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한자루 농법 - 귀농, 귀촌 그리고 도시농부를 위한 9가지 농사 비법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53
안철환 지음 / 들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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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08



‘호미 한 자루’를 쥐면 누구나 농사꾼

― 호미 한 자루 농법

 안철환 글

 들녘 펴냄, 2016.9.26. 13000원



  낫 한 자루를 손에 쥐고 풀을 벨 수 있습니다. 낫으로는 벼를 벨 수도 있어요. 요즈음은 기계로 벼를 베고, 또 기계로 풀을 베곤 해요. 기계를 쓰면 벼베기나 풀베기를 아주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기계를 쓰면 기곗소리가 대단히 커요. 기계를 쓰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고요.


  낫으로 풀을 베거나 벼를 베면 어떠할까요? 낫질을 할 적에는 서걱서걱 풀포기가 눕는 소리만 퍼집니다. 낫질은 무척 조용하다고 할 만합니다. 낫질은 사람이 몸소 하는 일이기에 기름이 들 까닭이 없습니다. 조용히 낫질을 하기 마련이라, 낫질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때로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호미로 땅을 쫄 적에도 무척 조용해요. 관리기라는 기계를 쓰면 아주 빠르게 땅을 갈 수 있지만 무척 시끄러워서 말소리도 안 들립니다. 이와 달리 호미를 손에 쥐고 밭자락에 앉으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고, 일노래도 부를 수 있어요.



모두가 흙에서 살 때는 먹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돈도 필요 없었다. 들이나 산에서 나물을 캐 먹든, 논밭에서 곡식과 채소를 심어 먹든 다 그렇게 살았으니 먹고사는 일이 배부르지는 않았어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7쪽)


원래 땅이 가진 능력을 초과한 양을 생산해야 하니 땅을 보호하는 농사가 아니라 땅을 수탈하는 농사를 짓게 된다. 이른바 ‘수탈농사’이다. 수탈농사를 하니 땅이 병들고 병든 땅엔 병충해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더더욱 농사가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15쪽)



  경기도 안산에서 바람들이농장을 일구기도 하고, 전통농업연구소를 꾸리기도 하는 안철환 님이 쓴 《호미 한 자루 농법》(들녘,2016)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름 그대로 ‘호미 한 자루’로 흙을 살리고 만지고 가꾸고 사랑하면서 살림을 짓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경운기도 트랙터도 콤바인도 아닌, 예초기도 농약도 비닐도 아닌, 오직 호미 한 주를 손에 쥐고서 땅을 만지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호미 한 자루만 쥐고서 흙을 만진다니, 얼핏 보자면 우스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골 할매는 호미 한 자루로 모든 일을 건사해 냅니다.


  호미 한 자루로 씨앗을 심어요. 호미 한 자루로 풀을 매고 나물을 캐요. 호미 한 자루로 땅을 북돋우지요.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고 살림을 지어요.



흙의 주인은 이런 하찮은 생명들이다. 이런 생명들이 땅을 갈고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미생물들은 땅을 부드럽게만 만드는 게 아니라 땅에 양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양분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땅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양분이란 바로 유기물을 뜻하고 유기물이 풍부해야 땅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46쪽)


직파할 때는 물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뿌리가 먼저 나온다. 땅속에 수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을 주지 않으니 땅속의 물을 빨아 먹으려고 뿌리를 깊고 튼튼하게 내린다. 뿌리가 건강하니 그 힘으로 밀어 올려진 싹도 건강하다. (111쪽)



  ‘호미 한 자루’를 이야기하는 《호미 한 자루 농법》은 오직 호미만 말하지는 않습니다. ‘낫 한 자루’라든지 ‘괭이 한 자루’나 ‘삽 한 자루’도 말해요. 때로는 낫이나 괭이나 삽을 쓰고, 때로는 호미를 씁니다. 그러니까 ‘호미 한 자루’란 더 많은 농기계나 농약이나 비닐에 기대지 않는 흙살림을 밝히는 실마리나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어요. 관행농법에서 벗어나, 예부터 손수 씨앗을 심고 가꾸어 갈무리한 뒤, 이 씨앗을 이듬해에 새롭게 심고 가꾸는 조촐한 살림을 밝힌다고 할 만합니다.


  《호미 한 자루 농법》를 쓴 안철환 님은 이녁 스스로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고 밭벼도 심은 살림살이를 풀어놓습니다. 이녁 스스로 먼저 오랫동안 해 보고 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싶은 이웃들한테 ‘흙 만지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려는 이웃들한테도 ‘흙일이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이야기도 들려주고요.


  섣불리 땅을 갈기만 하기 때문에 땅이 되레 딱딱해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밭에 물을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가 하는 대목을 알려줍니다. 땅속에서 막상 흙을 살리고 기름지게 하는 흐름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곡식이나 남새에 따라 어떻게 다루고 살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누구나 손수 익혀서 아이들한테도 물려줄 수 있을 만한 땅짓기를 하자고 북돋아 줍니다.



영화 〈인터스텔라〉(2014)를 보면 끝없는 옥수수 단작 평원 너머 어마어마한 흙바람이 이는 장면이 있다. 분명히 옥수수에 의한 심각한 토양 수탈의 대가였을 게다. 감독은 그걸 어떻게 알고 옥수수 평원을 찍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139쪽)


우리 조상들은 콩을 재배하면서 먹기만 한 게 아니라 콩 종자의 가짓수를 많이 번식시켜 왔다. 과연 얼마나 콩 가짓수를 번식시켰을까? 자그마치 4천여 가지가 넘었다고 하면 믿을까? (148쪽)



  호미 한 자루로 농사꾼이 되어 보자는 《호미 한 자루 농법》은 ‘전문 농사꾼’이 아니라 ‘즐거운 흙일꾼’을 꿈꾸는 길을 밝히려고 해요. ‘땅을 지어 돈을 버는 길’이 아니라 ‘땅을 짓는 재미와 보람과 웃음’을 찾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모든 사람이 농사꾼이 되어야 하지는 않을 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밥을 먹어요. 내가 손수 땅을 일구면 내 밥상에는 내가 키운 곡식하고 남새가 오를 수 있어요. 남이 지어 준 곡식하고 남새를 사다가 먹을 수 있지만, 어느 만큼은 손수 가꾸는 텃밭살림을 해 볼 수 있어요. 조금씩, 천천히, 하나씩, 꾸준히 밥살림을 바꾸고 마을살림을 고칠 수 있어요.


  도시에서도 조그맣게 텃밭을 가꾼다면 우리 똥오줌도 스스로 거름으로 바꾸어 땅을 살리는 일을 작게나마 할 수 있어요. 바로 호미 한 자루를 쥐면 말이지요. 2016.10.1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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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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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0



시골에서 길어올린 고운 살림을 노래하다

―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황풍년 글

 행성B잎새 펴냄, 2016.8.24. 15000원



  한국말사전에서 ‘촌(村)’을 찾아보면 “= 시골. 마을”로 풀이합니다. ‘시골’을 찾아보면 “1.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을 이른다 2. 도시로 떠나온 사람이 고향을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다음으로 ‘도시(都市)’를 찾아보면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풀이합니다. 이러한 뜻풀이를 깊게 헤아리거나 살피는 사람은 드물리라 봅니다. 어쩌면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는 분조차 드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도시’를 바라보고 살피는 눈길을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기만 할까요? 시골이란 “개발이 덜 된 곳”이기만 할까요? 시골이란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이기만 할까요? 그리고 도시는 참으로 “정치·경제·문화가 중심이 되는 곳”이기만 할까요?



뉘라서 촌사람들과 이른바 촌스러운 것들을 업신여길 수 있으랴. 이제라도 ‘촌스러움’의 미덕을 회복해야만 끝없는 욕망의 전쟁터가 된 우리의 삶터에 사람의 온기가 돌고, 온갖 개발의 삽날에 찢기고 망가지는 산천도 가까스로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촌이란 우리 모두의 태생지이자 지금도 우리의 목숨줄을 부지해 주는 생명의 곳간인 것이다. (29쪽)



  황풍년 님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행성B잎새,2016)을 읽으면서 시골하고 도시 얼거리를 새삼스레 되새겨 봅니다. 황풍년 님은 〈전라도닷컴〉 대표를 맡으면서 전라도 이야기를 온나라에 고루 퍼뜨리는 일을 합니다. 잡지 이름처럼 〈전라도닷컴〉은 전라남·북도 이야기를 다루는데, 전라남·북도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도시가 아닌 시골 이야기를 다루어요. 남원이나 전주나 광주나 순천이나 여수나 광양이나 목포나 군산 같은 도시 이야기는 거의 안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룬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전라도닷컴〉은 세 가지 이야기를 다루어요. 첫째, 흙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둘째, 물(냇물하고 바닷물)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셋째, 숲과 멧골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지요.


  이처럼 오로지 시골 이야기만을 다루는 잡지가 바로 〈전라도닷컴〉이고, 시골에서 흙이랑 물이랑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정갈하게 갈무리해서 들려주려는 잡지가 〈전라도닷컴〉이에요. 황풍년 님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하는 책은 ‘전라도’라는 삶터를 놓고 쓴 이야기입니다만, 넓게 보면 ‘이 나라 시골’을 다루는 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남동떡 엄니의 손에 들린 오이는 잘쭉한 듯 둥그렇고 노리끼리한 빛이 영락없는 ‘물외’다. 비바람 무시로 들이치는 한데서 햇빛 달빛 쪼여가며 몸피를 불린 오이들도 시골 엄니들을 닮았나 보다. 엄니들은 오이를 한사코 ‘외’라 하고, 노란 참외와 구분해서 ‘물외’라 한다. (130쪽)



  전라도에서 살기에 전라도 이야기를 다루고 씁니다. 마땅한 노릇이에요. 경상도에서 산다면 경상도 이야기를 다루고 써야 마땅할 테고, 강원도에서 산다면 강원도 이야기를 다루고 써야 마땅할 테지요. 그리고 전라도에서는 전라말을 쓰고, 경상도에서는 경상말을 쓰며, 강원도에서는 강원말을 쓰겠지요.


  황풍년 님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에서도 찬찬히 밝히는데, 시골사람이 쓰는 시골말은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집에서 시골마을을 이루고 시골살림을 지으면서 시골사랑이 고스란히 담아낸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책으로 배운 말이 아닌 시골말이에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말인 시골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시골사람이 먼먼 옛날부터 입과 몸과 손과 마음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이 시골말은 고장마다 다 다르면서도 비슷해요. 다 다른 대목은 소릿값하고 결하고 생김새가 달라요. 비슷한 대목은 어느 고장 어느 시골에서든 시골사람 스스로 모든 말을 새롭게 지어서 써요.



“오메! 어찌까. 별라 맛도 없는디.” “하이고, 이런 짜잔흔 음식을 뭐던다고 자랑해.” 우리네 엄니들의 첫 반응은 대개 이러하다. “늘 드시는 대로 차려서 수저 하나만 더 얹으시면 된다”라며 졸라대지만 솔찬히 질긴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해도라문 허겄제만, 넘덜한테 자랑할 만한 음식은 아닌디.” (194쪽)



  시골사람이 하는 시골일은 학교나 책으로 배우지 않아요. 늘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혀요. 손으로 배우고 눈코입으로 익히지요.


  한국 문화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한겨레 옷이나 밥이나 집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임금님이 계신 궁궐 이야기도 우리 겨레 옷이나 밥이나 집이 되겠지요. 그러나 임금님을 둘러싼 권력자는 0.1퍼센트도 아닌 0.001퍼센트도 될까 말까 할 만큼 아주 작습니다. 99퍼센트뿐 아니라 99.999퍼센트가 넘는 ‘한겨레 옷밥집 문화’란 바로 시골사람 문화예요.


  시골사람이 손수 흙을 지으면서 옷을 짓고 밥을 지으며 집을 지어요. 시골사람이 손수 말을 지으면서 아이를 가르치고 마을살이를 이루어요. 시골사람이 손수 숲을 가꾸고 냇물하고 바다를 돌보면서 언제나 정갈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온누리를 이루어요.


  글을 쓰거나 책을 내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찍거나 연극을 하거나 배우·연예인이 연기를 해야만 문화일까요? 학교를 세워야만 교육일까요? 권력과 행정과 벼슬아치가 있어야만 정치일까요? 수출 수입을 하거나 공장을 세워야만 경제일까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면 언제나 가슴 한쪽이 시큰거린다. 평생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했다는 어르신들의 입에서 어찌 그리도 따숩고 명징한 논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시방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질겁게 해 주문 나도 팽야 질겁게 되는 벱이여.” “한 식구는 굶어 죽어도 열 식구는 안 굶어 죽는다고 허잖여. 내 입보다 놈의 입부터 챙겨 줌서 그라고 찌대고 사는 것이 사람이여.” “사람도 따땃헌 디서만 산 사람은 쪼깨만 추워도 혹석을 떨어. 고상을 해 본 사람은 어려워도 의젓허제. 원망한다고 되는 일이 있가디. 이담에는 잘 될 것이여, 허고 희망을 가져야제.” (334∼335쪽)



  황풍년 님은 시골 할매하고 할배한테서 삶을 배운다고 이야기합니다. 황풍년 님하고 함께 〈전라도닷컴〉을 빚는 기자들도 시골 할매하고 할배한테서 살림을 배우고 사랑을 배운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문학자나 교육학자나 이런저런 전문가한테서 배우는 삶이 아닙니다. 시인이나 소설가한테서 배우는 문학이 아닙니다. 흙을 만지고 물을 만지며 숲을 만지는 투박하고 수수한 시골사람한테서, 시골지기한테서, 시골님한테서 넌지시 배워 싸목싸목 웃음짓는 살림이고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언제인가부터 ‘사람은 나면 도시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이런 말마따나 오늘날 시골은 가뜩이나 사람이 줄어들어서 적은데, 아직도 시골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도시로만 나아가서 대학생이 되거나 회사원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겨 버릇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시골에서 시골지기나 시골사람이나 시골님이 되도록 이끄는 학교 얼거리나 행정 얼거리나 사회 얼거리나 문화 얼거리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깨지고 찌그러진 새카만 손톱 열 개는 흙투성이로 살아낸 수십 성상과 나락 한 톨에 뿌려진 일곱 근의 땀방울을 여실히 웅변한다. 그 손은 살리는 손이요 생명의 손이다. 초록을 살리고 쌀을 살리고 밥을 살리고 세끼 밥을 먹는 우리들의 목숨을 살려온 손이다. (271쪽)



  잡지 〈전라도닷컴〉이나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하는 책에는 한 가지 뜻을 이웃님하고 나누려는 마음이 흐른다고 느낍니다. 바로 ‘시골에서 길어올린 고운 살림을 노래하려는 뜻’을 나누려 하지 싶습니다. 값지거나 값나가는 옷이 아닌, 한 땀 두 땀 정갈한 손길로 지은 고운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어요. 대단하거나 멋진 밥이 아닌, 구수하면서 웅숭깊은 밥 한 그릇을 함께 먹는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어요. 커다랗거나 으리으리한 집이 아닌, 소담스러운 살림을 싱그러운 숲집에서 조촐하게 가꾸는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습니다.


  나락 냄새가 나고, 갯내음이 퍼지며, 숲바람이 일렁이는 자그마한 책을 읽으면서 시골이라고 하는 터전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시골이란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들과 숲과 바다를 가꾸어 살림살이를 손수 짓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개발이 덜 된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아이들한테 두고두고 물려주면서 고운 삶을 조용히 가꾸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이웃을 아끼고 뭇짐승하고 푸나무를 돌볼 줄 아는 사랑이 흐르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2016.10.1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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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표본 도감 한국 생물 목록 19
정상우 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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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07



아이들하고 오랜 나날 놀이벗이던 잠자리

― 잠자리 표본 도감

 정상우·배연재·안승락·백운기 엮음

 자연과생태 펴냄, 2016.9.19. 22000원



  어릴 적에는 잠자리를 잡고 놀면서도 잠자리마다 어떤 이름인지 또렷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 밀잠자리, 왕잠자리, 나비잠자리 같은 이름은 알았어요. 이밖에 다른 잠자리는 잘 몰랐어요. 둘레 어른들도 잠자리 이름을 또렷하게 가리지 못했어요.


  학교에서는 교사한테 못 묻지요. 방학숙제로 잠자리를 잡아서 표본을 만든 뒤에 내면 모를까, 여느 때에는 ‘잠자리 잡으며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안 한다’는 꾸지람을 들을 테니 교사한테 물을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열 손가락으로 잡아도 모자라 입에 물기도 하고, 또 두어 마리를 손가락 마디마다 겹쳐서 잡기도 합니다. 동무하고 잠자리 바꾸기도 하지요. 나한테 없어도 너한테 있으면 서로 바꾸어요. 워낙 많은 잠자리를 날마다 잡으면서 노니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암수 잠자리를 우리끼리 쉽게 가눌 수 있기도 했습니다.



잠자리는 유충시기에는 수서생태계에서, 성충시기에는 육상생태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환경지표 및 진화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곤충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6000여 종이 알려졌으며(2015년), 우리나라에는 122종이 보고되었지만(환경부) 일부 종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6쪽)



  《잠자리 표본 도감》(자연과생태,2016)이 새로 나왔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잡던 잠자리를 가만히 떠올리면서 펼칩니다. 그렇다고 어릴 적 잡던 잠자리가 어떤 잠자리인지 이제 와서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도감을 천천히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요. 그래 그래, 이렇게 많은 잠자리가 있네. 그렇구나, 몸통이며 꼬리이며 날개이며 저마다 이렇게 다르게 생기면서 조금씩 다른 이름이 있네.


  《잠자리 표본 도감》을 펴낸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는 2012년에 《한국의 잠자리》(정광수 씀)를 내놓은 적 있습니다. 요즈막에 새로 나온 《잠자리 표본 도감》은 ‘잠자리 표본’을 바탕으로 새롭게 엮은 잠자리 도감이라 하는데, 이 도감에 실린 잠자리 표본은 한 사람이 예순 해 남짓 갈무리했다고 해요.



1923년 평안북도 평양에서 태어난 고 이승모 선생은 2008년 4월 15일 85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60여 년 동안 잠자리류, 나비류, 갑각류 등 한국 곤충분류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남한과 북한의 곤충을 연구한 학자로서 50여 편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으며 (7쪽)



  예순 해 남짓 잠자리를 비롯해서 나비나 갑각류를 잡아서 표본을 만들었다는 이승모 님이라고 합니다. 이녁은 남북녘 곤충을 함께 살핀 학자라고도 합니다. 남녘과 북녘이 서로 갈린 채 퍽 긴 나날이 흐르니, 이승모 님이 갈무리한 표본 자료는 더욱 뜻깊다고 느낍니다. 개발하고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들하고 숲하고 갯벌을 잔뜩 파헤치면서 자취를 감춘 잠자리가 있을 테니, 이승모 님이 갈무리한 잠자리 표본은 더더욱 뜻이 있을 테고요.


 아직 사람들은 남북녘을 홀가분하게 오가지 못하지만, 잠자리는 휴전선도 철책도 국경도 없이 남북녘을 가만히 날아다니겠지요. 도시도 자동차도 자꾸 늘기만 하면서 잠자리가 살 터전은 줄어들지만, 그래도 이 가을에 잠자리는 하늘을 힘차게 가르면서 날아요.



잠자리의 서식처는 물 흐름이 있는 유수 지역부터 정체되어 있는 논, 습지, 저수지까지 담수생태계에 풍부하게 분포한다. 심지어 해안가의 염분이 있는 지역에서도 상당수가 분포하며, 제주도에서는 기생화산이라고 불리는 오름에서도 다양한 잠자리가 서식한다 … 열대 지역보다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 지역에서 잠자리의 종수와 개체수가 급감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계속되는 개발과 편의시설 이용으로 서식처가 파괴되고 소실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19쪽)



  아침 낮 저녁으로 여러 가지 잠자리를 만납니다. 마당에서도, 빨랫대에서도, 평상에서도, 뒤꼍 나무에서도, 풀밭에서도 잠자리를 만납니다. 자전거로 들길을 달리다가 멈출 적에 잠자리가 자전거 손잡이에 앉기도 합니다.


  사람하고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면서 끊임없이 날벌레를 잡아먹어 준 잠자리를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하고 오랜 나날 동무가 되어 준 잠자리를 떠올려 봅니다. 요즈음 도시 아이들은 잠자리를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요. 잠자리를 맨눈이나 맨손이 아닌 동영상이나 책으로 더 쉽게 만날 듯합니다. 시골에서도 농약을 많이 뿌리기 때문에 예전처럼 잠자리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날렵하고 가벼우면서 단단한 몸통인 잠자리가 날갯짓을 할 적에는 파라락 소리가 제법 큽니다. 풀밭에 서서 잠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잠자리는 날개를 천천히 낮추면서 머리를 나한테 돌려요. 눈이 마주칩니다. 서로 바라봅니다. 커다란 눈알이 움직이는 결을 살피면서 넌지시 말을 겁니다. 이 가을에 우리 집에 찾아와 주어서 반갑구나. 우리 집에 너희 먹이가 넉넉하니? 이곳에서 느긋하게 날개를 쉬었다가 신나게 하늘을 가르며 놀렴. 2016.9.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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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행은 끝났다 - 12,000km 자전거로 그린 미국 여행기
박현용 글.사진 / 스토리닷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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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69



뉴욕에서 할리우드까지 자전거로 배움마실

― 서른 여행은 끝났다

 박현용 글·사진

 스토리닷 펴냄, 2016.6.24. 13800원



  2011년 10월 4일부터 2012년 3월 6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할리우드까지 1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고 하는 박현용 님은 ‘자전거 여행기’인 《서른 여행은 끝났다》(스토리닷,2016)를 씁니다.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찍는 꿈을 품고서 미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시나리오를 편지로 얼마든지 부칠 수 있지만,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자전거를 달려서 손수 건넬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또 이처럼 여러 달에 걸쳐 자전거로 달려서 건네면 더욱 멋지겠다는 생각했다고 해요.



자전거라는 것이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쑤시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흔히 다리만 아프겠지 생각했는데, 엉덩이, 어깨, 목, 발바닥, 팔꿈치, 손바닥, 손가락 등 신경이 연결된 모든 곳이 아프다. (29쪽)


다음날 비가 그치고 다시 멤피스로 향하는 길에 마주 오는 차량에서 한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욕을 했다. 이렇게 욕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무슨 이유로 나와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원수라도 되는 듯이 욕을 던지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고, 화도 났지만, 이방인의 뫼르소도 이유가 있으니 이들도 무엇인가 이유가 있겠다 생각을 했다. (68쪽)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쓴 박현용 님은 자전거로 먼 길을 달린 적에 이때까지는 없었구나 싶습니다. 서른 즈음에 이르러 비로소 자전거로 먼 길을 달려 보았지 싶고, 이때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오래 타면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대목을 깨달았지 싶어요.


  자전거 여행을 하지 않았으면 이 대목을 앞으로도 모르고 살았겠지요. 서른을 앞두고 기나긴 자전거 여행을 해 보았기에 ‘하루 내내 자전거를 달리는 일’이나 ‘여러 달에 걸쳐 자전거를 달리는 일’이 몸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를 새삼스레 배웠지 싶어요.


  삶은 온통 배움거리라고 느낍니다. 자전거 달리기도 배움거리일 테고, 자전거가 아닌 달리기로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가려 했어도 배움거리가 되리라 느껴요. 자전거도 달리기도 아닌 걷기로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가려 했다면 이때에도 새로운 배움거리가 될 테고요.


  비행기로 날아가면 비행기로 날아가는 대로 배우고, 자동차로 달리면 자동차로 달리는 대로 배워요.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를 타는 대로 배우고, 두 다리로 달리거나 걸으면 두 다리로 가는 대로 배워요.



겨울도 오고 있구나. 앙상한 나뭇가지에 겨울바람이 매달려 있다. 목깃은 순간 싸늘해지고, 두 손으로 지퍼를 최대한 위로 올린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리도 쌀쌀했을까……, 그랬다면 미안하게 됐네.’ (77쪽)


상당히 피곤한 스타일의 경찰이다 생각하며 불만의 한숨을 내쉬며 (천막에서)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경, 경찰은 뜨끈뜨끈한 코코아와 검은색 빵모자를 나에게 내밀었다. (84∼85쪽)



  열 살로 접어들면서 삶을 새삼스레 바라보며 배웁니다. 스무 살로 넘어서면서 삶을 새삼스레 마주하며 배웁니다. 서른 살로 들어서면서 삶을 새삼스레 헤아리며 배우지요. 글쓴이는 앞으로 마흔 살이나 쉰 살이나 예순 살로 다가서며 다시금 새롭게 여러 가지를 돌아보며 배우리라 봅니다.


  겨울 문턱에 이르기에 몹시 추운 날씨에 천막을 치며 자는데 새벽 세 시에 경찰이 박현용 님을 깨웠다고 해요. 새벽 세 시라면 추위가 고빗사위에 이를 무렵일 텐데, 하루 내내 자전거를 달리느라 고단했을 테니 일어나기 귀찮겠지요. 구시렁거리면서 일어나니 경찰은 뜻밖에도 ‘추위에 얼지 말라’면서 뜨끈뜨끈한 코코아를 건네고, 자전거를 달리며 얼굴이 얼지 않도록 빵모자까지 내밀었다지요.



휴가를 나온 군인답게 작별인사는 거수경례를 한 군인들은 빅밴드 국립공원으로 향하고 있는 나에게 그곳이 차가 없이는 얼마나 가혹한 곳인지 경고도 해 주었다. (152쪽)



  비행기로 쌩 하니 날아간다면 뉴욕하고 할리우드 사이에 사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로 빠르게 달릴 적에도 ‘말을 탄 경찰이 건네는 코코아’를 마실 일이란 거의 없지 싶습니다. “차가 없이는 가혹한” 길을 한겨울에 자전거로 달리기에 여러모로 고단하거나 고되거나 고달픈 일이 잇따른다고 할 텐데, 이처럼 고단하거나 고되거나 고달프기에 뜻밖에 만나는 새로운 이웃이 있고, 기쁘게 만나는 새로운 동무가 있어요. 서로 한마음이 되어 걱정해 주고, 서로 한뜻이 되어 어깨동무를 해 줍니다.



2012년 3월로 접어든 무렵이었다. 목표지점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나는 스스로의 위대함에 잔뜩 빠져 있었고, 그것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원동력이었다. 언제부터 그것이 원동력으로 나를 할리우드까지 오게 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뉴욕을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188쪽)



  자전거 여행을 마친 박현용 님은 ‘시나리오를 손수 건네어 멋지게 영화판에 들어서기’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아직 이 꿈을 못 이룬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꿈을 꼭 서른에 이루거나 스물에 이루어야 하지 않아요. 마흔이나 쉰에 이룰 수 있고, 예순이나 일흔에 이룰 수 있어요. 어쩌면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도 못 이룰 수 있습니다.


  꿈은 마지막까지 걸음을 내딛기에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리고 꿈은 마지막까지 걸음을 내딛지 못하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던 나날이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어요.


  사람들이 굳이 자전거를 달려서 ‘자동차보다 천천히’ 어떤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까닭은 ‘더 빨리 가야 할 까닭이 없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새롭게 배우려는 뜻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내 삶을 더 깊이 사랑하며 더욱 차분히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자전거조차 아닌 두 다리로 걸어’서 더욱 천천히 마실길을 가기도 해요.


  두 다리로 걸어서 지구를 도는 사람이 있어요. 서울부터 부산까지 굳이 두 다리로 걸어서 가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날에는 ‘걷는마실’ 이른바 ‘트레킹’이나 ‘도보여행’이 새삼스레 퍼집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으레 걷는마실이었어요. 천천히 거닐며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쬡니다. 천천히 거닐며 어여쁜 마을에서 며칠쯤 느긋하게 머물기도 합니다. 천천히 거닐며 나무 그늘에서 다리를 쉬지요. 천천히 거닐다가 골짝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기도 해요.



이제는 실망스럽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뭔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연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뭔지 아직 모를 뿐이다. 그저 삶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뿐이다. (204쪽)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덮으면서 내가 예전에 해 보았던 자전거마실을 떠올립니다. 나한테 곁님이나 아이들이 아직 없던 2006년에 한 해 내내 사흘마다 15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어요. 충북 충주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린 뒤, 사흘쯤 쉬고 다시 서울에서 충북 충주로 자전거로 돌아왔고, 이러기를 한 해 내내 되풀이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자전거로 보냈어요.


  처음에는 팔다리에 온몸이 쑤시다는 생각이었지만 달이 가고 철이 흐르면서 ‘내 몸’ 말고 ‘길’을 볼 수 있었어요. ‘하늘’을 볼 수 있었으며 ‘바람’하고 ‘나무’를 볼 수 있었어요. 더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가 아니라 더 즐겁게 달리는 자전거가 되도록 조금씩 거듭났어요. 그때까지 잊거나 놓치던 숨결을 가만히 헤아렸어요.


  이제는 시골집에서 곁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숨결을 마음에 담아요. 삶은 늘 배움거리이고, 살림은 언제나 배움잔치라고 느껴요. 배울 수 있는 눈과 마음과 귀와 손이 되기에 늘 젊은 삶이 되는구나 싶어요. 어떤 일을 겪든 어떤 사람을 마주하든 언제나 배우자는 몸짓이 된다면 참으로 젊은 넋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마친 박현용 님은 자전거마실은 끝냈을 테고, 이제 새로운 배움마실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천천히 나아가면 즐겁게 모든 꿈을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2016.9.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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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
데이브 굴슨 지음, 이준균 옮김 / 자연과생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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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06



꿀뿐 아니라 밥을 베풀어 주는 작은 벌

―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

 데이브 굴슨 글

 이준균 옮김

 자연과생태 펴냄, 2016.4.4. 15000원



  데이브 굴슨 님이 쓴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자연과생태,2016)를 읽기 앞서까지 ‘뒤영벌’이라는 벌을 알지 못했습니다. 뒤영벌이 얼마나 많은 들풀과 남새에 꽃가루받이를 돕는가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를 읽으며 비로소 뒤영벌이라는 벌을 깨닫는데, 저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우리 보금자리나 마을에서 피고 지는 수많은 들풀하고 남새한테 꽃가루받이를 해 주었겠네 하고 돌아봅니다.



전쟁 뒤 뒤영벌에게 또 다른 불행을 안길 발명품이 탄생했다. 보통 DDT로 알려진 화합물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은 1874년에 개발되었지만 곤충에 치명적인 독성이 발견된 것은 1939년이 되어서였다 … 1945년 무렵에는 일반인도 농약 용도로 아주 손쉽고 값싸게 DDT를 구입할 수 있었다. 잔류 기간이 길고 환경에 재앙 같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무려 20년이 더 지나서야 알려졌다. (43쪽)



  봄에 유채꽃하고 갓꽃이 필 즈음 어디를 가도 온통 벌 소리를 듣습니다. 유채꽃뿐 아니라 살갈퀴꽃이라든지 제비꽃이라든지 냉이꽃이 필 적에도 벌 소리를 들어요. 매화꽃이 피고 모과꽃이 필 적에도 벌은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무를 둘러쌉니다.


  매화꽃이 지고 모과꽃도 진 뒤 감꽃이 피거나 찔레꽃이 필 적에도 벌은 또 엄청난 숫자가 하얀 꽃송이를 둘러싸고 모여들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꽃이 피고 지는 사이에 벌이 참 많이 찾아드는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어떤 벌이 얼마나 찾아드는가까지 살피지 못했습니다.


  가을이 깊으면서 들판이 노란 빛으로 물듭니다. 여름 내내 푸르던 논은 가을에 노란 물결로 바뀌는데, 드넓은 논은 벌보다는 바람이 꽃가루받이를 해 줍니다. 꽤 많은 풀이나 나무도 벌이 아닌 바람이 꽃가루받이를 해 줄 테지요. 그러나 바람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이 많고, 벌이 찾아들어서 수술하고 암술을 건드려야 꽃가루받이가 되는 꽃이 참으로 많아요.



이듬해 봄까지는 길고 긴 잠을 자며 버텨야 한다. 그러려면 여왕벌 몸속에 저장된 지방질이 많아야 한다. 몸집이 작거나 저장된 지방질이 적으면 여왕벌은 동면을 버티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높다. 또한 습한 날씨 때문에 곰팡이가 펴 죽을 수도 있고 겨울 폭우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 (68쪽)


비행하는 뒤영벌은 초당 200회 날갯짓하며, 이는 고속 회전하는 오토바이 엔진과 비슷한 속도다 … 뒤영벌은 체온을 높게 유지하려면 거의 항상 먹어대야만 한다. 배를 꽉 채웠더라도 불과 40분만 지나면 굶주리게 된다. (78, 79쪽)



  벌이 있기에 ‘벌꿀’만 얻지 않습니다. 벌이 있기에 ‘밥’을 얻습니다. 벌이 있기에 쌀이며 보리이며 귀리이며 수수이며 옥수수이며 밀이며 얻어요. 벌이 있기에 토마토에 참외에 오이에 수박에 능금에 배에 귤에 온갖 열매를 얻어요.


  그러니까 해가 따스한 볕을 베풀고, 바람이 싱그러운 숨결을 북돋우고, 비가 시원한 물을 적시고, 흙이 까무잡잡한 기운을 나누는 데에다가, 벌이 꽃송이마다 찾아들어 꽃가루를 얻으면서 꽃가루받이를 시키기에 사람도 뭇짐승도 ‘밥(곡식과 열매)’을 얻는 얼거리입니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멸종 위기 생물은 주로 호랑이나 코뿔소 같은 큰 포유류이지만 우리는 이처럼 작은 생물의 멸종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곤충은 식물 수분을 돕고 사체 부패를 처리하며 생태계에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94쪽)


벌은 꿀이 많은지 적은지 빨기도 전에 미리 알고는 꿀이 없는 꽃에 내려앉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내 궁금증은 더해 갔다. (118쪽)


(사람이 꽃가루받이를 시키려면) 노동자 임금으로 지출하는 경비도 상당하다. 반면 뒤영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고 뒤영벌이 수정한 토마토는 사람이 수정한 것에 비해 크기도 클뿐더러 맛도 좋다. (127쪽)



  지구라는 별에서 한 가지 목숨붙이만 사라지더라도 사람이 살기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미처 못 깨닫는 사이에 벌이 줄고 풀벌레가 사라지면 사람한테도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고단한 살림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사람은 이 대목을 자꾸 놓치거나 잊기 일쑤입니다. 작은 이웃을 못 보고 맙니다. 작은 이웃을 못 알아채고 맙니다. 작은 이웃한테 등을 돌리고 말아요. 작은 이웃한테 손길을 내밀어 함께 살림을 짓는 즐거운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말아요.


  뒤영벌도 개미도 진딧물도 무당벌레도 잠자리도 나비도 모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이자 이웃입니다. 우리 집 옆에 있는 다른 집도 하나같이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웃이요, 작은 벌 한 마리도 참으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웃이에요.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라고 하는 책은 ‘뒤영벌 학자’인 어느 영국사람이 영국에서 ‘사라지고 마는 뒤영벌’을 되살리려고 애쓴 땀방울하고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과학 논문만으로는 ‘뒤영벌 되살리기’를 할 수 없구나 하고 느끼면서, 여느 사람들도 뒤영벌을 깨닫고 알아채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뒤영벌이 차츰 사라지는 까닭을 밝히고, 뒤영벌이 지구별 숲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를 밝힙니다. 뒤영벌을 되살리면서 영국을 비롯해서 지구라는 별을 어떻게 가꿀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해요. 뒤영벌뿐 아니라 ‘숲을 이루는 수많은 작은 이웃’이 사람살이에 얼마나 이바지를 하는가도 나란히 보여주려고 합니다.



캐나다에서도 대규모 블루베리 경작지를 조성한 뒤로 토종 뒤영벌이 줄었다. 블루베리 개화기가 끝나면 꽃도 없고 둥지 지을 장소도 마땅치 않은 경작지는 벌에게 황량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278쪽)


자연이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내게 크나큰 위로가 된다. 끊임없이 갈아엎지도 않고 농약이나 비료 범벅을 만들지도 않고 그저 오랫동안 내버려 두기만 하면 초원은 이런 놀라운 변화를 보여줄 것이다. (310쪽)


벌이 중요한 이유가 먹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벌이 수분을 돕는 각종 식물, 그 식물을 먹고사는 무수한 동물, 식물의 부패를 돕는 벌레나 쥐며느리, 식물 뿌리 근처의 흙 속에서 살아가는 세균이나 곰팡이 따위의 무수한 생명이 벌에 의존해 살아간다. (313쪽)



  뒤영벌 학자인 데이브 굴슨 님은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에서 뒤영벌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넌지시 짚습니다. ‘대규모 경작지’는 ‘대규모 수확’을 마친 뒤 벌한테 아무것도 남지 않는 곳이 되기도 할 테지만, ‘대규모 경작지’이기 때문에 큰 기계에 농약과 비료를 안 쓰기가 어려운 얼거리가 됩니다. 뒤영벌이 꽃가루받이를 해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일을 사람이 손수 하나씩 해야 할까요? 설마 ‘꽃가루받이 로봇’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요?


  아무리 훌륭한 기계가 있고 로봇이 있더라도, 땅은 해와 바람과 비와 흙이 어우러져야 살아납니다. 그리고 땅에 수많은 벌레와 벌과 나비와 짐승이 얼크러져야 하고요.


  ‘사라진 뒤영벌’ 이야기는 ‘사라진 개구리’ 이야기로 이어지리라 느낍니다. ‘사라진 제비’ 이야기로 이어질 테고, ‘사라진 여우’나 ‘사라진 나비’ 이야기로 이어질 테지요. 뒤영벌을 비롯해서 조그마한 목숨붙이가 사람들 곁에서 자꾸자꾸 삶터를 빼앗기면서 사라집니다. 이 고리를 끊고 사람뿐 아니라 뒤영벌이랑 온갖 ‘작은 이웃’이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는 새로운 삶고리(생태고리)를 생각해 봅니다. 2016.9.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뒤영벌 그림은 글쓴이 '데이브 굴슨(Dave Goulson)' 님이 손수 그렸고,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보내 주어서 함께 붙일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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