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 철학자 피터 싱어가 쓴 동물운동가 헨리 스피라 평전 불온한 책 2
피터 싱어 지음, 김상우 옮김 / 오월의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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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96



평등한 사이일 적에 평화롭습니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피터 싱어 글

 김상우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3.7.22. 16000원



“군대는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려고 했다 … 검열은 무수히 많았다. 모든 물건이 균일해야 했고 정확한 장소에 있어야 했다. 심지어 군화 밑창까지 닦아야 했다. 병사는 좀비처럼 생각하는 것도 자발적인 행위도 허용되지 않았다.” (45∼46쪽)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오월의봄, 2013)는 ‘헨리 스피라(1927∼1998)’라고 하는 사람이 걸어온 길을 적바림한 책입니다. 헨리 스피라 님은 사람한테뿐 아니라 짐승한테도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지요. 이른바 ‘동물권’을 외치면서, 실험실에서 숱한 짐승이 소리 없이 죽어야 할 까닭이 없다는 뜻을 널리 폈다고 합니다.


  사람들 눈에 좀처럼 뜨이지 않으나 엄청나게 시달리거나 들볶이다가 죽는 짐승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거의 알 수 없었대요. 왜냐하면 실험실에서 벌이는 ‘동물실험’은 좀처럼 실험실 밖으로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흰쥐 몸에 무엇을 하는지, 토끼 눈에 무엇을 하는지, 고양이한테 무엇을 하는지, 실험실 바깥인 여느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면 독일이나 일본은 숱한 사람들을 마구 잡아다가 끔찍하게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과학 연구’라는 이름을 붙이면서요.



그들의 연구가 인간 아닌 동물을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그들은 그 같은 자유를 누려도 좋은 것일까? 헨리는 결심했다. 고양이 실험 반대운동은 동물실험을 폐지하는 게 아니라 “이득을 얼마나 보겠다고 동물을 이토록 심하게 괴롭히는가?”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130∼131쪽)


고양이 성행동 실험 반대운동이 성공을 거두었던 이무렵 헨리는 더 큰 목표를 찾아 나섰다. 그 같은 작업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과학문화를 바꾸는 것이었다. (156쪽)



  우리는 모르는 것투성이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르는 것투성이는 아니었다고 느껴요. 우리가 저마다 자그마한 마을에서 아기자기하게 살림을 손수 지으며 살아가던 무렵에는 모르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느껴요. 그런데 사회가 첨단으로 흐르면서 모르는 것이 늘어납니다. 학교가 숱하게 생기고, 전문기관이나 연구소나 갖은 정치기구가 생기는 사이에도 모르는 것이 늘어나요.


  왜 그러할까요?


  전문기관에서는 어떤 전문 자료를 어떻게 건사하는가를 잘 안 밝힙니다. 어쩌면 굳이 안 밝힐 만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손전화라는 기계를 쓰는데, 이 손전화라는 기계를 만들려면 무엇을 바탕으로 삼는지를 사람들은 거의 몰라요. 손전화를 만드는 어느 광물을 얻느라 우거진 숲을 파헤치거나 무너뜨립니다. 더구나 몇 해쯤 쓰고서 낡고 말아 버리는 손전화 기계는 어디로 가는가를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우리는 핵발전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얼마나 알까요? 청와대 안팎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시장실이나 군수실에서, 군부대에서, 고위 공직자라는 이들이 어울리는 곳에서, 경제를 거머쥔다는 이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참말로 무슨 일이 있는가를 알 수 없어요.



반수치사량은 동물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음에도 별다른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계속 확대됐다. 정확성의 의미가 완벽하게 없는데도 관료주의와 수학적 정확성이 합심한 사례로 보는 게 맞겠다. (243쪽)


화장품 기업들이 동물검사를 중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안이 개발됐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283쪽)



  의약품뿐 아니라 화장품도 사람들이 쓰기 앞서 생체실험을 으레 하는데, 이 생체실험은 사람한테 하지 않고 온갖 짐승들한테 한다고 해요. 이 때문에 실험실에서는 숱한 짐승이 목숨을 잃을 뿐 아니라, 목숨을 안 잃어도 눈이나 팔다리를 잃거나 매우 괴로워 한답니다.


  헨리 스피라 님은 처음부터 동물권이라는 대목에 눈을 뜨지는 않았다고 해요. 폭력이 얼마나 그악스러운가를 몸으로 느꼈고, 폭력으로는 평화도 평등도 민주도 이룰 수 없다고 느꼈다지요. 이러던 어느 날 사람들 눈밖에서 너무나 많은 짐승들이 아주 하찮게 죽어 나가는 이야기를 들었고,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를 하나하나 찾아나섰으며, 이때부터 온삶을 바쳐서 ‘우리 이웃인 작은 짐승한테 권리를 도로 찾아 주는 길’에 나섰다고 합니다.



“폭력은 학대행위를 옹호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자처할 빌미를 마련해 준다.” (321쪽)


“타인을 위해서 나를 희생했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원하는 일을, 가장 원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할 뿐이죠.” (399쪽)



  어느 분은 동물권이라는 말이 거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물권이라는 말이 거북한 분이라면 사람권(인권)이라는 말도 거북하지 않을까요? 우리를 둘러싼 삶이 평등하면서 평화롭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기에 짐승도 하찮게 보고 이웃도 따돌리지 않을까요?


  서로 아낄 수 있는 마음이기에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합니다.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이기에 이 지구라는 별에서 즐거우면서 곱게 어우러지는 길을 생각하거나 찾습니다.


  작은 짐승이라서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고 여기는 마음이라면, 이웃인 사람한테도 따뜻하거나 너그럽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모든 짐승이 평등하다고 느끼며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라면, 작거나 여린 모든 사람이 나하고 똑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줄 알아차릴 테고요.


  틀을 가르지 않고, 위아래를 나누지 않으며, 나한테 돈이 되는 쪽에 끌리지 않는 고른 마음이 퍼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동물권도 사람권도, 고른 평등과 평화도 모두, 넉넉하고 따사롭게 온누리에 드리우기를 빌어요. 평등한 사이일 적에 평화롭습니다. 평화로운 사이일 적에 평등합니다. 2017.12.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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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 사람아 - 뭇 생명의 삶과 쉼터, 미래세대에게 빌려온 국립공원
윤주옥 지음 / 산지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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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1


지리산 국립공원 쉰 돌에도 철들지 못한 우리
― 지리산 아! 사람아
 윤주옥 글·사진
 산지니, 2017.10.23. 15000원


  지리산은 이 나라 첫 국립공원이며, 국립공원 이름이 붙은 지 어느덧 쉰 해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첫 국립공원이 ‘고작’ 쉰 해밖에 안 된다고 하니, 한국은 퍽 뒤늦은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어요. 일제강점기나 개발독재나 새마을운동이 있기는 했어도, 우리 보금자리를 우리 아이들도 아름다이 누릴 수 있도록 건사하는 데에 마음을 깊이 기울인다고 느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우리는 어느새 샘물이나 냇물이나 우물물을 잊어요. 샘물이나 냇물이나 우물처럼 맑고 시원한 물을 커다란 공장에서 뽑아올려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돈으로 사고파는 ‘한쓰임 먹는샘물(일회용 먹는샘물)’에 익숙합니다. 지리산을 첫 국립공원으로 삼던 무렵만 하더라도 웬만한 시골에서는 냇물을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었어요. 도시에서도 오랜 마을에는 샘터나 우물터가 있었고요.


어르신이 어렸을 때는 지리산에 곰이 멧돼지보다도 더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는 3마리쯤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호랑이 이름이 지리산 순래봉이었다고 한다. 그의 할머니는 순래봉이 걸어가면 만복대 왕억새 위로 등걸이가 보였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고 했다. (17쪽)

부산에 가려면 우선 버스 타는 곳까지 나가야 하는데, 집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서 3시간쯤 걸린다고. 예전엔 1시간 반이면 갔는데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빨리 못 걷는다고 하신다. 새벽녘의 길 나섬. (24쪽)


  너무 지나친 막삽질 때문에 온나라가 끙끙거리는 탓에 맑은 물을 누구나 손쉽게 마시기 어려운 오늘날이에요. 이러다 보니 사람 발길이 없는 깊은 숲이나 바다에서 맑은 물을 따로 뽑아올려서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사고파는 일이 생기는데요, 이때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옵니다. 게다가 플라스틱병을 만들고 나르고 가게에 놓는 데에 드는 자원이 엄청나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거두어 다루는 데에도 끝없는 자원이 들고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물을 물려줄 만할까요. 앞으로도 플라스틱병에 담은 물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또는 막삽질로 망가뜨린 4대강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또는 두 손으로 떠서 언제나 누릴 수 있는 냇물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들은 어쩌면 ‘물이란 가게에 있는 것’이라고 잘못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흐르는 물이 아닌 페트병 물만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우리가 마시는 물이란 모두 졸졸 흐르는 냇물이라는 대목’을 하나도 모를 수 있구나 싶어요.

  산문책 《지리산 아! 사람아》(산지니, 2017)는 지난 2000년부터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 일을 맡다가 2008년부터 서울을 떠나 지리산 어느 자락에 보금자리를 틀면서 살아가는 윤주옥 님이 온몸으로 만난 지리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삼을 키워 찌고 째서 삼아 삼베옷을 해 입었다. 비누는 없었고 짚을 태워 그 물로 빨래를 했다. 화장 같은 건 할 새도 없었다. 베로 짠 버선을 신고, 신발은 짚을 삼아서 신고 다녔다. 겨울에는 덧버선을 만들어 신었다 … 설날에는 돌도구통에 쌀을 찧어 손으로 비벼 만든 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었다. (38쪽)

여순사건 후 산으로 들어온 빨치산들이 빗점으로 자주 내려왔다. 그들은 돌도구통에 방아를 찧어 놓으면 빼앗아 갔다. 안 빼앗기려고 치마 밑에 넣어둔 것까지 어찌 알고 가져가 버렸다. 시절이 하 수상하던 시절, 정부는 빨치산들에게 은신처와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며 마을을 불태우고 마을사람들은 마을에서 쫓아냈다. 그녀 나이 열다섯 살 때였다. (39쪽)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이라는 이름을 듣는 분은 얼핏 이곳이 시민모임이 아닌 관제모임인 듯 잘못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나 ‘국시모’라고도 하는 이곳은 오롯이 시민 힘으로 살림을 꾸리면서 국립공원이 국립공원다울 수 있도록 힘쓰는 작고 알찬 모임이에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놓치거나 지나치는 일이 있으면 다그치고, 정부 기관이 잘하는 일이 있으면 북돋우는, 두 가지를 알맞게 이끌어 가는 곳이라고 할 만합니다.

  저는 지난 열다섯 해 즈음 국시모란 시민모임을 뒷배하는 숱한 이웃님 가운데 하나로 지켜보면서 이러한 일솜씨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국시모 일을 맡는 한 사람이자 지리산 둘레에서 즐거이 살림을 짓는 한 사람인 윤주옥 님이 ‘국립공원 지리산’하고 ‘삶자리 지리산’을 엮어서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이 책을 차근차근 읽어 내렸습니다.


지리산국립공원이 3개 도에 걸쳐 있으니 케이블카도 3개는 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욕망과 욕심의 끝을 보여주는 말들이다. (124쪽)

한 차례 훼손의 광풍이 휩쓸고 간 노고단에 군사시설과 통신시설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이다. 길이 생기고, 차량이 다니고, 사람 발길이 잦아지며, 노고단은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노고단 훼손의 결정타는 1988년에 건설된 성삼재 도로이다. (130쪽)


  길그림을 펼쳐 봅니다. 지리산 또는 지리산국립공원을 둘러싸고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가 맞물립니다. 그런데 시·군으로 치면 남원, 장수, 함양, 산청, 하동, 구례, 곡성, 이렇게 일곱 지자체가 맞물립니다. 지리산하고 매우 가까운 다른 지자체를 보면 진주, 광양, 순천이 있군요.

  이 지자체마다 관광객을 더 많이 끌어모으겠다면서 하늘차(케이블카)를 놓는다고 나선다면, 하늘차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길을 더 닦겠노라 한다면, 관광단지나 휴양시설이나 골프장을 지리산 언저리에 마련하겠노라 한다면, 산을 더 깎거나 냇가에 시멘트를 부어 자전거길을 닦겠노라 한다면, 지리산이나 지리산국립공원은 우리가 사랑할 만한 아름다운 멧자락으로 이어가기는 어려우리라 느껴요.

  국립공원뿐 아니라 국립공원이 아닌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냇물이 아름답다면, 사람 손길이나 발길이나 때를 함부로 안 탔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자동차나 삽차가 함부로 치고 들어오지 않기에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냇물이 아름다우며 정갈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지리산 피아골에 댐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들의 무지막지한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모순덩어리 국가에 대항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77쪽)

국립공원제도를 만든 미국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한 곳도 없다. (186쪽)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비용은 작게는 600억 원에서 많게는 10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1년 예산과 맞먹는 돈이다. 이 돈이 케이블카 건설에 사용되지 않고 교육·복지 예산으로 쓰인다면 이게 오히려 지역 경제에 도움 되는 일 아닐까? (187쪽)


  《지리산 아! 사람아》를 쓴 윤주옥 님은 이 나라 공무원하고 개발업자한테 묻습니다. “지리산 피아골에 댐을 세우겠다는 생각”은 참으로 어떤 머리하고 마음으로 끌어냈는지 궁금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있지요, 이 나라 공무원하고 개발업자 분들한테 안된 말씀이지만, 이분들은 지리산국립공원에 댐을 세우겠다는 무시무시한 계획에 앞서도,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인 여러 곳에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세우려고 하는 계획을 뽑아내기도 했어요. 제가 사는 전남 고흥에도 국립공원 마을이나 국립공원하고 가까운 곳에 지자체가 자꾸 위해시설을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불거집니다.

  무엇보다 4대강사업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요? 한 사람 머리에서만 나왔을까요? 아니지요. 우두머리 한 사람을 둘러싼 숱한 공무원하고 개발업자가 함께 내놓은 끔찍한 막삽질이었다고 생각해요.

  막삽질을 벌이려 하면서 수백 억이나 수천 억이나 수 조에 이르는 돈을 매우 쉽게 끌어모아서 쓰는 나라나 지자체예요. 그러나 이 돈을, 이 엄청난 돈을, 교육이나 복지에 제대로 쓴다면, 또는 그만 한 돈을 굳이 더 세금으로 걷지 말고 사람들한테 돌려준다면, 이 나라는 좋은 사회와 고운 마을과 맑은 숲을 차분히 지킬 만하리라 봅니다.


7배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초토화된 노고단 정상부는 1991년부터 10년간 전면 통제되었다. 성삼재도로의 포장을 결정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성삼재도로 포장이 지리산국립공원 생태계와 이용 행태를 바꾸고, 1100미터 높이의 성삼재가 도떼기사장으로 변할 것이란 사실을. (208쪽)


  《지리산 아! 사람아》는 앞쪽에 지리산 할머니 할아버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태어나고 자란 지리산하고 얽힌 이야기를 오롯이 할머니 할아버지 삶에 맞추어 들려주어요. 지리산 범 이야기이며, 오롯이 손수 지은 살림으로 먹고살았다는 이야기는 고되면서도 평화롭구나 싶습니다. 지리산에서 밥·옷·집을 모두 손수 지으며 조용히 살던 분들한테는 전쟁무기도 총칼도 없이, 오직 낫하고 호미하고 쟁기하고 도끼로 살림을 지었으리라 느껴요.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고 절구를 찧을 뿐이면서도 아이들한테 살림짓기를 제대로 물려주고 그 터를 오롯이 가꾸었구나 싶습니다.

  이 책 뒤쪽은 지리산을 둘러싼 안쓰러운 막삽질을 마주하면서 이 추레한 흐름을 끊을 길을 찾으면서 마음이 아픈 이야기가 나옵니다. 추레한 흐름이 아닌,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국립공원 이름이 아니어도 아름다울 우리 마을을 저마다 사랑할 수 있기를 비는 뜻을 담아요.


국립공원과의 동행이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많은 사람과 함께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취하는 과정에서 그 아름다움이 끌어들이는 그림자, 국립공원의 아픔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리산 관통도로, 계곡 내 취사, 불법 산행, 사람들의 발길에 허옇게 드러난 바위와 흙, 무단 채취, 밀렵, 댐과 케이블카, 골프장……. 국립공원은 어딜 가나 신음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국립공원이 아름다워서였다. (6쪽)


  국립공원에 막삽질을 들이대려는 이들은 늘 ‘국립공원이 아름다우니 잘 개발해서 돈을 버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답니다. 그런데 국립공원은 왜 국립공원일까요? 국립공원이 국립공원일 수 있는 까닭이란 뭘까요?

  우리 이제는 철든 사람이 되어야지 싶어요. 지리산 국립공원 쉰 해라면, 사람 나이로도 쉰 살인 셈이에요. 쉰 살이라는 나이에 이르도록 우리는, 우리 정치 사회 문화 교육은, 얼마나 철이 들었는지 조용히 물어보고 싶습니다. 2017.12.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글에 붙인 사진은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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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 - 네팔인에게 배우는 인생 여행법
서윤미 지음 / 스토리닷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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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8


‘아샤·마야’는 네팔말로 ‘꿈·사랑’
―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
 서윤미 글·사진
 스토리닷, 2017.9.28. 14000원


  어릴 적에는 네팔이라는 나라를 몰랐어요. 세계지도를 펴고서 멧골이 무척 깊고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만 여겼습니다. 바다란 없이 온통 땅으로 둘러싸였기에, 바다를 안 끼면 답답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어요. 높은 멧골로 둘러싸인 나라에서는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으며 어떤 집에서 살려나 매우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어요. 그리고 네팔이란 나라에 ‘네팔말’이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지요.


“저 방글라데시 친구가 지어 준 이름 있는데, 아샤(Asha)라는 이름이에요.” “아샤라는 이름은 네팔에도 있어요!” “그래요? 아샤는 ‘희망’이라는 뜻이랬어요.” “네팔에서도 똑같은 뜻이에요. 희망!” 그렇게 내 이름은 다시 아샤가 되었다. 나랑 같이 네팔에 일하러 온 언니는 ‘마야(Maya)’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야는 사랑이라는 뜻이랬다. (23쪽)


  네팔이라는 나라에서 지내며, 또는 네팔을 숱하게 오가면서, 한국하고 네팔을 잇는 디딤돌이나 징검돌 구실을 한다는 서윤미 님이 쓴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스토리닷, 2017)를 읽다가 첫머리에서 네팔말 두 가지를 듣습니다. 하나는 ‘아샤’요, 다른 하나는 ‘마야’입니다. 아샤는 네팔말로 꿈이라 하고, 마야는 네팔말로 사랑이라 한대요.

  꿈하고 사랑. 꿈이랑 사랑. 두 낱말을 곱씹습니다. 한국에서는 ‘꿈’을 이름으로 삼는 분은 드물지만 ‘꿈이’처럼 뒷말을 붙여서 즐겁게 쓰곤 합니다. ‘사랑’은 이름으로 널리 써요. 뜻으로도 느낌으로도 결로도 ‘꿈·사랑’은 매우 고운 말이지 싶은데, 이는 네팔에서도 매한가지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말이 다르고 땅이 달라도, 삶을 바라보는 마음은 서로 같구나 싶어요.


매일 1500여 명의 네팔인들이 이주 노동을 떠나며 매일 3명씩 죽어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그날 공항에서 누군가 울고 있으면 공항에 죽은 이주 노동자의 관이 들어오는 날이라 했다. (32쪽)

이 방은 아주머니 딸이 쓰던 방인데 딸은 지금 시집가고 없다고 했다. 내가 자기 딸과 꼭 닮아 딸 생각이 난다며 손에 유채꽃 기름을 들고 들어오신 것이었다. 걷느라 힘들었을 나를 생각하며 나의 종아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시더니 유채꽃 기름으로 내 종아리를 문질러 주셨다. (47쪽)


  네팔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 네팔에서 조용히 살림을 지으며 살기가 만만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로 떠나서 돈을 버는 젊은이가 많다고 해요. 어느 한쪽에서는 관광하러 가는 나라로 여기는 네팔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주노동자가 빠져나가는 나라인 네팔이라지요. 날마다 천오백에 이르는 네팔사람이 돈을 벌려고 제 나라를 떠나는데, 이 가운데 날마다 셋은 주검으로 네팔에 돌아온다고 해요.

  우리는 이 대목을 얼마나 알거나 느낄까요? 왜 네팔이라는 나라는 날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제 나라를 빠져나가야 할까요?

  집에 텔레비전이나 손전화를 들여야 하기에 이주노동자가 되어야 할까요. 학교교육을 받으려면 돈이 드니 식구 가운데 누군가 이주노동자가 되어야 할까요. 현대 문명이 깃든 집을 새로 지어야 하니 이주노동자가 돈을 벌어다 주어야 할까요.


세계문화유산은 무너졌고 곳곳에 안전표지판이 즐비했다. 무너진 잔해 옆에서 사람들의 일상은 그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지 1년 반이 지난 2016년 여름, 자다가 갑자기 나는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네팔은 여전히 아름다운데’라며. 왜 내 입에서 자다 말고 그런 문장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216쪽)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네팔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관광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요즈음이든, 관광이란 없던 지난날이든, 이주노동자가 되려고 네팔을 떠나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이든, 이주노동이란 없이 모두 고향마을에서 조용히 눈밭바라기를 하던 지난날이든, 네팔은 네팔답게 아름답다지요. 무시무시한 지진 탓에 네팔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이 무너지고 삶터가 쓰러진 이즈음에도 네팔은 한결같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면 네팔이라는 곳은 무엇이 아름다울까요? 네팔사람은 네팔에서 스스로 어떤 아름다움을 마주할 만하고, 네팔을 찾아나서는 이들은 어떤 아름다움을 만날 만할까요?


가만히 혼자 두 시간 동안 앉아 있으니 안개가 내려앉고 이동하면서 들리는 산과 산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안개소리가 들린다. 마을이 잘 내려다보이는 돌에 앉아 있으니 뒤로는 바람소리만, 앞으로는 마을의 소리가 들린다. (128쪽)

대자연보다 경이로웠던 것은 결국 네팔인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나는 얼마나 내 손으로, 내 힘으로 할 줄 아는 게 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168쪽)


  예부터 이 땅은 고요한 아침나라 같은 이름을 얻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없이 해맑게 피어나는 하늘빛이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한자말로 금수강산이라고도 했어요. 비단에 그림무늬를 새기듯이 멧골이며 냇물이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해요. 비록 오늘날에는 온갖 막삽질에다가 4대강사업으로, 또 갯벌을 어마어마하게 함부로 메운 짓, 끝없는 송전탑, 고속도로, 골프장이 넘쳐나면서 눈부신 멧골이나 티없는 냇물은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데 있지요, 이 땅이 예부터 아름답고 고요하며 아침나라 같았다면 멧골이나 냇물만 이와 같다는 뜻은 아니라고 느껴요. 이 땅에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사람들이 저마다 싱그럽고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아름다운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기에 아름답게 노래하고 일하고 살림하면서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눈부신 숲을 정갈하게 돌보기에 기쁘게 꿈꾸고 웃고 이야기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을마다 두레나 품앗이를 이룹니다.

  네팔이라는 나라를 놓고 예나 이제나 아름답다고 한다면, 빼어난 숲터만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이 숲터를 가꾸면서 삶을 짓는 네팔사람이 더없이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문화유산이라 하면 닳을까 손상될까 만지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가 강하다면 네팔에 와서는 그들의 삶 속에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10쪽)


  네팔말로 꿈이랑 사랑을 뜻한다는 ‘아샤·마야’를 되새깁니다. 우리는 네팔에 가서 아샤나 마야 같은 고운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네팔사람은 한국에 와서 꿈이나 사랑 같은 고운 말을 들을 수 있어요.

  아샤와 마야가 네팔을 곱게 가꾸고, 꿈하고 사랑이 한국을 곱게 돌봅니다.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으로도, 숲터나 마을이나 나라나 멧골에 붙이는 이름으로도, 아샤·마야하고 꿈·사랑은 즐거운 노래가 되리라 봅니다. 사람 사이에 숲이 있고, 숲 사이에 사람이 있어요. 사람 사이에 깊은 멧골하고 눈밭이 있으며, 깊은 멧골하고 눈밭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네팔도 한국도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터전이라는 이름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11.2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스토리닷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마이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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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 철수와영희 생명수업 첫걸음 3
김성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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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2


보금자리에 사는 나무 심는 멋쟁이는 누구?
― 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
 김성현 글·사진
 철수와영희, 2017.10.30. 18000원


  가을이 깊어 가면서 마을마다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닙니다. 까마귀는 가을까지는 따로따로 살지만, 추위가 찾아들면 크게 무리를 지어서 다닙니다. 까치도 여느 때에는 따로따로 살지만,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다닐 즈음부터 커다랗게 무리를 지어요. 때때로 까마귀떼하고 까치떼가 하늘에서나 빈논에서 자리다툼을 하는데, 대단히 시끌벅적하면서 하늘이나 들을 새까맣게 뒤덮습니다.

  이 가을에는 저희 집에 숱한 새가 끊임없이 찾아들어 먹이를 찾습니다. 저희가 집에서 새모이를 따로 마당이나 뒤꼍에 두지는 않습니다. 다만 감나무에 까치밥을 잔뜩 두어요. 사다리를 받치고도 딸 수 없는 높은 가지에 맺은 감을 그대로 두는데, 이런 감이 서른 알이 넘지요. 새소리가 많이 들려서 뒤꼍 감나무를 올려다보면, 참새나 딱새 같은 작은 새부터 직박구리하고 물까치를 비롯해서 아직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숱한 새가 서로서로 감알을 쪼겠다면서 부산합니다.


발가락 개수도 사람은 다섯 개지만 새는 보통 네 개 또는 세 개야. 가장 흔한 것은 발가락 세 개가 앞으로 나와 있고 하나가 뒤쪽을 받쳐 주는 모양이지. 이런 모양은 나뭇가지를 잡고 앉거나 사물을 움켜잡기 알맞아. (20쪽)

새는 눈이 머리뼈에 고정되어 있어서 사람처럼 눈을 움직이기 어려워. 그래서 눈을 움직이지 않고도 넓게 볼 수 있도록 진화했지. 사람의 시야가 약 200도인데, 비둘기는 316도. 멧도요는 359도라고 해. 부엉이류는 시야가 사람과 거의 비슷하지만 대신 목을 270도나 돌릴 수 있어서 좁은 시야를 극복한단다. (26쪽)


  《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철수와영희, 2017)는 열 살 즈음 어린이도 새 이야기를 한결 쉽게 살필 수 있도록 쓴 길잡이책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새를 지켜보거나 살펴보는 사람은 어른만 있지 않아요. 어른들은 한자말로 ‘탐조’ 같은 말을 쓰는데요, 이런 말은 아이들한테 퍽 어렵습니다.

  별을 보며 ‘별보기·별바라기’라 하듯이, 달을 보며 ‘달보기·달바라기’라 하듯이, 새를 보는 일은 ‘새보기·새바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나 생태 이야기도, 사회나 인문 이야기도, 문화나 예술 이야기도, 앞으로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모두 새롭게 쓴다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암컷은 화려하지 않고 색이 수수한 경우가 많아. 암컷이 아름다우면 번식할 때 위험에 맞닥뜨릴 수 있잖아. 대부분의 암컷은 번식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데 천적의 눈에 쉽게 띈다면 잡아먹힐 수도 있거든. (39쪽)

높은 바위나 나무에 알을 낳는 새의 알은 한쪽이 긴 타원형이야. 그래야 혹시 굴러가더라도 멀리 벗어나지 않고 되돌아오니까 둥지에서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지. (47쪽)


  올여름에 풀을 베다가 까투리를 밟은 적 있습니다. 까투리는 알을 품느라 제가 낫으로 풀을 베다가 제 몸을 물컹 밟을 적까지 꼼짝을 안 했구나 싶더군요. 저한테 밟힌 까투리는 ‘꿔꿔꿩’ 하면서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데, 저도 화들짝 놀랐어요.

  알 품던 까투리한테 미안해서 까투리가 알을 낳은 자리 둘레는 풀을 안 벴습니다. 이튿날 슬그머니 다시 가 보니 까투리는 어느새 돌아와서 알을 품었고, 이윽고 모든 새끼를 까서 신나게 놀더군요.

  아마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까투리나 장끼뿐 아니라 뜸뿍새도 쉽게 만나던 새였으리라 생각해요. 메추리알을 가게에서 쉽게 사다 먹잖아요? 이 메추리도 예전에는 참새마냥 매우 흔한 새였다고 해요. 저 또한 어릴 적에 메추리 둥지에서 메추리알을 슬쩍해서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더러 둥지를 보고, 둥지에 있는 새알을 보더라도 모두 그대로 둡니다. 한 알에서라도 더 새끼를 까서 어미새로 클 수 있기를 바라요.


무거운 이빨과 턱뼈 대신 가벼운 부리로 진화했지. 몸무게를 줄이려고 오줌을 저장하는 방광도 없어. 또한 뼈의 속이 비어 있어서 온몸의 뼈를 다 모아도 깃털을 모은 것보다 가볍다고 해. 몸무게를 최대한 줄이려고 소화력도 좋단다. (59쪽)


  아이들하고 《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를 찬찬히 읽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새로 쓴 새 이야기입니다만, 그래도 아이들한테는 좀 어려운 말씨나 이야기가 더러 있어서, 이때에는 어른이 곁에서 새삼스레 풀어내어 다시 들려줍니다.

  갯벌이나 너른 냇가로 마실을 가지 않더라도 시골마을에서 만나는 새가 꽤 많습니다. 우리 집 나무마다 맺은 열매를 까치밥이라기보다 새밥으로 남겨서 새를 지켜봅니다. 새가 찾아들면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이 소리가 어떤 노래로 들리는가를 가만히 귀여겨듣습니다.

  좀 뜬금없다 싶은 자리에서 찔레싹이 돋거나 초피싹이 돋는 모습을 볼라치면, 틀림없이 새가 찔레알이나 초피알을 훑고서 이곳에 똥을 누었네 하고 어림합니다. 우리는 찔레알이나 초피알을 이곳에 안 묻었는데에도, 뜻밖이다 싶은 곳에서 이런 나무싹이 돋곤 하거든요.

  가을에 참새가 나락 같은 곡식을 쫀다고 싫어하는 분이 많은데, 가을 한 철을 빼고는 새는 숱한 날벌레랑 풀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나무씨를 곳곳에 퍼뜨리는 구실을 하니, 마냥 싫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새 한 마리는 엄청난 벌레 사냥꾼이자, 나무를 심는 멋쟁이라고 느껴요.


어떠한 경우든 새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해. 새가 많은 곳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재미로 새를 날려 보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간혹 가다가 더 멋진 사진을 찍겠다고 새의 둥지를 망가뜨리거나 새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더라니까. (126쪽)


  곧 추위가 온 나라를 덮습니다. 눈이 온 땅을 덮고 먹이가 줄어들 겨울에 이 나라에서 숱한 멧새가 부디 포근하고 넉넉히 겨울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다른 숱한 새는 우리 이웃이자 동무입니다. 숲과 마을과 지구라는 얼거리를 튼튼히 지키는 크고작은 새를 살가운 눈으로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가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사람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이지 싶어요. 새가 고이 둥지를 틀 수 있는 곳은 사람도 아늑하면서 정갈하게 집을 가꿀 만한 곳이지 싶어요. 새가 지어서 알을 낳아 지내는 곳을 ‘둥지·둥우리·보금자리’라 하는데, 우리는 예부터 이 세 마디 ‘둥지·둥우리·보금자리’라는 이름을 ‘사람이 사랑스럽고 넉넉하게 살림을 이루는 집’을 빗대는 자리에 썼어요.

  옛날 옛적 사람들은 사람 곁에 있는 새가 얼마나 대수로운가를 잘 알고 느껴서 이렇게 여러 이름(새집을 일컫는 이름)을 짓고, 이 이름을 사람집을 빗댈 적에 썼다고 느껴요. 새한테도 사람한테도 모두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있는 터전으로 나아가는 길에 이쁜 책 하나를 길잡이 삼아서 곁에 둡니다. 2017.11.15.물.ㅅㄴㄹ

[보금자리]
1. 새가 알을 낳거나 깃들이는 곳
2. 짐승이 잠을 자거나 들어가서 사는 곳
3. 사람들이 지내기에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곳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서)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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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버섯 도감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생물 5
최호필.고효순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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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0



숲을 가꾸는 이쁜 곰팡이인 버섯

― 화살표 버섯 도감

 최호필·고효순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5.28. 28000원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몰아 숲길을 달리다가 버섯을 처음 만나던 때를 두고두고 떠올립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그때 숲버섯을 딴 일을 또렷이 떠올려요.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하면, 여름으로 접어들면, 가을이 깊으면, 때랑 철이랑 날에 따라 다른 버섯이 돋는 숲은 그야말로 나물밭이라 할 만합니다. 아니 버섯밭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버섯숲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그렇듯 버섯도 다른 생물과 유기적으로 공존하며 생태계의 한편을 담당합니다. 그중에서도 나무의 구성물질인 리그닌과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생태계 순환의 큰 고리 역할을 합니다. 살아 있는 나무와 영양을 주고받으면서 나무의 생장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 있는 나무에 침투해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수많은 곤충의 먹이가 되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 곤충이 번식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4쪽)



  버섯숲이란, 버섯골이란, 버섯밭이란 얼마나 넉넉하고 아름다운 자리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버섯은 풀이 아닌 곰팡이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하다는데, 막상 이 곰팡이라는 버섯으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여 보면 얼마나 맛나면서 냄새가 그윽한지 몰라요. 더구나 버섯은 구워서 먹어도 맛나지요. 버섯만 따로 굽든, 고기하고 함께 굽든, 더덕이나 당근이나 감자랑 함께 굽든, 이래저래 맛을 한껏 끌어올립니다.


  제가 집에서 버섯구이를 하면 아이들 수저질이 매우 잽쌉니다. 밥그릇을 뚝딱 비우지요. 이 놀라우며 반갑고 고마운 버섯을 다룬 《화살표 버섯 도감》(자연과생태, 2017)을 찬찬히 넘기면서 이 땅 곳곳에서 숲을 가꾸는 몫을 살그마니 맡는 버섯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640쪽에 818가지 버섯을 놓고서 3,500장에 이르는 사진을 보여주는 엄청난 도감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버섯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4000∼5000종으로 추정합니다. 그중 현재까지 1900여 종이 보고되었고 여기에 버섯 책자나 인터넷 게시물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한 버섯까지 더하면 2300여 종 이상에 이릅니다. (4쪽)



  숲에서 버섯을 따신 분은 아마 다들 알 텐데, 숲버섯은 곧 녹습니다. 버섯이 땅에 살짝 뿌리를 박고 피어날 적에는 싱싱한데, 이 숲버섯은 사람 손에 닿아 땅에서 떨어지면 이내 녹아요.


  가게에서 파는 버섯은 여러 날 둘 수 있습니다. 가게까지 오는 데에도 하루 안팎 걸렸을 테고요. 쉽게 녹는 숲버섯을 헤아리면, 또 잘 안 녹고 오래 가는 ‘가게버섯’을 생각하면, 우리 몸을 이루는 먹을거리란 더없이 놀라우면서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숱한 숲버섯 가운데 우리가 아는 버섯은 참말 없구나 싶어요. 《화살표 버섯 도감》을 엮은 분들이 머리말에서 밝히기도 하는데, 거의 5000가지나 있다고 하는 숲버섯 가운데 우리는 몇 가지 이름을 알까요? 알려지지 않은 숱한 버섯은 숲에서 어떻게 나고 스러질까요?



생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태 관련 교육도 많이 있으나 풀과 나무, 곤충 등에 대한 교육이 주류를 이루고 버섯은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버섯을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더러 쉽게 보고 배울 수 있는 자료가 충분치 못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5쪽)



  예부터 숱한 버섯을 사람들이 잘 살피고 가려서 밥살림에 보탰어요. 요새는 가게에 놓는 몇 가지 버섯을 빼고는 우리가 잘 알거나 살피기는 퍽 어려워요. 집에서 길러서 먹을 수 있는 버섯도 있을 테지만, 숲마실을 하면서 문득문득 만나는 이쁜 곰팡이인 버섯을 만나서 즐겁게 먹는 길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밥살림에 버섯을 보태지 않더라도, 숲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돕는 작은 목숨붙이인 버섯이기에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반갑게 지켜볼 수 있어요.


  버섯마다 어떻게 다르고 어떤 대목을 살펴보면 좋은가를 화살표로 콕콕 짚으며 알려주는 도톰하면서 알뜰한 《화살표 버섯 도감》을 책상맡에 놓습니다. 숲마실을 다녀오면서 버섯 사진을 찍으면 이 도감을 뒤적이면서 우리가 만난 숲 이웃을 헤아려 봅니다. 2017.10.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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