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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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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24 ― 한 해를 통틀며 가슴으로 껴안는 책
 : 시모무라 고진, 《지로 이야기 1》



- 책이름 : 지로 이야기 1
- 글 : 시모무라 고진
- 옮긴이 : 김욱
- 펴낸곳 : 양철북 (2009.4.24.)
- 책값 : 14000원



 (1) 올 한 해 나한테 가장 돋보이는


 한 해에 책을 한 권만 읽은 분들한테 ‘올 한 해 당신한테 가장 돋보이는 책’을 꼽으라고 여쭙기는 머쓱합니다. 그러나, 한 권을 읽든 열 권을 읽든 백 권을 읽든, 그 책 가운데 하나라도 마음을 움직였다면 우리한테는 아름답고 반갑고 훌륭한 책이라고 느낍니다.

 저한테는 어떤 책들이 지난 2000년부터 가슴을 파고들었는가를 곱씹어 봅니다. 지난 2008년에 나온 책 가운데에는 《국가는 폭력이다》(레프 톨스토이 씀,달팽이 펴냄), 《니사》(마저리 쇼스탁 씀,삼인 펴냄),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폴 콜먼 씀,그물코 펴냄), 《도자기》(호연 그림,애니북스 펴냄), 《페르세폴리스 2》(마르잔 사트라피 그림,새만화책 펴냄), 《눈물나무》(카롤린 필립스 씀,양철북 펴냄), 《음주가무연구소》(니노미야 토모코 그림,애니북스 펴냄) 들을 꼽습니다.

 지난 2007년에 나온 책 가운데 한 가지 책을 꼽으라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 씀,달팽이 펴냄)와 《이 여자, 이숙의》(이숙의 씀,삼인 펴냄)를 꼽습니다(한 권이 아니고 두 권이군요). 2007년에 나온 그 어떠한 책도 이 두 권보다 제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지 못했습니다. 2006년에 나온 책 가운데에는 《장미마을의 초승달 빵집》(모이치 구미코 씀,한림출판사 펴냄)과 《낫짱이 간다》(김송이 씀,보리 펴냄)를 꼽습니다. 2005년에 나온 책에서는 어린이문학 《두 친구 이야기》(안케 드브리스 씀,양철북 펴냄)와 사진책 《섬》(전민조 사진,눈빛 펴냄)을 꼽는데, 이와 함께 만화책 《뚝딱뚝딱 인권짓기》(인권운동사랑방 씀,야간비행 펴냄)가 참 좋았습니다. 2004년에 나온 책에서는 《9월이여 오라》(아룬다티 로이 씀,녹색평론사 펴냄)를 오래도록 곱씹었습니다. 2003년에 나온 책에서는 《말해요 찬드라》(이란주 씀,삶이보이는창 펴냄)와 그림책 《꼬마 인형》(가브리엘 벵상 그림,열린책들 펴냄)이 한 해 내내 가슴을 채웠고, 2002년에 나온 책에서는 사진책 《역전 풍경》(김기찬 사진,눈빛 펴냄)과 환경문학 《수달 타카의 일생》(헨리 윌리엄슨 씀,그물코 펴냄)을 손꼽습니다. 2001년에 나온 책을 돌아볼 때에는 1999년부터 나와서 모두 23권으로 마무리가 된 만화책 《당신의 손이 따뜻할 때》(준코 카루베 그림,서울문화사 펴냄) 열 권과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 열세 권이 아름다웠다고 느끼는데, 2001년은 《내 마음속의 자전거》(미야오 가쿠 그림,서울문화사 펴냄) 1권이 막 나오면서 자전거 사랑과 자전거 삶이란 무엇인지를 우리들한테 보여주던 해입니다. 2000년에 나온 책에서는 어린이문학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야누스 코르착 씀,내일을여는책 펴냄)과 환경문학 《블루백》(팀 윈튼 씀,눌와 펴냄)만한 책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올 2009년을 놓고 돌아볼 때에는 《우애의 경제학》(가가와 도요히코 씀,그물코 펴냄)이나 《엄마가 사랑해》(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씀,숲속여우비 펴냄)나 《흐느끼는 낙타》(싼마오 씀,막내집게 펴냄)나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필립 퍼키스 말,안목 펴냄)가 돋보인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가운데 《아돌프에게 고한다 1∼5》(데즈카 오사무 그림,세미콜론 펴냄)과 《리틀 포레스트 2》(이가라시 다이스케 그림,세미콜론 펴냄)과 《현미선생의 도시락 1》(오사무 우오토 그림,대원씨아이 펴냄)가 퍽 좋았습니다. 《민들레솜털》(오자와 마리 그림,북박스 펴냄)이 올해에 3권과 4권이 번역되어야 했을 텐데 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무척 안타깝습니다. 가만히 보면, 《내 마음속의 자전거》 또한 13권까지만 번역이 되고 14권부터는 나오지 못합니다.

 2009년에 제 마음속에 파고든 좋은 책을 더 든다면, 여기에 《지로 이야기》 1ㆍ2ㆍ3권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빈센트 반 고흐 글,아트북스 펴냄)를 들고 있는데, 누군가 이 가운데 한 권을 다시 추린다면 어느 책이냐고 여쭐 때에는 《지로 이야기》 한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628쪽(1권) + 564쪽(2권) + 372쪽(3권)으로 이루어진 긴 소설인 《지로 이야기》는 자그마치 1564쪽이나 되는 두툼한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이 책은 글쓴이 시모무라 고진 님이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바람에 이만한 부피로 끝났지, 글쓴이가 조금 더 오래 살면서 이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면 훨씬 길었겠지요.

 무척 긴 이야기라 할 만하지만, 저는 아기 기저귀를 빨고 어르고 달래면서 《지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아기를 겨우 잠재운 깊은 밤에 조용히 일어나서 읽고, 새벽나절 빨래를 하고 나서 읽으며, 아기 죽을 끓이는 부엌에서 읽었습니다. 아기를 안고 소리내어 읽어 보기도 하고, 전철간에서도 이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밖에 《잊혀진 미래》(팔리 모왓 글,달팽이 펴냄)와 《희망을 여행하라》(이혜영과 임영신 글,소나무 펴냄)와 《시타델의 소년》(제임스 램지 울만 글,양철북 펴냄)을 아기를 안고 어르면서 바지런히 읽는 동안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느꼈습니다. 제 손이 짧고 머리가 짧으며 생각이 짧은 탓에 더 많은 좋은 책을 더 널리 제 가슴으로 껴안지 못했습니다. 읽거나 훑거나 살핀 책은 천 권이 넘지만,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다문 한 권이라도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책이 있던 해라고 생각하니, 2009년 한 해 책읽기 또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즐거웠습니다. 지난 열 해를 거슬러 보면서 기쁩니다. 이렇게 가슴으로 읽은 책들을 앞으로 우리 딸아이한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 식구한테 돈은 없으나 좋은 마음밥이 있는 셈이니 괜찮은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식구는 돈벌이가 시원치 못하나 마음나눔은 흐뭇하게 한 셈이 아닐까 싶습니다.

 집안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고 책만 들여놓고 있는 이 터전을 언제까지나 고이 이어가고 싶습니다. 글쓰기와 책읽기를 하느라 말로 이야기를 나눌 겨를을 늘리지 못했는데, 새해에는 옆지기와 아이한테 좀더 말을 걸고 좀더 깊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작은 조각틈을 내어 책 하나하나 알뜰살뜰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2) 《지로 이야기》라는 푸름이문학


 2009년 봄에 모두 세 권으로 옮겨 나온 《지로 이야기》는 일본에서는 1부부터 5부까지 따로따로 나온 판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다섯 권으로 나온 책이요, 이번에 우리 나라에서는 세 권으로 나온 셈입니다. 글쓴이 시모무라 고진 님은 몸이 아파 자리에 드러누운 탓에 뒷이야기를 꾸준히 이어쓰지 못했으며, 모두 7부로 마무리를 짓고자 했던 《지로 이야기》는 그만 5부를 끝으로 더는 쓰지 못했습니다. 5부를 마치고 나서 글쓴이가 숨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끝이 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한다면, 선뜻 이 책을 집어들기 어렵다 말할 수 있지만, 《지로 이야기》는 1부부터 5부까지 모두 ‘독립되어’ 있습니다. 세 권짜리로 나온 우리 나라 판 또한 1권과 2권과 3권이 성격이 사뭇 다릅니다. ‘지로’라고 하는 아이가 어린 나날부터 조금씩 철이 들고 세상을 읽는 눈썰미를 키우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모습이 권마다 달리 펼쳐집니다. 1권만 읽든 3권만 읽든,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뜻과 얼’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1부와 2부를 하나로 묶은 《지로 이야기 1》인데, 글쓴이 시모무라 고진 님은 1942년 5월 5일, 2부를 마무리짓고 낱권책으로 펴내면서, “첫 권에서 나는 운명의 아들인 지로의 성장을 그리면서 주로 ‘교육과 모성애’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주제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의 생활 대부분은 오히려 세상의 부모들에게 그같은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재료로 다뤄졌다. 그러나 제 2부에서 지로는 독립성을 가진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지로는 여전히 모성애를 갈망하는 운명의 자식으로서 세상 부모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문제의 소유자는 어디까지나 지로 자신이다. ‘자기 개척자로서의 소년 지로’, 이것이 이 책의 주제인 셈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이 글은 번역책에는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책에만 실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로 이야기 1》에서는 ‘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어머니 마음이란 무엇인가’와 ‘나를 낳아 키운 어머니와 둘레 사람과 터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다룬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을 푸름이한테는 ‘우리 엄마 아빠란 분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거나 아끼는가?’ 하는 궁금함과 ‘나는 내 어버이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면서 내 삶을 꾸려야 하는가?’ 하는 걱정을 돌아보도록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을 어버이한테는 ‘나는 얼마나 어버이다운 매무새로 우리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는가?’ 하는 돌아봄과 ‘나는 내 아이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자라서 아이를 낳기까지 나를 돌보고 키운 내 어버이를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가?’ 하는 되새김으로 지나온 발걸음을 생각하도록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 갈래로 나눈다면 ‘푸름이 문학(청소년 문학)’이 될 《지로 이야기》인데, 갈래는 문학이지만 속에 담은 이야기와 줄거리와 넋은 문학이 아닌 삶입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살아낸 이야기요, 지은 이야기가 아닌 살아갈 이야기입니다.

 그저 재미 삼아 뒤적거리는 읽을거리가 아니며, 한낱 시간 죽이기로 훑을 읽을거리가 아닙니다. 성장소설이라든지 교육소설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책입니다. 따로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로 묶을 만한 책 또한 아닙니다. 글쓴이 시모무라 고진 님은 “자네는 그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 같은 꾸지람까지 들으며 이 책을 써냈는데, ‘내 삶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일 때에 쥐어들 《지로 이야기》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로서 ‘내 삶이 아이 앞에서 아름다운가 아닌가’를 되새기고자 할 때에 읽을 《지로 이야기》입니다. 내 가슴에 따순 사랑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생각하고 싶을 때에, 내 가슴에 깃든 따사로운 사랑으로 내 이웃과 동무를 따사롭게 껴안고 싶을 때에 읽는 《지로 이야기》입니다. 내가 걷는 이 한길이 얼마나 나와 내 식구와 이웃을 옳게 북돋우며 곱고 맑은 빛을 비추는가를 살피고 싶을 때에, 내가 걷는 이 한길이 내 밥그릇만 챙기려는 노릇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고 싶을 때에 펼칠 《지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로 이야기》는 이 책을 읽을 사람한테 길동무와 같은 책이라 하겠습니다. 《지로 이야기》는 이 책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한테 마음동무와 같은 책이라 하겠습니다. 생각동무, 슬기동무, 넋동무, 삶동무로 곁에 놓을 책이라 하겠어요.

 “너희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그대로 앙갚음하겠다는 거냐.”

 시모무라 고진 님은 당신 삶을 비춘 좋은 사람으로 세 사람을 꼽고, 이 가운데 다자와 요시하루라는 분이 첫손이라고 꼽습니다. 젊은 날, 다자와 요시하루라는 분이 학교식당에서 ‘혼자 밥을 왕창 먹어 다른 사람이 굶게 되었을 때에, 혼자 밥을 왕창 먹은 동무를 골탕 먹이겠다고 하는 동무들 앞에서 읊은 한 마디’가 시모무라 고진 님한테 오래도록 남았다는데, 앙갚음이란 사람이 걸을 길이 아니겠지요. 사람이 걸을 길이란 앙갚음도 아니지만 미움도 아닐 테며, 내 밥그릇을 홀로 단단히 움켜쥐는 일도 아니리라 봅니다. 사람이 걸을 길이란 내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거나 훌훌 놓는 일이며, 콩 한 알을 두 쪽 세 쪽으로 나누는 일입니다. 돈이 넘쳐나게 있어야 이웃나눔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돈이 없는 빈털털이라고 이웃나눔을 할 수 없겠습니까. 내 몸이 튼튼하다고 이웃사랑을 널리 펼치겠습니까. 내 몸이 여리고 아프다고 이웃사랑을 하나도 못 펼치겠습니까. 내가 읽은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하여 내가 똑똑하고 슬기로와서 내 이웃한테 기쁨과 보람을 두루 나누겠습니까. 내가 읽은 책이 하나도 없거나 몇 권 안 된다고 내가 어리석고 철딱서니없어서 내 이웃한테 아무런 기쁨과 보람을 골고루 나누지 못하겠습니까.

 모든 문학은 이 문학을 일구는 사람 넋이요 얼이며 삶입니다. 늦깎이에 소설을 쓴다고 못난쟁이일 수 없으며 이들을 못난쟁이라고 바라보는 사람이야말로 슬픈 못난쟁이입니다. 시를 쓰든 수필을 쓰든 소설을 쓰든 한동아리입니다. 글을 쓰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연기를 하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한 흐름입니다. 문학을 하건 예술을 하건 농사를 짓건 노동을 하건 한 갈래 길입니다. 대통령이건 기자이건 운동선수이건 고기잡이이건 교수이건 애 엄마이건 한 삶입니다. 높고 낮음이 아닌 곱고 미움으로 들여다볼 삶매무새입니다. 있고 없음이 아닌 맑고 더러움으로 살펴볼 삶자락입니다. 곱고 맑게 살아가는 흐름이라면 세상에 이름 안 난 애 엄마이건 애 아빠이건 거룩하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밉고 더럽게 살아가는 흐름이라면 세상에 이름 크게 난 대통령이나 운동선수이건 하잘것없을 뿐 아니라 부질없는 사람입니다.

 우리한테는 사람다운 사람인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내 이웃 앞에서 사람다운 사람인 내 삶을 꾸려야 합니다. 나 스스로 곱고 맑은 이웃을 찾을 노릇이고, 나 스스로 곱고 맑은 사람으로 늘 새로워지도록 삶을 추슬러야 합니다. 《지로 이야기》는 내가 더욱 나다우면서 사람된 길을 잘 갈무리하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도와주고 손을 내미는 반갑고 살가운 이슬떨이가 되어 줍니다.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오직 하나뿐인 내 삶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나 스스로 놓지 말라고 다독이고 말을 걸며 웃음지으며 어깨동무를 하는 고맙고 믿음직한 스승이 되어 줍니다.


 (3) 한 줄 두 줄 곱씹어 되읽기


 628쪽에 이르는 《지로 이야기 1》를 여러 번 곱씹어 되읽습니다. 밑줄을 긋고 찬찬히 거듭 읽은 이야기를 다시금 하나하나 옮겨 적어 봅니다. 눈으로 읽을 때하고 소리내어 읽을 때하고 다르며, 밑줄을 그으며 읽을 때하고 손으로 종이에 옮겨 적거나 타자로 옮겨 적을 때하고 다릅니다. 읽으며 가슴에 무언가 울린 책이라 한다면, 이렇게 타자나 손글씨로 옮겨 적습니다. (4342.12.31.나무.ㅎㄲㅅㄱ)


[13, 49쪽] 하지만 좋은 시간에 태어났다고 해서 지로가 행복하게 산 것만은 아니었다 … 다다미방 문턱을 막 넘어서려는데 누군가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오타미(지로 엄마)였다. “너, 정말 …….” 오타미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조금 뒤 지로는 밥상 앞에 무릎을 꿇고 오타미가 늘어놓는 끝없는 설교를 또 들어야만 했다. “여긴 네가 태어난 집이란 말이다.” 오타미는 지로가 어제 밤새도록 들었던 내용과 똑같은 설교를 했다. “우린 비록 시골에서 살고 있지만 어엿한 무사 가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돼.” 이 말도 어제 귀가 따갑게 들었다. 지로는 도대체 무사 집안이 어떻다고 오타미가 입만 열면 그 이야기를 꺼내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63쪽] “끈적끈적한 이 녀석 몸이 갑자기 내 몸에 닿아서 깜짝 놀랐어.” 슌스케(지로 아빠)는 지로가 기댔던 자기 옆구리를 부채 끝으로 훑어내렸다. 지로는 이상하게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지로는 누워서 지그시 아빠를 쳐다보았다. 오타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에요.” “뭐가?” “세상에 자기 자식보고 더럽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더러운 것을 더럽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 “그러면서도 아버지로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것과 이것은 다르잖아? 바보 같은 소리하네.” “아빠들은 그게 문제예요. 자기 혼자 아이를 귀여워하는 척하다가도 금방 아이한테 상처를 입힌다니까.” “그런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 하지 마.” “당신이야말로 억지 이론만 늘어놓고 있는 거 아녜요?”

[108, 120쪽] 새해가 밝았다. 사랑받는 자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에게도 시간만은 공평하게 찾아왔다 … 친구들 사이에서 지로는 나무를 가장 잘 타는 아이로 이름났다. 돌팔매질도 잘했고, 수영도 물고기처럼 빨랐다. 잠자리 잡는 것과 붕어 낚시, 미꾸라지 낚시도 따라올 아이가 없었다. 동네에서는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한겨울만 빼고 언제나 맨발로 돌아다녔다. 지로는 학교에 다니면서 문명인이 되기보다 오히려 야생의 자연인이 되는 것이 어울리는 아이였다.

[118∼119쪽] “하나만 물어 보지. 지로가 자네 아들이 (이빨로) 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나?” “어떻게 되다니요? 뭐가요?” “지로 말일세. 지로가 오늘 기타로를 물지 않았다면 지로는 일 년 내내 기타로에게 시달릴 거야. 한번 생각해 보게. 무릎을 물리는 것과 어린 시절의 비겁한 추억을 갖고 평생을 사는 것 가운데 어떤 쪽이 더 큰 상처라고 생각하나? 자네도 두목 소리를 듣고 있는 사나이인데 내가 지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른다고는 못할 걸세.” … “매실장아찌만 한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 어느 부모가 참을 수 있겠나. 나도 지로가 개처럼 사람을 물어뜯었다는 얘기를 듣고 잘못 가르친 것 같아 부끄러웠네.” 슌스케는 또 개라고 표현했다. 지로는 자기도 모르게 손등으로 입 언저리를 한 번 훑었다. “사실은 나도 기타로가 다쳤다는 것을 알고 자네에게 사과할 생각이었어. 그리고 치료비도 물어 줄 작정이었다네. 그런데 자네 태도가 틀렸어. 우리 집사람한테 돈을 안 주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했다지? 그것도 좋아.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했다고 치지. 화가 나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자네에게 돈을 준 것을 기타로가 알아보게. 또 지로가 그 얘길 들어 보게.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여보게 쇼하치. 자네나 나나 자식들만큼은 돈 때문에 비굴해지지 않는 떳떳한 사람으로 키우세.”

[130쪽] ‘앞으로 엄마나 할머니가 뭐라고 하든지 무조건 무시할 거야. 형에게 덤비는 게 나쁘다면서 슌조가 나한테 덤빌 땐 왜 야단치지 않지? 동생에게 져주는 게 형이라면서 교이치가 나를 때리는 것은 왜 말리지 않지? 엄마랑 할머니는 틀렸어. 엄마랑 할머니는 내가 맞는 것을 봐야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 엄마나 할머니가 같이 기뻐해 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냐고.’

[149, 157쪽] 그 뒤 지로의 마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솟아올랐다. 물론 지로가 십자가를 짊어질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로는 아직도 슌조를 사랑하지 않았다. 또 사랑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슌조를 보면서 연민을 느꼈다. 그런데 이 연민은 지금까지 적대적이었던 슌조를 자기보다 한 단계 낮추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문에 지로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 그러나 단 한 가지, 차별만큼은 아무리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차별을 받으면 받을수록 겉으로는 냉정해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서는 엄청난 분노가 회오리치게 된다.

[203쪽] “지로, 부탁이야. 이제부터 착한 아이가 되는 거야. 알았지?” 하루코의 뺨이 지로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지로는 따스한 기운에 휩싸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정신이 멍해졌다. 그리고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 모를 눈물이 방울방울 무릎 위에 떨어졌다. “오하마 아주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걱정하시겠니?”

[228, 233쪽] 외할아버지는 조금 망설이다가 다시 말했다. “너희 집엔 이제 아무도 살지 않게 될지 모른단다.” 외할아버지의 말은 지로의 가슴을 쿡 찔렀다. 움직이지 않는 별과 타닥거리는 짚신 소리가 자신의 처지를 더욱 처량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지로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사람이란 마음이 가장 중요하단다. 마음만 올바르면 집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단다.” … 외할아버지는 마을 앞에 다다르자 다시 말을 꺼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 네 아빠처럼 누구라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란다. 아빠가 오늘 집안에 보관해 두었던 귀한 물건들을 내다판 것도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느라 돈이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너도 아빠처럼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겠니? 네 마음속에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다음에 커서도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314∼315쪽]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런 게 불편하시면 진작부터 병자를 맡아 달라는 부탁은 하시지 말았어야죠.” 마사키 외할머니가 일부러 빈정거려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혼다 할머니의 아픈 곳을 정통으로 찌르는 말이었다 … 분위기가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할머니는 서둘러 마사키 가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으며 싸늘해진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했다 … “그래도 지로만은 언제나 엄마 곁에 있어 주는구나.” 대여섯 살 때부터 보아 온 엄마의 얼굴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로는 자기 앞에 누워 있는 엄마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의 두 눈은 오하마나 하루코, 마사키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에게서도 본 적이 없는 깊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연못에 잠긴 달빛처럼 조용히 지로를 보고 있었다.

[322쪽] “지로 많이 컸지요?” “예, 아까는 정말 놀랐어요.” “내가 이 아이하고 유모한테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지요. 나도 다 알아요.” “에그, 무슨 그런 말씀을 …….” “어렸을 땐 그저 귀여워해 주면 되는데 …….” 오하마는 오타미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오타미의 심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난 이제야 겨우 알았어요. 헤어질 때가 돼서야 알았으니 …….” “작은 마님, 무슨 말씀을 …….” “죽는 건 하나도 겁나지 않아요. 다만 지로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서 미안해요. 이대로 죽으면 지로에게 …….” “그만 하시래도요!” “날마다 지로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에구머니나 …….” 지로도 이때쯤에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뚝뚝 흘렸다.

[407, 421쪽] “지로는 아껴 주는 사람이 많아서 행복하겠구나.” ‘행복’이라는 낱말이 지로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위에서 누가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해 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지로는 늘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했고, 둘레 사람들도 자기를 그렇게 여기는 줄로만 알았다. 하루하루 무사히 버틴다는 심정으로 순탄하지 않은 환경을 뚫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철이 들 무렵부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날들이 모두 그랬다. 지로는 곤다와라 선생님이 말하는 지로는 자기가 아닌 것 같았다.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 “나만 귀여워해 주고 넌 귀여워해 주지 않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할머니가 너한테 하는 걸 보면 더 참을 수가 없어.” 하지만 지로는 교이치(지로 형)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교이치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지로는 교이치가 자신을 동정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공평한 것이 형제 간의 우애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바람직한 일인지는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리면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굶주린 사람이 찾아헤매는 정의와 배부른 사람이 말하는 정의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의 괴리는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 보지 않는 한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556쪽] 지로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크게 실망한 사람들은 그런 친구들보다 선생님들이었다.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들 가운데 곤다와라 선생님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학생들을 지켜보는 선생님은 하나도 없었다. 중학교 선생님들은 소학교 선생님들보다 자기 과목에 대한 전문 지식이 좀더 많을 뿐, 인간미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래전에 배운 지식을 오늘날까지 교실에서 쥐어짜 내야 하는 선생님들이 안쓰러울 때도 많았다. 더구나 점수와 처벌로 학생들을 위협하는 것이 교사의 권위라고 착각하는 선생님들을 볼 때면, 안쓰러움을 넘어 인간적으로 불행해 보였다. 학교에 볼모로 붙잡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지루한 표정을 하고 복도를 서성이는 인간들, 지로는 그것이 중학교 선생님들이라고 생각했다.

[606쪽] 어른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규정한다고 믿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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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1-0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글을 올려주시네요.
된장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바람드리의 라무 높새바람 22
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2] 류은, 《바람드리의 라무》



 우리 나라만큼 말과 탈이 많은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다고 느끼는 하루하루입니다. 나라를 이끈다는 분들이나 수십 수백 조를 벌어들인다는 큰 회사를 이끈다는 분들이나 여느 어른들이나 한결같이 ‘세계 시대’와 ‘지구 시대’와 ‘우주 시대’를 들먹이지만, 2010년을 코앞에 둔 오늘까지도 이 나라 어른들은 아직도 ‘중고등학생 머리길이와 치마길이’에 목매달고 있거든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아이들 머리길이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들겠습니까. 지구 어디에서 아이들 치마길이나 옷매무새를 놓고 시끌벅적 말이 많겠습니까. 아이들한테 술담배를 하지 말라지만 어른들은 술담배를 즐깁니다. 아이들이 멋모르고 사랑놀이를 하다가 아기를 배는 일이 나쁘다고 하면서, 어른들은 으레 바람을 피우고 두다리나 세다리를 걸치는 한편 성폭력을 일삼는 사람은 바로 청소년이 아닌 어른입니다. 우리가 일컫는 청소년범죄란 하나같이 어른범죄를 시늉하는 꼴인데, 어른범죄 푼수와 견주면 얼마 안 됩니다. 어른 스스로 푸름이 앞에서 옳고 바르게 살아가지 않으니, 푸름이가 보고 배우는 모습이란 범죄요 성폭력이요 욕지꺼리요 돈과 이름값과 주먹힘에 목매다는 꼴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공자님 말씀을 읊든 하느님 말씀을 읊든, 말로 읊는 매무새가 아닌 몸가짐으로 바르게 서며 살림을 꾸리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옛말에 맹자 엄마가 집을 세 번 옮긴다고 했는데, 맹자 엄마가 집을 옮겨다닌 까닭은 ‘아이들이 엉터리’라서 아니라, 마을 터전을 이루는 ‘어른들이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아랫마을이 어떻고 어디는 또 어떠하고 같은 이야기는 한결같이 어른들이 빚어냅니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잘못이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옮아갑니다. 우리 삶터는 어른들이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고, 맑은 물과 깨끗한 바람이 사라진 우리 터전 또한 어른들이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시냇물을 손으로 떠 마시고 어떠했다고 추억어린 이야기를 들추지만, 우리 아이들한테도 시냇물을 손으로 떠 마실 수 있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당신들 추억만 떠듭니다. 아이들한테 자연이 있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우리 자연을 깨끗하고 싱그럽게 가다듬는 데에는 조금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더 큰 자가용을 뽑고, 가까운 길도 자가용을 끌며, 갖가지 전기제품과 물질문명을 마음껏 누립니다.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누립니다.


.. “…… 놓아 줄까요?” “허허허! 네가 잡았으니 결정도 네 몫이지.” 카알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거야. 먼저 토끼는 내가 잡은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라무의 얼굴이 붉어졌다 ..  (18쪽)


 어린이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이나 어른문학이나, 모두 어른이 빚어내는 문학입니다. 어린이노래나 청소년노래나 어른노래나 매한가지입니다. 어린이가 보는 영화나 연극이나 춤은 어떠합니까? 텔레비전에 나와 어른들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춤노래가 귀엽거나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는데, 아이들이 어른들을 고스란히 따라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코앞에 둔 자리에서는 ‘말잘못 하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어렵거나 딱딱한 말을 써서도 안 됨’을 살갗으로 느끼며 다소곳하게 제 몸가짐을 갈무리하는 어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코앞에 있어도 제대로 갈무리하지 않는 어른이 많고, 아이들이 눈앞에 안 보이면 아주 망나니처럼 막 나가는 어른이 많습니다.

 옳고 바를 뿐 아니라 아름답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어른도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옳고 바르게 삶을 꾸리고 생각을 가누며 말글을 나누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는 어른이라서가 아니라, 청소년문학이나 어른문학을 하는 어른들은 삶과 넋과 말이 어떠합니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어른이라서가 아니라,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어른이나 여느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일하는 어른은 어떠하지요? 인터넷에서 ‘어린이 청와대 누리집’은 쉽고 바르고 알맞게 말글을 가다듬으려 한다면, ‘어른이 보는 청와대 누리집’은 어떠합니까? 아이들 앞에서 ‘문자 쓰기’를 하는 어른이 있겠습니까? 문자 쓰기를 하는 어른을 아이들은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아이들 밥상에 얄딱구리하거나 화학약품으로 찌든 찬거리를 올릴 수 있습니까? ‘어른은 먹어도 돼’ 하는 마음을 ‘아이들도 한두 번 먹을 때에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지는 않습니까?

 말만 예쁘장하다든지, 이야기만 놀랍다든지, 짜임새는 판타지로 꾸민다든지, 줄거리는 웃음이나 눈물이 묻어나는 재미난 글감이라든지 한다고 해서 어린이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가르침이 있느냐 없느냐로 어린이문학을 가르지 못합니다. 어린이문학이란, 우리 어른이 아이들한테 물려줄 삶입니다. 우리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면서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물려주고 싶은가 하는 꿈입니다. 우리 어른이 잘 살건 잘못 살건 꾸밈없이 헤아리면서 뉘우치거나 되씹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빛줄기입니다.


.. 유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진 (괴물) 로스를 막다가 돌아가셨어.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로스를 조종한 검은 복면이 다시 온다고 했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내가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  (145쪽)


 밤새 밀린 일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마무리를 지을 무렵 아기가 깨어납니다. 아기는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빨래를 하는 아빠 곁을 종종걸음으로 따라 다닙니다. 말이 늦은 아기는 아빠 곁에서 놀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아빠는 빨래를 할 때에 아기보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몇 번이나 다그칩니다. 겨울철이라 빨래하는 씻는방이 춥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춥건 말건 곁에서 빨래하기를 지켜보며 물놀이를 하고파 하는데 못내 서운해 합니다. 아빠 눈에 걱정스러운 모습이 아이 눈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빨래를 마칠 무렵 아기는 잠이 듭니다. 새벽 여섯 시부터 깨어 있던 아기이니 아침 여덟 시 즈음에 잠들 만합니다. 또한, 우리 아기는 낮잠을 살짝 자거나 안 자고 넘긴 다음 저녁 열 시나 열한 시까지 엄마 아빠하고 놀려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 아기하고 어울리고 있다 하여도 날마다 지칠밖에 없습니다. 귀엽고 예쁜 아기이지만, 늘 곁에서 돌보고 보듬어야 하니 고단할밖에 없습니다.

 옆지기는 때때로 말합니다. 아기가 이 나이에는 우리 곁에서 잠깐도 안 떨어지려고 하지만, 기껏 열 살까지 이런 삶이 이어가겠느냐고. 어른들이 아기는 열 살까지만 효도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아기(아이)가 효도한다는 일이란, 엄마 아빠 곁에서 안 떨어지면서 지낸다는 모습이 아니겠느냐고.

 잠든 아기와 옆지기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빠는 오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바깥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낮과 저녁은 엄마 혼자 아기와 씨름을 하며 듬뿍듬뿍 ‘효도를 받’아야 합니다.

 얼마 앞서 읽어낸 어린이문학 《바람드리의 라무》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바람드리에 사는 라무라고 하는 아이는 둘레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둘레 어른들한테서 좋은 모습도 보고 얄궂은 모습도 보면서 컸습니다. 좋은 모습을 보며 좋은 뜻을 품다가는, 얄궂은 모습을 보며 저 스스로도 얄궂은 쪽으로 기울듯 말듯 갈팡질팡하기도 합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어른들 곁에서 지내며 라무 스스로 착하고 아름다운 목숨으로 단단하게 뿌리내리기도 하지만, 못나고 뒤틀린 어른들 곁에서 시달리고 들볶이면서 자칫 마음이 다치거나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이때에 라무 앞에 좋은 동무가 나타나 주었습니다. 또래동무로 좋은 동무이든, 나이가 많은 어른동무로서 길동무이든.


.. 수야는 하르진에게 밥이 든 큰 그릇을 건네고 하르진의 손을 잡았다. 수야의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이렇게 손이 따뜻한 사람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하다니…….’ ..  (213쪽)


 좋은 어린이문학이란 어떤 작품을 가리킬까 헤아려 봅니다. 널리 사랑받는 어린이문학이란 어떤 작품을 두고 이야기할까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어른이 아이한테 혼자 읽으라고 건넬 만한 작품이 되어야 할 테고, 어른이 아이한테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즐겁게 읽어 줄 만한 작품이 되어야 할 테지요.

 그러나, 읽는 재미나 즐거움에 앞서, 작품에 깃든 어른들 삶자락이 아름다워야 좋은 어린이문학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읽히는 기쁨과 보람에 앞서, 작품에 서린 어린들 넋과 얼이 싱그럽고 맑고 착해야 비로소 훌륭한 어린이문학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예부터 이원수 어린이문학이나 임길택 어린이문학이나 권정생 어린이문학을 높이 여긴 까닭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이오덕 어린이문학 평론을 알뜰히 여기며 고맙게 돌아보는 까닭 또한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을 창작하거나 비평을 하는 어른은, 말재주와 논리와 줄거리에 앞서 말과 넋과 삶이 살갑고 튼튼하며 고운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바람드리의 라무》를 써낸 분께서는 이 대목을 조금 더 깊이 살피고 널리 감싸안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2.12.29.불.ㅎㄲㅅㄱ)


 ┌ 《바람드리의 라무》(바람의아이들,2009)
 ├ 글쓴이 : 류은
 └ 책값 :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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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엄마! 마음이 자라는 나무 21
유모토 카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엄마가 내려준 ‘고운 목숨’ 선물을 깨닫기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9] 유모토 가즈미, 《고마워, 엄마》



 어릴 때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는 그리 안 많습니다. 좀더 오래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안타깝다고 느끼지만, 어떻게 보면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그리 안 많기 때문에 한 마디 두 마디 오래오래 되새기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한 마디 두 마디 더욱 곰곰이 돌아보고 한결 깊이 가슴에 새기고자 하지 않나 하고도 느낍니다.

 제 고향이며 삶터는 인천이기 때문에 웬만한 볼일을 보자면 서울로 길을 나서야 합니다. 저는 운전면허가 없을 뿐더러 앞으로 면허를 딸 생각이 없고 자동차 장만하거나 굴릴 주머니가 없으니 자전거로 시잉씽 달리거나 전철을 탑니다. 혼자 지낼 때에는 으레 자전거를 달렸고, 옆지기와 함께 살면서는 전철을 즐겨 탑니다.

 옆지기와 전철을 타고 서울을 오갈 때는 으레 출퇴근 발걸음으로 붐비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때에서 살짝 벗어난 때이곤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사람은 많기만 했는데, 요 몇 달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때에 움직이니 그야말로 옴쭉달싹 못하면서 사람들한테 시달립니다.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일은 고달프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제가 시달리는 만큼 제 옆에 선 다른 사람들도 다 다른 느낌과 크기와 세기로 시달리고 있으니, 서로서로 매한가지이거든요. 다만 하나, 서로를 들볶는 사람들 매무새가 고달프고 괴롭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됨됨이가 얕거나 모자란 움직임과 몸짓에 치이고 밟힐 때에 쓰라리고 슬픕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저나 형을 따끔하게 나무라던 말 가운데 하나를 요사이 아주 뼛속 깊이 느낍니다. “사람이 사람 앞을 지나다니면 안 돼.”

 어른이든 어린이이든, 어디로 가려고 할 때 앞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이이 앞으로 지나가지 말고 뒤로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를 어기면 따끔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좁은 집에 찾아온 손님이 마루에서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으시면 어디로도 갈 수 없어 안절부절이었습니다. 쉬가 마려도 움직이지 못하고 눈치를 보아야 했고, 제발 어른이 제가 안절부절 어디로도 못 가고 있음을 느껴 주기를 기다리며 애타게 바랐습니다.


.. 나는 물론 아빠의 장례식을 지켜보았으며, 관 속에 누워 있는 아빠의 얼굴에서 살아 있을 때와는 다른 뭔가를 느끼고 겁에 질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빠의 죽음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아빠는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 엄마도 나도 언젠가는 아빠처럼 그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은 너무도 밝고 힘차서, 내가 두려워하는 그런 어두운 구멍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 그럭저럭 학교에 도착하고 나면 엄마가 걱정이었다. 아빠처럼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혹시 지금 이 시각에 나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  (22∼25쪽)


 동인천역에서 빠른전철을 탈 때, 사람들은 저마다 먼저 타려고 달려듭니다. 제 뒤에 서 있던 이들이 어느새 달음박질로 빈자리를 하나씩 꿰찹니다. 실랑이를 벌이기 싫고, 갑작스레 새치기하는 사람하고 다투기 싫어 으레 그냥 서서 갑니다. 용산역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할 때에도 내리는 사람들은 우르르 쏟아지며 달음박질인데 저 같은 사람은 손쉽게 밀치고 밟으며 ‘먼저 자동계단에 타려’고 애씁니다. 저는 자동계단을 안 타고 돌계단만 밟으니 어차피 자동계단 쪽으로 가지 않으나, 옆이고 뒤고 제 앞으로 휙휙휙 달음박질하는 사람들은 무섭기까지 합니다. 시청역에서 내려 표를 끊을 때에도 똑같습니다. 사람들 매무새는 무시무시합니다.

 이 같은 아침저녁 전철길에 모질게 시달리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옆지기와 아기를 다시 만날 때 잔뜩 절고 지치고 힘이 없습니다. 쉬 짜증을 부립니다. 마음이 메말라 가고 차가워지고 쌀쌀맞고 맙니다.

 경쟁을 바라지 않고 경쟁을 하기 싫으며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면서 살고 싶기에, 제아무리 큰돈을 선물로 준다 할지라도 이렇게 뭇사람 물결에 휩쓸리는 일은 힘듦을 넘어 가슴이 아립니다. 왜 이렇게 우리들은 서로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듯 뜀박질을 하며 ‘내가 더 먼저’와 ‘내가 더 빨리’와 ‘내가 더 많이’가 되어야 할까요. ‘나와 네가 함께’나 ‘나와 네가 나란히’나 ‘나와 네가 즐겁게’로 거듭나기는 어려운가요.

 모두들 똑같은 ‘어머니’한테서 아름답고 맑은 목숨 하나 선물로 받은 몸일 텐데, 우리는 왜 내 몸이나 네 몸을 아름답게 여기지 못하나요. 왜 우리 몸을 서로서로 맑게 돌아보거나 건사하지 못하나요.


.. 나는 다림질을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편지를 내밀었다. “오사무네 엄마, 아기가 새로 태어나니까 오사무는 필요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아기가 죽었다고 오사무더러 가지 말라니, 정말 너무해. 오사무가 너무 불쌍해.” 나는 세탁비누 냄새와 탕약 냄새가 밴 할머니의 앞치마에 얼굴을 묻고 눈물과 콧물과 침을 묻혔다. 얼마 후, 내가 얼굴을 들어올리자 할머니는 밤이 든 양갱을 주었다. 눈물과 콧물이 마구 뒤섞여 있던 목 안으로 부드럽고 달콤한 양갱이 넘어가자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  (115쪽)


 우리 어머니라고 안 서두르며 살지는 않았으나 ‘괜찮아!’ 하고 짧게 내뱉으며 우리 몫을 덜 가지는 모습을 곧잘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몫이 더 있다고 해서 우리가 더 배부르지 않음을 넌지시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른 이가 우리와 견주어 훨씬 배부른 데에도 우리 몫까지 얌체처럼 가로채더라도 ‘괜찮아!’ 하고 아쉬움 없는 한 마디를 뱉어냈습니다.

 우리 옆지기를 돌아봅니다. 우리 옆지기는 ‘괜찮아!’를 꺼내지 않으나 ‘됐어!’를 꺼냅니다. ‘우리가 안 가져도 돼!’를 꺼냅니다. 우리 두 손에 든 몫은 거의 없거나 텅 비었음에도 ‘됐어!’를 꺼냅니다.

 저는 옆에서 허전하다고 느끼며 ‘뭐여? 굶으라고?’ 하고 생각하지만, 이내 ‘그래, 조금 굶는다고 우리는 죽을 일이 없지.’ 하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우리 살림에 은행계좌 숫자가 늘어날 턱이 없으나 그 밑바닥하고 이마를 맞대는 얼마 안 되는 숫자마저 선선히 털어내어 (우리보다 그 돈푼을 바라는 자리에 있는 고운) 이웃한테 어느새 다 나누어 놓고 있습니다.


.. 예전에 엄마와 내가 살고 있던 그리운 그 방을 보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 좁고 이렇게 천장이 낮은 방에서 살았던가 하고. 그렇지만 덜거덕거리는 덧문을 열자 포플러는 변함없이 이쪽을 엿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시절의 추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창문턱에 자그만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나의 모습과 식탁에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  (158∼159쪽)


 지난주에 제 새 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이주에 또다른 새 책이 하나 나오고, 다음주에 또다른 새 책이 하나 나옵니다. 석 주에 걸쳐 세 가지 책이 나옵니다. 그동안 밀려 있던 책입니다. 이 세 가지 책을 한꺼번에 그러모아 음성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보낼까, 아니면 세 번에 걸쳐 따로따로 보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전화를 자주는커녕 가끔도 잘 안 하는 주제이니, 세 번 따로따로 편지와 함께 책을 부쳐야 옳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체국에 갈 겨를이 거의 없으나, 가방에 책 담은 편지꾸러미를 늘 넣어 놓고는 낮나절에 길을 지날 일이 있으면 얼른 우체국에 가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렇게 다짐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들내미 새로운 책을 얼마나 기쁘게 맞아들이며 즐겁게 읽어 주실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여태까지 어머니가 아들내미 책을 놓고 이런저런 느낌이나 생각을 꺼내어 본 적이 없으니, 잘 썼다고 여기는지 엉터리라고 여기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즐겁고 흐뭇하게 편지 몇 줄을 적어 보내려 합니다. 따로 말씀이 없어도 저 스스로 잘 쓴 책이라면 잘 썼고, 잘못 쓴 책이라면 스스로 잘못 썼음을 깨달아야 할 노릇이겠지요.

 책에 적힌 이름은 제 이름 석 자이지만, 제 이름 석 자가 책 하나에 새겨지기까지는 내 어버이가 쏟고 들인 땀과 피와 사랑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땀과 피와 사랑과 믿음을 돌아본다면, 제가 쓴 책은 제가 쓴 책이라기보다 제 몸뚱아리와 손길을 빌어 내 어버이와 내 어버이를 낳은 또다른 어버이와 또다른 숱한 어버이들이 빚은 열매요 보람이라고 느낍니다. 저로서는 이 피와 땀과 사랑과 믿음을 제 책들에 알알이 담았는가 못 담았는가를 헤아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 어느 날, 할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나이가 든 다음에, ‘그때는 참 젊었었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단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살아야 해.” 평소 욕심 많고 질투심 많고 독설가였던 할머니가 그런 가슴 찡한 말을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그 외증조할머니의 딸이다. 할머니는 외증조할머니가 정해 준 상대와 얌전하게 결혼하여 자식 넷을 키웠는데, 역시 그 할머니에게도 마음껏 다 살지 못한 자신의 다른 모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  (글쓴이 뒷말/182쪽)


 이야기책 《고마워, 엄마》를 읽습니다. 어머니가 ‘작품 주인공’ 만한 어린 날부터 겪은 아픔이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었음을 ‘작품 주인공’은 ‘당신이 어린 날 어머니 나이’가 되면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작품 주인공이 보낸 어린 나날에 주인공네 어머니가 ‘어린 주인공이 앓고 겪고 부대끼는 슬픔과 생채기’가 덧나지 않도록 하려고 오래도록 말없이 참고 기다리고 헤아리고 있었음을 ‘주인공이 어머니가 된 다음은 아니고, 주인공이 어머니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시나브로 깨닫도록 마련해 놓고 있는 줄을 깨닫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되어 무엇을 깨닫고 있다 할 수 있을까요. 옆지기는 딸이 아닌 어머니가 되어 무엇을 깨닫고 있다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두 사람은 우리 딸아이한테 무엇을 느끼거나 깨닫도록 하루하루 삶을 이어간다 할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 보낸 삶이 먼 뒷날 우리 딸아이가 ‘제 엄마 아빠 나이’로 다가설 즈음 무엇을 느끼도록 할까요. 우리 삶자락이, 우리 삶자취가, 우리 삶결이 우리 딸아이 앞날에 어떤 이야기로 다가설 수 있게끔 일구거나 가꾸거나 보듬거나 껴안고 있을까요.

 엄마한테는 엄마가 있으며 딸이 있습니다. 딸한테는 엄마가 있으며 뒷날 스스로 엄마가 됩니다. 스무 해이든 서른 해이든 마흔 해이든, 어느 만큼 햇수를 살아내면서 차근차근 ‘목숨 선물’을 사랑과 믿음을 실어 물려줍니다.

 틀림없이 아침저녁으로 지치는 몸이 되고, 지치는 몸에 따라 지치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히유 한숨 한 번 몰아쉬면서 새삼스레 이맛살 주름을 문질러 지우고 곰곰이 되씹습니다. 나를 들볶는 모든 사람들 누구나 누군가한테 ‘아이’요 모두들 ‘어머니’가 있는 고운 목숨임을 느끼고자 합니다. 아직 이이들 스스로 누군가한테 ‘아이’요 ‘어머니’가 있음을 살피지 못하지만, 언젠가 모두들 제자리를 깨닫고 고운 목숨이 무엇인지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엄마는 엄마이기에 고맙고, 나는 나이기에 고맙습니다. (4342.11.25.물.ㅎㄲㅅㄱ)


 ┌ 《고마워, 엄마》(푸른숲 펴냄,2009)
 ├ 글 : 유모토 가즈미 / 옮긴이 : 양억관
 └ 책값 :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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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로 말해요 - 농인 아내, 청인 남편이 살아가는 이야기
가메이 노부타카.아키야마 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삼인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127 ― 사랑으로 말해요, 삶으로 말해요
 : 아키야마 나미+가메이 노부다카, 《수화로 말해요》



- 책이름 : 수화로 말해요
- 글ㆍ그림 : 아키야마 나미, 가메이 노부다카
- 옮긴이 : 서혜영
- 펴낸곳 : 삼인 (2009.8.14.)
- 책값 : 11000원



 (1) 사랑으로 말해요


 북미 대륙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미쉬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단순하고 소박한 삶》(리수,2009)이라는 책에서 읽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나라에 알려진 ‘아미쉬 이야기’는 조각조각일 뿐, 이처럼 우리 눈썰미로 아미쉬 마을을 어깨동무하면서 풀어낸 이야기책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나라밖에서 나온 몇 가지 ‘아미쉬 이야기’ 책을 찾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들 두레마을 얼거리와 삶을 책 몇 권을 훑으며 돌아보면서, 좀더 낱낱이 알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을 찬찬히 읽으며, 이들 아미쉬 삶은 더없이 ‘오래된’ 틀을 지키고 있으면서 ‘잘잘못을 함께 껴안고’ 있음을 느낍니다. 문명을 거스른다기보다 ‘제 삶을 고스란히 지킨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들 아미쉬 마을에는 예배당이 없고 전기가 없으며 자동차와 텔레비전과 전화와 인터넷과 컴퓨터 모두 없습니다. 성경이나 사제나 전도사 또한 없습니다. 스스로 걷는 길이 옳다고 여겨도 굳이 당신 이웃한테 당신들 믿음을 퍼뜨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당신들 딸아들이 아미쉬 마을에 남지 않겠다고 하면 스스럼없이 떠나보냅니다. 그저, 다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탄소발자국으로 치자면, 아미쉬 마을은 놀랄 만큼 푸른빛입니다. 지하자원을 다른 데에서 캐내지 않으며, 지하자원을 얻으려고 전쟁무기를 갖추어 싸우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몰지 않으니 굳이 새로운 물건을 밖에서 사 오지 않습니다.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는 모두 손수 마련합니다. 가게에서 사는 옷이란 없고, 집 또한 손수 짓습니다. 기름을 쓰지 않으니 기름값이 치솟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을 안 보고 인터넷을 열지 않으니 시시콜콜 자질구레한 세상일에 얽혀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삶은 어느 모로 본다면 따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에 ‘산에 가서 혼자 살아라’ 하는 그 말대로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시골에서도 텔레비전과 전기와 자동차 없이 살겠다고 하면 ‘미친놈’이라 여기거든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땅에서는 ‘혼자 살 만한 임자 없는 산’이 없고, 섣불리 산에 들어가 홀로 살려고 하면 법을 어긴 사람이 됩니다.

 예배당이며 성경이며 사제이며 없는 아미쉬 마을이지만, 집집마다 돌아가며 예배를 본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이웃이 다 함께 모여서 함께 예배를 볼 때에는 ‘마을에서 함께 보는 성경을 비로소 꺼내어 읽’고는 도로 제자리에 놓으며, 여럿이 모인 자리는 밥을 한 끼니 나누어 먹고 마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가면서도 이들 아미쉬 마을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믿음이 깊고 믿음을 잘 지키며 믿음을 잘 나누고 있구나 싶습니다. 이 또한 어느 모로 보면 놀랄 만한데, 다른 모로 보면 놀랄 만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매이지 않고 예배당에 매이지 않으며 사제 말씀에 매이지 않습니다. 예부터 내려온 ‘올바른 삶’을 붙잡으며 참다운 ‘하늘나라 삶’을 섬기고 따릅니다. 이리하여 아미쉬 마을 사람들은 자물쇠 없이 살아가고, 도둑이 물건이나 돈을 훔쳐도 신고하거나 앙갚음하지 않으며, 식구들이 몹쓸 사람한테 총에 맞아 죽어도 외려 몹쓸 사람을 용서합니다.

 모든 구석에서 믿음직하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만 여길 수 없는 아미쉬 마을이지만, 이들 마을 사람들이 꾸리는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말하며 사랑으로 손 내미는’ 매무새는 더없이 믿음직하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옹근 믿음이란 스스로 옹근 삶일 때 비롯하니까요. 가없는 나눔이란 스스로 가없이 나누는 삶일 때 펼쳐지니까요. 열린 사랑이란 스스로 나와 이웃을 고르게 사랑하는 삶일 때 샘솟으니까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라는 책을 읽으면, 여러모로 훌륭한 아미쉬 마을이지만 가부장제 문화라든지 가정폭력 문제 이야기가 함께 나옵니다. 좋은 모습과 나란히 있는 궂은 모습입니다. 모든 곳에서 빈틈없이 좋지 않고, 어느 구석에서나 얄궂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기에 좋고 나쁨을 나란히 안고 있겠지요. 그예 우리하고 다른 대목이라면, 우리들은 끝없는 경쟁과 학벌과 계급과 돈과 욕망과 물질문명과 편리주의와 부동산과 개인주의와 따돌림을 그치지 않으며 자질구레한 시시콜콜 이야기에 꽁꽁 옭매여 있습니다. 우리들은 내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을 덜어 이웃하고 나누는 삶을 꾸리지 않을 뿐더러, 내 밥그릇을 반으로 나눈다든지 1/3로 나눈다든지 하면서 이웃사랑을 함께하지 않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학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얼굴과 몸매 가꾸기, 더 크고 빠른 자가용 몰기, 비싸고 높은 집 장만하기에 소용돌이처럼 휘둘리며 대단히 바쁘게 살아갑니다. 숨돌릴 겨를이 없고 이웃을 들여다볼 틈이 없습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돌아보거나 가다듬을 새가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사랑으로 말할 짬이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사랑으로 말을 건넬 생각이 깃들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사랑으로 어깨동무하겠다는 매무새가 자리잡지 않습니다.


 (2) 삶으로 말해요


 지난달 저녁나절, 서울에서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길에서, 제 옆에 선 할배 둘이 있었습니다. 할배 둘은 큰 몸짓을 하면서 자꾸 제 팔꿈치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책을 읽으며 성가시고 번거롭기에 뭐 하는 할배들인가 싶어 물끄러미 바라보니, 두 할배는 손말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닌 손으로 나누는 말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토록 사람 미어터지는 전철에서 손말을 하자면 어쩔 수 없이 내 옆구리를 찌를 수밖에 없겠군.’

 지지난달 저녁나절, 이날도 하루일을 고단하게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전철길이었습니다. 젊은 사내 둘이 저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면서 큰 몸짓을 하고 있었습니다(사이에 낀 제가 뻘쭘하도록). 저야 책에 눈을 박으니 아무렇지 않기는 했는데, 목아지가 아파 잠깐 목을 쉬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제 옆에 선 두 사내가 손말을 주고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이렇구나. 이 젊은이들이 입으로 나누는 속삭임이었다면 나란히 서서 갔을 테지만, 손으로 주고받는 말을 하자니 서로 두 걸음쯤 떨어져서 마주보며 이야기를 할밖에 없었군.’

 새로 짓는 지하철역 둘레에 자동계단 놓는 공사를 으레 합니다. 예전 전철역 둘레에 자동계단 놓는 공사를 새로 벌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승강기를 마련합니다. 장애인과 어르신을 생각하는 공사입니다. 그런데,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자동계단이나 승강기는 마련하면서 정작 ‘여느 길가 건널목’ 마련은 제대로 안 하기 일쑤입니다. 건널목은 너무 띄엄띄엄 놓기도 하고, 건널목으로 맞은편으로 가자면 빙 돌아야 하도록 마련하기도 합니다. 오로지 자동차가 술술 지나가는 데에만 교통 얼거리를 짜맞추기 때문입니다. 제 고향마을 인천에서는 ‘지하상가 상권을 지켜 준다’면서, 한길가에 건널목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몰든 무거운 짐을 나르든 낑낑거리며 지하도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무단 횡단’을 해야 합니다. 더욱이 새벽 느즈막하게 지하도 문을 열고 저녁 열한 시 무렵에 지하도 문을 닫으니, 이때에는 ‘아주 마땅히’ 찻길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질러야 합니다.

 우리 옆지기는 몸하고 마음에 장애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옆지기가 앓는 장애는 우리 나라에서는 장애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우리 옆지기와 같은 장애를 앓는 이웃이 꽤 많으나, 정부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이러한 장애를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기보다, 여느 사람들이 이러한 장애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기에, 무언가 옳고 알맞춤하게 ‘장애인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비장애인’일 때에 ‘장애인’을 어떻게 마주하고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동무요 이웃이요 한식구로 지내는지를 터무니없을 만큼 모르기 일쑤입니다. 학교에서 장애인권 교육을 하지 않기도 하지만, 집에서 장애인권을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장애인권을 다루는 책이 드문드문 나오기는 하지만, 거의 모두 ‘딱한 눈길’로 바라보는 책이요, 불쌍하게 여기려는 줄거리인데, 그나마 이런 책조차 잘 안 팔리고 거의 안 나옵니다. 눈물샘 쥐어짜내는 이야기책은 곧잘 대박을 터뜨린다든지, 《오체불만족》 같은 책은 아주 드물게 많이 팔리는데, 《다르게 보는 아이들》이나 《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 같은 이야기책은, 또는 《도토리의 집(사랑의 집)》이나 《머나먼 갑자원》 같은 만화책은 읽히지도 팔리지도 이야기되지도 않기 일쑤입니다.

 우리 삶으로 들여다보지 않아서라고 할까요. 우리 삶은 오로지 ‘비장애인 눈길’에만 맞춰져 있는 탓이라고 할까요. 우리 삶으로는 남보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며 더 많이 자랑하다가 더 많이 쏟아내야 한다는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우리 스스로 꾸리는 삶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니, 내 이웃을 아름다이 바라보며 껴안기 어렵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일구는 삶이 그리 훌륭하지 못하니, 내 동무를 훌륭하게 여기며 서로 손 맞잡기 힘들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꿈꾸는 삶이 그리 사랑스럽지 못하니, 내 식구를 꾸밈없이 받아들이기 벅차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1등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왜 더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하나요. 우리는 왜 더 낫다는 대학교에 가야 하는가요. 우리는 왜 ‘내 집(이라기보다 아파트) 마련’을 꼭 해야 하나요.

 우리 마을은 나라안팎에서 1등 도시가 되어야 할 까닭이 있습니까.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수출 1위가 되어야 할 까닭이 있습니까. 우리 나라 국민소득이 세계에 첫손으로 꼽혀야 할 까닭이 있습니까. 서울과 부산 잇는 철길이 두 시간 만에 뚫려야 할 까닭이 있습니까. 서울과 부산을, 또 서울과 인천을 잇는 물길을 닦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건설비에 들여야 할 까닭이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삶터를 얼마나 아늑하게 지켜 주고 있습니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우리 둘레 농사꾼과 가난한 사람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골목동네 재개발과 재건축과 재생사업과 재정비는 골목동네 사람들 삶터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대학교 학문은 우리 터전을 어떻게 가꾸는 데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습니까.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무슨 길을 걷고 있습니까. 딸아들 키우는 우리 어버이는 우리 딸아들한테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우리 삶은 무슨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까요. 우리 삶은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을까요. 우리 삶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요. 우리 삶은 무슨 그림을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떻게 그리고 있습니까.


 (3) 《수화로 말해요》라는 책 함께 읽기


 이야기책 《수화로 말해요》를 읽습니다. 손말을 쓰면서 살아가는 아가씨와 입말을 하며 손말을 익힌 사내가 가시버시가 되면서 겪고 복닥이고 부대끼고 헤아리고 맞아들인 여러 삶자락을 담은 책입니다. ‘장애인권’을 말하는 책은 아닙니다. 장애인 아픔을 외치는 책은 아닙니다. 하나도 없는 장애인권 정책을 꾸짖는 책 또한 아닙니다.

 《수화로 말해요》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똑같은 사람임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장애인이기에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지는 않으나, 장애인인 까닭에 한 번 더 사랑을 받을 만하고 더욱더 사랑스레 어울릴 만큼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살며시 일러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덮으며 여러모로 생각했습니다. 저한테는 아무 힘이 없으나, 저한테는 꿈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이 나라 고등학교 과정에서 ‘제2외국어’로 ‘손말(수화)’이 정규과정으로 들어가는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이리하여 나중에는 중학교 과정에서 ‘영어와 같은 자리에서 외국어 한 가지’로 배울 수 있도록 교과목을 마련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꿈꾸었습니다. 또는, 고등학교 ‘제2외국어’ 과정으로 ‘손말’이나 ‘점글’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반드시 배우도록 하는 날이 오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교에서는 이를 더 깊이 헤아리며 ‘토익 토플 점수’를 반드시 받도록 하는 제도와 마찬가지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손말’이나 ‘점글’ 가운데 하나를 통역사처럼 주고받을 만큼 익혀야 졸업장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회사에서 새 일꾼을 뽑을 때에, ‘손말’이나 ‘점글’ 한 가지를 하는 기본조건을 마련하고, 둘 모두를 할 수 있다면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홀로 품는 꿈이지만, 이 꿈을 사랑스레 껴안으면서 책을 다시 펼칩니다. 밑줄을 그으며 읽은 대목을 새삼스레 거듭 읽어 내려갑니다. (4342.11.17.불.ㅎㄲㅅㄱ)


[33, 100쪽] 나는 부엌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농인의 언어는 수화이므로 시각적으로 확 열려 있는 편이 편리하고 쾌적할 것이다. 만약 농인이 사회의 지배자라면 세상의 건축물 구조는 아마도 지금과 전혀 다를 것이다 …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가 태어나면 곤란하다는 사람도 제법 있다. 얼굴을 마주보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제삼자를 내세워 말하게 한다. 그러나 이건 상당히 무례한 태도다. 농인에게 “당신은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어요.” 하는 거나 같다.

[41쪽] “아내는 청각장애인입니다.”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의 생활 감각으로는 ‘청각장애인’이란 말은 서류에서나 사용하는 표현이다. ‘본적’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관공서에서 어떤 절차를 밟는 등 정해진 상황에서 쓰는 말이지 평소의 대화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하물며 “아내는 귀가 불편합니다.” “귀에 핸디캡을 갖고 있습니다.”라니, 그런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렇게 에둘러 하는 애매한 표현은 고양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짜증의 원천이다. 게다가 농인의 핸디캡은 귀의 문제가 아니라 수화를 포용하지 못하는 언어 정책에서 생겨나는 정보적인 핸디캡이기 때문에 사실하고도 맞지 않는다 … 일본 과자점의 견본 앞에서 수화로 말장난을 하며 웃는 우리를 가게의 판매원은 어떻게 봤을까. 아마도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설명을 해 줘도, ‘농’이라는 말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다면, 그리고 실감할 수 없다면 웃을 수 없을 것이다. 번역하기 힘든 웃음이다.

[56∼57, 89쪽] 편리한지 어떤지하고는 관계없이 우리는 늘 수화로 말하며 살고 있고, 그것이 창문 너머로는 계속되는 것일 뿐이다. 수화 특유의 대화 예절은 유리창 너머에서도 잘 지켜져야만 하며, 따라서 실은 그러한 장면에서의 적절한 행동 방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정이 드라마에는 그려지지 않는다. 게다가 수화를 공용어로 인정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보통 때는 농인들이 큰 불편을 감수하도록 해 놓고는, 이런 데에서만 수화를 조금 보여주고 “수화는 편리하다”며 재미있어 하는 것도 농인에게 실례라는 생각이 든다 … 애당초 음성으로 얘기한다는 건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때 가능한 것이다. 수화통역사에게서 “농인이 구화를 하는 건 사람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이 나라 통역사의 수준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61, 86쪽] 한 친구가 “여기서는 집 밖에서 수화를 하면 빤히 쳐다봐.” 하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실제로 레스토랑에서 보통 때 하듯이 수화로 얘기하며 식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똑바로 바라보면 금방 눈길을 돌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학습해 온 내가 ‘무례하네요. 나는 구경거리가 아니라구요.’ 하는 기분을 담아 노려봤는데도, 그들은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우리를 계속 힐끗힐끗 보면서 소곤거리는 데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게 이곳 사람들이 지닌 의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 나는 청인인 만큼 주변의 청인들의 몰이해한 발언이 전부 내 귀에 직접 들려온다.

[85, 92, 127쪽] “수화는 고유의 문법을 가진 언어예요. 몸짓도 아니고 음성언어를 그대로 옮기는 수단도 아닙니다. 수화를 학습하는 건 일반 어학을 공부하는 것과 똑같이 힘들어요. 수화만을 사용하는 대학이나 학회도 있습니다. 만약 수화가 단순한 몸짓이라면 그런 건 불가능하죠.” … 그런대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까 100퍼센트 들리지 않는 핸디캡이라는 게 정말로 굉장했다. 특히 영어 수업은 소리를 못 알아들으면 이해할 수 없는 커리큘럼으로 되어 있고, 그런 만큼 압박감도 아주 크다 … 수화통역자를 양성해 필요할 때에 지원하는 대학은 없다. 지금까지 일본의 대학은 수화통역자가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학생끼리 서로 돕는다’, ‘자원봉사 정신의 소중함’을 운운하며 통역의 책임을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넘겨 버렸다.

[96∼97쪽] 나는 세상에서 흔히들 말하는 ‘장애인’이라는 종별에 속하는 사람인가 보다. 그래서 거북이와 결혼을 하려고 했을 때 거북이의 가족이 크게 반대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결혼 상대인 내가 ‘장애인이니까’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을 그렇게 반대하는 부모님의 성을 잇는 것이 싫어졌다 … 또한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경우보다 농인이기 때문에 차별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느끼므로 여권론을 논하기 전에 우선 인간으로서 농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일이 급하다.

[103, 104, 112쪽] 태어난 아이가 청인이라 하더라도 물론 사랑스럽겠지만, 농인 부모에게는 청인인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에게 어떻게 수화를 받아들이게 할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 수화를 공부하는 사람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수화를 익혀 ‘봉사’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텔레비전 전화가 있다고 다양한 연락 사무를 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 전화로 거래처에 전화를 걸어도 상대방이 수화를 못하는 사람이라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120, 131쪽] 수화로 얘기한다고는 하지만 농인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이질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주류 세계의 한 사람이다. 고양이는 그런 존재와 함께 살기로 선택한 거다. 어떤 의미에서는 훌륭한 사람이다. 칭찬해 주고 싶다 … 그렇게 남의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화를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미흡하나마 언어로서 수화를 배우고 수화 통역 업무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

[143, 146, 178쪽] 그렇게 수화를 우습게 여기는 세계로 꼭 들어가야만 하는 걸까? 대학이란 세계는 그토록 청인만을 위한 세계란 말인가? … 매일같이 내일은 통역자가 있을까 걱정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농인 한 사람이 수강권 보장 문제로 괴로워하다 병들어 죽어도 누구 하나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다 … 대학의 담당 부서 말은 “수화 통역은 비용이 들어서 붙여 줄 수 없다”는 거였다. 영어-일어 통역은 있는데 어째서 수화 통역은 인정을 안 하는가. 일반 공개강좌인데 만약에 농인이 신청을 하면 어떻게 할 건가.

[156쪽] 연구자들은 참으로 난해한 말을 좋아한다. 좀더 알기 쉬운 말로 쓸 수는 없는 걸까.

[248쪽] 아무 지원도 없이 음성으로 하는 대화나 정보 전달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농인에게 고통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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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혁명 핀란드 교육 시리즈 1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 비아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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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교실혁명’을 꿈꾸려 한다면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0] 후쿠타 세이지, 《핀란드 교실혁명》



 엊저녁 서울 하계동으로 마실을 갔습니다. 제 둘레 가까운 분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인천부터 가자면 멀고, 아기는 집에서 쉬어야 하니 혼자서 길을 떠납니다. 용산까지는 빠른전철을 타고, 용산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탑니다. 그런데 청량리까지만 가는 전철이 석 대 잇달아 들어옵니다. 청량리를 지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고달프게 기다립니다. 청량리까지만 가는 전철이 왜 이리 잦은지 모를 노릇이지만, 서울 위쪽에서 달리는 전철 가운데에는 구로까지만 가는 전철도 잦습니다. 그래서 서울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서울에서도 어느 만큼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지루하거나 고달프게 기다려야 합니다.

 먼길 마실이라 숨을 트고 싶어 외대앞역에서 내려 조금 걷습니다. 외대 앞문에서 석계역 쪽으로 가는 길가 언덕마루에 자리한 헌책방 〈신고서점〉에 들러 봅니다. 퍽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이 둘레에도 재개발 때문에 여러 가지 말썽이 많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온통 재개발뿐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요즘 서울로 다니는 일터로 들어오는 신문은 꾸준하게 부동산 정보를 다루는데, 엊그제에는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3색 메뉴, 입맛 따라 골라 드세요”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즈음 아파트는 전국 어디에나 수도 없이 새로 허물고 새로 짓느라 법석입니다. 지구자원은 끝없이 쏟아지지 않는데 아파트 짓기는 용하게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치닫습니다. 더구나 ‘입맛대로 골라’ 먹으라는 아파트를 입맛대로 골라서 먹을 만큼 돈이 넉넉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아마도 오늘날 우리 삶터에는 돈이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사람도 많고 돈이 모자라다 못해 배고파 죽겠다는 사람도 많지 않느냐 싶습니다. 골고루 나누고 고르게 즐기며 고루 어깨동무하는 삶터가 아닙니다.

 헌책방은 오랜만에 들를수록 돌아볼 책이 많습니다. 넘겨볼 책이 많고 장만하고픈 책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머니는 가볍습니다. 가벼운 주머니이지만 다문 책 하나라도 더 챙기고프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멈칫멈칫합니다. 그러다가 ‘이코 나라하라(奈良原一高)’라는 일본 사진쟁이 작품 《人間の土地》라는 책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남다른 사진책 이름이라 생각하며 죽 넘기는데 사진이 꽤 괜찮습니다. 책 뒤에 찍힌 책값을 들여다봅니다. 5만 원입니다. 허걱. 꽤나 비싼걸?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새책으로 들여와서 파는 책방에서라면 얼마쯤이었을까 하고. 얼추 8∼10만 원 가까이 하지 않으랴 싶고, 그런 값을 따진다면 몇 만 원 눅게 장만할 수 있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얌전하게 도로 꽂아 놓았다가 다시 꺼냅니다. 사진을 부지런히 다시 넘깁니다. 못 사더라도 사진만큼은 다 보자고 다짐합니다. 사진을 두 번째 다 넘겨봅니다. 다시 꽂습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뽑아듭니다. 오늘 장례식장에서 낼 부조돈을 반 덜어내자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오늘 상주로 선 분한테 선물로 드리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고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흙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래도록 모신 어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허전해지는 마음은 아프고 슬프고 가라앉습니다. 어줍잖으나마 이 사진책 하나로 상주 되는 분이 마음을 달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혼자서 꿈을 꿉니다.


.. 핀란드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한다. 왜일까? 공부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핀란드에서는 아이들에게 배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든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의사만 있다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교재가 치밀하게 개발되어 있다 …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건 당연하죠.” 모든 학생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를 하든 말든 선생님한테는 남의 일인 걸요.”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므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교육을 받는 듯했다 ” … (일본에서) 게으르다고 비난받는 젊은이들을 무조건 비난해야 할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 공부하도록 키워내지 못한 사회를 비난해야 할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  (38∼39쪽)


 장례를 치르는 곳에서 밤을 샙니다. 상주를 서는 분이 생태환경책을 펴내는 출판사 사장인 까닭에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이 제법 모이고, 홍성 풀무학교 식구들도 찾아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모두들 생태와 환경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장례집에서 쓰는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그릇과 나무젓가락’이 마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병원이나 업체에서는 이런 물건만 쓰니까요. 참말, 환경운동 모임에서 ‘장례 치르는 일’을 다루는 회사를 하나 차려야 할 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손님들 발길이 끊긴 깊은 밤까지 남은 네 사람은 저마다 방석을 깔개 삼아 한동안 눈을 붙이기로 합니다. 몇 시간이나마 몸을 쉽니다. 아침에 부시시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전철역으로 찾아갑니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자전거 타고 오가는 사람을 꽤 여럿 스칩니다. 이 동네에서는 자전거 출퇴근이나 통학을 꽤 하는군요. 그렇지만 자가용이 훨씬 더 많습니다. 기름값이 비싸다느니 무어라느니 하면서도 자가용을 버리거나 떠나보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으레 ‘자가용 더 몰고 더 바지런히 일하면서 기름값 더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더 일하고 더 돈을 벌어 더 기름값을 댈 수 있다 한다면, 그만큼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데에 들일 짬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우리 스스로뿐 아니라 우리 식구를 살피거나 보듬을 겨를 또한 줄어들며, 우리가 발디딘 이 터전을 보살피거나 지키는 데에는 힘을 못 쏟거나 덜 쏟지 않을까요?


.. 핀란드식 교육제도의 특징을 정리하면 밑바닥을 끌어올리되 위쪽은 제한 없이 개방하는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핀란드의 학교는 잘못하는 아이들을 끌어가긴 하지만 잘하는 아이들은 그냥 둡니다. 왜냐하면 잘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자율적으로 배우도록 키우면 아이들은 교사나 어른을 뛰어넘어 뻗어나간다 … 핀란드에서 교과서란 지식을 집대성한 단 하나의 교재가 아니라 하나의 질 좋은 자료로 취급받는다. 따라서 교과서는 공권력에 의한 검정 없이 자유롭게 채택된다. 또 교과서를 사용하여 배우는 일은 있어도 하나부터 열까지 교과서를 외우게 하는 일은 없다. 교사도 교과서를 획일적으로 주입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방면의 지식이 없다고 해서 결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지식은 불충분하다. 그러니까 계속 배우는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다. 즐겁게 배우면 지식은 정착된다 ..  (54, 71, 112쪽)


 어제에 이어 오늘도 책 하나를 붙잡습니다. 《핀란드 교실혁명》이라는 조금 도톰한 책입니다. 얼핏 보기에 부피가 있는 듯하지만 282쪽짜리 책이고, 글자가 크며 빈자리 많고 줄사이가 넓어서 속알맹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일본사람이 쓴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덜어낸 알맹이가 많은데다가, 일본사람이 쓴 줄거리에 한국사람이 달아 놓은 보탬말이 거의 같은 이야기라서 금세 읽어치울 수 있습니다. ‘좀더 가볍고 작고 단출하게 엮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좀더 값싸면서 야무지게 꾸밀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아쉽습니다. 1만 5천 원짜리 282쪽짜리 책이 아니라 1만 원짜리 220쪽짜리 책으로 꾸밀 수 있었고, 손바닥으로 쥘 만한 작은 판으로 엮어 종이를 한결 아끼면서 8천 원짜리 책으로도 여밀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름이 말하듯이 《핀란드 교실혁명》이라 한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서 나누려는 우리들부터 ‘책 만들기 혁명’을 살필 수 있어야 한결 알맞거나 슬기롭거나 반가웠을 테니까요.

 한편, 한국사람이 보탬말을 붙인 대목은 적잖이 거추장스럽습니다. 굳이 보탬말을 붙이지 않아도 일본사람이 처음 적은 글만으로 ‘핀란드는 이렇게 가르치고 배운다’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으며, 이렇게 알아듣는 동안 ‘한국은 핀란드와 달리 어느 대목에서 모자라거나 안타깝거나 못났거나 슬프다’는 이야기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탬말을 달아 놓을 자리에 ‘핀란드 교육 이야기와 학교제도’를 좀더 실어 놓았다면 이 책이 더욱 알차고 아름다웠겠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힘든 노릇일까요? 우리한테는? 제도권 입시지옥을 스스로 뜯어고칠 줄 모르는 우리들은 조금 더 낮은 자리를 헤아리면서 마음밥 하나 튼튼하게 나누는 일을 하기가 더없이 어려울까요? 우리로서는?


.. 평가는 모두 힘을 합쳐 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 서열을 매겨 학부모가 학교를 고르게 하려는 의도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 지식을 주입하는 수업이 아니라 생각하는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분명했다 … 교사는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말을 거는 것이다 … “일본이라면 one부터 ten까지를 한 단원으로 묶고, white, red 등 10가지 색을 한 단원으로 묶어서 단원별로 단어를 외우게 했을 거예요. 그리고 시험을 계속 치르겠죠. 그런데 여기는 어떤가요?” “학급의 목표는 정해져 있지만 개인의 진도는 다릅니다. 똑같은 것을 배우는 데도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리는 아이가 있으니까 그 자리에서 반복시켜서 억지로 외우게 하지 않습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모든 아이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목표를 부과할 수 없습니다.” ..  (83, 103, 107, 110쪽)


 똑같은 옷과 똑같은 연속극과 똑같은 스포츠와 똑같은 회사일과 똑같은 사랑놀이뿐 아니라, 똑같은 학교와 똑같은 아파트와 똑같은 도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우리들은 《핀란드 교실혁명》 같은 책을 읽으면서 어느 만큼 달라지거나 새로워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저 지식조각으로 읽는 책이 될까요, 아니면 우리 삶과 교육과 문화와 마을을 뜯어고치거나 바로잡자고 하는 길잡이로 삼는 책이 될까요. 그예 심심풀이땅콩처럼 한 번 읽고 치워 버리는 책이 될까요, 아니면 우리 넋과 얼을 추스르고 가다듬으면서 나부터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도록 이끄는 책이 될까요.


.. 양호교실 보조교사가 말했다. “경계를 만들기 때문에 차별이 생깁니다. 아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아이들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것뿐인데 말이죠. 뒤떨어졌다든지 특수하다든지 하는 구별은 하지 않아요.” … “아이들은 제각각이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죠. 핀란드에서는 아무 말 없는 아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떠드는 아이는 답을 찾아낸 것이라고 여깁니다. 쉽게 생각해서 먼저 답을 찾아내는 아이도 있고 복잡하게 생각해서 시간이 걸리는 아이도 있겠죠. 그러니까 수업을 할 때도 기다리는 시간이 깁니다. 대개 기다리다 보면 어떤 학생이든 꽤 좋은 답을 만들어냅니다. 반응이 느린 아이가 할 수 없는 건 아니죠. 그러니까 수업 중에는 학생에게 멋대로 떠들지 못하게 하고, 답을 알면 손을 들게 합니다 … 잘하는 아이에게만 맞추면 수업은 빨리 진행될지 모르지만, 못하는 아이가 의욕을 잃어버리죠. 아! 일본은 한 반이 40명이라고요? 20명이면 기다릴 수 있지만 40명은 기다리기 힘들겠네요. 음, 20명 이상은 무리예요.” ..  (159, 212∼213쪽)


 종각역에서 내려 광화문 신문로 쪽으로 걷습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똑같이 숱한 양복쟁이들 숲을 헤치면서 걸어갑니다. 숱한 양복쟁이들은 저마다 몸담은 건물로 들어가고, 저 또한 숱한 건물들 가운데 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제 일터가 있는 5층까지 걸어서 올라갑니다. 5층밖에 안 되는 건물이지만, 3층이나 4층을 다닐 때 계단을 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10층짜리 건물이라면 3층과 4층뿐 아니라 8층과 9층도 으레 승강기를 타겠지요. 10층까지 계단을 타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20층 아파트에서 18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난주에 고향동무들과 만나 술 한잔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 걸어갈게. 잘들 들어가라.” 하고 인사했더니 모두들 손사래를 쳤습니다. “야, 너네 집이 어딘데 걸어가?” “걸어가도 한 시간 조금 더 걸릴 뿐인데, 뭐.” “어떻게 그런 거리를 걸어다니냐?” “옛날엔 다 걸어다녔잖아. 난 지금도 그 길을 그냥 걸을 뿐이야.”

 고향동무들 가운데 자가용 안 모는 사람은 저 혼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향동무가 아닌 책마을 선후배 가운데 자가용 없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몇 안 됩니다. 어제 장례집에 자가용 몰고 온 분이 있기에, “집도 바로 옆이라면서 이런 자리에는 택시를 타고 오시지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우리가 택시만 타고 돌아다녀도 자가용 몰 때보다 훨씬 적은 돈이 들 터이며 차댈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보험값이니 뭐니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만큼 지구와 우리 삶터를 더욱 사랑하는 길이 됩니다. 일이 있으면 빌리면(렌트카) 되고요.

 어쩌는 수 없는 어줍잖은 생각입니다만, 우리 스스로 운전면허증을 가위로 싹뚝 잘라서 버리는 매무새까지 가 닿지 않는다면 《핀란드 교실혁명》이 수십만 권이 팔리더라도 우리 교육 얼거리는 늘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에 그치리라 봅니다. 저마다 형편 때문에 자가용을 장만하더라도, 타야 할 때만 타고 되도록 멀리하는 매무새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핀란드 교실혁명》을 가슴찡하게 읽고 새기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고 말리라 봅니다.

 삶을 바꾸어 주는 책이 있기도 하지만, 삶을 바꾸어 주는 책을 바라기 앞서 내 삶을 바꾸는 가운데 만나는 책입니다. 내 삶을 바꾸어야 책이 책 그대로 보이며, 내 삶을 바꾸는 동안 책에 담긴 알맹이가 꾸밈없이 내 마음밭에 속속들이 스며듭니다. (4342.10.26.달.ㅎㄲㅅㄱ)


 ┌ 《핀란드 교실혁명》(비아북,2009)
 ├ 글 : 후쿠타 세이지 / 옮긴이 : 박재원, 윤지은
 └ 책값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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