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는 아빠 해마 - 신화 속 바닷물고기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19
최영웅.박흥식 지음 / 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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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2

 


이 땅에 드리울 사랑이란
― 아기 낳는 아빠 해마
 최영웅, 박흥식 글
 지성사 펴냄, 2012.1.4.

 


  최영웅·박흥식 두 분이 함께 빚은 이야기책 《아기 낳는 아빠 해마》(지성사,2012)를 읽습니다. 책이름에 나오기도 하고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도 있는데, 수컷 해마는 알을 낳지 않습니다. 암컷 해마가 알을 낳습니다. 수컷 해마는 암컷 해마가 낳은 알을 품어서 태어나는 날까지 보살피는 노릇을 맡습니다. 암컷 해마가 낳은 알이 수컷 해마 몸에서 다 자라 알을 깨고 나오니, 마치 수컷 해마가 새끼를 낳는 듯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 돌보거나 키우는 몫은 아직 거의 모두 어머니가 맡습니다. 남녀평등 이름이 드높아도, 정작 아이를 씩씩하게 돌보는 아버지는 아주 드뭅니다. 회사일 접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려는 아버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돈을 더 많이 잘 벌어야겠다 다짐하는 아버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려 하는 아버지가 드문드문 있어요. 이분들은 해마와 같이 ‘아이를 오롯이 돌보아 키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무리 아이들을 잘 돌본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아이를 낳아요. 어머니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아이를 돌볼 수 없습니다.


.. 해룡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서식하고 있는데다가 행동 또한 매우 느려 천적에게 공격받을 경우 도망칠 능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해룡에게도 가장 위험한 천적은 사람이다.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관상용으로 매우 인기가 높아 비싸게 팔리므로 늘 포획의 대상이 되어 왔다 … 우리 나라와 같이 연안 매립이 활발하고 해양 오염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해마가 사라지는 불행이 우리 세대에 닥칠 수도 있다 ..  (35, 47쪽)


  아이들은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을 함께 받을 적에 맑고 씩씩하며 튼튼하게 자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이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을 골고루 받아먹을 수 있도록 몸을 쓰고 마음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버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면 어버이가 되지 못합니다. 사랑을 함께하지 못할 적에는 어버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습니다.


  돈을 잘 벌어다 주어야 어버이가 아닙니다. 사랑을 나눌 때에 어버이입니다. 값진 옷을 입히거나 자가용에 태워 주어야 어버이가 아닙니다. 사랑을 함께해야 어버이입니다.

  아이들은 돈 걱정을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집 걱정을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밥 걱정도, 옷 걱정도, 학교 걱정도, 그야말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생각을 합니다. 무얼 하며 놀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꿈을 품습니다. 이것을 해 보고 저것을 해 보려는 꿈을 품습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하나요. 어른들도 생각을 하나요? 어른들도 꿈을 품나요? 혼자 살아가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생각과 꿈을 품을 노릇이지만,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더더욱 생각과 꿈을 품고 키워야 합니다.

 

..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떼를 지어 살아가는 데 비해, 해마뿐만 아니라 해마가 속한 실고기과 물고기들은 혼자 살거나 아주 적은 수가 무리를 이룬다. 이러한 생활 방식 때문에 자연 속에서 해마는 아주 적은 수만이 어렵게 짝을 이루어 살 뿐, 대부분은 일생을 혼자서 살아간다 … 해마는 짝짓기를 할 때 외에는 일생 동안 전혀 이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대부분의 해마는 이동을 하지 않고 평생을 한곳에서 혼자 산다. 아니, 이동하고 싶어도 워낙 느리게 헤엄치는 신체 구조 때문에 혼자 힘으로 멀리 이동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동 속도가 매우 느린데다가 바늘이나 독과 같이 특별하게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보호색만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동하는 동안 큰 물고기들에게 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  (53, 59쪽)


  해마는 바다에서 살아갑니다. 해마는 바다에서 해마답게 살아갑니다. 다른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대로 살아갑니다. 머나먼 길을 돌고 도는 물고기가 있고, 한 자리에서 맴돌듯이 살아가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살든 저마다 다른 나날이고 이야기이며 빛입니다. 해마는 해마대로 꼬리로 무언가를 붙잡으면서 먹이를 찾고 삶을 일구며 사랑을 속삭입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멀리멀리 나들이를 하겠지요. 한 번 나들이를 하면 다시는 예전 삶터로 못 돌아올 텐데, 아무튼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갯벌도 바다도 아무렇지 않게 메웁니다. 논을 늘린다는 핑계로, 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실로, 공장을 세우겠다는 말로, 관광단지를 짓는다는 목소리로, 이래저래 갯벌과 바다를 하루아침에 우당탕쿵탕 메웁니다.


  갯벌과 바다에 살던 수많은 목숨들이 하루아침에 죽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죽습니다. 까닭도 없이 죽습니다.


  사람들은 갯벌과 바다뿐 아니라 들과 숲을 아무렇지 않게 밉니다. 고속도로를 닦는다는 핑계로, 고속철도를 놓는다는 구실로, 공장과 골프장을 늘려야 한다는 말로, 발전소와 아파트와 관광단지 따위를 짓는다는 목소리로, 이래저래 들과 숲을 하루아침에 와장창 깨부수며 밉니다.


  들과 숲에 살던 어마어마한 목숨들이 하루아침에 죽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죽어요. 까닭도 없이 죽어요.


  지구별 사람들이 이룬 문화와 문명이란 이웃 목숨을 죽인 무덤에서 이루어집니다. 지구별 사람들이 지내는 도시란 이웃 목숨들을 까부순 자리에서 태어납니다.


.. 갓 태어난 어린 해마는 꼬리가 매우 짧고, 다른 물체에 꼬리를 감아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 않다. 그래도 태어나자마자 무언가 붙잡으려고 꼬리를 감아 보지만, 실패하고 마치 플랑크톤처럼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떠다니게 된다. 즉, 갓 태어난 어린 해마들은 대부분 아빠 해마의 배안에서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험난한 자연과 맞부딪치면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 … 아마도 해마를 집중적으로 잡아먹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 해마는 시장에서 늘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 유럽과 북미의 공공 수족관에서만 관상용으로 매년 10만 마리 정도가 소비되고 있다 ..  (61, 67, 72, 73쪽)


  사람이 살자니 어쩔 수 없다 할는지 모릅니다. 큰 물고기도 살아가려고 작은 물고기를 먹으니까요. 큰 짐승도 살아가려고 작은 짐승을 먹으니까요. 작은 짐승도 살아가려고 풀을 뜯어서 먹으니까요. 작은 짐승도 겨울잠 자려고 땅을 파서 구멍을 길게 내고는 조용히 깃드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참말 살려고 이웃 목숨을 죽일까요. 이웃 목숨을 죽이는 줄조차 안 느끼거나 못 느끼면서 이웃 목숨을 죽이지 않나요. 러시아와 미국과 일본에서 핵발전소가 터졌습니다. 세 나라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지구별을 잔뜩 뒤덮습니다. 세 나라뿐 아니라 핵무기를 실험한다며 끝없이 터뜨리고 또 터뜨리니, 핵무기 실험을 하는 사막과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방사능이 온 지구별에 감돕니다. 그렇지만 지구별 사람들은 전쟁무기 만들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핵무기 없다지만 핵발전소 있고, 전쟁무기 엄청나요. 남녘에도 북녘에도 바보스러운 전쟁 미치광이가 권력을 거머쥔 탓에, 군대도 경찰도 끔찍하게 많습니다. 남북녘에 총칼과 탱크와 전투기 따위가 얼마나 많은가요.


  전투기가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동안 새가 죽습니다. 전투기 뜨고 내릴 공항을 닦는다며 들과 숲을 온통 파헤칩니다. 공항에서 버리는 쓰레기 때문에 들벌레와 숲짐승이 죽습니다. 미군기지에서만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요. 한국기지에서도 쓰레기를 엄청나게 버립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안 나올 뿐이에요.


  우리가 살려니 군대가 있어야 할까요. 이 나라가 살아야 하니 군대를 엄청나게 거느려야 할까요. 참말 살려고 군대를 둘까요. 참말 살고 싶어 전쟁무기를 만들어 건사할까요.


  스스로 죽으려는 짓 아닐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죽고 싶으니 군대와 전쟁무기를 거느리는 꼴 아닌가 궁금합니다. 스스로 죽고 싶으니 갯벌과 바다를 아무렇게나 더럽히고, 스스로 죽을 생각이니 들과 숲을 깡그리 짓밟는 셈 아닌가 궁금합니다.


.. 해마의 소화기관은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병에 걸린 새우나 껍질이 검게 변해 버린 새우를 먹으면 바로 병에 걸리고 만다 … 강인해 보이는 피부도 별도의 보호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일단 공격을 받거나 상처가 생기면, 자기 스스로 회복시키지 못해 상처가 몸 전체로 퍼져 죽는 경우가 많다. 환경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 서식지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면, 그곳에 사는 대부분의 해마는 운명을 같이하는 처지에 놓인다 ..  (65, 74쪽)


  송전탑은 밀양에만 세우지 않습니다. 온 나라 구석구석에 엄청나게 많은 송전탑이 섭니다. 중앙정부는 밀양에서 송전탑 세우기를 밀어붙여요. 조용한 바닷마을에 해군기지 아무렇지 않게 지어요. 아름다운 들과 숲과 멧골에 군부대 잔뜩 세워요.


  미국군뿐 아니라 한국군도 무슨무슨 훈련을 한다면서 시골마을 논밭을 군화발로 뛰어다닙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나도 1995∼1997년에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 있는 군부대에서 육군보병으로 훈련을 뛸 적에 중대장과 하사관 명령과 지시에 따라 ‘지도만 보면서’ 시골 논밭을 아무렇지 않게 완전군장을 한 채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시골 논밭을 일구는 할매와 할배는 완전군장에 총을 쥔 군인들 수백 수천이 뛰어다니는 모습, 여기에 헬리콥터가 날고 탱크가 우르릉거리는 둘레에서 숨을 죽이며 창문도 못 열며 지켜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군인이 되어 무슨 짓을 하는 줄 그때에 하나도 몰랐어요. 콩밭을 밟는지, 마늘밭을 밟는지, 하나도 몰랐어요. 안 뛰면 뒤에서 군화발로 걷어차고 소총으로 대가리를 갈기는데, 얻어맞기 싫으니 논밭이건 도랑이건 숲이건 어디이건 마구 휘저어요. 아무 데에서나 똥오줌을 누고, 아무 데에나 전투식량 껍데기를 버리고, 아무 숲에서 아무 나무나 베어 천막위장 한답시고 씌우며 훈련을 뛰었어요. 군인이란 놈들은 이런 멍텅구리 짓을 해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송전탑뿐 아니라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 따위도 이 나라 곳곳에 수두룩하게 있습니다. 모두들 우리 삶터를 살리는 시설이나 문명이 아니라, 우리 삶터를 옥죄거나 죽이는 시설이나 문명입니다.


.. 해마를 마구 잡아들이는 지역은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열대 지역 삼나라들로, 해마 채취가 주민들의 수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여 해마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도 이들을 설득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  (123쪽)


  《아기 낳는 아빠 해마》를 읽는 동안 온갖 생각이 갈마듭니다. 해마는 그저 바다에서 조용히 살아갑니다. 암컷 해마도 수컷 해마도 이녁 새끼를 알뜰히 사랑하며 아낄 뿐입니다. 그렇지만,사람들은 해마를 해코지합니다. 해마를 괴롭히고 들볶습니다. 밥을 삼거나 약을 삼아 때때로 조금씩 잡는다면 나쁘지 않으나, 해마가 살아갈 곳을 모조리 짓밟고, 수족관에 들인다거나 장난감처럼 삼으려고 마구 잡아들입니다.


  해마를 수족관에 넣듯이 사람을 동물원 우리에 넣으면 어떠할는지 생각할 노릇이에요. 수족관에서 살아야 할 해마가 즐거울까요? 동물원 우리에서 ‘남이 넣어 주는 밥’만 먹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 사람이 즐거울까요?


  이 땅에 드리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울까요? 군대와 전쟁무기가 참말 이 땅과 지구별에 평화를 찾아다 주는가요? 군대가 사라지거나 전쟁무기가 없으면 참말 이웃나라가 이곳으로 쳐들어올까요? 군대와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중앙정부가 서로 툭탁툭탁 싸우면서 서로 잘났다고 뻗대지 않는가요? 군대도 권력도 총칼도 폭력도 아닌, 오직 사랑과 꿈과 이야기로 이 나라와 지구별을 살려야 하지 않나요?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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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둑어 - 연안 생태계의 토박이 물고기
최윤 지음 / 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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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1

 


논과 갯벌에 자꾸 아파트 세운다면
― 망둑어, 연안 생태계의 토박이 물고기
 최윤 글·사진
 지성사 펴냄, 2011.12.30.

 


  나는 어릴 적에 미꾸라지를 즐겨 잡았고, 망둥이도 곧잘 잡았습니다. 내가 살던 동네 앞에 논이랑 늪이 있었는데, 이 늪에 가면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어요. 때로는 플라나리아를 잡아서 한참 들여다보면서 놀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교과서로만 배울 적에 알 수 없던 더 깊고 너른 이야기를 논과 늪에서 배웠습니다.


  1982∼85년 무렵에 500원짜리 대나무 낚싯대를 하나 사서 어깨에 걸치고 바닷가를 걷습니다. 인천 바닷가는 군부대 시설이라 해서 온통 쇠가시울타리로 막히는데, 한참 걷다 보면 바닷물 드나드는 웅덩이가 어디엔가 있어요. 이 웅덩이 곁에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우면 어느새 망둥이가 덥석 물어요. 바늘에 먹이를 끼워도 물지만 먹이를 안 끼워도 물어요. 낚싯대를 드리우고 가끔 살살 옆으로 옮기며 움직이면 됩니다. 동무들은 미끼 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곤 했지만, 망둥이가 미끼라도 먹어야지 싶어, 나는 늘 미끼를 끼웠습니다. 바닷물 드나드는 갯벌 웅덩이를 기어다니는 갯지렁이 잡아서 끼우면 되거든요.


  돈이 있을 적에는 대나무 낚싯대를 사지만, 돈이 없을 적에는 알맞춤한 나무막대기를 찾아다닙니다. 어느 녀석은 몰래 나뭇가지를 꺾고 칼로 다듬어서 손수 낚싯대를 만듭니다.


  커다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가까운 데에 논과 늪이 있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요. 그러나 이 논과 늪 있던 자리는 울타리 높게 서며 가로막힙니다. 우리 같은 꼬맹이가 자꾸 들락거리니 땅임자가 싫어하기도 했겠다 싶어요.


  시골마을 아이들은 시골에서 논이든 늪이든 도랑이든 냇물이든 개울이든 골짜기이든 바다이든 숲이든 멧골이든 모두 신나게 누리겠지요. 요즈음 시골마을 아이들은 논이나 늪이나 도랑이나 냇물을 거의 안 즐기지 싶지만, 1970∼80년대 즈음까지는 시골마을마다 시골아이 누구나 숲과 들과 바다를 마음껏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들일이 바쁘고 바닷일 바쁘다 하더라도, 살짝살짝 짬을 내거나 일손을 놓고 내빼면서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놀고 웃고 노래하고 떠들었으리라 생각해요.


  아이들은 어른들 일손을 잘 거들면서 자라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며 놀 적에 한결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직 몸이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은 마음껏 뛰고 달리고 놀면서 몸이 곧게 섭니다. 이렇게 놀고 저렇게 노는 동안 몸이 아름답게 큽니다.


  나무를 타야지요. 헤엄을 쳐야지요. 달리기를 해야지요. 나뭇가지와 돌을 줍고 흙이랑 모래를 만져야지요. 풀밭에 드러눕고 풀을 뜯으며, 열매를 찾고 꽃을 구경해야지요. 시골마을 숲이란 아이들한테 가장 좋은 놀이터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시골마을에서 돌보는 숲이란 아이들이 누릴 가장 좋은 보금자리이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이야기터입니다.


.. 망둑어는 물고기 가운데 몸의 크기가 작은 무리로서 다 자란 어미의 몸길이가 2센티미터에 미치지 못하는 종도 있다. 이처럼 몸의 크기가 작고, 바닥에서 살기 때문에 빠르게 헤엄칠 수도 없고 또 멀리 이동할 수도 없다 … 이들 선박(짐배)은 화물이 없는 경우 빈 배로 항해를 해야 하는데, 화물선은 무게 중심이 위쪽에 있어 폭풍우에 취약하기 때문에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이동하기 전 배 아래쪽에 물을 채워야 한다. 수천, 수만 톤의 선박에는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담기고, 바다 생물들도 물과 함께 옮겨지게 된다 ..  (14, 18쪽)


  표준말은 ‘망둑어’일 텐데, 인천에서는 ‘망둥이’라 합니다. 표준말은 ‘아귀’라 하지만, 인천에서는 ‘물텀벙’이라 합니다. 고장마다 이름이 다르지요. 그러고 보니, 전남 고흥에서는 망둑어와 아귀를 어떤 고흥말로 가리키는지 아직 제대로 못 들었습니다. 표준말 아닌 고흥말로 망둑어와 아귀를 비롯해 모든 물고기이름, 풀이름, 벌레이름, 꽃이름, 나무이름, 곡식이름을 하나하나 여쭈어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아무튼, 내가 태어나 자란 인천은 서울 곁에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고단했습니다. 서울사람 쓰는 물건 만드는 온갖 공장 인천에 있습니다. 서울사람 버리는 쓰레기 파묻는 땅이 인천에 있습니다. 서울사람 누는 똥오줌이 인천 앞바다로 흘러옵니다. 서울에 있는 크고작은 회사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인천서 전철로 드나듭니다. 이른바 ‘지옥철’이란 인천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타는 전철을 가리킵니다. 비좁은 전철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서울로 드나들어야 하니, 아침저녁으로 아주 시달리지요.


  개화기라 하는 때까지 인천 앞바다는 더러울 일이 없었는데, 개화기 즈음부터 인천 앞바다가 더러워지지요. 전남 고흥도 조금일 적에 갯벌이 아주 멀리까지 드러나지만, 인천에서도 조금일 적에 갯벌이 참으로 멀리까지 드러납니다. 이제는 공항이 되고 만 인천 앞바다 영종섬뿐 아니라 그 뒤로 용유섬과 더 뒤에 있는 다른 섬까지 갯벌이 길디길게 드러납니다.


  갯벌이 드넓으니 갯것이 많아요. 아마 1900년대 첫무렵까지 인천 앞바다에서 갯것 캐는 사람들 참 많았으며, 갯것 캐느라 등허리 휘었으리라 생각해요. 그야말로 뻘밭이에요. 호미 한 자루 있으면 굶지 않을 뿐 아니라 부자 될 수 있다 했으니, 뻘에서 금을 캔다 할 만한 노릇이고, 뻘‘밭’이라 가리키는 이름이 참으로 맞구나 싶어요.


.. 짱뚱어는 말뚝망둑어와 마찬가지로 물과 육지에서 생활하는 물고기인데, 물 밖에 나와 있을 때는 입속에 물을 머금고 아가미나 구강 내의 점막, 피부 등으로 호흡을 한다 ..  (26쪽)


  바닷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바다를 가슴에 품습니다. 들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들을 가슴에 품습니다. 숲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숲을 가슴에 품어요. 멧골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멧골을 가슴에 품지요.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저절로 도시를 가슴에 품습니다. 그러면, 도시는 아이들한테 어떤 삶터가 될까요. 도시에서 보고 듣고 마주하고 겪는 온갖 것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빛이나 사랑이 될 만할까요.


  시골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시골을 가슴에 품을 텐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시골사람은 어떤 시골빛을 아이들 가슴에 품도록 하는가요. 하루 빨리 떠나야 할 시골 모습을 아이들한테 물려주는가요. 농약과 비료와 기계 아니고는 흙을 짓지도 만지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모습을 아이들한테 물려주는가요. 스스로 삶과 꿈과 사랑을 지으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빛을 아이들한테 물려주는가요. 집과 옷과 밥을 스스로 건사하거나 돌보는 길을 아이들한테 물려주는가요.


.. 연안에서 이루어지는 매립 공사는 게와 새우, 갯지렁이 등의 서식에 영향을 미치고, 이어서 풀망둑의 먹이 공급을 차단하게 되며, 어린 풀망둑을 먹이로 하는 연근해 전체 어종의 먹이사슬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 배스가 하천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이 새우를 먹어치움으로써 단순히 생태계를 교란시킬 뿐만 아니라 하천과 호수의 수질을 오염시키는 원인도 제공하고 있다 ..  (34, 55∼56쪽)


  최윤 님이 쓴 《망둑어, 연안 생태계의 토박이 물고기》(지성사,2011)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망둥이는 우리 겨레 ‘오래된 물고기’라고 합니다. 망둥이 말고도 우리 겨레와 오랜 나날 함께 살아온 물고기는 아주 많으리라 느껴요. 수많은 물고기 가운데 재미나고 살가운 벗으로 망둥이를 꼽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서울내기는 망둥이를 알까요? 부산내기나 대구내기는 짱뚱이를 알까요? 갯벌을 옆에 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망둥이나 짱뚱이를 알기에, 눈이 툭 불거진 얼굴 모양인 사람을 놓고 ‘망둥이 닮았다’ 하고 말하곤 합니다. 다른 도시에서는 ‘붕어 눈깔’이라고도 할 텐데, 갯벌과 함께 살아오며 망둥이를 낚고 먹던 사람들은 ‘망둥이 눈깔’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간석지는 밀물과 썰물에 의해 바닷물에 잠기고 햇볕에 드러나는 일이 매일 반복되는 곳이다. 주로 바닷물의 영향을 받지만 장마가 질 때는 담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염분 농도의 변화가 심하고, 물에 잠겼을 때와 햇볕에 드러났을 때의 온도 변화도 심하다. 또 육지에서 흘러온 민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과잉의 영양 염류와 오염 물질을 흡수하는 여과 작용을 함으로써 물고기를 비롯한 해양 생물의 산란과 부화에 영향을 미치는 퇴적물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 수산 자원의 80∼90퍼센트가 직간접적으로 간석지를 비롯한 연안에 의존하고 있다 ..  (141, 145쪽)


  망둥이가 살아갈 수 있는 갯벌쯤 되어야 사람도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망둥이뿐 아니라 온갖 갯것이 흐드러지게 어울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데라야 사람들이 즐겁고 아름답게 어우러질 마을이 될 만합니다.


  냇물에는 버들치와 쉬리가 있어야지요. 도랑에는 가재와 미꾸라지가 있어야지요. 제비와 박쥐가 아침저녁으로 날고, 나비와 벌이 언제나 춤을 추어야지요. 개구리가 노래하고 뱀이 쉭쉭거릴 만해야지요. 노랑조롱이와 소쩍새가 뱀을 잡고, 토끼 오소리 너구리 족제비 삵이 숲에서 굴을 파거나 둥지를 틀어야지요.


  함께 살아갈 때에 기쁘게 살아갈 만한 지구별입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때에 서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살이입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즐겁게 웃으며 살아가야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사람과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와 새가 골고루 어우러지며 살아가야 아름다운 시골입니다.


  시멘트로 뒤덮인 온 나라 냇물이 언제쯤 제모습 되찾을 수 있을까요. 논이나 아파트로 뒤바뀐 갯벌이 언제쯤 제자리 되찾을 수 있을까요. 도시가 커지면서 애꿎은 갯벌이 논으로 바뀌어야 했습니다. 도시가 몸집을 불리며 도시 둘레 작은 시골 논밭을 모조리 아파트와 찻길과 주차장이 되도록 뒤엎으면서 애먼 갯벌이 몹시 시달리고 들볶입니다. 4346.10.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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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 녹색평론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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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0

 


핵발전소 멈추는 길
― 원자력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글
 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2012.1.5. 1만 원

 


  나는 ‘지역 이기주의’라는 말을 중학생 적에 처음 들었습니다. 1990년이었어요. 핵쓰레기를 버리는 곳을 충청도 안면도에 짓겠다는 정책을 나라에서 내놓으니 안면도사람들 똘똘 뭉쳐 일어나 맞서 싸웠어요. 이를 두고 몇몇 언론매체에서 ‘지역 이기주의’라는 말을 썼어요. 아마 이 앞서에도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지역 이기주의’라는 말을 썼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때에 처음 들었습니다. 그 뒤 1995년에 인천 앞바다 조그마한 섬 굴업도에 ‘핵쓰레기 처리장’을 짓겠다고 했을 적에 인천사람들이 반대를 했어요. 이때에도 ‘지역 이기주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핵쓰레기를 우리 마을에 버린다고 하니까 반대를 하지요. 핵쓰레기가 우리 마을에 있으면 어떻겠어요. 방사능 먹으며 죽고 싶지 않으니 반대를 하지요. ‘지역 이기주의’나 ‘님비’가 아닌 ‘생존권’ 문제예요. 인천은 가뜩이나 온갖 발전소와 공장을 어마어마하게 거느리면서 서울 곁에서 서울에 물건을 대주는 도시예요. 전국에서 가장 살기 나쁠 만큼 바람과 물이 더러워진 곳이 되는데, 핵쓰레기를 버리는 곳까지 인천에 짓는다고 하니, 이를 반길 사람이 있을 턱이 없어요.


  중학생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핵쓰레기를 버려야 한다면,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에 버려야 마땅합니다. 핵발전소는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 곁에 지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핵발전소 있는 곳은 서울이나 부산이 아니에요. 서울이랑 부산하고 멀찌감치 떨어진 시골입니다. 시골사람은 전기가 없어도 걱정이 없이 살아가는데, 전기가 없으면 바로 폭동이 일어날 도시 한복판에는 핵발전소도 화력발전소도 없어요. 그렇다고 도시 한복판에 햇볕전지도 햇볕전기 모으는 일을 하지도 않아요.


  나라에서는 전남 고흥과 해남에도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함부로 지으려고 밀어붙였지만, 고흥사람과 해남사람 스스로 엉터리 같은 짓을 물리쳤어요. 바다도 들도 숲도 모두 국립공원이라 할 고흥과 해남에 엉터리 발전소를 들일 수 없는 노릇이거든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간추릴 수 있어요.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서울과 부산이요 대구입니다. 핵발전소를 지으려 하면 서울과 부산과 대구에 지어야 합니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쓰레기를 버리는 곳을 지으려 하면 아주 마땅히 서울과 부산과 대구에 지어야 합니다.


.. 원자력의 이점은 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작’ 전기에 불과합니다. 그까짓 전기보다 사람의 생명과 아이들의 미래가 훨씬 소중합니다 … 방사선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았을 경우에는 체온이 ‘섭씨 0.001도’밖에 오르지 않는 정도라도 두 명 중 한 명이 죽어버립니다. 체온이 ‘섭씨 0.002도’ 오르면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 이미 알아챘으리라 생각하지만 각각의 공정에서 참으로 막대한 자재와 에너지가 투입됩니다. 또 이러한 채굴, 운송, 제련 등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대부분 석유 등의 화석연료입니다. 그러니까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기도 전에 이미 많은 화석연료를 태워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  (17, 69, 125쪽)


  핵발전소를 지으면 핵쓰레기 버릴 곳을 따로 지어야 합니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다루려면 어마어마한 돈과 시설을 지어야 할 뿐 아니라, 수십만 해일는지 수백만 해일는지 알 길이 없는 긴 나날 방사능쓰레기를 빈틈없이 숨겨야 합니다. 전기를 얻는 길 가운데 가장 어리석을 뿐 아니라, 가장 돈이 많이 들고, 가장 바보스러운 짓이 핵발전소입니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어요. 핵발전소 짓는 돈 + 핵쓰레기 처리장 짓는 돈 + 핵발전소와 핵쓰레기 처리장 관리비·인건비 + 우라늄 캐내어 다루고 재처리장 짓고 다루는 데에 드는 돈 …… 들을 더하면, 온 나라에 햇볕전지판 넉넉히 붙여도 돈이 남습니다. 모든 집과 공장과 회사는 전기값 내지 않고도 전기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생태재생에너지를 ‘핵발전소와 얽힌 건설비·투자비·인건비·관리비’로 대고도 남아,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하고도 돈이 남을 만큼 되어요.

 

  ‘방사능 쓰레기’에서 방사능이 사람한테뿐 아니라 풀과 흙과 나무와 바람과 물에 나쁜 영향 안 끼칠 만큼 숨기는 데에 십만 해 백만 해가 걸리는데, 이러한 날짜를 헤아려 보셔요. 관리비와 인건비와 시설비가 얼마나 많이 드나요. ‘완전교육’과 ‘완전복지’뿐 아니라, 시골에서 농약과 비료 안 쓰고 흙을 가꾸는 밑돈까지 얼마든지 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고, 핵쓰레기가 더 나오지 않게 하며, 핵발전소와 얽힌 노동자와 과학자와 공무원 모두 다른 데에서 힘껏 일하도록 돌리면,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에 평화와 즐거움이 가득 피어날 수 있습니다.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으면 지구별에서 전쟁은 그치지 않을밖에 없어요. 전쟁무기도 없애야 하지만, 핵발전소가 바로 끔찍한 전쟁무기인 핵폭탄 만드는 밑바탕인 만큼, 핵발전소는 한국을 비롯해 모든 나라에서 바로 오늘부터 멈추어야 합니다.


.. 외부에서 물을 계속 주입하고 있기 때문에 넣은 만큼 밖으로 나옵니다. 물론 나오는 것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이며, 그것이 부지 안이나 건물들 곳곳에 고여서 노동자들을 피폭시키고 있습니다 … 앞으로 더 많은 방사능이 내릴 것이 염려되지만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피폭당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가능한 한 아이들 주변에서 방사능을 제거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래터의 모래를 바꾸고 업체에 학교 건물 청소를 의뢰하는 등 피폭을 줄이는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  (36, 99쪽)


  한국에는 히로시마 원폭피해자와 나가사키 원폭피해자가 아직 있습니다. 1세대 원폭피해자뿐 아니라, 2세대와 3세대와 4세대 원폭피해자까지 있어요. 앞으로는 5세대 원폭피해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 모두 이를 쉬쉬해요. 감추기에 바빠요. 1945년에 일본에 떨어진 핵폭탄인데, 이 피해는 2013년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2200년이나 2300년이 되어도 안 가실 수 있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를 테지만, 앞으로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살아갈 뒷사람은 이 슬픈 짐을 떠안아야 합니다.


  게다가, 원폭피해자만 있지 않잖아요.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방사능을 쐽니다. 핵발전소 노동자는 피폭자입니다. 이들 식구와 아이들이 어떤 피폭 영향을 받을는지 누구도 몰라요. 앞으로 또 몇 세대에 걸쳐 이 아픈 일이 되풀이될는지 헤아릴 과학자도 전문가도 없습니다. 그저 ‘전기’ 하나 때문에 핵발전소를 돌리고 핵쓰레기 처리장 짓겠다 하면서 돈은 돈대로 버리고, 사람은 사람대로 죽습니다. 시골과 숲과 마을은 모두 더러워지고, 시골과 숲과 마을이 더러워지면 아주 마땅히 ‘시골에서 거둔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 사다 먹을’ 도시사람도 나쁜 밥을 먹어야겠지요.


  한국 시골이 더러워지면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사다 먹으면 될까요? 그러면, 오늘날 중국 시골은 깨끗할까요? 일본과 한국은 베트남과 동남아시아로 핵발전소를 수출하려고 애쓰는데, 앞으로 언제까지 이들 나라에서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와 수산물을 사다 먹을 수 있을까요?


.. 체르노빌 4호기는 불과 2년의 가동으로 원자로 안에 히로시마형 원자폭탄의 약 2600발분의 방사능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중 환경으로 나온 것은 약 800발분이며, 그 오염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 5년이 지나서, 20년이 지나서, 또는 50년이 지나고 나서 피폭이 원인으로 암에 걸리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자들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 ‘인체에 영향이 없는 정도의 피폭’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며, 아무리 미세한 피폭이라도 DNA를 포함한 분자결합을 방사선이 절단·파괴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 체르노빌 사고로 매우 넓은 지역이 ‘인간이 살아서는 안 되는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면적은 모두 약 15만제곱킬로미터입니다. 이것은 일본 전 국토의 40퍼센트에 상당하는 넓이입니다 ..  (52, 80, 81, 88쪽)


  ‘지역 이기주의’는 바로 도시사람 이기주의입니다. ‘지역 이기주의’는 바로 전문가와 과학자와 공무원과 정치꾼 이기주의입니다.


  도시사람이 전기를 펑펑 쓰고 갖가지 물질문명 듬뿍 누리면서, 정작 공장과 발전소는 모조리 시골에 짓습니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에 공장과 발전소를 짓지요. 이러면서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놓아 시골과 숲을 죄 망가뜨려요. 도시사람 일자리를 지킨답시고 4대강사업을 벌이지요. 아파트 재개발을 하며 나오는 시멘트쓰레기가 모두 어디로 갈까요? 다 시골로 갑니다. 도시사람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쓰레기가 모두 어디로 갈까요? 다 시골로 갑니다. 도시사람이 눈 똥오줌이 모두 어디로 갈까요? 다 시골로 가고 바다로 갑니다. 인천 앞바다가 똥물인 까닭은 서울사람 똥오줌이 몽땅 인천 앞바다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골프장을 안 지어요. 시골에 짓지요. 골프장에 농약 엄청나게 뿌리지요. 시골마을은 골프장 때문에 몸살을 앓아요. 도시사람이 농약 때문에 골치를 썩이거나 숨이 막히거나 병에 걸리나요? 모두 시골사람이 도시사람 때문에 숨이 막히고 병을 앓습니다. 도시사람이 때깔 좋은 열매를 바라니 시골사람은 농약과 비료 잔뜩 치느라 시골마을과 숲을 더럽힙니다. 도시사람이 철없이 겨울에도 딸기를 바라고 수박을 먹으려 하니, 시골사람은 시골마을에 비닐집 치고 석유 때면서 한겨울에 딸기와 수박을 거둡니다.


  이 얼마나 미친 짓이면서 ‘도시 이기주의’일까요. 이 미친 짓은 언제쯤 그칠 수 있을까요. 서울사람과 도시사람은 언제쯤 미친 짓을 멈출 수 있을까요.


.. 지금 시점에서 식품오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가령 일본인들이 후쿠시마나 북관동지방의 채소를 먹지 않으면 그 지역 농업이 망합니다. 마찬가지로 어업도 망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물론 나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식품을 먹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오염은 되고 말았습니다 … 우리는 방대한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회가 마치 ‘풍요로운’ 사회라고 생각하며, 지역 농업과 어업을 망하게 했습니다 … 도시사람들은 압도적인 인구와 경제력을 배경으로 지금까지 과소지에 위험한 시설을 떠넘기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려 왔습니다. 피해를 후쿠시마 사람들에게만 떠맡겨서는 안 됩니다 ..  (103, 104, 105쪽)


  일본사람이 쓴 《원자력의 거짓말》(녹색평론사,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을 쓴 고이데 히로아키 님은 일본에서 핵발전소 전문가입니다. 핵발전소 전문가인데, 정부와 전력회사 편을 들지 않습니다. 핵발전소 때문에 힘겹고 아픈 ‘작고 여린 사람들’ 곁에 섭니다. 《원자력의 거짓말》이라는 책은 바로 작고 여린 사람들 곁에서 핵발전소 문제를 파헤치고 이야기합니다.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가 후쿠시마 사태를 겪고도 바보스러운 짓을 되풀이하기에, 그대로 지켜볼 수 없어서 책을 내놓습니다.


.. 왜 이렇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만 원전을 세울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태우고 있는(즉 핵분열 시키고 있는) 연료가 우라늄이기 때문입니다. 우라늄을 태우면 반드시 ‘핵분열생성물’, 즉 ‘죽음의 재’가 발생합니다 … 그렇게 위험한 것을 인구가 많은 지역에 지을 수 없으니, 인구가 적은 시골에 떠맡겨 버리려는 것입니다 … 정말로 원전이 안전하다면 이러한 조건을 내걸 필요는 없습니다. 전력 대소비지인 대도시에 건설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 대도시권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난다면 틀림없이 국가 자체가 망할 정도의 피해일 것입니다 … 원자로 등 규제법으로 허용된 농도(1세제곱센티미터당 60베크렐)까지 트리튬을 희석하려면, 매일 물을 100만톤씩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맹독물을 그대로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 그럼 왜 하지 않는가? 답은 단순합니다.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  (110, 111, 113, 162, 163쪽)


  중앙정부와 전력회사는 돈을 벌려고 핵발전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전력회사는 돈이 아깝기에 ‘방사능 위험’을 나 몰라라 합니다. 중앙정부와 전력회사는 돈을 벌려고 사람들한테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은 ‘전기가 없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중앙정부와 전력회사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닙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어른인 이녁은 수도물 마시고 정수기 물을 마신다고 쳐요. 이녁 아이들한테도 수도물을 마시게 하고 정수기 물을 마시게 하며 살겠어요? 어른인 이녁은 자동차 배기가스 그냥저냥 마시고 산다고 쳐요. 이녁 아이들한테도 자동차 배기가스 마시게 하며 살겠어요? 어른인 이녁은 송전탑이 집 옆에 서거나 말거나 아랑곳않는다지만, 아이들 놀이터 한복판에 송전탑이 우뚝 서도 아랑곳않겠어요? 어른인 이녁은 아이들이 아무 밥이나 먹어도 되도록 내버려 두겠어요? 어른인 이녁은 아이들이 방사능으로 더러워진 흙을 만지고 놀아도 못 본 척하겠어요?


.. 원전은 ‘친환경적’도 아니고, ‘깨끗’하지도 않고, 온난화 방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발전 이전부터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낭비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 사실 원자로 안에서는 다 합쳐서 300만킬로와트나 되는 열이 발생합니다. 그중 고작 1/3만을 전기로 바꾸고 나머지 2/3는 버리고 있습니다. 버려지는 곳은 바다입니다 … 이 원전의 큰 문제 중 하나가 환경파괴·자연파괴입니다 … 생명보다 전기가 더 중요한가 봅니다. 원전은 전기가 부족하든 부족하지 않든 즉각 모두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원전을 정지시켰을 때, “사실 원전이 없어도 전력은 충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  (127, 128, 155, 175쪽)


  곰곰이 따지면, 시골에 핵발전소와 핵쓰레기 처리장 짓도록 내모는 도시사람 모습은 ‘지역 이기주의’조차 아닙니다. ‘막가파’라 할 만합니다. 함께 살아가자는 넋이 아닌 함께 죽자는 소리입니다.


  꼭 지어야 하는 시설이 있으면 가장 깨끗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종이를 쓰려고 나무를 베려면 나무를 벤 자리에 나무를 다시 심어야 합니다. 찻길을 내려고 들과 숲을 밀었으면, 그만 한 자리가 들과 숲으로 이어가도록 풀밭과 숲을 지켜야 합니다.


  도시에서도 텃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건물과 아파트 앞에 논도 짓고 숲도 일구어야 합니다. 새로 짓는 건물과 아파트는 햇볕전지판을 달아야지요. 자동차 지붕에도 햇볕전지판을 달고, 길거리 등불에도 햇볕전지판을 달아야지요. 학교 옥상과 관공서 옥상에도, 또 기나긴 고속도로 찻길을 따라 햇볕전지판 달 수 있어요.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하나씩 해야 비로소 살 길이 열립니다.


  시골사람 등골을 휘는 물질문명이 아닌, 시골사람 등을 토닥이면서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시골을 사랑하며 시골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과 교육과 문화를 일구어야 합니다.


.. 원자력발전은 이미 방대한 ‘핵쓰레기’를 만들었습니다 … 원전 자체가 거대한 ‘핵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 후손들이 100만년 동안 오염의 위험을 떠맡으면서, 또 엄청난 비용을 계속 지출하면서 ‘핵쓰레기’를 감시해 가야 합니다 … 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물건에 둘러싸이면서 살아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179, 185, 186쪽)


  핵발전소 멈추는 길은 하나입니다. 핵발전소에 기대지 않는 삶을 일구면 됩니다. 핵발전소에서 플루토늄 얻어 핵폭탄 만들려는 바보스러운 생각을 집어치워야 합니다. 핵폭탄뿐 아니라 온갖 재래식 무기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군대를 버리고 경찰을 없앨 수 있어야 합니다. 공무원도 없애고 정치꾼과 대통령까지 없애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방자치 아닌 마을자치를 해야지요. 마을자치에서도 ‘여느 작은 살림집 독립’을 해야지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이녁 보금자리에서 거두어 누릴 수 있을 만큼 숲을 가꾸며 땅을 사랑해야지요.


  전기를 쓰려면 전기를 집집마다 알맞게 만들어 쓸 수 있는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전기를 안 써도 되면 전기 없이 즐겁게 살아가면 됩니다. 수도물 아닌 마을물 마셔야 옳고, 숲물과 냇물을 마셔야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아닌 어버이가 삶과 사랑과 꿈을 가르쳐야 마땅합니다. 아이들은 전문가나 회사원 되려는 직장인 쳇바퀴 아닌 다 다른 아이들 나름대로 사랑과 꿈을 길어올리는 이야기를 삶에서 빚어야 아름답습니다.


  핵발전소 멈추는 일은 아무것 아니에요. 핵발전소를 왜 멈추어야 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핵발전소를 멈출 뿐 아니라 화력발전소도 모두 멈추고는, 우리 삶을 어떻게 일굴 때에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운가를 생각하며 찾을 노릇입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멈춰야 한다면 왜 멈춰야 할까요. 강정마을 해군기지만 멈추면 될까요. 군대는 버젓이 있는데 강정마을만 멈춘다고 일이 풀릴까요. 강정마을에서 다른 데로 해군기지를 옮기면 그만인데,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느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해요.


  일본 후쿠시마는 일본사람한테뿐 아니라 한국사람한테도 이제부터 생각을 슬기롭게 빛내라고 가르쳐 줍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지요. 하루아침에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지면서 사람들 목숨도 모조리 사라졌어요. 핵발전소 하나가 모든 삶과 사랑과 꿈을 앗아갔어요.


  보아야지요. 보아야 해요. 삶을 보고 사랑을 보며 꿈을 보아야 해요. 찬반이나 폐지를 넘어, 삶을 밝힐 길을 보아야 해요. 마땅히 핵발전소는 멈추고 없애야 할 텐데, 핵발전소를 멈추고 없앤 뒤에 우리 삶을 어떻게 일구어야 하는가를 함께 생각하고 찾으며 오늘부터 즐거이 누리며 가꿀 노릇이에요. 4346.10.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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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2013-10-2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우리 인류에게 이익보다는 해를 준다고 생각을 해왔었는데요.
리뷰를 읽으면서 분노를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막대한 해를 끼치는 원자력 발전소를 자기들의 일신의 영달과 편안을 위하여
발전소를 짓는 정부 인사들이나 학계인사들이나 모두 엉터리로 보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마치 광야에 나타난 선지자처럼 생각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선지자들은 항상 핍박을 받았지요.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진실을 리뷰로 잘 써주신 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좋은 글이라 제 블로그에 퍼가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에 책 소개와 함께 이 리뷰를 올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10-25 05:59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쓰신 분은 '일본 핵발전소 전문가'라고 해요.
아직 한국에서는 '핵발전소 전문가'가 한국에 있는 자료를
사람들한테 떳떳하게 밝혀서 '참과 거짓'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일
하는 사람이 없어요.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박병상'이라고 하는 분이
모든 '참과 거짓'을 야무지게 밝히는데,
이쪽 길에서는 아직 없네요.

유전자조작과 디엔에이조작을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박병상 님 책이나 글에서 잘 짚고 헤아릴 수 있어요.

아쉽기는 해도, 일본 핵발전소 흐름과 한국 핵발전소 흐름은 거의 같기에,
일본책 자료에 나오는 '숫자'는 한국 핵발전소 산업하고도 거의 맞물리도록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 책에 나오는 '방사능 치사량' 이야기는
이 느낌글에 다 담을 수 없었는데,
책으로 읽어 보시면,
핵발전소가 서기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피폭자와 방사능쓰레기가 쏟아지는지...
끔찍하게 느낄 수 있답니다...

즐겁게 퍼 가셔요~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개정증보판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환경책 읽기 49

 


숲에서 읽는 숲책
―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두행숙 옮김
 문예춘추사 펴냄, 2013.8.30. 14800원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집안에서 잠자리에 드러누울 적이든, 부엌에서 밥을 끓일 적이든, 마당에서 빨래를 널 적이든,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릴 적이든, 언제나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 둘레에는 새들이 즐겁게 노닙니다. 우리 집 둘레로 풀밭을 이루었고, 우리 집 마당에는 후박나무 우람하게 자랍니다. 우리 집 뒤꼍에 감나무 키 높이 자라는 한편, 매화나무와 모과나무도 나뭇가지와 나뭇잎 차츰 우거집니다. 새들이 깃들 만한 조그마한 풀숲이 되고, 새들이 먹이를 얻을 만한 열매가 크고작게 맺힙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마을 한복판 아닌 숲속이라면, 또는 멧골이라면, 새소리를 한결 깊고 넓게 들으리라 생각합니다. 새소리가 반갑거나 즐거우면 숲속이나 멧골에서 살아갈 노릇이라고 누군가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새소리는 우리 식구만 들을 수 없습니다. 새소리는 깊은 숲속이나 멧골에서만 들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즐겁게 누릴 새소리요, 어디에서나 기쁘게 맞이할 새소리입니다.


  서울에서도 처마 밑 제비집을 만날 수 있을 때에 삶이 아름답습니다. 부산에서도 참새뿐 아니라 꾀꼬리가 노래하며 둥지를 틀 수 있을 때에 삶이 사랑스럽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마음이 자꾸 메마르거나 거친 까닭 가운데 하나는, 새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자동차 소리만 듣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마음을 맑게 울리는 새소리하고는 동떨어진 채 시끄럽게 퍼지는 자동차 소리만 마을과 동네에 가득하니, 서로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이 생긴다고 느껴요.


..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대상에 순수하게 도취하고 황홀해 하며 경탄하는 법이 아니라, 수를 세고 앞뒤를 재는 그 정반대의 것들이다 … 대학들은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이다 … 나에게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야기하는 모든 의문점들보다도 더 이상야릇하고, 이해할 수 없으면서 매혹적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산들이 어떻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공기가 어떻게 소리도 없이 골짜기 속에 머물러 있으며, 노란 배나무 잎사귀들이 어떻게 가지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질까, 또 한 무리의 새들은 어떻게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것일까 ..  (17, 18, 53쪽)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 아름답습니다. 처음에 한 마리, 이윽고 두 마리, 곧 세 마리, 자꾸자꾸 이 개구리 저 개구리 목청을 높여 노래하는 소리 사랑스럽습니다. 수십 수백 수천 개구리가 나란히 노래를 터뜨릴 적에는 온 고을에 아름다운 빛이 감돕니다. 이 고을 저 고을 수십 수백 수천 개구리가 다 함께 노래잔치를 벌일 적에 온 나라에 사랑스러운 빛이 태어납니다.


  개구리 노래잔치가 시끄럽다며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없습니다. 개구리 노래잔치가 시끄럽기에 글을 못 쓰거나 책을 못 읽거나 공부를 못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에서도 개구리 노래잔치가 벌어지면 한결 구성지거나 구수합니다. 개구리 노래잔치 이루어지는 곁에서 밥을 지으면, 밥맛이 더 낫습니다. 개구리 노래잔치 이루어지는 둘레에서 아이들이 뛰놀면, 아이들은 더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온 골목과 고샅을 달립니다.


  요즈음 시골 논밭에서 개구리들 살아갈 터전이 없습니다. 요즈음 시골마다 농약을 엄청나게 뿌리니, 개구리는 겨우 겨울나기를 했거나 봄에 새로 깨어났어도 이내 목숨을 빼앗깁니다. 시골이라도 개구리가 노래하지 못하고, 시골일수록 외려 개구리 숨쉴 틈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젊은이와 어린이 자취를 감추는 동안 개구리도 나란히 자취를 감춥니다. 시골에서 개구리와 함께 일할 젊은이 몽땅 서울로 가고, 시골에서 개구리와 함께 뛰놀 어린이 모조리 서울로 갑니다.


  시골에 남는 늙은 할매와 할배는 넓은 논밭을 건사하려고 농약을 엄청나게 쓰고 맙니다. 농약을 뿌린 들판에는 새도 개구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농약을 뿌린 들판에는 농약바람이 붑니다. 시골은 서울과 견주면 자동차가 매우 적지만, 서울 못지않게 매캐한 바람이 붑니다. 서울은 배기가스 바람이 불고, 공장바람이 분다면, 시골은 농약바람이 쓸쓸하게 불어요.


.. 산, 호수, 강, 태양은 나의 친구들이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내가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 … 자연은 너그럽다. 결국에 가서는 모두의 정원 안에는 시금치와 상추로 가득한 텃밭이 가꾸어질 것이고 얼마 간의 과일과 즐거운 눈요깃감이 되는 여름 꽃들이 무성할 것이다 … 나비는 배를 채우고 그저 시간만 보내면서 살지 않는다. 오로지 사랑하고, 생명을 품기 위해서 살 뿐이다 … 우리 안에, 그리고 자연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것이다 …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을 생명으로부터 멀리할 수 없다 ..  (29, 46, 69, 198, 252쪽)


  새와 개구리가 자취를 감추는 데에서는 풀벌레도 자취를 감춥니다. 시골마다 논둑과 밭둑을 시멘트로 덮습니다.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꿉니다. 흙바닥에 풀이 자라던 고샅은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시골집 마당은 흙마당 아닌 시멘트마당이 됩니다. 시골집 마당 한켠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심지만, 그늘이 넓게 드리우도록 나무가 우거지지는 않습니다. 시골일수록 오히려 나무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나무그늘 생기면 논밭에서 곡식과 푸성귀 자라기 힘들다면서 나무를 나날이 멀리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게가 사라지고 경운기가 나타날 무렵부터 풀벌레가 차츰 사라집니다. 경운기가 탈탈거리며 온 마을 뭇소리를 잠재우면서, 새소리도 개구리소리도 풀벌레소리도 파묻힙니다

.
  풀벌레는 풀을 먹습니다. 풀벌레는 풀과 이슬을 먹습니다. 풀벌레는 풀과 이슬과 햇볕과 바람을 먹습니다. 풀벌레가 풀을 먹으니 곡식과 푸성귀 갉아먹는다며 싫어하는 시골사람이 있습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풀벌레는 풀을 먹으니까요. 그런데, 풀벌레가 먹을 풀로 이루어진 빈 들판이나 풀숲이 없으니, 풀벌레는 논밭을 넘봐요.


  모든 숲과 벌을 논밭으로 일굴 수 없습니다. 멧꼭대기까지 비탈밭이나 비탈논으로 일구면 멧봉우리는 그만 무너집니다. 숲속에 불을 놓아 논밭을 일군다 하더라도 여러 해마다 자리를 새로 옮겨요. 땅이 되살아나려면 사람들이 논밭으로 일군 곳은 한동안 쉬어야 합니다. 해마다 같은 땅에 같은 곡식이나 푸성귀를 심으면 땅심이 죽습니다. 땅심이 죽으니 사람들은 자꾸 비료를 치고 농약을 뿌립니다. 땅심이 죽어 땅이 벅차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자꾸 더 많이 거두려고만 하니, 땅은 지치고 고단합니다.


  땅이 쉬지 못하기에, 땅에 풀이 돋지 못합니다. 풀이 돋으며 쉬는 땅이 못 되면, 땅심은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는 땅에 풀벌레가 깃들고, 풀벌레 깃드는 땅은 땅심이 차츰 살아나는 곳입니다.


.. 진정한 시와 구름은 뚜렷한 시선을 가진 눈빛에만 들어올 수 있는 것 … 나무들은 성스럽다. 나무와 함께 대화하며 나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체험한다. 나무들은 무슨 교훈을 이야기하거나 처방을 내리거나 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겪는 일에는 무관심할지 몰라도 삶의 근원적인 법칙을 알려줄 뿐이다 … 인간의 언어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며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시로 노래하는 유희의 힘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 사람만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손이 없이도 가능하며, 펜과 붓, 종이나 양피지가 없이도 글을 쓸 수 있다. 바람도 글을 쓸 수 있고 바다, 강, 시냇물도 글을 쓸 수 있다. 동물들도 글을  쓸 수 있고 땅도 글을 쓸 수 있다 ..  (34, 56, 70, 241쪽)


  풀벌레는 풀노래를 부릅니다. 풀은 풀노래를 들으며 한껏 푸른 빛을 뽐냅니다. 풀벌레는 풀노래를 베풉니다. 풀과 사람은 풀노래를 들으면서 푸른 숨결을 마십니다.


  사람은 밥만 먹지 않습니다. 사람은 밥보다 물과 바람을 먹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도 백날을 견디지만, 물을 먹지 않으면 이레를 견디기 어렵습니다. 바람을 먹지 않으면 하루는커녕 십 분조차 견디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밥을 더 많이 먹으려고 논밭을 일구지만, 논밭에서 자라는 곡식과 열매는 ‘밥’만 낳지 않아요. 논밭을 어떻게 일구느냐에 따라 물과 바람이 달라져요. 논밭에 농약과 비료를 쓰면 물이 어떻게 될까요? 논밭에 농약과 비료가 넘치면 바람이 어떻게 될까요?


  풀노래 감도는 풀바람이 불 적에는 사람들 누구나 풀숨을 쉽니다. 풀노래 사그라든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풀숨을 쉬지 못합니다. 매캐한 숨을 쉬면서 콜록콜록 재채기 끊이지 않지요. 지저분한 바람을 마시면서 자꾸 몸이 앓습니다. 풀노래 어린 물을 마시는 사람은 푸른 기운을 받아먹지만, 풀노래 사라진 물을 마셔야 하는 사람은 푸른 기운을 끝내 못 받아들입니다.


.. 다른 어른들, 그러니까 호의적이고 이따금 몸을 낮춰 어린아이들과 담소하기를 즐겨 하는 사람들조차 대개는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 어린아이들과 사귀려고 할 때면 거의 모두 매우 힘들어 했다. 그리고 당황한 나머지 자신들의 본바탕을 우리 아이들한테 맞춰 낙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 어른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명령을 내렸고, 그들이 지키는 세계와 관습은 마치 올바른 것인 양 간주되었다 … 시인은 모든 것을, 그야말로 모든 것을 일상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 … 예술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오직 능력, 즉 잠재력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  (152∼153, 275, 300쪽)


  헤르만 헤세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이야기책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문예춘추사,2013)를 읽습니다. 조그맣게 풀숲을 이루는 시골마을 우리 집에서 풀노래를 들으면서 읽습니다. 풀노래를 들으며 읽는 책이라면 풀책이 됩니다. 숲에서 숲노래를 들으며 읽는 책이라면 숲책이 됩니다. 바다에서 바닷노래를 들으며 읽는 책이라면 바다책이 되고, 들에서 들노래를 들으며 읽는 책이라면 들책이 되어요.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삶을 지으면서 어떤 책을 읽는가요. 우리들은 저마다 서로한테 어떤 이웃이나 동무가 되면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가요.


  푸른 숨결과 같은 삶을 지어서 푸른 이야기를 주고받는가요. 푸른 숨결하고는 동떨어진 채 푸른 이야기는 까맣게 잊는가요.


..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자연의 매력이 그들 마음에 점점 크게 다가오고 그것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들은 외출을 할 때나 야외 활동을 할 때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기쁨을 느끼면서도, 목초지를 마구 짓밟아 망가뜨리고, 결국에는 많은 꽃들과 가지를 꺾는다 … 그들이 매년 이곳을 찾아올 때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중부 유럽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낙원으로 여겨지는 지역 중 하나를, 마치 베를린의 외곽 지역처럼 흉측하게 변모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 조용했던 숲의 가장자리는 사라지고 이어 다른 숲의 가장자리들도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철책으로 둘러싸이고 목초지는 사라져 간다. 돈, 산업, 기술로 대변되는 현대 정신이 얼마 전만 해도 매혹적이던 이곳의 풍경들을 정복해 버렸다 ..  (194, 212∼213쪽)


  달이 뜨며 달빛이 흐릅니다. 달빛은 온누리를 포근하게 감쌉니다. 별이 뜨며 별빛이 흐릅니다. 별빛은 온누리 골골샅샅 따사롭게 안습니다. 해가 뜨며 햇빛이 흐릅니다. 햇빛은 온누리 모든 집과 마을 사랑스레 어루만집니다.


  풀 한 포기는 풀빛을 베풉니다. 꽃 한 송이는 꽃빛을 베풉니다. 나무 한 그루는 나무빛을 베풉니다.


  우리들은 빛을 먹고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해와 풀과 흙과 바람과 물이 베푸는 빛을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빛을 먹는 우리들은 스스로 빛이 되어, 이웃과 동무한테 사랑스러운 빛을 나누어 줍니다. 이웃과 동무한테서 사랑스러운 빛을 나누어 받는 동안 내 몸과 마음에서는 새삼스럽고 새로운 사랑빛이 자랍니다. 내 사랑과 네 사랑이 어우러져 지구별에 한결 포근하면서 아름답게 사랑노래 흐르고, 사랑꽃이 피며, 사랑물결 넘실거립니다.


..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음악 작품을 감상할 때, 음의 배치가 조금 미흡하거나 연주자가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마음 깊이 감동을 받는다면 그 자체로 행복해 한다 ..  (270쪽)


  무엇을 하며 살아갈 적에 즐거운 하루가 될까요.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할 적에 즐거운 하루가 될 테지요. 아이들은 빙긋방긋 웃으며 노래를 할 만한 놀이를 할 적에 즐거운 하루가 되어요.


  웃음이 샘솟으면서 노래가 터져나오는 일과 놀이가 삶을 살찌웁니다. 웃음과 노래가 춤으로 이어지고, 언제나 잔치판과 같이 신나면서 기쁠 적에 삶이 아름답습니다.


  너와 나는 아름답게 살아갈 사람입니다. 너와 나는 아름다움을 찾아 삶을 지을 사람입니다. 너와 나는 아름답게 사랑하는 즐거움을 꽃피우면서 어깨동무할 사람입니다. 너와 나는 이 지구별이 사랑스럽게 푸른 숨결로 가득한 보금자리 되도록 가꿀 사람입니다.


.. 나는 그대들이 사는 도시 근교에서 무한한 원동력을 펼치는 봄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그대들의 사는 곳 근처의 다리 밑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대해, 숲에 대해, 그대들이 탄 기차가 뚫고 달리는 훌륭한 초원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대들이 그런 것들보다도 외국에서 일어나는 전쟁, 유행, 잡담, 문학, 예술 따위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도록 알려주고 싶었다 … 아, 이제야 나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본다. 범인은 지붕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세 개, 여섯 개, 열 개의 물방울들이 동시에 떨어진다. 함께 재잘거리며 손을 잡고 꾸준히 떨어진다. 그렇게 작은 물방울이 견고하고 단단한 것을 부셔 버린다 ..  (258, 339쪽)


  봄이 지나 여름이 옵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옵니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와요. 겨울이 지나면 봄이 다시 오지요. 봄에는 봄빛을 누립니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누립니다.


  하늘을 봐요. 하늘빛은 철마다 달라요.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봐요. 구름은 달마다 달라요. 구름이 베푸는 빗물을 봐요. 빗물은 날마다 새롭게 찾아와요. 빗물이 떨어져 이루어지는 냇물을 봐요. 냇물은 언제나 새로운 노랫소리를 내며 흘러요.


  마음속에 해가 뜹니다. 마음속에 나무가 자랍니다. 마음속에 꽃이 피고 나비가 납니다. 마음속에 제비가 집을 짓고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가고, 사랑이 나를 잡아 끕니다. 그리움이 우리를 보드랍게 감싸고, 사랑이 우리를 넉넉하게 보살핍니다. 4346.9.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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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9-1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풍경이네요 어릴적 헤르만헷세같이 명작을 쓰고프단 생각 많이 했어요
^^
님 함께 살기님 가족 모두 즐겁고 행복한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숲노래 2013-09-19 09:4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 꿈 그대로
아름다운 글 쓰실 수 있으리라 믿어요~ ^^

appletreeje 2013-09-1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뜰에 후박나무, 감나무, 매화나무, 모과나무들이 있으면
정말 참 즐거울 것 같아요~ 새소리도 듣고 싶구요.
저희집에서도 새벽에는 가끔씩 새소리가 들렸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요즘은 새소리가 안 들리네요...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3-09-19 09:48   좋아요 0 | URL
앞으로 멧새 한 마리 두 마리 돌아와
아름다운 노래 들려주리라 믿어요~~~ ^^
 
풍신난 도시농부, 흙을 꿈꾸다 - 정화진 산문집
정화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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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48

 


풀을 먹어야 사람답게 산다
― 풍신난 도시농부 흙을 꿈꾸다
 정화진 글
 삶창 펴냄, 2013.6.21. 11000원

 


  시골에서 살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에 살림집 있으면 싱그러운 푸성귀를 먹기 어렵습니다. 시골 읍내와 면소재지도 도시 한복판과 똑같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마땅한 얘기인데, 어떤 곡식과 푸성귀도 아스팔트땅이나 시멘트땅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모든 곡식과 푸성귀는 흙땅에서만 자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흙땅에서 자라는 곡식과 푸성귀를 먹습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는다 할 적에도, 이들 돼지와 소는 흙땅에서 난 먹이를 먹어야 튼튼하게 자라요. 흙땅에서 난 먹이 아닌 화학배합사료를 먹여 살점 키운 돼지와 소는 사람이 고기로 먹는다 하더라도 그리 맛나지 않고 몸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흙땅에서 자라는 곡식이나 푸성귀라 하더라도, 비닐을 덮어씌운 데에서 키운 곡식이나 푸성귀라면 싱그럽거나 향긋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바탕은 흙으로 이루어진 땅에 뿌리를 내릴 곡식이면서 푸성귀이면서,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먹을 곡식이자 푸성귀이기 때문입니다.


.. 상추도 마찬가지였다. 겨울 난 상추를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뿌리 크기에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비록 부추에 비길 바는 못 되지만 그간 봐 왔던 여린 상추의 뿌리라 보기엔 하나같이 대물이었다 … 그 나물들을 버무린 무침에 밥과 고추장을 비벼 놓고 마주앉으니 마음이 다 경건해진다. 철마다 식용으로 들과 산에 있는 풀들을 캐 드신 분들은 이미 여든이 다 넘으셨다고, 증산에 매진했던 새마을운동 세대인 60∼70대 분들만 해도 야생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던 강연 내용이 바늘처럼 가슴에 와 박힌다 ..  (19, 33쪽)


  들판에 비닐을 씌운다고 생각해 보셔요. 논마다 비닐을 씌운다고 생각해 보셔요. 비닐논에서 자라는 나락이 우리 몸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햇볕이 아닌 비닐집 후끈후끈한 기운만 받으며 자라는 나락은 얼마나 맛나거나 향긋할까요.


  비를 맞고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나락이 싱그럽습니다. 구름 그늘을 누리고 나비와 잠자리와 제비 날갯짓을 받으며 자라는 나락이 싱싱합니다. 무지개와 별과 미리내와 달과 노을 실컷 누린 나락이 향긋합니다.


  그러면, 수박도 참외도 오이도 토마토도 이와 같겠지요. 딸기도 호박도 당근도 무도 배추도 이와 같을 테지요.


  맨땅에서 자란 푸성귀하고 비닐집에서 자란 푸성귀는 맛과 내음과 빛깔이 모두 다릅니다. 햇볕 받으며 개구지게 논 아이들 살결과 햇볕 못 쬐고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하듯 돌아쳐야 하는 아이들 살결은 사뭇 다릅니다. 비와 바람과 구름과 달과 별을 모두 누리면서 일하는 어른들 살갗이랑 사무실이랑 아파트에서 해도 달도 안 보며 일하거나 쉬는 어른들 살갗은 아주 달라요.


  곡식과 푸성귀를 살찌우는 해님이요, 사람을 튼튼하게 북돋우는 달님입니다. 곡식과 푸성귀를 살리는 바람과 비요, 사람을 사랑스럽고 믿음직하게 이끄는 무지개와 미리내입니다.


.. 바로 뒤에 먹어 본 명아주 나물의 맛은 또 다른 경지여서 망초 나물의 맛을 잊게 만들었다. 선배는 아직은 어린 명아주를 뿌리만 잘라내고 줄기째 익혀 초장에 무쳐 내왔다. 명아주를 나물로 먹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의 맛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었다 … 참이든 쉼이든 평상을 찾을 때마다 일곱 명의 사내들은 땀으로 흠씬 젖어 있었다. 이따끔 내려주신 보슬비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한껏 땀 흘리게 해 준 밭에게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  (64, 157쪽)


  모든 풀은 푸릅니다. ‘푸르다’라는 낱말은 풀 빛깔을 가리키면서 태어났습니다. 푸른 풀이란, 푸른 숨결입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논둑이나 밭둑 풀을 모조리 베거나 풀약 뿌려 죽입니다만, 풀이 있어야 사람들 누구나 ‘풀숨’을 푸르게 쉴 수 있습니다. 풀이 없다면 모두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과 발전소 열폐수 바람을 쐬어야 합니다.


  풀이 돋는 땅에 나무가 씨앗을 떨구어 숲을 이룰 수 있습니다. 풀이 돋지 못하는 땅에는 나무도 자라지 못해요. 나무가 우거진 숲을 가꾸자면, 이 땅에는 먼저 풀이 돋아야 합니다. 풀밭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비로소 나무가 씩씩하게 줄기를 죽죽 올릴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나무가 자라는 곳 둘레에는 풀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풀밭에서 나무가 자라듯, 나무 둘레는 풀밭을 이루어 나무뿌리가 흙땅에 튼튼하게 깊게 내릴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곧, 풀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곳에서 짙푸른 바람이 불어요. 짙푸른 바람은 지구별이 푸른 빛깔 띠도록 하지요. 지구별이 푸른 빛깔일 적에 지구별 모든 사람은 푸른 숨을 마시면서 맑고 밝은 넋을 건사합니다. 지구별이 푸른 빛깔을 잃어 까만 빛깔이나 잿빛으로 바뀌면, 사람들 마음도 까맣게 바뀌거나 잿빛으로 되고 말아요.


  사랑을 꽃피우자면 풀빛 삶자락 일굴 노릇입니다. 꿈을 이루는 아름다운 삶터 가꾸자면 풀과 나무가 싱그러이 빛나는 마을이 되도록 할 노릇입니다.


.. 내 나이 정도만 살아도 올해 정도의 기후 조건이 적어도 10년에 한 번꼴로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 어떤 경우에서도 이렇게 재앙과 같은 하천 녹조는 발생한 적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한 언론사의 기자가 찾아간 가정집에서는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고 난린데, 관료는 지극히 평온한 표정으로 말한다. 정수된 물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  (151쪽)


  도시에서 ‘도시 농부’로 일하는 정화진 님이 이녁 ‘흙짓기’를 적바림해서 엮은 산문책 《풍신난 도시농부 흙을 꿈꾸다》(삶창,2013)를 읽습니다. 정화진 님한테는 이녁 땅이 따로 없습니다. 도시 언저리 빈터를 빌려서 밭자락 가꿉니다. 때로는 논에서 손모를 심습니다. 밭을 일구든 손모를 심든 풀을 베든, 정화진 님을 비롯한 여러 도시 농부는 등허리가 휩니다. 풀약과 비료를 안 쓰면서 흙을 살리려 하니 등허리가 휘어요. 1960년대부터 몰아닥친 새마을운동 때문에 망가진 흙을 되살리려고 힘쓰다 보니, 등허리가 휠밖에 없어요.


  시골마을에서 둘레를 살펴보셔요. 들이나 숲에서 자라는 풀 가운데 ‘약풀’ 아닌 풀이란 없습니다. 모든 풀이 약풀입니다. 〈동의보감〉이건 〈본초강목〉이건 깊디깊은 두멧자락에 몇 포기 없는 풀을 약풀로 여기지 않습니다. 시골마을 여느 살림집 둘레에서 흔하게 피고 지는 풀포기를 약풀로 여깁니다.


  논둑에서 약풀이 자랍니다. 밭둑에서 약풀이 꽃을 피우고 씨앗을 퍼뜨립니다. 시골에 늙은 할매와 할배만 남아 일손이 없으니 논둑이고 밭둑이고 죄 풀약을 뿌려 흙과 풀을 몽땅 죽이는 화학농이 될밖에 없다고들 말합니다만, 흙과 풀을 죽이는 화학농으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해요. 한 끼니 배고픔은 달랠 테지만, 배고픔을 달래면서 농약을 함께 마시는 셈이에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도, 도시로 떠난 딸아들도, 또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낳은 아이들도 모조리 농약을 함께 마시는 노릇입니다.


  시골마을 자그마한 집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날마다 풀을 뜯어 밥상을 차리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설날과 한가위를 맞이해 시골집에 찾아오는 ‘도시로 떠난 딸아들’한테 시골 할매와 할배가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받으려면, 시골로 철마다, 또는 달마다 품을 팔러 와야 합니다.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는 ‘풀약’을 뜯어서 먹고, 들과 숲에서 자라는 풀을 캐고 솎아서 ‘나물’을 먹어야지 싶어요.


  흙땅에서 땀을 뿌리고, 흙땅에 똥과 오줌을 거름으로 삭혀 돌려주며, 흙땅에 아이들과 드러눕기도 하고 흙땅을 박차고 뛰놀기도 하면서, 흙바람과 흙내음을 맡아야지 싶습니다.


.. 어른들이 머리를 백날 맞댄들 뾰족한 수가 없던 것은 결국 젊은 노동력의 보충이 끊겨 가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농촌 현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상황이다. 두레의 정신이 아무리 고귀한들 성원이 될 젊은 층의 수혈이 끊긴다면 살아남을 재간도, 존재의 이유도 없는 법 ..  (168쪽)


  풀을 먹어야 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풀을 먹어야 짐승들도 짐승답게 살아가요. 햇볕과 빗물과 바람으로 튼튼하게 자라는 풀을 먹어야 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햇볕을 머금은 풀을 먹으며 햇볕처럼 따스한 사랑을 나눕니다. 빗물 머금은 풀을 먹으며 빗물처럼 맑은 사랑을 펼칩니다. 바람 머금은 풀을 먹으며 바람처럼 향긋한 사랑을 베풉니다.


.. 광에서 인심 나온다 했던가. 수확이 풍성하니 나눔에도 번민이 적어 좋았다. 회원들 사이의 나눔뿐 아니라 지역 도시농부 공동체에 기부를 할 때에도 저울 바늘에 일일이 민감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밭이나 공동체의 부러움을 살 만했고 우린 그 부러움을 즐기기까지 했다 … 나도 호미를 들고 자리에 없는 두 회원의 파밭을 만든다. 4년간 유기농으로 정성스레 다져진 선유동 농장의 흙에선 호미질마다 산흙의 향긋한 내가 풍긴다 ..  (194, 206쪽)


  ‘유기농’이 좋으니 ‘화학농’이 나쁘니 하고 가를 일은 없어요. 몸을 살리고 마음을 가꾸는 흙짓기로 나아가면 됩니다. 흙을 어떻게 살릴 때에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땅을 어떻게 사랑할 때에 마을이 살아나고 이 나라가 환하게 빛날 수 있는가 하고 살피면 됩니다.


  즐겁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즐겁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갈 길을 생각해야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걸어가야 아름답습니다. 4346.9.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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