓰신닷 멋나요 짱
 
자연과 하나되는 녹색도시 이야기
창조문화 어린이환경팀 지음 / 창조문화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환경책 읽기 45

 


개구리 몽땅 죽은 ‘조용한’ 마을
― 자연과 하나되는 녹색도시 이야기
 창조문화 어린이 환경팀 엮음
 창조문화 펴냄,2002.4.20./8000원

 


  하루아침에 개구리 밤노래가 사라집니다. ‘친환경농업단지’라 이름을 붙인 우리 마을 논자락에 ‘친환경농약’을 ‘무인 헬리콥터’로 뿌린 날부터입니다. 해거름이 듣는 저녁부터 이듬날 새벽 네 시까지 펼쳐지던 개구리 밤노래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개구리 밤노래는 무더위를 식힙니다. 개구리 밤노래는 아이들이 포근하게 자도록 이끕니다. 개구리 밤노래는 한여름 짧은 밤을 한껏 밝힙니다. 개구리 밤노래는 달빛과 별빛을 받으면서 온 마을 따사로이 어루만집니다.


  그러나 이 밤노래를 올해에 더는 누릴 수 없습니다. 모두 숨을 거두었으니까요.


.. 급격하게 늘어나는 도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산과 숲의 녹지를 파괴하여 집을 짓는 것, 그리고 자동차와 건물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 때문에 공기가 오염되는 것, 그리고 각종 하수와 쓰레기에 의해 바다와 육지가 더럽혀지고 있는 것들이 자연 훼손의 모습들입니다. 또한 도시는 엄청난 양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한 예로 서울의 63빌딩이 하루에 소비하는 전기는 청주시 전체의 하루 전기 소비량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  (6쪽)


  달과 별이 밝은 밤에 아이들한테 부채질 해 주며 재웁니다. 두 아이를 나란히 눕힌 뒤 부채 둘을 한손에 하나씩 쥐어 천천히 부칩니다. 시골집은 도시와 달리 여름밤에도 그닥 더울 일 없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면 가만히 드러누워도 땀이 솟습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하루였다 하더라도 흙과 풀과 나무가 있고, 시내가 흐르며 바다가 있을 적에는 사뭇 다르지만, 바람이 조용한 날에는 시골도 제법 덥습니다.


  그런데, 시골마을 저녁에 왜 바람이 조용할까요. 개구리가 모조리 죽어 조용해진 탓에? 바람도 이 슬픔을 알아 조용히 고개를 떨구며 슬퍼하기 때문에? 

  밤새 틈틈이 깨어 아이들 부채질을 해 주면서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참말 논개구리 몽땅 죽고 말아 밤노래는 조금조차 들을 수 없는가 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열두 시 지나고 두 시가 될 무렵, 돌울타리로 이웃한 옆집 밭자락에서 개구리 노랫소리 한 가락 가냘피 들립니다. 올해에 깬 개구리인가 싶습니다. 용하게 넌 살아남았구나. 세 시 지날 무렵, 마을 앞자락 논배미에서 두어 마리 즈음 힘없이 노래하는 소리 들립니다. 그래, 그 엄청난 ‘항공방제’를 여러 날 자꾸자꾸 뿌리고 또 뿌렸는데에도 너희들은 참 대단한 목숨처럼 살아남았구나. 저녁나절부터 밤까지 어떤 개구리 밤노래도 못 들었는데, 깊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마디 두 마디 이곳과 저곳에서 가늘게 앓는소리 내뱉는구나.


.. 돈이나 편리한 생활보다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깨끗한 자연이 우리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하다라는 생각이 녹색도시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 곳이 주위에 얼마나 있는지. 콘크리트로 된 골목길은 자동차로 꽉 차 있고, 아파타를 제외하면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거의 없습니다. 또 생각해 보세요. 도시에서 야생동물을 본 적이 있는지. 다람쥐, 너구리, 개구리, 하늘소, 종달새를 본 적이 있나요? 도시의 하천에서 물놀이를 한 적도 없지요?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도시는 이제 오히려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  (9, 16쪽)


  도시는 자동차 때문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길을 거닐며 이야기 나누기 어렵습니다. 자동차가 드센 물결 이루어 시끄러이 지나다니기에, 도시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귀가 찢어집니다. 한갓진 골목마저 사라진 도시예요. 골목길을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으면서 ‘그리 안 넓은’ 골목마다 자동차가 빼곡하게 섭니다. 좁은 골목길을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달립니다. 좁은 골목길 따라 배달 오토바이가 무섭게 내달립니다.


  골목동네 아이들조차 골목에서 쉽게 못 놉니다. 자동차 등쌀과 오토바이 주먹다짐에 쫓겨납니다. 자동차는 달리지 않을 때에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말아, 아이들이 뛰놀 자리를 빼앗습니다.


  도시는 자동차 문명이 되면서, 흙으로 이루어진 길을 모조리 없앱니다. 도시 어른과 아이는 흙을 밟거나 만지지 못합니다. 아니, 도시에서는 흙을 구경할 수도 없어요. 흙이 어디에 있나요? 꽃그릇 하나 건사할 적에도 흙보다 ‘흙 구실 한다는 화학조합물’을 차곡차곡 담아요. 도시에서는 꽤 예전부터 ‘물을 돈 주고 사다 마셔야’ 했고, 도시에서 흙을 만지려면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그나마 손바닥만 하다 싶은 공원이 있으면 흙을 밟을까 싶지만, 잔디 다친다며 흙 못 밟게 하지요. 더군다나 공원 흙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아서 딱딱해진데다가 쓰레기와 담배꽁초 마구 버리고 말아 냄새조차 안 좋습니다.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사람이 몰려들어 살아가는 도시인데, 막상 사람 숫자는 많지만, 도시에서 사람다운 아름다운 빛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돈이 있으면 돈이 있는대로 만만하지 않은 삶이고,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대로 고단한 삶이에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랑스레 나누지 못하고,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은 돈을 적게 버는 나머지 이웃사랑을 홀가분하게 펼치지 못해요.


  무엇보다 도시에서는 하늘을 못 봅니다. 아니, 도시에서는 땅(흙)도 못 보고 하늘도 못 봅니다. 하늘을 못 보는 도시라는 말은, 사람이 10초만 안 마셔도 죽음으로 치닫는 ‘바람’을 아예 생각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할 노릇입니다. 돈은 못 벌어도 이럭저럭 살림 꾸릴 수 있어요. 바람을 안 마시면 곧바로 죽어요. 돈을 왕창 벌어 100억이니 1000억이니 쌓았어도 맑은 바람 못 마시면 몸이 망가져서 ‘애써 번 돈 제대로 못 쓰고 죽’겠지요. 돈은 한푼조차 없다지만 맑은 바람 쐬며 살아간다면, 즐겁게 웃으면서 노래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어요.


.. 우리 나라의 경우 공해의 1/3이 건축물이 배출하는 물질 때문이라고 합니다 … (독일 샤프뢸 마을은) 마을 밖에 주차장을 설치하여 마을 안으로는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걸어다닐 수 있고, 따라서 소음과 매연도 줄어들었습니다 … 서울의 거리를 생각해 보세요. 거리는 늘 막혀 있습니다. 그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도시의 하늘은 항상 뿌옇습니다. 이 매연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병을 앓고 있습니다. 또한 오염물질이 녹아 있는 산성비로 인해 도시의 문화 유적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  (21, 23, 29쪽)


  시골은 농약 때문에 사람이 사람답게 지내지 못합니다. 시골사람 누구나 논밭에 농약을 치지만, 밥을 끓이거나 국을 끓이면서 농약을 뿌리지 않아요. 시골사람 누구나 모기약 파리약 잔뜩 뿌리지만, 옷을 빨래하거나 말릴 적에 옷에 모기약 파리약 뿌리지 않아요.


  시골 떠나 아이(손자) 낳은 딸아들한테 ‘몸에 좋으라’고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을 보내려 한다면, 이러한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에 농약을 칠 일 없겠지요. 아토피 때문에 아파하는 아이들(손자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이 아이들(손자들) 먹일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을 거둔다 할 적에 농약 한 방울조차 안 쓰겠지요. 도시로 떠난 이녁 딸아들이 할매와 할배가 ‘농약 쳐서 거둔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인 줄 안다면 아이들(손자들)한테 안 먹이리라 생각해요. 적잖은 돈을 들여서 ‘유기농’으로 사다 먹이겠지요. ‘화학성분 없는 연고와 약’을 찾아서 아이들(손자들) 살갗에 발라 주겠지요. 도시로 떠난 시골 딸아들은 도시에서 살더라도 당신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가장 깨끗하고 가장 정갈하며 가장 좋은’ 것을 찾아 돈을 아낌없이 씁니다.


  그런데, 막상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을 많이 쓰고 비료도 잔뜩 써요. 시골에 일손이 없다는 말로 농약과 비료를 잔뜩 써요.


  나이든 할매와 할배 몸으로 드넓은 논밭을 건사하기 힘들겠지요. 그렇다고 옛날처럼 논밭에 돋는 온갖 들풀을 들나물 삼아 뜯어서 먹지도 않습니다. 고작 할매 할배 둘뿐인 살림이니, 들나물 잔뜩 돋아도 이 나물 뜯을 일손이 없고, 애써 뜯는들 나물로 무칠 일손이 없어요. 논일 밭일 바쁜데 들나물은 쳐다볼 겨를 없어요. 이제 시골에서는 ‘들나물’이 아닌 ‘잡초’일 뿐입니다. 빨리 농약 쳐서 죽여 없앨 ‘잡초’요 ‘해충’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을 사랑할밖에 없는 얼거리가 되었어요.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이 아니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삶이 되었어요. 1960∼70년대에 밀어닥친 독재정권 새마을운동이 뿌린 농약농사를 어느 시골마을에서건 슬기롭거나 씩씩하게 걷어치우지 못해요. 도시로 떠난 이녁 딸아들은 도시에서 큰돈 들여 ‘농약 안 친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을 사다 먹으려 하는데에도, 정작 시골에 남은 할매와 할배는 농약농사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 도시의 공기를 정화시키는 나무들이 줄어드는 것은 대기오염에 치명적입니다. 공해로 인해 환경이 나빠지면 나무의 수는 줄어들게 되고, 도시의 나무들이 사라지면 도시의 대기오염은 더욱 심각해지는 식으로 악순환도 반복될 것입니다. 또한, 나무는 도시의 기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나무가 줄어들면 도시는 여름의 강한 햇빛과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므로, 여름은 더욱 더워지고 겨울은 더욱 추워지게 됩니다 …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8300만 톤에 이르는데, 이는 일인 당 7.87톤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나무가 정화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는 겨우 140만 톤에 불과합니다  도시에는 공해에 강한 나무만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나무들도 공해가 심해지면서 그 숫자가 줄고 있습니다 ..  (37, 39, 51쪽)


  도시사람은 자동차를 없애거나 줄이지 않고서는 사람다운 삶 누리기 어렵습니다. 시골사람은 농약을 없애거나 줄이지 않고서는 사람다운 삶 일구기 어렵습니다.


  도시사람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조금이라도 걷어내려고 마음을 기울여야 비로소 사람답게 살 만한 보금자리 이룹니다. 시골사람은 논둑이나 밭둑을 덮은 시멘트를 치우고, 흙으로 된 논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려는 어리석은 짓 그쳐야 비로소 사람답게 일굴 만한 보금자리 누립니다.


  도시사람은 돈벌이 아닌 삶짓기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시골사람은 돈 되는 농사 아닌 삶을 가꾸는 농사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돈에 매이면 삶을 잃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돈에 사로잡히면 삶이 힘을 잃습니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시원한 땅밑물(지하수)이 흐르는데, 시골마을 구석구석 수도물 쓰게 하려는 바보스러운 토목공사는 뚝 그쳐야 합니다. 시골사람이 수도물 마시는 삶은 ‘문명’이나 ‘문화’가 아닌 ‘죽음’입니다. 도시사람은 맑은 물 마시려고 시골을 찾아다니는데, 외려 시골사람이 스스로 맑은 물 내다 버리고 집집마다 수도물 이으려 한다면, 어처구니없는 노릇입니다.


  시골 지자체(군청)에서는 ‘시골 수도물 사업’을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합니다. 시골 지자체(군청)에서는 시냇물과 도랑물이 흙바닥과 돌바닥으로 흐르는 물길 그대로 이어가도록 시멘트 퍼붓는 막개발 집어치워야 합니다. 4대강사업만 바보짓이 아니에요. 흙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는 일 또한 바보짓이에요.


  시멘트가 그리 좋으면 논바닥과 밭뙈기에도 시멘트를 뿌려야지요. 시멘트논에 모를 심어 보라지요. 시멘트밭에 콩을 심어 보라지요. 될 턱이 있겠습니까? ‘좋은 흙’에는 석면(슬레트 지붕) 기운이 스미면 안 될 뿐 아니라, 시멘트 기운도 스미면 안 되어요. 비닐쓰레기 태운 논밭에서 키우는 곡식이 사람들 몸에 좋을 수 있겠습니까? 밭둑에서 플라스틱과 농약병 태우더라도 밭자락에 나쁜 기운 스며들어요.


.. 일년에 자동차는 15.1%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른 자동차 연로는 매년 12.6%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따지면 연간 6조 원이 넘는 돈이 자동차 연료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먼저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운전자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경적을 울려댑니다. 이렇게 사람보다 자동차를 우선하다 보니 교통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녹지와 생태계를 파괴한다든가, 교통 체증과 소음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과, 교통쇼ㅏ고로 인한 사망과 재산피해 등은 공해가 없는 자동차가 발명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48, 52, 55쪽)


  예부터 쓰레기 없던 시골이지만, 이제 시골은 쓰레기나라 되었습니다. 맨땅에 비닐 안 덮고 고추농사 짓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감자도 토마토도 오이도 모두 비닐을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아예 비닐집 커다랗게 짓기까지 해요. ‘흙’농사는 사라지고 ‘비닐’농사만 남았다 할 만해요. 게다가 ‘농사’란 없이 ‘농약농사’만 있다고 할 판입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 아닌, 농약에서 와서 농약으로 돌아가는 사람 됩니다.


  삶을 짓거나 삶을 낳는 농사는 밀려나요. 돈을 짓거나 돈을 낳는 농사가 아니라면 안 되는 나라입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농사로 나아가려는 길은 꽉 막힙니다. ‘마을에서 모두 농약을 쓰는데 당신은 왜 농약을 안 쓰느냐’는 삿대질과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다. 친환경농업이라 하지만, ‘친환경’농약을 논에 뿌리니 논개구리 모조리 죽습니다. 겨우 몇 마리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이들이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농약은 한 번만 치지 않으니까요. 개구리는 논둑이나 밭둑에 올라서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논으로 들어갈 텐데, 논둑과 밭둑에 농약 잔뜩 뿌려대어 들풀 모조리 죽이면 개구리도 죽을밖에 없습니다. 논둑과 밭둑에 뿌리는 농약은 ‘친환경’농약조차 아니지요. 그러니까, 개구리 잡아먹는 해오라기와 수많은 새들은 농약에 찌든 개구리를 먹고는 그만 뱃속이 뒤집어져서 죽습니다.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에 항공방제를 하기 앞서까지 밤에는 우렁찬 개구리 노래잔치였고, 낮에는 수십 마리 해오라기들 하얀 날갯짓잔치였으나, 이제 밤에도 낮에도 아무런 잔치를 맞이하지 못해요. 개구리 사라지고 해오라기 사라져요. 개구리 죽고 해오라기 죽어요.


  고흥 도화면 발포리에는 ‘백로·왜가리 도래지’라는 데가 있어 관광명소로 바깥에 널리 알립니다만, 이렇게 농약 흠뻑 뿌려 개구리 몽땅 죽이면, 해오라기도 왜가리도 그저 죽을 수밖에 없어요. 새가 무엇을 먹나요.


  그리고, 개구리는 무엇을 먹지요? 초등학교 자연(과학) 수업에서도 개구리는 파리와 모기를 잡아서 먹는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개구리가 파리와 모기를 먹도록 잘 지키지 않으니, 파리와 모기가 들끓으면 다시 파리약이니 모기약이니 잔뜩 뿌리겠지요. 농약에 파리약에 모기약에, 다시 농약에 파리약에 모기약에, 이러면 시골이라는 데가 사람이 살 데가 될는지 안 될는지,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눈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소음이란, 이 모든 소리 중에서 듣기 싫고, 심지어 불쾌감을 일으킬 정도로 큰 소리를 말합니다 … 조용한 곳에서 사는 어린이들은 시끄러운 곳에 사는 어린이들보다 읽기, 말하기, 듣기를 잘 한다고 합니다 … 우리 나라 하천은 좁고 구불구불한 것이 특징입니다. 구불구불한 하천은 물살의 빠르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생태환경이 들어설 수 있습니다 …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만들어 놓고 어떻게 쓰레기를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  (61, 62, 75, 117쪽)


  아이들 읽을 환경책으로 엮은 《자연과 하나되는 녹색도시 이야기》(창조문화,2002)를 읽습니다. 이 책은 도시에서 살아갈 아이들이 삶을 어떻게 마주하거나 바라보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일구도록 도울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태 문제이든 환경 문제이든 ‘자연보호’ 문제가 아닙니다.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누리도록 스스로 생각과 마음을 가다듬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돈만 많이 버느라 젊은 날에 젊은을 한껏 꽃피우지 못한다면 이녁 삶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대학입시에 목을 매다느라 어린이와 푸름이가 햇볕조차 못 쬐고 들놀이 숲놀이 물놀이 실컷 즐기지 못한다면, 우리 어린이와 푸름이는 무슨 기쁨과 웃음을 마음에 새기겠습니까. 시골 할매와 할배가 늘그막까지 농약과 비료에 찌든 채 힘겨이 살아야 되지 않아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자연과 하나되는” 삶, 곧 “숲과 하나되는” 삶, 그러니까 풀과 꽃과 나무하고 하나가 되는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를 잊거나 괴롭힐 때에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잊거나 괴롭힌다는 뜻이에요.


  개구리 죽은 마을에 사람이 얼마나 살 만한지 생각해야 해요. 개구리 사라진 마을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해요. 개구리 살아남을 수 없는 마을에 사람이 어떤 착한 삶 어떤 참된 삶 누릴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해요.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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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동사람이다
유디트 크빈테른 / 생각하는고양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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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2

 


서울 아닌 시골서 살아가는 독일사람
― 나는 영동사람이다
 유디트 크빈테른 씀
 생각하는고양이 펴냄,2012.9.1./12500원

 


  인천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나는 작은아버지 댁에 가느라 서울에 식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서곤 했습니다.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무렵, 온식구 함께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데, 길이 참 멀고도 멀었습니다. 요즈음은 인천과 서울 사이에 엄청나게 개발을 많이 해서 아파트가 어마어마하게 섰지만, 예전에는 논도 밭도 퍽 넓게 있었어요. 예전 전철역 둘레는 휑뎅그렁하기도 했고, 높은 건물은 거의 안 보였습니다. 전철을 타고 창문을 열어 바깥을 바라보면 꽤 멀리까지 탁 트여 시원했습니다.


  전철이 오류동을 지나고부터 차츰 높은 건물이 늘어납니다. 이제는 창문으로 바깥을 구경하는 재미가 없습니다. 온갖 건물이 눈길을 가로막습니다. 어쩌다 바깥을 조금 멀리 바라볼 수 있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시멘트 건물은 하나도 볼 만하지 않습니다.


  지하철로 갈아탄다며 신도림역에서 내리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을까 봐 손을 꽉 붙잡습니다. 아니, 어머니 손에 꽉 붙잡힙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잃지 않으려고 내 손 단단히 움켜쥐고는 사람물결을 헤칩니다.


  지하철로 한참 달려 어느 역에선가 내려 택시를 탑니다. 택시를 타고 달리는데 택시는 얼마 못 가 서고 또 섭니다. 택시미터기를 바라봅니다. ‘서울택시는 인천택시보다 훨씬 비싸네.’ 하고 느낍니다. 게다가 길에 자동차 너무 많고, 신호등도 자꾸 나옵니다. 걸어가느니만 못하다고 느낍니다. 오도 가도 못하는 택시에서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우리 걸어가요. 답답해요.” 하는 말을 자꾸자꾸 합니다.


  되게 비싼 찻삯을 치러 택시에서 내리니, 목아지 아프도록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다란 아파트마을입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동 숫자를 읽기도 힘듭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저희 집을 찾아내어 돌아다닐까 궁금합니다. 커다란 아파트마을 커다란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빼곡합니다. 찻길에도 자동차가 넘치는데 주차장에도 자동차가 또 이렇게 많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옛날에 내게 한국은 그저 ‘서울’뿐이었다. 그리고 ‘서울’은 내가 매일 빠져서 헤엄쳐야 하는 바다였다. 사람, 차, 건물의 물결.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계속 그리고 너무 빨리 바뀌었다. 발전 속도는 참 무서웠다. 건물들이 끊임없이 부서지고 새로 지어졌다. 동네의 모습은 매년 달라졌다 … 서울사람들은 현대의 유목민같이 계속 또 다른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 한독 부부를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으므로 난 관심이 많았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한국을 이미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독일인 아저씨에게 한국에서도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저씨가 한국에서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못 산다고 대답했다 … 서울에서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갔을 때 나는 순간 겁을 먹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내가 중요하지 않고 불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  (14∼15, 62, 67쪽)

 


  2000년대로 접어든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며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어느 분 댁을 출판사 사장님과 찾아가는 길입니다. 서울 지하철로 여의도에서 내려 아파트마을 찾아갑니다. 낮인데 주차장은 가득합니다. 출판사 사장님이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있는 자동차는 ‘사모님(아줌마)’ 것이라며, ‘사장님(아저씨)’ 것은 아침에 다 나간다고 합니다. 한 집에 으레 자가용이 두 대나 석 대가 있는데, 웬만한 집들은 아저씨와 아줌마 것 두 대 있고, 대학생 아이가 있으면 석 대가 된다고 덧붙입니다.


  출판사 사장님 말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있다면 자가용을 두 대나 석 대나 넉 대를 굴릴 수 있겠지요. 그런데 아파트마을 주차장에 ‘한 집 자가용 두 대나 석 대’ 있어도 다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어떤 일을 하기에 사람 머릿수대로 자가용을 굴려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서 살며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동안 만나는 분들 가운데에도 ‘자가용 두 대’ 굴리는 분이 퍽 많습니다. 아저씨가 당신 자가용을 굴려서 시내로 나와 술을 마시면, 밤에 아줌마가 이녁 자가용을 굴려서 아저씨를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을 봅니다. 어느 날 몹시 궁금해서 술자리에서 넌지시 여쭙니다. 아저씨들이 술을 마실 때에 아줌마들이 자가용 몰고 나와서 집으로 데려가는데, 거꾸로 아줌마들이 술을 마시면 아저씨들이 자가용 몰고 나와서 집으로 데려가기도 하느냐고. 이 물음에 뽀죡하다 싶은 대답은 한 번도 못 들었습니다.


  또 어느 날에는 아줌마한테 슬쩍 여쭙니다. 한 집에 자가용 두 대나 석 대 있으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할 텐데, 나가는 돈이 많겠다고. 아줌마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 아이들 집으로 데려오려면 ‘아줌마 자가용’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요즘 사회가 워낙 뒤숭숭해서 유치원이나 학교로 자가용을 몰고 가서 아이들 태워야 마음을 놓는다고 말씀합니다. 아이들 생각하면 세금은 아무것 아니라고들 합니다.


.. 어머니는 “그래, 안 가면 후회할 수 있으니까 가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야. 만약에 한국 생활이 싫어지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잖아.”라고 말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신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 나는 아주 신기한 서울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카메라로 열심히 기록하고, 이런 사소함을 독일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 … 큰 도시에 살면 TV를 통해서만 자연을 본다. 나는 자연 없이 사는 것도 큰 스트레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을 떠나면 내 마음과 몸이 평정을 잃는 것 같다. 영동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갑자기 계절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계절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여름에는 항상 에어컨을 켜 놓고 살고,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된 집에 하루 종일 머문다. 서울에서 나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 갔을 때만 날씨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 살면 날씨를 온몸으로 느낀다. 서울에서는 계절 차이가 온도 차이일 뿐이지만, 시골에서는 공기, 식물, 냄새, 소리, 기분, 모든 것이 다 계절에 따라 바뀐다 … 날씨가 따뜻해지면 하루 종일 바깥에서 보낸다 … 장마철이 되면 우리는 구름 속에 산다 ..  (35, 65, 143, 157, 158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판사에서 일한 뒤, 하루 일을 마치면 으레 책방마실을 합니다. 서울에는 좋은 책방이 동네마다 많아, 하루 일 마칠 즈음이면 어느 동네 어느 책방으로 마실을 갈까 하고 어림합니다. 서울에서 혼자 살아갈 적에는 날마다 두어 군데 책방을 다녔습니다. 책방 한 곳 들를 적마다 책을 열 권쯤 고르고, 책방 세 곳쯤 들르면 가방에 담고 손에 든 책이 쉰 권쯤 됩니다. 예순 권이나 일흔 권쯤 장만한 날에도 그저 책을 끈으로 묶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집까지 나릅니다. 책방에서 집까지 걸어서 한 시간 즈음 된다면 버스도 지하철도 안 타고 걷습니다. 그냥 책 들고 걸어가는 일이 좋았습니다.


  큰길은 시끄러우니 골목길로 걷습니다. 서울에서는 골목길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워낙 많아서 시끄럽지만, 큰길을 생각하면 아주 호젓하다 할 만합니다. 큰길에서 벗어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동네마다 오래된 가게를 만날 수 있고, 오랫동안 뿌리내려 살아온 사람들 자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수많은 책을 만나는 일도 기쁘고, 집까지 책꾸러미 낑낑대며 나르는 동안 만나는 조그마한 집들 조그마한 동네 조그마한 사람들 모습을 마주하는 일도 기뻤습니다.


  내 저녁마실(책방마실)을 아는 출판사 사장님이 묻습니다. 얘야, 너 작은 자가용 한 대 있어야 하지 않겠니. 아니요, 저는 운전면허증도 없어요. 운전면허증 요새 한 주만 다니면 쉽게 따는데. 자가용 몰면 책을 못 읽어요. 서울은 가뜩이나 자동차 많고 길 많이 막히는데, 그런 데 자가용 몰고 다니면서 골이 아프기는 싫어요.


  책방 일꾼들도 나를 보면서 그렇게 큰 가방과 책꾸러미 들고 집까지 걸어가면 힘들지 않아요, 하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읽을 내 고마운 책들이니, 집까지 즐겁게 날라야지요. 스스로 짊어지고 집까지 나를 수 없다면, 이 책들을 내가 읽을 수 없다는 뜻이에요. 가다가 쉬면서 책을 읽고, 또 가다가 쉬면서 책을 읽으면 돼요.


.. 한국에 온 지 한 달쯤 지나서 우리는 ‘다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이번에는 ‘그냥’ 결혼식이 아니고 ‘훨씬 더’의 결혼식이었다. 우리가 독일에서 했던 결혼식에서보다 모든 것이 ‘훨씬 더’ 크고 많았다. 모든 것이 훨씬 더 형식적이고, 훨씬 더 비쌌다 … 이 한국 결혼식은 우리 둘에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왠지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 보였다 … 나는 혼자 생각했다. ‘손님들이 그냥 돈을 주고 밥을 먹고 가 버리네! 손님과 함께 얘기도 별로 나누지 못했잖아 … 독일에 있었을 때, 난 여러 해 동안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면 동물을 먹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햇빛도 못 보고 죽음만 기다리는 돼지나 소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독일에는 요즘 채식주의자들이 많이 생겨서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선도 안 먹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한국음식에 야채가 많지만 고기가 조금씩이라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  (44, 48, 95쪽)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로 와서 산 지 아홉해 째 되던 날, 서울 아닌 시골에서 할 일이 생깁니다. 내 일터는 이제 서울 아닌 멧골자락이 됩니다.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 멧골집에서 돌아가신 어느 분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기로 하면서, 서울을 떠납니다. 서울에는 좋은 책방이 많아 날마다 두세 곳씩 나들이하는 기쁨을 누렸기에 여러모로 서운했지만, 엄청난 글과 책을 남기신 분 뒷자리를 갈무리하는 일도 ‘새로운 책’ 만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책방마실에서는 느끼거나 배우지 못하는 남다른 사랑을 배울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두 해쯤 멧골과 서울 오가면서 지냅니다. 멧골에서는 멧골자락 품에 안겨 책을 만지고, 서울에서는 바지런히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만납니다. 서울로 가면 내가 할 일은 책방마실뿐이라고 느낍니다. 서울에서 갈 만한 데가 없고, 서울에서 쉴 만한 데가 없다고 느낍니다. 숲도 들도 냇물도 없는 서울에서 어디를 가야 쉴 만하겠습니까. 온통 아스팔트에 시멘트뿐인데다가, 끔찍하도록 넘치는 자동차물결인데요.


  책방마실을 하면 큰길하고 벗어납니다. 동네마다 조용히 웅크린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 골목 안쪽으로 접어듭니다. 조용한 데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호젓한 곳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와 어수선한 불빛하고 동떨어진 조그마한 헌책방 책시렁에서 마음을 밝히는 빛줄기를 책에서 만납니다.


  도시내기로 살아가는 동안 생각합니다. 도시사람으로 살면서 나 스스로 사람됨을 헤아리자면 책방에 있어야 한다고. 책방에 있지 않고서는 나 스스로 내가 사람인지 느낄 자리가 없다고.


  밀리고 밟히며 치이는 전철이나 버스에서 나다움을 찾지 못합니다. 골목에서조차 자동차 빵빵거리는 소리에 귀가 멍한 서울에서는 나다움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술집과 옷집 끝없이 펼쳐진 큰도시에서 나다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하늘 귀퉁이나마 올려다볼 구석이 없고, 별빛이나 달빛을 누릴 말미가 없는 데에서 나다움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멧골자락에서 이태를 일하고 세 해째 되던 날, 모든 서울살림 탁탁 털고 멧골마을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 한국은 ‘반짝반짝하지만 나를 지치게 하는 서울’만이 아니었다. 한국은 ‘서울보다 훨씬 더 큰 나라’였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모두가 한국에 서울보다 더 좋은 곳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다른 한국’이 존재한다는 진실은 내가 완전히 혼자 알아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예쁜 가을날에, 나는 시아버님, 시어머님, 남편과 함께 시아버님의 고향에 갔었다. 시아버님의 고향은 강릉 바로 옆의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 새의 지저귐, 귀뚜라미의 소리, 소나무의 향은 나에게 오랜만에 따뜻하게 포용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느낌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때 나는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산의 품에 안겨 살고 싶었다 … 시끄러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유난히 더 조용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침착하고, 더 건강하고, 더 평화로운 방향으로 ..  (102∼103, 109쪽)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전거를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비탈이 퍽 가파릅니다. 시골에도 자동차는 꽤 많지만, 시골길은 도시길처럼 반듯하거나 판판하게 펴지 않습니다. 그냥 길을 내고 그저 아스팔트를 뿌립니다. 자동차라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르내리는 길이나, 자전거로는 허벅지가 터질 듯한 오르막이 되기 일쑤입니다. 거꾸로, 자전거 멈추개가 안 잡힐 만큼 쌩 소리 내며 달리는 내리막이 되지요.


  시골에서 지내며 시골버스를 타면, 젊은이를 못 만납니다. 시골마을에서 읍내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더러 볼 뿐입니다. 아기나 아이를 데리고 시골버스 타는 사람은 더더구나 못 만납니다. 아직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기를 낳는 젊은이 있다면 어김없이 자가용을 몰아요. 아기를 낳았대서 더 큰 자가용으로 바꾸어요.

  나한테는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을 장만할 마음도 없으니, 멧골마을에서 군내버스 타는 데까지 한참 걷습니다. 저자마실이라도 하는 날이면 군내버스에서 내려 멧골집까지 돌아오기까지 땀 솔찬히 쏟으며 걷습니다. 등에 큰 가방 메고 어깨에 천바구니 낀 채 아기를 품에 안습니다. 엉금엉금 기듯 천천히 걷습니다. 아기가 깨랴 천천히 걸으면서 숲바람을 마십니다. 흙바람을 들이켜고 하늘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흘리는 땀은 흙땅에 떨어져 스며듭니다.


.. 나는 밭에서 예초기로 풀을 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는 우연히 풀밭에서 꿩을 발견했다. 풀잎 사이로 웅크리고 있던 꿩은 흙더미처럼 보였다. 나는 예초기로 꿩을 거의 죽일 뻔했다 … 나는 꿩이 왜 도망가지 않는지 궁금했다. 자세히 살펴본 후, 나는 꿩이 알 위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꿩은 알을 보호하고 싶어 했다 … 바로 그 순간, 우리 집이 내 눈에 들어왔다. 꿩집처럼 우리 집도 겸손하게 산속에 숨어 있었다. 우리 집도 꿩집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집이 더럽고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부수고 빨리 새 집을 지으려고만 하는 나에게 집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냐. 나를 보지 말고 빨리 가.” …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나는 옛날 사람들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옛날에 이렇게 어둡고 좁은 방에서 살면 사람들이 어떤 걱정을 했고, 또 어떤 기쁨을 가졌을까 ..  (123∼125, 126쪽)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멧골마을에서 떠나 서울이나 큰도시하고 훨씬 멀리 떨어진 두멧시골로 삶터를 옮깁니다. 첫째 아이와 살던 멧골마을은 이럭저럭 서울이나 큰도시하고 가까웠어요. 이러다 보니 둘레에 공장도 많고 자동차도 많았으며, 나날이 매캐한 바람 되어 하늘이 뿌옇게 바뀌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도 옆지기도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 아닌 또랑물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기계소리 아닌 빗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개구리와 풀벌레가 어우러지는 숲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바람 따라 나부끼는 나뭇잎과 풀잎이 자아내는 푸른내음 가득한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며, 봄에는 봄을 느껴 좋습니다. 여름에는 여름을 누려 좋습니다. 가을에는 가을을 노래하며 좋습니다. 겨울에는 겨울이 오들오들 추워 좋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니 봄이 그야말로 봄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니 여름이 참말 여름입니다. 시골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는 하루하루란, 고스란히 가을이고 겨울입니다.


  날마다 다른 삶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새로운 빛입니다. 구름이 흘러 그늘을 만들어 베풀 적에는 구름그늘 이토록 시원하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나뭇잎 우거져 나무그늘 드리울 때에는 나무그늘 이토록 푸르구나 하고 깨우칩니다.


  풀포기 뜯어서 맛을 봅니다. 풀포기 종아리를 스치며 내 몸을 간질입니다. 딱정벌레가 머리통에 내려앉습니다. 나비 애벌레가 팔뚝에 내려앉습니다. 파리와 모기가 달라붙기도 하지만, 나비와 잠자리가 살그마니 어깨에 내려앉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보는 꽃은 모두 들꽃이지만, 시골사람 어느 누구도 들꽃을 ‘들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들꽃을 그대로 ‘꽃’이라 말합니다. 시골사람은 들풀을 ‘들풀’이라 말하지 않아요. 그대로 ‘풀’이라 말합니다.


  그렇지요. 모두 그대로 ‘나무’요 ‘꽃’이며 ‘풀’입니다. 나무이자 꽃이고 풀일 뿐입니다. 수목원이 아니고 산림자원 아닙니다. 화초도 화분도 야생화도 아닙니다. 야생초도 잡초도 산야초도 아닙니다. 모두 나무이고 꽃이며 풀이에요.


  사람은 그대로 사람이지요. 아이는 그대로 아이예요. 할머니는 할머니일 뿐이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절름발이를 절름발이라고 했습니다. 놀리거나 비아냥거리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려는 뜻으로 절름발이라 하지 않습니다. 다리를 저니까, ‘저는 모습’ 그대로 ‘다리 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절름발이라 했을 뿐입니다. 앉은뱅이라는 이름도, 장님이라는 이름도, 벙어리라는 이름도, 모두 ‘차별·편견·소외’로 붙인 이름 아닙니다. 수수하게 바라보며 투박하게 붙인 이름입니다. 서로서로 살가운 이웃으로서 부른 이름입니다. 누군가 절름발이이듯, 나무는 나무입니다. 누군가 앉은뱅이이듯, 꽃은 꽃입니다. 누군가 장님이듯, 풀은 풀입니다. 시골에서는 절름발이와 나무가 똑같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입니다. 벌레와 사람이 서로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볏포기도 풀포기도 모두 고마운 이웃입니다.


.. 독일에서는 오래된 집일수록 인기가 많다. 독일사람들은 보통 오래된 집들이 현대적인 콘크리트 집보다 훨씬 더 예쁘고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오래된 집들을 함부로 부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우리 집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먼지와 거미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나무 기둥과 마루가 눈에 띄었다. 집짓기에 사용된 목재는 다 100년 전 어느 겸손한 목수가 손으로 직접 다듬은 것이다. 나무 기둥과 문들이 다 자연스럽게 휘어져 있다. 기둥을 만지면 이 집을 만든 사람의 꼼꼼한 손동작을 내가 다시 느낄 수 있다 … 집을 수리하면서 수많은 보물을 발견했다 … 이 집이 이렇게 예쁘게 변한 것은 이 집 자체가 원래 예뻤기 때문이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 우리가 한 일은 이미 존재하는 보물을 발굴해 낸 것뿐이었다 … 나는 요즘도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사람들은 왜 옛날 집들의 가치를 모르는 것일까? 닦지 않은 보물도 보물 아닌가? 옛날 집들을 조금만 돌봐 주면 귀중한 보석들이 막 쏟아져 나올 것이 확실하다 ..  (131, 133, 137쪽)

 


  유디트 크빈테른 님이 쓴 글을 모은 《나는 영동사람이다》(생각하는고양이,2012)를 읽습니다.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독일에서 나고 자란 분인데, 강원도 삼척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아갑니다. 이 책 《나는 영동사람이다》는 강원도 삼척에 있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조그마한 손길로 엮어서 태어납니다.


  독일에서 나고 자라며 학교를 다니다가 ‘독일로 배움길 떠난 한국사람’을 만나 그만 사랑에 빠져 둘이 함께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여겨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 유디트 크빈테른 님입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살았다고 해요. 서울에서 일곱 해 살았다고 합니다. 이동안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몹시 슬펐고, 매우 힘들었으며, 아주 고단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지, ‘서울’이라고 하는 너무 크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고달프며 너무 어수선한데다가 너무 어지러운 곳에서 ‘시달리거나 들볶이’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더할 나위 없이 괴로운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처음으로 ‘서울 아닌 한국’을 보았다고 해요. 당신이 이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자면 ‘서울 아닌 한국’에서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며 착한 살림 꾸려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독일사람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서울사람’ 아닌 ‘한국사람’이 됩니다. 아니 ‘한국사람’이라기보다 ‘삼척사람(嶺東)’이 되어요.


.. 한국어는 정말 고문 도구다! 설상가상으로 한자도 있다. 이것도 참 미스터리다. 세계에서 제일 효과적인 자모를 만든 국민이 세계에서 제일 복잡한 문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단 말인가 … 12년 동안 학생이 나를 비판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학생들이 나뿐 아니라 다른 교수들도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다른 교수들도 비판받은 경험이 거의 없을 것 같다 … 만약에 한국 학생이 교수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면, 교수는 그 학생과 토론하고 논쟁하는 대신에 그냥 그 학생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화를 낼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이 사실을 안다. 그러니 교수와 토론하는 것을 아예 시도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해, 한국 대학교에서 교수의 말을 다 외우고 반대 한 번도 하지 않고 교수에게 선물도 주는 학생이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제일 많은 것 같다 … 만약 내가 선생님으로서 틀린 것을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나를 비판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학생과 나의 의견이 다른 경우에는 솔직하게 토론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  (212, 235∼236쪽)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들은 가끔 군내버스 타고 읍내로 마실을 다녀옵니다. 따로 닷새저자에 맞추지는 않습니다. 닷새저자에는 온 마을 할매 할배 저자마실 다니시느라 군내버스에 자리가 없어요. 앉을 자리는커녕 아이들 데리고 설 자리마저 없습니다. 닷새저자 아닌 날에 맞추어 읍내로 다닙니다.


  시골 군내버스를 타는 분은 하나같이 할매와 할배입니다. 그리고, 한국 시골로 시집을 온 동남아시아 아가씨입니다. 처음 고흥에 깃들어 만난 예쁘장하고 어린 동남아시아 아가씨가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느 날 등에 아기를 업고 군내버스를 탑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으로 시집을 오는 동남아시아 아가씨들은 거의 시골로 와서 살아갑니다. 도시에서도 곧잘 살아갈 테지만, 시골로 시집을 오는 동남아시아 아가씨들 아주 많아요. 이들한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서울’이 아닌 ‘시골’일 테고, 한국을 떠올리거나 살필 적에도 ‘서울 나라’ 아닌 ‘시골 나라’가 되겠지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느낄까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랄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사람이 되어 사랑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학교에서는, 집에서는, 마을에서는, 일터에서는, 어떤 사람다움을 보여주고 어떤 사람다움을 가르치는가요.


  어느 모습을 놓고 ‘한국’이라 할 만할까요. 서울이 한국일까요. 부산이 한국일까요. 서울과 함께 시골을 아울러야 한국일까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데는 어디인가요. 스스로 사람다운 착한 넋 돌보면서 참다운 삶길로 걸어갈 만한 데는 어디인가요. 4346.7.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을 밝히는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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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0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한 목수가 예쁜 손길로 지은 겸손한 집.
겸손한 나무들 겸손한 풀들 겸손한 마음의 사람들 그리고
겸손하고 기쁘고 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영동사람이다> 느낌글 읽으며
또 오늘 아침도 즐거운 하루 시작합니다~
책이, 글도 실린 사진도 함께살기님 느낌글도 참으로 좋네요~^^
저도 어서 장만해 읽고 싶어요. ^^


숲노래 2013-07-04 09:52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알라딘에는 있지만 예스24에는 없더군요.
알라딘에서 이 책을 살 수 있는 대목도
참 반갑구나 싶어요.

시골 작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
모든 책방에 배본을 하지는 못하셨나 봐요.

 
멸종위기의 새 - 61종 한국 생물 목록 4
김성현 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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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44

 


사라지는 새와 나무와 어린이
― 멸종위기의 새
 김성현·김진한·허위행·오현경·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2012.11.26./22000원

 


  큰도시에 둥지를 마련하는 제비는 거의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직 몇 마리 있을는지 모르나, 제비는 큰도시하고는 아주 발을 끊는다고 느낍니다. 작은도시하고도 웬만하면 발을 끊지 싶어요. 참으로 먼길 날아다니는 제비인 만큼, 하늘을 날며 마셔야 할 바람이 지저분한 도시 언저리에서는 그야말로 숨이 막히겠지요.


  그런데 큰도시에는 참새와 비둘기가 퍽 많고 까치도 곧잘 깃듭니다. 직박구리나 박새도 더러 깃들고, 딱따구리 가운데에도 도시 한쪽에 깃드는 아이들이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배짱 좋네 싶고, 달리 보면 이 새들로서는 먼먼 옛날부터 ‘이녁(새) 어버이’가 살아가던 터예요. 오늘날에는 도시가 되었지만 지난날에는 숲과 들이었을 테니, 옛터와 옛 어버이를 헤아리면서 도시에서 안 떠난다고 할는지 모를 일입니다.


.. 작년 이맘때 만났던 새들이 올해도 또 올까? 궁금증에, 그리움에, 보고 싶은 설렘까지 겹쳐 야외로 마중을 갑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나를 만나러 온 녀석들이 기특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  (머리말)

 


  거의 모든 새들은 도시를 떠납니다. 아니, 거의 모든 새들은 도시에서 쫓겨납니다. 거의 모든 들짐승도 도시를 떠납니, 아니, 거의 모든 들짐승도 도시에서 쫓겨났어요. 수많은 딱정벌레와 풀벌레도 도시에서 쫓겨났어요. 도시에서 풀과 꽃과 나무가 밀리고 쫓기고 밟히면서, 딱정벌레와 풀벌레가 도시에서 밀리고 쫓기고 밟혀요. 이러면서 들짐승과 새도 나란히 도시에서 밀리고 쫓기고 밟혀요.


  잘 생각해 봐요. 풀·꽃·나무가 밀리고 쫓기고 밟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가를. 곰곰이 헤아려 봐요. 딱정벌레·풀벌레가 밀리고 쫓기고 밟히는 데에서 사람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서로 어떻게 지내는가를. 찬찬히 따져 봐요. 들짐승·멧새 밀리고 쫓기고 밟히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삶 일구면서 어떤 사랑이 자라는가를.


  풀이 돋지 못하는 시멘트땅과 아스팔트길에서 사람 또한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끔찍하게 춥습니다. 꽃이 흐드러지지 못하는 도시에서 사람 또한 철을 잊고 날씨를 모릅니다. 나무가 우람하게 뻗지 못하는 도시에서 사람들 누구나 아름다움과 착함과 즐거움하고 동떨어져요.


  어떤 곳에서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사람이 서로를 가장 아끼고 돌보며 사랑할 만할까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어떤 보금자리에서 착한 사람 되어 참다운 삶 일굴는지 돌아보고 따지고 살펴야지 싶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말합니다. 착하게 살아갈 적에 착하게 생각하며 착하게 말합니다. 즐겁게 살아가야 즐겁게 생각하면서 즐겁게 말해요.


  오늘날 사람들 마음과 생각과 말과 매무새는 어떠한가요. 오늘날 사람들 마음은 아름다운가요. 오늘날 사람들 생각은 환하거나 밝은가요. 오늘날 사람들 말과 글은 사랑스럽거나 따스한가요. 오늘날 사람들 매무새는 기쁨과 웃음이 넘치는가요.


..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새들을 만나고 그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은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다지 땅덩이가 넓은 나라는 아니지만, 계절마다 텃새, 여름철새, 겨울철새, 나그네새 등 약 520종의 다양한 새들이 함께 살아가니 참으로 살기 좋은 우리 나라입니다 ..  (머리말)

 

 


  《멸종위기의 새》(자연과생태,2012)를 아이들과 함께 읽습니다. 책에 깃든 새 예순한 가지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 가운데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마주칠 만한 새로 누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 집 둘레에 어떤 새들이 깃들까 궁금합니다.


  《멸종위기의 새》에는 안 나오지만, 꾀꼬리 구경하기도 아주 어렵습니다. 꾀꼬리 노랫소리 듣기도 힘들고, 꾀꼬리 노란 깃털 마주치기도 힘들어요. 따오기뿐 아니라 뜸부기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아이들한테 매나 수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모르겠어요.


  그림책이나 사진책에서만 보는 새로는 아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어요. 지난가을부터 고흥 들판에서 더러 매처럼 보이는 새를 보는데, 매라기보다는 누렁조롱이 아닌가 싶어요. 매는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머리에 인천에서도 가끔 보곤 했지만, 이제는 깊은 시골이나 멧골에서조차 쉬 만나기 어렵습니다.


.. 제비, 참새처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새들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동요에 나오는 따오기를 이미 야생에서 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 “새들이 살 수 없는 곳은 사람들도 살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와 후손을 위해 새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  (머리말)

 


  새가 사라지고 나무가 사라집니다. 여기에, 어린이가 함께 사라집니다. 고샅과 골목과 들과 숲과 바다와 냇가에서 뛰노는 어린이가 나날이 사라집니다. 새들이 살 보금자리도 사라지지만, 어린이가 뛰놀 쉼터와 빈터와 놀이터 몽땅 사라집니다. 어린이가 사라지면서 놀이가 사라집니다. 딱지를 접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늘고, 연을 만들 줄 모르는 아이들이 늡니다. 흙바닥에 금을 긋고 수백 가지 놀이를 새로 만들던 생각빛이 사라집니다. 게임기와 만화영화는 늘지만, 아이들 스스로 지어서 부르던 놀이노래 사라집니다.


  어린이는 이제 새를 그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이제 풀도 꽃도 나무도 그리지 않습니다. 도시 학교에서는 새와 풀과 꽃과 나무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림학원이나 미술학원에서는 도시에서 흔히 쓰는 물건을 그릴 뿐이고, 화가나 만화가 되어도 새와 풀과 꽃과 나무 그릴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와 건물과 고속도로와 탱크와 총칼을 멋들어지게 그리는 아이들이 많지만, 새와 풀과 꽃과 나무를 싱그럽고 해맑게 그리는 아이들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아니,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도 새를 말하지 않고 풀과 꽃을 말하지 않아요. 어른들부터 나무를 말하지 않고, 시골과 숲과 들을 말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물장구를 칠 냇가가 없듯, 어른들이 도란도란 모여서 어울릴 냇가도 없어요. 아이들이 뒹굴 나무그늘이나 흙땅 같은 빈터와 쉼터가 없듯, 어른들이 하루일 마치며 느긋하게 이야기꽃 나누는 마당이나 쉼터 또한 없어요.


  새가 사라지는 한국에 사랑이 사라집니다. 새가 깃들지 못하는 죽음터로 바뀌는 한국에서 꿈과 믿음과 이야기가 나란히 죽음터로 내몰립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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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 보니 정말 제비를 본 일이 이제는 없네요. 그나마 자주 볼 수 있었던 참새나 비둘기도 그러구요.. 그래도 가까운 숲에 가면 이름은 모르지만 나무들 위에서 청아하게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는 들을 수 있구요..
작년인가 도연스님의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를 읽으며, 거의 잘 모르던 새들의 이야기에 즐거웠는데 오늘 말씀해주신 <멸종위기의 새>도 구해 읽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06-25 12:3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사진만 있는 책이라 아마 사진만 보실 텐데,
'멸종위기' 새들이기에
그야말로 사진 아니고서는 보기 어려운 새들뿐이랍니다 @.@

사람들이 '우리 삶터 곁 새들' 얼마나 사라지면서
나날이 '재미없는 삶' 되는가를 느낀다면 좋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