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발자취 2 - 시간여행 카스가연구소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18



사랑을 새로 받고 태어나다

― 너와 나의 발자취 2

 요시즈키 쿠미치 글 ·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10.30.



  아이가 태어나서 어른으로 자라고, 어른은 사랑스러운 짝을 만나 아이를 낳습니다. 사랑스러운 짝을 만나 아이를 낳은 어른은 새롭게 아이를 바라보고, 새로 태어난 아이는 새로운 사랑을 물려받아 새로운 어른으로 자랍니다.


  아이가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면서 지구별에 새로운 숨결이 퍼집니다. 아이가 새로 자라고 거듭 자라면서 이 땅 곳곳에 새로운 이야기가 넘실거립니다.


  우리는 어머니가 되거나 아버지가 되려고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가 되거나 아버지가 되는 까닭은, 어머니나 아버지로 살면서 사람으로 누리는 하루를 새롭게 돌아보면서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 “주변 사람들에게 구박만 받았는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 정도로 다정할 수 있다니. 어떤 ‘능력 있는 사람’보다 존경스러워.” (19쪽)

- “만약 그때 교차로에서 반대로 내가 치일 뻔했다면 시다 씨는 어떻게 했을까?” “틀림없이 구하려고 뛰어들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아마 어떤 세계에 있든, 난 시다 씨를 좋아하게 될 거야! 둘 다 그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25∼26쪽)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빚은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서울문화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고 싶은 생각을 품기도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을 생각합니다. 스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수 없으리라 여깁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까요? 어머니가 되거나 아버지가 되려고 자라는 아이가 있을까요?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나중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는 줄 알까요? 아이들은 새로운 사랑을 받아 새로운 어른으로 자라는가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사랑을 새롭게 물려주면서 꿈을 새롭게 키우도록 북돋우는가요?





- “와, 미즈키! 뒤를 돌아봐. 굉장하다. 똑바로 쭉 이어져 있어!” “응?” “미즈키와 나의 발자국!” (37∼38쪽)

- “왜 연구소 옥상에서 캔맥주와 안주를 늘어놓아야 하는 겁니까.” “불평하지 말아요! 손님이 다소 늘었다고 해도 사치는 금물이에요. 게다가, 이렇게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별이 최고의 술안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42∼43쪽)

- “인간의 뇌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영질’이란, 다시 말해서 뇌의 지령탑인 ‘의식’의 실체. 우리 장치는 이 영질을 해석해 수치화함으로써 시간여행 세계에서 의식까지 시뮬레이트된 인간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요.” (50쪽)



  어버이는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는 사람을 넘어, 살림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생각을 짓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학교에 다니려고 태어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학교를 반드시 다녀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삶을 즐기려고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학교에서는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나요. 사회에서는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나요. 책과 신문과 방송은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려 하나요. 우리는 학교와 사회와 책 둘레에서 어떤 생각을 얻어서 어떤 삶을 짓는가요.



- “괜찮아요. 손을 잡지 않아도 나는 여기에 실재하고 있어요!” (60쪽)

- “내 정신력을 얕보지 마세요. 그 따위 협박에 여동생을 포기할 것 같아요! 현실의 육체 따윈 마음대로 하세요! 그 대신 난 당신을 평생 ‘귀축 송충이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혐오해 줄 테니까!” (90쪽)

- “무엇보다 소장님과 만난 후의 이 1년 동안 내 마음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을 잊고 이런 세계로 달아나지 말아요!” (101쪽)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에 나오는 사람들은 시간여행을 바랍니다. 흐르고 흘러 오늘이 된 이 자리에서 옛날로 돌아가서 바꿀 수는 없으나, 옛날 그 자리에서 ‘내 눈길과 마음’이 아니라 ‘내 곁에 있던 그 사람 눈길과 마음’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씩씩하고 즐거우면서 사랑스럽게 살가운 기운을 찾고 싶어서 지난날로 돌아가 내 모습을 또렷하게 다시 보고 싶습니다.


  만화책에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난날로 돌아간다고 해서 지난날 어떤 모습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굳이 바꿀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삶을 새로 지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에 선 우리가 스스로 이 삶을 새로 가꾸어서 아름다운 사랑을 새롭게 일구면 되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언제라도 돌아볼 수 있는 과거가 내게도 있다면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어!” (134쪽)

- ‘그래, 그것은 여기를 방문한 사람 모두가 품고 있는, 먼 과거에 풀지 못한 마음의 퍼즐.’ (149쪽)

- “당신은 아마 지금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랑’에 둘러싸여 살고 있어요. 이 진실이야말로 줄곧 당신이 원하던 것이 아닐까요?” (176∼177쪽)



  아이가 자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어머니나 아버지 마음을 헤아립니다. 아이가 자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면서, 예전에 내 어머니나 아버지가 하지 못한 사랑을 새롭게 짓습니다. 아이가 자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면서, 이제부터 나는 어머니 숨결과 아버지 노래를 기쁘게 나눕니다.


  나는 사랑으로 태어났고, 나는 사랑으로 아이를 낳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사랑으로 태어났고, 우리 아이들은 사랑으로 자라서, 앞으로 새로운 사랑을 이 땅에 곱게 심습니다. 4347.11.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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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에게 받은 음악 1
카츠타 번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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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19



네가 나한테 들려준 노래

― 그애에게 받은 음악 1

 카츠타 분 글·그림

 설은미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5.10.25.



  나는 노래를 무척 좋아합니다. 나도 잘 모르던 모습입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으레 노래를 부르는데, 처음에는 잘 못 느끼다가 어느 날부터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참말 노래를 좋아했구나 하고 혼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주 어리던 예닐곱 살이라든지 여덟아홉 살 적을 떠올리면, 나는 늘 노래를 부르며 놀았습니다. 열두어 살 적에도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놀았어요. 다만, 학교에서 음악 실기시험을 치를 적에는 웃음거리였습니다. 가락은 맞추어도 높낮이는 못 맞추기 일쑤라서 교사들이 이런 나를 늘 놀림거리로 삼았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음악 교사는 나 같은 아이를 언제나 놀림거리로 삼았어요.


  국민학교 다닐 적에는 수업 때에만 피식 웃음거리가 된 뒤 지나갑니다. 국민학교에서는 누구 한 사람이 놀림거리가 되어도 그냥 서로 웃고 끝났는데, 중·고등학교에서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국민학교에서는 수업에서 아무리 놀림거리가 되어도, 수업이 끝난 뒤에는 동무들과 놀며 온갖 놀이노래를 새롭게 지어서 불렀지만, 중학교부터는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안 부르며 지냈습니다.





- “예, 약속대로 우메코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아, 아직 졸업식은 치르지 않았어요.” “예, 내일이 졸업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일 때문에 모레 여기를 떠납니다. 이쪽은 일본을 좋아하는 친구인데, 그때까지 방 두 개를 부탁하겠어요. 그리고, 우메코가 좋다고 하면, 모레라도 함께 독일에 가고 싶습니다.” (15쪽)

- “있죠. 어머님이 일본인인가요?” “어머님? 아, 내 어머니? 그렇단다.” “그럼 전에는 어머니의 조국을 보러 오신 거예요?” “응, 쭉 일본에 가 보고 싶었거든. 난 이상하게 매화꽃에 향수를 느꼈지.” (21∼22쪽)



  카츠타 분 님이 빚은 만화책 《그애에게 받은 음악》(학산문화사,2005) 첫째 권을 읽습니다. 두 권짜리로 엮은 만화책입니다. 책이름에 ‘-에게’로 적었습니다만, “그애‘에게서’ 받은 음악”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너한테서 받는 선물이고, 어머니한테서 물려받는 책입니다. 토씨를 ‘-한테서(-에게서)’로 붙여야 합니다.


  아무튼, 따스한 숨결을 받아서 즐기는 노래가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 하는 이야기를 애틋하게 들려주는 만화인 《그애에게 받은 음악》입니다. 줄거리를 살피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노랫가락은 그 아이가 나한테 주기도 했지만, 내가 그 아이한테 주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한테 주기만 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서로 주고받으면서 서로 아끼는 마음을 키우는 노래입니다.





- “결혼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충격이었는데 아가까지 있구나.” “억.” “이러면 점점 더 엉덩이가 무거워져서 전 세계 연주 여행을 할 수 없잖아.” (46쪽)

- “빗소리가 꼭 박수 같네요.” (52쪽)

- “그는 전 세계에도, 달에도 갈 생각이 없어.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달빛이 비치고 있고, 누구보다 자유롭게 피아노를 친단다. 그게 매력이지.” (63쪽)



  나는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내 온 사랑을 담아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나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들 나름대로 저희 사랑을 오롯이 담아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노래를 들으며 즐겁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웃음이 피어납니다. 노래를 들으며 저절로 춤을 춥니다. 즐거워도 노래요 슬퍼도 노래입니다. 홀가분해도 노래요 고단해도 노래입니다. 일을 하며 노래요 놀이를 하며 노래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며 노래이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노래입니다.





- “세상에. 아주 훌륭한 피아노구나. 이 피아노에 지지 않을 만큼 실력을 쌓으렴.” (95쪽)

- “할아버지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음을 듣고, 그것을 그림에 담는 분이에요. 마음에 드는 소리는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하죠. 그래서 집에는 테이프가 산처럼 쌓여 있어요.”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듣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본다. 왠지 이상한 느낌이에요.” “나는 그림은 그리지 않지만, 사진을 찍어요. 기분상으로는 할아버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 한순간의 공기를 붙잡아 두고 싶다고 할까요?” (166∼167쪽)



  우리 삶은 노래가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우리 삶은 노래를 지으며 즐겁습니다. 우리 삶은 노래를 나누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자, 노래를 불러요.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노래도 좋습니다. 먼 옛날부터 흐르던 겨레노래도 좋습니다. 놀이노래도 좋습니다. 일본노래이든 미국노래이든 다 좋습니다. 만화영화에 붙은 노래이든 무슨 노래이든 모두 좋아요. 따사로운 기운을 넉넉히 담아서 불러요. 신나는 기운을 가득 담아서 불러요. 내 노래가 이웃과 동무한테 고운 사랑으로 퍼질 수 있도록 활짝 웃어요. 이웃과 동무가 부르는 노래를 내 가슴에 살포시 안으면서 기쁘게 씨앗 한 톨 심어요. 4347.11.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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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3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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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14



마음을 읽는 너와 나 사이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3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12.11.25.



  눈빛으로 마음을 읽는 사이가 있습니다. 낯빛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있습니다. 입으로 말을 꺼내도 마음을 못 읽는 사이가 있습니다. 찬찬히 글로 길게 적어서 보여주어도 마음을 못 헤아리는 사이가 있습니다.


  왜 누구는 마음을 읽고, 왜 누구는 마음을 못 읽을까요. 왜 누구는 마음을 즐거이 읽으려 하지만, 왜 누구는 마음을 꽁꽁 닫아걸까요.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유택 교수가 누리는 삶을 그리는 만화책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는 셈일까요. 유택 교수는 머잖아 정년퇴직을 헤아릴 만한 나이로 접어듭니다. 유택 교수는 이제껏 겪거나 헤아리지 못하던 일도 겪을 수 있고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됩니다. 제때에 맞추어 움직이고, 제자리에 맞게 생각하는 삶이지만, 앞으로는 제때와 제자리가 모두 흔들리거나 어긋날 수 있다고 하나둘 느낍니다.





- “그런데 테라야마. 교실 안에서는 실내화를 신는 게 어떨까?” (7쪽)

- “테라야마. 너는 왜 언제나 웃고 있지?” “유택이한테는 안 통하는구나. 왜냐면,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것이, 내 일이니까.” (12쪽)

- ‘다음날 학교에서 다시 테라야마에게 물어 보려고 마음 먹었다. 너는 24시간 내내 일을 하고 있니?’ (17쪽)



  무엇이 궁금하면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는 유택 교수는, 궁금한 대목이 있으면 수수께끼를 풀 때까지 생각하고 거듭 생각합니다. 어느 때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실마리를 풀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기 때문에, 실마리가 어느새 살며시 찾아옵니다. 이를테면, 둘레에서 여러 가지 일이 터지면서 실마리를 깨닫습니다.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 저런 일에 부딪히면서 넌지시 실마리가 됩니다.


  ‘해님과 같은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해님과 같은 웃음입니다. 해님과 같은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해님과 같이 웃는 사람은 이런 웃음을 스스로 느끼지 않아요. 그저 해님처럼 웃을 뿐입니다. 해님이 지구별을 골골샅샅 따사로이 어루만지듯이, 해님웃음을 짓는 사람은 둘레 사람 누구한테나 맑고 밝으면서 따스한 숨결을 베풉니다.





- “줄곧 물어 보려 했던 것이 있습니다.” “응? 뭐지?” “당신은 24시간 내내 일을 하고 있습니까?” “무슨 소린가 했더니.” “네?” “아마 당신하고 비슷할 거야. 당신은 인간을 연구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인간을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31쪽)

- “하나 물어 보세. 자네가 내 집에 오고 1주일 간, 이야기를 들으며 쭉 궁금하게 여긴 게 있었는데, 좋은 역이란 뭔가?” “좋은 역?” (73쪽)

- “어떻게 너는 그렇게 언제나 태양처럼 웃을 수 있지?” “응?” “가르쳐 줘! 네 웃음의 비밀을!” (82∼83쪽)



  웃음은 심리학으로든 무슨무슨 학문이나 과학으로든 풀 수 없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삶은 심리학이나 교육학이나 이런저런 학문이나 과학으로나 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연구 대상’이 아니라, ‘목숨’이요, ‘사랑을 받아 꿈을 키우는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지으며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는 과학이나 학문으로 밑뿌리를 밝힐 수 없습니다. 왜 노래가 나오는지, 왜 어떤 노래가 어느 때에 흘러나오는지, 이런저런 것을 놓고 ‘사례 연구’는 할 수 있을 테지만, 막상 학문이나 과학을 하는 이는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밥을 짓거나 옷을 깁거나 집을 짓는 사람은 스스럼없이 언제나 노래를 불러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언제나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한테 밥을 차려 주는 어버이는 늘 기쁘게 노래를 부릅니다. 동무와 사이좋게 노는 아이들은 노상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 “아, 이를 어쩐다. 난 그런 골치 아픈 건 모르고, 그렇게 시들시들한 얼굴 하지 말고. 자! 이 당근이나 먹어 봐! 맛이 기차다고!” (84쪽)

- ‘나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가족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을까. 산타의 존재를 믿을 뻔했던 순간의 그 흥분 때문일까. 이유가 있는 답인지는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무렵부터, 내 연구 대상에 사람의 마음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이다.’ (124쪽)

- “자네가 극복해야 할 문제는 아마 하나일 걸세. 이제 그 문제 자체에 대해 의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만. 왜냐하면 그토록 자존심이 강한 자네가, 이렇게 자신을 드러냈으니까.” (184쪽)



  마음을 읽는 너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허물이나 울타리가 없습니다. 마음을 안 읽는 너와 나 사이에는 온갖 허물이나 울타리가 있습니다. 마음을 읽기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을 안 읽기에 어깨동무를 안 합니다. 마음을 읽으면서 서로 삶을 북돋아 줍니다. 마음을 안 읽으면서 그예 등을 돌립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요. 낮에는 해와 파란 빛깔을 보고, 밤에는 별과 까만 빛깔을 보아요. 눈을 들어 멀리 살펴요. 낮에는 들과 숲을 보고, 밤에는 별자리와 밤구름을 보아요.


  우리 둘레에서 흐르는 바람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귀여겨들어요. 우리 둘레에서 날아다니는 새와 나비와 잠자리는 무슨 이야기를 밝히는지 눈여겨보아요. 이러면서 삶을 생각해요. 나는 어떤 목숨으로 태어났을까요. 내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어떤 목숨으로 살아왔을까요. 이 실마리를 푸는 길에 슬기로운 사랑이 씨앗 한 톨로 자랍니다. 4347.11.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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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경의 가족관찰기
선현경 지음 / 뜨인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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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15



함께 놀아 한결 재미있는

― 선현경의 가족관찰기

 선현경 글·그림

 뜨인돌 펴냄, 2005.1.10.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놀기도 하고, 아이들이 달라붙어 놀기도 합니다. 새로운 놀이로 아이들을 이끌기도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새로운 놀이를 지어서 신나게 웃고 노래하기도 합니ㅃ다.


  놀이는 노는 사람이 새롭게 짓습니다. 누가 가르치기에 놀지 않습니다. 누가 알려주어서 놀지 않아요. 언제나 스스로 놉니다.


  나뭇가지를 써서 어떻게 놀 수 있다고 한 가지쯤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오로지 아이 몫입니다. 나뭇가지를 연필 삼아 흙바닥에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나뭇가지를 꼬챙이나 지팡이로 삼을 수 있으며, 나뭇가지를 다리로 여길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는 칼이 되기도 하지만, 하늘을 나는 날개가 될 수 있어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도 여행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어쩌면 한두 달 하다 보니 집에 가기 싫어졌고, 서너 달 다니다 보니 서울에 가기가 무서워졌고, 너덧 달 하다 보니 앞으로 먹고살 일이 걱정되어 길어졌는지도 모르겠다. (22쪽)

-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난 남자를 몰랐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그건 다 가짜다. 어째서 난 아빠나 집안에 널려 있는 남자를 보고 직감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내 남편만은 그들과 전혀 다를 거라 섣불리 단정지었을까? (35쪽)





  밥을 짓습니다. 함께 먹을 밥을 짓습니다. 날마다 똑같이 먹는 밥이지만, 날마다 다르게 짓습니다. 여느 밥으로 짓더라도 그릇에 다른 모양새로 풀 수 있고, 국그릇과 밥그릇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국을 듬뿍 담고, 어느 날은 밥을 듬뿍 담을 수 있어요.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볶을 수 있지만,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밥냄비에 넣어 함께 끓일 수 있습니다.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알맞게 삶을 수도 있고, 떡볶이를 하거나 비빔국수를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을 마십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바람을 마시고, 천천히 거닐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마시고, 두 다리로 달리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놀면서 마실 수 있는 바람이고, 뒷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마실 수 있는 바람입니다. 늘 마시는 바람이지만 늘 다르게 마실 수 있는 바람입니다.



- 남편에겐 나의 친정이 나에게 시댁과 같은 느낌이겠지. 발 쭉 뻗고 누워 쉬고 있어도 다리가 아픈 불편한 장소 …… 명절이나 제사 때 친정에 가면 남편은 늘 뭔가를 하고 있다. 제사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상을 닦기도 하며, 심지어 집안 어른들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평소엔 찾아볼 수 없는 참 바지런한 모습이다. (66쪽)

- 남자들이 모이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소재가 군대에 관한 것처럼, 우린 둘러앉아 아줌마들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82쪽)





  《선현경의 가족관찰기》(뜨인돌,2005)를 읽습니다. 혼자 놀던 선현경 님이 둘이 노는 사이가 되다가, 어느새 셋이 노는 삶으로 달라지는 흐름을 찬찬히 글과 그림으로 엮습니다.


  혼자 놀면 혼자 노는 대로 재미있습니다. 함께 놀면 함께 노는 대로 재미있습니다. 혼자 먹으려고 짓는 밥은 혼자 먹으려고 짓는 대로 맛있습니다. 함께 먹으려고 짓는 밥은 함께 먹으려고 짓는 대로 맛있어요.


  어떤 밥을 먹든 우리가 누리는 밥입니다. 어떤 놀이를 하든 우리가 누리는 놀이입니다. 어떤 집에서 어떤 살림을 꾸리는 우리 삶이요 우리 꿈입니다.



- 이제는 그만 나를 나로서 인정해 주길 바라는데 말이다. 나란 인간이 조금은 덜렁대고, 조금은 잘 잊어버리고, 조금은 정신없다는 사실을 제발 기억해 주기를. 눈 한번 꼭 감고 그저 아무 말 없이 감싸 주기를. 우선 나부터 눈 한번 꼭 감고 감싸 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누구부터 감싸 주지? (186쪽)






  만화책 《선현경의 가족관찰기》는 선현경 님이 바로 이녁한테 스스로 주는 선물과 같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선현경 님을 둘러싼 곁님과 아이를 따사로이 바라보는 눈길을 담아, 오늘 하루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를 스스로 선물하고 스스로 받는 책이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이 책은 하루하루 흐르면 흐를수록 누구보다 선현경 님한테 애틋할 테니까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이 책을 들여다보며 킥킥 웃을 수 있고, 선현경 님 곁님도 나중에 이 책을 되읽으며 하하 웃을 수 있지만, 누구보다 선현경 님 스스로 먼 뒷날 이 책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빙그레 웃음꽃을 피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과 우리가 그리는 모든 그림과 우리가 찍는 모든 사진과 우리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바로 우리가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심는 따사롭고 알찬 씨앗입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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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츄 Amanchu! 2
코즈에 아마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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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5

 


바라볼 수 있는 눈

― 아만츄 2

 아마노 코즈에 글·그림

 김유리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8.25.



  철마다 바닷물빛이 다릅니다. 못물빛도 철마다 다릅니다. 새파랗게 눈부실 적이 있고, 들과 숲처럼 푸르게 빛나는 때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바다나 못 옆을 스쳐서 지나간다면 어쩌다가 본 빛깔로 바다와 못을 읽을 수 있습니다.


  늘 지켜보는 사람은 늘 달라지는 빛깔을 바라봅니다. 살짝 스치는 사람은 살짝 스치는 빛깔을 바라봅니다. 저마다 두 눈으로 빛깔을 마주하고, 저마다 몸에 이야기를 새깁니다. 바라보는 만큼 알고, 바라보는 만큼 생각하며, 바라보는 만큼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늘 바라보더라도 생각으로 잇지 않으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늘 타고 다니는 버스라 하더라도 버스가 어떠한 얼거리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버스를 알 수 없습니다. 늘 바라보기 힘들고 살짝 바라보기조차 어려운 곳에 있지만, 꾸준히 생각하면서 꿈을 키우면 알 수 있습니다. 온마음으로 생각을 빚기 때문입니다.



-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해변길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날아갈 듯한 기분. 암스트롱 선장이 발을 내디딘 고요의 바다도,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을까?’ (5쪽)

- “여태까지 난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내가 먼저 움직일 수가 없었어. 늘 걱정만 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행동에 옮기지 못했지. 그래서 스스로도 신기해. 이번엔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12쪽)



  아마노 코즈에 님이 빚은 만화책 《아만츄》(학산문솨사,2010)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몸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닙니다. 하고 싶지 않으나 자꾸 몸이 끌린다면, 스스로 하려는 일입니다.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싶으면 바다로 가야 하고 헤엄을 쳐야 합니다.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해야 하는 종살이라면 이러한 종살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다로 가지 않거나 바다에 가서도 헤엄을 치지 않는다면, 스스로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쳇바퀴처럼 되풀이하는 종살이가 괴롭다면 스스로 이러한 종살이를 떨쳐야 합니다. 스스로 떨치지 않고서 푸념만 한다면, 새로운 푸념이 늘기만 할 뿐, 삶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 “하면 돼. 반드시 될 거야.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 (42∼43쪽)

- ‘푸른 빛에 살포시 감싸안긴 채, 내 몸이 공중을 떠다닌다.’ (48쪽)

- “왜 저렇게 즐거워 보일까? 바닷속 풍경이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이 시기는 말이다,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이란다. 산란 같은 것들로 바다에 영양이 그득하지. 이 시기에밖에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 바다에 가득한 식물성 플랑크톤을 작은 물고기들이 먹으러 오고, 그 작은 물고기들을 큰 물고기들이 먹지.” (74∼75쪽)



  시골 읍내에서도 밤에는 별을 못 봅니다. 시골 읍내조차 밤에는 전깃불이 밝기 때문입니다. 시골 읍내는 아주 조그맣지만 여느 도시와 똑같은 얼거리입니다. 시골 읍내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은 하루 내내 가게에 들어앉아야 하고, 가게 밖으로 나오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골 학교도 도시 학교와 그리 다르지 않아요. 학생 숫자가 적고 학교 건물이 작더라도, 여느 도시와 똑같은 교과서를 쓰고, 여느 도시처럼 입시공부를 시킵니다. 시골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새로운 책을 쓸 수 없고, 시골살이를 누리는 기쁨을 학교 안팎에서 가르치거나 배우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시골에서 무엇을 바라볼까요. 우리는 도시에서 무엇을 바라보나요. 이웃과 동무를 바라볼까요. 찻길이나 들을 바라보나요. 아파트나 건물을 바라볼까요. 참새와 까치를 바라보나요.



- ‘이렇게 하면 핸드폰을 볼 때마다 언제라도 소중한 것들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그 순간의 감각. 언제 어디서라도 떠올릴 수 있는,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보물들.’ (144쪽)



  가을에 비가 옵니다. 가을비입니다. 길이 막히게 하는 비가 아닙니다. 봄에 비가 옵니다. 봄비입니다. 가을비는 겨울을 부르고, 봄비는 새싹을 부릅니다. 겨울비는 추위를 부르고, 여름비는 풀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북돋웁니다. 철마다 빗물이 다릅니다. 달마다 빗소리가 다릅니다. 언제나 새로운 비가 내리고, 늘 새롭게 풀이 돋고 눈이 트며 잎이 납니다.


  만화책 《아만츄》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직 제 길을 걷지 못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 길을 걷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누릴 수 있는지 잘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오늘 하루를 즐겁게 누리는 길을 스스로 찾고 싶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고, 어디에서 살아야 할는지 모르며, 사랑이나 삶이나 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하나씩 배울 수 있으며, 아직 모르기 때문에 차근차근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4347.11.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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