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권리가 있어! 뚝딱뚝딱 인권 짓기 1
인권교육센터 ‘들’ 지음, 윤정주 그림 / 책읽는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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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내가 나한테 선물하는 이야기

― 뚝딱뚝딱 인권짓기

 인권운동사랑방 글

 윤정주 그림

 야간비행 펴냄, 2005.4.13

 (‘책읽는곰’에서 2011∼2012년에 두 권으로 다시 펴냈다)



  2005년에 《뚝딱뚝딱 인권짓기》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오고, 2011∼2012년에 《나도 권리가 있어!》와 《우리가 바꿀 수 있어!》로 나누어 다시 나온 이야기책은 초등학교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서 이 나라에서 가장 푸대접을 받거나 내동댕이쳐지기도 하거나 짓밟히기도 하는 ‘인권’을 다룹니다. 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고, 내 생각을 밝히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다루고, 깨끗하고 즐거운 곳에서 살고 싶은 꿈을 이야기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따로 없이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 어깨동무하는 삶을 이야기하며, 그늘진 곳이 없기를 바라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전쟁 아닌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들려주며, 위아래가 따로 없기를 바라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너와 내가 걷고 싶은 길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겨야 내가 산다’는 생각이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들어요.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운동장이 없는 학교에서부터, 교실은 공부만을 위한 공간일 뿐, 아이들이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  (104∼105쪽)



  오늘날 한국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엄청나게 시달립니다. 집에서도 시달립니다. 동무끼리 어울려서 놀 만한 마당이나 빈터 하나 없습니다. 빈터나 마당이나 놀이터가 있어도 어울릴 동무가 없습니다. 학교와 집과 학원을 오가며 뼛골이 빠지게 공부만 해야 하고, 어쩌다 틈이 나서 놀고 싶어도 다른 동무를 못 만납니다. 내가 빈틈이 나도 다른 동무는 집·학교·학원이라는 굴레에 갇히니 그저 혼자만 남기 일쑤입니다. 논다고 하더라도 몸을 신나게 움직이면서 밝은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너른 터에서 놀지 못합니다. 갈 곳은 책상맡이요, 할 것은 컴퓨터놀이입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한테 공부는 무엇이고 학교는 무엇일까요. 놀 수 없는 아이들한테 꿈은 무엇이고 사회는 무엇일까요. 놀지 못하는 아이는 무엇을 배울까요. 놀이와 사귀지 못하는 아이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른이 되면 일만 해야 할까요. 아이나 어른이 즐길 만한 놀이는 무엇일까요.



..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윽박지르고 야단치는 어른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고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어른이에요. 공포심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아이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  (187쪽)



  시골이 사라지면서 도시가 커집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거의 모두 도시에서 나고 자랍니다. 어쩌다가 시골 어버이를 만나 태어났어도 시골아이는 이내 도시로 떠납니다. 시골에서 자라더라도 시골스러운 기운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시골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시골일을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아이들이 시골지기가 되도록 이끌거나 북돋우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을 모르지만, 도시에서도 도시내기를 시골아이로 가르치거나 키울 뜻이 없습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도감을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자연’이나 ‘동식물’을 지식으로 가르치기는 하더라도, 아이와 어른 모두 손으로 흙을 만지거나 발로 흙을 디디면서 살도록 이끌지 않아요.


  고등학교는 대학입시와 취업으로 바쁩니다. 중학교는 대학입시와 취업을 잘 하도록 몰아붙입니다. 초등학교는 대학입시와 취업만 헤아리도록 다그칩니다. 어디에서나 참다운 배움이나 가르침은 없고, 어느 곳에서도 사랑이나 꿈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도 ‘인권’은 없습니다.



.. “… 이게 뭐야. 난 정말 동무들한테 필요한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고……, 동무들은 모두 도덕책에만 나오는 얘기만 하고…….” “동무들을 위해서 뽑은 대표라고 하면서 왜 모두 선생님들을 위한 일만 하는 걸까?” ..  (143∼145쪽)



  아이가 어떤 일을 잘못할 적에 매를 드는 어른은 ‘체벌’이나 ‘사랑의 매’라는 이름을 쓰지만, 낱낱이 들여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폭력’이라고 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어른은 윽박지르고 주먹을 휘두릅니다. 어른은 거친 말을 일삼고 무섭게 꾸짖습니다. 


  어른도 어떤 일을 잘못할 때가 있는데, 어른은 ‘체벌’도 ‘사랑의 매’도 받지 않습니다. 잘못한 어른을 아이가 윽박지르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일은 없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는 어른한테서 ‘폭력’을 물려받습니다. 어른이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몸짓은 오로지 폭력이기에, ‘어른으로 자라는 아이’는 동무나 이웃한테 쉽게 폭력을 저지릅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사귀는 삶이 아니라, 폭력으로 서로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을 하고 맙니다.


  입시지옥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입시지옥을 없앤다면, 온갖 차별과 계급이 사라진다면, 우리 스스로 차별과 계급을 지울 수 있다면, 아이와 어른 모두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삶을 깊이 헤아리거나 배우는 대학교가 된다면, 취업이 잘되도록 들어가려는 대학교가 아니라 삶을 아름다이 가꾸는 슬기를 갈고닦는 대학교가 된다면, 이때에 비로소 아이는 마음껏 놀 수 있고 어른은 기쁘게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즐겁게 놀고 기쁘게 일하는 아이와 어른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인권이 튼튼히 뿌리를 내리리라 생각합니다.



.. 아이들에게 창피를 주는 행동이나 때리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세계 많은 나라들이 약속하고 있어요. 또한 아동복지법에서도 아이들을 때리거나 해를 끼친 어른에 대해서 법적으로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를 소중하게 대해 주는 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에요. 노래를 잘하는 것도 ‘나’고, 운동을 못하는 것도 ‘나’예요. 내가 나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할 때 다른 사람도 존중해 줄 수 있는 거예요 ..  (197쪽)



  만화책 《뚝딱뚝딱 인권짓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책이름 그대로 ‘인권을 짓자’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른들이 아이한테 지켜 주지 않는 인권을 어린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짓자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른들이 안 지켜 주는 인권을 어린이가 지킬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가꾸거나 돌보지 않는 인권을 어린이 손으로 가꾸거나 돌볼 수 있을까요?


  네, 어른은 못 하거나 안 하더라도 아이는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은 눈길을 안 두더라도 어린이가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힘차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어린이는 곧 어른이 됩니다. 어릴 적부터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자라야, 어른이 될 적에 삶을 제대로 가꿉니다. 어린 나날부터 사랑을 따스히 품어야, 어른이 되고 나서 사랑을 따스히 나눕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입시공부만 한다면, 어른이 되고 나서 아무것도 못 바꿉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대학입시에 얽매인 나날이라면, 어른이 되고 나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채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이러한 법들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정말 그림 한 점이, 노래 한 곡이 나라를 위험하고 만들까요? 하지만 정말 위험한 건 사람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거예요.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다양한 목소리들은 당연히 사라지겠죠? 그리고 국가와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소리내어 얘기하지도 못할 거예요 ..  (44쪽)



  오늘 이곳에 인권이 없기 때문에 인권을 새로 짓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어른들은 인권을 지을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린이가 스스로 인권을 새로 짓습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어른한테서 인권을 생각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찾기 어려우니까, 바로 어린이가 기운차게 일어나서 인권을 새로 짓습니다.


  내 목소리는 내가 냅니다. 우리 목소리는 우리가 냅니다. 내 권리는 내가 지킵니다. 우리 권리는 우리가 지킵니다. 내가 나를 지키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돕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을 스스로 가꾸면서 우리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학교에 매이지 않기를 바라요. 꼭 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요. 학교에 다니더라도 교과서 지식에만 파묻히지 말아요. 교과서에 없는 이웃과 동무를 생각해요. 놀이를 생각하고 놀이를 함께 해요. 놀이를 물려줄 언니 오빠가 없으면 내가 스스로 놀이를 지어요. 맨손으로 놀고, 공으로 놀며, 연필로 놀아요. 뛰고 달리면서 놀고, 뒹굴거나 구르면서 놀아요. 놀면서 노래하고 놀면서 웃어요. 놀면서 손을 잡고 놀면서 어깨를 겯어요.



.. 우리는 빠르고, 크고, 높은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제는 낮게, 그리고 느리게, 작은 걸음을 장애인 동무들과 함께 옮겨 봐요. 아마 우리가 빠르게 지나가서 못 들었던 바람의 소리를, 높이 있어서 지나쳤던 작은 꽃들의 움직임을 보게 될 거예요 ..  (90쪽)



  참다운 학교라 한다면 아이한테 지식을 차근차근 알려주면서 슬기를 기쁘게 익히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느낍니다. 아이가 차근차근 배울 지식이란, 모든 아이가 똑같이 머릿속에 똑같은 크기와 줄거리로 집어넣어야 하는 교과서 시험문제가 아닙니다. 저마다 제 삶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이끌면서 제 삶을 스스로 가꾸도록 이끄는 이야기일 때에 참다운 지식입니다.


  학교교육은 달라져야 합니다. 집과 마을도 달라져야 합니다. 여느 어른과 어버이도 달라져야 합니다. 학교나 학원에 아이를 맡기는 삶이 아니라, 아이와 어른이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그리며 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삶을 함께 짓고 놀이와 일을 함께 나누며 꿈으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숲을 가꾸어야 합니다.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흙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 불행하게도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거나 의견이 무시당한 적이 많이 있어요. 이럴 땐 어떤 기분이 드나요? 이런 말 외에도 자기 의견이 무시당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의견이 무시당하는 건 기분 나쁜 일이에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자신과 관련된 일이에요. 어른들이 우리의 의견을 들어 보지도 않고 결정을 한다는 거예요 ..  (37쪽)



  내가 나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내가 나한테 꿈을 선물합니다. 내가 나한테 책을 선물합니다. 즐겁게 노는 아이는 즐거움과 놀이를 스스로 선물하는 셈입니다. 기쁘게 일하는 어른은 기쁨과 일을 스스로 선물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된 권리란 무엇이겠습니까. 나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거룩한 목숨인지 깨달을 때에 내 둘레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도 아름다우면서 거룩한 목숨인지 깨닫습니다. 내가 나를 아낄 적에 내 둘레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을 아낍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날마다 나한테 웃음과 노래를 선물한다면, 나는 내 둘레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한테 웃음과 노래를 선물합니다.


  인권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삶을 짓기를 바랍니다. 학교를 참답게 새로 짓고, 마을을 슬기롭게 새로 지으며,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새로 짓기를 바랍니다. 4338.5.4.물/4347.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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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12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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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29



농업은 숲을 망가뜨린다

― 은수저 12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1.25.



  시골에서 흙을 가꾸는 사람은 흙을 살립니다. 왜냐하면 ‘가꾸기’를 하니까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 농업을 하는 사람은 흙을 죽입니다. 왜냐하면 ‘농업’을 하니까요.


  흙을 가꾸는 사람은 손수 삶을 지어서 일구는 사람입니다. 손수 삶을 지어서 일구니, 흙이 언제나 기름지게 살도록 돌봅니다. 농업을 하는 사람은 땅에서 거둔 곡식과 열매를 도시로 내다 파는 사람입니다. 농업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이 거두어서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기에 흙을 괴롭힙니다. 비닐을 묻고 농약을 뿌리며 비료를 퍼붓지요.


  도시라는 곳이 나타나기 앞서 누구나 손수 흙을 가꾸었습니다. 도시라는 곳이 나타나면서 한쪽에서는 흙과 등지는 삶이 되고, 한쪽에서는 끝없이 흙을 파헤쳐서 곡식과 열매를 더 많이 끌어내는 삶이 됩니다.




- “자본도 없이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까 일단은 아버지한테서 돈을 빌려서.” “땅만 해도 일반인이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고.” “아니,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어. 미카게네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거지.” (7쪽)

- “부모님 얘기 같은 건 신경쓰지 마! 나도 비슷한 처지였지만 일이 힘든 건 익숙해지면 되고! 한 번 쓰러져 보면 자기 한계도 알 수 있고! 게다가, 처음부터 전문가가 어딨어?” (16쪽)



  흙을 가꿀 적에는 풀벌레와 개구리와 지렁이가 흙에 잔뜩 있습니다. 흙에서 곡식과 열매를 잔뜩 뽑아내려고 하면 풀벌레도 개구리도 지렁이도 살지 못합니다. 흙을 가꾸는 사람은 흙에 온갖 숨결이 깃들도록 합니다. 흙에서 곡식과 열매를 잔뜩 뽑아내려는 농업일 적에는 다른 숨결이 흙에 깃드는 일을 바라지 않습니다. 흙이 싱그럽게 살아날 적에는 멧새가 날마다 찾아와서 노래를 합니다. 흙이 죽은 곳에는 새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런 곳에는 기계 소리만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흙’을 생각하면서 ‘가꾸’려는 길은 새마을운동 때문에 모질게 짓밟혔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시골살이를 갈기갈기 찢으면서 시골내기가 도시로 떠나서 공장 일꾼이 되도록 몰아세웠습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야 한 시골내기는 공장에서 값싼 부속품 대접을 받으면서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에서 어른과 아이가 모두 어우러져서 들일을 하고 숲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가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시골에 늙은 사람만 남고 농기계만 춤추면서 어떤 노래도 이야기도 깃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새마을운동은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농기계로 몰려들면서 논밭에 남새 말고는 어떠한 풀도 돋지 못하도록 다그칩니다. 모든 풀은 나물이나면서 약풀이지만, 모든 풀을 잡풀로 여겨 짓밟거나 태우거나 뽑아야 한다고 여기도록 길들입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풀을 잘 알고 다룰 줄 알았으나, 이제는 몇몇 ‘전문가’가 다른 돈벌이로 삼으면서 약풀을 잔뜩 기릅니다. 약풀이 약풀일 수 있던 까닭은 흙이 싱그러이 숨쉬면서 온갖 풀이 얼크러지기 때문이지만, 한 가지 남새나 풀만 잔뜩 심으니 이제는 약풀도 약풀다울 수 없습니다.




- “골치라니! 난 쉽게 맛난 돼지고기를 먹고 싶을 뿐인데!” “맛있는 걸 먹고 싶으면 그만한 수고는 해야죠!” “그냥 확 놓아 먹이면 어때?” “방목돼지! 그거 좋은데요!” (35쪽)

- “이상한 문장 없나?” “봐도 돼?” “…….” “같은 말이 지나치게 반복됨.” “글자 수를 조금이라도 늘려 보려고.” “우유에 물을 타서 출하하면?” “죽는 거죠. 네. 다시 쓸게요.” (51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이 빚은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4) 열두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은수저》에 나오는 안경잡이는 시골일이나 들일이나 짐승치기가 무엇인지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하나도 생각하지 않던 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짧다면 짧을 두세 해 사이에 온몸으로 날마다 흙을 마주하고 짐승을 돌보면서 생각과 마음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손수 흙을 가꾸면서 눈을 뜹니다. 손수 풀을 만지면서 생각을 틔웁니다. 손수 짐승을 보살피면서 마음을 함께 보살핍니다.


  아마 시골로 와서 학교를 다니기 앞서까지는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밥맛이 무엇인지 헤아린 적이 없을 테지요. 이제껏 남이 차려 준 밥만 받으면서 그냥 끼니를 때울 뿐이었을 테지요. 때로는 돈을 내고 가게에서 주전부리를 사먹으면서 노닥거릴 뿐이었을 테지요.


  가게에서 먹을거리를 돈을 주고 사서 집에서 끓이고 볶고 삶고 지져서 먹어도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을거리를 모두 손수 길러서 다시금 손수 끓이고 볶고 삶고 지져서 먹으면 어떤 맛을 낼까요. 내 몸을 살리는 가장 즐거운 맛은 무엇이고, 내 마음을 가꾸는 가장 빛나는 맛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 “이걸 주마. 해체해서 마음대로 써라.” “어. 이, 이걸 어떻게 부숴요? 소중한 마구간이잖아요.” “하지만 이제 말도 없고, 그냥 두면 어쩌겠어.” (93쪽)

- “돼지는 땅을 파길 좋아하잖아? 풀뿌리를 다 헤집어 버리기 때문에 넓은 땅을 몇 구역으로 나눠서 순환식으로 방목해야 해.” “정말이네. 잔디가 모두 들떠 있어.” “이 녀석들을 출하하면 이 구역은 한동안 휴식을 시켜 줘야 해. 다음엔 저쪽 언덕에서 방목하겠지.” “이렇게 땅이 넓어도 자연과 공생하긴 어렵군요.” “농업이 원래 그래. 자연에 없는 고밀도로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투입하는 사업이잖아. 본질이 자연 파괴지.” (156∼157쪽)



  농업은 숲을 망가뜨립니다. ‘산업’이기 때문에 숲을 망가뜨립니다. 사람한테만 도움이 된다는 일을 하려니, 숲 얼거리나 흐름을 일그러뜨릴밖에 없습니다. 요즈음처럼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살고 도시에서 안 벗어나는 때에는 사람들 스스로 못 깨달을 테지만, 싱그럽게 살아서 숨쉬는 흙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 폴폴 김이 납니다. 김이 나는 흙에서 풍기는 내음은 무척 구수합니다. 싱그럽게 살아서 숨쉬는 흙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흙은 보송보송합니다. 싱그러운 흙빛은 까무잡잡한 살빛과 같습니다.


  풀은 빈틈이 있는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뚫고도 돋지만, 딱딱한 땅에서는 돋기 어렵습니다. 딱딱해진 땅에서는 이 땅을 부드럽게 풀어 줄 풀이 먼저 퍼집니다. 이를테면 비름이나 망초가 딱딱한 땅에서 우거집니다. 이러한 풀이 한두 해나 여러 해 나고 죽기를 되풀이하면서 딱딱한 땅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땅에는 차츰 다른 씨앗이 깃들어 더욱 보드랍게 흙기운을 바꾸어 줍니다. 보드라우면서 기름진 흙이 될 때에 비로소 사람이 먹을 만한 남새를 심어서 거둡니다.




- “난 있지, 어릴 때 저 산을 넘어가면 큰 도시가 있을 줄 알았다? 휘황찬란하고 놀이공원도 있고! 그래서 모아 놓은 용돈을 꼭 쥐고 혼자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적이 있어. 당연히 산 너머엔 산밖에 없어서 실망만 하고 집에 돌아와선 엄마한테 호되게 혼났지. 그래서 이번엔 이쪽 산에 올라갔다가, 또 산 너머 산이라서 실망하고, 그 다음엔 또 저쪽 산에.” (122∼123쪽)



  땅바닥이 딱딱하면 자동차가 다니기 좋습니다. 땅바닥이 딱딱한 곳에 건물을 세웁니다. 땅바닥이 딱딱한 곳에서는 풀이나 나무가 자라지 못합니다. 땅바닥이 딱딱한 곳이 늘면 늘수록 도시가 커진다는 뜻이요, 풀과 나무는 하나조차 없이 잿빛이 퍼진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잿빛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살아서 숨쉬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도 마실거리도 없지만, 푸른 바람도 없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죽는 목숨인 사람일 뿐 아니라, 아주 살짝이라도 바람을 안 마시면 그냥 죽는 사람입니다. 흙이 살아서 온갖 풀과 나무가 흐드러져야 살 수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온갖 풀과 나무가 푸른 바람을 내뿜어야 바야흐로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입니다.


  돈이 있으면 다른 나라에서 곡식이나 열매를 사들일 만하겠지요. 그러나 푸른 바람은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지 못합니다. 국가경쟁력을 내세워 무역과 경제개발을 하면 나라살림이 나아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 살림살이는 나아질 수 없습니다. 한입으로는 ‘국산’이 몸에 좋다고 하면서, 다른 한입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이나 쌀개방 따위만 하는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도 몸이 튼튼할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유기농 곡식이나 열매만 먹으면 될까요? 맑은 물이 아니라 수돗물을 마시고, 맑은 바람이 아닌 매캐한 바람을 마시는데, 밥만 유기농이면 될까요? 만화책 《은수저》는 이러한 실타래를 슬기롭게 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맛난 밥 한 그릇’ 얻는 길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삶을 스스로 지으려는 푸름이’가 마음으로 품는 꿈을 즐겁게 보여줍니다. 도시에서는 찾지 못한 빛과 삶과 꿈을 시골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차근차근 가꾸는 어여쁜 땀방울을 알뜰히 보여줍니다. 4347.1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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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고양이 쿠로 5
스기사쿠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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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28



까망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 묘한 고양이 쿠로 5

 스기사쿠 글·그림

 송원경 옮김

 시공사 펴냄, 2003.12.26.



  스기사쿠 님이 빚은 만화책 《묘한 고양이 쿠로》(시공사)는 ‘까만 고양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일본사람은 까만 빛깔을 ‘쿠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까만 빛깔 고양이한테 ‘까망이’라는 이름을 붙인 셈입니다. 한국사람은 예부터 까만 고양이한테는 ‘까망이’라 했습니다. 까만 개한테는 ‘검둥개’나 ‘검둥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 코지로의 아기들은 수가 줄어 있었다. 사방에는 까마귀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둥지 같은 것들이 있었고, 까마귀에게도 아이를 기르는 계절이 와 있었다. (16쪽)





  까만 고양이는 둘레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까망이는 사람을 어떻게 마주할까요. 까망이는 이웃 고양이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까망이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요. 까망이는 이 땅에서 어떤 즐거움과 보람을 누릴까요.


  《묘한 고양이 쿠로》 다섯째 권을 읽으면, 까망이 핏줄을 물려받은 어린 고양이가 나옵니다. 까망이는 제 핏줄을 물려받았구나 싶은 새끼한테 날마다 찾아가서 쓰담쓰담을 하고 싶은데, 어미 고양이는 수컷 손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혼자서 용을 쓰면서 새끼를 건사하면서 보살피려 하는데, 고양이와 사람은 서로 마음이 달라요. 고양이로서는 제 몸에 오랫동안 품고서 힘들게 낳아 알뜰히 보살피는 사랑둥이일 테지만, 사람한테는 ‘쓰레기봉지를 찢고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까망이와 동무 고양이가 여러모로 애쓰지만, 들고양이 새끼는 ‘고양이를 거추장스레 여기는 사람’이 잡아들여서 어디론가 보냅니다. 까망이와 동무 고양이는 저희 핏줄을 물려받은 새끼를 찾아서 자동차 냄새를 좇아 시내 한복판까지 가지만 그저 길을 잃을 뿐 이도 저도 못 합니다.


  들고양이는 그저 끝없이 새끼를 늘리기만 할까요? 들고양이는 십만 백만 천만 이렇게 숫자가 늘어날 수 있을까요? 들고양이도 사람처럼 끝없이 숫자를 불리면서 지구별을 어지럽힐까요?






- 내가 다이스케에게 쿠리게 사건을 보고하고 현장으로 가려는데, 수염과 누나가 따라왔다. 쿠리기에게 물린 녀석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고, 마다라는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39쪽)



  까망이와 동무 고양이는 끝내 저희 새끼를 못 찾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새끼가 깃들었구나 싶은 곳을 찾습니다. 새끼 고양이 모습은 없지만 새끼 고양이 넋이 서린 곳에 닿습니다.


  고양이와 사람은 서로 ‘고양이’와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다릅니다. 고양이와 사람은 옷을 한 꺼풀 벗으면 저마다 다른 넋이기도 할 텐데, 몸에 붙은 숨으로 보면 ‘같은 목숨’이고, 몸을 벗은 모습으로 보면 ‘같은 숨결’입니다. 이리하여, 까망이를 비롯한 여러 고양이는 따순 손길을 뻗어 아끼는 이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고양이라면 모두 못마땅해 하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고양이든 누구이든 모두 아끼면서 사랑합니다.





- 몇 대 맞은 꼬맹이는 그래도 칭코를 찾고 있었는데, 잘 보니 얼굴에 상처가 없는 것이 칭코는 적당히 한 것임에 틀림없다. (102쪽)



  겨울바람이 붑니다. 겨울바람은 한뎃잠이한테도 춥고 들고양이한테도 춥습니다.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다가도 한낮이 되면 겨울볕이 포근합니다. 겨울볕은 한뎃잠이한테도 포근하고 들고양이한테도 포근합니다.


  까망이는 언제나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배불리 먹고, 느긋하게 쉬며, 재미나게 놀기, 이렇게 한 가지 삶을 생각합니다.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살며, 기쁘게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을 생각해요.


  사람은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즐거울까요. 사람은 어떤 하루를 보낼 때에 기쁠까요. 사람은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놀이로 어우러질 때에 아름다울까요. 4347.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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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1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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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26



여기에 있는 너와 나

― 은여우 1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5.23.



  햇살이 비춥니다. 이 겨울에 포근한 햇살이 비춥니다. 햇볕이 내리쬡니다. 여름날 들판을 후끈후끈 달구면서 곡식과 열매한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햇볕이 내리쬡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마루에서 겨울해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마당에서 여름해를 누립니다. 나는 아이들과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우면서 겨울해를 맞아들입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면서 여름해에 까맣게 그을립니다.


  한겨울에 춥다고 방문을 꼭꼭 닫아걸면 해가 뜨는지 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름에 덥다며 창문을 꾹꾹 닫아건 뒤 에어컨을 돌린다면 해가 하늘에 걸렸는지 땅에 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해를 먹으면서 삽니다. 한국사람이 즐기는 밥이란, 햇볕을 여름 내내 듬뿍 받아들인 벼풀이 맺은 풀열매입니다. 요즈음은 햇볕 한 줌 못 쬔 닭이나 돼지나 소를 고기로 먹는 사람이 많지만, 예부터 우리가 먹는 모든 고기는 햇볕을 쬐면서 살던 짐승을 잡아서 얻었습니다.





-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내가 이 신사의 정당한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처음 보인 것은 엄마의 장례식 날이었다.’ (14쪽)

-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는 게 나쁜 일이야? 잘난 척만 하고! 신의 사자라지만 결국 긴타로도 그냥 여우잖아!” (20쪽)

- “아빠는 마음속으로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긴타로 님은 계시는 거야. 그리고 신을 대신해 너와 모두를 지켜 주고 계시지. 하지만 없다고 믿으면 정말로 없어져 버려. 신의 사자라 해도 신과 마찬가지니까.” (31쪽)



  겨울에도 마당에서 맨발로 놀고 싶은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놀면서 “아, 덥다!” “더워, 더워!” 하고 외칩니다. 더운 나머지 옷을 한 꺼풀 벗고, 또 덥기 때문에 옷을 두 꺼풀 벗습니다. 볼은 빨갛고 땀이 흐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해를 보면서 자랍니다. 언제나 해님을 동무로 삼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언제나 해를 마주합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해님을 먹고 해님을 바라보며 해님을 노래하면서 자랍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햇살로 자라고 햇볕으로 크며 햇발처럼 환하게 웃음짓습니다.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아이들은 사랑을 나누고 꿈을 짓는 두레로 나아갑니다. 해를 먹고 해를 마시며 해를 즐기는 아이들은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놀이를 새롭게 짓습니다. 해처럼 따스하게 동무를 사귑니다. 해처럼 골고루 흙을 가꿉니다. 해처럼 아름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 “평소부터 저러고 다니니까 그렇게 거만할 수밖에. 우리가 장난을 좀 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나무랄 일은 아니잖아?” “그러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아이고 나는 됐네요. 그러고 싶으면 너는 그러든가. 쟤가 정중히 사과한다면 또 몰라도.” (97쪽)

- “어머니께 전해요. 나 오늘 집에 안 간다고.” “예?” “하하, 저 얼굴 봤냐?”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어.” (113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그린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에 있는 절집(신사)을 둘러싼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릴 적부터 ‘여우님’을 볼 수 있는 아이는 다른 여느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기운을 느끼고, 다른 여느 아이들이 헤아리지 않는 길을 헤아립니다.




- “신사는 정말 신기해. 여기 있기만 해도 많은 사람들과 이어지거든. 오늘도 신기한 세 사람이 여기 있잖아. 나는 이 공간을 없애고 싶지 않아.” (120쪽)

- “지금 우리는 같은 나이에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지만, 하지만 수백 수천 년 동안 남아 있는 몇몇 유물들은 지금까지 쭉 우리가 모르는 시간을 계속 봐 오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신기하지 않아?” (132∼133쪽)



  ‘은여우’는 오래된 절집을 지키는 ‘님’입니다. 일본 절집에는 절집을 지키는 님이 여럿 있고, 은여우는 여러 님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만화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오래된 절집이 있습니다. 커다란 절도 있지만 마을에 조그마한 서낭집이 있습니다. 서낭집은 마을을 지키는 님이 깃드는 곳입니다. ‘우상’이나 ‘잡신’이 깃드는 데가 아니라 ‘마을 지킴이’가 고이 쉬는 곳이 서낭집입니다.


  일본 만화 《은여우》에 나오는 여우님이 깃드는 곳은 절집입니다. 일본 절집은 처음부터 커다랗게 짓지 않았다 하고, 마을마다 조그맣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지내며 마을을 돌보는 님은 예부터 마을사람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한겨레도 예부터 님을 다 알아보았습니다. 이를테면, 도깨비라고 하는 님을 예부터 누구나 보았어요. 도깨비를 보고 도깨비불을 봅니다. 무엇보다 ‘님’이라는 말을 써서 사람과는 다른 테두리에서 다른 곳에 있는 이웃을 헤아렸습니다.





- “옛날에는 경계 같은 게 없어서 넓은 세상 어디에나 신이 있었지. 뭐, 하지만 지금은 도리이 안이 집이야.” “어쩐지, 신이 계시는 곳이 적어졌구나.” (142쪽)

- “이런, 마코토. 신이 계시는 곳은 작아지지 않았어.” “뭐? 어디.” “모두의 여기(가슴) …… 하지만 정말이야. 신은 신사가 아니어도 어디에나 계신단다. 신사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고, 도리이라는 표시가 있으니까 신이 여기 계시는구나 하는 거지.” (148∼149쪽)

- “옛날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는 신과 인간 모두 즐겁게 공존했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신을 모시는 자들만 볼 수 있게 됐고, 결국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되었어.” (185쪽)



  내 앞에 나무가 한 그루 있어도 이 나무를 못 볼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자동차가 있어도 이 자동차를 못 볼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책이 있어도 이 책을 못 볼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수많은 사람이 스치고 지나가도 아무도 못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볼까요.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내가 마음을 기울이면서 알아차리는 님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를 둘러싼 도깨비와 도깨비불을 까맣게 잊거나 못 알아보면서, 우리는 우리 이웃과 동무가 누구인지까지 모두 잊거나 못 알아보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지 않나 궁금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숱한 님을 알아보면서 이웃으로 지내던 지난날에는 우리 이웃과 동무를 ‘집에 있는 밥숟가락’까지 모두 헤아리면서 알뜰살뜰 서로 아끼면서 지냈으리라 느낍니다.


  인터넷이 있어 온갖 지식과 정보는 아주 빠르게 흐릅니다. 신문과 방송과 책이 넘쳐 갖은 지식과 정보는 엄청나게 넘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는 꿈과 사랑이 자라지 못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는 꿈과 사랑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학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여기에 있는 너와 나는 누구일까요? 4347.1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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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2 토성 맨션 2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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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8



도시도 숲이 되어야

― 토성 맨션 2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09.6.15.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군내버스를 기다립니다. 네 식구가 함께 타고 돌아갈 버스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두 아이는 한 시간 동안 쉬잖고 버스역 안팎을 달리면서 놉니다. 참으로 씩씩하고 야무지고 재미난 아이들이네 하고 느끼면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한 시간이야 가볍게 지나갑니다.


  그런데 나는 읍내 버스역조차 어지럽고 고단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도시에 있는 아주 큰 버스역이 아닌데, 서울이나 부산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리지 않는데, 서울이나 부산처럼 번쩍거리는 광고판이나 가게가 있지도 않은데, 여러모로 힘듭니다.


  버스에 타서 창문을 살짝 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나는 도시내음을 참으로 못 견뎌 하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도시내음이 흐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면 되는데, 자꾸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지치는구나 싶습니다. 도시에서 살 적에는 거의 제넋을 차리기 힘드니 책만 읽고 책방만 다니고 자전거만 타면서 살았구나 싶습니다.





- “간만에 휴일이잖아. 여기서 뒹굴뒹굴 하지 말고 놀다 와.” “어디서 놀아야 될지 모르겠어요.” (40쪽)

- ‘바람이 분다. 이런 넓은 장소에 있으니 마치 창문 닦을 때 같아.’ (55쪽)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내리자마자 개운합니다. 숨을 쉴 만합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만 듣고, 바람 따라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만 듣습니다. 우리 집에서 비바람을 그으며 자는 고양이 너덧 마리가 마당을 가로지릅니다. 자전거 밑에 옹크리는 녀석이 있고, 종이상자에 들어가서 옹크리는 녀석이 있습니다. 어린 고양이는 더 어린 새끼였을 적에는 세 마리가 작은 종이상자에 함께 들어가서 자더니, 이제 제법 컸다고 세 마리가 다 따로따로 잡니다.


  마당에 서서 밤바람을 쐬고, 밤별을 보며, 밤이 되어 잠든 나무를 바라봅니다. 일찌감치 시골로 와서 살지는 못했지만, 곁님이 재촉하고 이끌어서 시골로 와서 지낸 지 여러 해 됩니다. 앞으로도 시골에서만 살겠구나 싶고, 오래오래 시골살이를 누리면서 숨결을 잇겠다고 느낍니다. 시골만 시골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시골내음이 흐를 수 있는 꿈을 꾸리라 느낍니다. 시골이 시골답도록 나무가 늘고 숲이 늘기를 바라는 한편, 도시가 사람다운 내음이 흐르도록 곳곳에 조그마한 숲이 늘고 나무도 훨씬 늘기를 바라리라 느낍니다.


  가끔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갈 때마다 생각해요. 길에 나무가 없는 곳은 걷기조차 힘듭니다. 길에 나무가 있는 곳은 택시나 버스를 타고 지나갈 적에도 싱그럽습니다.




- “아버지 아키 군은 아키 군. 미쓰 군은 미쓰 군이라는 사실, 잘 알고 미쓰 군을 지켜보고 있어요.” (61쪽)

- “저기, 지상의 탐사대는 사실은 무얼 하고 있을까?” (81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09)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태어날 적부터 숲이나 들을 아주 모른 채 태어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숲이나 들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태어난 뒤부터 풀 한 포기 뜯을 수 없고, 꽃 한 송이 꺾거나 기를 수조차 없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풀노래나 꽃노래를 부를 줄 모릅니다. 밥은 먹지만 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릅니다. 고기는 먹지만 고기가 어디에서 자라는지 모릅니다.


  땅에 발을 디디는 삶이 아니라 하늘에 붕 뜬 삶인데, 먹고 입고 자고 이럭저럭 삽니다. 짝짓기도 하고 사랑도 속삭이다가 아이도 낳습니다. 다만, 하늘을 모르고 땅을 모릅니다. 바람을 모르고 햇볕을 모릅니다. 비를 모르고 눈을 모릅니다. 아는 것이라면, 웃층과 가운뎃층과 아랫층, 이렇게 세 갈래로 나눈 계급과 신분에 따라서 일이 달라지고 삶터가 달라진다는 대목만 압니다.





- “왠지 오늘 일은 계속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103쪽)

- ‘일상적인 대화가 기뻤다.’ (118쪽)



  오늘날 도시사람은 시골을 거의 모릅니다. 오늘날 도시사람 가운데에는 시골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늘날 도시사람 가운데에는 쌀이 어떻게 나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날 도시사람 가운데에는 능금꽃이나 포도꽃이나 배꽃이나 복숭아꽃을 한 차례조차 못 본 사람이 많습니다.


  도시사람 가운데 벼꽃이나 보리꽃이나 율무꽃이나 옥수수꽃을 헤아린 적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도시사람 가운데 매화나무 겨울눈을 생각한 적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도시사람 가운데 참새 노랫소리를 제대로 귀여겨듣거나 박새나 딱새 노랫소리라도 제대로 귀여겨들은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 이 나라에서 가장 모자란 한 가지를 들라면 바로 ‘숲’입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숲다운 숲이 가장 모자랍니다. 시골에서는 농약을 뿌리고 송전탑을 박거나 고속도로를 내거나 공장이나 발전소나 골프장 따위를 세우느라 숲이 모자랍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와 상가와 건물 따위를 올리느라 숲이 모자랍니다.


  숲이 모자라기에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습니다. 숲이 사라지기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잊습니다. 도시도 숲이 되기를 빌어요. 도시도 숲이 되어, 나도 가끔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갈 적에, 도시에 있는 이웃과 동무를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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