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145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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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56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병률

 문학동네

 2020.6.25.



  가고 싶다면 가면 됩니다. 가는 길을 막을 사람은 없습니다. 빨리 못 간다고 투덜거린다면, 그저 투덜길입니다. 오고 싶다면 오면 됩니다. 오는 길을 거스를 사람은 없습니다. 얼른 못 간다고 투정부린다면, 그저 투정쟁이예요. 담배 한 개비가 그리우면 담배를 태우면 돼요. 술 한 모금이 애틋하면 술을 마시면 됩니다. 슬프고 싶기에 슬프고, 기쁘고 싶기에 기뻐요. 누가 괴롭히거나 떠나기에 슬프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슬픔으로 물들이니 슬픕니다. 누가 뭘 주거나 치켜세우기에 기쁘지 않아요. 스스로 마음을 기쁨으로 적시니 기뻐요.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를 읽다가 가을날 하늘빛을 올려다봅니다. 저는 가을빛을 누리고 싶어 하늘도 보고 멧골도 보고 숲도 봅니다. 아이들 얼굴도 보고 우리 집 뒤꼍이며 마당을 보고, 찬바람에도 아직 날갯짓하는 나비를 봐요. 그 길을 가려는 아이는 오직 그 길을 생각하기에 걸림돌이 없어요. 그곳에 있으려는 아이는 오로지 그곳을 꿈꾸기에 외롭지 않아요. 마음을 달래고 싶은 이웃님한테 늘 “누가 달래 주지 못해요. 어느 글도 못 달래요. 이웃님 스스로 마음에 사랑씨앗을 심으셔요.” 하고 말합니다. ㅅㄴㄹ



술만 마실 수 없어 달걀 두 개를 삶습니다 (아무도 모르게/20쪽)


하루 한 번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당신 얼굴 때문입니다 (얼굴/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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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같은 마음 민음의 시 270
이서하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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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53


《진짜 같은 마음》

 이서하

 민음사

 2020.5.8.



  문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문학을 합니다. 수필을 쓰고 싶은 사람은 수필을 씁니다. 삶꽃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삶꽃을 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글을 씁니다. 이름만 다른 길이 아니라, 생각이 다르고, 삶이 다르며, 사랑이 모두 달라요. 어린이한테 소설을 쓰라고 시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린이더러 동화를 쓰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야 쓰는 소설이나 동화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소설이나 동화란 그저 ‘글 갈래에 붙이는 이름’일 뿐, 이런 이름을 굳이 알지 않더라도 ‘무엇을 쓰면서 생각을 그려 삶을 밝히려느냐’를 느껴서 받아들이면 넉넉해요. 《진짜 같은 마음》을 읽습니다. 문학이요 시입니다. 문학이나 시인 터라, 삶꽃이나 글은 아닙니다. 조금만 힘을 빼면 어떨까요? 아니 아예 모든 힘을 빼면 어떨까요? 문학이나 시라는 이름을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참이 아닌데 참처럼 보이는 마음이라면 거짓입니다. 참은 그저 참일 뿐, 참처럼 보이지 않아요. 거짓도 그저 거짓일 뿐, 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를 스스로 즐거이 지으려는 마음이라면 모두 삶꽃이에요. 이런 삶을 눈물로든 웃음으로든 풀어놓으면 모두 글입니다. ㅅㄴㄹ



그는 부모의 착한 아이였고 나는 없어 보이고 싶지 않은 아이였다 / 나는 그처럼 행동했다 코를 만지는 버릇, 그의 웃음까지 (숨탄것/24쪽)


현실은 실재와 달라서 ‘건드린다’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묘사된다 빨주노초파남보 시멘트 위에 시멘트를 쌓는다 / 당신은 인간입니까. 시멘트입니다. 당신은 남입니까. 검정입니다. 당신은 미장이입니까. 작품입니다. (콘크리트 균열과 생채기, 얼룩, 그리고 껌딱지로부터/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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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몰래 해 보세요 - 굴렁쇠 친구 2
김찬곤 엮음 / 도서출판 굴렁쇠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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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61


《선생님도 몰래 해 보세요》

 김찬곤 엮음

 굴렁쇠

 2002.3.10.



  어린이한테 글쓰기를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어린이가 글쓰기를 하기 바란다면, 어린이 곁에서 어른이 함께 글을 쓰면 됩니다. 쪽종이를 한 자락씩 앞에 펴고서 천천히 붓을 놀리면 되고, 둘이 글을 마쳤으면 서로 제 글을 읽으면 돼요.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말로 나누는 이야기를 나중에도 고스란히 되살려서 생각을 지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말을 하고 나서도 또렷이 되새기곤 하지만,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잊거나 잘못 떠올리기도 해요. 글로 남겨 놓으면 ‘아하, 내가 그때에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삶에 담았구나’ 하고 돌아볼 만합니다. 《선생님도 몰래 해 보세요》는 어린이 마음을 어린이가 스스로 보듬기를 바라면서 가볍게 동무한 길에 태어난 글자락을 한데 여밉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어린이 글자락을 으레 묶곤 하는데, 이런 글 가운데 어린이답게 하루를 살며 어린이로서 눈망울을 빛내는 글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글멋을 부리는 어린이가 끔찍하게 넘칩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멋 좀 부리지 맙시다. 다같이 오늘 이 하루를 사랑하면서 말빛을 글빛으로 넌지시 옮겨 봐요. ㅅㄴㄹ



바닷가에 / 예쁜 들국화가 피어 있네. / 들국화는 파도 소리도 듣고 / 바람 소리도 맨날 듣는다. / 참 좋겠다. / 갈매기도 맨날 본다. / 그래서 바닷가에 / 피어 있는 들국화는 예쁘다. (들국화 1999.11.3. 경북 울진 죽변초 김수지/17쪽)


학교에 갈 때 힘이 없었다. / 그래도 씩씩하게 걸어갔다. / 엄마가 나한테 막 소리친 게 / 화가 났다. / 아버지가 오토바이로 태워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그래도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니까 / 기분이 풀렸다. (학교 가는 길. 충북 청주 주성초 함석호/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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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도 삐죽이가 무서워서 까악 - 굴렁쇠 친구 3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 글 그림, 김찬곤 엮음 / 도서출판 굴렁쇠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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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60


《까치도 삐죽이가 무서워서 까악》

 김찬곤 엮음

 굴렁쇠

 2002.8.10.



  어린이는 어린이로 살고, 어른은 어른으로 삽니다. 사람으로서는 둘이 같으나, 살아가는 눈길로는 다릅니다. 어린이가 어른 흉내를 내며 말을 하거나 글을 쓸 까닭이 없고, 어른이 어린이 시늉을 내며 말을 한다든지 글을 쓸 일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한 길을 어른한테 말할 뿐입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마주하고 살피고 받아들인 삶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뿐입니다. 적잖은 어른이 애쓰지만, 아직 이 나라는 훨씬 더 많구나 싶은 어른이 어린이를 ‘어른 틀이나 굴레나 잣대’에 가두는 쪽에 섭니다. 이런 모습을 찬찬히 추스르고 싶은 뜻으로 태어난 〈어린이신문 굴렁쇠〉가 있고, 어린이 글을 모아 《까치도 삐죽이가 무서워서 까악》을 펴낸 적 있어요. 이제 사라진 어린이신문이요 책이 되었습니다만, 지난날 ‘굴렁쇠’ 신문이 담아낸 글빛은 오늘 더더욱 되새길 만하지 싶어요.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그저 어린이인 눈빛이랑 삶빛을 스스럼없이 담아내어 수수하게 밝히는 이야기를 펴거든요. 문학상하고 공모전이 몽땅 사라지기를 빕니다. 글은 ‘첫째’를 뽑으려고 쓰지 않습니다. ㅅㄴㄹ



밖에 나가 / 나뭇잎을 흩뜨려 보니 / 토끼가 좋아하는 씀바귀가 나왔네 // 만져 보면 꺼칠꺼칠 / 가만히 보면 날씬한 배추 같네 (씀바귀 2000. 경북 포항 동부초 최영은)


비가 내린다 / 땅이 젖어 촉촉하다 / 이젠 추웠다 / 안에는 아직 덥다 / 가을비라서 춥다 / 비야 그냥 그쳐라 / 우리 동생 집에 올 때 춥겠다. (비 2001.8.30. 경남 창원 남산초 백나래/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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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해 민음의 시 274
윤종욱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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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52


《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해》

 윤종욱

 민음사

 2020.8.28.



  아침에 이웃 할아버지가 우리 뒤꼍으로 건너오시면서 밤을 한 꾸러미 건넵니다. 이웃 할아버지는 우리 집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에 대학교까지 안 다니면 앞으로 뭘로 먹고사느냐고 걱정합니다. 우리는 ‘배움끈’으로 아이들 밥벌이를 찾을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살림노래’로 즐겁게 살림꽃을 지피면 넉넉하리라 여깁니다. 대학교를 다녀서 얻는 일자리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안 아름답다는 소리가 아니라, ‘대학 흐름에 맞춘 일자리’일 뿐이기에, 숲길하고는 등지는구나 싶어요. 대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글쓰기나 시쓰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안 사랑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대학 교수가 들려주는 글쓰기’는 숲말하고는 동떨어지는구나 싶어요. 《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해》를 읽으며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는 시쓰기를 이렇게 들려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렇게 쓰기에 ‘시’로 여기고, 이런 시여야 ‘시집’으로 묶네 싶어요. 해를 먹으며 자라는 풀을, 비를 마시며 크는 꽃을, 바람을 머금으로 튼튼한 나무를, 대학교는 조금도 못 가르치네 싶습니다. 말만 만지작거리면 말장난에 그치기 쉽습니다.



너는 아마 개인적인 언어일 것이다 / 말도 안 되는 너는 / 말줄임표를 중얼거리는 / 너는…… (콘텍스트/19쪽)


우리는 상투적인 호칭이 되자 / 슬픔을 환기하기 위해 / 얼굴을 열어 놓은 우리는 / 정면이 없이 / 측면과 빗면에 둘러싸여 있는 / 우리는 (단계적으로/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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