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 - 농촌 위기와 시인 김남주 이야기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5
김덕종.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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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4



‘풀 열매’를 먹으면서 사는 이웃

― 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

 김덕종·손석춘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12.7.



  밥을 짓습니다. 함께 먹을 밥을 짓습니다. 밥은 쌀과 보리 같은 곡식으로 짓습니다. 곡식은 ‘穀食’이라는 한자로 적고, ‘곡물(穀物)’과 뜻이 같은 낱말입니다. 이 두 가지 낱말은 ‘풀 열매’, 그러니까 ‘풀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는 ‘곡식’이라는 한자를 쓰기보다는 ‘식량(食糧)’이라는 한자를 쓰는 사람이 많은데, ‘식량’은 ‘양식(糧食)’과 같은 낱말이고, 이 한자말은 ‘먹을거리’를 가리킵니다. 아무래도 ‘먹을거리’라 ‘식량·양식’이라는 낱말은 ‘풀 열매’만 가리키지 않고 ‘고기’도 가리킬 테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식량 주권’이나 ‘식량 자급’이라 할 적에는 ‘고기’는 따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땅을 일구어 거두는 ‘풀 열매’만 헤아립니다.



.. “누가 이야기해 주지도 않고, 어디서 배우지도 않았기에 쌀 보기를 쉽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야 너희들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냐?’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합니다. 애들이 시골에서만 태어났지 쌀농사 짓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당연하지요. 문제는 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식량을 사올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든 식량 자급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 “민주당 정권 시절에 농업정책 어땠습니까? 쌀 수입, 한·칠레FTA, 한·미FTA 다 했잖아요.” ..  (11, 14, 78쪽)



  지구별 모든 겨레는 제 먹을거리를 스스로 일구어 살았습니다. 지구별 모든 나라는 제 밥을 제 손으로 지어서 먹었습니다. 먹을거리를 다른 나라에서 사들인 지구별이 된 지 얼마 안 됩니다. 풀 열매를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인 지구별이 된 지 고작 백 해라고 할 만합니다. 지난 백 해 사이에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는 제 삶을 잊거나 잃습니다. 지난 백 해 사이에 한국을 비롯해 지구별 모든 나라는 스스로 흙을 안 가꾸거나 안 돌봅니다.


  먹을거리를 스스로 짓지 않을 적에는 손수 흙을 돌볼 일이 없습니다. 남이 거둔 풀 열매를 먹는 사람은 제 땅에서 나는 풀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남이 거두는 풀 열매만 돈을 치러서 사다가 먹는 사람은, 흙이 어떠한지 살피지 않으며, 땅을 살리거나 북돋우는 길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회와 정치와 문화와 교육을 돌아본다면, 농림부라고 하는 행정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가운데 손수 흙을 가꾸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적어도 텃밭이나마 가꾸는 농림부 공무원이 있을까요? 손수 텃밭을 일구는 농림부 장관이나 차관은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요?


  손수 흙을 가꾸지 않는 사람은 시골일(농사)을 알 수 없습니다. 손수 흙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시골지기(농사꾼)가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따라 흙을 어떻게 건사하고 가꾸어 풀 열매를 맺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농업 정책’은 흙을 모르고 풀 열매를 모르며 시골조차 모르는 지식인끼리 책상물림으로 꾀할 뿐입니다. 흙을 살리거나 풀 열매를 가꾸거나 시골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없는 농업 정책만 있습니다.



.. “민주가 아닌 것은 독재입니다.” … “쌀독에 쌀이 떨어져 봐요. 이웃집에 빌리러 가야 합니다. 구걸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종이 됩니다.” … “20년 동안 쌀값은 하나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 개방 농정 때문입니다. 농민들이 봤을 때는 수입 개방에 따른 아무런 대책 없이 문을 열어버린 거지요. 농자재 값도 천정부지로 뛰었어요. 농약 값도 많이 올랐습니다. 비료 값은 비료 만드는 회사들끼리 담합해서 올리고.” ..  (11, 15, 16쪽)



  중앙정부는 ‘농협’이라는 기관을 세웁니다. 농협이라는 기관은 시골지기가 거둔 풀 열매를 사들여서 도시사람한테 웃돈을 얹어 파는 일을 합니다. 샛장수라 할 농협인데, 농협은 해마다 살림을 키우며 건물도 높다랗게 지을 뿐 아니라, 농협 공무원은 일삯을 꽤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골지기는 갈수록 고단하고 힘듭니다. 농협은 살림을 불리고 돈을 늘리지만, 시골에서 시골일을 하려는 사람은 나날이 줄기만 합니다.


  가만히 보면, 농협 공무원 가운데 텃밭이나마 일구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농협 공무원 가운데 손수 논을 짓는 사람도 아주 드뭅니다.


  시골일은 ‘아홉 시 땡’으로 열고 ‘여섯 시 땡’으로 닫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으레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시골사람한테 아침 아홉 시는 한창 일할 때이거나 새벽일이나 아침일을 마치고서 살짝 숨을 돌리면서 쉬는 때입니다.


  시골사람한테는 공휴일이나 일요일이나 주말이 없습니다. 풀은 날마다 자랍니다. 공휴일이기에 풀이 안 자라지 않습니다. 나락은 날마다 익습니다. 가을이 되어 주말에는 안 익는 나락이란 없습니다. 일요일이기에 비가 안 오지 않습니다. 비는 때가 되면 내립니다.


  시골사람은 달력이나 시계를 보며 일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바람과 해님과 비와 흙을 살피면서 일합니다. 시골과 도시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먹는 ‘풀 열매’인 ‘곡식·양식·먹을거리’는 한 해 내내 흐르는 바람과 해와 비와 눈과 흙이 어우러진 숨결입니다.



.. “언론도 정부 당국자의 이야기에만 관심 있지 직접 피해자인 농민들 이야기나 국민들이 쌀 개방과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이 신문이나 저 신문이나 받아쓰기나 하고 말입니다. 공중파 방송들도 마찬가지예요. 소위 진보언론도 기사 한두 번 쓰다가 꼬리 감추듯 사라져버립니다 … 왜 싸웠는지,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별 관심이 없습디다.” … “82년 말부터 전두환은 동생 전경환을 새마을운동본부 본부장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 친구가 소 수입 전면에 나서서 왕창 수입을 해옵니다. 정부 정책은 농민들에게 100만 원, 200만 원씩 소 입식 자금을 푸는 거였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서너 사람이 입식 자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10만 원 20만 원에 수입한 송아지를 70만 원 100만 원씩 받고 농민들에게 크게 선심이나 쓰듯이 판 셈이지요 … 전두환 형제가 짜고 농민들을 사냥한 겁니다.” ..  (20, 63쪽)



  김덕종 님과 손석춘 님이 나눈 생각을 그러모은 조그마한 이야기꾸러미 《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김덕종 님은 전라남도 해남에서 흙을 일구는 아저씨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덕종 님한테 작은형은 김남주 시인이라고 합니다. 조그마한 이야기꾸러미 《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를 읽으면, 시골을 지키면서 흙을 가꾸는 이야기에다가, 김남주 시인이 누린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 이야기를 살몃살몃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스스로 되고자 했으나 끝내 되지 못한 ‘시골지기 삶’을 꾸리는 김덕종 님 삶을 헤아리면서, 우리가 삶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일구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톺아볼 만합니다.



.. “새마을운동 없었으면 농민들이 계속 힘들게 살았을까요? 우리나라 농민들 엄청 부지런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합니다. 새마을운동 없었어도 그 성실함으로 충분히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지붕 개량하고 길 내고 해서 빚으로 남았습니다 … 농촌 젊은이들은 견디다 못해 서울로 식모살이 가거나 시커먼 공장 굴뚝에 처박혀 저임금으로 최소한의 사람 대접도 못 받고 살았습니다.” … “새마을운동 한답시고 쉬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북 장구 치면서 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 농민들은 허리도 못 펴고 일했습니다. 쉴 수 있는, 놀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지요.” ..  (70, 71쪽)



  김덕종 님은 “학교보다는 동네에서 아이들과 딱지치기 구슬치기 하는 게 더 신이 나고 재미있었습니다. 학교에선 사실 맘껏 놀 수 없잖아요(33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동네에서 흙을 밟으면서 놀던 아이들은 흙내음과 함께 씩씩하게 자랍니다. 마을에서 풀을 뜯으면서 놀던 아이들은 풀빛과 함께 튼튼하게 자랍니다. 제 보금자리에서 어버이 일손을 거들면서 살림을 꾸리던 아이들은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먹으면서 곱게 자랍니다.


  그런데 지난 백 해 사이에 지구별 모든 나라는 시골이 무너집니다. 지난 백 해 사이에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들 넋와 얼이 흔들립니다.


  손수 먹을거리를 짓지 않으니 생각이 딱딱하거나 메마릅니다. 손수 흙을 일구지 않으니 사랑이 크지 못합니다. 손수 풀을 뜯거나 나무를 심지 않으니 꿈이 퍼지지 않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삶을 손수 일구는 사람은 다른 이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삶을 손수 짓는 사람은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삶을 손수 가꾸는 사람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시골을 떠난 이들이 도시를 세우면서 전쟁무기를 만들고, 정치권력을 세우며, 종교집단을 거느리고, 노예와 식민지를 늘립니다. 시골을 등진 이들이 도시를 키우면서 계급을 세우고, 신분을 가르며, 갖가지 차별을 일삼습니다.


  시골사람은 학교를 안 다녔어도 이웃사랑을 했고,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으로 마을살이를 북돋았습니다. 시골사람은 책을 모르고 글을 안 배웠어도 서로 돕고 아끼면서 따사로운 하루를 지었습니다.


  도시사람은 학교를 다니고 책을 읽으며 종교 경전이 읊는 대로 예배당에서 비손을 올려도, 막상 이웃사랑이나 두레나 품앗이나 울력하고는 동떨어집니다. 배운 사람들이 전쟁무기를 만들고, 배운 사람들이 차별을 일삼으며, 배운 사람들이 갖가지 부정부패를 저지릅니다.


  손석춘 님은 “이 땅의 농민은 지난 120년 동안, 아니 지난 5000년 내내 단 한 번도 자신들을 위한 정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주들의 권력인 왕조들과 일본제국주의는 물론, 해방 후 지금까지의 모든 정권은 농민을 수탈 대상 또는 기껏해야 ‘표밭’으로 삼았지요. 헌법이 명문화한 ‘주권자’로서 농민을 진심으로 대한 정권이 과연 있었던가요(112쪽).” 하고 묻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세계 역사에서 ‘도시’는 언제나 죽음 구렁텅이로 내달립니다. 세계 문화에서 ‘도시’는 늘 전쟁과 노예와 식민지 굴레에 갇힙니다.



.. “아버지는 고무신이 닳는 것이 아까워 논밭에 가다가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다가 누구라도 눈에 띄면 창피스러워서 얼른 신고 그랬다는 겁니다.” ..  (26쪽)



  우리는 모두 ‘풀 열매’를 먹는 이웃입니다. 나와 너는 풀이 맺는 열매를 나누어 먹으면서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동무입니다. 서로서로 풀 한 포기 심고 풀줄기를 쓰다듬으면서 풀노래를 부를 적에 이 땅이 되살아납니다. 다 같이 나물 먹고 남새 심으며 풀꽃동무가 될 적에 아름다운 나라가 됩니다. 손수 흙을 일구지 않는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기자와 학자와 지식인과 작가와 의사와 교사와 변호사와 공무원 들은 도시에서 아스팔트를 파먹으라고 할 노릇입니다. 생각과 뜻과 사랑과 믿음을 키우고 싶은 이라면, 씩씩하게 도시를 박차고 시골로 가서 조용히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10퍼센트만 넘어도 정치는 바뀝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20퍼센트를 넘으면 사회는 놀랍도록 바뀝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30퍼센트를 넘고 40퍼센트를 넘으면 입시지옥 따위는 발을 붙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군대와 경찰 모두 사라지면서 참다운 평화가 이 나라에 깃듭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50퍼센트를 넘으면 저절로 남북이 하나가 될 테고,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60퍼센트를 넘고 70퍼센트에 이르면 돈이 사라지면서 가난과 굶주림 모두 사라집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80퍼센트를 넘으면 지구별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모든 사람이 자급자족을 하면 이 지구별에는 어떤 기운이 넘칠까요?


  내 밥을 내가 손수 길러서 먹는다면, 어느 누구도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 따위는 안 씁니다. 내 밥을 내가 손수 지어서 먹으면, 어느 누구도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책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날마다 노래와 웃음과 춤과 이야기가 넘치는 잔치마당이 됩니다. 삶은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4347.12.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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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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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68



신문·방송 끊어야 나라를 바꾼다

―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글

 고문영 옮김

 그물코 펴냄, 2002.3.5



  이야기책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그물코,2002)는 지구별 사람들이 하루 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는가를 돌아보면서 ‘쓰레기’를 건드립니다. 지구별 사람들이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는지, 아니면 지구별 사람들 스스로 지구별을 망가뜨리거나 어지럽히는지 살핍니다.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는 커피·신문·티셔츠·신발·자전거와 자동차·컴퓨터·햄버거·감자 튀김·콜라 이렇게 아홉 가지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마주할 만하다 싶은 아홉 가지가 지구별을 어떻게 흔드는지 차근차근 짚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일하거나 노는 여느 사람들이 하루에 쓴다고 하는 ‘지구 자원 54킬로그램’과 얽힌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서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지구 자원을 날마다 54킬로그램씩 쓴다면, 지구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54킬로그램에 이르는 지구 자원은 날마다 새로운 쓰레기로 거듭날까요, 아니면 이러한 숫자를 깨거나 바꿀 수 있을까요.



.. 송아지가 먹은 500그램의 사료는 100그램 정도의 살코기 조직으로 변한다 … 미국의 가축들은 미국 내 옥수수 생산량의 60퍼센트를 소비하며, 그것은 전세계 옥수수 생산량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 1999년에 한국에서는 부족해서 수입된 물량을 포함해서 옥수수는 75퍼센트를, 콩은 70퍼센트를, 밀은 50퍼센트를 사료용으로 소비했다 … 햄버거용 고기 100 그램을 생산하려면 2천 리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 … 또한 100그램 정도의 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었기 때문에 구보 씨 역시 그 무게의 다섯 배에 달하는 표토의 상실에 기여하게 되었다 ..  (95∼99쪽)



  예부터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든 ‘쓰레기’란 없습니다. 쓰레기란 예부터 있을 수 없습니다. 쓰고 남는다든지, 쓰다가 더 못 쓸 만한 마병이 된다면, 이러한 것은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를테면 불쏘시개나 거름이 됩니다.


  도시가 생기면서 쓰레기가 함께 생깁니다. 도시가 커지면서 쓰레기가 함께 늘어납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쓰레기도 함께 북적거립니다. 더욱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치다 보니 집을 짓거나 길을 내거나 건물을 올릴 터가 모자라, 넘치는 쓰레기를 둘 길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생기는 쓰레기를 도시에서 건사하지 못합니다. 도시는 시골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어야 하는데, 시골에서 얻은 밥과 옷과 집을 쓰레기로 바꾸어 시골로 보냅니다.


  도시에서는 스스로 전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시골에 세운 커다란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다른 시골에 송전탑을 엄청나게 때려박아서 도시로 전기를 끌어들입니다. 도시에서는 물건을 손수 만들지 못합니다. 시골에 지은 수많은 공장에서 온갖 물건을 만들어, 다른 시골에 깐 고속도로를 거쳐 도시로 온갖 물건을 실어 나릅니다.


  도시가 있으니 쓰레기가 있습니다. 도시 때문에 쓰레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사람이 늘고 시골사람이 줄면서,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닐과 비료 따위를 마구마구 퍼붓습니다. 쓰레기나라 도시는 쓰레기나라 시골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 이웃들과 신문을 같이 구독하라 … 직장 또는 모임에서 동료들과 공동으로 신문을 구독해서 돌려읽어라 … 신문을 도서관에서 읽어라 … 신문을 매일 읽지 않는다면 정기 구독하지 말아라 … 소비자로서 신문사들이 재생 용지를 사용하도록 압력을 넣어라 … 신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와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읽는 대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더 관심을 기울여라 ..  (35쪽)



  도시에서는 ‘음식물쓰레기’입니다. 살림집이나 밥집에서 밥을 지으면서 나오는 찌꺼기를 둘 흙땅이 없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모두 ‘음식물쓰레기’입니다. 도시에서는 흙땅도 없지만, 소나 돼지나 개를 흙마당이나 흙땅에서 키우지 못하니, 밥찌꺼기라든지 남은 밥을 집짐승한테 주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개를 키우는 이들 가운데 개한테 ‘남은 밥’을 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게다가, 도시에서 키우는 개가 누는 똥오줌은 어떻게 하는가요. 사람이 누는 똥오줌조차 거름으로 삼지 못하는 얼거리이니, 도시는 온통 쓰레기밭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는 신문과 방송도 쓰레기입니다. 날마다 새로 찍는다는 종이신문은 어떤 이야기를 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날마다 수십만이나 수백만 부씩 찍는다는 신문은 ‘사람을 살리거나 사랑하거나 아끼는 이야기’를 다루는가요? 아니면 지저분한 정치다툼 이야기를 다루는가요? 더욱이, 신문은 ‘기사’보다 ‘광고’가 훨씬 많습니다. 광고가 훨씬 많은 신문에 나오는 광고는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써서 더 많이 쓰레기를 만들라’는 길만 밝힙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흐르는 방송은 신문과 엇비슷합니다. 방송도 광고투성이입니다. 방송에 나오는 광고는 신문 못지않게 ‘소비 사회’를 부추깁니다. 더 쓰고 더 사고 더 버리고 다시 쓰고 다시 버리라는 말을 끝없이 외치는 방송 광고입니다. 도시에 살며 신문과 방송을 가까이하면 가까이할수록, 쓰레기를 더 만들고 쓰레기를 더 버리면서 아름다운 삶과는 등지고 맙니다.


  가만히 보면, 시골사람은 신문을 거의 안 읽습니다. 아니, 시골에서 신문을 받아서 읽는 여느 살림집은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시골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신문을 날라다 주지도 않아요. 그도 그럴 까닭이, 신문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도시 이야기’뿐입니다. 도시에 있는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예술·스포츠 따위를 다루는 신문입니다. 시골에 있는 숲이나 들이나 바다나 멧골이나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흙이나 햇볕이나 빗물을 다루는 신문은 없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시골 이야기는 굳이 신문으로 안 다룰 만합니다. 시골에서는 눈을 들어 둘레를 바라보면 모두 ‘아름다운 숨결’이니까요.


  요새는 시골 할매와 할배도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새소식을 보지만, 이 두 가지 빼고 시골사람이 볼 만한 방송도 없는데다가, 한창 바쁜 일철에는 아무것도 안 봅니다. 신문도 방송도 오직 도시사람 입맛에 맞추어 도시 물질문명을 키워서 쓰레기를 신나게 만드는 데에 얽매입니다.



.. 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몸을 따뜻하게(또는 차게) 만드는 데 애써라 … 좋은 동료는 친한 사람들이 대형 자동차를 몰도록 권하지 않는다 … 구보 씨는 세계를 자신의 힘만으로 바꿀 수 없지만, 오늘 그가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에 출근한 것처럼 구보 씨가 하는 자그마한 일들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  (46, 77, 124쪽)



  신문과 방송을 끊어야 나라가 삽니다. 쓰레기 광고를 잔뜩 싣거나 다루는 신문과 방송을 없애야 나라가 삽니다.


  신문을 덮어야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방송을 꺼야 동무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손수 짓고 길어올린 이야기를 나눌 노릇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남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삶터에서 손수 가꾸고 지은 꿈과 사랑을 주고받을 노릇입니다.



.. 문제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물건을 소비할 때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먼저 물건들의 이면에 깔려 있는 삶의 과정들을 상상해 보라. 이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적게 소비하게 될 것이다 ..  (129쪽)



  자동차를 타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몰아야 할 적에 즐겁게 몰면 됩니다. 쳇바퀴를 도는 톱니바퀴가 되듯이 자동차를 몰면, 자동차로서도 안 좋고 나한테도 안 좋습니다.


  콜라나 감자튀김이 좋거나 나쁠 구석은 없습니다. 먹고 싶을 적에 즐겁게 먹으면 됩니다. 이러면서, 마실거리나 먹을거리를 손수 이 땅에서 씨앗을 심어 기른 뒤 부엌에서 손수 지지고 볶고 무치고 삶아서 오순도순 한솥밥을 누리면 됩니다.


  도시사람도 텃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도시사람도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도시사람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파트로 가는 삶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마당과 텃밭 있는 집’을 짓거나 얻어서 살겠다는 생각을 키워야 합니다. 내 집을 내가 손수 짓겠다는 꿈을 키워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가꾸겠다는 사랑을 북돋아야 합니다.


  밭 한 뙈기를 일구지 않으면서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생채식을 누리겠다고 말하면, 그예 쓰레기만 늘어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지 않으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면, 그저 쓰레기만 만듭니다.


  광고를 안 싣는 신문이나 방송이라면 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스포츠 따위를 하나도 안 다루는 신문이나 방송이라면 즐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안 다루면 무엇을 다루어야 할까요? 아주 쉽지요. 삶을 다루고, 사랑을 다루며, 꿈을 다루어야 합니다. 텃밭을 다루고, 나무를 다루며, 마당을 다루어야 합니다. 이웃과 동무를 다루고, 마을을 다루며, 숲과 골짜기와 바다를 다루어야 합니다. 목숨을 다루고, 풀벌레와 새를 다루며, 하늘과 구름과 땅과 해를 다루어야 합니다. 넋과 얼과 마음과 생각을 다루어야 합니다. 다루어야 할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 오늘날 지구별 신문과 방송이니, 이런 신문과 방송을 하루 빨리 끊고 없애며 걷어치워야, 보금자리도 마을도 나라도 지구별도 제대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4337.3.10.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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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전 잔혹史 -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고자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김성환.이승준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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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67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기는 어디에?

― 한국 원전 잔혹사

 김성환·이승준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4.11.21.



  원자폭탄이나 핵폭탄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들었습니다. 둘레 어른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원자폭탄이나 핵폭탄을 맞아서 무너졌다고 우리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원자폭탄과 핵폭탄이 서로 다른 폭탄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같은 폭탄을 다른 이름으로 가리킬 뿐인 줄 나중에 알아차렸습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앞으로 석탄과 석유가 바닥이 나면 전기를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 하고 물으면서 ‘원자력발전’이 우리 앞날에 빛이 될 수 있다고, 지하자원이 얼마 없는 한국은 앞으로 원자력발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때 나는 씩씩하게 담임 교사한테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원자력발전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그 ‘원자’하고 같나요?” 그때 담임 교사는 똑같은 ‘원자’이지만, 발전소는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면 방사능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방사능을 막느라 시멘트를 아주 두껍게 겹겹이 쌓아야 하고, 방사능이 사라져서 사람이 피해를 안 받기까지 수만 해나 수십만 해가 흐른다고 했습니다. 수력과 화력과 원자력을 놓고 ‘건설비’는 원자력이 가장 적게 든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때에도 나는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발전소가 문을 닫고 나서 ‘방사능 쓰레기’를 수만 해나 수십만 해를 시멘트더미에 꽁꽁 가두어야 하는데, 어떻게 ‘원자력발전소 건설비가 가장 싸다’고 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 대목을 담임 교사한테 다시 여쭈었지요. 이때 담임 교사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외워! 시험에는 이대로 나온다!” 하고 윽박지르고 끝냈습니다.



.. 원전이 정지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수원 관계자들에게 연락하면 그들은 “안전하게 자동정지됐고, 방사능 유출은 없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안전하다는 음성이 흘러나오는 전화기 저편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들이 난리 친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 지식경제부는 “원전 부품 납품업체 8개사 제출한 해외 품질 검증기관의 품질검증서 60건이 위조된 것을 외부 제보로 확인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수원의 품질관리 시스템 전반을 종합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8개월 전 고리원전 1호기 정전 은폐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  (15, 33쪽)



  얼추 서른 해쯤 지난 예전 이야기를 가만히 떠올리면서 되새깁니다. 원자력발전소는 값이 적게 들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으며, 우리한테 도움이 되거나 좋을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있어요.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서 나오는 ‘핵쓰레기’를 ‘핵무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는, ‘핵쓰레기’를 무기로 만들지 않더라도,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일 적에 이웃나라에 ‘핵쓰레기를 갖다가 버리’면, 핵쓰레기로도 무시무시한 ‘무기 구실’을 합니다.


  열 살 안팎이던 어린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라에서 굳이 원자력발전소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는 까닭은 이 나라에 군대가 있고 평화가 없으며 남북이 서로 갈라졌기 때문이로구나 싶었어요.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가 군대를 자꾸 키우기만 하니 한국 정부도 군대를 키우려는 뜻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자꾸 늘리려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 원전이 대표적인 혐오시설이 된 오늘날 소외 지역에만 들어서는 원전을 바라보며 해당 지역 주민들은 “차라리 서울 한복판에 원전을 지어라.” 하고 말한다. 전기는 도시에서 쓰면서 왜 자기들에게 위험을 전가하느냐는 얘기다 … 한수원이 국회에 제출한 2010∼2012년 사이에 집행한 마을발전기금 지급 내역을 보면, 원전 주변지역에 지급했어야 할 지원금 가운데 약 250억 원을 외부 업체에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  (72, 146쪽)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 뒤에는 ‘원자력발전소’ 이야기를 물을 만한 교사도 어른도 없습니다. 그저 입시지옥으로 내달리기만 해야 합니다. 이때에도 궁금한 이야기를 한 가지 품었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돈 + 핵쓰레기를 건사해야 하는 돈 + 송전탑을 세워야 하는 돈 +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마을에 주어야 하는 보상비’를 헤아리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돈이 되겠구나 싶더군요. 그러면, 이러한 돈으로 ‘공해가 안 생기고 쓰레기가 안 나오는 가장 깨끗한 전기’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으면 될 노릇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전기와 자원과 경제를 교과서로 가르칠 적에 ‘대안 미래 에너지’로 ‘햇볕·햇빛’ 두 가지를 살리는 길도 다루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햇볕·햇빛’ 두 가지 힘을 받아들이도록 집집마다 집열판이나 집광판을 두면,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되고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되며 보상비를 물어야 하지 않아요. 발전소와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 ‘강제수용’을 하느라 땅값에 돈을 들일 일도 없습니다. 발전소도 송전탑도 세우지 않으면, 이러한 것을 짓고 건사할 일꾼을 안 두어도 되니 인건비도 안 듭니다. 집집마다 집열판이나 집광판을 두면, 집집마다 손수 이러한 시설을 건사하면 됩니다.


  돈을 가장 적게 들이면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우면서 좋은 전기를 쓰는 길은, 집집마다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서 스스로 쓰고, 남은 전기는 이웃한테 나누어 주는 길입니다.



.. 원자력계 안에서는 특정 대학 출신 인사들이 원전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한양대 출신은 한수원에, 서울대 출신은 학계, 원자력 연구기관, 감시기관에 많은 수가 진출해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 … “원전 업무를 설명할 때 중앙제어실에서 모니터를 보는 장면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전력업체 직원이 일한다. 그러나 원자로에 직접 들어가서 하는 작업은 하청업체 몫이다. 피폭량 차이도 엄청나다”며 “당장 먹을 게 없는 사람들이 5∼10년 뒤 피폭 후유증을 감수한 채 일에 뛰어든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원전은 기본적으로 빈곤, 차별 구조 아래 존재한다”고 말했다 ..  (97, 130쪽)



  신문사 기자 두 사람 김성환·이승준 님이 쓴 《한국 원전 잔혹사》(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신문사 기자가 아니라면 취재를 하기 어려웠을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한수원이나 정부 관계자를 여느 사람이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원자력발전소와 얽힌 공문서나 실타래를 여느 사람이 알아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꽁꽁 감추니까요. 신문사 기자 두 사람은 ‘기자 자리’를 알뜰히 살려서 ‘한국 원자력잘전 발자취’를 차근차근 짚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 원자력발전 발자취를 짚으면서 붙이는 이름은 ‘잔혹사’입니다.


  한자말 ‘잔혹’은 “끔찍함”을 뜻합니다. 한국말로는 “끔찍함”이니까, 말 그대로 한국 원자력발전은 끔찍하거나 무시무시하거나 무서운 길을 걸어왔다는 소리입니다.



.. ‘세계 일류국가’들에서는 지금 탈핵의 바람이 불고 있다 … 원자력의 경제성에 핵연료 폐기물 처리 비용, 폐로 비용 등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 적절히 반영돼 있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원전의 전기를 실어 나를 대규모 송전선·송전탑이 번번이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 원전 1기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2조 5000억∼3조 원이다 … 사용후 핵연료 처리도 원전에 잠복해 있는 비용이다. 일본원자력위원회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을 185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처분 비용을 추정하면 약 72조 원 수준이다 ..  (156, 170, 202쪽)



  원자력발전소를 한 기 짓는 데에 3조 원이 든다고 하지만, 원자력발전소를 건사하려면 해마다 아주 어마어마한 돈이 듭니다.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면서 나오는 핵쓰레기를 건사해야 하는 돈도 아주 어마어마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게 돈을 써야 하는 원자력발전소입니다.


  아주 쉽게 생각해 보고 싶어요. 딱 1조 원을 들여서 ‘무한동력 전기’를 만들려고 한다면 ‘무한동력 전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한국에는 ‘테슬러’ 같은 과학자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양자물리학 원리를 살리는 길뿐 아니라, ‘우리 앞날을 밝힐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좋은 전기’를 만드는 길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전쟁무기를 모두 없앨 수 있기를 빕니다.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커다란 도시에서 전기를 아주 많이 씁니다만, ‘여느 사람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도 전기를 아주 많이 씁니다. 이를테면, 군대에서 전기를 아주 엄청나게 많이 씁니다. 2015년 국방예산은 37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군대는 전기만 많이 쓰지 않고, 전쟁무기를 만들고 돌보는 일이나 석유 때문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원자력발전, 그러니까 핵발전을 하려는 까닭도 전쟁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란다면, 우리가 이웃나라를 미워하는 길이 아니라 이웃나라와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으려 한다면, 전쟁무기와 군대와 핵발전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전쟁무기와 군대와 핵발전에 쏟아붓는, 아마 해마다 100조 원은 거뜬히 넘을 이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무서운’ 돈을 아주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우며 기쁘게 쓸 수 있습니다. 한 해 100조 원은 전쟁과 전쟁무기 따위에 쓸 일이 아니라, 평화와 평등과 인권과 복지와 교육과 문화에 써야 올바릅니다.


  전쟁무기와 군대가 없으면 ‘평화를 못 지킨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만, 전쟁무기와 군대가 없는 나라는 이웃나라에서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전쟁은 이웃나라 자원과 사람을 빼앗으려고 일으킵니다. 전쟁무기로 서로 잿더미가 된다면, 이웃나라로 쳐들어왔어도 ‘빼앗을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웃나라가 ‘전쟁무기 없는 아름다운 나라’로 쳐들어올 적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전쟁무기를 든 바보들은 얼이 빠지고 넋이 나가면서 스스로 전쟁무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능금밭을 돌보는 착한 사람을 죽이면, 군인은 능금밭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모르니 그저 굶어야 합니다. 논을 가꾸는 착한 사람을 죽이면, 군인은 논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모르니 그저 굶어야 합니다. 고기를 낚는 바닷사람을 죽이면, 군인은 배를 어떻게 몰고 고기낚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 그저 굶어야 합니다.


  전쟁무기 없대서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시골에는 군인도 경찰도 없어요. 그러나 시골에는 전쟁 걱정이 없지요. 탱크나 군인이 논밭을 짓밟고 지나가면 군인 스스로 밥을 굶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나라는 그 어떤 바보스러운 전쟁 미치광이라 하더라도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한국 정부가 부디 슬기로운 길을 제대로 깨달아 올바른 삶을 북돋우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1.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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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 - 민주주의가 강을 살린다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4
박창근.이원영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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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1



시멘트밭에 볍씨 심을 수 있니?

―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

 박창근·이원영

 철수와영희 펴냄, 2014.11.17.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넷째 권으로 나온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2014)는 아흔한 쪽짜리 조그마한 책입니다. 아흔한 쪽짜리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4대강 사업이 어떤 꿍꿍이로 태어났는지 읽을 수 있고, 4대강 사업을 일으킨 무리는 이명박 한 사람이 아니라 ‘토건 마피아’를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대목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박창근 님과 이원영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묶은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를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대통령 자리에 앉았고, 예전에 서울시장 자리에 앉기도 한 이명박이라고 하는 분은 ‘토건 마피아’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고.


  그러나, 대통령 한 사람이 토건 마피아이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척척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을 둘러싼 비서와 장관과 국회의원이 다 같이 토건 마피아입니다. 한나라당 사람들뿐 아니라 민주당 사람들도 똑같이 토건 마피아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적잖은 이들이 토목건축으로 밥벌이를 합니다. 대통령이나 정치꾼과 공무원 이런저런 사람들이 짜고 치는 토건 마피아 바보짓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이루는 토건 마피아 바보짓 가운데 하나가 4대강 사업입니다.



.. 우리나라는 강물을 직접 정수해서 먹는데 운하가 생기면 수질이 나빠지잖아요. 배가 왔다 갔다 하면서 생기는 오염 물질과 물을 막았을 때 생기는 문제점 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  (청계천은) 인공 물길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서울 시민들은 도심에 생긴 휴식 공간을 무척 만족스러워합니다 … 서울이라는 도시의 환경이 워낙에 척박하다 보니 인공 자연이라도 시민들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모양이에요 … 우리 국민들도 이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러니까 정부가 자꾸 환상을 주입하잖아요. 마치 대규모 토목사업 하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로 봅니다. 동네 땅값도 오르고 일자리도 창출되고 얼마나 좋으냐, 하는 생각을 해요. 부자 만들어 준다는데 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 하지만 이것 역시 거짓임이 드러났지요. 오늘날 토목공사는 사람을 쓰지 않아요. 대부분 기계가 합니다 ..  (12, 46쪽)



  4대강 사업에 앞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새만금이 있습니다. 새만금에 앞서 무엇이 있었을까요? 시화호가 있습니다. 시화호에 앞서는, 또 시화호와 새만금 둘레에는, 그리고 4대강 사업 언저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라는 책에서도 다루지만, ‘하천 정비사업’이 있습니다. 서울을 둘러싼 신문과 방송이 온통 4대강 사업만 쳐다보면서 시끌벅적 떠들 적에, 서울을 벗어난 크고작은 시골에서는 ‘하천 정비사업’을 했습니다. 1킬로미터짜리 냇물바닥을 뒤집으면서 수십억 원을 쓰고, 백 미터 즈음 되는 골짜기바닥을 까뒤집으면서 수억 원을 씁니다. 이런 짓을 ‘하천 정비사업’과 ‘홍수 대비사업’ 같은 이름을 붙여서 벌입니다.


  신문과 방송은 수없이 취재를 하고 온갖 기사를 써서 4대강 이야기를 다룹니다. 신문과 방송은 4대강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기에도 자리가 모자라니 시골 이야기는 못 다룹니다. 지역신문에서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토목건설 사업 이야기를 못 다룹니다. 지역에서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토목건설 사업으로 서로서로 짬짜미를 이루면서 나눠먹기를 하거든요. 더군다나 시골에서 벌어지는 ‘하천 정비사업’을 취재하는 기자도 없고, 이런 사업을 제대로 살피거나 꼼꼼히 헤아리는 감사원 일꾼도 없습니다.



.. 이명박 씨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자 토목계가 들썩들썩합니다. 대형 국책사업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토목 쪽으로 흘러들게 생겼잖아요. 재벌들, 대기업들 이런 곳은 영혼이 없어요. 돈이 목적입니다. 강을 살리든 죽이든, 땅을 파든 덮든 일단 돈이 되면 뛰어듭니다 … 학계에서는 업체들의 입맛에 걸맞은 연구보도 결과를 내놓습니다. 경제 효과 얼마, 미래 성장 동력 어쩌고 하면서 말이지요. 정부도 여기에 호응합니다 … 매년 하천 정비사업에 3∼4조 원씩 들어가는데, 그 돈을 복지나 민생에 쓰면 얼마나 좋아요. 돈 들여서 자연을 훼손하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합니까 ..  (13∼14, 19, 34쪽)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토건 마피아’만 있지 않습니다.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기까지 ‘해양 마피아’는 거의 안 알려졌습니다. 요즈음 들어 하나둘 불거지는 ‘원전 마피아’도 있습니다. ‘마피아’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학벌과 연줄에 따라서 온갖 파벌이 있습니다. 어느 학교를 어느 해에 들어갔느냐를 놓고 온갖 줄대기를 해요. 어느 고장에서 어느 해에 태어났느냐를 놓고 갖가지 줄대기를 합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어느 스승을 섬겼느냐에 따라 수없는 줄대기가 태어납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 대학교를 마치지 않은 사람, 이름난 아무개하고 줄이 닿지 않는 사람, 가진 돈이 적은 사람, 얼굴이 못생긴 사람, 몸 한쪽이 아픈 사람, 시골에 사는 사람, 이도 저도 아닌 사람 들은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니, 한국 사회는 ‘돈·힘·이름’을 안 가진 사람이라든지, 시골내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높직하게 울타리를 쌓습니다. 함께 나누면서 함께 즐겁게 나아가는 나라가 아니라, 땅빼앗기를 하듯이 다투거나 싸우면서 밥그릇을 챙기는 나라입니다.


  4대강 사업과 토목 마피아 따위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런 바보스러운 한국 사회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 엉터리 짓거리요, 이 가운데 손꼽을 만한 바보짓입니다.



.. 우리의 강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옛 선조들의 그림에 보면 달빛 아래 굽이쳐 흐르는 강의 풍경도 나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멱을 감는 모습도 나옵니다 … 홍수가 나도 백사장은 늘 그 자리에 있어요. 이유는 어떤 지점에서 볼 때 쓸려나가는 만큼 다시 쌓이기 때문입니다 … 댐이 생기면 이 모든 게 불가능해집니다. 새로 유입되는 모래도 없고 쓸려나가는 양만큼 새로 채워 주지 못합니다 … 화강암 지대라서 모래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모래에는 자연 정수 능력이 있습니다. 화강암이 운모, 장석, 석영 이런 걸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운모와 장석은 그 안에 모공이 많아서 이물질을 걸러내요. 우리의 강이 스스로 물을 깨끗이 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겁니다 ..  (30, 31, 32쪽)



  토목 마피아는 어떻게 몰아낼 수 있을까요. 온갖 차별과 계급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갖가지 학벌과 연줄은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거짓스러운 생각을 치우고 제대로 된 꿈을 품을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이를테면, 서울에 있는 청계천 같은 엉터리 냇물을 걷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전기로 수돗물을 끌어들여서 흐르게 하는 바보짓이 아니라, 참말 냇물이 스스로 흐르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냇물이 흘러야 냇물이지, 수돗물을 전기로 끌어들려서 흘린 대서 냇물이 되지 않습니다. 모래바닥이어야 냇물이지 시멘트바닥은 냇물이 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수돗물을 먹더라도, 시골에서는 냇물과 골짝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는 도시에서도 수돗물이 아닌 냇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도시 터전을 확 뜯어고쳐야 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수돗물 사업을 하느라 들이는 돈은 얼마나 엄청날까요? 이 엄청난 돈을 ‘도시에서도 냇물과 골짝물을 싱그럽게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쓰면, 참말 도시에서도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댐을 짓고, 수도관을 묻고, 댐과 수도관을 관리하며, 정화시설을 돌리고,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쓰면서 수돗물을 먹는 오늘날 문명 사회예요. 그러나, 맑은 물이 아닌 터라 집집마다 가게마다 정수기를 달아서 씁니다.


  뭐 하는 짓일까요. 이렇게 엉뚱한 데에 돈을 쓰고 기계를 쓰며 기름을 쓰니, 냇물은 더 더러워집니다. 냇물이 더 더러워지니 다시 돈을 더 들여서 수돗물을 거르는 데에 엉뚱한 힘을 뺍니다.


  전기도 물과 똑같습니다. 집·가게·공장마다 자가발전을 하도록 했으면 진작에 모든 곳에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가장 깨끗한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송전탑도 발전소도 없이 얼마든지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한국전력이라는 회사를 꾸리는 돈, 한수원 같은 회사를 꾸리는 돈, 발전소를 짓고 꾸리는 돈, 석유와 가스를 사들이는 돈, 송전탑을 때려박는 돈, 이런 돈 저런 돈을 처음부터 자가발전과 무한동력을 만들어서 나누는 데에 썼으면, 아주 적은 돈으로 아주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었습니다.



..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 아무 생각이 없어 보여요. 이명박이 망쳐 놓은 걸 되돌릴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이 나쁜 방향으로 속도전을 전개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방향도 없고 속도도 없이 가만히 있는 거예요 …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수질 개선 효과가 겨우 이거냐는 세간의 비아냥거림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22조 원이나 들여가면서 확인한 거예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됩니다 … 〈조선일보〉만이라도 꼭 찍어서 그간의 왜곡 보도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하자는 겁니다. 4대강 관련해서 얼마나 극심한 왜곡·편파 보도가 있었는지 국민들도 알아야 하잖아요 … 저는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도 생각납니다. 한동안 4대강을 예찬하시더니 지금은 녹조가 가뭄 탓이고, 큰빗이끼벌레는 수질 정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하고 계세요. 참 심지가 곧으신 분이에요 ..  (45, 53, 59쪽)



  중앙정부가 전기와 물과 밥을 꽉 움켜쥡니다. 중앙정부가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를 꽉 휘어잡습니다. 중앙정부가 공무원을 꽉 옥죕니다. 중앙정부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놓고 경제개발과 무역에 목을 매답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사람들을 길들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왜 길들일까요? 시키는 대로 따르는 종이 되도록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길들면 어떻게 될까요? 전기나 물이 하루만 끊어져도, 아니 한 시간만 끊어져도, 아니 십 분만 끊어져도, 한국에 있는 모든 도시는 끔찍한 지옥이 됩니다. 한국 사회는 대외무역과 경제개발을 하지 않으면 모두 굶어죽는 얼거리가 되었습니다. 도시사람한테는 돈이 있을 테지만, 가게가 문을 안 열고 이웃나라에서 곡식과 남새와 열매와 고기를 사들이지 않으면, 고작 하루 만에 모두 굶어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아주 싸다 싶은 값’에 대형할인마트에서 물건을 살 수 있을 테지만, 대외무역이 끊어지면 ‘엄청난 바가지(인플레)’를 씌워서 모든 돈은 종잇조각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한국에서 도시사람은 거의 99%에 이르고, 시골사람은 고작 1%밖에 안 되는데, 밥을 어디에서 얻고, 물과 전기를 어디에서 얻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전기와 물과 밥을 자급자족이 되도록 손수 일구어 누리지 못하는 흐름으로 자꾸 나아가기만 한다면, 4대강 사업 같은 끔찍한 토목 마피아 바보짓은 또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4대강 사업만 나무란다고 해서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차윤정이라고 하는 지식장사꾼 몇몇 사람을 꾸짖는다고 해서 일을 덮을 수 있지 않습니다. ㅈㅈㄷ신문 같은 엉터리 종잇조각을 손가락질한다고 해서 일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을 고쳐야 하고,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 우리나라 관료들, 똑똑한 사람들이잖아요. 그 어렵다는 행정고시, 기술고시 합격해서 들어간 분들이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 텐데 말입니다. 노후도 보장되고 생계도 보장되는 좋은 직업인데 왜 그렇게 돈에 휘둘리는지 모르겠어요 … 지금은 비록 4대강 사업의 후유증으로 심하게 앓고 있지만 자정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자연과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 콘크리트 구조물들 사이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우리는 정말 자연을 정복한 걸까요? 오히려 현대인들은 자연을 그리워하잖아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도 죽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상식에 탐욕에 가려져 온 거예요. 어렵지 않습니다 ..  (64, 85, 86쪽)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를 덮으면 자동차가 다니기에는 좋습니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를 덮으면 씨앗이 자라지 못합니다. 1970년대부터 불어닥친 새마을운동 때문에, 시골에서는 ‘자급자족이요 쓰레기 없는 풀지붕’에서 ‘환경공해 석면(슬레트)지붕’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정부에서 돈을 대어 ‘환경공해 석면지붕 철거작업’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이나 방송에 거의 안 나옵니다. 아주 조용히 합니다.


  참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일까요. 참을 어떻게 알아보고 거짓을 어떻게 가려낼까요.


  생각해야 합니다. 콘크리트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콘크리트를 덮은 땅에서는 나락 한 톨조차 안 납니다. 이 땅 구석구석을 콘크리트로 덮어서 공장을 지어 뭔가를 뚝딱 만들면 돈을 번다지만, 돈은 있되 나락 한 톨을 손수 거두지 못하면, 우리는 ‘돈을 씹어먹으며 살 수 없’으니, 다 굶어죽어야 합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가장 맑은 물과 바람을 마실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하고, 가장 정갈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논밭과 들과 숲이 있어야 하며, 임대료 때문에 등허리가 휘지 않을 ‘마당 있는 집’을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합니다. 개발사업이든 경제개발이든 하고 싶다면,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룬 다음에 할 노릇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말해야 합니다. 시멘트밭에 볍씨를 심을 수 있니? 시멘트바닥에 물고기가 알을 낳을 수 있니? 시멘트숲에서 나무가 자랄 수 있니? 시멘트마을에서 아이들이 뛰놀 수 있니? 4347.11.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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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가의 열두 달
까렐 차뻭 지음, 홍유선 옮김, 요제프 차뻭 그림 / 맑은소리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41



시골에서 지내는 열두 달

― 원예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글

 홍유선 옮김

 맑은소리 펴냄, 2002.7.15.



  나는 카렐 차페크라는 사람을 잘 모릅니다. ‘로봇’이라는 말을 지었다 하고, 숱한 문학을 낳았다 하는데, 이도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이녁이 쓴 《원예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을 아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장르 문학’을 하고, 1900년대 첫무렵에 체코에서 민주와 평화를 지키려고 온힘을 다해 싸웠다고 하는 카렐 차페크라는 분이 쓴 《원예가의 열두 달》은 그리 안 알려진 책이지 싶습니다. 새책방에서 아주 쉽게 사라졌거든요.  



.. 최상품의 잔디씨에서 어떻게 이런 가시투성이의 잡초가 자라는 것일까. 바로 이 점이 자연의 신비다 … 1월의 식물이라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창유리에 피는 얼음꽃이 있다 … 얼음꽃은 부잣집보다 가난한 집에서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부잣집의 창문에는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 사나운 소리를 내며 세차게 퍼붓던 비가 그물을 끌어당기듯 갑자기 멈추면, 대지는 은빛으로 화려하며 쾌활해지고, 덤불 속에서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신나게 노래한다 ..  (10, 23, 104쪽)



  《원예가의 열두 달》은 열두 달로 한 해를 나누어 ‘원예가’라는 사람이 겪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은 ‘원예가’라는 사람을 내세워 이야기를 엮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쓴이’가 몸소 겪은 이야기에 살을 입혀 들려주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카렐 차페크 님이 텃밭이나 앞뜰이나 꽃밭을 일구면서 겪은 일에 ‘웃음’을 살포시 얹어서 지은 이야기로구나 싶어요.


  처음에는 신나게 밭을 일구어 온갖 남새를 얻는다고 해요. 그런데, 밭에서 얻은 남새에 이내 다들 시들해진다고 합니다. 날마다 똑같은 풀만 먹어야 하니 식구들이 진저리를 친다고 합니다. 이웃들도 똑같은 밭에서 똑같은 남새만 거두니 둘레에 선물할 곳도 없다고 합니다.


  밭을 일구면서 풀과 싸우는 이야기를 살짝 우스꽝스럽게 그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풀과 싸우더라도 이동안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고, 여름이 무르익는 동안 풀벌레와 개구리가 이루는 노래잔치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 당신이 이렇게 흙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 구즈베리와 서양까치밥나무 가지에 처음으로 작은 싹이 돋아난다. 나무에 싹이 돋은 것을 당신이 처음 보았을 때 봄은 이미 그곳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다 … 모든 거름들은 흙이 부드럽고 따뜻해지도록 영양을 공급해 주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흙에 이용할 수 있거나 이용할 수 없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 자연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새순과 꽃망울과 싹은 자연계의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  (11, 40, 69쪽)



  흙을 지으려면 눈앞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먹으면서 삶을 어떻게 지을 때에 즐거울까 하는 대목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나무도 심고 저 나무도 심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보금자리를 아름다운 숲으로 가꾸어서 언제나 즐겁게 철 따라 우리 몸을 살리는 열매를 얻을 만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무가 앞으로 어느 만큼 클는지 살피고, 이 나무를 나중에 아이들이 물려받아 기쁘게 누릴 수 있는 얼거리를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심은 나무는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지만, 오늘 우리보다도 우리 아이들한테 훨씬 사랑스럽고,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이 나중에 더욱 사랑스럽게 누립니다.


  나무 한 그루는 즈믄 해를 내다보고 심습니다. 나무 두 그루는 뒷날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지을 집을 톺아보면서 심습니다. 오백 해는 너끈히 버틸 튼튼한 집을 짓고 싶다면, 오백 살을 살아낼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삼백 해쯤 훌륭히 버틸 멋진 집을 짓고 싶다면, 삼백 살을 살아낼 나무를 심어야 해요.


  나무를 심고 풀을 돌보며 꽃을 마주하는 삶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는 사랑으로 보살피는 기쁨을 누리는 일입니다. 이러면서 아이들한테 삶을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면서 가르치는 일입니다.


  어른인 우리가 할 일은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배울 대목은 사랑입니다. 책을 아이한테 읽혀 가르칠 삶이 아니라, 사랑을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물려줄 삶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 가깝게 다가가서 보면, 원예가는 꽃을 만드는 게 아니라 흙을 만들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 자신의 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정말 질 좋은 흙이라고 감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 국화는 그저 피어 있으면 그것으로 그만이기 때문이다. 꽃은 강인하다. 단지 인간만이 내리막길에서 나약한 소리를 낼 뿐이다. 차가워지는 가을바람에도 국화는 절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  (43, 167, 188쪽)



  《원예가의 열두 달》을 쓴 카렐 차페크 님은 두 손으로 흙을 만지고, 두 손으로 풀을 뜯으며, 두 손으로 나무를 보듬었기에 힘있고 따스하며 사랑스러운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이녁 스스로 흙을 가꾸면서 숲을 지키고 삶을 일구려는 마음이었기에, 이녁이 나고 자란 체코에 민주와 평화가 싹터서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넋이 되었으리라 느낍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글을 쓰는 이들도 밭을 일구고 숲을 돌볼 수 있기를 빌어요. 시나 소설을 쓰든, 초·중·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든, 오늘날 한국에서 글과 책을 만지는 이들은 누구나 흙을 늘 만지면서 보살피는 일을 함께 해야지 싶어요.


  흙을 안 마지고 지식과 글과 책으로만 ‘자연’과 ‘환경’을 읊으니, 4대강사업을 홍보하는 공무원 자리에 떡하니 앉는 짓을 일삼습니다. 지식과 글과 책으로만 ‘자연’과 ‘환경’을 다루는 이야기를 읽기만 하니, 막상 몸을 움직여 손수 삶을 짓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늘 풀을 먹습니다. 쌀이든 김치이든 모두 풀입니다. 돼지고기이든 소고기이든 닭고기이든, 모두 풀을 먹는 짐승한테서 얻은 살점입니다. 비록 오늘날 공장 축산업에서는 사료와 항생제와 촉진제만 먹인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뭍고기는 흙에서 자란 풀을 먹는 짐승이에요. 바다에서 낚는 물고기도 숲에서 흘러내려서 바다로 가는 흙이 있어야 영양분을 얻어 목숨을 이어요. 지구별에서 모든 목숨은 흙에서 비롯하고, 지구별에 있는 흙은 풀이 있어야 기름집니다. 이러한 얼거리를 올바로 깨닫고 슬기롭게 살필 때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길을 열 수 있습니다.



.. 노동을 한다면 좋아서 해야 할 것이다. 또는 기량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도 좋다. 결국은 살아가기 위해서 한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이념을 위해 장화를 만드는 것이라든가, 단지 이념을 위해 또는 도덕적인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노동은 거의 무가치한 노동에 불과하다 … 관청의 창가에는 아무것도 피어 있지 않거나 빨강과 흰색의 제라늄만이 피어 있을 뿐이다 … 철도청 관리 아래서 식물은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며, 우체국과 전화국에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피지 않는다 … 그 중에서도 세무서는 황폐해진 사막으로 표현하면 딱 알맞다 ..  (84, 138쪽)



  카렐 차페크 님이 쓴 다른 글이 궁금합니다. 손수 흙을 가꾸는 삶을 돌보면서 바라본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지구별 얼거리를 읽으면서 지구별을 아름답게 스스로 보듬는 길을 알아차린 이녁이 어떤 문학을 꽃피우면서 우리한테 기쁨을 베풀려 했는지 궁금합니다.


  《원예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에서 카렐 차페크 님이 밝히기도 하지만, “노동을 한다면 좋아서 해야” 합니다. 즐겁게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생각하면서 해야 합니다. 웃고 노래하면서 일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럴 때에 온누리에는 민주와 평화가 싹틉니다. 즐거움도 웃음도 기쁨도 노래도 없다면, 이때에는 노예나 종이 되면서 굴레나 쳇바퀴나 톱니바퀴가 되어요. 전쟁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세우는 이들은 즐거움도 기쁨도 모르는 바보입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을 일삼는 이들은 웃음도 노래도 모르는 얼간이입니다. 이들은 흙을 만진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흙을 사랑하는 손길을 모릅니다. 나무를 심은 적 없기에 이웃을 해코지합니다. 풀을 손수 뜯어서 풀밥을 지은 적 없기에 동무를 못살게 굽니다.



.. 어떤 혁명도 싹이 트는 시기를 미룰 수는 없으며, 5월 이전에 라일락을 피울 수 없다. 즉, 영리한 인간이라면 지금껏 계속되어 온 법칙과 습관에 따르고 순종하게 된다 … 우리는 흔히 봄을 일러 싹을 품는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을이 그렇다. 과연 자연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한 해의 주기는 분명 가을로 끝난다. 그러나 가을에 한 해가 시작된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 가을에 꽃이 시드는 것 역시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꽃이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  (82, 206, 207쪽)



  정치나 경제를 뜯어고쳐야 나라가 살지 않습니다. 해마다 봄이 찾아와야 나라가 삽니다. 문화나 예술을 북돋아야 나라가 살지 않습니다. 여름에 들과 숲에 잎이 우거져야 나라가 삽니다. 교육과 복지를 키워야 나라가 살지 않습니다. 가을에 온갖 풀열매와 나무열매가 익어야 나라가 삽니다.


  발전소와 공장과 관광단지와 골프장과 고속도로 따위로는 나라를 살리지 못합니다. 들과 숲이 비로소 나라를 살립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나라를 살리지 않습니다. 시골지기나 시골내기나 흙지기나 흙일꾼이 나라를 살립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나요? 학교에서 어른들은 무엇을 가르치나요? 사회에서 아이들은 무엇이 될 수 있나요? 사회에서 어른들은 무엇이 되는가요?


  시골에서 지내는 열두 달은 다달이 새로운 노래요 숨결입니다. 도시에서 지내는 열두 달은 다달이 똑같은 직업이고 월급입니다. 시골에서는 철마다 달마다 날마다 늘 다른 일을 합니다. 도시에서는 달력 숫자만 바뀔 뿐 하루 내내 똑같은 몸짓을 되풀이합니다.


  가을에 가을바람을 쐬면서 가을하늘을 누리는 사람이 싱그러이 웃습니다. 겨울에 두툼하게 옷을 입고 눈을 뭉치면서 노는 아이가 해맑게 노래합니다. 봄에 두꺼운 옷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들을 누비는 사람이 신나게 뛰어놉니다.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딸기와 멧딸기를 훑는 사람이 기쁘게 사랑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일로 삶을 지을 사람인가 되돌아봅니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숲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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