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 피터 래빗의 어머니
수전 데니어 지음, 강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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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64



삶을 짓는 길이 푸른 꿈

―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수전 데니어 글

 강수정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10.5.7.



  나는 도시에서 살 적에 그리 푸른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우리 서재도서관(사진책도서관)’을 잘 건사하는 길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길도 아름다운 꿈이라 할 만하지만, 늘 이 언저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작은아이가 태어날 무렵 시골로 삶자리를 옮겨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이렇게 살면서 꿈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돌아봅니다. 돈을 얻거나 이름을 거머쥐는 일도 꿈이라면 꿈이 되지만, 이러한 꿈에서 머물 때에는 꿈이 아니요, 날마다 새롭게 이야기를 지어 즐겁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이 될 때에 비로소 꿈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 시골의 친척집을 찾을 때마다 베아트릭스는 느낌을 기록하고, 집안의 공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스케치에 담았으며, 동식물과 화석의 세밀화를 그렸다 … 사람들은 벽장 위에 있는 할아버지의 결혼예복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녀는 “액면 가치가 없다고 해서 낡은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  (14, 19쪽)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한테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녁은 ‘옛날로 돌아가자’ 하고 말하느냐고. 나는 ‘옛날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늘 ‘새로운 앞날로 나아갈’ 뿐입니다. 다만,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곰곰이 되짚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날마다 노래를 불렀어요. 옛날 사람들은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날마다 지었어요. 수출이나 수입이 없어도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습니다. 임금이나 땀임자가 없어도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습니다. 지식인이나 양반이 없어도, 이름 높은 학자나 관리가 없어도, 빼어난 싸울아비나 전쟁무기가 없어도, 참말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을 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늘 노래였어요.


  이와 달리,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노래가 없습니다. 대중노래는 있으나, 스스로 제 삶에서 짓는 노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밥이나 옷이나 집을 스스로 짓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날마다 새로운 하루로 맞아들여 날마다 새롭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으레 쳇바퀴를 돌듯이 똑같은 일을 날마다 되풀이할 뿐입니다. 출퇴근 지옥이요, 월급바라기이며, 세금정산에 머리가 아플 뿐인 오늘날입니다.



.. 1893년에 스코틀랜드에 머물던 베아트릭스는 노엘이라는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노엘은 베아트릭스의 가정교사였던 애니 무어의 어린 아들이었다. 베아트릭스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노엘에게 그림편지를 보내기로 했고, 이것은 결국 베아트릭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 책 속에서 동물들에게 안락함과 평온함을 주던 인테리어는 이제 그 작은 공간을 멋지게 가꾼 주인에게 안온함과 소속감을 주었다 ..  (31, 54쪽)



  나는 옛날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뜻에서 시골에서 살지 않습니다. 나는 옛날 사람들이 시골에서 부르던 푸른 노래를 새롭게 배워서 즐겁게 누리고 싶기에 시골에서 삽니다. 풀을 뜯을 적에는 풀노래를 불러요. 구름바라기를 할 적에는 구름노래를 불러요. 자전거마실을 하면 자전거노래를 부르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면 버스노래를 부르지요.


  밥을 차리며 밥노래입니다. 설거지를 하며 설거지노래입니다. 빨래를 하며 빨래노래이고, 가끔 아이들한테 골을 부리면 골노래입니다. 골짜기로 나들이를 하면 골짝노래예요.


  바닷가에서 바다노래입니다. 들에서 들노래입니다. 손에 책을 쥐고 책노래예요. 종이를 마룻바닥에 펼쳐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 그림노래예요.


  노래가 안 되는 삶은 없습니다. 삶이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늘 노래예요. 노래가 되는 삶이기에 즐겁습니다. 노래가 되는 삶이기에 날마다 새롭게 부르고, 날마다 즐겁게 맞아들입니다.



.. 힐 탑을 구입하고도 윌리엄과 결혼을 할 때까지는 어쩌다 한 번씩 머물렀을 뿐이지만, 그런 사실도 이 방에 가구를 더하고 재배치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이리저리 손보는 걸 막지 못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 방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집을 구입하고 35년이 지난 1940년 무렵이었다 … 베아트릭스는 집 뒤편에 날개를 증축하면서 농가 부엌 위쪽의 방 하나를 자신이 쓸 용도로 꾸몄다. 처음에는 이곳을 서가라고 부르며, 남동생인 버트램의 유화를 걸어놨었다. 베아트릭스보다 여섯 살 아래인 버트램도 누나처럼 숨 막히는 런던 생활을 탈피해서 농부가 되었다 ..  (105, 128쪽)



  수전 데니어 님이 빚은 이야기책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갈라파고스,2010)을 읽습니다. 수전 데니어 님은 ‘내셔널 트러스트’ 일을 한다고 해요. 베아트릭스 포터 님이 숨을 거두면서, 또 숨을 거두기 앞서, 수없이 ‘내셔널 트러스트’에 내놓아, 시골마을과 시골숲을 그대로 건사하기를 바란 땅을 돌본 일을 맡기도 했다고 해요.



.. 베아트릭스의 공간 배치에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라면 단연 그웨이니노그의 정원을 꼽을 수 있다 … “꽃이 만발했다. 내 정원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형식을 탈피한 옛날 스타일의 농가 정원, 꽃밭 주변에 상자 모양의 산울타리를 두르고 채송화와 팬지와 까치밥나무와 딸기와 완두콩, 그리고 제미마를 위한 큼직한 세이지도 있다 … 야생으로 자라난 것이 정원과 과수원을 전부 뒤덮었고, 숲 속에도 보인다.” ..  (152, 157쪽)



  베아트릭스 포터 님은 이녁 삶을 스스로 천천히 지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삶도, 시골살이도,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는 삶도, 시골에서 그림을 그려 얻은 돈으로 아름다운 땅과 집을 사들여 아름다운 마을이 이어지도록 가꾸는 삶도, 모두 스스로 지었습니다.


  차근차근 지었어요. 무엇보다, 베아트릭스 포터 님은 이녁이 그린 그림을 알뜰히 아끼고 사랑한 이웃들이 한 푼 두 푼 ‘책을 사 주는 일 때문에 번 돈’을 차곡차곡 그러모아서 땅을 장만합니다. 땅을 장만하는 삶을 스스로 지었고, 땅을 장만한 뒤 아름다운 터로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빛과 슬기를 스스로 지었습니다.



.. 베아트릭스는 이 책에서 드디어 자신이 꾸민 정원의 아름다움, 엄밀히 말하자면 정원이 자리를 잡아 그렇게 무르익기를 바라는 모습을 한껏 자랑했다 … 그녀의 드로잉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고, 그곳에서 살다 보니 농부가 되고 싶었으며, 그건 다시 개발 앞에 취약한 자연을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 “나는 침대에 누워서도 고원과 황무지를 한 발 한 발 디디며, 내 늙은 다리로는 두 번 다시 거닐지 못할 그곳의 돌과 꽃, 습지와 황새풀을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무수한 젊은 백치들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건 기꺼운 일 아닌가.” ..  (165, 176, 203쪽)



  나는 고흥 시골집에서 살며 여러 가지로 꿈을 푸르게 꿉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곳을 바탕으로 둘레 땅을 차근차근 장만해서 아름답게 푸른 숲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아직 우리 땅은 없으나, 내가 쓰는 글로 푼푼이 돈을 그러모아서 땅을 열 평 백 평 천 평 만 평 십만 평 백만 평 장만하기를 꿈꿉니다. 이 땅에 아름답고 푸른 꿈을 꾸는 이웃들이 찾아와서 알맞게 집을 스스로 지어서 알맞게 삶을 가꿀 수 있기를 꿈꿉니다.


  우리 이웃은 대통령 이름을 알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이웃은 사건·사고나 신문·방송을 알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이웃은 풀을 마주하면서 풀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습니다. 우리 이웃은 나무를 마주하면서 나무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습니다. 한 그루 두 그루 천천히 나무를 심습니다. 한 뙈기 두 뙈기 텃밭과 꽃밭을 찬찬히 일굽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땅을 밟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도랑과 냇물과 개울에 몸을 담가 뛰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돗물이 아닌 샘물을 마시기를 바라고, 사냥꾼이나 약초꾼이나 난 캐는 이들이 시골숲에 함부로 깃들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기계로 갈아엎는 땅이 아니라, 우리 식구와 이웃이 누릴 만큼 손수 흙을 보듬고 갈면서 밥을 얻기를 바랍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아닌, 즐겁게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꿈이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꿈을 품기에 삶을 가꿉니다. 꿈이 없으면 삶을 짓지 못하고 쳇바퀴를 돕니다. 꿈이 없으면 삶뿐 아니라 사랑도 믿음도 짓지 못합니다.


  예배당에 가야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고스란히 바라볼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성경책을 들춰야 믿음이 아니고, 내가 나를 바라보듯이 이웃과 동무를 바라볼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삶을 가꾸는 삶노래가 이 나라뿐 아니라 지구별 어디에서나 푸르게 피어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슬기를 모아 사랑스럽게 살고, 사랑스레 살아가는 이웃이 가끔 서로서로 찾아가면서 새롭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꿈길을 걷기에 삶길이 홀가분하면서 즐겁습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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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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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5



삶을 바라보는 삶

― 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글

 민병걸 옮김

 안그라픽스 펴냄, 2007.2.27.



  도시로 마실을 나와 아이들과 움직입니다.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이 까무룩 잠들어 가슴으로 안고 걸어다닙니다. 길을 걸어갈 적에 ‘잠든 아이를 안은 사람’이 앞에 있어도 툭 치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든 아이를 안은 사람’을 알아보고는 옆으로 비켜서 자리를 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해 툭 쳤다고 느껴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툭 치고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휘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삶이 다른 만큼 생각이 다르며, 생각이 다르기에 마음이 다릅니다. 대통령이나 시장·군수를 뽑는 선거에서 이쪽한테 표를 주든 저쪽한테 표를 주든, 사람으로서는 모두 같아요. 그저 어느 한쪽에 마음이 갈 뿐입니다.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살핍니다. 신문사와 방송사는 모두 도시에 있습니다. 출판사도 거의 모두 도시에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과 책은 으레 도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터도 삶터도 놀이터도 도시인 만큼, 도시와 얽힌 이야기가 아니면 다루지 않습니다. 도시가 아닌 곳 이야기를 다룰 적에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않습니다.


  시골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헤아립니다. 시골에는 책방도 드물고 텔레비전 들여다볼 일도 드물며 전철도 없고 쇼핑센터나 백화점도 극장도 없습니다. 시골사람은 흙을 밟거나 시멘트로 덮은 도랑을 보거나 숲을 보거나 하늘을 보거나 새와 풀벌레를 봅니다. 시골사람한테는 흙과 풀과 나무와 냇물과 빗물과 햇볕이 대수롭습니다. 늘 곁에 있는 것을 사귀면서 돌아봅니다.



.. 디자인이란 물건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뛰어난 인식이나 발견은 생명을 지니고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긍지를 갖게 해 준다 … 일본의 산업 디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활문화 쪽이 아니라 경제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다 … 기묘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창조성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미지의 것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 감성 또한 똑같은 창조성이다 ..  (10, 20, 33쪽)



  예부터 누구나 ‘흐르는 물’을 마셨습니다. 흐르는 물을 받아 밥을 짓습니다. 흐르는 물에 옷을 담가서 빨래를 합니다. 흐르는 물에 뛰어들어 몸을 씻습니다. 예부터 ‘흐르는 물’을 누리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옛날부터 누구나 ‘흐르는 바람’을 들이켰습니다. 흐르는 바람으로 목숨을 건사하고, 흐르는 바람을 쐬며 시원하다고 느꼈으며, 흐르는 바람을 따라 날씨와 철을 살폈습니다. 옛날부터 누구나 바람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흐르는 물도 흐르는 바람도 누리지 않습니다. 아니, 도시라는 곳에서는 흐르는 물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좁은 곳에 몰려들다 보니, 흐르는 물로는 목이 말라 죽을는지 모릅니다. 도시라는 작은 곳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왁자지껄 부산스러우니, 흐르는 바람으로는 숨이 막혀 죽을는지 모릅니다.


  어떤 삶을 누리는 하루일까요. 어떤 삶을 누리려고 돈을 벌거나 학교에 다닐까요. 이웃과 나는 어떤 삶을 누리면서 생각을 밝힐까요. 우리 식구는 저마다 어떤 삶을 누리고픈 꿈을 키울까요.



.. 별것 아닌 작은 한마디에도 커뮤니케이션의 씨앗이 숨어 있다 … 말하자면, 정보를 다음 글줄로 연결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보를 소중히 하겠다는 관점에서 책의 매력을 의식하고 있다 … 노동력이 싼 나라에서 만들어 비싼 나라에서 팔자는 발상에는 영속성이 없다 … 일본의 미의식은 주변에 있으면서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예지가 만들어 낸 것이다 ..  (50, 110, 119, 172쪽)



  지난날에는 시골살이를 하며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쓰레기가 나올 일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시골살이를 하더라도 쓰레기가 많습니다. 비닐과 농약과 비료를 잔뜩 쓰니까, 비닐쓰레기가 해마다 넘치고, 빈 농약병과 빈 비료푸대가 널브러집니다.


  예나 이제나 도시에서는 쓰레기가 나옵니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를 건사할 길이 없습니다.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은 모두 쓰레기가 됩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적에 늘 쓰레기가 뒤따릅니다. 공장은 물과 바람과 흙을 더럽힙니다. 공장은 물과 바람과 흙을 더럽히면서 돈을 법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돈을 버는 모든 일은 쓰레기를 내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가 될 것을 만들면서 돈을 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때에는 쓰레기를 내놓지 않습니다. 돈과 쓰레기는 언제나 함께 있는 셈입니다. 시골에서 비닐과 농약과 비료를 왜 쓰느냐 하면, 돈을 벌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공장과 고속도로와 발전소를 왜 만들까요. 돈을 벌려고 만들지요. 경제개발은 왜 할까요. 돈을 벌려고 하지요. 아이들을 왜 대학교에 넣으려고 하나요. 돈을 벌라고 그러지요.


  삶을 일굴 적에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삶을 지을 적에는 쓰레기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을 가꿀 적에는 우리 삶터와 일터와 쉼터 모두 아름답게 빛나고 푸르게 우거집니다. 그러니까, 삶을 일구지 않고 돈을 일구면 쓰레기와 가깝습니다. 삶을 일구는 사람은 사랑을 일구고, 사랑을 일구면서 생각과 마음을 일구며, 생각과 마음을 일구기에 삶이 빛날 수 있습니다.



.. 감각이 뒤떨어진 나라에서 정밀한 마케팅을 한다면 감각적으로 뒤떨어진 상품이 만들어지지만 그 나라에서는 잘 팔린다. 감각이 좋은 나라에서 정밀한 마케팅을 하면 감각적으로 뛰어난 상품이 만들어지고 그 나라에서도 잘 팔린다 … 자연과 만난다는 것은 ‘기다림’이며, 기다림에 의해서 어느새 자연의 풍요가 주변에 충만해진다 … 미래의 비전을 마련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흥행’을 계획한다는 발상은 이제 그만 버리는 편이 좋다. ‘마을 부흥’ 같은 단어가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지만, 그렇게 해서 ‘부흥된’ 마을은 무참하다. 마을은 부흥시키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매력은 오로지 풍경과 정감에 달려 있다.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요와 성숙에 진심으로 어울려 그것이 성취된 후에도 ‘홍보’ 등에 연연하지 않고 깊은 숲이나 더운 김 저편에 몰래 숨겨 놓으면 된다. 뛰어난 것은 반드시 발견된다 ..  (149∼150, 179, 190쪽)



  하라 켄야 님이 쓰고 민병걸 님이 옮긴 《디자인의 디자인》(안그라픽스,2007)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디자인을 디자인한달는지, 디자인을 디자인으로 바라본달는지, 디자인을 생각하는 디자인이랄는지, 디자인을 꿈꾸는 디자인이라 할 만하달는지, ‘디자인’으로 삶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 고속도로는 땅속 깊숙한 곳까지 파 내려가 교각을 건설하기 때문에 토지의 지하 수계를 확실하게 분리시킨다 … 환경에 주는 충격이 약한 이벤트는, 공공사업 즉 커다란 토건 공사를 기대하는 지역 경제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디자이너가 할 일은 정보의 핵심을 누구나 섭취하기 쉬운 상태로 친절하게 정리 정돈해 주는 것이다 …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말을 과거의 것으로 돌리지 말고 그 내용을 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215, 216, 227, 236쪽)



  하라 켄야 님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인데, 고속도로가 어떤 곳인지 읽을 줄 압니다. 토목건설이 어떤 일인지 살필 줄 압니다. 삶과 숲과 도시와 시골을 읽을 줄 압니다.


  한국에서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되는 이들은 고속도로가 어떤 곳인지 읽을 줄 알까 궁금합니다. 삶과 숲과 도시와 시골을 읽을 줄 아는 정치 우두머리는 몇이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을 읽거나 마음을 읽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돈을 읽는대서 나쁘다고 느끼지 않아요. 돈을 읽으니 돈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삶을 읽으면서 삶으로 나아갑니다. 사랑을 읽을 적에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숲을 읽는 사람은 숲으로 나아가고, 빛을 읽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갑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읽으려 한다면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나아가려 하겠지요.


  마음밭에 품는 씨앗에 따라 삶이 다르게 흐릅니다. 마음밭에 심는 씨앗에 따라 삶이 다르게 자랍니다. 마음밭에 건사하는 씨앗에 따라 삶이 다르게 이루어집니다.


  어느 길을 가든 내가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어느 쪽으로 나아가든 내가 스스로 다스리는 하루입니다. 해가 나면서 아침이 밝고, 바람이 불면서 상큼하며, 구름이 흐르면서 그늘이 생깁니다. 비가 내리면서 숲이 노래하고, 비가 그치면서 꽃송이가 벌어지면서 벌과 나비가 날아다닙니다. 지구별 이웃이 서로 아끼면서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는 길로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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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에너지 아나스타시아 7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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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9



생각, 삶, 사랑

― 삶의 에너지, 아나스타시아 7

 블라지미르 메그레 글

 한병석 옮김

 한글샘 펴냄, 2012.8.15.



  개구리가 노래하는 사이사이 휘파람새 소리가 섞입니다. 유월에서 칠월로 접어들었습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는 봄부터 듣고 가을에 끊어집니다. 가을부터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소리에 섞이는 멧새 노랫소리를 들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풀숲에서 목숨을 잇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를 한참 듣다가도 비닐봉지를 부시럭거리면 개구리 노랫소리는 까맣게 사라집니다. 물을 한 잔 마신다든지, 개수대에서 물꼭지를 튼다든지, 문을 여닫는다든지 할 적에도 개구리 노랫소리는 내 귀에서 사라집니다. 이 소리는 어디로 갈까요.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 사이에 누워 잠을 부르면, 개구리 노랫소리는 차츰 흐려집니다. 어느새 잊혀지면서 새로운 곳에서 빛도 소리도 없는 꿈을 그립니다. 내 넋은 개구리 노랫소리를 안 듣지만, 내 몸은 밤새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을까요.


  생각을 기울이면 소리를 듣습니다. 생각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를 안 듣습니다. 생각을 할 적에 소리가 스며들고, 생각을 안 할 적에 소리를 못 느낍니다.



..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생은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했나요 … 그런데 까쨔는 소망했어요. 고집이 있거든요 … 생각한테는 예상치 못할 상황이란 없다. 그런데 온갖 사고, 혼란이 일어난다. 왜일까? 생각이 설계를 마칠 시간을 안 준 채, 물화에 서둘렀기 때문이다 … 자신의 삶을 포함한 일상의 모든 상황이 절대적으로 우선은 생각에서 지어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자연, 사람도 태초에 하느님의 생각이 지은 것이다. 사람도 하느님처럼 스스로의 생각으로 새로운 물건, 자신의 삶을 지을 수 있다 … 장인은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단식을 하여 몸에서 필요없는 것을 청소하였고, 그로써 생각의 힘을 돋웠던 것이지 … 사람들은 항상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들만을 본다는 거야 ..  (10, 16, 22, 28쪽)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으니, 코앞에 누가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코앞에 하느님이 있어도 못 알아보아요. 왜냐하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바삐 어디론가 가야 할 뿐입니다. 코앞에 하느님이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보기보다는 바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합니다.


  우화가 아닌 우화라고 할 텐데, 참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이 땅에 내려와서 우리를 붙잡고 이야기를 걸려고 하지만, 우리들은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고는 예배당에 가야 한다고, 절에 가야 한다고, 예배당과 절에서 비손을 올려야 한다고, 너무 바쁘다고, 이녁(하느님이나 부처님)한테 붙들려서 이야기를 들을 겨를이 없다고, 이렇게 손사래를 칩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불러도 나는 바쁜 일을 하러 가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나를 불러도 나는 바쁜 일 때문에 가야 한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곁님이 불러도, 곁님이 저기를 보라면서 불러도, 곁님이 저기에 나비가 예쁘게 날갯짓을 하니까 함께 보자고 불러도, 나는 더없이 바쁜 어떤 일이 있다면서 모두 손사래를 칠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어떤 일이 바쁠까요. 우리는 어떤 일부터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일로 삶을 지을 때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떤 즐거움부터 찾아나서야 할까요.



.. 네가 기억할 것이 있다. 네가 여신과 살고 싶다면 너의 삶도 여신의 격에 맞아야 하느니라 … 새 세상을 짓거나 이미 지어진 세상을 더 좋게 하려면 사람의 생각의 속도가 하느님의 그것에 버금가야 한다 … 태초에 사람들은 하느님의 생각의 속도와 대등했다. 그렇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은 다른 어떤 부모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식을 자기보다 못한 사람으로 짓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 사람의 생각 에너지를 방향을 바꾸거나 노예화할 수 있는 건 사람의 생각뿐이다 … 규명은 절대 이성이 아닌 느낌의 차원에서 스스로 자유로이 태어나야 해 … 당신은 아무것도 고칠 게 없어요. 모두는 애초부터 당신에 의해 완벽하게 지어졌어요 ..  (30, 36, 46, 51쪽)



  돈을 벌어야 밥을 먹지 않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해야 밥을 먹습니다. 밥은 돈으로 사들여서 먹지 않습니다. 때로는 돈을 써서 어떤 밥집에서 사다가 먹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봐요. 밥집에서는 쌀이든 푸성귀이든 열매이든 어디에서 가져올까요? 돈을 주고 사오겠지요. 그러면 어디에서 사올까요? 시골에서 사올 테지요.


  우리가 시골에서 살며 스스로 흙을 일구면, 굳이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도시에서 살더라도 스스로 흙을 일구면, 애써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때에 아주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집이 있어야 해요, 하고. 그래, 그러면 어떤 집이 있어야 할까요? 백억 원짜리 집이 있어야 할까요? 십억 원짜리 집이 있어야 할까요? 오억 원쯤은 되는 집이 있어야 할까요?


  어떤 집에 있을 때에 이 집을 ‘보금자리’로 여기겠습니까. 어떤 집에서 먹고 자며 잠들 적에 즐겁게 노래하겠습니까. 어떤 집에서 아이들과 꿈을 키우겠습니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삶을 가꾸고, 어떻게 일과 놀이를 누리며, 어떻게 사랑과 꿈을 지피려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길을 찾을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열고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름난 강사한테서 실마리를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쏟아서 생각을 바쳐야 합니다.



.. 하느님은 자신의 작품인 사람이 자기와 닮길 바랐어 … 그를 보지 않고 느끼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거든 … 하느님의 작품을 부수고 자기 아버지가 지으신 세상에서 멀리 수도원의 돌담 뒤로 숨거든. 수천의 성스러운 경전을 생각해 내고 써냈지. 어디나 다 똑같아. 성경은 말하지. 하느님을 숭배해야 한다고. 절을 하긴 하는데 누구한테 하는 건지는 몰라 … 자기 자식들의 무기력한 탄식보다 부모에게 더 큰 고통이 무엇일까 … 사람의 생각의 속도가 하느님의 것에 이른다면, 사람은 다른 별에서도 생명으로 넘치는 조화로운 세상을 지을 수도 있을 거야 ..  (55, 56, 57, 61쪽)



  생각을 짓는 사람이 삶을 짓습니다. 생각을 짓지 않는 사람은 삶을 짓지 않습니다. 생각을 지을 수 있기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생각을 지으며 즐겁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생각은 늘 삶으로 이어집니다. 생각으로 삶을 보살핍니다. 생각이 있으니 삶이 언제나 따사로우면서 넉넉합니다.


  생각이 없기에 전쟁무기를 만들어 군대를 내세워 평화를 무너뜨립니다. 전쟁무기로는 평화를 이루지 않아요. 전쟁무기로는 전쟁을 하지요. 전쟁무기가 무엇인가요? 전쟁을 하려고 만든 무기입니다. 군대는 어떤 곳인가요? 전쟁을 하려고 만든 모임이에요. 그러니, 전쟁무기와 군대가 있으면 평화하고는 동떨어집니다.


  평화를 바라면 평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평화를 바라면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땅에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기계를 대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먹을 밥을 내 손으로 내 땅에서 얻을 수 있어야 평화입니다. 내가 먹을 밥을 내 손으로 가꾸는 내 땅에서 얻으면서 이웃하고 오순도순 밥잔치를 마련할 때에 평화입니다. 내 밥을 너하고 나누고, 네 밥을 내가 나눌 적에 평화예요.


  밥을 나눌 적에 평화입니다만, 어떤 밥을 나누려 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가꾸고 사랑하는 흙에서 얻는 밥을 나눌 때에 평화입니다. 나와 너는 서로서로 제 삶자리에서 제 흙을 가꾸고 사랑하면서 삶을 지어야 평화를 이룹니다.



.. 당신 손녀의 생각은 우리보다 빠르오. 그 애는 일 년에 천 년을 지으오 … 어린아이한테 질문을 주면 그 애의 생각은 답을 찾기 시작하고 그것으로 점점 더 빨라지지 … 어린아이를 위해 딸랑이나 인형을 만든 사람의 생각의 속도와 다람쥐를 지은 그의 속도에 어떤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고 … 사람들은 아이한테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 지적을 하지. 이때 아이들은 사실상 세뇌를 당하는 거야. 자기 스스로는 생각하면 안 되고 자기를 대신해서 이미 모든 게 결정되어 있다고 … “그래, 어미 늑대보다 영리해. 하지만 사람은 항상 더 현명해야 해. 나는 어린 아이를 괴롭히지 않아. 난 그 애한테 제안을 한 거야. 생각을 좀 해 보고 늑대의 생각을 고려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라고 ..  (60, 64, 65, 70쪽)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글로 갈무리한 《삶의 에너지, 아나스타시아 7》(한글샘,2012)을 읽습니다. 여러 차례 읽습니다. 곰곰이 되새기면서 읽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리거나 나누는 기운은 어디에서 샘솟는가를 가만히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2012년 8월에 나온 책을 곧 다 읽었으나 이태 가까이 책상맡에 둡니다. 《아나스타시아》 첫째 권부터 일곱째 권까지 책상맡에 나란히 꽂아 두고 날마다 쳐다봅니다.


  책이름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일곱째 권을 “삶의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옮겼으니, 삶의 에너지란, 삶을 가꾸면서 얻거나 누리거나 빚는 기운입니다. ‘삶기운’이라고 할까요, ‘삶힘’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삶빛’이라고 할까요.


  기운이나 힘은 빛에서 나오니 ‘삶빛’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일곱째 권에서는 삶빛을 노래한다고 하겠습니다. 삶을 밝히는 빛이 어디에서 나오고, 삶을 밝히는 빛은 누가 어떻게 가꿀 수 있는가를 들려준다고 하겠어요.



.. 시스템은, 어린이는 물론이고 지금 사는 어른들한테도 온갖 정보를 쏟아부으며 중요한 것처럼 전하지만, 정작, 모든 소식을 전하는 보도의 목적은 사람들이 정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야 … 주목해 봐, 온 세계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정보는 인류의 발전 방향에 대한 주제인 것이야 … 가장 완벽한 인공의 컴퓨터라 할지라도 매일 매시간 온갖 정보로 채운다면 컴퓨터는 결국 더 느리게 작동할 거야 …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고안해낸 조각상 주위에 모여 감사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면 허비할수록 하느님이 지으신 조물과 어울릴 시간은 줄어들 거야. 하느님한테서 직접 나오는 정보로부터 사람들은 점점 더 멀어질 거야 … 의학이란 학문이 완벽하게 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결과가 스스로 답하지. 의학이 완벽하게 하는 건 병이야. 나의 이런 결론이 이상한 것 같지? 스스로 생각해 봐. 수많은 동물이 자연의 상태에서 병이 들지 않는데, 자신을 고등한 존재라 여기는 사람이 왜 자신의 질병 하나 해결하지 못하지? … 현대 삶의 여건에서는 의사들한테 환자가 필요하지 ..  (72, 73, 75, 84, 87쪽)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개구리 노랫소리를 생각합니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를 듣는 사람은 전철 소리를 생각합니다. 컴퓨터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컴퓨터 웅웅거리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바람 따라 볏포기가 눕고 서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볏포기가 바람을 맞으며 눕고 서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다만,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어느 쪽이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소리일 뿐입니다.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결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잘 알아야 해요. 멸나물을 먹는대서 아픈 데를 고치지 않습니다. 어려운 한자말로 다시 말하자면, 어성초를 먹기에 질병을 고치지 않습니다. 영지버섯을 먹어야 아픈 데가 사라질까요. 산삼을 먹어야 몸이 튼튼할까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빛을 먹어야 몸이 튼튼합니다. 빛을 먹어야 아픈 데가 없습니다.


  빛이란 그냥 빛이 아닙니다. 형광등 불빛이 아닙니다. 전기로 밝히는 불빛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밝히는 빛을 먹을 때에 몸이 튼튼합니다. 사랑으로 다스린 빛을 맞아들일 때에 아픈 데가 없습니다.


  곧, 삶은 사랑으로 가꾸는 빛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삶은 사랑으로 일구는 빛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 상상해 봐, 블라지미르. 아침이야. 해가 퍼지기 시작할 무렵 잠에서 깨어 가원의 동산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어. 그곳엔 삼백 가지 이상의 그에게 필요한 식물이 자라고 있어 … 신선한 음식을 먹어야 유익하다고 자네 세상에선 말하지. 그렇담 신선한 음식이란 게 뭐지? … 자연에는 육신의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식물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왜 우리 곁에 없나? … 가원이란 오아시스를 짓는 데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가원에 에워싸여 있어야 한다. 내 가원의 살아 있는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이웃에 날린 것이고 그곳으로부터 살아 있는 공기가 또 다른 바람을 타고 내 가원으로 날릴 것이다 …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깨어나시오, 생각해 보오 … “아버지, 이거 보세요.” 에직이 말했다. “우리는 헥타르 절반에 궁전이며 온갖 건축물을 지었어요. 그런데 쏘냐의 가원에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 공기가 우리한텐 없어요. 절반을 헐어버려야 해요.” ..  (92, 95, 98, 105, 170, 257쪽)



  개똥을 약으로 쓰는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개똥이라 하더라도 아픈 사람한테 ‘자, 여기에 가장 놀라운 약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면, 아픈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생각해요. 참말 내 아픈 몸을 낫게 해 주겠구나 하고 생각해요. 생각으로 믿음을 만들지요. 생각으로 만든 믿음을 몸에 심지요. 그러면 몸이 낫습니다.


  어떤 것을 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풀을 골라서 먹어야 몸이 튼튼해지거나 좋아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생각을 날마다 새롭게 지어서 스스로 빛을 씨앗으로 심을 때에 몸이 튼튼해지거나 좋아집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생각을 짓지 않으면 무슨 씨앗을 심겠어요. 아무 씨앗도 못 심어요.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생각을 지어야 삶이 늘 새롭지요.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가 고스란히 새로우면서 즐거워요. 새로우면서 즐거운 하루일 때에 언제나 웃으면서 노래해요. 언제나 웃으면서 노래하는 사람은 웃음과 노래로 삶을 가득 채워요. ‘아픔’이나 ‘슬픔’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웃고 노래하는 사람은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웃지 않고 노래하지 않기에, 겉치레로 웃거나 겉발림으로 노래하기에 자꾸 아프거나 슬픕니다.



.. 서두르면 해가 돼. 우선은 반드시 생각으로 자신의 공간을 지어야 해 … 종교란 특정 유형의 사람을 형성하고 사람이 특정 행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 끊임없이 싸우는 건 다른 민족들이 아니고, 다른 이데올로기가 민족들을 이용하여 싸우는 것이다 … 기독교가 도래하면서 융성한 국가가 지구상에 하나라도 있었는지 그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로마 제국의 슬픈 운명을 맞은 국가는 여럿 댈 수 있을 것이다 … 온갖 별 볼일 없는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도록 권한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기자 혹은 작가 중 누군가가 중요한 테마를 건드리기만 했다가는, 잠시 반짝였다가는 이내 묻혀버린다 … 진실로 신성한 삶이란 지상이 아닌, 어딘가 다른 차원에 있다는 이 교리는 그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 지난 수천 년간 우리의 관심을 온갖 여러 가지 사건에 집중시켰다. 누가 누구와 싸웠는지, 어디에 멋진 건축물이 지어졌는지, 공후나 황제 중 누가 누구와 싸웠는지, 누가 어떤 권력을 쟁취했는지 얘기해 준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 부모들의 문화에 비하면 이것들은 그리 중요할 게 없다 … 나의 멀고도 먼 할머니의 할머니는 토속신앙인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이해했다. 우주를 알았고 떠오르는 햇빛의 의미를 알았다 ..  (124, 132, 133, 142, 151, 157, 168쪽)



  개구리가 노래하는 시골자락을 마음에 담기에, 참말 스스로 ‘개구리가 노래하는 시골자락’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아갑니다. 전쟁무기로 이루는 평화를 마음에 담기에, 참말 스스로 ‘전쟁무기가 가득한 나라에서 거짓스러운 평화 껍데기가 있는 굴레’에 갇힌 채 살아갑니다. 이웃과 오순도순 나누는 사랑을 마음에 담기에, 참말 스스로 ‘어디에서나 이웃과 살가이 만나서 오순도순 나누는 사랑’을 누립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마주해야 합니다. 꾸밈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수수하게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모기한테 자꾸 물린다고 생각하기에 자꾸 모기에 물릴 뿐 아니라, 모기한테 물린 자리가 가려워요. 가려우니 긁어요. 긁으니 덧나요. 덧나니 붓고, 붓기가 빠지지 않으니 약을 발라야겠다고 생각해요. 생각이 생각을 낳습니다.


  모기가 있건 말건 모기를 쳐다보지 않으면 모기한테 물리지 않아요. 더러 모기가 문다 하더라도 살짝 붓다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모기한테 수없이 물렸다지만 이런 모습을 쳐다보지 않아서 모두 감쪽같이 사라졌다면 ‘모기한테 물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받는 즐거움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기쁨을 생각할 적에, 삶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꿈을 생각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하루를 생각할 적에, 삶이 환하게 빛납니다.



..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사주가 아니라 우리의 지혜와 가슴의 명에 따르는 우리는 할 수 있다 … 노예제나 멍청한 통치자가 없으니까 국가가 없고 비문명적이란 말인가? … 그 당시 루시에는 베다의 삶의 양식, 문화가 여전히 대세였어. 그때까지 베드루시 사람들한테선 도시가 생겨나지 않았어. 좋은 음식과 기쁨 그리고 가원에 사는 밝은 사람들로 가득한 수많은 마을이 루시를 이루었어 … 알아야 해, 블라지미르, 사랑으로 키운 열매는 자신에게 사랑을 불어넣어 준 사람 그리고 키운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준 사람에게만 복을 줄 수 있어 … 죽음의 공포 아래선 죽음을 부르는 것만이 자랄 수 있다네. 그 모양이 좋아 보인다 해도 말이야 … “그거 타고 나면 그곳 땅에선 오랫동안 아무것도 못 자라.” “왜 안 자라는데?” “온갖 이로운 지렁이며 벌레들이 다 타 죽으니까. 이거 봐, 내가 천막 옆에 모닥불을 피웠는데 이곳에선 아무것도 안 자랐잖아.” ..  (185, 187, 189, 191, 193, 248쪽)



  누구한테나 스스로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라고 느낍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마을에서 살아가는데, 다 다른 삶이지만 모두 한 곳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 삶을 지으면, 삶에 빛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이 짓는 삶은, 스스로 웃음과 노래와 춤하고 동떨어집니다. 사랑을 담아 삶을 지으면, 삶에 빛이 있어요. 사랑을 가득 담아 짓는 삶은, 스스로 웃음과 노래와 춤을 누릴 뿐 아니라, 이웃한테 손을 내밀어 함께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나날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학교는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책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어른과 아이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신문과 방송이란 무엇이고, 우리들은 신문과 방송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서울 한복판에 주저앉은 채 권력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문과 방송을 멍하니 쳐다보아야 할까요.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내 삶에서 듣거나 생각할 이야기는 언제나 스스로 풀고 맺어야 할까요.


  비가 올 때에는 비를 느낍니다. 눈이 올 때에는 눈을 느낍니다. 바람이 불 때에는 바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스스로 움직여 비와 눈과 바람이 나한테 찾아오도록 삶을 짓습니다. 사랑이 나한테 오기만을 바라지 말고, 사랑을 스스로 지어서, 이 사랑으로 내 삶을 스스로 가꿉니다.



.. 베디즘 시대, 그에 이은 토속신앙 시대에는 망자에 대한 슬픔, 비탄의 축제란 없었다. 축제는 모두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해 주고 젊은 세대에게 선조의 지식을 전했다 … 할아버지는 손자를 사과나무에 데려가서 손수 사과나무를 만져도 보고 손자도 사과나무를 쓰다듬었다 … 이 문명에서는 하느님을 믿을 필요가 없었다. 이 문명의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았다. 이 문명의 사람들은 하느님과 소통하고 창조주의 생각을 이해했다. 이 문명의 사람들은 풀, 벌레, 별들의 소명을 알았다 … 일본인들 다수가 시를 쓰고 자연을 소중히 대한다. 일본의 꽃꽂이에 온 세계가 심취한다. 그런데 이 우아한 예술은 일본의 전문 꽃꽂이 예술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 가정 어디에서나 꽃꽂이를 볼 수 있다. 아이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는 독특하다. 어린이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기 위해 어른들은 최선을 다한다 ..  (208, 209, 210, 210쪽)



  《아나스타시아》는 이야기책입니다.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꾸민 이야기라는 뜻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뜻입니다. 삶은 늘 이야기입니다. 삶이기에 언제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삶을 담지 못하면 이야기가 아니고, 삶을 담지 못한 책은 이야기책이 아닙니다. 삶을 담지 않고 지식만 담아도 책은 되어요. 이런 책이 이른바 ‘인문책’입니다. ‘역사책’과 ‘문학책’과 ‘종교책’과 ‘학술책’과 ‘과학책’은 이야기를 담지 않고 지식과 정보만 담아서 나오기 일쑤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를 살피려고 인문책을 손에 쥐어요.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은 이녁 스스로 바라거나 뜻한 대로 인문책에서 지식과 정보를 얻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책에서 ‘이야기를 얻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생각하지’도 않고 ‘이야기를 찾지’도 않아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에는 어떠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초·중·고등학교 모두 이야기가 없이 입시지옥만 있습니다. 교과서만 있고 졸업장만 있는 학교입니다. 이야기가 없는 학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야기가 없기에 삶이 없고 사랑이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으니 노래나 춤이 없습니다.


  예부터 어느 겨레나 이야기로 살았습니다. 논밭에서 일하며 늘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바다에서 일하든 숲에서 나무를 하든 노상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그런데, 문명 사회로 바뀌면서 이야기를 스스로 버립니다. 정치권력이 문명 사회를 앞세우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보금자리를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어 이야기를 스스로 걷어찹니다.



.. 그러니까 당신이 자기 나라 대중의 과거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당신은 더 아름답게 꾸며진 사람의 주거를 볼 수 있지 … 집을 온통 그리고 울타리까지 나무에 레이스 모양의 조각을 사랑으로 장식했어. 집안의 모든 생활용품에 그림을 그려 넣었고 옷을 뜨개질했지 … 온 백성이 창작활동을 했어. 이것이 또한 말해 주는 것은, 온 백성이 풍요 속에 살았다는 거야 … 똑같은 내용의 수많은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분석 능력을 잃고 마는 것이야 …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삶을 세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 그 문제를 풀면 자네가 직접 책을 써 보게 ..  (212∼213, 218. 222쪽)



  도시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도시에는 문화와 예술이 있을는지 모르나,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노래를 짓고, 스스로 춤을 춥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웃습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코미디 방송이나 영화를 보아야 웃지 않아요. 이야기가 있으니 스스로 웃어요. 그리고, 스스로 웁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 이웃과 나누었고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어요.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지었으니, 이야기도 저절로 지었으며, 사랑을 언제나 스스로 지었지요.


  오늘날 사람들을 헤아려 보셔요.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짓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짓는 사람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하는가요? 우리들은 돈만 벌지 않나요? 우리들은 졸업장이랑 자격증만 거머쥐지 않나요? 우리들은 자가용 손잡이만 붙잡지 않나요? 우리들은 텔레비전과 스마트폰만 바라보지 않나요? 우리들은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에 머물기만 하지 않나요?


  아무것도 짓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숲을 우리가 스스로 지어야 합니다. 해가 저절로 뜨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아침이 되면 해가 기쁘게 떠오르도록 삶을 지어야 합니다. 바람이 저절로 불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바람이 알맞게 불면서 지구별을 포근하게 감싸도록 삶을 지어야 합니다. 비가 아무렇게나 오도록 내팽개치면 안 됩니다. 철마다 비가 알맞게 내려 온 들과 숲과 골짝을 적셔서 내와 가람이 맑게 흐르도록 삶을 지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푸성귀를 얻지 않아요. 씨앗을 스스로 심어야지요. 그리고 숲을 우리 스스로 가꾸고 흙을 우리 스스로 살찌워야지요. 돈만 벌어서 사다가 먹는 푸성귀나 곡식이나 열매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삶을 지어서 즐기는 밥이 되어야 합니다.



..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어느 한 수형인이 9년을 살다 자유의 몸이 된다 칩시다. 친구가 없습니다. 그의 친구들이란 다 교도소 감방에 있습니다. 그는 가족에 필요치 않습니다. 사회에도 필요없는 존재입니다. 누가 좋은 일에 전과자를 고용하겠습니까? 여러 전문 직종의 실업자들이 넘쳐납니다.” … 교도소장은 자신의 피보호인들이 열광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마음과 흙의 마음 사이에는 분명 무언가 우주적 관계가 존재해. 이 관계가 있으면 사람은 지구별과 조화 속에 있게 되고, 이 관계가 없으면 조화가 없는 거야. 변태가 시작되고 범죄가 증가해.” … “중위, 범죄자들이 이 교도소에서 탈옥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무장한 군인들이 들어 있는 저 감시탑들은 무엇하러 있는 것이오?” “교도소를 외부세계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 위원회 위원들이 놀란 건 녹색의 여러 가지 꽃담장뿐도 아니었다. 여름 풀과 꽃들의 섬세한 향기가 도시의 도로와 사무실 냄새에 찌든 사람들을 행복으로 감쌌던 것이다 ..  (265, 284, 289, 290쪽)



  삶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이름을 드날리건 안 드날리건 삶이 있는 사람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사랑스럽지요. 사랑이 없으면 사랑스러울 수 없어요. 생각이 있는 사람이 착합니다. 생각을 스스로 세워서 하루를 새롭게 지을 때에 착한 빛이 흐릅니다. 착한 빛은 나부터 살리면서 이웃 모두를 살립니다. 내가 나부터 착한 빛이 되어 서로를 살리듯, 모든 사람이 저마다 이녁부터 착한 빛이 되어 다 같이 살릴 때에, 비로소 지구별이 환하게 빛납니다. 지구별은 환하게 빛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요. 울퉁불퉁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지구별인데, 이렇게 아파 하는 지구별은 지구사람 모두 슬기로운 빛으로 거듭나서 아름다운 삶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휘둘리는 노예 얼거리가 아닌, 남이 가는 대로 넋 없이 따라가는 쳇바퀴 틀거리가 아닌, 나 스스로 삶을 짓는 몸짓일 때에 즐겁습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하루일 때에 노래합니다.



.. 지금 의원들은 백성들로부터 유리된 채, 자기의 집무실 그리고 회의에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어. 지금은 좋은 법을 만든다고 고마움을, 나쁜 법을 만든다고 욕을 먹지 않아 … 위대한 철학자의 머리에서 위대한 사상이 태동한 건, 홀로 떨어진 상황에서지 공개석상의 발표 순간이 아니야 ..  (308, 309쪽)



  생각과 삶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생각과 삶과 사랑은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과 빛과 숲은 하나입니다. 책과 빛과 숲은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과 바람과 넋은 하나입니다. 사람과 바람과 넋은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서울 한복판 시끌벅적한 곳에서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노랫가락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스스로 ‘바라볼’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짓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서울 한복판 자동차가 넘치는 그곳에서 무엇을 짓습니까. 무엇을 짓는 사람들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인문학은 무엇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동화와 동시와 어른문학은 무엇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문화와 예술과 교육과 정치는 무엇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언론과 경제와 과학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 보기만 든다면, 다산 정약용 같은 사람은 서울 한복판에서 ‘빛을 바라본 뒤 빛을 삶으로 담아 빛을 이야기로 엮지’ 않았습니다.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졌다고 할 만한 시골자락에 깃든 뒤에 비로소 ‘빛을 바라보고 빛을 삶으로 담으며 빛을 이야기로 엮는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산 정약용 같은 ‘슬기사람’이 나타나지 못하는 까닭을 사람들이 스스로 바라보아 느끼고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서울에서도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스스로 하루 내내 온마음을 쏟아 가장 아름다운 숨결로 가장 사랑스러운 삶을 짓는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늘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생각할 때에 삶이 되고, 삶을 지을 때에 사랑이 되며, 사랑을 나눌 때에 생각이 자랍니다. 4347.7.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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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손바느질 - 36.5℃ 손바느질 소품 37
송민혜 지음 / 겨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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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1



사랑하며 살아가는 손빛

― 처음 손바느질

 송민혜 글·사진

 겨리 펴냄, 2014.4.10.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쌀을 씻습니다. 때로는 새벽에 일어나서 쌀을 씻습니다. 네 식구 함께 먹을 밥을 헤아리며 쌀을 씻습니다. 다음 끼니로 어떤 밥을 지어서 먹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즐겁게 누린 한 끼니를 돌아보면서, 다음 끼니에도 다 같이 즐겁게 밥 한 그릇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쌀은 손으로 씻습니다. 냄비에 쌀과 물을 받아 살살 젓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쌀을 씻을 때에는 으레 아이들이 옆에서 지켜봅니다. 큰아이는 키가 웬만큼 자랐으니 손만 쭉 뻗으며 “나도 할래.”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받침걸상을 가지고 와서 올라온 뒤 “나도 할래.” 하고 누나 말을 따릅니다.


  끼니로 먹는 밥은 논에서 거둔 벼입니다. 벼에서 겉껍질인 겨를 벗기면 비로소 쌀이고, 이 쌀을 솥이든 냄비이든 담아서 물을 맞추어 지으면 밥입니다. 요즈막에는 볍씨를 내어 모판을 만들고 모를 심는 일 모두 기계로 하지만, 예부터 모내기이든 씨뿌리기이든 모두 손으로 했습니다. 손으로 씨앗을 만져 흙에 두었고, 손으로 흙을 조물조물 만지면서 보살폈습니다. 이렇게 하고는 가을걷이에도 손으로 낫을 쥐고 손으로 볏포기를 움켜쥐면서 석석 베었어요.


  손으로 벤 볏포기는 이 다음에도 손으로 알맹이를 털지요. 손으로 짠 섬에 벼를 담고, 손으로 만든 절구에 벼를 넣어 손으로 깎은 절굿공이를 들고 겨를 벗겼습니다. 그러고는, 또 손으로 만든 키로 석석 날리면서 지푸라기가 날아가도록 했습니다. 지난날에 흔히 쓰던 조리도 손으로 만들었어요. 솥도 손으로 만들고, 부엌과 아궁이도 손으로 지으며, 집도 손으로 지었어요. 수저도 손으로 만들고, 밥상도 밥그릇도 누구나 스스로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 곰곰 제 어릴 때를 돌아보면 집에서 어른들이 바느질하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었어요. 할머니는 손수 한복을 지어 주셨고, 자투리 천으로 한복에 다는 동전들과 인형 옷을 만들어 주셨어요. 이불 호청을 빨아 풀 먹이고 다듬이질한 뒤에 시침질 하던 모습도 생각나네요. 집에서 쓰는 바구니와 채가 닳아 구멍이 나면 아버지가 바느질해 손을 보셨고 … 아이들에게 엄마 손길 담은 소품을 선물해 보세요. 제 쓰임이 있는 소품들이라면 아이가 늘 곁에 두고 쓰면서 엄마 사랑을 담뿍 받을 수 있어요 ..  (2, 12쪽)



  아이들 손을 잡고 걷습니다. 어디이든 가고 싶은 곳으로 손을 잡고 걷습니다. 숲에 가고 싶으면 숲으로 가지요. 들에 가고 싶으면 들로 가지요. 바다로 가고 싶으면 바다로 갑니다. 도시로 마실을 하려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갈 수 있어요.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이든 부산이든 인천이든 갑니다. 언제나 아이들 손을 잡습니다.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뜸하니 아이들이 저희끼리 이리 달리든 저리 뛰든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읍내에만 나와도 자동차가 복닥거리기에 아이들을 불러 손을 잡습니다.


  여름에도 손을 잡고 겨울에도 손을 잡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손을 잡습니다. 아주 꼬맹이였을 적에는 아이들이 위로 손을 뻗어야 했고, 네 살 일곱 살 천천히 자라니, 이제 아이들도 손잡기가 힘들지 않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인 나 또한 내 어버이와 손을 잡고 컸습니다. 내 어버이도 꼬맹이인 내 손을 바투 잡았습니다. 손만 잡을 뿐 아니라 몸도 가까이 붙어요. 착 달라붙으면서 어버이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맞춥니다.


  참말 그래요. 사람이 많거나 자동차가 오가는 곳에서 어떤 어버이라도 이녁 아이 손을 꼬옥 잡기 마련입니다. 놓치지 않으려고,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아끼려고, 보살피려고 어버이는 아이 손을 힘껏 잡습니다.





.. 큰 통에 물을 담고 천을 넣어 서너 시간쯤 담가 두세요. 천을 만들 때 쓴 화학약품과 풀기가 잘 빠질 수 있게 조물락조물락 해 주면 좋아요. 그리고 잘 말립니다. 빳빳이 다 마르기 앞서 살짝 덜 말랐을 때 다림질을 해 주면 구김을 쉽게 펼 수 있어요 … 작은 소품 하나로 아이에게 빛나는 하루를 선물할 수 있어요 … 봄에 조카가 놀러 와서 놀다가 덥다고 바지를 벗었어요. 개구쟁이라서 내복바지에 구멍이 두 개 났네요. 그래서 자투리 천으로 퀼트솜을 덧대 꿰매 주었더니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자랑을 했대요 ..  (6, 24, 30쪽)



  우리 네 식구는 시골에서 두 다리로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버스를 타기도 합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달릴 때에는, 혼자 달릴 때하고 사뭇 다릅니다. 힘이 여러 곱 들기도 하는데, 이보다 두 아이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는 한결 느긋하고 차분히 달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굳이 더 빨리 달리려 하지 않습니다. 애써 큰길로만 다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조용하며 오붓한 길을 찾아 달립니다. 아이들이 자전거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한갓진 길이 즐겁습니다. 들바람을 마시고 바닷바람을 먹을 만한 길을 달리면 아이도 어버이도 함께 기쁩니다.


  자동차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자동차는 아무 데에서나 함부로 씽씽 달리면 안 될 뿐입니다. 자동차는 아무 데나 마구 휘젓고 들어서지 말아야 할 뿐입니다. 시골이라면 마을 어귀에 자동차를 대고, 마을 안쪽으로는 걸어서 들어와야지요. 도시에서도 자동차는 동네 바깥에 대고, 동네로는 걸어서 들어서야지요.


  집 앞에는 자동차를 대지 말아야 한다고 느껴요. 자동차는 집 앞까지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집 앞은 아이들 놀이터이거든요. 집 앞은 아이들이 노는 곳인 한편, 어른들이 일할 곳이고, 텃밭이나 꽃밭이 될 곳이며, 이웃과 만나서 어울리는 쉼터가 되어야 하니까요.


  집 앞에는 자동차를 세우지 말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느껴요. 집 앞에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 고운 그늘을 드리우고 싱그러운 바람을 베풀도록 해야지 싶어요. 우리들은 집 앞에서 자라는 나무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지요. 나무 둘레에서 자라는 풀도 살살 쓰다듬고, 풀꽃이 피면 풀꽃한테도 인사하지요. 아이는 어버이 손을 잡으면서 즐겁고, 어버이는 아이 손을 잡으면서 기쁩니다. 사람은 나무와 풀을 쓰다듬으면서 즐겁고, 나무와 풀은 사람 손길을 타면서 기쁩니다.





.. 수업 준비하면서 재료 살 때는 되도록이면 무턱대고 비싸거나 폼 잡는 재료들은 사지 않는다. 중요한 재료라기보다 얼마나 할 마음이 있는지(하고 싶은 마음)와 ‘기본’이니까 …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소품을 만들어 보세요 …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아이들 스스로 찾아보면서 계절에 따라 무슨 열매들이 있는지 둘레 모습은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 책에서 말하는 대로 가로로 꽂든 내가 쓰듯 세로로 꽂든 꼭 어떻게 해야 하는 일이란 없다. 그저 쓰기 편한 대로 ‘나’에 맞춰 쓰면 된다 ..  (32, 50, 53, 63쪽)



  송민혜 님이 쓴 《처음 손바느질》(겨리,2014)을 읽습니다. 손바느질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들한테 길잡이가 되도록 쓴 책입니다. 바느질을 이럭저럭 할 수 있지만, 바느질을 하는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이들한테 길동무가 되도록 엮은 책입니다. 솜씨 좋게 바느질을 하는 이들한테 살가운 이웃이 되자면서 빚은 책입니다.




.. 그림 그린 날이나 아이 이름을 바늘땀으로 넣어 보세요. 누가 그렸는지 언제 그렸는지 남겨둘 수 있어 좋아요 … 아이는 자르고 엄마는 바느질, 사이좋게 뚝딱. 안 입는 옷과 자투리 천으로 만든 장식줄 … 나뭇가지를 엮을 때 쉽게 글루건이나 본드를 쓸 수도 있지만 번거롭더라도 실이나 끈으로 엮어 주세요. 나뭇가지도 숨을 쉬어야 해요 … 필요해서 만들어 쓰는 물건은 만들면서도 만들고 나서도 참 기분이 좋아요 … 유리병 주머니는 작업실 겸 가게 할 때 재활용 수업으로 처음 만들었어요. 사과주스를 담았던 호리호리한 병이라 그냥 쓰기에도 예뻤지만 이야기를 넣고 싶었어요 ..  (66, 70, 77, 84, 107쪽)



  바느질은 언제나 손바느질입니다. 손이 없으면 바느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바느질이 손바느질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글쓰기가 손글 아닌 기계글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에는 빨래가 손빨래 아닌 기계빨래이기 일쑤입니다. 밥 또한 손으로 짓는 손밥이 아니라 기계로 짓는 기계밥이거나 전화로 시켜서 먹는 바깥밥이기 일쑤입니다. 가게에서 사다 먹는 공장밥까지 있어요.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떤 옷일까 생각해 봅니다. 손으로 알뜰살뜰 지은 ‘손옷’일까요, 아니면 기계로 지은 ‘기계옷’일까요, 아니면 공장에서 찍은 ‘공장옷’일까요.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떤 사람 손길이 탔을까요. 어떤 사람이 어떤 손빛으로 어루만진 옷을 입으면서 살아가는가요.


  바느질을 하는 까닭은 살림을 가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느질을 하는 마음은 살림을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밥을 지을 적에도, 흙을 보살필 적에도, 아이와 살아갈 적에도, 또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를 적에도, 또 자전거를 타거나 마실을 다닐 적에도, 우리들은 삶을 가꾸고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 느리게 / 한 땀 두 땀 // 빛깔 고르고 / 바늘땀 더하는 재미 // 손꽃 핀다 … 다림질한 가방을 한지에 싼다. / 바늘땀을 넣는다. / 꽃으로 여민다 ..  (17, 97쪽)



  《처음 손바느질》은 바느질을 누구나 집에서 손쉽게 즐기는 길을 보여줍니다. 나 스스로 내 옷가지를 누리고, 내 곁님과 살붙이한테 우리 옷가지를 나누며, 동무랑 이웃하고도 서로 옷가지를 주고받는 웃음을 스스로 짓도록 도와줍니다. 《처음 손바느질》은 서로 오붓하게 나누면 기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느질을 잘 하는 법보다는 바느질을 하는 즐거움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 엄마 시집 오실 때 외할머니께서 주셨다는 실패. 가만가만 가져다가 살몃살몃 담는다. 빨간 실패에는 이제 바로 감은 실, 까만 실패에는 손때 묻은 옛날 시침실.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니 엄마가 옆에서 “너 가져다 쓸래?” 하신다. 잠깐 탐이 났다가 “아니요.” 한다. 그대로 엄마 곁에서 할머니 곁 잇고 엄마 결이 스미기를 바라면서 ..  (167쪽)




  글을 쓰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작가가 되려고 글을 쓸까요? 책을 내려고 글을 쓰나요? 아마 이런 까닭 때문에 글을 쓰는 분도 있으리라 느껴요. 그렇지만, 나는 즐겁고 싶어 글을 쓰고, 이웃한테 즐거운 빛을 노래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맛있게 먹으려고 밥을 지을 테지요. 그렇지만, 맛 하나로만 밥을 짓지는 않아요.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기운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은 꿈을 담아 밥을 짓습니다. 이 밥 한 그릇으로 고운 숨결을 북돋우면 얼마나 예쁠까 하고 생각하며 밥을 짓습니다.


  마실을 다닐 적에도, 이웃을 만날 적에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집을 물끄러미 바라볼 적에도, 나비 날갯짓과 잠자리 춤사위를 지켜볼 적에도, 늘 같은 마음입니다. 내 손에서는 손빛이 우러나오기를 바랍니다. 내 눈에서는 눈빛이 해맑기를 바랍니다. 내가 쓰는 글은 글빛이 밝기를 바랍니다. 내가 읽는 책은 책빛이 따스하기를 바랍니다. 이럭저럭 살림을 꾸릴 때에는 살림빛이 넉넉하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사랑빛을 나누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삶은 삶빛이 아리땁게 드리우기를 바라고, 노래 한 가락은 노래빛이 눈부시기를 바라요. 


  바느질을 하는 손마다 손빛이 손꽃과 같이 새롭게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글 한 줄은 글빛이 밝으면서 글꽃이 되고, 이야기 한 타래는 이야기빛이 푸근하면서 이야기꽃이 됩니다. 사랑은 사랑빛이 퍼지면서 사랑꽃으로 피어납니다. 삶은 삶빛이 자라면서 삶꽃으로 피어납니다.


  바느질을 하는 손을 느껴요. 스스로 손을 움직이면서 이 손길로 쓰다듬고 보살피는 이웃을 생각해요. 내 손은 너를 어루만집니다. 네 손은 나를 어루만집니다. 서로서로 어루만지고, 스스로 어루만집니다. 어머니 손도 할매 손도, 아버지 손도 할배 손도, 아이 손도 이웃 손도, 언제나 약손이요 사랑손이며 꿈손입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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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 - 물고기가 사라진 강의 부활에 인생을 건 남자 이야기
야마사키 미쓰아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환경책 읽기 61



샘터를 스스로 버리는 사람

― 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

 야마사키 미쓰아키 글

 이정환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2013.5.10.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시골마을에는 샘터와 빨래터가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마을 어귀에 있고, 하나는 마을 안쪽에 있어요. 마을 어귀에 있는 샘터와 빨래터는 제가 아이들하고 달마다 두 차례씩 치웁니다. 이제 시골마을에서도 샘터에서 물을 안 긷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안 하니, 늘 물이끼가 잔뜩 끼거든요.


  아이들은 샘터에서 물을 마시다가 발을 담가 참방참방 놉니다.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제가 신나게 걷어내고 바닥을 벗겨 미끄럽지 않게 해 놓으면, 두 아이는 이내 빨래터로 옮겨서 한참 물놀이를 즐깁니다. 한여름에도 차갑다 싶도록 흐르는 물줄기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습니다. 다른 곳 물은 다 얼어도 샘터와 빨래터에서는 물이 얼지 않아요.



.. “여보, 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을까요?”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곳에는 아무거나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 골프장이나 획일화된 테마파크는 지역의 진흥과 연결되지 못했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만 낳았다 … 오물 속으로 잠수를 하여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생물을 구하면 우리 인간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  (39, 49, 68쪽)



  흐르는 물은 얼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은 더럽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은 언제나 맑은 빛입니다. 흐르는 물에는 온갖 목숨이 깃들어 함께 살아갑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쉽게 업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이내 더러워지고 맙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맑은 빛을 띠지 못합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에는 아무런 목숨이 깃들지 못합니다.


  바람이 흘러야 싱그럽습니다. 흐르지 못하는 바람은 싱그럽지 않습니다. 마을에서도 들에서도 건물에서도 바람은 흘러야 합니다. 지하상가나 지하철에서도 바람은 늘 흘러야 해요. 고인 바람에서는 누구라도 숨이 막혀요. 바람이 꽉 막혀서 옴쭉달짝 못한다면 사람도 다른 목숨도 갑갑해요.


  그러니까, 물과 바람 못지않게 모든 것이 흘러야 싱그럽습니다. 돈도 흘러야 하고 사랑도 흘러야 합니다. 이야기도 흘러야 하며 지식과 책도 흘러야 합니다. 흙은 빗물 따라 냇물로 스며들어 흐르다가 모래밭을 이루거나 갯벌을 이룹니다. 뭍에서 흙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더라도, 숲과 들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가 가랑잎을 내놓고 시든 풀줄기를 내놓기에 새 흙이 자꾸 생겨요. 풀벌레가 죽고 크고작은 짐승이 죽으면서 주검 또한 새로운 흙으로 거듭납니다.


  흐르는 삶이 있는 지구별입니다. 흐르는 사랑으로 아름다운 지구별입니다.



.. 가장 무서운 것은 조사자의 그릇된 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국가가 공식적으로 ‘어류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다 …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세재 회사를 고발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빨래를 할 때, 때가 잘 빠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거품이 잘 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누나 합성세제에서 냄새가 오랫동안 지속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69, 136쪽)



  지구별에 평화 아닌 전쟁이 감도는 까닭은 흐름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국경이라는 울타리를 세워서 흐름을 막으니 전쟁이 터집니다. 지구별이 모두 같은 나라라면 전쟁이 터져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울타리가 없다면 군인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 전쟁무기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웃이 배고플 적에 도우면서 돈을 받을 일이 없어요. 아픈 이웃을 보살피면서 돈을 받을 일이 없어요. 이웃한테 찾아가면서 맛난 밥을 잔뜩 챙깁니다. 이웃이 지내는 집을 고치려고 신나게 찾아갑니다. 이웃한테 책을 읽어 줍니다. 이웃한테 멋진 그림을 거저로 선물합니다. 이웃끼리 사랑스레 이야기꽃을 피우고, 이웃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혼인을 하고 제금을 나기도 하면서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 국토교통성을 찾아가 댐 철거와 관련된 문제를 상담해 보면 틀에 박힌 듯 이런 말이 돌아온다. “말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물고기와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물고기와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연과 관련된 문제를 양자택일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오염이나 공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니까 … 실제로는 아무리 더러운 강이라고 해도 강은 강이다. 그곳에는 반드시 생명이 살고 있다. 불과 다섯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생명은 생명이다 ..  (149, 159쪽)



  야마사키 미쓰아키 님이 쓴 《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알에이치코리아,2013)라는 책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늘 즐겁게 사귀던 냇물을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합니다. 현대문명과 도시문명이 망가뜨리고 만 냇물을 되살리려고 온힘을 쏟습니다. 그러나, 이녁이 기울이는 땀방울은 온갖 행정과 관청과 관료와 제도에 가로막힙니다. 그래도, 야마사키 미쓰아키 님은 고개를 꺾지 않아요. 냇물이 좋거든요. 냇물이 흐르기를 바라거든요. 냇물이 흐르면서 삶이 흐르고 사랑이 흐르는 한편, 꿈과 이야기가 흐르기를 바라거든요.


  작은 바람은 어느새 꿈으로 자랍니다. 꿈은 시나브로 빛이 됩니다. 빛은 다시 이녁 가슴으로 스며들고, 이녁 가슴에 스며든 빛은 고운 노래가 되어 흐릅니다.


  이제 한국에서 샘터나 빨래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샘터나 빨래터가 있어도 따로 치우는 사람이 없으면 물이끼로 뒤덮여 제구실을 못합니다. 싱그러이 흐르는 샘물을 버리고 댐을 지어서 수돗물을 마시려는 한국사람입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맑은 물과 바람이 아닌, 정수기와 화학약품에 길든 물과 바람으로 목숨만 건사하려는 흐름이 됩니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요? 사람들 스스로 이 대목을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돈을 잘 버는 길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누리는 길을 저마다 즐겁게 찾아나설 수 있기를 빕니다.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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