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심상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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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8



‘심알찍’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심상정 글

 웅진지식하우스, 2013.8.5.



  2017년 아름다운 5월 봄날에 대통령 한 사람을 새롭게 뽑습니다. 우리는 봄철이 한창 무르익어 꽃잔치를 이루는 5월에 아름답게 나라살림을 맡을 사람을 새롭게 뽑지요.


  여러 후보 가운데 심상정을 놓고서 ‘심알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상정을 알면 심상정을 찍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다르게 이야기해 볼 수도 있어요. 우리가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이를 ‘제대로 알았다’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그들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이를 찍었을까요? 나는 다른 이를 찍었어도 ‘우리를 통틀어’서 하는 말이에요. 우리가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도록 했거든요.


  우리는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어떤 ‘짓(일이 아닌 짓)’을 할는지 제대로 몰랐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은 탓에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너무 가볍게 넘겨짚은 나머지, 이들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온 우리가 바로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도록 했다고 느껴요.



우리는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 있었어요. 그러니 어려운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어려운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요. (10쪽)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습니다. 저는 이것을 민주화 이후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새누리당-민주당 양당 체제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봅니다. 선거 때가 되면 사람들은 그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왔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26쪽)


그렇다면 왜 양질의 인사들이 민주당에 대거 수혈되었는데도 민주당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것일가요? 왜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뚜렷이 구별되는 대안을 제시하고 새누리당에 맞서 정치투쟁을 벌일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일까요? (28쪽)



  우리 스스로 세운 대통령 가운데 이명박은 그 자리에서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 ㅈㅈㄷ 같은 신문에서조차 ‘4대강 막삽질 22조 원’을 놓고서 나무랍니다. 이명박한테 한 표를 준 보수 기득권층이든 ㅈㅈㄷ이든 참말로 한목소리로 이명박을 꾸짖지요.


  우리는 이 대목에서 배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실패를 했으니 배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대통령 한 사람만 잘 뽑는다고 나라살림이 발돋움하지 않습니다만, 대통령 한 사람부터 잘 뽑았으면 ‘적어도 22조 원’이라는 돈은 복지와 문화와 교육과 보건이라는 곳에 알맞게 쓸 수 있었어요. 이 돈이 ‘살림 키우기(내수 진작)’를 하는 밑돈이 되었겠지요.


  이명박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지는 못했어도, 한 번 쓴맛을 본 우리는 박근혜를 다시 대통령에 앉히는 바보짓이라고 할 만한, 참으로 바보짓일 수밖에 없는 일을 했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이 쓴맛을 더 똑똑히 깨닫고는 촛불혁명으로 그이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렸어요.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우리 손으로 뽑았던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재판장에 보냈어요.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 소수 야당이므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알리바이’에 안주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32쪽)


민주노동당은 아주 뚜렷한 민생 정당, 미래 정당으로 다가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 그와 같은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어요. (34쪽)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이 나와야만 노동자들의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노동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39쪽)



  쓴맛을 두 차례 보았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나라살림 맡을 일꾼으로 뽑을 적에 ‘슬기로울’까요? 우리는 여러 대통령 후보를 ‘얼마나 속속들이 잘 알려’고 할까요? 이들이 내놓는 정책이나 공약을 얼마나 샅샅이 살피고 꼼꼼히 따지는가요?


  이제 더 쓴맛을 보지 않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이제 더 괴롭지 말아야지 싶어요. 이제 우리는 촛불을 들지 말고, 호미를 들어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을 누려야지 싶어요. 심부름꾼이 되고 머슴이 될 대통령을 뽑고는 우리 보금자리하고 우리 마을을 살리는 길에 온힘을 쏟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대통령 후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다시금 쓴맛을 안 볼 만큼 두 눈을 밝혀야지 싶어요. 촛불혁명에 뒤이어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는 신명이 나는 잔치마당이 되도록 해야지 싶어요.


  이를테면 이런 말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농민이나 노동자가 얼마든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이 나라는 무척 발돋움하리라 생각해요. 대학교를 안 나온 사람도 얼마든지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고, 중·고등학교를 안 다닌 사람도 얼마든지 즐겁게 삶을 가꿀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이 나라가 아름답다는 말을 할 만하지 싶어요.



언젠가부터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전문가들이 만들어 준 정책으로 자신을 감쌀 뿐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정책 전문가의 페이퍼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의 국정 운영 철학, 즉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43쪽)


실패를 한번 해 보면, 그 순간 자기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싹 정리되는 느낌이 듭니다. 실패를 하게 되면, 그 순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져요. 그런 것을 경험해 봐야 합니다. (50쪽)


자기가 직접 세운 목표이고, 자신이 결정한 일이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결정한 게 아니고, 부모가, 사회가 결정해 준 일인데 거기서 낙방하면 그건 실패도 안 되는 겁니다. (72쪽)



  미국이 한국에 몰래 들인 ‘사드’ 미사일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한국더러 1조 원에 이르는 돈을 내라고 밝힙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트럼프라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전쟁무기 값’이 얼마인가를 한국사람 모두 똑똑히 알 수 있도록 밝혔어요.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값’이 얼마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이 미사일을 진작에 받아들였어요. 게다가 페트리어트 미사일 값은 누가 냈을까요? 유지관리비는 누가 낼까요? 이러한 대목을 우리는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주한미군은 ‘주한미군 유지비’가 얼마나 들며, 이 돈은 누가 낼까요? 서울 용산 미군기지가 있는 땅은 주한미군이 엄청나게 더럽혀 놓아서 큰 골칫거리라 하지요. 미군부대 둘레는 온갖 화학물질로 ‘땅을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고 해요. 이 대목도 우리는 잘 모르고 그냥 삽니다. 우리 살림살이가 너무 빡빡하고 힘들다고 하면서 다들 이런 일은 그냥 넘어가요. 이러면서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는, 그야말로 아프디아픈 일까지 터졌어요.


  이런 판에 트럼프라는 미국 대통령은 우리더러 미사일 값 이야기를 아주 대놓고 밝혔어요. 생각해 보셔요. 오바마나 클린턴은 한국에 미국 전쟁무기 값이 얼마인지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몰래 들여놓고 몰래 값을 챙겼겠지요.


  이 대목을 우리 스스로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드를 비롯한 주한미군과 전쟁무기하고 얽힌 속내와 참모습과 나라살림’을 제대로 깨달아야지 싶어요. ‘안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지나치도록 끔찍하게 어마어마한 돈을 ‘미국에 퍼주기’를 했다는 대목을 뉘우치고 배워야지 싶어요. 이러면서 ‘전시작적권’조차 한국에 없어요.



대학을 나오면 부모들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렇게 가르쳤는데도 일자리가 없어서 놀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대학을 보낼 필요가 있을까요? (76쪽)


오늘날 여성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난 건, 민주노동당이 가장 먼저 여성을 비례대표 홀수 순번에 배치한 공이 큽니다. 그것을 모든 정당이 수용하면서 일반화된 것이죠. (83쪽)


네덜란드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4시간을 일해도 누려야 할 휴가나 퇴직금 등이 다 보장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일의 형태라기보다는 착취의 개념이지요. (118쪽)



  새롭게 대통령이 되어 나라살림을 맡을 분이라면 ‘안보’는 그만 말해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안보가 아니라 ‘평화’를 이루어야지 싶습니다. 남녘도 북녘도 모두 평화로운 나라가 되어야지 싶어요. 남북녘 모두 ‘평화’로 나라를 지키고, 평화롭게 손을 잡으면서, 북녘뿐 아니라 남녘도 무시무시한 무기를 하나씩 줄이고, 무기를 줄이는 돈으로 서로 ‘나라살림(민생)’을 살찌우는 길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안보라는 이름은 늘 ‘전쟁’을 맞물려 놓는 몸짓인 줄 알아야지 싶어요. 평화가 되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나라살림을 돌보는 길로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뼈아프게 우리를 일깨워 주듯이, ‘안보 예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마어마합니다. ‘고작 사드 미사일’이 1조 원이에요. 유지관리비를 뺀 돈으로만 해도 1조 원입니다. 미국 항공모함이 한국 앞바다로 왔다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 미국 항공모함 유지관리비하고 출동비도 ‘한국 앞으로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겠어요? 아주 마땅한 일 아닐까요? 미국 국방부가 ‘거저로’ 그네들 항공모함을 엄청난 돈(유지관리비)을 쓰면서 한국에 보내 주지는 않아요.


  우리가 우리 국방을 우리 힘으로 다스린다고 할 적에는, 우리 살림돈(예산)을 우리 군대를 키우는 데에 써야 옳다고 느껴요. 이른바 자주국방을 하려면 미국 무기에 돈을 퍼다 주는 몸짓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 땅에서 돈을 쓰고, 알맞게 돈을 가눌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한국 사병 월급을 ‘착취’하는 얼개를 몽땅 털어내고 ‘사병 월급’을 하다못해 최저임금 눈높이에라도 맞출 수 있는 정책이 태어나야지요.



한국 사회의 성장 과정이 격렬했던 만큼 이런 생명의 문제들은 심각합니다. 최근 화학물질과 관련된 사고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SK화학이 가습기 살균제 독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 삼성전자가 유해화학물질법을 위반해서 불산 사고를 낸 것 등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37쪽)


(안철수 씨는) “나는 상식파다”라는 선언에서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 사회의 상식을 해치는 것은 몰상식이 아니라 권력이거든요. (157쪽)


‘애국가’ 논란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애국심을 대립시키는 보수의 이데올로기 공세입니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의 모든 성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그 속내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진보 세력을 비애국적인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싶어 합니다. (198쪽)



  2013년에 처음 나오고 나서 이제 판이 끊어진 책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판이 끊어졌기 때문에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이는 심상정입니다. 2017년에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심상정은 2012년에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뽑히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이 쓰디쓴 길에 무엇을 스스로 배워야 할까’ 하고 되새기면서 이 책을 씁니다.


  심상정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뒤부터 여러모로 겪은 아프거나 쓰디쓴 생채기를 하나하나 꺼내놓습니다. 고꾸라지고 넘어지면서 쓴맛을 볼 적마다 스스로 무엇을 제대로 못했고 무엇을 제대로 못 보았는가 하고 뉘우치고 되돌아봅니다.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정치인 심상정이 털어놓는 반성문입니다.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심상정이 밝히는 다짐입니다.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이제 새롭게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스스로 어떤 심부름꾼이 되고 어떤 일꾼이 되며 어떤 살림꾼이 되겠노라 하고 길을 찬찬히 다지는 실마리입니다.


  심상정은 ‘안보·성장·개발’이라는 이름에 늘 뒤로 밀리거나 밟혔던 ‘평화·노동·살림(복지·교육)’이 떳떳하게 드날릴 수 있는 나라를 바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요? 저는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이 좋은 정치의 기준이라고 봅니다. (217쪽)


가장 나쁜 정치가 ‘여론 정치’입니다. 진보 정치의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여론으로 정치 플레이를 하는 이들을 보면 좌절감을 느낍니다.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데, 한순간의 바람몰이가 판단의 기준이 되다니요. 지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도 그랬지요. 모두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경제만 살리면 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대통령으로 당선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선택하고 나서는 뒤늦게 후회를 하지요. (245쪽)



  심상정은 정치를 하면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뼛속 깊이 느꼈다고 합니다. 심상정 아들은 어릴 적에 ‘엄마를 못 봐서 병에 걸리기’까지 했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시내는 ‘슈퍼우먼’ 노릇을 거의 억지로 떠맡으면서 두 다리가 휘청거릴 뿐 아니라 이녁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기가 매우 어려운 줄 온몸으로 배웠답니다. 이때에 심상정 곁님은 심상정을 돕고 아이를 도맡기로 다짐했고, 심상정 곁님은 사내로서 아버지이자 어머니 두 몫을 알뜰히 해냈다지요. 집에서 살림하고 설거지하고 밥짓고 빨래하는 일을 ‘기쁨’이자 ‘보람’으로 삼는 길을 배웠다고 해요.


  저는 이런 심상정이 내놓는 여러 가지 공약이나 정책이 한국 사회 서민을 헤아릴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중산층한테 도움이 되고, 한국 사회 기득권층한테까지 이바지를 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스스로 서민으로 살아내지 못한 사람은 서민살이를 알 길이 없습니다. 스스로 서민살이에서 한 걸음씩 내딛어 보지 않고서 중산층이 되는 사람은 이웃하고 나누는 길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기득권층 자리에 있는 분한테 ‘서민살림 살리기’가 왜 이바지를 할까요? 서민이 살아나며 기쁜 보금자리하고 마을을 이루면, 기득권을 쥔 이들도 ‘안정되게 그 기득권을 누리’겠지요. 다만 기득권 자리에 있는 분은 서민한테 이녁 몫을 좀 덜어 주어야지요. 이 땅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거든요. 혼자만 잘 살면 아무 재미가 없는 사회예요. 함께 잘 살기에 함께 기쁘고, 함께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나라가 될 만해요. 부자이건 가난하건 똑같이 어느 학교나 고르게 들어가서 배울 수 있어야 평화로우면서 평등해요. 대학교를 마쳤건 안 마쳤건 어느 일이든 고르게 맡아서 할 수 있어야 평화로우면서 평등하지요. 중산층 자리에 있는 이도 서민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언제나 차분하면서 넉넉하게 살림을 지을 적에 평화와 평등이 뿌리내릴 테고요.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것은 분명히 후퇴한 것입니다. 박 후보는 지금 한국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약속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내건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겁니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노동 분야 공약’이 없었습니다. (280쪽)


보수 기득권층은 복지를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복지 재정에 기여할 의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점을 정확히 지적했어야 합니다. (290쪽)


농민도 경제인, 노동자도 경제인, 기업가도 경제인 아닌가요? 모두 대한민국 경제에 참여하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왜 누구는 경제인이고 누구는 경제인이 아닌 걸까요? 경제민주화라는 것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305쪽)



  저는 ‘심알찍’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저는 뒷걸음질도 제자리걸음질도 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가고 싶습니다. 더딘 걸음이라 하더라도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 걸음씩 내딛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한국말사전 새로 쓰기’입니다. 이른바 ‘국어사전 집필·편찬’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드문 일을 합니다. 국어사전 집필자로서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또 저는 시골에서 살며 두 아이를 돌보고 도서관학교를 꾸립니다. 집살림하고 아이키우기를 도맡는 사내(아버지)로서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시골에서 도서관학교를 꾸리면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시골에서 농약과 비료와 비닐이 없이 흙살림을 하는 길을 찾으려는 사람으로서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평화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심부름꾼 노릇을 하기를 바라기에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성평등을 넘어, 남녀 모두 슬기롭고 사랑스럽게 나란히 살림꾼·살림지기·살림님 노릇을 하는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삶을 이야기하기에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수퍼우먼도 수퍼맨도 아닌, 스트롱맨도 나이롱맨도 아닌, 일하는 사람이 일삯을 제대로 누리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길을 서로 나누면서 자급자족 경제와 사회를 이루려는 뜻을 정책으로 펴겠노라 밝히는 심상정을 공개지지합니다.


  저를 둘러싼 이웃님이 ‘심알찍’이란 무엇인가를 헤아려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판이 끊어진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라는 책에 나온 대목을 제법 길게 옮겼습니다. 2013년에 쓰디쓰게 반성문이자 다짐글을 털어놓은 심상정은 2017년에 당차고 슬기로우며 사랑스러운 ‘나라지기’ 길을 앞장서서 열어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심알찍으로 심상정을 공개지지하는 저는, ‘살림지기’로서 저희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가꾸는 길을 걸어가면서 이 봄날에 해사하게 노래하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7.4.3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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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의 빛깔들 - 리타 테일러가 만난 한국의 자연과 사람들
리타 테일러 지음, 정홍섭 옮김 / 좁쌀한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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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5



한국을 ‘감빛’이라 노래한 서양 이웃

― 감의 빛깔들

 리타 테일러 글

 정홍섭 옮김

 좁쌀한알 펴냄, 2017.3.8. 13000원



  꼭 시골에서 살아야 감이나 감나무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마당이 있고, 이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면 감이며 감나무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어요. 우리 집에 마당이 없다 하더라도 마당 있는 이웃집을 찬찬히 살피면 감이랑 감나무를 여러모로 알 수 있고요.


  제가 어릴 적에 살던 고장에서는 감나무를 좀처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노느라 바쁘니 이웃집 나무를 살필 생각을 안 했고, 마당 있는 동무네 집에 놀러갔어도 동무네 집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마흔 줄을 넘는 나이가 되어서야 제가 나고 자란 고장에서 오랜 골목집에서 요즈음도 그대로 사는 동무네 집 마당에 동무네 집 지붕보다 높게 자란 감나무가 있는 줄 알아차립니다.


  어쩌면 그 감나무는 서른 해쯤 앞서는 아직 작았을는지 모르지요. 어쩌면 서른 해쯤 앞서도 그 감나무는 그대로 컸을 수 있어요. 한 가지를 뚜렷하게 말해 본다면, 참말 어릴 적에는 감나무는 바라보지 않고 ‘감알이라는 열매만 먹었’습니다.



이 산은 대구 근처의 교통이 편리한 위치에 있고 넓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떼로 몰려오는 유람객들에게 특히 피해를 입기 쉽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동화사는 관광 때문에 많은 매력을 잃어버렸다. 관광안내소가 완비되어 있어서, 번잡한 날에는 사찰이라기보다는 쇼핑몰처럼 보인다. (37쪽)


대학이 점점 더 학위 생산 장소로, 사회의 경제 권력에 봉사하는 도구로 되었고, 창조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산업기술 발전에만 치중하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강의실을 갑갑하게 느끼는 일이 많았다. (54쪽)



  스위스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에서 자란 리타 테일러 님이 쓴 《감의 빛깔들》(좁쌀한알,2017)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일했다고 합니다. 이 나라 저 나라에 깃들며 젊은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한국에도 깃들어 한국 젊은이를 가르쳤다고 해요. 이 책 《감의 빛깔들》은 글쓴이가 세계 여러 나라에 깃들며 살다가 한국에 마음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느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글쓴이가 돌아본 여러 나라 가운데 한국이 여러모로 돋보이도록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데, 이 아름다움하고 사랑스러움이 차츰 스러지거나 짓밟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프다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내원사와 흩어져 있는 몇몇 암자에 사는 비구니 스님들 말고는 거주자가 없기 때문에, 천성산은 이제까지 멸종 위기 꽃과 벌레와 새와 독특한 도롱뇽 종들이 사는 섬세한 생태계를 그럭저럭 유지해 왔다. (95쪽)


오랫동안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그리고 오늘날에는 공격적인 국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태도가 바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에게서 아이다움을 빼앗곤 하는 ‘빨리 빨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아이들조차도 늘 재촉당하는 말을 듣는다. ‘뒤처지지’ 않도록 빨리 먹어라, 빨리 입어라, 빨리 뛰어라, 다시 말해서 좋은 유치원, 좋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134쪽)



  어느 한 나라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지구라는 별에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기를 좋아하던 리타 테일러 님은 어느 대목에서 한국에 사로잡혔을까요? 이녁은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 이야기를 글로 쓰자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이녁은 한국 이야기를 이녁 나름대로 글로 남기자고 생각하면서 이 나라에서 어떤 삶을 되새겼을까요?


  이제는 이 말이 한국하고 안 어울릴 수 있을 텐데, 서양에서는 한국을 두고 “고요한 아침 나라”라 했어요. 고요하면서, 밝게 피어나는, 이 두 가지 기운이 함께 흐르는 나라가 한국이라 했지요.


  아무래도 오늘날은 도시가 대단히 클 뿐 아니라 어디로든 이어지든 찻길이 아주 많습니다. 공항도 많고 자동차도 많아요. 송전탑도 발전소도 골프장도 공장도 많지요. 커다란 축구장이나 경기장까지 많습니다. 이런 한국을 바라보는 리타 테일러 님은 한국을 “감 빛깔 같은 나라”라고 이야기해요.



국가 안보에 대한 노골적 주장과 그보다는 약간 덜 노골적이지만 더 강력한 경제적 필요의 주장이, 우리가 생존하고자 할 때 내리는 결정의 유일한 토대인 인간성에 관한 우리의 감각을 계속해서 압도할 것인가? (141쪽)


점점 더 물이 메말라가고 있는 나라에서, 흙을 오염시키고 물을 고갈시키고야 말 골프장을 짓기로 하는 것은 물론 현재 진행중인 광기의 일부다. (145쪽)



  ‘고요한’ 나라가 ‘빨리빨리’ 나라가 된 지 제법 오래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빨리빨리’가 깃든 지 고작 쉰 해 남짓입니다. 새마을운동이다 경제개발이다 하면서 난데없이 ‘빨리빨리’가 퍼졌어요. 이러면서 시골사람은 도시로 가도록 내몰렸고, 도시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는 살림으로 등이 떠밀렸고요. 게다가 경제성장을 퍽 크게 이룬 오늘날에도 경제성장이라는 숫자에 아직 발목이 잡힙니다. 우리가 선 자리를 차분히 돌아볼 겨를을 못 내지요. 우리 둘레를 가만히 헤아릴 틈을 못 내고 말아요. ‘이웃사촌·이웃사랑’ 같은 말은 아스라한 옛말처럼 됩니다.


  이러면서 한국에서는 ‘경제성장’ 못지않게 ‘안보’라는 이름이 불거지지요. ‘어깨동무·두레’ 같은 이름이나 ‘평화·평등’ 같은 이름은 꽤 머나먼 이름 같기도 해요.


  이 나라 숨결을 돌아본다면 “고요한 아침 나라”에서는 서로 돕고 함께 걸으며 같이 나누는 살림이었지 싶어요. 이러한 숨결이 ‘빨리빨리’로 바뀌면서 ‘내 앞가림’으로 함께 바뀌었겠지요. 고요하고 돌아보고 밝아 오는 아침처럼 삶을 짓는다면, 이웃을 느긋하게 마주하면서 사랑하는 손길이 될 만하지 싶어요.


  꼭 서양사람 눈길로 이 나라를 볼 까닭은 없습니다만, 바깥에서 차분히 바라본 눈길인 “고요한 아침 나라” 모습을 우리가 스스로 되찾으려고 한다면, 시나브로 이웃사랑이며 마을사랑을 이룰 만하지 싶어요. 4대강 사업 같은 막삽질이란 바로 더 많은 돈이나 빨리빨리 뭔가 뚝딱 세우려고 하던 흐름하고 맞닿아요. 우리가 ‘고요한’ 마음이 되고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려는 마음으로 거듭난다면, 막삽질로 망가진 4대강을 비롯한 이 나라를 예전 못지않게 아름다운 나라로, 이른바 ‘금수강산’으로 새롭게 가꾸는 길을 찾으리라 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영어를 능숙하게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물론 부인할 수는 없다. 교조화, 균질화,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영어가 있다. 그런가 하면 가슴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 소리가 모음의 풍요로움과 함께 반짝이는 소리를 내는 풍부하고, 아름답고, 살아 있는 언어가 되는 또 다른 영어가 있다. (168쪽)


왜 한국어를 영어에 종속시킨다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국 문화에는 자존감이 없고 결국 영어가 한국에서 상징하는 것, 미국 문화와 소비주의에 종속돼도 좋다는 말인가? (174쪽)



  《감의 빛깔들》을 쓴 리타 테일러 님은 ‘두 가지 영어’를 말하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권력이 된 영어하고, 아름다운 노래와 같은 영어를 말해요. 오늘날 한국은 아름다운 노래와 같은 영어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얼거리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권력인 영어를 더 빨리 일찍 가르치려는 물살에 휩쓸린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말에서도 엇비슷하게 찾아볼 만해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이 있으나,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에 물든 한국말에다가 번역 말씨에 젖어든 한국말이 있어요. 아직 털어내지 못한 중국 한자말에 매인 한국말도 있고요.


  한국말다운 한국말은 어디에 있을까요? 감빛과 같이 발그레하면서 따사롭고 아름다운 한국말은 어디에 있을까요? 초등학교에서 감빛 같은 한국말을 가르치는지요? 입시 과목 ‘국어’가 아닌 슬기롭고 따스하며 넉넉한 한국말은 어디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지요?



새들과 햇빛과 비에 반짝이는 나뭇잎들과, 나무와 시내와 개울의 언어 그리고 태양 불을 빨아들여 뜨거워지니 소나무 그늘이 들고 나며 어루만져 주는 산 바위들의 언어를 듣게 해 주자. 그러면 아이 하나하나가 자기 진짜 이름을 불러 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176∼177쪽)



  이 책에 나온 “태양 불”은 아무래도 ‘햇볕’을 잘못 옮긴 대목 같습니다. 아무튼 아이들이 해와 새와 나무와 시내와 숲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자랄 수 있다면 이 나라는 매우 아름다운 나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느껴요. 동서남을 불러싼 너른 바다를 마주하면서 ‘바다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싱그러운 마음을 키울 만하지 싶어요. 봄이 되어 이 땅을 새롭게 찾아온 제비를 반기며 ‘제비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산뜻한 마음을 북돋울 만하지 싶습니다.


  감나무 한 그루를 보살피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감알이라는 열매가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는 흐름을 생각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감빛으로 마주한 서양사람 리타 테일러 님이 즐거운 사랑으로 적바림한 글을 곱씹습니다. 감빛이기도 하고, 동백빛이기도 하고, 앵두빛이기도 하고, 유채빛이기도 하고, 개나리빛이기도 하고, 참달래빛이기도 하고, 쑥빛이기도 하고, 마늘빛이기도 한, 온통 무지개빛이라 할 만한 살가운 숨결이 흐르는 이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2017.4.2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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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기다리다 - 황경택의 자연관찰 드로잉, 두 번째 이야기
황경택 글.그림 / 도서출판 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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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1


어떤 겨울도 봄을 못 막아요
― 꽃을 기다리다
 황경택 그림·글
 가지 펴냄, 2017.3.20. 18000원


  봄은 우리한테 수많은 이야기를 알려줍니다. 무엇보다도 따스한 기쁨을 알려주어요. 아무리 길디긴 겨울이 이어져도 봄을 그릴 수 있기에 견디고, 아무리 모진 추위와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봄이 오면 모두 녹으리라 생각하면서 버티지요.

  봄은 따스한 기쁨으로 피어나는 꽃하고 잎을 알려줍니다. 햇볕 한 줌일 뿐인데 들이며 숲이 푸른 물결이 일렁입니다. 햇살 한 조각 비치는데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햇빛이 드리울 뿐인데 새벽이 일찍 찾아오고 낮도 길며 온누리가 환합니다.

  봄은 무엇보다 어떤 겨울도 이 따스한 바람을 못 막는다는 대목을 알려줍니다. 겨울은 마침내 수그러들어 봄으로 거듭나는 줄 알려주어요. 새로운 철이 곧 다가오니 이 겨울에 씩씩하게 기운을 내어 마음속에 꿈을 지피자는 마음이 되도록 이끌어요.


(양버즘나무는) 잎자루로 겨울눈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인지 잎이 오랫동안 매달려 있다. (34쪽)

겨울눈은 언제 생길까? 정답은 날 때부터다. 겨울눈에서 새싹이 나올 때 이미 그 싹 안에도 겨울눈이 붙어 있다. 다만 아주 작아서 눈에 안 띌 뿐이다. (38쪽)


  새로 찾아온 봄에 《꽃을 기다리다》(가지 펴냄)를 읽습니다. 들이며 숲이며 벌레이며 하늘이며 꽃이며 나무이며 바라보고 마음으로 담아 그림으로 옮기기를 즐기는 황경택이라는 만화가 한 사람이 빚은 책입니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던 풀이며 나무가 봄에 어떻게 깨어나는가를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담은 그림으로 빚은 책이에요. 이 책은 겨울, 봄, 여름, 가을 이러한 얼거리로 풀하고 나무를 마주합니다. 겨울눈이 얼마나 야무지면서 이쁜가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봄꽃이 얼마나 고우면서 환한가를 그림으로 보여주어요. 여름꽃이 얼마나 짙으면서 싱그러운가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가을꽃이 얼마나 향긋하면서 사랑스러운가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보고 다음날에도 보고 그 다음 주에도 보고, 적어도 일 년은 꾸준히 관찰해야 그 식물의 모습을 잘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멋진 곳을 찾아 낯선 곳에 가기보다는, 익숙한 곳에 자주 가서 보고 그리기를 추천한다. (74쪽)

냉이를 우리 동네에서는 ‘나순개’라고 불렀다. 봄이 오면 아이들끼리 “나순개 캐러 가자” 하고 박구니 들고 나서곤 했다. 어려서 내가 알던 들풀이며 나무 이름이 도감에 나와 있는 것과는 다른 게 많다. 어쩌면 그렇겍 지역마다 입에서 입으로 뜻도 모르고 전해지던 이름들이 더 우리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92쪽)


  황대권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얼마 앞서 회고록을 낸 전두환이라는 군사독재자가 대통령 노릇을 하며 떵떵거리던 무렵 붙잡혀서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나라를 말아먹을 뿐 아니라 짓밟는 군사독재자를 어떻게 몰아낼까 하고 생각하던 이들은 ‘반국가 및 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어요. 황대권 님은 자그마치 열세 해하고도 두 달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황대권 님한테는 한 가지 남다른 대목이 있어요. 이분은 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동안 이녁이 ‘몰랐던’ 일을 배우기로 했어요. 바로 ‘들풀’을 배우기로 합니다. 옥살이를 하기 앞서까지는 거의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하던 들풀인데, 옥살이를 하는 동안 더없이 살가운 벗이 되어 준 들풀이라고 하지요.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은 있었으되, 늘 먹는 밥조차 풀열매인 줄 ‘모르던’ 삶을, 그러니까 여태 ‘모르는 채 먹던’ 밥을 되새겨 보았고, 들풀을 하나씩 새로 배우기로 했대요. 이리하여 황대권 님은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쓸 수 있었고, 감옥에서 나온 뒤에 숲과 흙을 살리는 길을 걷는 고운 넋으로 거듭납니다.


어머니께서 배나무 가지치기를 하셨다. 잘라진 가지를 가져와서 꽃을 그리고 있자니 “부케 같다!” 하신다. 배꽃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없다. 생각보다 화려하다. (133쪽)

땅나리는 꽃이 땅을 보고 있고, 솔나리는 잎이 솔잎처럼 가늘게 생겨서 솔나리다. 꽃이 뒤를 보는 것은 하늘나리이고, 하늘을 보면서 꽃잎이 뒤로 많이 말린 것은 하늘말나리이다. (212쪽)


  이 봄에 《꽃을 기다리다》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갈마듭니다. 이 따사로운 봄날에 봄마실을 가려던 아이들이 탄 배는 그만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틀림없이 싱그러운 봄날이요 봄마실인데, 무척 많은 어버이한테 이 봄은 싱그럽거나 따사로운 봄이 아닌 가슴이 아프고 시린 철이 되고 맙니다. 꽃피우지 못한 푸른 넋으로서도, 그 바다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푸른 넋으로서도, 이 봄에 맑고 싱그러운 꽃을 기쁘게 바라보기 어렵고 말아요.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낸 풀하고 나무가 새롭게 깨어나며 꽃을 피웁니다. 겨울눈은 잎눈하고 꽃눈으로 거듭납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가슴이 곱게 어루만져 주려는 잎눈이 피어나고 꽃눈이 깨어납니다. 맑은 새잎은 우리가 다시 맑은 마음으로 일어서라며 살그마니 북돋아 줍니다. 밝은 새꽃은 우리가 다시금 밝은 마음으로 꿈을 지피라니 살몃살몃 이끌어 줍니다.

도라지를 늘 먹기만 했지 꽃을 그려 보는 것은 처음이다. 도라지꽃의 멋진 남색을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물감으로 자연의 색을 내기란 참 어렵다. (230쪽)

까마중 열매가 한여름 따가운 햇볕을 견디며 여물고 있다. 시골에선 이 열매를 ‘먹때왈’이라고 불렀다. (234쪽)


  우리는 꽃을 기다리며 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들꽃이며 나무꽃을 기다리며 긴 겨울을 이겨냈습니다. 저마다 마음속에 등불을 피우고, 두 손에는 촛불 한 자루를 고이 쥐면서 긴긴 겨울을 견디었습니다.

  시린 겨울을 가슴에 새겼기에 봄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추운 겨울에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이었기에 봄을 반갑게 맞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봄을 달갑잖이 여길 분이 있을는지 몰라요. 가슴에 피우는 등불도 두 손에 모으는 촛불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길 분이 있을는지 몰라요. 그러나 봄꽃하고 봄나무는 이런 달갑잖고 못마땅한 이들 앞에서도 환하게 깨어나고 피어납니다. 누구한테나 고운 숨결로 봄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꽃을 보며 배우고, 봄을 마주하며 배웁니다. 들꽃 한 송이를 새삼스레 배우고, 들풀 한 포기를 새롭게 배웁니다. 우리 곁에 있는 작은 들꽃하고 들풀을 쓰다듬으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또다시 배웁니다. 이 봄을 기쁜 봄으로 맞이하면서 누리려는 마음으로 기지개를 켭니다.


배롱나무는 나무껍질이 잘 벗겨지고 줅기 표면이 만질만질한 것이 특징인데, 그 부드러운 줄기를 손으로 간질이면 가지 끝이 간지럼을 탄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느 나무나 줄기를 간질이면 가지 끝이 움직인다. 다만 이 나무를 제외하고는 간질여 볼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220쪽)


  어떤 겨울도 봄을 못 막아요. 어떤 군사독재자도 들풀이 들꽃을 못 피우도록 못 막아요. 어떤 정치권력도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는 흐름을 못 막아요. 어떤 총칼도 비구름을 못 막아요. 어떤 제국주의라든지 재벌도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별이 돋는 하루를 못 막지요.

  《꽃을 기다리다》는 꽃을 기다리면서 우리 삶을 스스로 짓고 가꾸는 즐거운 살림을 이야기합니다. 기쁘게 맞이할 봄을 노래하고, 사랑으로 지필 여름 가을 겨울을 두루 노래합니다.

  이 봄에 새로운 나라를 헤아립니다. 새로운 봄에 즐거운 마을을 바랍니다. 이 새로운 봄에 아름답게 춤추며 노래하고 활짝 웃을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두 손으로 가꾸려 합니다. 2017.4.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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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이름 해설
공상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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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0



‘각시꽃게거미’를 본 적 있니?

― 거미 이름 해설

 공상호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6.12.26. 18000원



  2016년이 저물고 2017년이 피어날 즈음 《거미 이름 해설》(자연과생태 펴냄)이라는 도톰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이 책이 나왔다는 얘기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가 없었기에 알 수 없습니다. 이쁘장한 《거미 이름 해설》이라는 도감을 선보인 자연과생태 출판사는 어떤 언론사에도 보도자료를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는 홍보하는 책을 아무 곳에도 안 보내고, 보도자료조차 안 쓴다고 해요.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내는 책을 기다리는 분들은 으레 인터넷서점에서 출판사 이름을 찾기창에 넣어 틈틈이 살펴본다고 합니다.



[1. 복풀거미] 조복성 선생에게 헌정한 것에서 유래했다.

[2. 동국풀거미] 논문 저자(김주필)가 근무했던 학교명(동국대학교)에서 유래했다.

[58. 부석왕거미] 1972년 지리산 거미상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종이다. 국명은 지리산과 가까운 부석마을(전북 남원시 송동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거미 799종을 놓고서 이 거미한테 붙은 이름을 하나하나 살피고 따져서 묶은 《거미 이름 해설》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도감이라고 느낍니다. 이른바 “거미 도감”은 제법 있을 테지요. 그런데 “거미 이름 도감”은 얼마나 있을까요? 이름을 놓고서 따로 도감을 엮을 생각을 하는 나라나 출판사는 몇이나 있을까요?


  조복성 님을 기리는 뜻으로 붙었다는 ‘복풀거미’ 이름을 앞에 두고 한참 생각에 젖어 봅니다. 조복성 님은 일제강점기이며 해방 뒤이며 한국에서 수많은 풀벌레랑 딱정벌레랑 나비랑 …… 알뜰히 살피고 살뜰히 헤아리는 길을 걷고 닦고 보듬은 분입니다. 한국 거미 칠백아흔아흡 가지 가운데 처음 자리에 놓인 거미한테 ‘복풀거미’라는 이름을 붙인 일은 참 아름답구나 하고 느낍니다. ‘복풀거미’란, 파브르를 기려 ‘파브르거미(이러한 거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라는 이름을 붙인 일이라고 할 만해요.



[67. 방울왕거미] (학명) 양쪽 배어깨와 그 사이에 흰색 반점이 3개인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늬나 색상 변이각 많아 모든 개체에서 흰색 무늬가 3개인 것은 아니다 (국명) 흰색 무늬를 ‘물방울무늬’로 해석했거나 크기가 작은 거미의 이름에 붙는 ‘방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거미를 살피는 한국 학자는 한국 거미한테 어떤 이름을 붙였을까요? 먼 옛날부터 붙인 이름이 있는 거미도 있으나, 딱히 이름이 안 붙은 거미가 훨씬 많습니다. 게다가 새로 알아보는 거미도 많아요.


  거미 한살이라든지, 거미 짝짓기라든지, 거미 먹이라든지, 이모저모 살피는 일은 곤충생태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미 이름 짓기”는? 거미를 살피는 곤충생태학자는 생태학만 잘 살펴서는 안 될 노릇이지 싶어요. 한국말도 잘 알아야 하는구나 싶어요. 아니, 잘 아는 테두리를 넘어서 한국말을 사랑하고 한국말을 슬기롭게 다룰 줄 알아야지 싶어요. 이러지 않고서야 칠백아흔아홉 가지에 이르는 온갖 거미한테 다 다른 이름을 붙여 줄 수 없을 테니까요.



[104. 어리호랑거미] 학명과 마찬가지로 호랑거미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 ‘어리’는 비슷하다는 의미의 접두사이다.

[219. 고려참매거미] 최초 채집지인 한국에서 유래했다.

[223. 포도참매거미] 채집 당시 서식처였던 포도밭에서 유래했다.



  가만히 보면 “거미 이름”만 제대로 잘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노린재 이름도 제대로 붙여야 합니다. 딱정벌레나 나비 이름도 제대로 붙여야 해요. 풀하고 나무한테도 이름을 제대로 붙여야지요. 물고기나 바닷말이나 버섯 이름도 제대로 붙여야 합니다.


  수학자나 과학자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서양에서 쓰는 영어나 라틴어를 고스란히 가져다 쓸 수 없기 마련입니다. 일본에서 일본 한자말로 옮긴 이름을 함부로 들여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거미 학자를 비롯한 숱한 생태학자나 생물학자뿐 아니라 수학자나 과학자도 한국말을 찬찬히 잘 배워야 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어느 학문에서든 이 땅에서는 한국말부터 슬기롭게 살피고 알맞게 가다듬어 사랑스레 쓸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지 싶어요.



[362. 긴코뿔애접시거미] 수컷의 머리끝이 기둥 모양으로 길게 돌출해 코뿔소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했다.

[535. 번개닷거미] 톱니무늬와 번개무늬는 용어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뜻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명 ‘번개닷거미’의 어원은 동면(dorsalview) 전체에 길이 방향으로 뻗은 폭넓은 줄무늬의 염통무늬 뒤 양쪽 가장자리에 나타난 번개무늬에서 나왔다.



  《거미 이름 해설》이라는 책을 천천히 읽습니다. 두 달에 걸쳐서 조금씩 읽습니다. 아무래도 혀나 귀나 눈에 낯선 이름이 많습니다. 이름을 읽어 보아도 두 눈으로 만날 수 있는 거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알아볼 만한 거미라면 이 거미마다 어떻게 이름을 가릴 만한지 퍽 힘들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해요.



[593. 까치깡충거미] 일본명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일본명에는 까마귀가 포함되어 있고, 일본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긴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까치를 길조로 여기므로 까치깡충거미로 명명한 것으로 추측한다.

[619. 이슬거미] 역시 이슬거미라는 뜻의 일본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학명과 마찬가지로 싱그러운 초록빛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시골에 있는 우리 집에는 거미가 여러모로 많습니다. 집 안에서 함께 사는 거미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집 밖에서 함께 지내는 거미는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집 거미를 보면서 이름을 몇 가지 몰라 아이들한테 그저 “거미야.”라든지 “거미 있구나.”라고밖에 말을 못 해요. 그렇다고 《거미 이름 해설》을 읽었기 때문에 우리 집 거미를 더 잘 알아차리지는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어요. 수많은 거미 이름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이 거미가 “그냥 거미”는 아닌 줄 느낍니다.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자라는 풀이 “그냥 풀”이 아니라 봄까지꽃, 코딱지나물, 봄맞이꽃, 꽃다지, 소리쟁이, 주홍서나물, 냉이, 노랑괴불주머니, 제비꽃, 고들빼기, 살갈퀴, 갈퀴덩굴, 환삼덩굴, 하늘타리, 억새, 흰줄갈풀, 곰밤부리, 솔, 민들레, 지칭개, 방동사니, 질경이 …… 같은 이름이 하나하나 있듯이, 거미한테도 다 다른 이름이 있는 줄 이제서야 되새깁니다.



[746. 각시꽃게거미] ‘꽃’에 몸을 숨겨 사냥하는 ‘작은 거미’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각시’는 크기가 작은 거미의 이름에 종종 붙는다.

[765. 살받이게거미] 살받이는 과녁 한 가운데 화살이 꽂히는 곳을 말한다. 국명은 활짝 핀 꽃 가운데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명은 배의 생김새가 삼각형인 데서, 일본명은 노란색 팥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풀마다 다른 이름을 놓고 하나하나 새로 익히기까지 여러 해 걸렸어요. 거미마다 다른 이름인 줄 이제 겨우 눈을 떴으니, 《거미 이름 해설》 한 권을 읽었더라도 모든 거미를 제대로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제부터 거미를 마주할 적에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더 오래오래 살피면서 거미한테 말을 건네려 해요. 작은 거미를 반기는 마음이 되고, 작은 숨결을 아끼는 마음이 되려고 합니다. 비록 오늘은 아직 이름을 잘 모르더라도, 앞으로는 우리 집 거미한테 이쁘장한 이름을 하나하나 챙겨서 부를 수 있도록 아이들하고 새롭게 배우려고 해요.


  우리 둘레를 따스히 돌아보도록 북돋우는 작은 도감 하나가 반갑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새롭게 되새기도록 이끄는 작은 생태도감 하나가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삶터를 아이들하고 기쁘게 짓는 길에 길동무가 되어 주는 숲책 하나가 고맙습니다. 2017.3.1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자연과생태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고 얻은 사진입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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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 -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의 실전 노하우
아라이 요시미 & 가가미야마 에츠코 지음, 최성현 옮김, 가와구치 요시카즈 감수 / 정신세계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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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9



“열 해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옛말을 곱씹다

―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

 아라이 요시미·가가미야마 에츠코 글

 최성현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2017.1.31. 22000원



  우리 옛말을 생각합니다. “열 해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있어요. 이 옛말을 조금 더 헤아리면 “열 해이면 숲이 바뀐다”라든지 “열 해이면 숲이 된다”로 생각해 볼 만합니다.


  이런 생각이 요새 문득 들어요. 저는 도시를 떠나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 깃든 지 2017년 올해로 일곱 해째입니다. 일곱 해쯤 땅갈이를 안 하고 뒤꼍을 묵히면서 지켜보니 ‘땅이 어떻게 살아나는가’ 하는 얼거리가 살짝 보입니다. 앞으로 세 해를 더 지켜볼 수 있다면 ‘왜 예부터 열 해를 말했는지’ 환하게 알아차리리라 느껴요.


  다만 누구나 땅뙈기를 열 해씩 묵히기란 만만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땅 한켠은 갈아서 이것저것 심으며 돌볼 수 있어요. 그리고 땅 한켠은 그대로 두면서 열 해쯤 어떤 풀이 나고 지는가를 살필 뿐 아니라, 땅이랑 흙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몸으로 배워야지 싶습니다.



논밭이 있는 생활, 대자연 속에서 그 은혜들 가운데 사는 시골 생활은 참으로 즐겁고 뜻깊다. 마음을 담아 보살핀 채소가 저절로 자라는 걸 보며 날마다 감동한다. 아침 해에 두 손을 모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밭에 가면, 잘 자란 잎사귀 속에서 여기저기 드러내는 꽃봉오리 또한 감동이다. (8쪽)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정신세계사,2017)은 아주 뜻깊은 ‘자연농 길잡이책’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이 태어나도록 자연농을 일군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은 농약 안 쓰고 비료 안 쓰고 비닐 안 쓰는 시골살이를 하는 동안 다음처럼 두 가지 일을 겪었다고 해요.


  첫째, ‘세 해 동안 논은 다 죽었다’고 합니다. 둘째, ‘열 해 동안 논밭에서 잘못을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농약이나 비료나 비닐이 없이 땅을 짓던 지난날에는 ‘누구나 다 알고 슬기롭게 흙을 살렸’습니다만, 일본이든 한국이든 ‘근대 농법’이 스며들면서 ‘예전에는 누구나 다 알던 흙살림’을 이제는 ‘누구나 다 모르는’ 얼거리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래서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은 열 해에 걸쳐 논은 세 해 동안 다 죽이면서 배우고, 밭은 열 해 동안 잘못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배웠다고 해요.



풀이나 벌레, 소동물이 나고 죽고, 그 자리에 쌓여가며, ‘주검의 층’이 생기고, 거기에 미생물이 활동하며, 더욱 생명력이 넘치는 땅으로 바뀌어 간다. (15쪽)


갈면 일시적으로 흙이 부드러워지지만 곧바로 딱딱해집니다. 그러므로 한 번 갈면 다시 갈아야만 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 자연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도 간다거나 비료를 준다거나 하지 않는데도 나무는 크게 자라고 이윽고 숲이 되고, 산채나 버섯 따위가 해마다 돋아난다. (16쪽)


자연 생태계의 균형이 지켜지고 있을 때는 병도, 해로운 벌레도 생기지 않는다. (17쪽)



  ‘자연농’이란 ‘갈지 않는 흙살림’입니다. 우리는 쉽게 ‘자연농·유기농·화학농(관행농)’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은 모두 일본에서 들어왔어요. 일본에서 ‘농법’을 놓고 붙인 한자말 이름을 한국에서 고스란히 받아들였지요.


  이 세 가지를 한국사람이 쉽게 알아듣도록 고쳐 본다면, ‘흙살림←자연농’, ‘거름짓기←유기농’, ‘농약짓기←화학농(관행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농은 흙을 살리는 시골살림이에요. 유기농은 거름을 쓰는 시골살림이지요. 화학농은 농약이며 기계이며 비료이며 비닐을 잔뜩 쓰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흙살림을 하면서 거름을 내어 흙을 더 북돋울 수 있어요. 거름짓기인 유기농을 하는 분 가운데에는 비닐이나 비료를 함께 쓰는 분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에 바탕이 된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 자연농은 열 해 동안 쓴맛을 본 끝에 실마리를 얻었다고 해요. 이 대목에서 ‘기적의 사과’를 짓는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일본 할아버지를 떠올려 봅니다. ‘기적의 사과’는 자연농처럼 능금밭에서도 농약뿐 아니라 비료도 안 쓰고 풀을 그대로 두되 한 번쯤 살짝 낫으로 쳐 주기만 하면서 지어서 나온다고 합니다. 흙을 살리면 능금나무는 저절로 살아난다지요. 그런데 이 놀라운 능금밭을 일군 일본 할아버지는 아홉 해 동안 쓴맛을 보았다고 해요. 열 해째에 이르러 ‘흙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키가 큰 풀이 나는 곳은 기름지다. 이런 곳에서는 양분이 많이 필요로 하는 가지, 양파, 양배추, 배추, 브로콜리, 옥수수, 호박 등이 잘 자란다. (23쪽)


농사란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고,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작물의 생명 활동을 비롯하여 논밭 안의 온갖 생명의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 자연농의 큰 매력이다. (26쪽)


밭을 벌거숭이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건조와 가뭄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고, 물을 줄 필요가 없어진다. (29쪽)



  짧지 않은 나날을 쓴맛으로 보내면서 온몸으로 배운 끝에 내놓은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인 터라, 이 책은 아주 쉽고 부드럽게 흙살림을 알려줍니다. 다만 이 책은 흙살림을 이야기해요. ‘농업이라는 산업’을 다루지 않습니다. 흙을 지어서 ‘자연농 곡식이나 남새나 열매로 돈을 버는 길’을 다루지 않습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어디에서나 우리가 즐겁게 흙을 살리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흙을 살리면서 마음을 살린다고 해요. 흙을 살리기에 마을이 살아난다고 해요. 흙을 살리는 동안 숲이 함께 살아나고, 흙을 살리는 사이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살가이 어우러지는 잔치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흙살림이라면, 또 자연농이라면, 그리고 시골살림이라면, 바로 여기에 뜻이 있다고 느껴요. 더 많은 돈을 벌자는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먹고 스스로 삶을 사랑하자는 흙살림(자연농)이에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손수 지을 수는 없으나 하나씩 새롭게 배우지요. 이동안 기계나 석유나 문명에 기대지 않고도 즐거운 살림을 아이한테도 물려주고 어른 스스로도 씩씩하게 서자는 뜻을 밝혀 주어요.



풀은 이유가 있어서 거기 나는 것이다. 필요가 없어지면 다른 풀로 바뀌어 간다. 그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풀은 자유롭게 잎을 내고, 땅속으로 뿌리를 뻗고, 공기 중이나 땅속에서 영양을 모으고, 그 자리에서 썩어 가며 생명을 늘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풀은 되도록 베지 않고, 가능한 한 그 자리에서 일생을 마치게 한다. (35쪽)


새가 작물을 먹어버리면 속이 상한다. 하지만 새는 벌레를 잡아먹어 밭의 조화를 찾아 주는 역할도 한다. (56쪽)



  새로 맞이하는 봄에 쑥을 뜯습니다. 쑥을 뜯는 밭은 바로 농약 한 방울 안 친 자리입니다. 농약을 마구 친 자리에서는 쑥을 못 뜯습니다. 겨우내 농약을 뿌린 마늘밭 언저리에서는 쑥을 못 뜯어요. 멧골에 들어 나무를 캐는 까닭은 멧골에는 아무도 농약을 안 치기 때문입니다.


  시골살림을 꿈꾸는 이웃님이라면, 또 도시에서 싱그러운 숲정이를 바라며 아기자기한 마을살림을 바라는 이웃님이라면, 이 어여쁜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을 곁에 두고서 즐겁게 흙살림을 배워 보시면 좋겠어요. 맨손으로 만질 수 있는 흙, 맨발로 디딜 수 있는 흙, 바로 이 흙에서 씨앗이 자라고 우리 보금자리가 싱그럽게 깨어나요.


  그런데 한 가지, 이 책이 아쉬운 대목은 있습니다. ‘누른다’나 ‘다지다’라고 하면 되는데 ‘진압한다’라는 일본 한자말을 씁니다. ‘갈다·안 갈다’라 하면 되는데 ‘경운·무경운’이라고 적어요. ‘씨뿌리기’를 ‘파종’으로 적지 않아도 되고, ‘씨앗받기’를 ‘채종’으로 적지 않아도 돼요. 흙살림을 처음 마주하는 분한테는 꽤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본 한자말은 다음 쇄에서 찬찬히 걸러내 준다면 더 좋겠어요. 2017.3.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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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2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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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2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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