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진의 희망 분투기 - 중동, 브라질, 아프리카, 그리고 세상의 끝
정은진 지음 / 홍시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도사진가란 아름다움을 담는 이야기꾼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5] 정은진, 《정은진의 희망분투기》



- 책이름 : 정은진의 희망분투기
- 글ㆍ사진 : 정은진
- 펴낸곳 : 홍시 (2010.3.24.)
- 책값 : 12800원


 (1) 아름다움을 찍는 사진


 어디를 다니든 늘 사진기를 갖고 다닙니다. 아이를 안고 마실을 다니든 동네 구멍가게에 보리술 한 병을 사러 다녀오든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갖고 다닙니다. 어제는 옆지기와 아이와 저 세 식구가 충주 무너미마을로 나들이를 왔습니다. 여러 해 만에 모처럼 찾아온 이곳에 있는 자그마한 학교 밥집에서는 사진기를 놓고 밥술을 뜹니다. 밥먹는 자리에는 우리 아이한테 오빠와 언니뻘 놀이동무가 북적입니다. 아이는 밥먹을 생각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바람이 납니다. 무너미마을 할아버지가 밥집에 있는 건반을 두들깁니다. 아이는 노래소리 나오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 뒷짐을 지고 구경합니다. 건반 앞 걸상에 앉아 한손으로 건반 누르기를 하는데, 한두 번씩 건반을 누르고는 다시 뒷짐을 집니다. 이 녀석 참 귀여운 짓을 하네 하고 생각하다가는 사진기를 밥집으로 들고 오지 않았다고 깨닫습니다. 여기에서는 따로 사진 찍을 일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제가 제 사진감으로 헌책방과 골목길을 찍기도 하지만, 우리 딸아이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찍고 있음을 헤아렸다면 밥집으로 들어올 때에도 사진기를 목에 걸었어야 할 노릇입니다. 아이가 이렇게 두 손 곱다시 뒷짐을 지고 있다가 한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노는 모습을 다시 또 언제 볼 수 있겠습니까.

 아이하고 내내 붙어서 살아가는 만큼, 오늘 아침이 되든 앞으로 또 언제가 되든 오늘과 같은 모습을 새삼스레 마주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엊저녁에 마주한 이 놀랍도록 귀여운 모습은 바로 엊저녁 이때에만 마주하는 느낌과 시간이기 때문에 나중에 찍더라도 이날 느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아마 이제부터는 이와 비슷한 모습을 두 번 다시 놓치는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사진쟁이로서는 더없이 바보짓을 했습니다. 바보짓을 했다고 배웁니다. 속이 쓰리도록 배웁니다. 사진쟁이한테는 기회가 두 번 찾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사진쟁이한테는 언제나 한 번 기회만 있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곳을 찍는다 하여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고, 오늘 가운데에서도 아침과 낮과 저녁이 다릅니다. 똑같은 모습이란 한 장조차 찍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만듦사진이라면 빛이며 장비이며 똑같이 해 둔 채 단추만 누르도록 마련해 놓았다면 똑같은 모습을 찍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처럼 만듦사진이 아닌 삶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똑같은 모습이란 두 번 다시 없을 뿐 아니라, 똑같은 모습을 찍을 일이 없어요. 언제나 다 다른 모습을 저마다 다른 깊이와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찍는 사진만 있습니다.

 사진은 어느 한때를 담는 예술이라고 일컫습니다. 한자말로는 ‘순간’이나 ‘찰나’를 찍는다는 소리인데, 우리 말로는 ‘어느 한때’를 담는 사진입니다. 점과 점을 찍으면서 점과 점을 이어 주는 이야기를 엮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한 장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진이라 할 때에는 한 장으로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북극성처럼 움직이지 않는 큼직한 사진 한 장으로 우리 가슴을 크게 울리며 촉촉히 적실 수 있는 한편, 숱한 별자리처럼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빛깔로 모두 다른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어지는 사진이 참된 길을 걷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사진 낱낱은 별자리 하나를 이루는 별 낱낱과 같고, 이렇게 하여 별자리 하나를 이룰 만한 사진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별자리를 이루는 무리별처럼 무리사진이 하나 나오고, 이러한 무리별로 밤하늘 가득 아름다이 빛나는 별들이 되듯, 무리사진이 우리 삶터 가득 아름다이 빛나는 사진들이 된다고 느낍니다. 떨어진 듯하지만 하나로 이어져 있고, 모조리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 조금씩 떨어진 채 가로놓여 있다고 할까요.

 이 사진 하나는 이 사진 하나대로 이야기가 있는 한편, 다른 사진 하나로 이어지는 징검돌 노릇을 합니다. 징검다리는 숱한 징검돌이 알맞게 어우러지면서 다리 노릇을 하는데, 이렇게 다리 노릇을 하면서도 물살 흐름을 막거나 거스르지 않습니다. 징검돌은 촘촘하게 놓아서는 안 되지만 너무 성기게 놓아도 안 됩니다. 꼭 알맞춤한 숫자로 놓되 물살이 끊이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 하고, 물살이 거세어질 때에는 휩쓸리지 않게끔 단단히 놓아야 합니다.

 징검돌 노릇을 하는 사진이란 사람들이 발을 디딜 때에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 튼튼해야 합니다. 이는 곧, 사진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어 보더라도 이 사진 하나로 내 가슴이 뭉클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하나가 다른 사진 하나로 넘어가도록 이어주는 노릇을 못하거나 안 한다면 큰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서로서로 이어 주되 서로서로 홀로서기를 해야 할 사진이거든요. 또한, 사진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이 사진에 얽매이지 않도록 우리 눈과 머리와 마음을 놓아 주어야 합니다. 징검돌 사이를 물살이 제 결대로 고이 흐르듯, 사진을 보고 가슴이 움직이고 머리가 맑아지는 우리들은 ‘사진을 다 보고 뒤돌아섰을 때’에 저마다 살아갈 자리에서 새로운 마음과 넋과 매무새가 되어 새로운 사람으로서 새로운 일과 놀이를 한결 튼튼하고 힘차고 맑고 아름다이 펼치도록 돕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사진들은 하나하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면서도 아무것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엊그제까지는 허구헌날 골목길만 걷다가 모처럼 산길을 걷고 고샅길을 걸었습니다. 산길과 고샅길을 걷는 동안 제가 요 몇 해 사이에 걷던 골목길이란 다름아닌 산길과 고샅길을 닮은 도시 한켠이었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어린 나날 달리고 뛰고 놀고 먹고자고 어울리던 동네와 길이란 바로 도시에 깃든 산길과 고샅길이라 할 만한 골목길이었구나 하고 비로소 느낍니다. 비록 흙이 아닌 시멘트였다 할지라도, 비록 돌이 아닌 아스팔트였다 할지라도, 도시 골목길에는 도시라는 갑갑한 잿빛 터전에 푸른빛 숨결을 불어넣고픈 고즈넉한 손때가 배어 있달까요. 모든 도시 골목길에 푸른빛 숨결이 깃들지는 않습니다만, 자동차하고 멀어지거나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샛골목이 될수록 골목사람은 푸른사람을 닮아 가고 골목길은 푸른길을 닮아 가며 골목꽃은 푸른꽃 푸른잎을 닮아 가는구나 싶습니다.

 삶이란 우리가 깃든 어느 자리에나 고루 있되, 삶이 맑고 밝게 깃드는 자리라 한다면 우리 목숨을 살리는 흐름을 붙잡고 있고, 우리 목숨을 살리는 흐름이란 밥을 낳는 흐름이요, 밥을 낳는 흐름은 논밭과 산바다가 있는 터전이며, 이러한 터전이 어떤 기운을 끌어안고 있는가를 느끼면서 살며시 이어지는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싱그러운 사랑이 꽃피어 납니다.

 사랑은 참사랑일 노릇임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참사람일 노릇임을 새삼 헤아립니다. 사진은 참사진일 노릇임을 거듭 돌아봅니다. 참사랑이랑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참사람이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참사진이란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내가 누구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랑하든 참사랑일 노릇이고,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놀이를 어떻게 즐기든 참사람일 노릇이며, 내가 어떤 갈래로 어떤 이야기 사진을 엮는다 하더라도 참사진일 노릇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진으로 걸어갈 노릇입니다. 






 (2) 보도사진가가 찍는 사진


..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들을 취재할 때, 모든 취재원들에게 허락을 얻어내기도 힘들고, 특히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우리를 찍는다고 우리 삶에 무슨 변화가 온다고 그러죠? 그동안 수많은 기자들이 다녔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아프간 경찰관의 지인, 카불의 정신병원 원장,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빌라 미모사’라고 알려진 창녀촌, 그리고 아프리카 민주콩고의 성폭력 피해자 병동 …… 이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불평을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가? 나는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내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차라리 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는가? … 이제는 내 사진 한 장이 세상을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허황된 꿈은 갖지 않기로 했다 ..  (12, 15쪽)


 《정은진의 희망분투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 바깥에서 보도사진을 취재하고 담아내는 일을 하는 정은진 님이 중동과 브라질과 아프리카 땅을 밟으면서 만난 사람과 삶터와 아픔을 글과 사진으로 묶은 책입니다. 빛깔이 저마다 다른 세 곳인데, 이 세 곳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거의 흰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곳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아픔이 생기는 까닭은 바로 흰둥이 때문입니다. 흰둥이들은 온누리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돈벌이를 하고자 토박이를 끝없이 끔찍하게 죽였을 뿐 아니라 노예로 부렸고 내전을 부추기는 한편, 이와 같은 다툼과 아픔을 보도사진으로 담는 일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병 주고 약 주고는 아닙니다만, 북 치고 장구 치고 또한 아닙니다만, 온누리를 흰둥이들이 망가뜨리면서 또다른 흰둥이들이 망가지고 있는 온누리를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리며 글로 씁니다.

 정은진 님은 바로 이 흰둥이 판에 뛰어든 누렁둥이입니다. 흰둥이들 스스로 온누리를 평화롭고 사랑스레 보듬기를 바라지 않는 마당에 끼어든 누렁둥이입니다. 세계 보도사진가 가운데 한국사람 같은 누렁둥이는 거의 없다고 하는데, 일본 누렁둥이 사진작가는 꽤 많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보도사진가를 살피면 미국사람 다음으로 일본사람이 가장 많이 죽었는데, 일본 누렁둥이 보도사진가는 온누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흰둥이 눈길과 다른’ 보도사진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자, 그렇다면 한국 누렁둥이 정은진 님은 어떤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넋으로 ‘흰둥이가 벌여 놓은 싸움판’에서 사진으로 보도기사를 쓰는 취재기자 노릇을 하고 있을까요. 부질없는 꿈을 꾸며 마음앓이를 했다가 부질없는 꿈은 내려놓기로 했다는 정은진 님은 무슨 사진으로 당신이 마주하고 부대낀 ‘이웃사람 삶’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 어느 날 저녁 맷이 바에서 나를 조용히 불러 이런 얘기를 했다. “진, 다 좋은데……. 사진기자 조끼는 좀 입지 말지 그래? 너무 깨.” 그때 나는 뉴욕의 B+H라는 사진 기자개 가게에서 산, 엄청나게 크고 주머니가 수십 개 달린 카키색 사진기자용 조끼를 입고 있었다 … 아일랜드식 영어를 구사하는 앤드류는 키가 180센티미터 정도에 삐쩍 마른 편이었다. 그는 2008년 콩고에서 취재한 이야기를 해 주면서 하룻밤에 미화 10달러를 내는, 아주 허름한 ‘슈슈’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난민촌에는 매일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가 혼자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같이 촬영하니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한다 ..  (38, 201, 202쪽)


 《카불의 사진사》(동아일보사,2008)와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2008)를 내놓은 정은진 님 세 번째 보고서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홍시,2010)는 지난 두 차례 보고서를 쓴 뒤 당신이 밟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돌아보는 뒷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정은진 님은 이번 보고서에서 지난 두 차례 보고서 때와 견줄 수 없이 ‘아픔 서린 땅’에 비자와 취재허가를 얻어 들어가는 일이 몹시 힘들고 바가지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었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한두 해가 아닌 여러 해에 걸쳐 ‘아픔 서린 땅’에 취재를 갔다는 정은진 님임에도 아직까지 “뉴욕의 B+H라는 사진 기자개 가게에서 산 …… 사진기자용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다른 동료가 이를 일깨울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마 지난 두 차례 보고서를 내놓는 동안에도 이런 차림새였을까요. 설마 보도사진을 배우고 취재기자로 뛰는 몸이었음에도 이런 몸차림으로 ‘아픔 서린 땅’ 사람을 마주할 마음이었을까요. ‘아픔 서린 땅’에 멀디먼 구경꾼으로 찾아가는 ‘아픔 서린 땅을 만든 흰둥이’하고 똑같은 매무새로 찾아가고 있었을까요.

 그러고 보면,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라는 책을 읽으니 ‘아픔 서린 땅’에서 정은진(Jean Chung) 님을 마주한 토박이들은 정은진 님을 가리켜 ‘흰둥이(백인)’라고 부릅니다. 정은진 님은 흰둥이 아닌 누렁둥이요, 미국사람 아닌 한국사람일 텐데,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토박이한테 당신들 이웃으로 찾아오거나 당신들 동무로 다가서는 사람으로는 잘 비치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 밝히기도 하지만, 정은진 님은 조금도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보여주나,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즐기는 사진이란 훌륭한 사진을 바라지 않고, 더군다나 ‘작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즐기’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껍데기마저 훌훌 벗어 놓습니다. 그저 옆지기나 동무로서 ‘아픔 서린 땅’에 발을 디딥니다. 아니, 온몸과 온마음을 담급니다. 스스로 ‘아픔 서린 땅’ 사람이 되어 아픔을 듬뿍 맛봅니다. 정은진 님은 ‘남자 보도사진가’가 되어야 ‘한 달 동안 목욕도 안 하면서’ 취재를 잘할 수 있구나 하고 부러워 하기도 하는데(책 곳곳에 이 이야기가 되풀이됩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이 당신들 몸을 얼마나 자주 씻고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주 씻거나 못 씻거나에 마음을 쓸 겨를이 있다면, ‘아픔 서린 땅’ 사람들 삶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하나로 묶을 수 있어야 합니다. 씻기 힘들거나 씻지 못할 뿐 아니라 마실물조차 모자란 곳에서 무슨 사치를 바라는지요.


.. 나는 그들에게 6년 전 촬영한 사진과 한국에서 모은 성금 중 일부를 기부하러 왔지만, 모슬렘 가정에서 용건만 전하고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슬람 교도들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기 때문에 집을 찾은 이에게 꼭 차를 대접하고, 자신들의 먹을 것 중 일부를 나누어 준다. 아무리 피난민 가정이라도 초콜릿과 사탕은 꼭 내주는 법이며,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아야 예의다 ..  (61쪽)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성금을 나누어 줍니다. 그렇지만 성금을 받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이 돌려주는 예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예의라고 적어 놓았으나 예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몇 해에 한 번 목돈 들고 찾아와 비행기에서 구호물자 툭툭 떨어뜨리고 가듯 돈다발을 안겨 주는 산타클로스? 사진 찍혀 주는 대가로 성금을 받아드는 취재원?

 “용건만 전한다”는 말이란 더없이 무섭습니다.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아픔 서린 땅’에 무슨 용건만 남기려 하는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성금 몇 푼이 더없이 도움이 되기도 할 터이나 몇몇 집에만 도움이 되지 모든 ‘아픔 서린 땅’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도움이란 세상을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진을 일구는 길이 아닙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과 나눌 사랑과 손길이 성금으로만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를 정은진 님 스스로 헤아려야 하며, 당신이 찍는 사진이 ‘아픔 서린 땅’ 사람들과 삶터를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지는 않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 프레드도 이 파벨라에 처음 와 보기 때문에 주택 앞에 앉아 있는 한 중년 여성에게 길을 물어 보았다. 그녀는 파벨라에서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갑자기 검지손가락을 입으로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보지 마세요.” … 인터뷰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허시냐 빈곤 지역을 통과했다. 다음날 찾아야 할 곳이었다. 석양의 파벨라는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마약 밀매와 갱단이라는 어두운 그늘 말고도 결핵이라는 치염적인 적이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었다 …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못한다니. 히타는 우리를 안전하다는 어느 주차 공간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주차장 주인의 허락을 받아 주차장 내부가 아닌 바깥쪽에 보이는 파벨라 전경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 해가 질 무렵, 파벨라의 집에 켜진 전깃불은 마치 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다. ‘이곳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런 곳을 제대로 사진에 담지 못하다니 너무 안타까워.’ ..  (124, 126, 129, 137쪽)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라는 책에는 정은진 님이 밟은 ‘아픔 서린 땅’에 어떤 아픔이 얼마만큼 있는가를 3/4쯤에 걸쳐 적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아픔이 왜 생기고 어떻게 생기며 언제부터 생겼으며 누가 생기도록 이끌었는지는 한 줄로도 적어 놓지 못합니다. 뿌리를 캐지 않고 잎사귀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뿌리에 난 혹은 파 보지 않으며 잎사귀가 말라비틀어지는 모습만 붙잡고 있습니다.

 보도사진이란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말라비틀어진 잎사귀’ 모양새 그대로만 담는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라비틀어진 잎사귀 모양새 그대로 사진으로 찍으면서 ‘잎사귀가 말라비틀어진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비로소 보도사진입니다. 뿌리없는 생각 뿌리없는 삶 뿌리없는 사진으로는 이름으로 내세울 ‘포토저널리스트’는 될는지 몰라도, 참다운 ‘보도사진가’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참말 아름다운 곳을 제대로 사진에 담지 못하는 까닭은 갖가지 통제와 금지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은진 님 스스로 ‘아픔 서린 땅’에 ‘아픔을 먹고사는 사람’으로 녹아들지 못한 탓입니다.


.. “이 아이들은 엄마들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에 괜찮지만 다른 아이들은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에 부모의 허락도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학교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해요. 지금 내 말을 안 듣고 학교로 가서 꼭 취재를 해야 한다면 당신과 나는 이제 끝입니다. 나는 당신을 파벨라로 데리고 들어왔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람들은 나에게 책임을 돌릴 거예요. 여기에는 당신 말고도 여러 사람이 와서 취재를 하고 가지만 항상 몰래 촬영을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리기도 해요. 당신은 이곳이 얼마나 심각한 곳인지 잘 몰라요. 여기는 내전 지역이라고요. 학교는 못 갑니다. 나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어요.” 세상에 이렇게 취재하기가 힘들다니. 게리 나이트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났다. “안 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 그러나 그건 게리 나이트고 나는 나 아니겠는가. 이곳은 빈민촌이고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 간단한 카포에이라 취재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히타에게 불평을 할 수도 있었다 ..  (176∼177쪽)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를 읽으며 정은진 님이 몸으로 부대끼며 깨달은 앎보다는, 정은진 님이 취재하도록 도운 ‘아픔 서린 땅’ 토박이 입에서 나온 목소리하고 동료 보도사진가가 들려준 목소리에서 ‘무언가 깨달은 이야기’를 엿봅니다. 정은진 님은 희망을 찾고자 애써 싸웠다며 세 번째 보고서를 내놓습니다만, 정은진 님이 찾으려던 희망이란 ‘정은진 님 당신이 사진을 왜 찍어야 할까’ 하는 희망이지, ‘아픔 서린 땅 사람 스스로 희망을 찾는 길에 정은진 님이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서 희망을 들여다볼까’ 하는 희망이 아닙니다.

 어느 분은 굳이 중동이니 브라질이니 아프리카이니를 찾아가지 않아도 나라안에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감이 가득 있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나라안에 사진감이 많다 하더라도 나라밖에 나가지 않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나라안에는 나라안대로 이야기가 있고, 나라밖에는 나라밖대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라밖에서만 살아간다면 나라밖 이야기에만 눈을 두고 삶을 맞출 터이나, 나라안에서 나라밖을 찾아다닌다면 나라 안팎 이야기를 골고루 눈을 두며 삶을 맞추면 됩니다. 정은진 님으로서는 한국에서 중동을 보듯 중동에서 한국을 볼 수 있고, 한국에서 브라질을 보듯 브라질에서 브라질을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 아프리카를 보듯 한국에서 한국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은진 님 보도사진과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에서 몹시 모자라거나 텅 빈 대목이라 한다면, 세상을 보는 눈길과 눈높이와 눈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희망인 사람이 나라안에 있을 때에는, 나라안 희망이 둘레 어디에나 희망을 나누며 희망을 담고 희망을 어깨동무합니다. 정은진 님 스스로 당신 삶을 희망으로 어루만지고 있으면, 애써 나라밖으로 나가는 때마다 희망을 찾고 나누고 선물받을 수 있는 한편 나라안 어디에서나 희망으로 넘실거릴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기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인 ‘보도사진가가 되는 곧고 착하고 슬기롭고 맑은 매무새’를 기를 수 있다면, 훌륭한 사진을 찍든 못 찍든 대수롭지 않으며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사진 한 장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착한 보도사진가로서 당신 길을 씩씩하게 걸으면, 맨몸뚱이로도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당신 둘레 사람들을 착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보도사진가로서 당신 삶을 곱게 다스린다면, 후줄근한 똑딱이 하나로도 이 땅 어느 자리에서나 당신 곁 사람들을 아름다이 얼싸안을 수 있습니다.

 보도사진가란 아름다움을 담는 이야기꾼입니다. 네 번째 보고서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아무쪼록 참다운 보도사진가 길하고 참다운 아름다움에다가 참다운 이야기를 낮은자리에서 고개숙이며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돌아보면서 손수 일구고 손마디에 꾸덕살을 박으며 땀을 흘리시면 좋겠습니다. (4343.4.8.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가 사랑한 사진 - 마이 러브 아트 3
김석원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가 사랑하는 사진 이야기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3] 김석원, 《영화가 사랑한 사진》



- 책이름 : 영화가 사랑한 사진
- 글 : 김석원
- 펴낸곳 : 아트북스 (2005.11.5.)
- 책값 : 15000원



 (1) 사진을 이야기하기


 뭇 사진쟁이들이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면서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가를 읽어내는 삶이 바로 ‘사진책 읽기’ 또는 ‘사진읽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읽기라면 책 하나에 담은 줄거리만을 헤아리는 일이 아니라, 책 하나를 써낸 사람과 엮은 사람 들이 당신들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당신들 삶을 어떻게 담아냈느냐를 읽어내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림읽기에서도 매한가지이고 노래읽기와 영화읽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줄거리나 소재나 주제를 헤아리거나 알아차리기도 해야겠지만, 이에 앞서 예술쟁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껴안았는가를 먼저 가슴으로 느끼야지 싶습니다. 가슴으로 느끼자고 하는 사진이요 책이요 노래요 영화이지, 머리속에 지식쌓기를 하자는 사진이거나 책이거나 노래이거나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사진읽기를 다룬 글을 읽다 보면,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이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 앞에 내보이기까지 얼마나 웃고 울며 기쁘고 슬펐는가’를 느끼는 가슴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날선 이론과 딱딱한 논리로 비평과 평론을 할 뿐입니다. 따순 손길과 넉넉한 눈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어느 갈래보다 사진읽기가 메말랐다고 느끼는데, 곰곰이 헤아려 보면 책읽기를 다룬 글이나 노래읽기를 다룬 글이나 영화읽기를 다룬 글에서도 이런 딱딱함과 메마름은 엇비슷합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아닌 학문을 쌓고 이름값을 올리는 비평과 평론이 되기 때문인가 싶으나, 다름아닌 문화요 예술을 함께하자는 사진이거나 책이거나 노래이거나 영화임을 떠올린다면 퍽 슬픕니다.

 무슨무슨 대학교를 나오고 아무아무 스승한테서 배웠으며 나라밖 어디를 다녔고 하는 발자취로는 사진쟁이 삶을 읽을 수 없습니다. 소재가 어떻고 주제는 무엇을 다루려 했다는 지식조각으로는 사진쟁이 마음을 껴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 눈앞에 마주한 사진 한 장으로 사진읽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 손에 쥐어든 사진책을 차근차근 넘기면서 사진읽기를 해야 합니다.


.. 사진은 결코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는 전문 분야가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진이란 도구를 통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될 수도 있다 ..  (6쪽)


 어제 서울마실을 하면서 사진잡지를 내는 포토넷 출판사에 살짝 들렀습니다. 이곳 일꾼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포토넷 출판사 최재균 대표하고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고, 최재균 대표 옆지기가 엊그제까지 했던 사진잔치 소식을 여쭈었습니다. 최재균 대표 옆지기 최정혜 님은 2010년 1월 27일부터 2월 9일까지 〈최정혜 with ye-ahn〉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잔치를 열었습니다. 당신이 낳아 키우는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사진 서른 점으로 추려서 보여주었는데, 집에서 아이 키우는 아빠 된 몸으로서 이 사진잔치를 꼭 보고 싶었으나 갖은 집일에 얽혀 사진잔치 나들이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을 달래며 사진잔치 안내종이를 한 장 얻어서 읽습니다. 사진잔치 안내종이에는 ㅂ대학교 사진과 ㅈ교수님 글이 실려 있습니다. ㅈ교수님은 “그녀가 보여주는 대상과 상황에 우리는 초대되어 조밀한 감정을 고르게 펴면서 그 <사/아/이>를 배회할 기회를 얻는다. 침실의 벽과 거실에 놓인 탁자, 그리고 정원으로 향하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장난감의 순서, 그리고 자고 일어난 침대의 여전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낱낱한 시선의 증명은 곧 작가의 배회가 이룬 것이다. 그녀의 배회와 우리의 배회가 공유되면서 비로소 초대의 의미가 완성될 터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진잔치 안내종이에 잔글씨로 찍힌 글을 읽으며 숨이 턱턱 막힙니다. 사진을 보라는 소리인지 사진읽기를 즐기라는 소리인지 알쏭달쏭하면서 가슴이 꽉꽉 눌립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 손길과 눈길이 고루 스며든 사진 한 장 앞에서 이런저런 말잔치를 늘어놓아야 비로소 ‘사진비평’이거나 ‘사진평론’이 될는지요? 사진 한 장은 이런 사진비평이나 사진평론이 붙어야 바야흐로 ‘사진작품’이라는 딱지가 붙을는지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를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영화 시디를 종이접기를 하는 어린 벗한테 빌려주었습니다. 영화 시디를 돌려받으면 틈틈이 이 영화를 다시 볼 테지요. 여러 차례 본 영화임에도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고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시디를 셈틀에 넣고 다시 돌릴 때마다 예전에 보았던 모습이 더 짙은 느낌으로 가슴으로 스며들고, 예전에 스치고 지나갔던 모습을 새록새록 곰삭입니다. 문화예술 갈래로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를 빚은 사람은 우리한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란 다름아닌 우리들 누구나 다 다른 땅에서 다 다른 모양새로 다 다른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는 ‘삶’이구나 싶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노래쟁이이든 아바나에서 살아가는 수수한 사람들이든 그저 그대로 그곳에서 그 모습이 곱습니다. 그 목소리가 살아 있고 그 손길이 살아 있으며 그 눈빛이 살아 있습니다. 이들은 당신들 삶에서 무엇을 붙잡고 사랑하고 껴안으면서 즐거움을 나누면 좋을까를 잘 알고 있다고 느낍니다. 원추리도 진달래도 아닌 치자꽃 한 송이를 노래하는 할배 노래결에서, 우리들 스스로 고운 빛살이 담긴 노래를 늘 놓치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한테는 언제나 우리 삶을 빛내는 고운 빛살 담긴 노래가 가득가득 있었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빛살을 뿌리치고 우리 노래를 내팽개치면서, 우리 두 눈으로 바라보는 삶터를 우리 눈결로 담아내는 사진찍기하고도 차츰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이러면서 사진찍기를 이야기하는 사진읽기에서도 한결 반갑고 알차고 아리따운 길을 놓칠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나한테 깃든 넋을 보지 못하니, 나 스스로 무슨 글을 쓰고 무슨 그림을 그리며 무슨 사진을 찍겠습니까. 나한테 서린 얼을 감싸지 못하니, 나 스스로 무슨 영화를 찍고 무슨 춤을 추며 무슨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만화책 《한낮에 뜬 달》(요시다 아키미 그림,애니북스 펴냄,2009)을 읽으면 끄트머리를 매조지하면서 “서로 건강하게 지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193쪽).” 하고 속말을 합니다. 말 그대로 서로 몸 튼튼히 지내면 이대로 넉넉합니다. 내 몸이 튼튼하고 옆지기 몸이 튼튼하며 딸아이 사름벼리 몸이 튼튼하면 이대로 넉넉합니다. 나한테 대학교 졸업장이 없고 옆지기한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딸아이가 나중에 학교에 가고파 할지 안 가고파 할지 모릅니다만, 초등학교조차 안 간다 하여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삶을 따사롭게 보듬는 손길이란 종이조각에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영화는 사진을 사랑했다지만


 영화를 보는 눈은 영화를 보는 사람 숫자만큼 갖가지입니다. 사진을 보는 눈 또한 사진을 보는 사람 숫자만큼 갖가지입니다. 그런데, 참말로 영화를 보는 눈이 갖가지요, 사진을 보는 눈 또한 갖가지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다 다른 영화를 다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요. 우리는 다 다른 사람으로 영화를 보아도 어슷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는지요.

 지난 2005년에 나온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을 뒤늦게 읽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글쓴이는 당신 글을 어떻게 바라볼는지 궁금합니다. 글쓴이가 당신 글을 돌이켜보았을 때 2005년에 쓴 이 글을 2010년에 돌아보아도 괜찮다고 여길는지 어딘가 아쉽다고 바라볼는지 무언가 모자라다고 생각할는지 궁금합니다. 2005년에 쓴 이 글을 올 2010년뿐 아니라 다가올 2020년이나 2050년에 돌아보아도 괜찮다고 여길는지 궁금하며, 당신 글을 손질하거나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올 2010년에 한 번 손질하거나 고치면 된다고 여길는지 궁금하고, 앞으로 2020년에 다시금 2050년에 새롭게 다시금 손질하거나 고쳐야 한다고 여길는지 궁금합니다.


.. 사진가들은 어떤 여자를 예쁘게 찍어야 될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순간만큼은 상대방의 외모에 관계없이 자신의 애인이라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는 얘기를 ㄷ르은 적이 있다.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아도 억지로 그런 감정을 만드는 것인데, 정원처럼 좋아하는 사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이 최고의 사진으로 찍힐 것이다. 찍히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찍어 줄 때 가장 예쁘고, 아름답고 보기 좋은, 사랑이 느껴지는 사진이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가들이 사진사들보다 기술적ㆍ감각적인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찍은 사진보다 더 좋다 혹은 야박하게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머니를 가장 아름답게 찍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이며, 사랑하는 여인을 가장 예쁘게 찍어 줄 수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사진가들이 아니라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닐까? ..  (99쪽)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에는 ‘사진기나 사진이 소재가 된 영화’를 다룹니다. 또는 영화에 언뜻선뜻 스치거나 나타나는 사진기나 사진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이름은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지만, 하나하나 파고들어 살핀다면 영화들마다 꼭 ‘사진을 사랑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진을 사랑한 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영화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펼치는 동안 ‘사진도 한 가지 살며시 곁들였다’고 보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진쟁이가 주인공이 된 영화이든 사진기나 사진이 줄거리에서 굵직한 고빗사위를 이루는 영화이든, 영화감독이 들려주고픈 이야기는 ‘사진이나 사진기하고는 다른 자리에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틀림없이 사진기 하나와 사진 한 장이 큰 자리를 차지하는 영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여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고 말하기에는 힘듭니다. 만화 《슬램 덩크》 주인공이 읊은 한 마디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말처럼, “사진은 거들 뿐”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사진은 영화작품에서 ‘거드는 노릇’을 하면서 우리한테 저마다 다 다른 뜨거움과 뭉클함과 애틋함을 선사한다고 할 수 있어요.


.. 사진첩을 대충 보는 폴에게 오기는 “천천히 보라”고 충고한다. 폴이 “다 똑같지 않냐”고 반문하자 오기는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맑은 날 아침, 흐린 날 아침, 여름 햇볕, 주말, 주중, 우산을 든 사람, 겨울 코트를 입은 사람, 짧은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 등등, 다른 사람이 같아질 때도 있고, 똑같은 사람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햇빛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지나가는 차가 다르고, 심지어 바람의 움직임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태양은 매일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니, 결국 같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  (111쪽)


 저는 영화를 그리 즐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느긋하게 볼 겨를이 없다고 해야 맞다고 느낍니다. 영화를 안 즐긴다기보다 영화를 즐길 겨를이 없습니다. 책읽기를 할 때에 늘 느낍니다만,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즐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전철을 타고 먼 마실을 할 때에 여러 권을 읽어치우기도 하지만, ‘읽어치우기’이지 ‘즐기기’는 아닙니다. 아니, 이렇게 바쁜 틈을 쪼개어 읽는 책이 바로 ‘즐기기’요 ‘읽어치우기’가 아닌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조각읽기가 됩니다. 나눠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겹쳐읽기를 얼마든지 합니다. 어제 옆지기가 묻더군요. “당신은 (만화쟁이가 연재를 띄엄띄엄 하느라 뒤엣책이 여러 해 만에 나와서) 몇 해 만에 보는 만화도 예전 줄거리가 다 생각나요?” “그럼.” “나는 하나도 생각 안 나는데.” 대답을 해 놓고 곰곰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참말로 책읽기를 조각읽기를 하고 나눠읽기에다가 겹쳐읽기를 숱하게 하는데, 새로 이 책을 집어들어 읽으며 ‘예전에 보던 대목’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어쩌면, 영화를 볼 때에도 십 분 보다가 끊고 다음에 또 십 분을 보고, 또 다음에 십 분을 보아도 잘 떠올리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연속극 또한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 않고 꾸준히 이어서 보여주는 셈이니, 책으로는 조각읽기라면 방송으로는 ‘조각보기’가 됩니다.

 제 깜냥껏 생각을 갈무리하며 영화읽기와 사진읽기와 책읽기를 나란히 놓고 곱씹어 봅니다. 영화이든 사진이든 책이든 사람들은 누구나 저한테 가장 반갑고 즐겁고 흐뭇하며 살가운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사랑 나누는 이야기이든, 수수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이든, 아이 키우는 이야기이든, 나라밖 이야기이든, 전쟁 이야기이든, 꿈나라 이야기이든 …… 좋아하는 갈래가 다르지만, 모두들 ‘다 다르게 좋아하는 갈래’에서 ‘다 다르게 좋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다 다르게 좋아하는 다 다른 갈래 다 다른 문화예술 매체 이야기라 할 때에는, 이 문화예술 매체를 즐긴 다음에 풀어내는 ‘느낌글’은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적바림하는 느낌글이라 할지라도 이 책과 저 책에서 다 다른 삶과 눈길과 생각에 따라 다 다른 틀거리와 짜임새와 매무새로 느낌글을 적바림합니다. 비슷하거나 어중간한 느낌글이란 나올 수 없습니다. 내 마음속 깊이 파고들면서 아름다운 눈물과 빛나는 웃음 하나 선사한 작품일 테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에서는 바로 이 ‘눈물’과 ‘웃음’을 찾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눈물과 웃음이 빠져 있구나 싶습니다. 영화를 즐길 때에는 영화를 즐기는 나름대로 어떻게 눈물과 웃음을 즐겼는지가 빠져 있습니다. 사진을 만나며 부둥켜안을 때에는 영화에 나오는 사진 이야기가 당신 가슴에 어떻게 눈물과 웃음으로 아로새겨졌는가 하는 대목이 빠져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고, 책을 덮으면서 갑갑했습니다. 교수님이든 평론가이든 비평과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내놓기 앞서, 무엇보다도 당신들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빛줄기를 우리한테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착한 사람들 일색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가장 착하게 여겨지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눈이다 ..  (204쪽)


 글쓴이 김석원 님은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에서 영화를 말하고 싶었을까요? 사진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영화와 사진을 아울러 말하고 싶었을까요? 사진과 영화가 어깨동무하는 삶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사람마다 살아가는 길이 다르고, 사람마다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눈썰미가 다릅니다. 똑같은 기계요 장비라 할지라도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매무새로 사진을 이루어 냅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장비로 일구어 낸 작품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두 작품을 바라보면서 다른 느낌입니다. 한 사람 한 작품일지라도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눈물과 웃음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사랑한 사진》이라는 책은 어떤 ‘다 다른 영화와 사진이 어우러지는’ 이야기일까요. 어떤 목소리를 어떤 결로 어느 자리에서 누구하고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일까요. 사진기와 사진을 다루며 영화 하나에 깊은 사랑과 너른 믿음을 담은 영화감독들 땀방울과 꾸덕살을 《영화가 사랑한 사진》에서는 어느 만큼 건드리거나 어루만지고 있다고 해야 좋을까요. (4343.2.1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의 세월
윤주영 / 눈빛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기기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2] 윤주영, 《어머니의 세월》


- 책이름 : 어머니의 세월
- 사진 : 윤주영
- 펴낸곳 : 눈빛 (1997.11.7.)
- 책값 : 2만 원 






 (1) 사진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문화재단들은 저마다 제 고장을 빛낼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원사업이 있는 줄 안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알고 난 다음에는 지원서류 쓰기가 퍽 까다롭고 골치가 아파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골치가 아프더라도 한 번은 써 봐야 하지 않느냐 싶어, 인천골목길을 찍은 사진을 놓고 지원금을 신청해 보았습니다. 제가 인천골목길을 두루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책으로 엮은 다음, 제가 사진으로 담은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분들한테 하나씩 선물로 나누어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골목이웃한테 당신들 삶자리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두 장씩 드리며,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당신들이 가꾸는 이 보금자리가 참 아름답습니다’ 하고 말씀을 건네지만, 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들 ‘저 젊은이가 그냥 입발린 소리로 읊는 인사치레’로 여깁니다. 그래서 인천골목길을 통째로 들여다보는 사진책을 하나 마련해 한 집씩 찾아다니며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꿈을 이루자니 돈이 없는 저로서는 꿈 같은 소리입니다. 그예 꿈입니다. 살림돈 한푼도 모자란 주제에 무슨 사진책을 내겠습니까. 찍은 사진은 더없이 많고, 오늘도 바지런히 찍으러 돌아다닐 테며, 앞으로도 찍겠지요. 사진 몇 장 만들어서 나누어 드리는 일이야 어느 만큼 한다 치더라도 책으로 드리기는 몹시 버겁습니다. 집삯과 도서관삯 내기에도 빠듯한 살림이니까요.

 지원사업 공모에 붙을는지 안 붙을는지 모르나, 붙든 안 붙든 내 보고 나서 생각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 모르지만 인천문화재단에서 면보기 하러 오라고 연락이 와서 지난주에 찾아갔습니다. 면접관은 “제(면접관)가 인천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이런 지역 특성을 보여주는 사진이라면 전시하는 공간을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이런 물음은 도무지 걸맞지 않을 뿐더러, 면접관 스스로 ‘인천에서 인천골목길 사진을 전시하고 책으로 엮어서 나누는 뜻’을 읽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참말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저 스스로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몸이지만,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스스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어요. 골목동네가 고향이라고 밝히는 사진작가 가운데 골목동네를 가끔이나마 사진으로 담는 사람조차 드뭅니다. 삶터로 여기며 꾸밈없이 골목 사진을 즐기고 나누려는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은 이 나라에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적어도 인천에는 없습니다.

 저는 인천골목길을 굳이 제 사진감으로 삼을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자주 찍으니 괜히 저까지 인천골목길을 안 찍어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인천골목길을 찍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른 데’에서 놀러오는 사람들이고, 인천이라고 하는 터전을 사랑하든 아끼든 들여다보든 헤아리든 하는 마음가짐이나 눈길이 아니었습니다. 골목동네 주민으로서 퍽 짜증스럽고 어이없는 사진이 많았습니다. ‘그 좋은 장비를 쓰면서 이 따위 엉망진창 사진을 찍느냐? 그러면 차라리 내가 찍어서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창작과비평》이라는 잡지에 실린 시를 읽다가 ‘이만한 시가 시라면 나도 시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시길’을 걸었는데, 제가 김남주 시인 같은 그릇은 못 됩니다만 이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제 값싼 장비로 골목 삶터가 왜 골목 삶터인지를 말하는 사진을 담아내어 조용히 동네 이웃하고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면접관이 저한테 한 마디 물은 뒤’ 이런저런 생각이 뒤죽박죽 엉켰습니다. 입을 꾹 다물고 앉아만 있으면 안 되기에 헛기침을 하고 나서 몇 마디를 줄줄줄 풀어놓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동네 골목길이 참 예쁘다고 느껴요. 그래서 골목길 사진을 찍는데, 이 사진을 찍은 다음에 그 집에 다시 찾아가서 우체통에 사진을 넣든 앞에서 인사하고 드리든 하면서 ‘집이 참 예쁘고 좋아서 찍었습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골목길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는데, 이렇게 동네 주민으로서 골목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으며 다니다 보면 동네사람들이 ‘뭐 하러 사진 찍어요?’ 하면서 따져요. 인천시에서는 오래된 동네를 빨리 허물고 아파트로 재개발하려고 하는데, 이러면서 오래된 골목동네가 꾀죄죄하고 낡고 못났다는 생각을 심거든요. 그러면서 일부러 낡고 꾀죄죄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공무원들이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동네사람이 그렇게 물으면 ‘집이 예쁘잖아요’ 하고 말씀드리는데, 다들 웃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곳에 뿌리내리며 살아오는 분들이 집과 동네를 참 예쁘고 곱게 꾸미고 있는데, 당신들 스스로 이 동네가 얼마나 예쁘고 고운 줄을 모르셔요. 제가 괜히 집이 예쁘다고 말하는 줄 생각하셔요. 음, 이 같은 골목길 모습을 다른 지역에 보여주는 일도 틀림없이 뜻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분들 스스로 당신 보금자리가 얼마나 곱고 예쁜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난 다음에 서울이든 다른 지역이든 이 사진을 들고 가서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해요. 동네사람들한테 자부심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어요.”

 지난주에 여러 차례, 그제와 그끄제 잇달아 ‘골목마실 길잡이’가 되어 사람들한테 인천골목길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면서 오래오래 걷는 나들이를 합니다. 지난 2007년에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뒤 홀로 조용히 골목마실을 해 오며 혼자서(또는 옆지기와 아기하고) 사진찍기를 해 왔는데 요 보름 사이에 갑자기 ‘골목마실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인천에 뿌리를 둔 가톨릭환경연대에서 해마다 벌이는 ‘청소년 환경기사단’ 강사 노릇까지 어쩌다 보니 덥석 맡아, 2010년 올해에 인천 중ㆍ동구 푸름이들하고 동네 골목길 나들이를 함께하면서 사진찍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요사이는 도서관에 가만히 있기 추워서, 사진을 좋아하는 손님이 찾아왔으면 “괜찮으시면, 구경해 보기 어려운 골목길 나들이 해 보시겠어요? 알려지지 않은 인천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하고 넌지시 말씀을 여쭈며 함께 길을 나서곤 합니다. 따로 길잡이가 되거나 탐방해설가나 그런 이름을 붙이는 나들이가 아닌, 조용히 몇몇 사람이 뚜벅뚜벅 골목을 거닐면서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도록 이끄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이런 골목마실이란 몇 해에 걸쳐 온 골목을 수없이 밟고 또 밟았기 때문에 이제서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될 테지요. 골목동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저 스스로 눈을 뜨고 생각을 열면서 골목마실을 해 온 여러 해가 밑거름이 되며 저절로 발걸음이 떨어지는 일일 테지요.

 제 사진감인 ‘헌책방’을 처음으로 찍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1999∼2000년에 헌책방 사진을 처음 찍으며 2001∼2002년에 바야흐로 손놀림을 익혔고, 이렇게 찍은 사진을 헌책방 일꾼들한테 드리면서 ‘이런 사진을 좋아하시는구나. 저런 사진은 썩 안 좋아하시네.’ 하고 느꼈습니다. 사진을 받으실 때에 얼굴빛이 다르기에, 반갑거나 좋게 여기는 사진을 눈여겨보고, 썩 달갑잖게 여기는 사진을 곱씹습니다. 헌책방 일꾼들 입맛과 눈맛에만 맞추는 사진이라기보다, 헌책방 일꾼들 스스로 흐뭇해 하고 반길 수 있으면서도 제 손길을 트고 눈길을 열 수 있는 사진찍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헌책방에서 사진찍기’가 열두 해째입니다. 열두 해째 되고 보니, 헌책방에서 책방 일꾼 얼굴 사진을 슬쩍 한두 장 찍는 일이 아무렇지 않습니다. 찍히는 사장님들이 허허 웃으면서 “그동안 그렇게 찍고 뭘 또 그렇게 찍어요?” 하고 손사래를 치시면, “예전에는 예전 모습이고 지금은 또 지금 모습이니까요. 찾아올 때마다 한 해 두 해 쌓이는 세월과 모습이 다른걸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참말, 저로서는 헌책방이든 골목길이든 한두 번 왕창 찍어내며 ‘일 끝내기(작업 종료)’를 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목숨이 붙어 있고, 제 손아귀에 힘이 남아 있으며, 제 낡고 값싼 사진기가 마지막까지 움직여 주는 그날까지 찍어야 할 사진감이라고 여깁니다. 앞으로 예순 살까지 살 수 있다면, 스물네 해를 더 찍을 수 있는 헌책방이며 골목길입니다. 앞으로 일흔 살까지 살 수 있다면 헌책방을 놓고는 마흔 해 남짓 찍는 셈이고, 골목길을 놓고는 서른 몇 해를 찍는 셈입니다.

 지난 2008년 여름부터는 아이 사진도 찍습니다. 아이와 늘 지내고 있으니 아이 사진을 찍을밖에 없습니다. 2007년 여름부터는 옆지기 사진을 찍었지요. 그러니까, 이제는 아이와 옆지기가 함께 있는 사진을 찍는다고 하겠습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나중에 어떤 사진책을 꾸리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좋은 벗님들이요 길동무이니 사진기를 집어듭니다. 저한테 헌책방이라는 사진감은 저 멀리 동떨어진 세상사람들 터전이 아닌, 바로 내 삶터요 이웃 모습입니다. 저한테 골목길이라는 사진감은 남다르거나 애틋한 추억이 어린 곳이 아닌, 바로 내 보금자리요 이웃들 어우러진 삶자락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또한, 사진쟁이들이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할지라도 마침내 ‘삶을 담는 삶사진’에 이르고야 만다고 느낍니다. 우리들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는 그 훌륭하고 거룩한 사진쟁이들은 예술사진이었든 상업사진이었든 기록사진이었든 무슨 사진이었든 하나같이 ‘당신들 삶으로 녹여내고 받아들인 삶사진’이로구나 싶습니다. 레니 리펜슈탈도 삶사진이고, 김기찬도 삶사진입니다. 살가도나 쿠델카도 삶사진이며, 조선희나 한영수도 삶사진입니다. 한영수 님은 아예 《삶》이라는 이름을 걸고 사진책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 바야흐로 만나면서 당신들 사진 불꽃을 활활 불태우면서 곱디고운 사진꽃으로 피어나는 자리란 바로 ‘삶사진’이라고 느낍니다.
 











 (2) 삶을 담으려고 하는 사진으로


 옆지기도 한번 보라고 《어머니의 세월》이라는 사진책 하나를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며 함께 놀던 옆지기가 “아빠가 엄마 보라고 사진책을 가지고 왔네.” 하면서 주욱 펼치다가는 “뭐야, 이 사진은? 이 사진에서 할머니들은 찍히고 싶지 않은 얼굴이잖아.” 합니다. 무슨 사진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어 슬쩍 건너다보니, 장터에서 국수를 자시는 할머니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얼굴이며 손이며 온통 주름진 할머님들 매무새가 잘 드러난 사진입니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할머님들은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 ‘밥먹는 자리에서 저 양반 뭐 하는 짓이여?’ 하는 눈빛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옆지기는 사진쟁이 이름을 모르고, 사진쟁이 발자국을 모릅니다. 이분이 어떠한 길을 걸었는지 모르며, 이 사진책에 어떠한 뜻이 담겨 있는가를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옆지기를 섬깁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이 어떠한 길을 걸었는가를 알아야만 그 사진쟁이 사진을 읽어낼 수 있지 않습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과 책쟁이 한 사람이 무슨 뜻으로 사진책 하나를 엮었는지를 알아야만, 이들이 묶어낸 사진책에 담긴 사진을 즐길 수 있지 않습니다. 옆지기는 지아비가 쓴 글이나 사진을 놓고도 알차게 못 쓴 글이나 제대로 못 찍은 사진을 놓고 “뭐야, 이 글은? 뭔데, 이 사진은?” 하고 한 마디 톡 쏘거나 거듭니다. 당신하고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가 아닌, 당신 가슴으로 스며들 만한 글이냐 그림이냐 사진이냐를 헤아리는 눈썰미입니다. 더없이 고마운 옆지기입니다.

 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그동안 《어머니》(눈빛,2007), 《그 아이들의 평화》(생각의나무,2004), 《석정리역의 어머니들》(솔,2003), 《장날》(현암사,2001), 《행복한 아이들》(현암사,2001), 《중국》(눈빛,1999), 《안데스의 사람들》(눈빛,1999), 《일하는 부부들》(눈빛,1998), 《어머니의 세월》(눈빛,1997), 《베트남 전후 20년》(타임스페이스,1995), 《탄광촌 사람들》(사진예술사,1994), 《동토의 민들레》(호영출판사,1993),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조선일보사,1990), 《내가 만난 사람들》(열화당,1987) 같은 사진책을 펴냈습니다. 열네 권 가운데 아직 네 권은 사지 않았으나, 사지 않았을 뿐이지 책방에서 모두 보았습니다. 네 권은 따로 안 사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여태껏 안 샀는데, 이제는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모두 갖추어 놓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고려대학교를 마치고 중앙대학교에서 일곱 해 동안 정치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1961년에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되어 이태 동안 신문을 만듭니다. 그 뒤 정계로 나아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열여섯 해 동안 민주공화당 대변인과 사무처장과 무임소장관과 칠레대사와 문화공보부장관과 국회의원을 두루 거쳤습니다. 1979년에 정치판을 떠난 다음 사진판으로 뛰어드셨는데, 중남미며 네팔이며 인도며 부탄이며 파키스탄이며 터어키이며 그리스이며 이집트이며 모로코이며 튀니지아이며 유럽이며를 골고루 다니며 사진찍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태껏 펴낸 사진책에서도 알 수 있듯, 윤주영 님은 1993년에 《동토의 민들레》라는 작품으로 러시아 사할린에서 고향나라를 그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발자취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1994년에는 《탄광촌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탄광마을 일꾼 발자국을 사진으로 여미었습니다. 《베트남 전후 20년》은 말 그대로 전쟁 피해자 뒷삶을 좇은 사진책입니다. 《행복한 아이들》은 입양되는 아이들 삶을 좇은 사진책입니다.

 윤주영 님은 무엇보다도 ‘어머니(할머니)’ 사진을 많이 자주 찍었습니다. 《어머니의 세월》이든 《일하는 부부들》이든 《장날》이든 하나같이 ‘어머니 되는 분’이 사진 주인공입니다. 다만, 윤주영 님한테는 ‘어머니’이지만, 저한테는 ‘할머니’입니다. 마땅한 소리이겠지만, 어느덧 여든 줄 나이로 접어든 할아버지 사진쟁이 윤주영 님한테는 ‘당신한테 어머니라 할 분은 그야말로 할머니’이겠지요. 윤주영 님 사진을 보면서 느끼지만, 윤주영 님이 가장 잘 잡아채며 담아내는 사진감은 바로 ‘나이 든 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주영 님부터 흰머리 할아버지인 만큼, 할머니들 앞에서 서로 동무가 되기도 하고 누나로 삼기도 하며 동생으로 만나기도 할 테지요. 스스럼없이 사진기를 들 수 있고, 사진기를 들기 앞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저는 윤주영 님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 할아버지가 되면 아주 저절로 ‘나로서는 아버지이고 내 뒷사람한테는 할아버지로 보이는 아버지’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러한 사진찍기는 퍽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새롭게 눈을 뜨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은 만큼 ‘젊은이가 다가서기에 아직 어려운 사진감을 담아내는 솜씨’를 보여주면서 뒷사람을 가르친다고 할까요.

 그런데 윤주영 님 사진책을 보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탄광촌 사람들》을 뒤적일 때마다 《김재영(글),김종성(사진)-검은 산 검은 하늘》(눈빛,1991)이 떠오르고, 《동토의 민들레》를 뒤적일 때마다 《이토 다카시-사할린 아리랑》(눈빛,1997)이 떠오르며, 《장날》을 들출 때마다 《양해남-우리 동네 사람들》(연장통,2003)이 떠오릅니다. 똑같이 탄광을 사진감으로 삼았지만 윤주영 님 사진책에서는 웃음과 눈물을 살피기 어렵구나 하고 느낍니다. 광부 삶을 담은 사진책으로 《신병태-광부, 그 묻혀진 얼굴》(호영,1999)이 또 있는데, 《광부, 그 묻혀진 얼굴》에서도 ‘광부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얼굴’은 드러나지만 삶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는 윤주영 님 사진에서도 비슷합니다. 《장날》이나 《행복한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평화》에서 ‘넉넉한 구도’와 ‘아름다운 화면’은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구도와 화면에 어떠한 이야기를 따스하게 담는지까지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눈물을 보여야 하는 사진에서 눈물을 보이기 힘들고, 저절로 ‘아!’ 하는 마음이 샘솟지 못합니다.

 사진길을 걸어가며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고 온갖 자리에서 온갖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골고루 만나고 있는 윤주영 님은 우리 세상 온갖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갖 ‘모습’을 담는 가운데 온갖 ‘이야기’까지 엮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다루는 사진감은 많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모습으로 그치고 이야기로 뻗어가지 못하는 사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자락을 보여주지만 삶을 말하지는 못하는 사진이 아니랴 싶습니다. 삶결을 건드리지만 삶자리 깊숙하게 스며들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사진으로는 새로 태어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일하는 부부들》과 《어머니의 세월》이라는 사진책을 여러 해 동안 사진밭 선배한테 빌려 준 적 있습니다. 선배는 《일하는 부부들》은 잃어버리고 《어머니의 세월》은 돌려주었습니다. 한 번 잃어버린 《일하는 부부들》은 헌책방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배한테 이 사진책을 빌려 줄 때에 선배한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저보다 사진 솜씨가 좋고 사진 찍히는 사람들한테 스스럼없이 잘 다가서는 선배야말로 ‘이 땅에서 낮은자리에서 부둥키고 얼크러지는 이웃이자 바로 이러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부부들’하고 ‘어머니가 보낸 세월’을 사진으로 담아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진일은 한두 해로 이룰 수 없고, 적어도 열 해나 스무 해에 걸쳐 해야 할 텐데, 이제부터 차근차근 해 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선배가 제 도움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지 잊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선배한테 도움말을 했듯 저는 저 스스로한테도 제 둘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 사진으로 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저한테는 ‘일하는 사람들’이란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일 테지요. 그리고 저한테 ‘어머니가 보낸 세월’이란 바로 우리 아이를 키우는 옆지기가 젊음부터 늙음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살아내는 발자취일 테고요.

 얼핏설핏 윤주영 님이 새 작품을 내놓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떠한 작품을 어떠한 빛깔로 내놓으실는지 궁금합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윤주영 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당신 스스로 ‘여든이 되든 아흔이 되든 사진길을 걸어가며 새 사진감을 찾아 새 창작을 선보이는’ 좋은 이슬떨이가 되어 주고 있거든요. 윤주영 님은 한 해 두 해 사진길을 걸어가면서 당신 사진밭을 조금씩 갈고닦으며 가다듬고 있다고 느낍니다. 비록 윤주영 님 당신이 벗어나지 못하는 틀과 굴레가 있지만, 제아무리 틀과 굴레가 있다 하여도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은 사진으로 말하면 됩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세월》은 1997년 작품입니다. 2007년도 아닌 2010년이라면, 《어머니의 세월》에서 엿보인 아쉬움들을 말끔히 털어내었을 수 있겠지요. 또는, 2017년에도 사진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차근차근 가다듬거나 추스를 수 있을 테고요.

 구도와 화면으로도 얼마든지 곱고 멋진 사진을 일굴 수 있지만, 이야기와 삶을 담아낼 때에는 ‘흔들린 사진’이든 ‘빛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사진’이든 사람들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사진이 되거나 따뜻하게 감싸안는 사진이 됩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마무리되는 대목을 한결같이 되새겨 주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4343.1.30.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의 빛
강운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사진쟁이 한길을 걸으며 하고 싶던 말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1] 강운구, 《시간의 빛》



- 책이름 : 시간의 빛
- 글ㆍ사진 : 강운구
- 펴낸곳 : 문학동네 (2004.1.5.)
- 책값 : 18000원


 (1) 삶에 따라 하는 말, 삶에 따라 찍는 사진


 내가 좋다고 느끼는 사람하고 함께 있는 동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따뜻하고 깊습니다. 그러면서 내 둘레 터전과 이웃을 바라보는 눈길 또한 따뜻하며 깊습니다.

 내가 달갑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하고 어울리는 동안에는 내가 달갑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과 마주하는 눈길이 차갑고 얕습니다. 그러면서 내 언저리 삶자리와 동무를 마주하는 눈길 또한 차갑고 얕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자연이나 땅이나 목숨붙이하고 있다면, 내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내가 좋아하는 느낌을 고이 담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나 좋은 길을 걷습니다. 창작이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알맞고 걸맞고 들어맞는 길을 걷는 놀이입니다. 느끼는 대로 바라보고, 바라보는 대로 살며, 살아가는 대로 펼쳐 보입니다. 높음이나 낮음이 따로 없는 창작이요, 훌륭함이나 못남 또한 따로 나눌 수 없는 창작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창작이 아닌 생산을 하곤 합니다. 생산이란 내가 먹고살아야 한다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공장을 돌리는 일입니다. 이른바 ‘프로’로서 ‘취업’을 하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주문하는 사람 입맛에 맞추어 척척 찍어내는 기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내 결에 따라서 내 넋을 담는 창작이 아닌, 다른 사람 눈썰미에 따라서 다른 사람 쓸모에 맞추는 공산품을 일구면서 내 주머니를 채우고 내 이름값을 높이며 내 힘을 키운다고 할까요.

 공산품을 생산하는 프로가 된다 하더라도, 즐겁고 신나게 작품을 일굴 수 없지는 않습니다. 마음가짐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공산품 뽑아내는 직업인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아름답고 싱그럽게 작품을 가꿀 수 없지는 않습니다. 몸가짐을 어떻게 추스르느냐에 따라 바뀌니까요. 그런데, 이 나라에서 프로 작가라는 이름을 내거는 분들 가운데 즐거움과 아름다움이라는 길을 걷는 분을 만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스스로 이름값을 내려놓는 분이라든지, 스스로 주머니를 털털 털어놓는 분이라든지, 스스로 힘을 버리는 분이라든지, 그러니까 낮은자리로 스스럼없이 내려서면서 고개를 숙이는 어른을 찾아보기가 참 힘듭니다.


.. 잠깐 눈이라도 쉬어 갈 수 있는 편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다. 그 풍경을 넘어서 뭔가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다 끼어 있다면 기쁘겠다 ..  (8쪽)


 저는 날마다 ‘우리 말 이야기’를 쓰면서 언제나 한결같은 이야기를 넌지시 담는다며 발버둥을 칩니다. 말은 삶이요 삶은 말이라는 이야기를 늘 글 한켠에 살포시 적바림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말과 삶과 넋은 늘 한동아리가 되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 말과 삶과 넋을 다 함께 가누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 하루하루가 기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노상 글 한구석에 조용히 끄적거리려고 용을 씁니다. 저로서는 말과 넋과 삶이지만, 이를 조금 달리하면 글쓰기와 넋과 삶이 되고, 사진찍기와 넋과 삶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 사진쟁이한테는 사진쟁이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삶을 꾸리는가에 따라 그이 사진이 달라집니다. 그림쟁이한테는 그림쟁이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으면서 어떤 삶을 보내는가에 따라 그이 그림이 달라집니다. 만화쟁이도 그렇습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법을 다루든 공무원으로 있든 고기잡이이든 농사꾼이든 그렇습니다. 누구나 제가 발딛고 있는 터전에서 살아가는 대로 생각을 가꾸고 말을 합니다. 발딛고 있는 터전에 따라 일하는 매무새가 다릅니다. 발딛고 있는 터전에 따라 창작이든 생산이든 하면서 제 깜냥껏 작품을 내놓습니다. 이리하여, 더 높거나 낮은 작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가슴을 움직일 만한 작품이냐 아니냐로 가를 수 있습니다. 눈물을 샘솟게 하는 작품이냐, 웃음이 피어나도록 하는 작품이냐, 이렇게 두 가지로만 작품을 바라봅니다.


.. 사람들은 불 밝힌 빌딩에서 밤을 새우며 야근하고, 재벌 총수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고층빌딩을 자랑한다 … 기름값이 치솟자 연탄으로 돌아간 집들이 다시 생겼다. 그래서 연탄재가 여기저기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들판이나 골목길에 쌓인 연탄재 무더기들은 꼭 설치미술 같아 보인다 ..  (229, 238쪽)


 어제와 그제 서울마실을 하면서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습니다. 추운 날씨라서 두 손은 겉옷 주머니에 쑤셔넣고, 쑤셔넣은 손으로 사진기를 붙잡고 다닙니다. 동네 구멍가게를 찾아갈 때에도 사진기는 목걸이처럼 걸고 다닙니다. 따로 사진찍을 일이 없어도 제 한쪽 손은 사진기를 움켜쥡니다. 여느 날씨에는 손이 시리지 않으니, 서울길을 거닐 때에 책을 읽습니다. 서울에서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저로서는 눈을 둘 만한 데가 없고 바라볼 만한 곳이 없다고 느끼며 책을 읽습니다. 애써 목걸이처럼 사진기를 달고 다니면서 사진 한 장 찍을 일이 없습니다. 그저, 헌책방에 찾아가 책시렁을 둘러볼 때에만 사진을 찍습니다. 한 장 두 장 아끼면서 찍습니다. 필름사진을 찍을 때에도 한 장씩 아끼면서 찍습니다. 그렇다고 한 자리에 오래도록 서서 빛이며 틀이며 느낌이며 다 맞추면서 찍지 않습니다. 내 몸뚱이가 내 사진감인 헌책방에서 ‘헌책방과 내 몸마음이 하나되도록 살아내’면서 시나브로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숨을 멎고 1/15초나 1/20초로 찍습니다. 예전에는 1/4초나 1/8초로도 곧잘 찍었는데, 이제는 손떨림을 줄이고자 1/15초로 늘렸습니다. 때로는 1/30초로도 찍지만, 제 헌책방 사진은 거의 모두 1/15초나 1/20초입니다. 저로서는 마땅하게도 세발이를 받치지 않고 이렇게 찍습니다.

 골목마실을 할 때에도 으레 1/20초나 1/30초에 머물고 셔터빠르기를 더 넘기지 않습니다. 요사이에는 1/30초나 1/40초쯤으로 맞추곤 합니다. 헌책방마실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 손이 쉬지만, 골목마실은 여러 시간을 쉴새없이 사진기를 쥔 채로 돌아다니다 보니 손이 쉴 겨를이 없어 손떨림이 꼭 나타나더군요. 1/20초로 찍을 때에는 아깝게 버려야 하는 사진이 반드시 나옵니다.

 골목마실 사진은 모두 디지털사진으로만 찍습니다. 골목마실 사진을 필름사진으로 하고 싶은 꿈이 있지만, 이러다가는 필름값을 짐질 수 없어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골목마실 사진을 필름으로 담을 때에는 여느 35밀리 사진이 아닌 105밀리 중형 가운데 파노라마사진기로 담고 싶습니다. 파노라마 중형사진기 필름사진이 아니라면 골목마실 사진을 따로 필름으로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디지털사진으로 거의 날마다 200장쯤 골목 사진을 빚어 놓으면서 저로서는 ‘사진을 무척 적게 찍는다’고 느낍니다. 숫자로 치면 200장이 많다고 여길 수 있지만, 저는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 골골샅샅 누비면서 담으니까 조금도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한 집 한 가지 모습에 꼭 한 장만 딱 한 번 찍습니다. 손떨림을 느끼면 다시 찍지만, 이런 일은 드뭅니다. 필름사진을 할 때에만 ‘한 장 찍으면 돈이 얼마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사진을 할 때에도 ‘군더더기로 더 찍으면 군더더기 사진을 파일로 만지느라 내 아까운 품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품값도 돈입니다. 시간도 돈입니다. 그러나, 돈을 잃는다는 생각 때문에 아껴 찍지 않습니다. 시간을 버린다는 느낌 때문에 잘 가누면서 찍으려 하지 않습니다. 돈과 시간보다 훨씬 마음을 쓸 대목이 있다고 여깁니다. 돈과 시간을 아무것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만, 돈과 시간을 넘어서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바로 나한테 가장 반갑고 즐겁고 훌륭하고 거룩한 사랑이느냐입니다. 내 사랑을 아름답게 펼치는 사진이냐 아니냐를 헤아려야 한다고 봅니다. 내 사랑을 따뜻하게 담아내는 사진이 되느냐 아니냐를 따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사랑을 넉넉하게 펼칠 줄 아는 사진으로 자리매기느냐 아니냐를 곱씹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입에 붙은 말마따나 말은 삶이고 삶은 말이든, 사진은 삶이고 삶은 사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 사진쟁이 한길 걷는 강운구 님이 하고픈 말이란


 강운구 님이 사진과 글로 엮어 놓은 《시간의 빛》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사진밭에서 강운구 님 이름은 무척 드높습니다. 강운구 님 스스로 당신 이름을 드높다고 여기실는지 안 여기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강운구 님은 이름이 드높습니다. 다만, 제아무리 이름 드높은 강운구 님이라 하지만, 이 높은 이름값에 견주어 당신 사진책은 얼마 안 팔립니다. 다른 사진쟁이 사진책과 댄다면 무척 많이 팔리는 셈이지만, 이 나라에서 ‘사진한다’고 하는 숱한 사람들 숫자를 어림해 본다면 너무 안 팔리는 노릇입니다.

 하기는, 이 나라에서 사진책은 참 낮은대접입니다. 사진기 팔리는 모양새를 본다면, 사진책 팔리는 모양새는 참 까마득합니다. 사진기를 장만한다고 사진책을 꼭 사서 보아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진읽기 없이 사진찍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글읽기 없이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림읽기 없이 그림그리기를 할 수 있는지 갸우뚱합니다. 노래듣기 없이 노래부르기를 할 수 있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춤 잘 추는 사람 춤을 구경해야 내 춤을 잘 출 수 있지는 않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 노래를 들어야 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테두리에서 헤아린다면, 나 스스로 내 춤과 노래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가슴팍이라 할 때에는, 내 둘레에서 춤과 노래를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펼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글 하나 아름다이 여미려고 한다면, 내 둘레에서 더없이 아름답게 글을 여민 사람들 열매를 찬찬히 살피면서 글읽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찾아나서려는 몸짓이 없이 나 스스로 아름답다 느낄 사진찍기를 선보일 수 있을까요? 사랑스러운 사진을 알아보려는 매무새 없이 나 스스로 사랑스럽다 느낄 사진찍기를 즐길 수 있을까요?


.. 이 세상에서, 인류사에서, 이 땅에서만큼 빠르게 온갖 것을 뒤죽박죽으로 바꾼, 아니 버리고 새로 시작한 경우가 있었을까? 그러고도 걸핏하면 반만년 역사나 선조들의 지혜를 들먹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제의 길은 오늘은 길이 아니며, 어제의 풍경은 오늘 이미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말하자면, 온 나라가 고속도로와 고층아파트가 되려고 한다. 온 나라가 공사판이다 … 한때는 서울 광화문 지하도 입구에서 풍란이나 춘란을 가마니로 쌓아 놓고 헐값으로 팔기도 했다. 다 저 남쪽의 무인도 같은 곳 절벽에 핀 것들을 쓸어담아다가 여러 사람이 골고루 나눠 가진 뒤에 골고루 죽이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은 험해서 자태 귀하고 향내 좋은 것은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 사람들은 흔히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또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그 자체로서 바라보기보다는 어떤 평판과 그에 깃든 사연을 따르기를 좋아한다. 순박한 메밀밭을, 메밀밭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서보다는 한 소설의 무대로서 바라보기를 더 좋아한다 ..  (9, 27, 129쪽)


 강운구 님이 글과 사진으로 엮은 《시간의 빛》을 곰곰이 삭여 읽으면서, 빛느낌 좋은 사진을 듬뿍 느끼는 한편, 어쩐지 이 책에서는 사진읽기를 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더없이 맑고 고운 사진과 글이라서 더없이 맑고 고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군더더기가 자꾸자꾸 보입니다. 강운구 님은 ‘군더더기 남기지 않으며 사진찍기를 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왜 당신이 쓰는 글에서는 ‘군더더기 가득한 모습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찍기를 잘하는 사람이 글쓰기까지 잘할 수 있겠느냐 싶지만, 잘하고 못하고 하는 갈래나눔이 아닙니다. 사진 하나에 아름다움과 사랑을 담는 님이라 한다면 글 한 줄에도 아름다움과 사랑을 담아야 할 텐데, 빈틈과 티끌은 하나 없는 사진이요 글이라 하지만, 보기좋음을 감싸면서 가슴찡함으로 울리는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강운구 님 글이 어수룩하거나 어리석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강운구 님 글에는 우리 삶터를 읽어내어 당신 깜냥껏 삭여내되 보드랍고 너그러이 감싸려는 손길이 어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산울림처럼 외곬로 내보내기만 하고는 돌아오지 못하는 목소리로 머뭅니다.


.. 여수까지 가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니 기후가 수상해서 나라 안의 꽃피는 질서가 없어졌다. 서울 시내야 공해로 감싸인 곳이니 진달래가 일찍 피는 것이 당연하지만, 위도에 상관없이 여러 지역에서 한꺼번에 피어 분홍빛으로 ‘봄봄봄’ 하고 있었다 … 천 년 전 융성했던 폐허에 아직 당당하게 곧추서 있는 탑 그늘의 남루한 폐허에도 환한 봄은 왔다. 16만 원어치 더덕 모종을 심는다고 노인이 말했다. “그러면 그걸 언제 수확하나요?” “삼 년 뒤에나요.” “그땐 그게 얼마어치나 됩니까?” “몰라요. 그걸 지금 알 택이 있겠십니껴.” … 보리가 건강에 좋다면서도 먹는 사람이 없으니 보리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일손이 달리는 판에 노동력의 대가를 주지 못하는 농사는 포기할 길 말고는 없게 되었다 … 조선 소도 서양 소들처럼 사육되는 목장이 많이 생겼다. 한우 고기를 생산하는 소와 그 주인은 교감 따위가 필요없다. 오로지 팔기 위한 것이므로 많이 먹여 빨리 살만 찌게 하면 된다 ..  (36, 49, 74, 137쪽)


 바라보는 목소리를 넘어 살아내는 이야기로 글과 사진을 아로새길 수 있기를 바라는 일은 아직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남 이야기를 하기 앞서 저부터 스스로 옳고 알차게 해내지 못하면서 바라기만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내자고, 이 사람을 부둥켜안자고 하는 땀방울이란 ‘펜굴림’으로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진기쥠’으로도 이루지 못합니다. 펜을 붙잡은 손을 넘어서는, 아니 펜을 붙잡는 손을 아우르는 발걸음과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기를 쥔 손을 넘어서는, 아니 사진기를 쥔 손을 어우르는 손품과 몸놀림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담는 손에서 지식을 다루는 손이 되었다면, 지식을 녹여내어 지식을 살아내는 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 자연을 바라보거나 쉬러 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건강을 얻기나 하려는 그런 거지들은 꼭 달리기 경주처럼 산을 오르내린다. 산뜻하게 깨어나는 자연, 길섶에 핀 샛노란 제비꽃 양지꽃 들을 무참히 밟으며 씩씩하게 오르내린다 … ‘풍경’이나 좋으라고 다랑이논에서 소로 써레질을 계속할 리는 없다. 우리는 지킨 전통보다 버린 것이 더 많다. 소와 맺어 온 오래된 인연도 끊기게 되었다. 농가 울타리 안에서 소와 개와 닭은 늘 한식구로 살아왔다. 닭은 늘 경계하며 겉돌았고, 개는 아이들과 친했으며, 소는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다 … 비록 감상적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연이 제시하는 조건을 웬만큼은 무시하며 살아간다. 비가 와도 출근해야 하며, 눈이 와도 일은 해야 한다. 계절 때문에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식물보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  (54, 66, 97쪽)


 좋은 생각은 좋은 삶이 되면서 좋은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람을 찍건 자연을 찍건 들판을 찍건 노을을 찍건 빛줄기를 찍건 구름을 찍건 나무를 찍건 연날리기를 찍건 꽃송이를 찍건 연탄재를 찍건, 이 사진 하나하나에는 바라보기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 이야기를 함께 스며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느 사진쟁이가 아닌 ‘작가주의’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새내기 사진쟁이가 아닌 ‘사진길을 어느새 마흔 해 즈음 걷고 있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풋내기 사진쟁이가 아닌 ‘우리 고유한 풍경을 가장 한국 내음이 묻어나는 모습으로 찍는다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내음이란 무엇일까요. 한국 내음이란 어떤 느낌일까요. 우리한테 고유한 넋이나 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우리한테 고유한 넋과 얼을 어느 만큼 간수하고 있을까요. 강운구 님 스스로 살아내는 한국 내음이란 어떤 모습이나 빛깔일까요. 강운구 님 스스로 즐기면서 나누는 고유한 넋과 얼이란 무엇일까요.


.. 쓰레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높고 깨끗한 곳에 모셔져 있었다. 그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은 작은 산의 마루께는 고창읍의 쓰레기 매립지였다. 아마도, 어떤 마을과도 마찰이 없는 곳에 은밀하게 자리잡은 것일 터이다. 그럴 거라고 짐작은 하더라도 속은 풍경에 전혀 감동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 보기 좋은 풍경을 찾는다고 꼭 이름난 곳에만 갈 이유는 없다. 풍경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으며, 뜻밖에 만나는 풍경이 더 신선하다. 같은 곳을 다시 가더라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계절이나 환경이 바뀌기도 하고,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또는 사람이 생활하는 풍경과 자연의 풍경은 늘 동떨어져서 따로만 있다 … 제도권 밖에 있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름답지 않다고는 결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벼슬이 낮거나 아예 없는 것들에서 신선한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다 ..  (117, 119, 216∼217쪽)


 강운구 님은 1994년에 〈우연 또는 필연〉이라는 이름으로 첫 사진잔치를 열었고, 1998년에 〈모든 앙금〉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잔치를 열었습니다. 사진길을 걸은 지 서른 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진잔치를 열었습니다. 니어링 부부 이웃에서 살던 사람들은 당신들과 같은 때 같은 곳에서 살아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했다는데, 저는 1994년과 1998년 강운구 님 사진잔치를 두 눈으로 바라보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던 일이 더없이 고맙다고 느낍니다. 같은 때 같은 곳에서 살아가면서 사진을 보고 배울 수 있으니 그지없이 반갑다고 느낍니다. 좋은 모습을 헤아리면서 배우고, 아쉬운 모습 또한 살피면서 배웁니다.

 그러고 보면, 강운구 님이 어느 한 군데 빠지지 않도록 대단하기만 하다면 좀 재미없는 사진이며 글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참 좋은 사진이요 참 애틋한 사진인데 어느 한 구석에서는 ‘어딘가 허전한걸?’ 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진길을 걷는 뒷사람으로서 제 깜냥껏 새 눈길을 트고 새 손길을 갈고닦으며 새 마음길을 추스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몹시 적지만, 강운구 님은 1975년에 ‘공간’이라는 출판사에서 《내설악 너와집》이라는 사진책을 한글판과 영어판으로 나란히 낸 적이 있습니다. 이때에 ‘공간’ 출판사는 임응식 님 《비원》과 《종묘》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진책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공간 출판사가 이무렵 내놓은 《종묘》에는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대표가 되는 종묘 사진’이 시원스런 판짜임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책은 임응식 님 《종묘》이지, 강운구 님 《내설악 너와집》이 아닙니다. 오로지 흑백으로만 담은 강원도 내설악 너와집인데, 무지개빛사진이 아닌 흑백사진으로도 이토록 아름답게 담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저로서는 강운구 님 사진책 가운데 이 《내설악 너와집》을 가장 사랑하고 아낍니다. 더없이 아름다우며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안승일 님 사진책 《굴피집》이 한결 아름다우며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두 분 모두 빼어난 분이요, 두 사진책 모두 훌륭하지만, 《굴피집》에는 굴피집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굴피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둘러싼 자연 터전 이야기가 고이 묻어나 있고, 《내설악 너와집》에는 사람들 발자취와 사람들을 둘러싼 자연 터전 모습만 곱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설악 너와집》이나 《굴피집》이나 100번을 넘게 되읽고 되읽지만, 《내설악 너와집》을 되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습니다. 《굴피집》은 되읽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하고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지지만.

 아쉽게도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에, 《내설악 너와집》을 몹시 아끼고 사랑하면서 간수하고 있지만, 강운구 님 사진밭에서 ‘이야기 찾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975년에서 서른 해가 지난 2004년이었다면, 무언가 ‘다리품 팔며 이 땅 곳곳을 누빈 당신 땀방울이 깃든 이야기’가 넌지시 사진으로 실리고 조용히 글로 여미어질 수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에서마저도 이야기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저녁에》에서도 이야기는 스며들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왜 강운구 님은 당신 사진에 이야기를 깃들이는 손길을 여미지 않을까요. 아니, 못할까요. 아니, 스스로 더 다가서지 못할까요.

 좋아하는 분이요, 사랑하는 어른이기 때문에 이 대목을 늘 아쉽게 생각합니다. 아쉽고 안타깝기 때문에 기다리며, 기다리는 동안 저부터 한결 새로워지며 나날이 거듭나자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아닌 반가움이나 고마움으로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강운구 님이 걸어온 사진길은 100%를 빛내는 사진이 아닌 98%로 아름다운 길을 걷는 발자국이었는지 모르니까요. 아무리 강운구 님 사진밭이 알차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다 하여도, 너무 높은 이름이 아닌 작고 따사로운 동네 아저씨 바지저고리로서 들려주는 사진 목소리인지 모르니까요. (4343.1.14.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까지만 해도 안 뜨더니, 용케(?) 오늘은 뜬다. 나처럼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아픈 삶과 웃는 삶 모두 좋아 사진을 찍는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0] 전몽각, 《윤미네 집》



- 책이름 : 윤미네 집
- 사진 : 전몽각
- 펴낸곳 : 포토넷 (2010.1.1.)
- 책값 : 28000원

(전몽각 님 누리집 www.jmong.net)




 (1) 아프게 살아가고 고맙게 사진찍고


 지난해 팔월부터 십이월 첫머리까지 한 주에 닷새씩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집식구가 몹시 힘들어 해서 때때로 한 주에 한 번씩 쉬거나 조금 늦게 나가기도 했으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바람으로 밥해 놓고 빨래해 놓고 집일 얼추 하고 일을 나간 다음 파김치가 되어 저녁이나 밤에 집으로 돌아와서 어지러운 집을 대충이나마 돌보든 그대로 내팽개치고 곯아떨어지든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니 도무지 사람 사는 모양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이러면서 몸마음 모두 아픈 옆지기는 더 아픕니다. 저는 저대로 더 힘듭니다. 하소연을 할 까닭이 없으나 우리 식구가 하소연할 구멍은 없습니다. 저는 저대로 옆지기한테 푸념하지 못하고,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당신 아픈 몸마음을 풀어내지 못하면서 옆지기 부모님네 걱정을 하느라 더 고단해 하고 슬퍼 합니다.

 이렇게 죽어나듯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12월 2일부터 더는 출퇴근 일을 안 해도 되었고, 요사이는 한 주에 이틀을 서울로 일하러 나갑니다. 그런데 한 주에 닷새이든 이틀이든, 이렇게 애 아빠 된 몸으로서 집을 오래도록 비워 놓고 있자니, 집을 비우든 동안 집안에 쌓일 일을 미리 해놓느라 바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쉴 겨를이 없이 다시 밀린 일을 하느라 허둥지둥입니다. 이러면서 옆지기하고 오붓하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짬을 못 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고자 이렇게 일할 마음이 아닌데, 세상 흐름에 맞추자면 나 스스로 바보가 된다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을 이 땅에서 하고자 한다지만, 식구들 몸과 아이키우기를 내버리면서까지 해야 하느냐 싶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딱히 어디에 내놓으려고 찍었던 사진이 아닌 제 사진감인 ‘헌책방’은, 저 혼자서 필름을 맡기고 찾고 스캔질하는 동안 즐겁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굳이 어디에 내세우려고 찍는 사진이 아닌 제 둘째 사진감인 ‘인천골목길’ 또한, 저 스스로 제 사진을 돌아보면서 웃고 울고 기쁘며 슬픕니다. 누구한테 내보일 마음이 아니요, 나중에 아이한테 큰선물이라도 되는 양 던져 줄 마음이 아닌 가운데 붙잡는 셋째 사진감인 ‘딸아이 사름벼리’도, 나와 옆지기와 아이 모두 신나게 예전 자취를 더듬으며 즐기고 있습니다. 올해로 세 살을 맞이한 아이는 때때로 ‘제 모습 찍힌 사진 담은 꾸러미’를 펼치면서 한 장 한 장 넘기곤 합니다. 아이가 사진을 알아서 스스로 넘겨보는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보름쯤 앞서부터는 아이가 제 디지털사진기를 즐겨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빠가 제(딸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찰칵’ 하는 소리에 아빠를 쳐다보며 얼굴에 시익 웃음을 머금고 후다다닥 달려듭니다. 그러면서 두 팔을 뼏쳐 사진기를 움켜쥡니다. 한 주쯤은 제가 단추를 하나씩 눌러 주어야 했고, 이제는 아이 스스로 어느 단추를 눌러야 사진을 넘길 수 있는지, 크고작게 보려면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까지 알아챕니다. 오늘은 드디어 혼자서 켜고 끄기까지 해냅니다.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놓는 일도 ‘적바림(기록)’이라면 적바림입니다. 몸마음 아픈 옆지기는 엊그제뿐 아니라 아침 일마저 떠올리지 못할 만큼 매우 힘들어 합니다. 애 아빠가 찍은 사진을 셈틀 화면으로 넘겨보면서 ‘언제 적 모습’이었는지를 가늠하지 못하곤 합니다. 배앓이를 하며 낳은 딸아이가 어떠한 나날을 거쳐 뒤집고 기고 서고 앉고 걷고 뛰고 하며 이렇게 자랐는지를 하나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예전 사진을 보며 마치 ‘우리 아이가 아닌 듯’ 느끼기도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사진이라도 담아 놓지 않았으면 아무리 말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옆지기가 머리로 떠올려 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딸아이 지난날 모습을 꼭 떠올려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옆지기가 저하고 함께 살던 처음 모습을 구태여 되돌아보아야 하지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날이 더 아름답거나 못났을 까닭이 없고, 오늘이 더 아름답거나 모자랄 까닭이 없으며, 앞날이 더 아름답거나 아쉬울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삶과 목숨대로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고맙습니다. 때때로 ‘우리 옆지기가 이렇게 아픈 사람이 아닌, 튼튼한 사람이라면 내 삶과 우리 아기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데, 튼튼한 옆지기였다면 저는 저대로 바깥일을 훨씬 많이 했을 테고 글을 더욱 엄청나게 써댔을 테며 방송취재라든지 책 펴내기도 아주 신나게 해댔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연예인 못지않게 잘나갔을는지 모르고, 어쩌면 지난 1995년부터 가난하고 벗삼은 삶자락을 떨쳐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잘나가는 제 모습이나 가멸찬 살림이 된 제 모양새는 그림으로 그리지 못하겠습니다. 외려 두렵습니다. 잘나가는 만큼 다소곳함을 잃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가멸찬 살림인 만큼 돈 한푼을 알뜰히 간수하며 고마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까 무섭습니다. 





 옆지기라서 아픈 사람이라서 더 좋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아픈 옆지기가 싫거나 밉지 않습니다. 아픈 옆지기 때문에 저 스스로 더 아픈 자리를 견디어야 하고 알아야 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단한 나날이지만 옆지기처럼 아픈 이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도록 가다듬습니다. 지치는 삶이지만 옆지기보다 더 아플 이웃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립니다. 예전이라고 머리통만 굴리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몸마음 다 아픈(심신장애)’ 사람이 한식구요 옆지기요 애 엄마인 가운데 갖은 집안일과 바깥일을 도맡으면서 더 마음을 쏟고 힘을 내야 하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겨우 붙잡습니다. 어설픕니다만, 우리 어머니가 할아버지 똥오줌을 치우고 밥을 먹이면서 우리 형제를 키우는 한편 부업을 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하는 삶을 견디고 살아낸 하루하루를 살갗으로 살짝살짝 느낍니다. 어머니는 홀몸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하면서 당신 젊음을 다 바칠 수 있었을까요? 저한테는 우리 어머니이지만, 제 둘레에는 수많은 ‘또다른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들이 당신들 식구나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한테 이렇게 ‘몸마음 다 바치는 삶’을 견디거나 살아냈겠지요.

 이 같은 삶이 사진으로 적바림된 적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는 줄 압니다만, 이러한 삶을 사진으로 적바림하고자 하는 사람을 저로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 삶을 고맙고 사랑스러운 삶으로 받아들여 사진으로 적바림하는 눈물콧물땀방울을 영그는 사람을 저로서는 여태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합니다만, 삶이 참 사진이고 사진이 참 삶이라고 느낍니다.

 눈물이 없는 글이 글이라 하겠습니까? 콧물이 없는 그림이 그림이라 하겠습니까? 땀방울이 없는 사진이 사진이라 하겠습니까?

 저는 어느새 손빨래로 보내온 삶이 열여섯 해째 접어듭니다. 홀살이를 하건 함께살기를 하건 군대살이를 했건 늘 손빨래 삶입니다. 서른여섯 줄 나이로는 찬물 빨래가 어려워 보일러를 돌려 손빨래를 하는데, 졸음을 이기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빨래를 하는 동안 기쁘고 고맙다고 느낍니다.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라고 느끼는데, 옆지기는 ‘당신이 너무 힘드니까 내가 빨래할 테니 그냥 두어요’ 하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않습니다. 그만큼 옆지기가 힘들다는 소리입니다. 옆지기도 아픈 몸으로 빨래를 하자면 더 힘들기는 할 테지만, 옆지기나 저나 손빨래를 하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고되다고 느끼거나 귀찮다고 느낀 적 또한 없습니다. 손빨래를 하면서 늘 ‘좋았’습니다. 손빨래를 하고 나면 언제나 ‘흐뭇’했습니다. 빨래하는 동안 아이를 안 봐도 되니까 그러할 수도 있지만, 비비고 헹구고 털고 널고 하면서 옷가지만이 아니라 마음가지까지 말끔하게 빨아 놓거든요. 옷가지를 맑게 다스리면서 마음가지 또한 맑게 다스리거든요.

 저는 옆지기를 사진으로 담거나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 노상 손빨래하는 마음입니다. 손빨래를 하며 우리 집식구 몸을 돌아보고 마음을 곱씹듯, 사진기 단추를 한 번 누르고 두 번 누를 때마다 우리 집식구 오늘 하루 삶이 이렇게 고맙고 반갑고 흐뭇하고 멋지고 고와 참 아름답구나 하는 느낌을 담으려 합니다. 앞으로 우리 식구가 얼마나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는지는 하늘님과 땅님 뜻일 텐데,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이 하루 서로서로 복닥이고 아파하고 힘겨우면서도 어찌어찌 한 해 두 해 달력을 넘기는 삶임을 깨닫고 기쁘구나 하는 느낌을 사진 한 장이나 글 한 줄에 실으려 합니다. 이리하여, 이렇게 해서 찍은 우리 식구 사진은 바깥에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따로 바깥에 내보이려고 찍는 사진은 아니지만 옷장 깊은 곳에 꽁꽁 감추려고 하는 사진 또한 아닙니다. 그예 우리 삶입니다. 그저 우리 사진입니다. 그대로 우리 사람입니다. 꾸밈없이 우리 사랑입니다.
 





 (2) 다시 태어난 《윤미네 집》


 사진책 《윤미네 집》이 2010년 1월 1일을 맞이해서 새옷을 입고 우리 앞에 다시 선보입니다. 1990년 11월에 처음 나온 이 사진책은 스무 해라는 세월을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깊은 잠을 기지개 켜고 깨어나 우리 앞에서 슬그머니 웃습니다. 1990년에는 ‘시각’ 출판사이고, 2010년에는 ‘포토넷’ 출판사입니다. ‘시각’은 사진문화를 깊이 사랑한 주명덕 님이 꾸리던 곳이고, ‘포토넷’은 다달이 사진잡지를 펴내는 곳입니다.

 디지털사진기가 나오기 앞서도 한국에서 사진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사진책이나 사진잡지가 사랑받기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사진기가 널리 팔리며 웬만한 사람들 누구나 괜찮은 디지털사진기를 갖추고 있는 오늘날 또한 사진책이나 사진잡지는 사랑받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꿋꿋하게 사진책을 펴내는 출판사가 있습니다만, 어느 날 갑자기 이 사진책들이 품절이나 절판이라는 길을 걸을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새옷을 입고 나온 《윤미네 집》은 사진잡지 길을 꿋꿋하게 걷는 곳에서 애써 펴내 주니, 여느 사진책보다는 좀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만, 앞으로 두고보아야겠지요. 새옷을 입기 앞서 《윤미네 집》을 헌책방에서 찾아내려고 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고, 제가 갖고 있는 예전 판 이 책을 10만 원 줄 테니 팔라던 사람도 제법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새로 나오는 책’을 널리 사랑하면서 즐거이 마주해 주실 수 있는지는 모르는 노릇입니다.


.. 그저 낳은 이후로 안고 업고, 뒹굴었고 비비대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 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를 나무우리(아기침대)에 넣어 두고 시간 맞춰 우유병을 물려 주는 미국이나 유럽의 그런 식과는 사뭇 달랐다. 그런 것을 너무나 한국적이라 해야 할지 혹은 원시적이라는 비평거리가 될는지는 모를 일이나, 나와 아내는 하여간에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만 키운 것이다. 앞으로의 젊은 세대들은 요즘같이 냉철하고 이성적으로만 치닫고 있으니 서양의 그네들처럼 그렇게 닮아 갈 것이란 미래 예상은 어렵지 않지만, 그 방식이 나로서는 안타깝고 두렵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자라던 그때에는 나의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사람 사는 집 같았다 … 아이들의 일상생활은 보기에 따라서는 비슷하고 평범한 것 같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새롭고 독특하여 아무리 섬세한 예술가일지라도 연출로는 불가능한 그런 자체 표현을 수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손에 든 내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집에만 들어오면 카메라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어쩌다 귀가 시간이 늦어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어 있을 때라도 한참 들여다보면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카메라를 또 들이대고, 아이 깨운다고 아내에게 야단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이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할 때, 더듬더듬 말을 하는 등의 변화가 보이면 공연히 나 혼자 흥분하여 필름만 더 축내곤 했으니 말이다 ..  (책머리에/전몽각)
 





 사진책 《윤미네 집》은 조금도 ‘전문성과 예술성’이 담기지 않은 사진을 그러모은 책입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전몽각 님한테 ‘사진을 찍는 전문성과 사진을 보여주는 예술성’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진책 《윤미네 집》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는 소리입니다. 누구나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듯(아이를 못 낳으면 데려다 키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아이를 키우면서 바라보고 느끼고 겪는 모습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소리입니다.

 다만, 《윤미네 집》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쉬운 사진을 담은 책이지만, 누구도 찍지 않은 쉬운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 둘레에 넘치는 ‘전문성과 예술성’이 담긴 사진들은 ‘누구나 찍을 수 없는 어려운 사진이지만, 누구나 찍고 있는 어려운 사진’이라는 소리입니다.

 전몽각 님이 담아낸 《윤미네 집》은 누구나 알고 느꼈고 부대끼며 받아들이는 삶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진작가와 사진예술가들이 담아내는 사진작품은 누구나 잘 모르고 못 느끼고 동떨어져 있는 꿈나라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듦사진이 되어야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다. 살아가며 늘 보고 겪는 모습을 담는다고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지 않습니다. 사진관이든 스튜디오이든 장비를 잘 갖추어 놓은 골방에서 빛을 맞추고 모델을 움직여 가며 담아내야 ‘예술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살림집 한켠에서 아이들과 옆지기를 35밀리 사진기나 값싼 디지털사진기로 담아낼 때 ‘예술작품’이 안 되란 법은 없습니다. 가난하다는 사람이나 제3세계라는 곳 사람이나 전쟁터에서 시달리는 사람이나 아프리카라든지 인도라든지 티벳이라든지 하는 곳 사람을 만나서 사진으로 담아야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설레는 가슴으로 만나다가 뜨거운 사랑으로 얼우고 풋풋한 믿음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는데 이 사진들이 ‘다큐사진’이란 이름을 못 얻을 까닭이 없습니다.
 





.. “《윤미네 집》에 제 사진이 많지만 저와 남동생 둘,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이 사진집의 주인공입니다. ‘윤미네 집’으로 불리던 우리 가족 모두의 다정하고 따뜻했던 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 《윤미네 집》은 언제 보아도 그리운 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제게 소중합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그 사진들을 보면서 제가 받은 사랑과 행복했던 그 시간들로부터 용기와 힘을 얻곤 했어요 … 외로운 외국에서 그 사진집을 받고서 부모님께 감사하며 많은 힘을 얻었지만 사진을 찍으시고 또 사진집으로 엮으신 그 절절한 부모님의 마음까지는 깊이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사진 속 어머니와 렌즈 너머에 계셨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사랑 하나하나를 너무나 또렷하게 느낍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큰 기쁨이라고 말씀하셨던 가족의 순간순간을 일기 쓰듯 기록하신 아버지의 그 마음을 이제는 잘 알 것 같아요.” ..  (딸 전윤미 씨 인터뷰/162∼163쪽)


 지난 1월 6일부터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 사진잔치가 열리고 있습니다. 살가도 님은 나라 안팎에 이름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아픈 삶과 힘겨운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는 훌륭한 분입니다. 저로서는 인천에서 고양시까지 가기는 너무 벅찰 뿐더러, 옆지기와 아기를 놓고 혼자 갈 수 없어, 일산에 사는 처남한테 용돈을 쥐어 주고 동무들하고 구경하러 가 보라고 했습니다. 책이라면 언제라도 장만할 수 있고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든 책장을 펼칠 수 있지만, 책으로 묶이지 않은 사진이라면 전시장에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5년에 서울에서 열린 사진잔치에 찾아가서 8000원을 치르고 사진을 돌아보고 난 다음에, 이분 사진책 《Workers》와 《Children》을 서울 혜화동 〈이음책방〉에서 장만했습니다. 사진잔치를 연 전시장에서는 전시장 느낌대로 좋은 느낌이었고, 언제나 다시 들출 수 있는 두툼한 사진책은 언제나 새롭게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이끕니다.

 사진책 《윤미네 집》을 《Workers》와 《Children》하고 견주는 일은 어울리지 않을는지 모르는데, 전몽각 님 사진책과 살가도 님 사진책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찬찬히 다시 돌아보아도 반가운 대목에서 비슷합니다. 다루는 사진감이 다르고 다루는 사진감만큼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도 다를 테지만, 사진기를 든 사람과 사진기 앞에 선 사람이 놓인 거리가 멀지 않다는 대목에서도 비슷합니다.

 ‘큰 이야기’를 다루거나 담아야만 훌륭한 사진이겠습니까. ‘큰 이야기’를 짚거나 찍어야만 다큐사진이 되겠습니까. ‘작은 이야기’를 다루어도 훌륭한 사진이며 다큐사진입니다. ‘작은 이야기’라 하여도 좋은 사진이 될 수 있고, ‘큰 이야기’라 하지만 좋지 못한 사진에 머물 수 있습니다.

 저는 살가도 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이분 사진은 흔히 말하는 ‘다큐’라는 이름만으로는 걸맞지 않다고 느껴, ‘삶사진’이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전몽각 님이 당신 식구들 삶자락을 담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도 숱한 다른 이름들은 들어맞지 않다고 느껴, 이때에도 ‘삶사진’ 같은 이름을 붙여야 알맞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두 분 모두 사람들 삶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테두리에서 온누리 사람들 눈물과 웃음을 보여주는 살가도 님 사진이라면, 작은 테두리에서 집식구들 눈물과 웃음을 보여주는 전몽각 님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테두리에서 온누리를 두루 찾아다니며 사람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헤아리는 사진을 찍은 살가도 님이라면, 작은 테두리에서 내 집식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껴안으면서 사람 삶이란 어떠한가 하고 살피는 사진을 찍은 전몽각 님이라고 생각합니다.
 





.. 남편이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기록하다 보니 쌓이게 되었고, 그래서 전시회도 하고 책도 만들게 되었다. 가족사진으로 첫 전시회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 당혹감은 말할 수 없었다. 아무 때나 카메라를 들이댈 때도 저러다 말겠지 하고 근근이 참았는데, 이제는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하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첫 출판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평범한 우리 가정의 일상사가 여과 없이 공개되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다시 책을 내는 데 동의하게 되었을까? ..  (사랑하는 남편과 지난날을 추억하며/이문강,200쪽)


 언제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고 누구라도 엮을 수 있는 사진인 《윤미네 집》입니다. 전몽각 님한테는 ‘윤미네 집’입니다. 우리 식구한테는 ‘사름벼리네 집’입니다. 이웃집에서는 숱한 ‘아무개네 집’이 이루어집니다.

 ‘아무개네 집’ 이야기는 사진으로 엮일 수 있고 글이나 그림으로 엮일 수 있습니다. 엮는 사람 나름이고, 엮는 사람 생각에 따라 다릅니다. 따로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이 아닌 ‘마음에 담아 놓는 이야기와 느낌’으로 우리 삶을 저마다 다르게 이루어 놓을 수 있습니다. 





 《윤미네 집》이든 《Workers》이든 《Children》이든 아름답거나 거룩하거나 좋거나 사랑스럽거나 따뜻하거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사진기를 든 사람이 사진기 앞에 선 사람하고 늘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언제나 곁에서 지켜보는 한편, 한결같이 손길을 내밀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엇을 지키고 가꾸고 돌보아야 하느냐는 마음을 튼튼하게 가다듬고 있기 때문에 ‘좋은’ 사진 하나 얻는다고 봅니다.

 ‘좋은’ 사진뿐 아니라, ‘좋은’ 글이나 ‘좋은’ 그림이나 ‘좋은’ 책이나 ‘좋은’ 노래는 따로 없다고 하지만, ‘좋은’ 무엇이란 어김없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 또한 틀림없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옆에 있습니다. 우리 옆지기가 좋은 사람이고, 우리 옆에 있어 주는 동무가 좋은 동무이며, 우리 옆에서 믿고 사랑하는 이웃이 좋은 이웃입니다. 돋보이고 아니고가 아니라, 내보이고 아니고가 아니라, 돈벌이가 되고 아니고를 떠나, 예술이 되고 아니고를 떠나,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이야기가 될 때에 비로소 ‘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우리 가슴에 곱다시 내려앉는다고 봅니다. (4343.1.7.쇠.ㅎㄲㅅㄱ)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10-01-1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가지고 싶던 사진집이라 땡투하고 구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