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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고양이 쿠로 5
스기사쿠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28



까망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 묘한 고양이 쿠로 5

 스기사쿠 글·그림

 송원경 옮김

 시공사 펴냄, 2003.12.26.



  스기사쿠 님이 빚은 만화책 《묘한 고양이 쿠로》(시공사)는 ‘까만 고양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일본사람은 까만 빛깔을 ‘쿠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까만 빛깔 고양이한테 ‘까망이’라는 이름을 붙인 셈입니다. 한국사람은 예부터 까만 고양이한테는 ‘까망이’라 했습니다. 까만 개한테는 ‘검둥개’나 ‘검둥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 코지로의 아기들은 수가 줄어 있었다. 사방에는 까마귀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둥지 같은 것들이 있었고, 까마귀에게도 아이를 기르는 계절이 와 있었다. (16쪽)





  까만 고양이는 둘레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까망이는 사람을 어떻게 마주할까요. 까망이는 이웃 고양이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까망이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요. 까망이는 이 땅에서 어떤 즐거움과 보람을 누릴까요.


  《묘한 고양이 쿠로》 다섯째 권을 읽으면, 까망이 핏줄을 물려받은 어린 고양이가 나옵니다. 까망이는 제 핏줄을 물려받았구나 싶은 새끼한테 날마다 찾아가서 쓰담쓰담을 하고 싶은데, 어미 고양이는 수컷 손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혼자서 용을 쓰면서 새끼를 건사하면서 보살피려 하는데, 고양이와 사람은 서로 마음이 달라요. 고양이로서는 제 몸에 오랫동안 품고서 힘들게 낳아 알뜰히 보살피는 사랑둥이일 테지만, 사람한테는 ‘쓰레기봉지를 찢고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까망이와 동무 고양이가 여러모로 애쓰지만, 들고양이 새끼는 ‘고양이를 거추장스레 여기는 사람’이 잡아들여서 어디론가 보냅니다. 까망이와 동무 고양이는 저희 핏줄을 물려받은 새끼를 찾아서 자동차 냄새를 좇아 시내 한복판까지 가지만 그저 길을 잃을 뿐 이도 저도 못 합니다.


  들고양이는 그저 끝없이 새끼를 늘리기만 할까요? 들고양이는 십만 백만 천만 이렇게 숫자가 늘어날 수 있을까요? 들고양이도 사람처럼 끝없이 숫자를 불리면서 지구별을 어지럽힐까요?






- 내가 다이스케에게 쿠리게 사건을 보고하고 현장으로 가려는데, 수염과 누나가 따라왔다. 쿠리기에게 물린 녀석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고, 마다라는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39쪽)



  까망이와 동무 고양이는 끝내 저희 새끼를 못 찾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새끼가 깃들었구나 싶은 곳을 찾습니다. 새끼 고양이 모습은 없지만 새끼 고양이 넋이 서린 곳에 닿습니다.


  고양이와 사람은 서로 ‘고양이’와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다릅니다. 고양이와 사람은 옷을 한 꺼풀 벗으면 저마다 다른 넋이기도 할 텐데, 몸에 붙은 숨으로 보면 ‘같은 목숨’이고, 몸을 벗은 모습으로 보면 ‘같은 숨결’입니다. 이리하여, 까망이를 비롯한 여러 고양이는 따순 손길을 뻗어 아끼는 이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고양이라면 모두 못마땅해 하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고양이든 누구이든 모두 아끼면서 사랑합니다.





- 몇 대 맞은 꼬맹이는 그래도 칭코를 찾고 있었는데, 잘 보니 얼굴에 상처가 없는 것이 칭코는 적당히 한 것임에 틀림없다. (102쪽)



  겨울바람이 붑니다. 겨울바람은 한뎃잠이한테도 춥고 들고양이한테도 춥습니다.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다가도 한낮이 되면 겨울볕이 포근합니다. 겨울볕은 한뎃잠이한테도 포근하고 들고양이한테도 포근합니다.


  까망이는 언제나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배불리 먹고, 느긋하게 쉬며, 재미나게 놀기, 이렇게 한 가지 삶을 생각합니다.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살며, 기쁘게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을 생각해요.


  사람은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즐거울까요. 사람은 어떤 하루를 보낼 때에 기쁠까요. 사람은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놀이로 어우러질 때에 아름다울까요. 4347.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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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1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26



여기에 있는 너와 나

― 은여우 1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5.23.



  햇살이 비춥니다. 이 겨울에 포근한 햇살이 비춥니다. 햇볕이 내리쬡니다. 여름날 들판을 후끈후끈 달구면서 곡식과 열매한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햇볕이 내리쬡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마루에서 겨울해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마당에서 여름해를 누립니다. 나는 아이들과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우면서 겨울해를 맞아들입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면서 여름해에 까맣게 그을립니다.


  한겨울에 춥다고 방문을 꼭꼭 닫아걸면 해가 뜨는지 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름에 덥다며 창문을 꾹꾹 닫아건 뒤 에어컨을 돌린다면 해가 하늘에 걸렸는지 땅에 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해를 먹으면서 삽니다. 한국사람이 즐기는 밥이란, 햇볕을 여름 내내 듬뿍 받아들인 벼풀이 맺은 풀열매입니다. 요즈음은 햇볕 한 줌 못 쬔 닭이나 돼지나 소를 고기로 먹는 사람이 많지만, 예부터 우리가 먹는 모든 고기는 햇볕을 쬐면서 살던 짐승을 잡아서 얻었습니다.





-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내가 이 신사의 정당한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처음 보인 것은 엄마의 장례식 날이었다.’ (14쪽)

-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는 게 나쁜 일이야? 잘난 척만 하고! 신의 사자라지만 결국 긴타로도 그냥 여우잖아!” (20쪽)

- “아빠는 마음속으로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긴타로 님은 계시는 거야. 그리고 신을 대신해 너와 모두를 지켜 주고 계시지. 하지만 없다고 믿으면 정말로 없어져 버려. 신의 사자라 해도 신과 마찬가지니까.” (31쪽)



  겨울에도 마당에서 맨발로 놀고 싶은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놀면서 “아, 덥다!” “더워, 더워!” 하고 외칩니다. 더운 나머지 옷을 한 꺼풀 벗고, 또 덥기 때문에 옷을 두 꺼풀 벗습니다. 볼은 빨갛고 땀이 흐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해를 보면서 자랍니다. 언제나 해님을 동무로 삼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언제나 해를 마주합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해님을 먹고 해님을 바라보며 해님을 노래하면서 자랍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햇살로 자라고 햇볕으로 크며 햇발처럼 환하게 웃음짓습니다.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아이들은 사랑을 나누고 꿈을 짓는 두레로 나아갑니다. 해를 먹고 해를 마시며 해를 즐기는 아이들은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놀이를 새롭게 짓습니다. 해처럼 따스하게 동무를 사귑니다. 해처럼 골고루 흙을 가꿉니다. 해처럼 아름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 “평소부터 저러고 다니니까 그렇게 거만할 수밖에. 우리가 장난을 좀 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나무랄 일은 아니잖아?” “그러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아이고 나는 됐네요. 그러고 싶으면 너는 그러든가. 쟤가 정중히 사과한다면 또 몰라도.” (97쪽)

- “어머니께 전해요. 나 오늘 집에 안 간다고.” “예?” “하하, 저 얼굴 봤냐?”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어.” (113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그린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에 있는 절집(신사)을 둘러싼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릴 적부터 ‘여우님’을 볼 수 있는 아이는 다른 여느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기운을 느끼고, 다른 여느 아이들이 헤아리지 않는 길을 헤아립니다.




- “신사는 정말 신기해. 여기 있기만 해도 많은 사람들과 이어지거든. 오늘도 신기한 세 사람이 여기 있잖아. 나는 이 공간을 없애고 싶지 않아.” (120쪽)

- “지금 우리는 같은 나이에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지만, 하지만 수백 수천 년 동안 남아 있는 몇몇 유물들은 지금까지 쭉 우리가 모르는 시간을 계속 봐 오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신기하지 않아?” (132∼133쪽)



  ‘은여우’는 오래된 절집을 지키는 ‘님’입니다. 일본 절집에는 절집을 지키는 님이 여럿 있고, 은여우는 여러 님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만화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오래된 절집이 있습니다. 커다란 절도 있지만 마을에 조그마한 서낭집이 있습니다. 서낭집은 마을을 지키는 님이 깃드는 곳입니다. ‘우상’이나 ‘잡신’이 깃드는 데가 아니라 ‘마을 지킴이’가 고이 쉬는 곳이 서낭집입니다.


  일본 만화 《은여우》에 나오는 여우님이 깃드는 곳은 절집입니다. 일본 절집은 처음부터 커다랗게 짓지 않았다 하고, 마을마다 조그맣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지내며 마을을 돌보는 님은 예부터 마을사람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한겨레도 예부터 님을 다 알아보았습니다. 이를테면, 도깨비라고 하는 님을 예부터 누구나 보았어요. 도깨비를 보고 도깨비불을 봅니다. 무엇보다 ‘님’이라는 말을 써서 사람과는 다른 테두리에서 다른 곳에 있는 이웃을 헤아렸습니다.





- “옛날에는 경계 같은 게 없어서 넓은 세상 어디에나 신이 있었지. 뭐, 하지만 지금은 도리이 안이 집이야.” “어쩐지, 신이 계시는 곳이 적어졌구나.” (142쪽)

- “이런, 마코토. 신이 계시는 곳은 작아지지 않았어.” “뭐? 어디.” “모두의 여기(가슴) …… 하지만 정말이야. 신은 신사가 아니어도 어디에나 계신단다. 신사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고, 도리이라는 표시가 있으니까 신이 여기 계시는구나 하는 거지.” (148∼149쪽)

- “옛날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는 신과 인간 모두 즐겁게 공존했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신을 모시는 자들만 볼 수 있게 됐고, 결국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되었어.” (185쪽)



  내 앞에 나무가 한 그루 있어도 이 나무를 못 볼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자동차가 있어도 이 자동차를 못 볼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책이 있어도 이 책을 못 볼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수많은 사람이 스치고 지나가도 아무도 못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볼까요.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내가 마음을 기울이면서 알아차리는 님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를 둘러싼 도깨비와 도깨비불을 까맣게 잊거나 못 알아보면서, 우리는 우리 이웃과 동무가 누구인지까지 모두 잊거나 못 알아보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지 않나 궁금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숱한 님을 알아보면서 이웃으로 지내던 지난날에는 우리 이웃과 동무를 ‘집에 있는 밥숟가락’까지 모두 헤아리면서 알뜰살뜰 서로 아끼면서 지냈으리라 느낍니다.


  인터넷이 있어 온갖 지식과 정보는 아주 빠르게 흐릅니다. 신문과 방송과 책이 넘쳐 갖은 지식과 정보는 엄청나게 넘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는 꿈과 사랑이 자라지 못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는 꿈과 사랑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학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여기에 있는 너와 나는 누구일까요? 4347.1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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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2 토성 맨션 2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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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8



도시도 숲이 되어야

― 토성 맨션 2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09.6.15.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군내버스를 기다립니다. 네 식구가 함께 타고 돌아갈 버스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두 아이는 한 시간 동안 쉬잖고 버스역 안팎을 달리면서 놉니다. 참으로 씩씩하고 야무지고 재미난 아이들이네 하고 느끼면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한 시간이야 가볍게 지나갑니다.


  그런데 나는 읍내 버스역조차 어지럽고 고단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도시에 있는 아주 큰 버스역이 아닌데, 서울이나 부산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리지 않는데, 서울이나 부산처럼 번쩍거리는 광고판이나 가게가 있지도 않은데, 여러모로 힘듭니다.


  버스에 타서 창문을 살짝 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나는 도시내음을 참으로 못 견뎌 하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도시내음이 흐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면 되는데, 자꾸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지치는구나 싶습니다. 도시에서 살 적에는 거의 제넋을 차리기 힘드니 책만 읽고 책방만 다니고 자전거만 타면서 살았구나 싶습니다.





- “간만에 휴일이잖아. 여기서 뒹굴뒹굴 하지 말고 놀다 와.” “어디서 놀아야 될지 모르겠어요.” (40쪽)

- ‘바람이 분다. 이런 넓은 장소에 있으니 마치 창문 닦을 때 같아.’ (55쪽)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내리자마자 개운합니다. 숨을 쉴 만합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만 듣고, 바람 따라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만 듣습니다. 우리 집에서 비바람을 그으며 자는 고양이 너덧 마리가 마당을 가로지릅니다. 자전거 밑에 옹크리는 녀석이 있고, 종이상자에 들어가서 옹크리는 녀석이 있습니다. 어린 고양이는 더 어린 새끼였을 적에는 세 마리가 작은 종이상자에 함께 들어가서 자더니, 이제 제법 컸다고 세 마리가 다 따로따로 잡니다.


  마당에 서서 밤바람을 쐬고, 밤별을 보며, 밤이 되어 잠든 나무를 바라봅니다. 일찌감치 시골로 와서 살지는 못했지만, 곁님이 재촉하고 이끌어서 시골로 와서 지낸 지 여러 해 됩니다. 앞으로도 시골에서만 살겠구나 싶고, 오래오래 시골살이를 누리면서 숨결을 잇겠다고 느낍니다. 시골만 시골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시골내음이 흐를 수 있는 꿈을 꾸리라 느낍니다. 시골이 시골답도록 나무가 늘고 숲이 늘기를 바라는 한편, 도시가 사람다운 내음이 흐르도록 곳곳에 조그마한 숲이 늘고 나무도 훨씬 늘기를 바라리라 느낍니다.


  가끔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갈 때마다 생각해요. 길에 나무가 없는 곳은 걷기조차 힘듭니다. 길에 나무가 있는 곳은 택시나 버스를 타고 지나갈 적에도 싱그럽습니다.




- “아버지 아키 군은 아키 군. 미쓰 군은 미쓰 군이라는 사실, 잘 알고 미쓰 군을 지켜보고 있어요.” (61쪽)

- “저기, 지상의 탐사대는 사실은 무얼 하고 있을까?” (81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09)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태어날 적부터 숲이나 들을 아주 모른 채 태어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숲이나 들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태어난 뒤부터 풀 한 포기 뜯을 수 없고, 꽃 한 송이 꺾거나 기를 수조차 없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풀노래나 꽃노래를 부를 줄 모릅니다. 밥은 먹지만 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릅니다. 고기는 먹지만 고기가 어디에서 자라는지 모릅니다.


  땅에 발을 디디는 삶이 아니라 하늘에 붕 뜬 삶인데, 먹고 입고 자고 이럭저럭 삽니다. 짝짓기도 하고 사랑도 속삭이다가 아이도 낳습니다. 다만, 하늘을 모르고 땅을 모릅니다. 바람을 모르고 햇볕을 모릅니다. 비를 모르고 눈을 모릅니다. 아는 것이라면, 웃층과 가운뎃층과 아랫층, 이렇게 세 갈래로 나눈 계급과 신분에 따라서 일이 달라지고 삶터가 달라진다는 대목만 압니다.





- “왠지 오늘 일은 계속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103쪽)

- ‘일상적인 대화가 기뻤다.’ (118쪽)



  오늘날 도시사람은 시골을 거의 모릅니다. 오늘날 도시사람 가운데에는 시골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늘날 도시사람 가운데에는 쌀이 어떻게 나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날 도시사람 가운데에는 능금꽃이나 포도꽃이나 배꽃이나 복숭아꽃을 한 차례조차 못 본 사람이 많습니다.


  도시사람 가운데 벼꽃이나 보리꽃이나 율무꽃이나 옥수수꽃을 헤아린 적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도시사람 가운데 매화나무 겨울눈을 생각한 적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도시사람 가운데 참새 노랫소리를 제대로 귀여겨듣거나 박새나 딱새 노랫소리라도 제대로 귀여겨들은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 이 나라에서 가장 모자란 한 가지를 들라면 바로 ‘숲’입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숲다운 숲이 가장 모자랍니다. 시골에서는 농약을 뿌리고 송전탑을 박거나 고속도로를 내거나 공장이나 발전소나 골프장 따위를 세우느라 숲이 모자랍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와 상가와 건물 따위를 올리느라 숲이 모자랍니다.


  숲이 모자라기에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습니다. 숲이 사라지기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잊습니다. 도시도 숲이 되기를 빌어요. 도시도 숲이 되어, 나도 가끔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갈 적에, 도시에 있는 이웃과 동무를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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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새 - 타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22



내 삶은 내가 짓는다

― 운명의 새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9.25.



  마당으로 멧새가 찾아와서 노래를 부를 적에, 마음을 기울여야 이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에 멧새가 살포시 내려앉아서 짝을 부를 적에, 눈길을 두어야 이 몸짓을 알아봅니다. 마당에 있어도 새를 못 느낄 수 있고, 새가 코앞을 스치고 지나가도 못 알아챌 수 있습니다.


  잎이 모두 진 나무에 조그마한 겨울눈이 단단히 맺습니다. 나무 곁에 서서 찬찬히 바라보는 사람은 겨울눈을 알아봅니다. 추운 바람이 불면 풀이 죄 시들지만, 볕이 포근히 내리쬐는 날이 이어지면 어느새 조그마한 풀싹이 봉긋봉긋 고개를 내밉니다. 흙이 있는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작은 가을풀이나 겨울풀을 알아봅니다.


  바라보려 할 적에 바라봅니다. 바라보려 하기에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립니다. 바라보려 하지 않을 적에는 바라보지 못합니다. 바라보려 하지 않기에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 “어멈은 굳이 안 배워도 음식 잘하잖니?” “정말요? 아버님.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간병하던 동안, 음식에 통 신경을 못 쓰다 보니 솜씨가 많이 떨어진 것 같거든요.” (5∼6쪽)

-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엔 사랑이 없었다.’ (42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이 그린 만화책 《운명의 새》(학산문화사,2014)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빚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운명의 새》에 나오고, 이웃이나 동무를 《운명의 새》에 나오며,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 같은 사람이 《운명의 새》에 나옵니다.


  곰곰이 읽고 다시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가슴을 건드리거나 움직이거나 울리는 만화는 ‘어디 먼 데 있는 딴 나라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거나 어루만지거나 쓰다듬는 만화는 ‘뚱딴지 같거나 뜬금이 없다 싶은 별나라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곱게 피어나는 이야기는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 둘레 어디에 있든 나 스스로 이웃과 동무를 바라보고 마주하며 사랑할 수 있으면, 곱게 피어나는 이야기를 늘 누립니다. 살가이 흐르는 이야기는 나한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 삶을 스스로 아끼고 돌보면서 가꿀 수 있으면, 살가이 흐르는 이야기를 누리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 ‘사람의 운명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때. 자기의 무력함과 마주해야 한다는 쓰디쓴 기분을. 그래서 요즘은 아예 포기하고 산다. 그래.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78쪽)

- ‘행복하게 살고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분명 너는 자기 힘으로 운명의 새를 쫓아 보냈겠지. 어쩐지 구원을 받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망설이지 않고 내 힘을 남들을 위해 써야지. 후회하지 않도록.’ (98쪽)



  내 삶은 내가 짓습니다. 내 이야기는 내가 씁니다. 내 사랑은 내가 가꿉니다. 내 보금자리는 내가 돌보고, 내 아이는 내가 가르치며, 내 어버이는 내가 섬깁니다. 내 밥은 내가 챙겨서 먹고, 내 몸은 내가 스스로 보듬으면서 다스립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 삶길은 스스로 열어서 스스로 걷습니다. 하늘이 시킨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휩쓸리는 사람은 더러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적에 웃음이 나올까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 살고 싶은 대로 살 적에 웃음이 나올 테지요. 어떤 일이나 놀이를 할 적에 노래를 부를까 헤아려 봅니다. 스스로 즐겁게 일하거나 놀이를 하면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 “처음에 우리 집의 불은 진짜 우연이었어요, 밤에 폐휴지를 내놓으려고 나가는데, 마을 회보의 우리 집 기사가 눈에 들어왔죠.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하지만 사실 남편은 출장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매주 금요일이면 다른 여자한테 가서 자고 와요. 전, 그걸 알고 있었죠.” (128∼129쪽)

- “그 사람은 이제 날 떠날지도 몰라.” “저,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집에 가 보셔야죠. 전 알 수가 없네요. 사랑하는 아내를 내버려두고 밤마다 술이나 마시다니.” (140쪽)



  만화책 《운명의 새》에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제껏 삶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뒤늦게 삶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고, 날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물결에 휩쓸리는 사람이 있으면, 물결을 헤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못 보는 모습을 보는 사람이 있고, 둘레에서 이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걷습니다. 더 나은 길이나 덜 좋은 길은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골라서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 “부엌살림은 어멈에게 맡기기로 했으니까, 난 상관없다. 그래도 버섯된장국을 할 때는, 두부나 무 정도는 더 넣으면 좋겠다 싶지만.” (175쪽)



  지난해에 심은 복숭아나무 가운데 한 그루가 우리 집 뒤꼍에서 제법 크게 자랐습니다. 보름쯤 앞서 가을잎을 모두 떨구었고, 이제 겨울눈이 앙증맞게 납니다. 복숭아나무 앙상한 가지에 맺힌 겨울눈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이듬해 봄을 살그마니 그립니다. 어떤 잎이 새로 날는지 설레고, 어떤 꽃이 새로 필는지 두근거립니다. 우리 집 복숭아꽃을 마주할 수 있으면, 우리 집 아이들은 날마다 복숭아꽃을 보러 뒤꼍으로 올 테며, 복숭아꽃이 나누어 주는 냄새를 맡으려고 뒤꼍에서 놀 테지요.


  무화과나무 둘레에는 어린 무화과나무가 조그맣게 싹을 틔워서 올라옵니다. 후박나무 둘레에는 어린 후박나무가 자그맣게 싹을 틔워서 올라옵니다. 커다란 나무 둘레에는 으레 어린나무가 자랍니다. 어린나무는 큰나무 둘레에서 포근하게 사랑을 받습니다. 다만, 이 어린나무가 모두 우람하게 크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백 해가 흐르고 삼백 해가 흐르면, 우리 집 나무는 모두 우람하게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집보다 훨씬 큰 나무가 될 테고, 어쩌면 삼백 해쯤 뒤에 이 집에서 살 아이들은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베어 새롭게 집 한 채 지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뒷날 아이들은 다시금 나무를 심어 삼백 해를 돌보면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어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나무나 숲이나 땅이나 집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나무와 숲과 땅과 집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손수 가꿀 수 있는 보금자리를 물려주고 싶고, 이 보금자리를 아이들이 다시 새 아이들한테 물려주면서 두고두고 아름답게 보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까만 밤을 초롱초롱 빛내며 채우는 별을 올려다보면서 비손합니다. 내가 손구 일굴 삶을 찬찬히 그립니다. 4347.11.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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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마루 에디션 1
카와시타 미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25



만화를 그리는 사람

― G마루 에디션 1

 카와시타 미즈키 글·그림

 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11.30.



  일본에서 2010년에 처음 나온 《G마루 에디션》(대원씨아이,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을 그린 카와시타 미즈키(河下水希) 님이 선보인 작품 가운데 《고교 남자》와 《리림의 키스》와 《딸기 100%》와 《첫사랑 한정》과 《누나 두근》 같은 작품이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카와시타 미즈키 님이 그리는 순정만화를 보면 뼈대가 엇비슷하고, 나오는 아이들도 엇비슷한데, 가시내 속옷을 퍽 자주 그립니다. 꼭 이렇게 그려야 할까 싶은데, 이녁 스스로 그리고 싶어서 그리리라 느낍니다.


  《G마루 에디션》은 이녁이 그동안 그린 만화하고 비슷한 얼거리인 한편, 이녁이 걸어온 만화쟁이 삶을 돌아보려는 이야기가 함께 섞이는구나 싶습니다. 꼭 마흔 살 문턱에서 선보인 작품입니다.


  줄거리 흐름을 가만히 살피면, 카와시타 미즈키 님은 마흔 살 문턱에서도 스무 살 마음이거나 열여섯 살 생각으로 만화를 그리지 싶어요. 그런데, 스무 살 마음이란 무엇이고 열여섯 살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스무 살 젊은이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열여섯 살 푸름이는 어떤 생각을 키울까요.



- “내가 카부라기 이루토 맞는데? 있잖아, 너, 미래에서 온 것처럼 말하던데, 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게다가 팬이라니. 호, 혹시 내가 미래에 유명한 만화가가 되는 거야?” (17쪽)

- “뭐? 거짓말! 내 꿈은 순정만화가라고! 그런 저속한 걸 그릴 리가 없잖아! 내 미래가 에로만화가, 다 거짓말이야! 악몽이라고!” (19쪽)



  《G마루 에디션》에 나오는 가시내는 ‘순정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먼 앞날에서 시간여행으로 찾아온 사람이 이 가시내가 먼 앞날에 ‘에로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 널리 이름을 떨친다고 이야기합니다. 둘째 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지 모르지만, 첫째 권에서는 순정만화와 에로만화와 동인지 사이에서 ‘만화란 무엇인가’를 돌아봅니다.


  벌레만 그리는 만화는 무엇일까요. 가시내 속옷을 자주 그리는 만화는 무엇일까요. 아이들 옷을 홀랑 벗기는 만화는 무엇일까요. 치고 받는 싸움을 그리는 만화는 무엇일까요. 순정만화라는 만화에서 ‘순정’이란 무엇일까요. 에로만화라는 만화에서 ‘에로’란 무엇일까요.


  곰곰이 돌아보면 이 지구별에 온갖 모습이 골고루 있기에 온갖 모습이 골고루 만화로도 태어납니다. 이쪽 삶을 이쪽 만화로 그리는 사람이 있고, 저쪽 삶을 저쪽 만화로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쪽을 그리기에 더 낫지 않고, 저쪽을 그리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쪽을 그려야 옳지 않고, 저쪽을 그리기에 그르지 않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만화에 이녁 마음과 생각을 오롯이 담아서 이야기를 짓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만화 하나에 이녁 꿈과 사랑을 살뜰히 담아서 이야기를 엮습니다.



- “우리는 만화를 위해 자는 시간도 아껴 가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너도 프로가 목표라면 좀더 확실히 자각을 가져야 해.” (97쪽)

- “난 내가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 내가 행복하니까 그림을 그리는 거야.” (116쪽)



  카와시타 미즈키 님은 이녁 스스로 좋아서 그림을 그리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좋아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만화책을 읽는 사람은 만화가 좋아서 만화를 읽습니다. 문학책을 읽는 사람은 문학이 좋아서 문학을 읽습니다. 저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길을 스스로 즐겁게 찾아서 씩씩하게 걸어가면 모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스스로 노래하지 않으면 어느 것도 하지 못해요.


  카와시타 미즈키 님은 앞으로도 꾸준히 만화를 그릴 텐데, 2020년에 쉰 살 문턱에 서면 어떤 작품을 선보이면서 이녁 삶을 돌아볼는지 궁금합니다. 나도 내가 앞으로 쉰 살 문턱에 서면 그즈음에는 어떤 만화책을 곁에 둘는지 궁금합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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