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 곰취의 숲속일지
주원섭 글.사진 / 자연과생태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책 읽기 78



날마다 숲에서 쓰는 글

―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주원섭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5.6.5.



  ‘숲’이라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볼 한국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으나, 애써 한국말사전을 찾아본들 뒤죽박죽으로 오락가락하거나 겹말풀이만 흐릅니다.


  먼저, 한국말사전에서 ‘숲’을 찾아보면 ‘수풀’을 줄인 낱말이라고 풀이합니다. ‘수풀’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것”으로 풀이하는데 ‘삼림’과 비슷한 낱말이라고 다룹니다. 다시 ‘삼림(森林)’을 찾아보면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으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숲’을 풀이하며 적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라는 대목이 아리송해서 ‘무성(茂盛)하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니, “풀이나 나무 따위가 자라서 우거져 있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다”라는 말풀이는 겹말입니다. 한국말 ‘우거지다’를 한자말로 ‘무성하다’로 가리키는 셈이니 “무성하게 우거지다”처럼 쓸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말 ‘우거지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풀, 나무 따위가 자라서 무성해지다”로 풀이해요. 빙글빙글 도는 돌림풀이입니다.


  더 헤아려 보면, ‘삼림’은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이라 하는데, ‘우거지다·무성하다’는 나무가 많이 있거나 빽빽하게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많이 우거진”처럼 쓸 까닭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숲’이라는 곳은 “나무가 우거진 곳”인데, ‘삼림’이라는 한자말을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으로 풀이한다면, 이 말풀이는 알맞지 않습니다. ‘삼림 = 숲’쯤으로만 풀이해야 올바르리라 느낍니다. 한국말로는 ‘숲·수풀’이요, 한자말로는 ‘森林’이며, 영어로는 ‘wood·forest’입니다.



(올빼미는) 혼자서 생활하며, 낮에는 주로 나뭇가지에 가만히 앉아 있다. 쉬고 있을 때 작은 새들이 다가와 공격 태세를 취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빛이 있는 쪽으로 날아간다 … 달래는 산야에서 무리지어 나거나 한두 포기씩 자란다. 뿌리, 줄기, 꽃 등이 매우 작아 의식하고 유심히 찾지 않는 이상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 산새들은 애벌레가 많이 나오는 시기인 4∼6월에 짝짓기를 한다 … 참새 한 쌍이 연간 잡아먹는 벌레는 8만 여 마리에 이른다. (18, 32, 62, 219쪽)



  주원섭 님이 쓴 ‘숲일기’인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자연과생태,2015)를 읽으면서 숲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숲을 이야기하거나 숲을 다루거나 숲을 배우거나 숲을 가꾸기 앞서 ‘숲’이 어떠한 곳을 가리키는지 얼마나 제대로 아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숲’이라고 할 적에는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무가 한두 그루나 몇 그루가 있대서 숲이라 하지 않습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푸른 그늘이 넓게 펼쳐지거나 이어지는 터가 되어야 비로소 숲이라 합니다.


  숲에서는 나무그늘 사이로 햇빛이나 햇살이 살짝살짝 비칩니다. 그리고, 숲이라는 곳에는 나무만 있지 않습니다. 나무 둘레로 풀이 우거집니다. 숲에는 온갖 풀이 골고루 자라고, 여기에 버섯도 함께 자라며, 숲벌레와 숲짐승과 숲새가 나란히 있습니다. 숲에 깃들면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바람 따라 살랑이는 노래가 흐릅니다. 숲벌레와 숲새가 들려주는 노래가 어우러집니다. 숲짐승이 숲을 오가면서 먹이를 찾는 동안 내는 소리가 섞입니다.


  숲에는 나무와 풀과 벌레와 짐승과 새만 있지 않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이라면 샘물이 솟거나 냇물이 흐릅니다. 숲은 판판하거나 너른 땅에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멧자락을 따라 숲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숲은 냇물뿐 아니라 골짜기와 골짝물을 고이 품습니다.



딱따구리는 대개 단 한 번 구멍을 뚫어 벌레가 있는 곳을 찾는다. 예상이 적중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옆 나무에서 기다린다 … 하늘을 메우고 있던 키 큰 나무가 쓰러지면 이전보다 많은 햇빛이 숲 바닥까지 닿아, 키 작은 식물에 비치는 일조량이 늘어난다. 또한 쓰러진 나무는 썩으면서 분해자와 생산자의 영양분이 되어 다른 생물이 탄생하는 데도 일조한다 … 누군가가 지난겨울 혹한의 추위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 철쭉나무의 가지를 스카프로 묶어 놓았다. 아마 철쭉나무가 안쓰러워 응급처치를 해 놓은 것이겠지. (37, 47, 65쪽)



  오늘날에는 ‘자연(自然)’이라는 낱말을 널리 씁니다. 자연을 지키자고 말하기도 하고, 자연을 사랑하자고도 말하며, 사람은 자연이 있어야 살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자연’이라는 낱말을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옛날 시골사람은 한자로 된 말을 쓸 일이 없었으니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삶을 지은 사람은 ‘시골말’이나 ‘흙말’을 썼습니다. 시골에서 사니 시골말이요, 흙을 가꾸면서 살기에 흙말입니다. 시골사람이 바라보던 ‘자연’이란 바로 ‘숲’이리라 느낍니다. 숲이 있어서 뭇목숨이 깨어나고 사람이 이 땅에서 삶을 지을 수 있다고 여겼으리라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예부터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 쓰던 시골말이나 흙말은 ‘숲말’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예전에는 어느 시골이나 ‘나무가 우거진 터전’이었을 테며, 이 마을도 숲이요 저 마을도 숲이었을 테고, 마을과 마을 사이는 너른 숲이었을 테니까요.


  오늘날에는 어디나 도시로 바뀌었습니다만, 개화기 언저리와 한국전쟁 무렵까지 이 나라를 놓고 ‘금수강산’이라고 했습니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은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천”을 가리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이 나라를 짓밟고 한국전쟁이 불거지며 온 나라가 불바다가 되기 앞서까지, 이 땅은 숲이 아름답고 드넓게 펼쳐진 곳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어디를 가도 숲이 아름다웠기에 이를 두고 ‘금수강산’이라고 했겠지요.



담쟁이덩굴은 감미료가 없던 옛날에는 설탕 대신 쓰이기도 했고, 한때는 각종 병의 특효약으로 알려지면서 남획되기도 했다 … 밤나무는 세월이 오래 흘러도 뿌리에 처음 싹이 텄던 밤톨이 그대로 남아 있고, 밤톨은 새싹이 자라 열매를 맺을 때까지 영양분을 공급한다 … 도시에서 유독 매미 우는 소리가 크고 시끄럽게 여겨지는 것은 도시의 소음 때문일 것이다 … 참나무류를 포함해 열매를 맺는 나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꽃을 많이 피우고, 열매도 잔뜩 맺는다 … 까막딱따구리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낮밤의 길이가 달라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아는 것이다. (65, 127, 170, 179, 256쪽)



  숲일기인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는 숲에서 배운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숲이 가르치는 이야기를 날마다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철 따라 달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글쓴이 주원섭 님은 ‘나무가 잘 자란 길’을 걸을 적에는 흐뭇하거나 기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잘 자라던 나무를 뭉텅뭉텅 벤 길’을 걸어야 할 적에는 마음이 아프거나 시리다고 말합니다.


  도시에서는 전깃줄이 걸린다거나 ‘나무가 해를 가린다’고 해서 나뭇줄기나 나뭇가지를 함부로 벱니다. 시골에서도 도시를 흉내내어 나무를 함부로 베기 일쑤입니다. 한여름에 더위를 그으려고 나무그늘을 찾으면서도, 막상 나무그늘이 논이나 밭에 들어온다면서 나무를 모조리 베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나락이나 남새를 심으려면 해가 잘 들어야 할 테니, 논이나 밭 한복판에 나무를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해는 한곳만 비추지 않습니다. 해는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질 때까지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아침에 그늘이 지면 저녁에는 해가 들고, 아침에 해가 들면 저녁에는 그늘이 집니다. 시골 들에서 나무를 모조리 없애면 해는 더 들 텐데, 해가 더 드는 만큼, 구름이 끼거나 비바람이 드는 날에는 들에 심은 나락이나 남새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둘레에 나무가 없으면 비바람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나락이나 남새도 비바람을 못 견디지만, 여느 시골 여느 살림집도 비바람을 견딜 수 없습니다. 돌로 울타리를 쌓기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 ‘바람막이숲’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부터 이 땅 어느 시골이든 ‘숲정이’를 고이 아끼거나 건사했습니다. 마을마다 숲정이가 있어야 비바람을 가릴 수 있으니까요. 집집마다 나무를 돌보고 마을마다 숲정이를 보듬은 한겨레입니다. 나무그늘이 드리우면 논밭에 해가 덜 든다고 할 수 있지만, 나무가 있을 적에는 땡볕이나 불볕이 찾아들어도 나무가 더위를 식혀 줍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는 가뭄이 들어도 샘물이 솟고 냇물이 흐릅니다.



나무는 보통 잎으로 호흡하지만, 전체 호흡량의 8퍼센트 가량은 뿌리가 담당한다 … 쥐는 놀라운 번식력으로 다른 동물의 풍부한 먹잇감이 되고, 온갖 잡다한 것을 먹어치우면서 생태계의 하층구조를 굳건히 지키는 역할도 한다 … 국수나무는 둥근 덤불 형태의 군집을 크게 형성한다. 국수나무 덤불은 숲을 우거지게 해서 바람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숲과 마을의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숲에서 헤맬 때 국수나무를 길라잡이로 해서 마을로 오는 길을 찾았다고 한다. 공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못해 맑은 숲을 대변하는 지표식물이기도 하다. (287, 304, 367쪽)



  숲이 있기에 나무를 베어 집을 짓습니다. 숲이 있으니 나무를 베어 연필을 깎고 종이를 빚어 책을 묶습니다. 숲에서 나무를 얻어 땔감으로 삼고 연장을 다듬습니다. 나무마다 온갖 열매를 맺으니, 나무열매는 고마운 밥이 됩니다.


  숲이 있기에 문명과 문화가 태어납니다. 숲이 없으면 문명이나 문화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숲을 아끼지 않아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없애면, 어떤 문명이나 문화이든 무너지거나 사라지고야 맙니다.


  주원섭 님은 스스로 애써서 바지런히 숲을 드나들면서 숲일기를 씁니다. 도시에서 살며 숲을 드나들기는 만만하지 않을 테지만, 스스로 푸른 마음이 되어 삶을 가꾸려 하기에, 도시에서도 씩씩하게 숲길을 찾아서 푸른 바람을 쐽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지내는 사람은 한결 넉넉하고 포근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니, 숲일기를 써서 숲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나무가 잘 자라는 곳은 우리 모두한테 사랑스러운 터전이 될 테니, 숲일기를 써서 숲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른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평을 쓰고, 운동경기를 보고 나서 관전평을 쓰며, 책을 읽고 나서 비평을 씁니다. 경제나 주식을 비평한다든지, 정치나 사회를 비평한다든지, 예술이나 문화를 비평한다든지, 교육이나 역사를 비평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이와 달리, 숲을 이야기하거나 나무를 이야기하거나 풀과 꽃과 들과 바람과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냇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 해 내내 운동경기 관전평을 쓰거나 정치 비평을 쓰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한 해를 통틀어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이랑 겨울에 따라 늘 달라지는 숲과 나무와 풀과 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숲일기’와 ‘나무일기’와 ‘꽃일기’를 관찰일기처럼 쓸 수 있다면, 이 나라 어른하고 아이가 모두 숲일기나 나무일기나 꽃일기를 쓸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봅니다. 누구나 날마다 나무를 마주하고 숲바람을 쐴 수 있다면, 참말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을 꿉니다. 4348.6.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 - 소로를 통해 배운,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가치들
에드워드 월도 에머슨 지음, 서강목 옮김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책 읽기 77



내가 가꾸려고 하는 ‘숲집’

―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

 에드워드 월도 에머슨 글

 서강목 옮김

 책읽는오두막 펴냄, 2013.9.27.



  에드워드 월도 에머슨 님이 쓴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책읽는오두막,2013)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에드워드 월도 에머슨 님은 랠프 월도 에머슨 님네 막내아들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소로’가 젊었을 적에 늘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늘 가까이에서 지켜본 ‘소로’라고 하는 이웃이자 아저씨이자 선생님이자 숲동무이자 삶벗이라고 하는 분이 어떠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았는가 하는 대목을 밝히려고 쓴 책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보면, “《월든》이 출간되었을 때, 에머슨은 마치 자신의 동생이 쓴 책인 양 기뻐했다. 또한 소로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이 그의 일기를 봐 달라고 건넸을 때, 그는 날마다 서재에서 나오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소로가 나날이 남긴 자연에 대한 기록과 생각의 일지 곳곳에서 경이로운 매력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말했다(153쪽).”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쓴 분은 막내아들이요 ‘에머슨(랠프)’은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이웃 아재인 소로 님이 죽은 뒤 아버지(랠프 월도 에머슨)가 소로 님 일기를 건네받아서 날마다 읽어 주었다는 뜻이요, 이 책을 쓴 분은 날마다 ‘소로 일기’를 누구보다 먼저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새길 수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 형이 죽은 후 몇 년 동안 소로는 집안의 연필공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했으며, 저술 활동을 계속했고, 여가 시간에는 숲과 강으로 발길을 돌렸다 … 그러나 너무나 잘 갈린 가루(흑연가루)인지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먼지들이 온 집안을 뒤덮었다. 한 친구는 소피아 양의 피아노를 열었더니 건반들이 온통 흑연가루로 뒤덮여 있었다고 말했다. 흑연가루 흡입과 부실한 음식이 소로의 생명을 단축했다 ..  (59, 64쪽)



  소로라고 하는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소로라고 하는 사람이 입은 옷인 ‘몸뚱이’는 흙이 되면서 어느새 숲을 가꾸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소로라고 하는 사람은 숲이 되었습니다.


  소로라고 하는 사람이 남긴 글은 흙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소로라고 하는 사람이 살던 무렵에는 책이 도무지 안 팔렸다고 하지만, 이제 소로라고 하는 사람이 남긴 글은 모두 책이 되어서 아주 널리 읽힙니다. 그리고, 책이 읽힐 뿐 아니라, 책에 깃든 숨결을 맞아들여서 숲을 새롭게 지어서 가꾸겠노라 다짐하는 젊은이가 꾸준히 나타납니다.


  그러니, 소로라고 하는 사람이 남긴 글은 ‘노래’가 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삶을 밝히는 노래가 되어 지구별 사람들 가슴에서 흐릅니다. 사랑을 나누는 노래가 되어 온누리에 골골샅샅 퍼집니다. 꿈을 키우는 노래가 되어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기쁘게 스며듭니다.



.. 그에게 엄격히 이 마을의 관습이나 저 도시의 유행을 따르라고 강요해서도 아니 된다. 우리 모두는 그 조용한 광휘가 대중의 행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빛나서, 우리의 삶을 더욱 잘 비춰 주고 안내해 준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 그는 허세 부리는 위인도 아니고, 주먹구구식의 섭생법에 얽매여 사랑하는 어머니의 선물에 무례하게 손사래를 칠 소인배도 아니었다. 또한 황혼이 내릴 때면 종종 친구 집을 들러 환영받는 손님으로 난롯가에 함께 앉았던 그의 오랜 습관을 그만두어야 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  (73, 94쪽)



  나는 내가 선 시골자락에서 숲을 바라봅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보금자리는 소로 님이 살던 시골처럼 우거진 숲은 아니리라 느낍니다. 아무래도 한국은 미국에 대면 땅덩이가 많이 좁습니다. 숲도 들도 골짜기도 미국하고 크기를 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선 이곳에서 숲을 그립니다. 우리 집이 푸르게 우거지는 숲이 되기를 꿈꿉니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으며, 꽃이 피는 숲을 그립니다. 나비가 날고 벌이 찾아들며 새가 지저귀는 숲을 그립니다. 나도 곁님도 아이들도 우리 ‘숲집’에서 푸른 바람을 마시면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그릴 수 있기를 꿈꿉니다.



.. 우리 숲과 강은 바로 이 사람 덕택에 영원히 달라졌다. 그의 무엇인가가 남겨졌고, 진실로 영원히 그의 마을에 남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태어났고, 그 안에서, 그가 추구한 전부인 바, 온갖 아름다움과 감흥의 원천을 찾았으며, 또한 우리 모두와 함께 나누었다 ..  (163쪽)



  옛날에는 어떤 사람도 ‘환경보호’나 ‘자연보호’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나무와 풀을 아끼던 사람들은 삶이 고스란히 사랑이었습니다. 예부터 지구별 어느 곳에서나 ‘수수한 시골사람’은 낫과 호미와 쟁기 같은 연장을 지어서 썼을 뿐, 칼이나 총 같은 전쟁무기 따위는 벼리지 않았습니다.


  전쟁무기가 나타나고 군대와 경찰이 으르렁거리는 오늘날에는 곳곳에서 환경보호나 자연보호를 외칩니다. 그렇지만 막상 시골에 수수하게 깃들어 흙과 풀과 나무를 아끼면서 건사하려는 몸짓은 잘 안 나타납니다. 애써 시골에 깃들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텃밭과 마당과 꽃밭을 가꾸려는 몸짓을 보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마당 있는 집을 누리려는 사람은 드물고, 하나같이 아파트로 몰려듭니다.


  가만히 보면, 마당 있는 집을 재개발하는 일은 드뭅니다. 마당 있는 집은 두고두고 오래 가도록 짓습니다. 마당 없는 층집인 아파트는 으레 재개발을 해야 합니다. 마당 있는 집은 집임자가 틈틈이 손질하고 고쳐서 오래도록 건사합니다. 마당 없는 층집인 아파트는 도무지 손질하거나 고쳐서 쓸 수 없습니다.



.. 그는 또한 캠핑하는 법과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특히 고요한 밤중에 월든 호수 한가운데에서 보트 젓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 순간 주위의 산들이 잠에서 깨어나 소리쳤다 … “얘, 헨리야, 왜 아직 안 자고 있니?” 그가 답했다. “어머니, 저는 별들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 너머로 하느님을 볼 수 있을까 해서요.” … 소로는 결코 시민의 의무를 모두 무시한 것이 아니다. 자기 나라의 수준 낮은 도덕 의식이 그를 자극했고, 그래서 그는 수시로 그 조용하고, 위무적인 숲과 풀밭을 뒤로 하고, 콩코드에서건 어디건 인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연설하러 떠났던 것이다 ..  (20, 33, 102쪽)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을 조용히 덮습니다. ‘여러 에머슨(아버지 에머슨과 아이들 에머슨)’이 소로라고 하는 사람과 함께 누린 나날이 알뜰살뜰 아로새겨진 이야기를 고요히 마음으로 그립니다. 숲을 사랑하여 숲사람이 되려고 한 넋이 하나 있고, 숲사람 곁에서 숲마음을 읽고는 숲노래를 함께 부르던 넋이 하나 있습니다. 두 넋은 서로 다르지만, 언제나 한마음이 되어서 한삶을 짓는 한사랑으로 나아갔습니다.


  내가 가꾸려고 하는 숲집은 누구보다 우리 식구한테 푸른 바람을 베풀어 주는 보금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숲집에서 태어난 푸른 바람은 지구별 곳곳을 두루 돌면서 모든 이웃한테도 푸른 바람을 나누어 줍니다. 푸른 숲바람이 새파란 하늘을 가르면서 아름답게 춤춥니다. 밝은 숲노래가 하얀 구름을 타고 온누리를 골고루 누비면서 맑은 여름비로 찾아갑니다. 4348.6.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옆구리왕짜 2015-06-05 0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나야겠어요, 소로, 다시.

숲노래 2015-06-05 05:50   좋아요 0 | URL
언제나 고운 노래를 들려준답니다~
 
희망은 있다 - 평화로운 녹색의 미래를 위하여
페트라 켈리 지음, 이수영 옮김 / 달팽이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숲책 읽기 76



‘전쟁무기와 군대’가 아닌 ‘호미와 연필’로

― 희망은 있다

 페트라 켈리 글

 이수영 옮김

 달팽이 펴냄, 2004.11.15.



  큰파를 장만하면 아래쪽은 알맞게 잘라서 마당 한쪽에 옮겨심습니다. 꽁댕이만 남은 큰파이지만, 하루쯤 지나면 조금씩 새 줄기가 오르려 하고, 이틀 사흘 나흘 지나는 동안 차츰 푸른 줄기가 튼튼하게 고개를 내밉니다. 이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면 파뿌리가 흙하고 한몸으로 얼크러지면서 곧고 싱그러운 파줄기가 하늘바라기를 하듯이 솟습니다.


  두 아이를 불러서 파뿌리를 함께 옮겨심습니다. 작은아이는 호미를 쥐고, 큰아이는 꽃삽을 쥡니다. 콕콕콕 땅을 찍어서 알맞게 구덩이를 판 뒤, 아이가 손수 파뿌리를 쥐도록 맡긴 다음 흙을 살살 쓸어서 뿌리를 덮습니다. 이 다음에 물을 뜨는 몫은 큰아이. 큰아이가 대야에 물을 떠오면, 큰아이가 스스로 물을 조금씩 붓도록 합니다.


  파뿌리를 옮겨심는 아이들은 눈망울을 빛냅니다. 파뿌리를 옮겨심으면서 오직 파뿌리만 생각합니다. 다른 곳은 바라보지 않고, 다른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 파뿌리가 흙 품에 포근하게 안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파뿌리를 다 심은 뒤에는 큰돌을 파뿌리 둘레에 놓습니다. 잘못해서 이곳을 밟지 않도록 하려고요.



..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에너지 소비와 군대를 위해 사용되는 풍부하고 정교한 과학기술은 세계의 빈곤과 인플레이션과 절망을 야기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다 … 우리는 재정적 폭력과 국가적 폭력, 또는 보복 폭력에 의해 항상 패배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갈등이 해결되는 것을 거부한다 … 폭력을 폭력으로, 전쟁을 전쟁으로, 불의를 불의로 제거할 수는 없다 … 평화와 정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 비폭력을 저버리는 사람은 역사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  (14, 24, 25쪽)



  페트라 켈리 님이 쓴 《희망은 있다》(달팽이,2004)를 읽습니다. 독일에서 녹색당을 여는 큰일을 이끈 페트라 켈리 님이 손수 쓴 글을 묶은 책으로는 《희망은 있다》 한 권이 한국말로 나왔고, ‘페트라 켈리’ 전기로 《녹색혁명가 페트라 켈리》(나남출판,1994)와 《나는 평화를 희망한다》(양문,2002)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 위인전으로 《녹색 세상을 꿈꾼 여성 정치가 페트라 켈리》(파란자전거,2003)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페트라 켈리 님은 1947년에 태어나서 1992년에 숨을 거둡니다. 이이는 마흔 몇 해를 이 땅에서 살면서 이 땅에 ‘푸른 숨결’이 깃들기를 바랐습니다. 환경운동과 여성운동이 너른 바다로 씩씩하게 헤엄쳐 가듯이 널리 퍼지기를 바랐고,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과 문화와 과학 어느 곳에서도 ‘푸른 숨결’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길을 바랐습니다. 삽차로 짓는 문명이 아니라, 두 손으로 짓는 삶을 바랐습니다. 전쟁무기를 앞세운 거짓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호미와 연필로 손수 일구는 참다운 평화를 바랐습니다.



.. 비폭력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인간이라는 자신의 종과 화해하는 것, 자연과 우주와 화해하는 것이다 … 부드러움과 일체감,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참여, 연대감, 분리시키고 분열시키는 모든 것에 대한 투쟁이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의 모토는 이렇다. ‘부드럽게 뒤집자!’ … 상대방이 사악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더 사악한 일을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하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핵억지력 이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 우리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 군대를 반대합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며, 미국은 그레나다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  (46, 47, 56, 69쪽)



  《희망은 있다》라고 하는 조그맣고 푸른 책은 그야말로 조그맣고 푸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쟁무기는 언제나 전쟁무기를 끌어들일 뿐이고, 핵무기도 언제나 핵무기를 끌어들일 뿐이라는, 아주 쉽고 조그마하면서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지구별을 크게 아울러서 ‘전쟁무기에 쓰는 돈’을 헤아리면, 날마다 7조 원에 이른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설마 7조 원이나 하겠느냐고 여길 수 있지만, 지구별에 있는 ‘군인 숫자’는 교사와 의사와 간호사를 모두 더한 숫자보다 곱절이나 많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도 이 숫자는 얼추 비슷합니다. 남녘도 북녘도 군인이 끔찍하도록 많습니다. 육군과 공군과 해군도 있지만, 전투경찰에다가 ‘그냥 경찰’까지 참으로 많습니다. 나라에서는 으레 치안과 질서를 말하지만, 총이나 칼이 있어서 평화를 지키는 일은 없습니다. 총이나 칼이 있기에 언제나 총과 칼을 앞세운 군사독재와 전쟁과 학살이 불길처럼 치솟습니다.


  군인한테 들여야 하는 유지비를 헤아리고, 갖가지 군수물자를 돌보는 돈을 따지면, 참말 지구를 통틀어 하루에 7조 원을 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하루 7조 원을 전쟁무기에 앞으로도 그대로 쓸 생각인지, 이제부터 이 어마어마한 돈을 참다운 평화로 나아가는 길에 쓸 생각인지, 제대로 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 미국 행정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속적으로 착취를 당해 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모든 해방운동을 공산주의의 사주를 받은 모욕적인 행위로 해석했고, 그로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그들이 전혀 원치 않았던 구석으로 내몰았다 … 탱크 한 대를 생산하는 비용이면 10년간 유행성 천연두를 퇴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계실 겁니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한 척에 들어가는 비용이면 45만 채의 소박한 집들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  (88, 108쪽)



  부탄이라는 나라는 농약과 비료를 한 방울도 안 쓰겠다고 나라에서 먼저 밝혔습니다. 부탄은 어떻게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요? 군대를 거느리지 않고,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군대나 전쟁무기를 돌보는 데에 돈과 품을 안 쓰려고 하면, 이쯤이야 넉넉히 할 만합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상급식’에서 그칠 수 없어요. 모든 교육과 복지는 ‘무상교육’과 ‘무상복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공립도서관은 더 늘어나야 하고, 국공립도서관은 알차고 아름다운 책을 넉넉히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사람이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에 기대지 않으면서 싱그럽고 튼튼한 곡식과 열매를 거두도록 이끄는 데에 돈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시골에서 삶을 짓겠노라 다짐하는 젊은이가 늘어날 테고, 온 나라에 평화와 사랑이 감돌 만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이렇게 앞길을 헤아리는 정치 일꾼이 너무 드뭅니다. 이러한 앞길을 꿈꾸려는 어른도 퍽 드뭅니다. 핵발전소가 있기에 핵쓰레기가 나오고, 핵쓰레기를 매만져서 핵무기를 만듭니다. 핵무기를 안 만들어도 핵쓰레기를 시멘트로 지은 처리장에 수십만 해 동안 가두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 텐데, 이런 바보짓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하는 정치 일꾼이나 여느 어른이 참으로 드뭅니다.



.. 우리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생명에 적대적인 고층 아파트들과 오염된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그저 묵묵히 견뎌야 한단 말인가 … 전 세계가 무기경쟁에 쏟아붓는 비용은 하루에 7조 원이 넘는다. 무기경쟁에 자원을 모두 집어넣는 바람에 셀 수 없는 아이들이 문맹, 질병, 굶주림, 죽음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 오늘날 전 세계 군인의 수는 교사, 의사, 간호사 수의 두 배에 이른다 … 영혼의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생생하고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이 우위에 놓인다면 인간은 더 이상 미움과 경멸에 사로잡혀 사물과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  (144∼145, 159∼160, 177, 178쪽)



  아침저녁으로 마당과 뒤꼍에서 풀을 뜯어서 밥상에 올립니다. 내가 시골집에서 이루는 즐거운 살림은 호미로 짓고, 연필로 빚습니다. 나는 농약이나 비료로 즐거운 살림을 지을 수 없습니다. 나는 총이나 칼로 우리 보금자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나는 군대나 전쟁무기에 기대어 우리 마을을 돌볼 수 없습니다.


  ‘전쟁무기와 군대’가 아닌 ‘호미와 연필’로 가꾸는 삶입니다. 전쟁무기는 새로운 전쟁무기로 뻗고, 군대는 더 큰 군대로 이어집니다. 호미는 새로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맞추어 새로운 이야기를 짓습니다. 연필은 ‘호미로 일군 아름다운 보금자리’ 이야기를 글로 옮기도록 해서, 먼먼 곳에 있는 고운 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실마리를 엽니다.


  총을 녹여서 호미로 바꾸면 됩니다. 탱크도 잠수함도 핵발전소도 모두 내려놓고 연필을 쥐면 됩니다. 군부대를 세우지 말고, 숲을 보살피면 됩니다. 젊은이한테 전쟁훈련을 시키지 말고, 손수 흙을 가꾸는 사랑스러운 살림살이를 가르치면 됩니다.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환경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의 숲 - 신원섭 교수의 숲의 건강학
신원섭 지음 / 지성사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책 읽기 74



숲에서 살아야 사람다운 하루

― 치유의 숲

 신원섭 글

 지성사 펴냄, 2005.2.23.



  아이들을 낳아서 함께 살기 앞서도 늘 느끼기는 했으나, 그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한 대목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자동차 냄새’입니다. 혼자 살던 때에는 자동차를 타야 할 적마다 ‘자동차에서 나는 플라스틱 냄새와 기름 냄새’로 어질어질해서 창문을 열고 싶었습니다. 시외버스나 기차나 전철은 창문을 열 수 없어서 갑갑한데, 이런 차에서 내린 뒤 비로소 한숨을 돌리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군내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택시를 타든, 또 이웃 자가용이나 할아버지 짐차를 타든 언제나 ‘자동차 냄새’를 느낍니다. 으레 코를 감싸쥡니다. 언제나 시골집에서 지내다가 어쩌다 한 차례 자동차를 타니까, ‘여느 때에 맡지 못 하던 냄새’ 때문에 코가 괴로우니까 코를 감싸쥡니다.


  나도 이 아이들처럼 자동차 냄새 때문에 무척 오랫동안 몹시 시달렸기에, 아이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한테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자동차에서는 틀림없이 플라스틱과 기름이 섞인 냄새가 나지만, 우리가 마음으로 이를 안 받아들이려고 하면 사라지고, 또 우리가 마음으로 이 냄새를 즐겁게 여기면 다 꽃내음이 될 수 있어, 하고 이야기해 줍니다.



.. 인류가 숲에서 나와 자연과 최악의 갈등을 겪고 부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 바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된 불과 30∼40년 전이다 … 숲은 현대의학이 지닌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체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알리고 있다 ..  (19, 28쪽)



  ‘산림치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하다가 산림청장이 된 신원섭 님이 쓴 《치유의 숲》(지성사,2005)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신원섭 님은 숲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치유의 숲》에서 밝힙니다.


  한자말 ‘치유(治癒)’는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을 뜻합니다. ‘치료(治療)’는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 다스려 낫게 함”을 뜻합니다. 두 가지 한자말은 모두 “병을 낫게 함”을 가리킵니다. 한국말로 다시 적자면 “치유의 숲”은 “몸을 낫게 하는 숲”이요 “아픈 데를 씻어 주는 숲”입니다.



.. 그저 숲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는 창을 통해 멀리서나마 숲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 … 분명한 사실은 언제 어디서나 숲은 인간의 행복과 건강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 재미있게도 인구밀집지역 주변 공원에서 조사한 것에 따르면, 공원 숲을 이용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간접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  (57, 64쪽)



  나무가 있을 때에 새가 깃듭니다. 새는 나뭇가지나 우듬지에 앉아서 날개를 쉽니다. 새는 나무에 있는 벌레를 잡아서 먹습니다. 새가 있으면 벌레는 꼼짝을 못합니다. 다만, 새는 벌레를 모조리 잡아먹지 않습니다. 새는 벌레를 어느 만큼 살려 둡니다. 왜냐하면, 벌레를 모조리 잡아먹으면, 새는 앞으로 벌레를 더 먹을 수 없고, 새가 벌레를 더 먹을 수 없으면 새는 그만 죽고 말 테지요.


  새가 벌레를 잡아먹을 적에는 ‘벌레가 나뭇잎을 알맞게 갉아먹을 만큼’ 살려 둡니다. 이리하여, 숲에 온갖 벌레가 아무리 많아도 나무가 쓰러지거나 죽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숲에 새가 있어야 나무가 안 죽습니다. 숲에 새가 없으면 나무는 온갖 벌레에 시달리면서 그만 숨을 거두지요.


  숲에 새가 있으면 사람이 할 일은 따로 없습니다. 새가 나무를 보살펴 주니까요. 그러나, 숲에 새가 없으면 사람은 헬리콥터를 띄워서 농약을 뿌립니다. 농약을 뿌려서 나무벌레를 잡으려고 합니다. 이때에 나무는 괴롭지요. 한쪽에서는 벌레가 너무 많고, 한쪽에서는 농약이 춤추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솔잎혹파리 같은 벌레가 들끓을 적에 농약을 아무리 많이 뿌리고 뿌려도 벌레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벌레는 농약에 견디는 유전자를 새로 만들어서 퍼뜨립니다. 이리하여 농약을 더 세게 타서 뿌릴 테고, 숲은 솔잎혹파리 같은 벌레 때문이 아니라 농약 때문에 죽습니다. 농약을 고스란히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뒤집어쓰니 괴롭고, 농약이 땅에 떨어져서 풀이 말라죽으니 흙바닥에서 풀이 죽어서 사라지면 비가 올 적마다 빗물에 흙이 다 쓸려가서 나무뿌리가 훤히 드러나니 괴롭습니다.



.. 숲은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게 한다. 따라서 숲에서는 자연스럽게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와 달리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다. 숲에는 지형이 다양해서 운동 효과도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 … 숲과 자연에 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숲은 인간이 자기 인식과 자각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더 자신답게 살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인간과 자연을 하나되게 하여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훼손하려는 오만함을 버리게 한다 … 숲은 인간이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 단순함을 즐길 줄 알며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게 한다. 이렇게 보면 숲은 그야말로 우리를 참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수단인 셈이다 ..  (67, 126쪽)



  《치유의 숲》을 쓴 신원섭 님은 유럽에서 나온 여러 가지 연구보고서를 들면서 ‘숲이 있을 때에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고 하는 이야기를 힘주어 밝힙니다. 이와 함께, ‘숲이 없을 때에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똑똑히 들려줍니다.


  가만히 보면, 감옥 같은 곳에는 숲이 없고 나무도 풀도 없습니다. 더 살펴보면, 학교에도 숲이나 나무나 풀이 없기 일쑤입니다. 초등학교에서도 운동장은 흙이나 풀이 없이 인조잔디가 되고, 중·고등학교는 밤낮을 잊은 채 입시지옥에 얽매이는데다가, 대학교에서도 잔디밭이나 풀밭을 만나기 어렵기 일쑤입니다. 회사에서는 어떨까요? 공공기관은 어떨까요? 수백만 사람들이 몸담은 일터에서 숲내음을 얼마나 맡을 수 있을까요?



.. 조사지를 분석하면서 또 한 가지 느끼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평안을 주는 경험과 얼마나 단절되어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 도시는 복잡하고 사람들과 인공물로 가득 차 있지만 숲은 한적하고 나무와 풀, 동물과 곤충, 그리고 물 같은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다 … 캠핑이 주는 사회적 환경은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사회환경과 다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서로 감정을 교류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서로 경쟁한다. 부모들은 자식과 옆집 아이를 비교하며 그 애의 반이라도 닮으라고 윽박지른다 ..  (140, 174, 177쪽)



  나무 한 그루가 서면 그늘을 넓게 드리우기도 하지만, 비와 바람도 그어 줍니다. 나무 한 그루가 서면 그늘을 드리울 뿐 아니라, 더위와 추위를 막아 줍니다. 나무가 없기 때문에 사막이 됩니다. 사막을 ‘사람이 살 수 있는 터’로 바꾸려고 나무를 심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못하도록 몽땅 베어서 건물만 높이 쌓는 곳은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여서 웅성거리’더라도 ‘정작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사막하고 똑같은 셈이니까요.


  그런데, 요즈음 사회를 돌아보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나무를 구경하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마을마다 큰나무를 많이 베어 넘겼습니다. 큰나무를 섬기던 시골사람 비손을 바보스러운 짓(미신)이라고 여겼거든요. 큰나무는 으레 마을에서 길목에 있었기에 자동차가 다니기 수월하도록 자꾸자꾸 큰나무를 베어 없앴습니다.


  학교에서 나무를 가르치는 일이 없다시피 합니다. 해마다 사월 오일 언저리에 나무를 심자고 외치기는 하지만, 나무가 자랄 터가 마땅히 없습니다. 나무를 심은 뒤 이 나무를 꾸준히 돌보도록 이끄는 손길도 딱히 없습니다.



.. 도시를 개발하고 디자인할 때 인간과 자연 또는 숲의 관계는 경제적인 효율성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다. 정책결정자나 도시설계자들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경험은 무시하고 효율성만 강조해 개발하기 일쑤다 ..  (202쪽)



  나무는 뚝딱 심지 못합니다. 수천 해를 사는 나무는 하루아침에 옮겨심지 못합니다. 수천 해를 사는 나무이기에 아주 천천히 자랍니다.


  나라에서는 도시개발이나 문화정책을 흔히 백 해라든지 스무 해쯤 계획을 세워서 꾸립니다. 아파트 재개발조차 쉰 해를 내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적어도 천 해는 바라보면서 심어야 합니다. 도시환경은 백 해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바뀔 테지만, 나무는 적어도 천 해 동안 한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우람하게 자라야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헤아리자면 ‘공원’을 생각해서는 아무것도 못 되기 마련입니다. 그야말로 숲을 헤아리자면 ‘적어도 천 해 동안 사람이 안 건드리는 곳’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기껏 백 살을 살 동 말 동하는 사람이 나무를 보살핀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은 천 해를 기다리지 못하니 자꾸 가지치기를 하려고 듭니다. 사람은 천 해를 내다보지 못하니 나무를 제대로 심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생각을 미처 못합니다. 우리가 저마다 ‘천 해 앞’을 내다보고 ‘만 해 앞’을 바라볼 수 있다면, 도시를 짓거나 시골살이를 가꿀 적에 나무 한 그루를 어떻게 보듬을 때에 스스로 아름다운가를 깨달으리라 느낍니다.


  자동차를 안 타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자동차로도 즐겁게 달릴 만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도시가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숲으로 둘러싸인 사랑스러운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숲이 살아야 사람답게 하루를 누린다는 생각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기를 빌어요. 숲을 살릴 때에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얼거리를 우리 어른들도 새롭게 배울 수 있기를 빌어요. 《치유의 숲》을 쓴 신원섭 님도 산림청장으로 지내는 동안 이 나라 숲과 들과 나무와 풀을 골고루 아끼는 정책을 공무원들한테 찬찬히 알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숲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뜰 가득 숨탄 것들 - 한 우리말 지킴이의 삶의 뒤안길
문영이 지음 / 지식산업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책 읽기 72



아침이 밝는 노래

― 내 뜰 가득 숨탄것들

 문영이 글

 지식산업사 펴냄, 2014.9.8.



  벚나무 곁에 서면 벚나무 냄새가 솔솔 퍼집니다. 벚꽃이 피면 벚꽃 냄새가 퍼지고, 벚잎이 맺히면 벚잎 냄새가 퍼집니다. 모과나무 곁에 모과나무 냄새가 살살 퍼집니다. 모과꽃이 피면 모과꽃 냄새가 퍼지고, 모과잎이 벌어지면 모과잎 냄새가 퍼집니다.


  나무에는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나무는 그예 나무입니다. 나무마다 냄새가 다릅니다. 나무마다 결이 다릅니다. 나무마다 냄새가 다르고, 무늬와 빛깔이 달라요. 그런데, 어떤 나무이든 한 가지는 똑같습니다. 모든 나무는 우리한테 푸른 바람을 베풀어 줍니다.


  나무와 함께 살면 언제나 푸르게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늘 푸르게 빛나는 바람을 마십니다. 나무를 아끼면서 하루를 열면 나무가 들려주는 짙푸른 노래가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 두 식구만 남고서 냄비들을 작은 걸로 바꾸었다. 아무리 작은 냄비를 써도 먹고 남지 않게 만들기란 어렵다. 꾀가 생겼다. 밥그릇 세 개가 들어갈 만한 압력솥에 겅그레를 놓고 그 밑에 물을 붓는다. 살짝 데칠 시금치는 겅그레 위에 펴놓고 불을 지펴 추가 움직일 만하면 불을 끄고 바로 꺼낸다 … 가을 되면 한 해 먹을 참깨·들깨·콩·팥 팔아 씻어 널어놓고 따끈한 햇살 들에 받으며 젓는 마음 … 어느 사이 실고추 가시는 일도 멈췄다. 빨래기계와 냉장고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내 마음이 거칠어졌다면 이상한 표현이 되나? 더 바빠진 마음이다 ..  (15, 20, 21쪽)



  아침이 밝을 적에 먼 멧자락이나 바다를 바라보면 해님이 붉게 타오르면서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낮에 걸린 해는 하얗지만, 아침저녁으로는 노랗고, 새벽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에요.


  지구별에서 바라보는 해는 때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해는 늘 똑같은 빛과 볕과 살을 우리한테 베풀어 주겠지요. 해가 지구별을 언제나 골고루 비추면서 보듬어 주기에, 우리는 해를 바라보며 ‘해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하겠지요.


  가만히 보면, 별님과 달님입니다. 꽃님과 풀님입니다. 하늘님과 땅님입니다. 바다님과 숲님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은 님입니다. 짐승님이요, 벌레님입니다. 이웃님이자 동무님이에요.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반갑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나는 누구하고라도 어깨를 겯으면서 하루를 새롭게 짓습니다.



.. 시장에서 도라지 뿌리는 아무 때나 볼 수 있지만, 이른 가을(한가위 무렵)이 도라지 뿌리를 캐는 철이다. 그때를 놓치면 다시 새순이 올라오고, 그 순은 겨울을 맞아 얼어죽는 헛순이다 … 언젠가 연한 마늘종 한 줌 뽑아다 놓고 잊고 있다가 보니 줄기는 바짝 말라 있고, 줄기 끝에 시늉으로만 맺혔던 씨는 또랑또랑 여물었다. 제 몸의 양분을 아낌없이 씨에게 다 바쳤다 … 온누리는 보이지 않는 제 씨앗 사랑으로 꽉 짜여 있어, 그 힘으로 모든 숨탄것들이 살아가지만 … 지난여름 서울 거리를 무심히 걷다가 산 나무 밑동에 못질을 해 나무 표지 표를 달아놓은 것에 흠칫했던 기억도 있다. 깊이 박히는 못이 아니라고 발뺌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은 벌써 흠칫 놀란 뒤다. 수많은 전등을 나무에 매달아 치레로 쓰며 ‘나무에게는 해가 없다’는 말도 퍼뜨린다 ..  (32, 41, 59쪽)



  바람이 붑니다. 사월바람이 붑니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는 갓꽃과 유채꽃이 골고루 섞여서 노랗게 꽃송이를 터뜨립니다. 갓꽃과 유채꽃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두 가지 풀은 갓과 유채이니까, 꽃은 틀림없이 다를 텐데, 아무리 들여다보고 쳐다보고 바라보아도, 꽃송이로는 도무지 두 가지 꽃을 가르지 못 하겠습니다. 잎을 보면 갓과 유채를 바로 알아챌 수 있으나, 꽃을 보아서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보고 또 보고 다시 보면 얼추 알 듯합니다. 다시 보고 새로 보고 거듭 보면 어렴풋하게 둘을 알 만합니다.


  매화꽃과 벚꽃과 복숭아꽃을 바라볼 적에도 이와 같아요. 알 듯 모를 듯하다가도 어느새 아하 그렇구나 하고 압니다. 붓꽃과 창포꽃을 볼 적에도 이와 같지요. 이야 참 비슷하게 생겼네 싶으면서도 어느 대목에서 다른가 하고 알 만합니다.



.. 떡 방앗간에 가 보면 당원이나, 설탕 봉지를 툭툭 터서 떡가루에 쏟아붓는다. ‘음식 맛을 버려놓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싶다 … 쑥이나 모시 잎을 데칠 때도 소다를 넣어서 억지 색을 내지 않는다. 모든 음식은 만드는 재료의 맛과 제 빛이 사는 것이 제맛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학교에서도 다 같은 음식을 먹고, 직장에서도 같은 음식을 먹는 곳이 많다. 제 입맛을 고집하기가 어려운 시대다 … 온실을 짓는 억지가 없어도 고구마, 감자, 무, 토란, 더덕, 도라지, 연 뿌리, 우엉 뿌리들이 겨울을 넘겨준다 ..  (70, 71, 79쪽)



  문영이 님이 쓴 《내 뜰 가득 숨탄것들》(지식산업사,2014)을 읽습니다. 전라북도 익산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할머님이 엮은 글을 읽습니다. 할머님이 쓴 글은 수수합니다. 따로 꾸미지 않으니 수수합니다. 가만히 보면, 글을 쓸 적에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은 글 그대로 써야 글입니다. 말은 말 그대로 해야 말입니다. 밥은 밥 그대로 지어야 밥이고, 씨앗은 씨앗 그대로 심어야 씨앗입니다.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사랑스러운 기운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노래를 합니다. 바느질을 하면서 노래를 합니다. 바늘 한 땀마다 사랑스러운 숨결이 닿기를 바라면서 노래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모든 몸짓에 사랑을 담습니다. 따로 ‘사랑인 척’하지 않습니다. 애써 ‘사랑처럼 보이도록’ 하지 않아요. 그저 사랑이 됩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흐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모든 삶과 살림을 사랑으로 짓습니다.



.. 해질녘엔 새하얀 꽃 밑에 털북숭이 열매가 달린 암꽃과 열매가 없는 수꽃이 어우러져 피는 꽃 옆에 서면, 박꽃에선 어미 젖꼭지에서 막 옮겨 받은 아기 냄새가 난다. 박잎도 아기 살갗이다. 그 곁에선 내 마음도 아기를 기르는 어미 마음이다 … ‘말복 안에 박이 열려 까치 대가리만 하면 박이 세어 바가지로 쓸 수 있다’ 하고, 그 뒤에 열리는 박은 나물감으로 귀하게 쓴다 … 박속을 떠낸 속을 들여다보면 심줄이 수박 무늬 골 지듯 골 지어 있다. 그 심줄을 긁어 버리면 박이 마르면서 바가지가 속으로 말려들어서, 박이 아무리 잘 세어도 바가지 구실을 못한다. 그런 모습을 ‘배꼽이 떨어져 못 쓰게 됐다’고 한다. 그 심줄이 다치지 않게 손가락 끝으로 살살 밀어 남은 박속을 모두 긁어내고, 심줄이 그대로 살아 있도록 마음 쓰고 물을 부어 가며 솔로 살살 닦에 볕에 말린다 ..  (88, 89쪽)



  겉모습을 꾸미기에 예쁘지 않습니다. 마음이 예쁠 때에 몸도 예쁩니다. 겉모습을 안 꾸미기에 안 예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꿀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예뻐요. 멋들어지거나 값진 옷을 입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마음이 착하면서 참다울 적에 아름답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는대서 안 아름답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고 돕는 따사로운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사람은 어떤 옷을 입든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글쓰기를 배우려고 학교나 학원을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잘 쓰려고 놀라운 스승을 찾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수많은 문학책을 읽어야 글솜씨가 늘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을 통째로 달달 외워야 글을 멋있게 쓰지 않아요.


  나라밖에서 뭔가를 배웠으면 글을 잘 쓸까요? 아니지요. 나라밖에서 배운 사람은 나라밖에서 배운 티를 글에 보여줍니다. 대학교를 다닌 사람은 대학교를 다닌 티를 글에 보여줍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책을 많이 읽은 티를 글에 보여주어요.


  이리하여, 삶을 사랑으로 지으면서 아이를 보살핀 사람이 글을 쓰면, 이녁 글에는 언제나 따사롭거나 포근하면서 환한 사랑이 드러납니다.



.. 쓰레기를 만나면 자연에서 얻은 것과 사람이 만든 물건으로 쉽게 가른다. 자연에서 얻은 쓰레기는 그 모양이 아무리 고와도, 험해도, 쉽게 썩거나 더디게 썩거나 다 썩는다. 나는 그 썩는 쓰레기를 귀하게 여긴다 … 빨래는 며칠씩 모았다가 하고, 푸성귀는 밖에서 씻고, 거기서 나오는 물은 항아리에 모아놓아, 모기가 알을 낳을까 봐 비닐 한 장 덮고 뚜껑을 덮는다. 꽃밭을 가꿀 물이다 ..  (149, 150쪽)



  문영이 님이 빚은 이야기책은, 참말 이야기책입니다. 스스로 지은 삶이 이야기로 새롭게 피어나는 글을 엮은 책입니다. 하루가 밝는 아침에 이 아침을 오롯이 느끼면서 삶을 가꾸기에, 아침이 밝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글로 씁니다. 하루가 저무는 저녁에 이 저녁을 소롯이 느끼면서 삶을 짓기에, 저녁이 저무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글로 여밉니다.


  우리는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를 굳이 글로 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를 구태여 글로 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책에서 엿본 이야기’를 애써 글로 쓸 까닭이 없습니다.

  나 스스로 겪은 삶을 글로 쓰면 됩니다. 나 스스로 가꾸면서 짓고 누린 삶을 글로 쓰면 돼요. 내 삶은 못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 삶이 잘나지 않습니다. 내 삶은 그저 내 삶이기에, 이 삶을 ‘내 글’로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여다본 내 삶이 아닌, 바로 내가 스스로 바라보는 내 삶을 쓸 때에 ‘글’입니다.



.. 이른봄, 사람은 아직 봄기운을 못 느낄 때, 둑새풀과 함께 하얀 서릿발 덮고 잠자다가 햇살 낌새에 얼른 제 몸을 덥혀 서릿발을 녹이고, 반짝반짝 윤이 나던 두해살이 벼룩나물을 잊을 수 없다 … 첫여름, 들에 나가면 언제나 엉겅퀴꽃을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런데 들에서 엉겅퀴꽃 본 지가 아스랗다. 산에서는 더러 볼 수 있는 바늘엉겅퀴는 잎째짐이 깊고 가시가 억세고 꽃도 자잘한 것이 빛깔도 흐리다 … 꽃다지가 노래에만 있는 나물이 된 것처럼 이제 엉겅퀴마저 자취를 감추는가 싶어 애답다. 독일은 들에 난 풀 한 포기도 마음대로 손대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는다고 한다 ..  (171, 173, 175쪽)



  한국말사전을 뒤져야 한국말을 잘 살려서 쓰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북돋우는 사람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사랑하고 북돋우면서 글을 사랑스레 쓸 수 있습니다. 학교교육을 많이 받거나 책을 많이 살펴야 놀라운 문학을 선보이지 않습니다. 삶을 알뜰살뜰 여미면서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 생각을 알뜰살뜰 여미고 보듬으면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내 뜰 가득 숨탄것들》에 깃든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이웃집 할머니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웃마을 할머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곁님을 보살피며 흙과 풀과 나무를 아끼는 손길로 삶을 가꾼 할머니가 이 땅에서 새롭게 살아갈 아이들한테 남기는 보배 같은 글꽃입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