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의 불빛은 아직도 어둡다
배상환 지음 / 책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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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15.

노래책시렁 380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

 배상환

 나남

 1988.3.5.



  요즈음은 예전보다 아이를 덜 다그치거나 나무라거나 때리지만, 아직 ‘어른 아닌 꼰대’는 많고, ‘새로 꼰대 자리로 들어서는 아이’도 많습니다. 다만, 예전에도 ‘꼰대 아닌 어른’은 드문드문 있었고, 이제 ‘꼰대 아닌 어른으로 나아가는 아이’도 곧잘 만납니다.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를 처음 읽던 1994년이나 되읽는 2023년이나 영 거북합니다. 그때에도 〈B선생〉 같은 글을 버젓이 내놓고서 ‘시·문학’이라 여겼고, 요즈음에도 이 비슷한 글은 으레 튀어나옵니다. 어렵게 ‘자기반성’이란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힘도 나이도 이름도 적거나 낮다고 여겨 함부로 말하고 때리던 버릇을 뉘우치거나 무릎꿇는 글을 쓴 ‘꼰대 아닌 어른’은 몇이나 있을까요? 아무리 1970∼80년대나 1990년대였다 하더라도, 그무렵에 모든 이들이 ‘어른 아닌 꼰대’이지 않았습니다. 서슬퍼렇던 때에도 주먹이나 매를 안 든 ‘꼰대 아닌 어른’이 있었고, ‘꼰대 아닌 어른’이 쓴 글을 ‘시·문학’이라 여긴 눈길은 드물더군요. 이즈막에 나도는 글은 참말로 ‘시·문학’일까요? ‘시인 척’이나 ‘문학인 척’이지는 않나요? 노래를 쓰고 싶다면, 노래를 읽고 싶다면, 노래를 나누려 한다면, 부디 아이를 낳아 똥기저귀를 손빨래 합시다.


ㅅㄴㄹ


난 나의 가족을 위하여 / 문교부 지시에 충실할 수밖에 없어 / 넌 선생님 말씀을 안 듣는 나쁜 놈! / 너의 부모님은 매달 발송되는 / 과외 금지 가정통신도 안 읽어 보시냐? / 너의 아빠는 이제 많은 세금을 내셔야 돼 / 개새씨야! / x잡고 반성해 (B선생·1/24쪽)


퇴근 후 /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생맥주를 먹고 / 새벽이 되어서야 모두 토해낼 수 있었다 / 노가리, 뻔데기, 골뱅이 / 뻔데기 주름 하나하나에 / 미운 자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 날이 밝으면 모두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다 (B선생·2/26쪽)


한 학생이 손을 든다 / 선생님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 어떤 도움을 줍니까 / 야 이 새끼야 지랄말고 외워 놔 / 연합고사에 다 나온단 말이야 (B선생·3/28쪽)


+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배상환, 나남, 1988)


벗어 놓고 부끄럽다고 말하려는 것은 타고난 뻔뻔스러움인가

→ 벗어 놓고 부끄럽다고 말하려면 타고나기를 뻔뻔스러운가

9쪽


학생들에게 벌을 주고 있는 저 황색인간은 백인의 편인가 흑인의 편인가

→ 아이들을 굴리는 저 누렁이는 하양이 쪽인가 까망이 쪽인가

→ 아이들을 다그치는 저 누런이는 흰 쪽인가 검은 쪽인가

17쪽


난 나의 가족을 위하여

→ 난 우리 집을 돌보려

→ 난 우리 집안 때문에

24쪽


옆 사나이에 비해 몹시 작아 보이는 내 성기가 창피할 때보다

→ 옆 사나이보다 몹시 작아 보이는 내 고추가 창피할 때보다

→ 옆 사나이보다 몹시 작아 보이는 내 잠지가 창피할 때보다

4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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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칠천 원 사십편시선 17
조영옥 지음 / 작은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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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15.

노래책시렁 379


《일만칠천 원》

 조영옥

 작은숲

 2015.6.1.



  비는 서둘러 내리지 않습니다. 구름은 서둘러 흐르지 않습니다. 바람도 해도 서둘러 움직이지 않습니다. 와락 쏟아지는 비가 있고, 드센바람을 타고서 빠르게 달리는 듯한 구름이 있지만, 해바람비는 언제나 철빛을 살리면서 찾아듭니다. 아기는 빨리 자라야 할 까닭이 없고, 어린이는 빨리 배워야 하지 않으며, 어른은 빨리 죽어야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여러 고장을 잇는 빠른길을 놓을 수 있되, 마을하고 마을 사이는 느슨하면서 넉넉히 오갈 길을 놓아야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일만칠천 원》을 읽다가 자꾸 갸웃했습니다. 꼭 ‘시’를 써내야 하지 않습니다. 꼭 뭔가 새롭다고 여길 하루를 맛보거나 겪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느슨히 하루를 살피면서, 더 천천히 삶빛을 그대로 삶말로 담으면 됩니다. 굳이 멀리 가야 해를 볼 수 있지 않아요. 마을에서도, 골목에서도, 나무 곁에서도 해를 봅니다. 밤에 불빛으로 따가우면 별을 못 보겠지요. 그런데 서울 한복판조차 눈을 가만히 감고서 마음을 고요히 다스리면 ‘감은 눈’으로도 별을 만납니다. 노래란, 대단해야 하지 않되, 언제나 삶을 사랑하는 말씨입니다. 그저 오늘을 기쁘게 바라보고 맞이하면서 말씨앗을 얹으면 노래로 피어납니다. 이곳에서 노래씨앗을 찾아보기를 바라요.


ㅅㄴㄹ


해 지는 와온바다 본다며 / 서쪽으로 서쪽으로 차를 달려 / 와온바다에 왔다 / 먼 수평선 위 /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잦아들고 (와온바다/21쪽)


땅콩을 심었다 / 퇴비 뿌리고 / 흙 한번 뒤집어 주고 / 한 알 한 알 꼭꼭 / 숨겼더니 / 앙증맞게 옹기종기 모인 / 푸른 잎 / 진노랑꽃까지 피우더니 / 가을이 채 오기 전 / 주렁주렁 땅콩이 열렸다 (땅콩 캐는 날/28쪽)


+


《일만칠천 원》(조영옥, 작은숲, 2015)


먼 수평선 위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 먼 물금 위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 먼 바다금 위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21쪽


진노랑꽃까지 피우더니

→ 짙노랑꽃까지 피우더니

28쪽


퇴비 뿌리고 흙 한번 뒤집고

→ 거름 뿌리고 흙 한벌 뒤집고

28쪽


하얀 종이 위에 파란색 글씨를 쓴다

→ 하얀 종이에 파란 글씨를 쓴다

45쪽


江은 나의 몸으로 스며든다

→ 냇물은 내 몸으로 스며든다

5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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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 장정일 자선시집
장정일 지음 / 책읽는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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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

노래책시렁 325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장정일

 청하

 1988.8.30.



  가르친다고 배우지 않습니다. 가리킨다고 알아보지 않습니다. ‘가르치다·가리키다’는 얼핏 비슷해 보이나 다른 낱말인데, 예전에는 두 낱말을 헷갈리는 사람을 거의 못 봤으나, 이제는 길잡이(교사) 가운데 두 낱말을 옳게 가려서 쓰는 사람을 보기가 오히려 어렵더군요. ‘가르치다’는 ‘가르다 + 치다’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가리키다’는 ‘가리다 + 키우다’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영어로 보면 ‘teach’하고 ‘touch’는 비슷하되 아주 다른 말입니다. 《서울에서 보낸 3주일》은 언제 되읽어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장정일 님은 요새 스스로 새롭게 노래를 쓰는지 안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988년에 선보인 글자락은 그무렵 우리 터전을 스스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보여주면서 재미있습니다. 2023년 오늘에는 어떤 눈썰미를 펼 만할까요? 2023년에도 1988년 눈썰미 그대로이면 될까요, 아니면 스스로 거듭나거나 자라나거나 키운 눈망울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책집마실을 하다가 1988년 노래책 《서울에서 보낸 3주일》하고 2023년 어느 이름난 글바치 책이 나란히 꽂혔다면, 저는 이름난 글바치 책은 거들떠보지 않고 1988년 노래책을 다시 살 마음입니다. 다만, 장정일 님이 새로 선보이는 책보다 이녁 1988년 글에 눈이 가고요.


ㅅㄴㄹ


먼저 / 치마와 살양말을 그대로 둔 채 / 그녀의 스웨터를 단번에 / 가슴까지 치밀어 올릴 것 / 그런 다음 / 당신의 출신 대학 문장이 새겨진 / 혁대의 바클로 / 그녀의 하얀 등허리를 / 후려 갈길 것! / (곧바로 당신은 / 정신병원에 갇히고 / 그녀는 약국으로 달려가 / 파스를 사 붙인다 (촌충·8/41쪽)


〈중앙〉에서 다시 편지가 왔다 / 변방에서의 설움을 벌써 잊었느냐고 / 〈중앙〉에 와서 숨은 능력을 뽐낼 생각이 없느냐고 / 이 기회를 놓치면 특혜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고 /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중앙〉과 나/77쪽)


예쁘고 쓸 만한 애들은 모두 배우가 되려 하고 / 요사이 학생들은 새로 나온 춤에만 관심을 갖는다 / 그러나(그러나 : 강한 부정) 소녀경을 고전으로 추천하는 문교부 / 행정이 어찌 학생들의 부실을 탓하리 어느 날인가 나는 (열 사람/8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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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창비시선 78
이은봉 지음 / 창비 / 198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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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

노래책시렁 286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은봉

 창작과비평사

 1989.9.15.



  시골에서 나고자라되 나락꽃을 모르는 어린이·푸름이가 많습니다. 이 아이들은 스무 살을 넘기거나 서른 살이 되어도 나락꽃뿐 아니라 나락들을 모릅니다. 봄들하고 여름들이 얼마나 다른지, ‘사름’이 무엇인지 모르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림조차 못 합니다. ‘씨나락’은 ‘씨 + 나락’입니다. “이듬해에 심을 씨로 삼는 나락”인 씨나락입니다. 겨울하고 봄에 굶더라도 씨나락은 안 건드리지요.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터무니없는 소리”를 가리킵니다. 한 치 앞도 안 보면서 다 죽자는 멍청한 소리라는 뜻이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읽은 지 한참 됩니다. 네철을 책이름으로 삼는데 무슨 철을 말하려는지 종잡을 길이 없어서 꽤 오래 책시렁에 얹었다가 치웠습니다. 시골집에서 조용히 살림을 하다가 시골버스로 읍내에만 나가더라도 시골버스가 시끄럽고, 시골 아이들이 막말에 거친말이 춤춥니다. 큰고장이나 서울에 이따금 마실하면 하늘을 볼 틈이 없고, 쇳덩이(자동차)를 비껴 걷느라 온몸이 뻐근합니다. 어느덧 아이어른 몽땅 철을 잊고 잃고 등진 나라입니다. 철없는 나라를 이룬 철없는 사람은 철빛이 흐르는 글을 언제쯤 쓸 수 있을까요? 철들어야 참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서울은 철이 없습니다.


ㅅㄴㄹ


내가 나를 끌어안듯이 / 사랑한다는 것 / 미워한다는 것 / 슬픔이여 슬픔의 끝에서 / 솟아오르는 꽃송이여 / 사악한 독재자처럼 / 그 굉장한 역사처럼 / 지워지지 않는 것 / 불에 덴 자국처럼 (슬픔꽃/26쪽)


올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로 끌려갔지만 / 사람들은 더없이 행복했고 / 대문밖 한치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 몇개의 부실기업이 / 으레 은행으로 넘어갔을 뿐 / 고속도로 위에선 여전히 / 대형 화물트럭이 종종거렸다 (남한민국 1982년 가을/44쪽)


+


《봄 여름 가을 겨울》(이은봉, 창작과비평사, 1989)


사랑한다는 것 미워한다는 것

→ 사랑하기 미워하기

→ 사랑 미움

26쪽


사악한 독재자처럼 그 굉장한 역사처럼

→ 몹쓸 망나니처럼 대단한 발자취처럼

→ 못난 가시울처럼 엄청난 발걸음처럼

26쪽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로 끌려갔지만 사람들은 더없이 행복했고

→ 숱한 젊은이가 싸움터로 끌려갔지만 사람들은 더없이 웃고

44쪽


고속도로 위에선 여전히 대형 화물트럭이 종종거렸다

→ 빠른길에선 오늘도 큰 짐수레가 종종거렸다

4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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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거처 황금알 시인선 95
류인채 지음 / 황금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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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

노래책시렁 300


《소리의 거처》

 류인채

 황금알

 2014.10.31.



  글을 머리로 쓰다가는 스스로 굴레에 갇힙니다. 말을 담은 그림인 글은 말결을 살려서 써야 비로소 마음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말이란 “그냥 소리”가 아닌 “마음을 알려서 나누는 소리”이거든요. 그러니까 말만 옮긴대서 글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소리인 말’을 그려야 비로소 글입니다. 마음은 우리가 짓는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쳇바퀴처럼 보내는 나날을 그냥그냥 담으면 ‘쳇바퀴나 굴레인 마음’이요, 모든 나날이 새롭고 다른 줄 느끼며 하루를 짓는다면 ‘언제나 빛나는 마음’입니다. 《소리의 거처》를 읽었습니다. “소리의 거처”라는 이름부터 멋이나 치레나 꾸밈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우리말에 담는 길을 언제 열 수 있을까요? 말이며 소리가 간 곳을 살피지 않으면, 말하고 소리가 머무는 자리를 보지 않으면, 소리자리나 소리밭이나 소리터를 읽지 않으면, 으레 하늘에 덩그러니 떠서 맴돌겠지요. 삶을 써야만 글을 이루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다 다르게 바라보고 사랑하면서 삶을 짓는 살림지기로서 오늘을 노래하고 춤출 노릇입니다. 이때에는 말이며 글이 저절로 쏟아져서 이야기가 하나하나 태어나거든요. 새롭게 하루를 사랑하는 살림손이라면 어떤 글을 써도 노래이되, 살림손이 아니면 겉치레입니다.


ㅅㄴㄹ


지렁이 한 마리 오후 2시의 보도블록 위를 기어간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앞을 간다 장마통에 집 나온 저 벌거숭이 봉사 간다 바로 앞이 차도인 줄도 모르고 개미가 새까맣게 몰려오는 소리도 못 듣고. (캄캄한 대낮/37쪽)


어딘가에 잠복했던 기억들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 들린다 수많은 기억의 동굴로 바람이 들랑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과부하 된 기억들이 썰물처럼 쓸려나간 자리에 (엎질러지다/86쪽)


+


《소리의 거처》(류인채, 황금알, 2014)


황사 마스크가 공원을 걷습니다

→ 모래 가리개가 쉼터를 걷습니다

17쪽


오후 2시의 보도블록 위를 기어간다

→ 낮 2각단 거님길을 기어간다

→ 낮 2눈금 돌바닥을 기어간다

37쪽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37쪽


바로 앞이 차도인 줄도 모르고

→ 바로 앞이 길인 줄도 모르고

→ 바로 앞이 한길인 줄도 모르고

37쪽


중년의 사내, 싸락눈을 배경으로 곤히 잠들었네

→ 아저씨, 싸락눈을 뒤로 깊이 잠들었네

→ 아재, 싸락눈 오는데 고단히 잠들었네

43쪽


풍년가를 부르며 혼자

→ 넘실노래 부르며 혼자

→ 푸짐노래 푸르며 혼자

43쪽


하얀 그녀의 귓볼을 핥았다

→ 하얀 그사람 귓볼을 핥았다

→ 하얀 귓볼을 핥았다

65쪽


어딘가에 잠복했던 기억들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

→ 어딘가에 숨은 이야기가 툭툭 끊어지는 소리

→ 어딘가에 잠든 생각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

86쪽


과부하 된 기억들이 썰물처럼 쓸려나간 자리에

→ 넘치는 생각이 썰물로 빈 자리에

→ 벅찬 이야기가 쓸려나간 자리에

86쪽


늦은 문상객들이 돌아갔다

→ 늦은 보듬손님 돌아갔다

→ 늦은 비나리손 돌아갔다

102쪽


향도 끝까지 몸을 사른다

→ 불도 끝까지 몸을 사른다

→ 내도 끝까지 몸을 사른다

102쪽


천지 사방은 고요하고

→ 둘레는 고요하고

→ 모두 고요하고

102쪽


태연하게 두 발로 허공을 딛고

→ 멀쩡하게 두 발로 하늘을 딛고

→ 가만히 두 발로 바람을 딛고

106쪽


무보수의 노동을 견디고 있다

→ 값없이 일을 견딘다

→ 그냥 일살림을 견딘다

10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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