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커 일러스트레이터 1
조안나 캐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2.8.6.

인문책시렁 230


《주디스 커》

 조안나 캐리

 이순영 옮김

 북극곰

 2020.9.1.



  《주디스 커》(조안나 캐리/이순영 옮김, 북극곰, 2020)를 읽었습니다. 언제나 그림책으로 즐거우면서 상냥하게 만난 이웃나라 어른이 걸어온 길을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으니 반갑습니다. 《주디스 커》가 아닌 ‘주디스 커 그림책’을 읽기만 해도 이분이 얼마나 신나게 뛰놀면서 자랐는지 알 만하고, 아이들한테 ‘놀며 노래하는 기쁜 하루’를 온마음으로 물려주려 하는가를 느낄 만합니다.


  범을 그리든 고양이를 그리든 언제나 바탕은 ‘놀며 노래하는 하루’입니다. 뭔가 가르치거나 깨우치려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그저 놀고 다시 놀고 새로 놀다가 ‘아, 배고프니 뭘 좀 먹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밥을 지어서 차리’지요. 도란도란 어우러지는 자리에서 수다꽃을 피우면서 밥을 먹고서 함께 즐거이 치우고는 조금 더 놀거나 수다꽃을 피우다가 꿈나라로 날아가요.


  주디스 커라는 이웃나라 어른이 그림책에 담는 마음을 새록새록 돌아보다가 우리나라 그림책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놀며 노래하는 하루’를 그림책으로 담는 붓길이 드뭅니다. 어쩌면 아직 없다고까지 말할 만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우리나라에서 그림님(그림책 작가)으로 일하는 분 가운데, 어릴 적에 마음껏 놀거나 실컷 놀거나 신나게 논 분이 드물거든요.


  붓질을 배워야 그림을 잘 그리지 않습니다. ‘드로잉·아트’를 익혀야 그림책을 잘 여미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그리고 싶다면 먼저 ‘놀며 노래할’ 노릇입니다. 또 놀며 노래하고, 다시 놀며 노래하고, 자꾸자꾸 놀며 노래하다가 끝없이 놀며 노래하면 되어요. 언제까지 놀며 노래하느냐고요? 놀며 노래하다가 지쳐서 곯아떨어질 때까지 놀며 노래하면 됩니다.


  모든 어린이는 놀며 노래하려고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은 ‘누리놀이(인터넷게임)’가 아닌 놀이를 하려고 태어났어요. 이따금 누리놀이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마당놀이나 들놀이나 골목놀이가 사라진 채, 소꿉놀이나 살림놀이나 수다놀이가 없는 채 누리놀이만 한다면,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빛꽃(사진)을 담을 적에 으레 틀에 박힌 굴레에 갇혀요.


  그림책을 안 읽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한동안 그림책을 읽다가도 아이가 열네 살에 이르면 그림책을 몽땅 치우는 어른도 많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은 언제나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 눈높이로 살림을 지어 함께 웃고 노래할 삶을 가꾸려는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림책을 잊는 어른은 언제나 어린이를 내려다보고 심부름만 맡기고 온통 어른나라로 억누르는 따분한 틀을 세우려는 마음이라고 하겠어요.


  다만 “무늬만 그림책”이 아닌 “놀며 노래하는 마음인 그림책”일 노릇입니다. “놀며 노래하는 마음”에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으며 이야기도 있고 고요도 있어요. 놀이하고 노래가 빠진 마음에는 웃음도 눈물도 이야기도 고요도 없이, 가르침만 있고 멍울만 있고 서울살이(도시생활)만 있더군요.


ㅅㄴㄹ


선생님이 ‘우리’라고 말할 때마다 주디스는 기분이 오싹했다. 선생님이 아무 영혼도 없이 도식적으로 튤립을 그릴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16쪽)


한 선생님은 미술교육과 아동 미술에 대해 진보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냥 보이는 걸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 단지 제가 본 모습 그대로를 그리고 싶었어요.” 주디스는 다소 지친 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그 수업을 그만두었다. (20쪽)


주디스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작업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갑자기 그림책 일러스트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자녀를 둔 부모로서 좋은 그림책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53쪽)


주디스는 닥터 수스에게 영감을 받아 다른 모그 책에서 약 250개 단어 정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76쪽)


다시 그림 그리는 것이 삶의 중심이 되었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내가 누군지를 알아요.” (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보 꼬마 모두를 위한 그림책 32
이마무라 아시코 지음, 사카이 고마코 그림, 조혜숙 옮김 / 책빛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어린이책 2022.7.8.

맑은책시렁 271


《울보 꼬마》

 이마무라 아시코 글

 사카이 고마코 그림

 조혜숙 옮김

 책빛

 2020.8.30.



  《울보 꼬마》(이마무라 아시코·사카이 고마코/조혜숙 옮김, 책빛, 2020)는 참말로 울보인 아이를 둘러싼 이야기일 수 있고, 꼬마로구나 싶은 아이를 지켜보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둘을 아울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울보 꼬마는 늘 곁에 두는 장난감이 있습니다. 흔히 ‘인형’이라고도 하는데, ‘사람꼴’이나 ‘사람낯’이나 ‘사람탈’로 꾸민 소꿉입니다. 또는 ‘곱게’ 여기거나 ‘예쁘게’ 돌보거나 ‘사랑스레’ 품는 소꿉이지요.


  처음 태어난 장난감이나 소꿉한테는 아직 빛이 없습니다. 이 장난감이나 소꿉을 알아보고서 눈을 반짝이는 아이가 나타날 적에 장난감이며 소꿉은 빛을 얻어요. 함께 놀며 이야기를 들려줄 아이가 있기에 모든 장난감하고 소꿉은 숨빛을 얻으며 새롭게 깨어납니다.


  아이는 어떻게 장난감하고 소꿉한테 숨빛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요? 아이는 어른처럼 근심걱정을 안 하거든요. 아이는 어른하고 달리 신나게 웃고 온마음으로 울거든요. 아이는 사랑을 오직 사랑으로만 느끼고 받아들여서 가꿉니다.


  아이는 언제나 하늘빛이에요. ‘하늘을 품은 빛’인 아이를 섣불리 안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아이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늘님’이니, 아이들한테 섣불리 ‘종교·철학·학문·이론·지식’을 집어넣으려 하지 않을 노릇입니다. 아이는 부처나 예수라는 이름을 몰라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으나, 어른은 부처나 예수라는 이름을 알아도 하늘나라에 못 가요. 하늘나라에는 ‘아무개 이름을 안다’고 해서 들어가지 않거든요. 하늘나라에는 오롯이 빛나는 사랑으로 오늘 이곳을 기쁘게 놀며 품을 줄 아는 마음이기에 들어갑니다.


  이리하여 《울보 꼬마》는 울보 꼬마 곁에서 살금살금 달아난 여러 장난감하고 소꿉인 숨빛이 살그마니 돌아와서 새롭게 함께 노는 줄거리를 부드러이 들려줍니다.


ㅅㄴㄹ


꼬마는 지금 목욕을 하고 있어요. 인형들은 그사이에 살금살금 집을 나온 거예요. 집을 떠나 동물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요. 아주 오래전에 인형들은 동물원 매점에 있었어요. (10쪽)


인형들은 택시도, 버스도, 기차도, 비행기도 타 본 적이 있어요. 꼬마가 어디에 가든 데리고 다녔으니까요. 하지만 차표 같은 것은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었어요. (11쪽)


사쟈는 갑자기 꼬마의 작은 손이 떠올랐어요. 사쟈의 프파게티를 빗겨 준 것은 빗이 아니라, 언제나 꼬마의 작은 손이었다는 것이요. (26쪽)


지붕 쥐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하더니, 화들짝 놀라 뛰어올랐어요. “아, 미, 미안! 너희들은 그저 그런 인형이 아니지. 가출까지 하신 대단히 훌륭하신 인형들이지. 아무튼, 지금 꼬마는 엄마랑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인형들을 찾고 있어.” (3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은중의 청소년 한국사 특강 - 음식으로 배우는 우리 역사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8
권은중 지음 / 철수와영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청소년책 2022.7.3.

인문책시렁 228


《권은중의 청소년 한국사 특강》

 권은중

 철수와영희

 2022.6.25.



  《권은중의 청소년 한국사 특강》(권은중, 철수와영희, 2022)을 읽고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첫머리를 “역사란 인간이 자연과 그리고 인간과 투쟁하며 써 내려가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간과 자연을 알아야 합니다.(15쪽)” 하고 말하는데, ‘사람은 숲과 싸우며 살아왔다’는 말은 힘꾼(권력자) 눈길로 본 발자취이지 싶어요. 살림꾼(생활인·백성·민중) 눈길로 본다면 ‘사람은 숲하고 어깨동무하며 살아왔다’일 테지요.


  한겨레는 ‘쑥·마늘을 먹고 온날(100일)을 고요한 어둠에서 가만히 꿈을 그리다가 사람이 된 곰’하고 ‘온날을 살아내지 않고 달아난 범’이라는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옛이야기를 ‘숲과 싸웠다’란 눈길로 보면 속빛을 엉뚱하게 읽고 말아요. 한겨레 옛이야기는 ‘숲하고 어깨동무’란 눈길로 보아야 비로소 속빛을 가만히 알아챕니다.


  쑥은, 나물입니다. 마늘은, 남새입니다. 쑥은 숲들에 스스로 돋습니다. 마늘은 밭에 따로 심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은 ‘스스로 돋는 풀인 나물하고, 사람이 사랑으로 심어 가꾸는 풀인 남새’를 나란히 살피고 누릴 적에 살림을 새롭게 지으며 즐겁고 아늑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아무리 맛나거나 훌륭하다는 풀(나물·남새)을 먹더라도 스스로 ‘고요한 어둠을 품는 마음빛’이 없다면 망가져요. 무엇을 먹든 스스로 꿈(밤빛)을 그리고서 삶(낮빛)을 엮을 적에 사랑을 스스로 지핍니다.


  밥살림으로 발자취를 읽는다고 할 적에는 두 가지를 볼 노릇입니다. 첫째는 ‘쑥’으로 가리키는 나물(들숲바다를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둘째는 ‘마늘’로 가리키는 남새(밭을 짓고 집을 짓고 옷을 짓는 길)입니다. 모든 밥옷집은 숲한테서 받지요. 모든 보금자리는 숲을 곁에 두기에 푸릅니다.


  숲을 멀리한 우두머리(권력자)하고 붓바치(지식인)는 숲을 몰랐을 뿐 아니라, 힘겨루기(권력투쟁·전쟁)를 하느라 사랑을 모릅니다. 숲을 품은 살림꾼은 수수하게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스스로 말을 짓지요. 옛사람(숲사람·시골사람)이 스스로 지은 말이란 사투리입니다. 그래서 ‘숲말 = 시골말 = 사투리 = 스스로 지은 말’입니다.


  글쓴이가 숲을 조금 더 살피려는 눈길이라면 《권은중의 청소년 한국사 특강》으로 짚을 이야기는 확 다르겠지요. 숲을 잊거나 놓치는 채 서울내기(도시 문명인) 눈길로 쳐다본다면, 쑥이며 마늘하고 얽힌 수수께끼도 엇나가기 쉽고, 곰이며 범이라는 이름에 숨은 실마리도 못 보기 쉽습니다.


  우리 옛사람은 ‘가싯길(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우두머리하고 붓바치가 들들 볶아댔을 뿐입니다. 배움책(교과서)에 너무 맞추기보다는,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짚으면서 풀꽃나무랑 풀밥을 다시금 헤아려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웅녀가 끝까지 쑥과 마늘을 견딘 것은 조상들이 야생식물을 우리 밥상의 중요한 먹거리로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43쪽)


군인의 주요 목표는 적의 침략을 방어하는 일과 함께 노예와 영토를 차지하는 정복 사업이었습니다. 또 피정복자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그래야 세금을 징수하고 노역을 안정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72쪽)


1970년대 이전까지도 달걀은 어른 밥상에나 올리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90쪽)


말린 조기가 굴비라는 이름을 가진 까닭은 아마도 말리면서 구부러지는 모습에서 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138쪽)


조선은 이런 땅을 고려 때처럼 권문세가가 독점하는 병폐를 막으려고 갯벌이나 강이 공유지라는 점을 《경국대전》을 통해 못박은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까지 거의 모든 갯벌의 이용은 왕가를 비롯해 양반 세도가들로 집중되었습니다. (21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 소녀 룰루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14
코르넬리아 프란츠 지음, 마르쿠스 그롤릭 그림, 김미영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어린이책/숲노래 책읽기 2022.6.24.

맑은책시렁 275


《우주 소녀 룰루》

 코리넬리아 프란츠 글

 마르쿠스 그롤릭 그림

 김미영 옮김

 아이세움

 2001.6.20.



  《우주 소녀 룰루》(코리넬리아 프란츠·마르쿠스 그롤릭/김미영 옮김, 아이세움, 2001)를 읽고서 재미있어 아이들한테 건네었더니 아이들도 재미있다면서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습니다. 소리를 내어 읽어 주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재미나고 아름다운 어린이책은 진작에 판이 끊겼어요. 새책집에서 찾기 매우 어렵습니다. 2001년에 처음 나온 터라, 어쩌면 여느 책숲(도서관)에서도 ‘오래된 책’이라면서 버렸을 수 있어요.


  책이름 그대로 ‘우주 소녀 룰루’ 이야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어른을 찾아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니, 아이가 말할 적에 귀담아듣는 어른부터 얼마나 있을까요? 아이가 먼저 생각을 틔우도록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어른은 얼마나 있지요?


  오늘날 둘레를 보면, 어린이집·배움터란 얼거리인데, 이곳에서는 늘 어른이 먼저 목소리를 내어 배움틀(교육과정)에 아이들이 그대로 맞추어야 한다고 이끕니다. 그러면 생각해 볼게요. 어린이집 배움틀을 짤 적에 아이한테 물어본 어른이 있는가요? 어린배움터(초등학교)나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 배움틀을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물어보고서 짜는가요?


  이 나라 어린이·푸름이가 배움수렁(입시지옥)을 바라나요? 왜 이 나라 아이들이 구태여 열린배움터(대학교)까지 다니도록 내몰까요? 이러면서 왜 아이들이 쉬거나 놀거나 어울릴 빈터하고 골목을 몽땅 없애거나 밀어버릴까요?


  이야기책 《우주 소녀 룰루》에 나오는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건 너무 구식이야! 우린 마음을 모아 날아온 거야!(39쪽)” 같은 대목에 가만히 밑줄을 긋고서 거듭거듭 읽었습니다. 이렇게 바라볼 줄 알고 생각할 줄 아는 글어른이 있군요. ‘우주선이란 낡았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우리나라 어른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마음으로 만나는 삶’을 헤아리려는 우리나라 어른이 아직 남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한테 마침종이(졸업장)를 안기려 들지 말아요. 아이들 스스로 뛰놀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활짝 웃는 하루를 기쁘게 지을 수 있도록, 우리 보금자리랑 마을을 사랑으로 일구기를 바라요.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마셔요. 아이한테서 배우셔요.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어른은 아이를 사랑하면 넉넉할 뿐입니다. 아이는 누구나 스스로 배우는 아름다운 별님입니다.


ㅅㄴㄹ


“우린 우주선을 타고 온 게 아니야.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건 너무 구식이야! 우린 마음을 모아 날아온 거야!” 룰루가 말했다. (39쪽)


디터 아저씨가 야콥을 매서운 눈으로 보았다. “네 엄마는 지금 그런 쓸데없는 소리나 듣고 있을 새가 없어. 다른 걱정거리가 있으시단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에요! 룰루는 밀라몰라라리움 별에서 왔다구요.” (72쪽)


“어른들은 아는 것만 믿으려고 해. 심지어 어떤 어른들은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오지 않고 날아오는 것 때문에 막 화를 낸다고 팝스가 그랬어.” (88쪽)


“나비가 우물우물 말을 하는데다가 목소리도 너무 작았어. 하지만 중요한 얘긴 이해했어. 마음모아 날기를 도와줄 지구인 셋만 찾아내면 주문 없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야. 넷이 한마음으로 밀라몰라라리움 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만 생각한다면 말이야.” (103쪽)


“잊어버려, 야콥. 지구의 낡은 우주선을 타고 갈 수 있는 데는 기껏해야 화성이야. 내가 꼭 다시 올게.” (13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CorneliaFranz #LUL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임길택 지음 / 보리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배움책/숲노래 책읽기 2022.6.13.

인문책시렁 227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임길택

 보리

 2004.1.15.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임길택, 보리, 2004)는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종로서적, 1996)을 되살리고 보탭니다. 저는 1996년에 처음 나온 책을 1998년에 읽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길잡이(교사)가 있었구나 하고, 이런 길잡이가 깃든 어린배움터에 다닌 아이들은 하늘빛을 누리면서 마음 그대로 말을 터뜨리고 생각을 밝히면서 자랄 만했구나 하고 느꼈어요.


  어린 날 다닌 배움터를 떠올리면, 열두 해에 걸쳐 “어른이란 놈팡이는 아이를 두들겨패고 꾸짖고 괴롭히는 재미로 사나?” 싶어 매우 질렸습니다. 착하거나 참하게 말을 건네는 어른을 아주 드물게 보았고, 거의 모두라 할 만하다 싶은 어른들은 막말에 삿대질에 주먹질이 흔했습니다.


  책이름을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에서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로 바꾸었는데, 새로 나온 책을 읽으며 어쩐지 못마땅했어요. 임길택 님은 틀림없이 “우는 모두를 사랑하는” 발걸음이었다고 할 테지만, 더 들여다보면 “노래하는 모두를 사랑하는” 눈빛이라고 해야 알맞다고 느끼거든요.


  아이도 새도 시골도 멧골도 나무도 들꽃도 소도 ‘울기’만 하지 않습니다. 언뜻 본다면 ‘울음’이지만, 가만히 보면 ‘노래’입니다. 우는 모두는 언제나 웃어요. 울음하고 웃음은 언제나 나란합니다. 울음하고 웃음을 품은 아이랑 새랑 시골이랑 멧골이랑 나무랑 들꽃이랑 소는 노상 ‘노래’를 ‘사랑’하는 하루를 짓는다고 해야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래하는 아이들 곁에서 우는 어른인 임길택 아저씨일 테지요. 꿈꾸며 들을 달리고 멧숲을 누비는 아이들 곁에서 울던 어른인 임길택 아재일 테고요. 어느덧 온누리 아이들한테서 노래가 사라진 듯하지만, 시골에서도 멧골에서도 어쩐지 노래가 억눌린 듯하지만, 노래할 새나 나무나 들꽃이나 소는 가뭇없이 갇히거나 이 땅을 떠난 듯하지만, 그래도 아직 노래하는 아이들이 있고, 노래순이·노래돌이 곁에서 울 줄 아는 어른이 몇쯤 있습니다.


ㅅㄴㄹ


한 해에 한 번씩은 변소를 퍼야 했다. 맘 좋은 학교 아저씨는 이런 일을 일요일에 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서로 똥을 퍼 가려던 마을사람들이 이젠 퍼다 주어도 마다할 정도로 변해 버렸는데, 그 똥을 퍼내는 일을 늘 큰선생님이 하셨다. 사람이 덜 익었던 나는 감히 그 일을 함께할 생각조차 못 했다. (76쪽)


그 아이가 천재인지 바보인지는 큰 관심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구태여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지 않아도 가르치는 것을 성실하게 따라해내고, 맡은 일을 꼼꼼히 치러내는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고 대견합니다. (109쪽)


동길이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를 지어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면서 도회지에 나가 밤을 낮 삼아 김밥과 술을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어느 날 마산 버스정류장 가까이서 일하고 있다는 이분들을 찾아갔다. 장사를 하지만 마음은 늘 고향 산 속에 있다고 했다. 이다음 역사가들은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마음 부수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이 시대를 어떻게 적어 나갈지 궁금하기만 하다. (168쪽)


내가 특수교육연구회 거창 지회장이란다. 올 사업계획과 회원명단을 내라는 공문이 와서 지난해에 나간 공문을 보고 베껴 만들었다. 하지 않는 일을 서류로만 만들어 놓고 한 해를 보내는 공무원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월급 받는 내가 한심스러울 때가 이런 때다. (1994년 3월 31일 일기/216쪽)


토요일에 도서관에서 전교 어린이회 임원 선거가 있기에 가 봤더니, 5학년 한 남자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해 깜짝 놀랐다. “선생님, 전교 임원이 되면 돈 깨지지요?”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낯이 뜨거웠다. (1995년 3월 7일 일기/252∼2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