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왕 세종
권오준 지음, 김효찬 그림 / 책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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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숲노래 책읽기 2023.3.10.

맑은책시렁 295


《새내기왕 세종》

 권오준 글

 김효찬 그림

 책담

 2021.5.15.



  《새내기왕 세종》(권오준·김효찬, 책담, 2021)을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뭇임금 가운데 세종을 가장 우러른다고 합니다. 이 책은 사람들이 우러르는 으뜸임금인 세종을 기리려는 뜻으로 줄거리를 짰구나 싶습니다. 그런 탓인지 모르나 “까막눈 백성(14쪽)”이라든지 “백성들은 장국과 고기를 어찌나 배부르게 먹었는지(31쪽)”처럼, 어쩐지 우리 스스로 ‘우리(백성)’를 깎아내리거나 얕보는 말씨나 이야기가 자꾸 나옵니다.


  앞에서 이끄는 이가 한 사람 있어야 나라가 흘러가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끄는 이가 훌륭해야 나라가 훌륭하거나 살기에 좋지 않습니다. 나라가 흘러가려면 ‘우리(백성·민중·국민·시민·민초·인민)’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한자말로 가리키는 허울이 아닌, 그저 수수하게 ‘우리’이면 됩니다.


  우리가 낳아서 돌보는 아이들이 우리처럼 수수하게 자라면서 빛나는 터전이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우리가 아이들 곁에서 슬기롭고 어질게 살림을 가꾸면서 스스로 맑게 웃고 밝게 춤추며 잔치를 이루는 곳이 사랑스러운 마을입니다.


  요새는 ‘왕씨 고려’나 ‘이씨 조선’이라 하지는 않는 듯싶으나, 이런 이름을 2000년에 접어들 즈음까지 썼습니다. 왜 이런 이름을 썼을까요? 고려나 조선을 깎아내리려는 이름일까요? ‘왕씨 고려’나 ‘이씨 조선’이란 왕씨나 이씨만 임금 자리에 설 뿐 아니라, 벼슬이고 감투이고 온통 몇몇 사내만 거머쥔다는 속뜻을 드러냅니다. 나라지기나 벼슬을 ‘순이돌이(남녀)’가 고르게 맡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위아래(신분·계급·질서)를 단단히 세워서 종(노예·노비)으로 허덕여햐 하는 사람이 숱하게 있었다는 뜻으로 ‘왕씨 고려’나 ‘이씨 조선’이란 이름을 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로 쳐들어온 일본을 ‘일본 제국주의’라고 하지요. 총칼로 사람을 입을 틀어막고 억누른 나날 가운데 ‘박정희 군사독재’도 있어요.


  아무리 임금 한 사람이 훌륭했다고 해도, 그분은 임금집 밖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백성)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나리(양반)한테 짓눌려 시름시름 들볶였습니다. 아무리 훈민정음을 여미었어도 사람들은 종이나 붓조차 만질 수 없던 조선이란 나라요, 글씨는 어깨너머로 구경을 해서도 안 되던 조선이란 굴레였어요.


  어린이한테 섣불리 ‘훌륭한 임금’이라고만 가르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발자취를 어린이한테 들려줄 적에는 ‘높다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줄거리’가 아니라, 바로 들풀과 들꽃 같은 작고 수수한 사람들 자리에서 ‘손수 집을 짓고 옷을 짓고 밥을 지을 뿐 아니라,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짓고 생각을 짓고 마음을 지은 숲빛마을 보금자리’라는 눈길로 이야기를 여밀 노릇이라고 봅니다.


  글(한문)로 남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줄거리는 걷어치울 때라고 느껴요. 우리 몸에 아로새긴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한 마음’과 ‘어진 어른 곁에서 슬기롭게 눈을 밝혀 철드는 아이 숨결’로 지난삶과 오늘삶을 나란히 바라보는 이야기를 갈무리해야, 비로소 동화요 위인전이요 어린이책이라 여길 만하다고 봅니다. 《새내기왕 세종》은 어린이한테 이바지할 줄거리가 도무지 없다고 느낍니다. 오히려 어린이한테 굴레를 새롭게 씌우면서 ‘우리(백성)’가 어리석을 뿐이라 위에서 임금님이 갸륵하게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뜬금없는 마음만 심겠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한양에서는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풍악 들으며 노셨을 텐데, 이런 시골에 콱 박혀 지내시다니, 상왕이 해도 너무하셨어.” 까막눈 백성들이라 해서 대궐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14쪽)


몇 차례의 매사냥으로 꿩은 물론, 노루와 토끼도 잡는 성과를 올렸다. 상왕은 사냥으로 잡은 짐승들을 종묘로 보내라 하고, 군사들은 물론 몰이꾼들에게도 푸짐하게 먹을거리를 풀라 했다. 백성들은 장국과 고기를 어찌나 배부르게 먹었는지 서로서로 불록 나온 배를 내밀어 보이며 즐거워했다. (31쪽)


여기저기 구경꾼들 입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 참 좋아졌네. 하찮은 종놈이 나라님 대접까지 받으니.” 양반들은 임금의 조치가 지나치다며 수군거렸다. “말 한 필 값도 안 되는 노비한테 저렇게까지 해줘야 할까?” (47쪽)


이종무는 공격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조선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가옥들을 불살랐다. 이천 채에 달하는 가옥이 불타버렸고 적선을 백이십구 척이나 빼앗았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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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쓰레기는 왜 생기나요? - 나부터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26
최원형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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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숲노래 책읽기 2023.2.28.

맑은책시렁 293


《선생님, 쓰레기는 왜 생기나요?》

 최원형 글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2023.2.19.



  《선생님, 쓰레기는 왜 생기나요?》(최원형·홍윤표, 철수와영희, 2023)를 읽었습니다. 쓰레기가 왜 생기는지는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손수짓기(자급자족)를 하는 사람은 아무런 쓰레기를 안 내놓습니다. 손수짓기를 안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쓰레기입니다.


  손수짓기를 하면 얼핏 느린 듯 여기지만, ‘느림’이 아닌 ‘제철’입니다. 여름에는 더위를 먹고, 겨울에는 추위를 머금으면서 철빛을 누리지요. 삼월에 천천히 덩굴이 퍼지면서 잎이 푸르게 빛나고, 사월에 흰꽃이 흐드러지면서 오월에 빨간알을 누리는 딸기입니다. 손수짓기로 제철살림을 한다면 딸기를 오월에 들숲밭에서 누릴 테니, 딸기를 비닐에 씌울 까닭이 없어요. 더구나 제철딸기라면 꼭지도 고스란히 먹겠지요.


  한겨울에 비닐집에서 기름을 때어 거두는 비닐밭딸기는 온통 쓰레기판입니다. 가게에서도 쓰레기일 뿐 아니라, 비닐집을 세우는 논밭집에서도 쓰레기투성이예요. 해바람비를 머금는 살림살이를 지을 적에는 쓰레기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흙하고 돌하고 나무로 짓는 집에 무슨 쓰레기가 있을까요? 그러나 잿더미(시멘트)로 올리는 서울살이는 몽땅 쓰레기입니다. 우리는 ‘아파트’라는 쓰레기밭을 비싼값으로 사고팔면서 언제나 쓰레기 품에 있는 얼거리입니다.


  ‘돌흙나무’로 지은 시골집은 허물 적에 고스란히 땅으로 돌아가지만, ‘시멘트·플라스틱’으로 때려박은 아파트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엄청난 쓰레기더미를 어떡해야 하나요? 부릉부릉 달리는 쇳덩이도 온통 쓰레기입니다. 서울(도시)은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쓰레기예요. 우리 스스로 시골을 버리고 서울로 몰리면서 스스로 쓰레기터를 세웠으니, ‘쓰레기터 = 도시’인 얼개입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는지 어른스러이 처음부터 다시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잿집(아파트)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 노릇이고, 쇳덩이(자동차)를 안 거느릴 노릇이며, 손빨래를 하고, 스스로 밥을 지어서 누리면 그럭저럭 쓰레기를 적게 내놓을 만합니다.


  요 몇 해 사이에는 ‘돌림앓이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입가리개 쓰레기뿐 아니라 미리맞기(예방주사) 쓰레기가 끔찍합니다. 여기도 비닐 저기도 비닐로 씌우니 쓰레기밭인데, ‘손소독제’라는 것도 허벌난 쓰레기입니다. 손소독제가 흘러드는 냇물이나 바다는 끙끙 앓지만, 이를 얼마나 살피는 마음일까요? 얼굴을 하얗게 바르는 꽃물(화장품)도 고스란히 쓰레기입니다. 빗물을 멀리하고 햇볕을 등지고 바람을 막으니 온통 쓰레기가 날립니다.


  어느덧 꼭짓물(수돗물)이 아닌 먹는샘물(플라스틱에 담은 땅밑물)을 널리 마시는 판으로 바뀌는데, 나라 곳곳 정갈한 시골에서 땅밑물을 뽑아내어 왜 플라스틱에 담아야 할는지 궁금한 이웃이 매우 드문 듯해요. 모든 집이 땅밑물을 마시면 될 일 아닐까요? 땅밑물을 그대로 안 마시고서 플라스틱에 담아 ‘플라스틱 기운이 스민 쓰레기’를 마시는 요즈음 모습이에요. 이러고서 ‘플라스틱 빈 껍데기’는 고스란히 쓰레기를 이룹니다.


  물살림도 밥살림도 집살림도 옷살림도 ‘살림’이란 말이 부끄러운 서울살이입니다. 그래서 요새는 ‘살림’이란 우리말을 안 쓰고 ‘문화·생활·문명’처럼 일본스런 한자말을 쓰는 듯싶어요. 모든 ‘도시 문화·생활·문명’가 쓰레기인 줄 깨닫지 않는다면, 이 쓰레기판은 어찌할 길이 없으리라 느껴요. 서울을 시골이나 숲으로 바꾸어야겠고, 앞으로 아이들이 온나라를 시골빛에 숲빛으로 바꾸어낼 길을 들려주어야 비로소 어른이라고 할 만합니다.


ㅅㄴㄹ


언젠가는 쓰레기를 매립하는 일은 한계에 다다를 거예요. 여러분이 어른이 되고 나이가 몇 살쯤 되었을 때일까요? (22쪽)


숲을 없애는 건 산불만이 아니에요.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떤 점에서 도끼를 든 나무꾼이라 할 수 있어요. (62쪽)


우리나라 바다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의 82%는 일회용 플라스틱이라고 해요. (67쪽)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의료 쓰레기를 최대 10배나 증가시켰다고 해요. 2020년 3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팬데믹 상황이 된 이후로 2022년 2월까지 코로나19 백신 약 80억 회분이 접종되었다고 해요. 이때 사용된 주사기와 바늘 등은 일회용이다 보니 쓰레기가 14만 4000톤쯤 되었을 걸로 추정하고 있어요. 진단 키트는 1억 4000만 개가 사용되었고 이를 만드는 데 쓰인 플라스틱이 약 2600톤 정도 쓰레기로 배출되었을 거라고 (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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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의 딸 로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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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숲노래 동화읽기 2023.2.23.

맑은책시렁 288


《산적의 딸 로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진영 옮김

 시공사

 1999.3.20.



  《산적의 딸 로냐》(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일론 비클란드/이진영 옮김, 시공사, 1999)는 1992년에 ‘일과놀이’에서 처음 우리말로 옮겼고, 1999년에 ‘시공사’에서 새로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림꽃얘기(애니메이션)로 그리기도 했어요. 숲도둑 딸아이로 태어난 로냐가 아버지하고 다른 길을 가면서 아버지가 멧도둑질을 끝낼 뿐 아니라, 이웃하고 손을 잡는 새길을 내도록 이끄는 줄거리를 차근차근 들려주지요.


  로냐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온누리 어느 아버지라도 곁님뿐 아니라 딸한테 이길 수 없고, 이겨서도 안 되는 줄 알 만합니다. 또한 온누리 어느 어버이라도 딸이건 아들이건 어버이로서 낳은 딸아들이 앞으로 새길을 짓도록 이바지하고 도우면서 스스로 거듭나는 하루로 나아갈 노릇인 줄 알 만해요.


  어버이가 아이를 낳아 돌보는 뜻을 제대로 짚을 수 있을까요?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하려고 낳습니다. 그런데 ‘아이만 사랑’할 수 없어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사랑하려면, 어버이가 먼저 ‘어버이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버이가 이녁 스스로 사랑할 줄 모르면 아이를 사랑하지 못 해요.


  아이를 괴롭히거나 때리는 모든 철없는 어버이는 아직 ‘스스로 사랑’을 모릅니다. ‘스스로 사랑’을 모를 뿐 아니라, 안 쳐다보았고, 안 생각하고, 안 바라는 탓에 그만 ‘스스로 사랑’도 ‘아이 사랑’도 아닌 바보짓으로 헤매면서 철없는 굴레에 스스로 갇혀요.


  남이 가두는 굴레가 아니라 스스로 갇히는 굴레입니다. 로냐네 아버지도 매한가지예요. 누가 로냐 아버지한테 굴레를 씌우지 않아요. 바로 로냐 아버지가 스스로 굴레를 써요. 딸아이 로냐는 어머니가 미처 바꾸어내지 못 한 아버지를 바꾸어냅니다. 다만, 로냐도 아직 철이 덜 든 탓에 아버지를 억지로 바꾸려 했고, 이를 로냐 어머니는 부드러이 타이르고 달래어 ‘아이가 어버이를 바꾸는 길’이 무엇인지 로냐 스스로 생각해서 로냐 스스로 찾아내도록 돕습니다.


  순이(여성)는 로냐처럼, 또 로냐 어머니처럼, 상냥하면서 부드럽고 따뜻하게 지켜보면서 알려주고 가르치는 몫입니다. 순이는 로냐랑 로냐 어머니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놀이를 하면서 살림빛을 가꾸는 자리입니다.


  돌이(남성)는 로냐 아버지처럼, 짝꿍하고 딸아이한테서 배우는 몫이에요. 온누리 모든 돌이(남성)는 순이한테서 살림길을 배우면서 차근차근 ‘살림꾼’이자 ‘머슴’으로 깨어나서 즐겁게 ‘동무’를 하는 동글동글한 마음으로 새로 태어날 숨결입니다.


  《산적의 딸 로냐》는 ‘멧도둑 아버지’가 ‘멧사람 아버지’로 거듭나는 길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아이들은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더라도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들은 모든 어버이를 바꾸어내는 길잡이로서 이 땅에 태어나거든요. 오직 아이 눈빛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누구네 아이’인지 따지거나 가릴 까닭이 없어요. 아이가 아이답게 눈망울을 밝힐 적에 이 아이가 바꾸어내려는 새길을 지켜보고 헤아리면서 어깨동무를 하면 넉넉할 뿐입니다.


  아이한테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산적의 딸 로냐》는 누구보다도 온누리 아버지(돌이)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서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 줄 이야기꽃입니다. 잠든 아이 곁에서 가만히 혼자 읽고서 마음으로 사랑을 깨달아 새롭게 일어설 별빛으로 삼을 이야기꽃이에요.


  스웨덴 할머니는 스웨덴 아이들뿐 아니라, 스웨덴 엄마아빠한테 이야기꽃을 사랑으로 남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한테 ‘사랑어린 이야기꽃’을 써서 남길 만한 철든 어른이 있을까요? ‘동화’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동화일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서 배우는 어버이 이야기를 그릴 줄 알아야 비로소 동화입니다.


ㅅㄴㄹ


“아가야, 너는 벌써 그 작은 손으로 이 산적의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단다.” (14쪽)


별들만 웅덩이에 떠 있고, 다른 것들은 모두 깊은 어둠 속에 잠겼다. 로냐는 어둠에 익숙했다. 어둡다고 해서 겁이 나지 않았다. 겨울 밤 마티스 요새에 불이 꺼지면 그 어떤 숲보다도 더 어둡지 않았던가! (28쪽)


“비르크, 네가 내 친구였으면 좋겠어!” “그러지 뭐. 너만 좋다면. 산적의 딸!”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로냐라고 부를 때만이야!” “로냐, 그래. 넌 내 친구야.” (106쪽)


봄날 저녁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비르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비르크는 저녁 냄새도 맡지 못했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땅 위에 나 있는 풀과 꽃들도 보지 못했다. 단지 후회에서 오는 고통만 느낄 뿐이었다. (215쪽)


‘숲은 왜 여름만 계속되지는 않는 걸까? 그리고 왜 난 행복하지만은 않은 걸까?’ 로냐는 숲과 숲 속에 펼쳐진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245쪽)


로냐와 비르크는 곰굴로 들어갔다. 굴 안은 엉망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편안하고 익숙했다. 세차게 흐르는 강이며, 아침햇살에 빛나는 숲이며,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였다. “놀라지 마, 비르크. 내가 봄의 함성을 지를 거니까!” 그리고 로냐는 새처럼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314쪽)


#RonjaRovardotter #AstridLindgren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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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김한종.김승미.박선경 지음, 이시누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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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2.23.

맑은책시렁 292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김한종·김승미·박선경 글

 이시누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2.12.30.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김한종·김승미·박선경, 책과함께어린이, 2022)를 읽으면 ‘글(기록)’이 무엇인가 하고 어린이한테 가만히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른바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모든 이야기는 으레 ‘글’이랑 ‘남은것(유물·유적)’을 바탕으로 살핍니다만, 아이를 낳아 수수하게 살아오던 자취는 ‘글’로도 ‘남은것’으로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전형필 님이 목돈을 들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건사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습니다만, 임금이나 벼슬아치가 아닌 수수한 사람들이 쓰던 호미나 낫을 건사한 일은 얼마나 될까요? 키나 도리깨나 베틀이나 물레는 얼마나 건사할까요? 아니, 호미나 낫이나 키나 도리깨나 베틀을 건사하더라도, 이 살림살이를 어떻게 다루거나 쓰는가를 얼마나 알까요?


  글바치는 “낫 들고 ㄱ글씨 모른다”고 읊지만, 흙지기는 “낫 쥐고 풀을 벨 뿐”입니다. 오늘날 숱한 ‘역사책·역사 이야기’는 ‘낫 들고 읽는 ㄱ글씨’에 머무느라 ‘낫 쥐고 풀을 베는 살림’은 등지거나 모르는 얼거리 같습니다.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살짝 짚기도 하지만, ‘고조선’이란 나라는 없습니다. ‘이씨조선’을 ‘조선’이라 하면서 옛나라 이름 앞에 ‘고-’를 붙일 뿐입니다. 우리는 ‘고조선’이 아닌 ‘단군조선·이씨조선’처럼 갈라야 알맞지 않을까요?


  ‘먼 조선(고조선)’이 아닌 ‘가까운 조선’이 ‘이씨조선’인 까닭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본사람이 읊기 앞서 우리 스스로도 ‘이씨조선’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씨고려’를 무너뜨린 무리는 ‘이씨집안’이었거든요. 오백 해 내내 ‘이씨임금’이 우두머리를 차지하면서 위아래(신분질서)를 세웠어요. ‘이씨조선’이라는 이름은 사람을 위아래로 가른, ‘높은이·낮은이’로 금긋고서 따돌리거나 짓밟은 낡은 굴레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뜻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대어 바라본다면 외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임금·벼슬아치·붓바치 눈높이가 아니라, 글을 모르고 글을 남긴 적이 없는 수수한 사람들 살림자리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자취(역사)를 제대로 짚을 만합니다. 임금·벼슬아치·붓바치는 ‘이씨조선 터전에서 1퍼센트도 안 되었’습니다. 이름도 글도 남기지 않은 수수한 흙지기(백성)는 ‘99퍼센트에 이르는 우리 삶’이었습니다.


  오늘날 떠들썩하게 이름이 나오는 정치꾼·연예인·운동선수·문화예술인은 ‘1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러나 옛자취 아닌 오늘자취를 앞으로 ‘역사’란 이름으로 누가 남긴다고 할 적에는 ‘1퍼센트도 안 되는 몇몇 이름’을 바탕으로 쓰지 않을까요? ‘99퍼센트에 이르는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살림살이’를 역사·문화라는 이름으로 누가 남길 수 있을까요?


  몇몇 임금 이름을 외우는 일이 ‘역사공부’일 수 없습니다. 글을 몰랐고 글에 안 남은 수수한 우리 살림살이를 마음으로 되새기고 온삶으로 헤아리는 길이야말로 참다이 ‘살림읽기(역사공부)’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ㅅㄴㄹ


조선을 세운 사람들은 고조선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었을 거야. 자연히 고조선을 세운 이야기인 단군신화가 우리나라 건국신화가 된 것이고. (19쪽)


홍길동 무리의 도적질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 힘들었다는 기록은 양반 지배층이 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거니까 그들의 관점을 담은 것일 수도 있어. 홍길동이 어떤 활동을 했든 간에 이들의 눈에는 그저 도적으로만 보였을 테니까. (28쪽)


이 편지에서 원이 엄마는 ‘자네’라는 표현을 무려 열네 번이나 사용했어. 이러한 사실로 우리는 ‘자네’가 그 당시 부부 사이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50쪽)


그렇다고 일기가 사람들의 생활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닐 거야.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의 백성은 글을 몰라 자신의 기록을 남길 수 없었어. (61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귀중한 존재라는 것이지. 동학의 평등사상은 신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생활이 결정되는 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었어. (99쪽)


삼전도비는 반대로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면을 보여주고 있지? 이러한 문화유산은 없애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곁에 두고 보면서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까? 우리가 유적과 유물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5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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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자 - 오스카 와일드 동화집 재미있다! 세계명작 9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지민 옮김, 홍선주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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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동화책 / 숲노래 어린이책 2023.1.30.

맑은책시렁 282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이지민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3.12.25.



  《행복한 왕자》(오스카 와일드/이지민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3)를 아이들하고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만한 책은 뜻밖에 매우 적으나, 아예 없지는 않고, 또 이래저래 찾아보면 제법 있습니다.


  왜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지필 책이 적을까 하고 돌아보면, 아이들은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어른들도 굳이 책이 없어도 됩니다. 몸으로 뛰놀고, 마음으로 이야기하면 넉넉해요. 몸으로 함께 살림을 짓고, 마음으로 같이 사랑을 그리면 즐겁습니다.


  굳이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까닭은 있어요. 이 아름다운 삶빛을 씨앗으로 남겨서 언제 어디에서나 되돌아보고 아로새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애써 글을 쓰거나 책으로 엮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님이 남긴 씨앗 가운데 돋보이는 ‘제비’하고 ‘큰사람(거인)’ 이야기가 있어요. 이녁은 ‘임금’이라는 자리가 ‘자리·이름·허울·힘’을 쳐다보려 할 적에는 고약할 뿐 아니라 스스로 좀먹어 죽음길로 가는 줄 꿰뚫어보고서 글로 남겼습니다. 이녁은 ‘아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빛나면서 상냥하고 즐겁게 뛰놀면서 꿈꾸는 이야기로 잇는 길인 줄 알아차리고서 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말로 옮긴 분들은 “행복한 왕자”로 이름을 붙였으나, 가만가만 헤아린다면 “즐거운 아이”나 “기쁜 아이”쯤이면 돼요. 우리는 ‘왕·왕비·왕자·왕녀’ 같은 허울을 이제 버릴 때입니다. ‘아이’라는 숨빛을 바라볼 때입니다. 겉멋을 부리는 말씨인 ‘행복’이 아니라 ‘기쁨·즐거움’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고서 노래하는 하루를 지을 노릇이에요.


  글을 읽고 싶다는 아이가 있다면, 저마다 어른스레 어진 눈빛을 밝혀 먼저 열 해쯤 날마다 신바람으로 집살림을 가꾸면 됩니다. 열 해쯤 신바람으로 집살림을 가꾸고 나면 저절로 글길을 열 수 있어요.


  글을 쓰고 싶은 이웃님이라면, 오늘부터 열 해 동안 붓종이를 치워버리고서 기쁘게 집안일을 도맡으면 됩니다. 열 해쯤 기쁘게 집안일을 도맡으면 바야흐로 스스로 샘솟는 사랑으로 글자락을 여밀 수 있어요.


  글쓰기란 쉽습니다. 그저 삶을 쓰면 되는데, ‘그냥 삶’이 아닌 ‘스스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푸르게 품은 삶’을 쓰면 돼요. 다들 ‘그냥그냥 쳇바퀴로 맴도는 삶’만 너무 서둘러 조바심으로 얼른 써내고서 ‘작가·예술가’란 이름으로 겉멋을 부리려 하니 망가질 뿐입니다.


  제발 “행복한 왕자”가 되지 맙시다. “기쁜 아이”로 살고 “즐거운 아이”로 오늘을 노래해 봐요. 이렇게 하면 누구나 글님이요 그림님이자 삶님이고 살림님으로 빛나다가 문득 사랑님으로 피어납니다.


ㅅㄴㄹ


직조공은 날카롭게 소리질렀습니다. “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지요. 다만 내가 누더기를 입고 다닐 때 주인은 좋은 옷을 입고 있고, 내가 배가 고파 기운이 없을 때 그는 좀 너무 먹어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 말고는 그와 나 사이에는 차이가 없지요.” “이 나라는 자유로운 땅이고 너는 노예가 아니잖아?” 하고 왕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직조공은 대답했습니다. “전쟁 때에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노예로 만들지만, 평화시에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종으로 만들지요. 우리는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살아갈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적은 임금밖에 주지 않아요.” (43쪽)


“너는 높은 나무 꼭대기를 날 수 있으니 온 세상을 볼 수 있지? 말 좀 해줘. 우리 어머니가 보이니?” 그러자 방울새는 “네가 장난삼아 내 날개를 부러뜨렸는데 내가 어떻게 날 수 있겠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아이는 전나무 속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다람쥐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어디 계시니?” 그러자 다람쥐는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어머니를 죽였는데 이제 네 어머니도 죽이려고 찾는 거니?” (127쪽)


“사랑은 지혜보다 낫고 보물보다 귀중하고, 인간의 딸들의 발보다 좋은 것이라오. 불은 사랑을 파괴하지 못하고 물도 사랑을 식히지 못하도다.” (201쪽)


#OscarWilde #TheHappyPrince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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