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격을 얻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557
이혜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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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10.

노래책시렁 391


《빛의 자격을 얻어》

 이혜미

 문학과지성사

 2021.8.24.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아이들한테 속삭인다고 여기면서 말을 한다면, 제 손과 입과 눈과 귀에서 피어나는 말은 반짝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아이들이 속살거리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말을 들으면, 온몸과 온마음으로 스미는 말이 춤춥니다. ‘저분’이라고 여길 적하고, ‘저놈’이라고 여길 적에는, 우리가 스스로 펴는 말이나 듣는 말이 다릅니다. “저 꽃”이라고 볼 적하고, “저 서울”이라고 볼 적에도, 우리가 스스로 나누는 말이 달라요. 《빛의 자격을 얻어》는 어떤 마음인 채 어떤 말을 나누려는 글자락일까요? 굳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언제나 ‘말’을 나누는 마음으로 문득 몇 마디를 추스른다면, 애써 ‘문학’을 하지 않는다면, 오늘도 어제도 모레도 서로서로 노래로 피어나는 사랑을 누린다면, 글자락이 확 달랐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은 언제나 말을 담고, 말은 언제나 마음을 담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삶을 담고, 넋은 언제나 우리가 온몸으로 삶을 누리도록 북돋웁니다. 이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말글이 늘 반짝여요. 이 얼거리를 안 헤아리면, 말글을 꾸미다가 헤매요. 말빛을 보기에 마음빛을 봅니다. 글빛을 읽기에 삶빛을 읽어요. 턱(자격)을 치워야 바람이 드나듭니다. 


ㅅㄴㄹ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슬픈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오늘은 달무리를 떠나왔고 아침에 못다 쓴 눈보라에 집중했다. 교차하던 밤과 낮. 기만과 거짓. 목을 다정하게 조여오던 손에게 더없이 친절해지던. 밤의 가장자리로 엎드리며 나는 순한 목소리가 되고 싶었다. (삭흔/35쪽)


커피를 마실 때 불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 검은 것을 만지며 먼 곳을 생각하지 않는다 / 차가운 물을 마실 때는 식물 아닌 것을 떠올린다 / 무늬가 화려한 옷을 입고 잠들지 않는다 (드림캐처/52쪽)


+


《빛의 자격을 얻어》(이혜미, 문학과지성사, 2021)


수평선은 누군가 쓰다 펼쳐둔 일기장 같아

→ 물금은 누가 쓰다 펼쳐둔 하루글 같아

→ 물끝금은 누가 쓰다 펼쳐둔 날적이 같아

9쪽


나는 당신이 내버렸던 과실

→ 나는 그대가 내버린 과일

→ 나는 네가 내버린 알

12쪽


배달집 전단지들이 점점 화려해지는 이유를

→ 나름집 꾸러미가 자꾸 반짝거리는 뜻을

→ 돌림집 알림쪽이 더 무지갯빛인 까닭을

→ 날개집 쪽갈피가 날로 반들거리는데

15쪽


저기압골이 굵어지는 새벽 출항이다

→ 낮바람골이 굵은 새벽에 떠난다

→ 바람골이 굵은 새벽에 떠난다

22쪽


오늘을 감당하느라 열 손가락이 녹아들던 우기

→ 오늘을 메느라 열 손가락이 녹아들던 비날

→ 오늘을 지느라 열 손가락이 녹아들던 비철

24쪽


투입구로 불쑥 들어오던 손

→ 밑으로 불쑥 들어오던 손

→ 구멍으로 불쑥 들어오던 손

→ 굿으로 불쑥 들어오던 손

→ 틈으로 불쑥 들어오던 손

27쪽


비참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 슬픔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 구렁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 눈물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 가난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30쪽


겨울이 복용한 가루약이 서서히 헐거워지는 새벽입니다

→ 겨울에 넣은 가루가 천천히 헐거워가는 새벽입니다

38쪽


멀어지는 중이니까

→ 멀어지니까

→ 멀리 가니까

43쪽


불투명한 스노우볼처럼

→ 흐릿한 눈꽃공처럼

→ 보얀 눈덩이처럼

46쪽


간이침대는 창백하게 젖어듭니다

→ 접는자리는 허옇게 젖어듭니다

→ 곁자리는 파리하게 젖어듭니다

70쪽


멀리서 모국어를 데려와 선물하던 밤

→ 멀리서 우리말을 데려와 베풀던 밤

→ 멀리서 엄마말을 데려와 건네던 밤

→ 멀리서 겨레말을 데려와 읊던 밤

72쪽


너는 몇 층의 눈을 가졌을까

→ 네 눈은 몇 겹일까

→ 너는 눈이 몇 켜일까

106쪽


두꺼운 이불 아래에서 서로를 만지며

→ 두꺼운 이불 밑에서 서로를 만지며

→ 두꺼운 이불을 덮고 서로를 만지며

11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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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돌멩이 오리 - 2020 화이트 레이븐즈 선정도서 문학동네 동시집 77
이안 지음, 정진호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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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어린이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0.

노래책시렁 387


《오리 돌멩이 오리》

 이안 글

 정진호 그림

 문학동네

 2020.2.20.



  어린이한테 아무 밥이나 먹이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무 옷이나 입히는 어른도 없습니다. 아이 몸을 망가뜨리는 밥이라든지, 아이 살결에 나쁜 천이나 실로 지은 옷을 입힌다면 어른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린이 마음밭을 망가뜨리는 말씨로 여민 ‘문학’을 함부로 읽혀도 될까요? 《오리 돌멩이 오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장난으로 가득합니다.


기차는 긴 차 / 길어서 / 길게 / 휘어지기도 / 하는 차 //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 소리가 긴 차 // 떠난 사람 생각이 / 길게 되감기는 차 (기차/16쪽)


  ‘기차’는 “긴 차”가 아닌 “김을 내며 달리는 수레”입니다. 우리말 ‘김’은 ‘길게’ 올라가는 ‘기운’을 가리킵니다만, ‘김·길다·기운’하고 한자 ‘기(氣·汽)’가 맞물리는 대목이 있습니다만, “떠난 사람 생각이 / 길게 되감기는 차”를 들려주는 〈기차〉라는 글은 여러모로 터무니없습니다. 어린이가 뭘 느끼거나 배울까요? 더구나 예전 “이승만·박정희 군사독재에 어린이를 억누르던 동심천사주의”를 닮은 이런 얼거리를 2020년에도 ‘동시’라는 이름으로 쓰니 안타깝습니다. 이른바 ‘추억·완상’에 젖어 군사독재를 감추기에 바빴던 예전 사람들이 쓰던 ‘문학기교’입니다.


뻐꾹요 뻐꾹이오 / 뻐꾹입니다 / 존댓말 쓰는 꼴을 / 한 번도 못 봤다니까 / 요 (뻐꾸기/18쪽)


  새는 새입니다. 새가 들려주는 소리는 노래이고,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바로 새랑 개구리랑 풀벌레랑 바람이랑 바다한테서 배운 소릿가락입니다. 들숲을 가르며 노래하는 뻐꾸기가 아닌, 사람들 마음을 달래고 녹이는 멧새가 아닌, 어린이한테 삶도 숲도 들려주지 못 하는 얕은 글이 ‘동시’라면 어린이 앞에서 너무 창피합니다.


웃는 거야, / 찡그린 거야? / …에헴이야! // 야옹이야, / 멍멍이야? / ―어흥이야! (삼색제비꽃/22쪽)


  우리말씨로는, 글에 ‘―’를 안 넣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낱말이며 글자락에 으레 ‘―’를 넣습니다. 어린이가 읽는 글에 이런 일본말씨를 함부로 넣는 분이 무척 많아요. 아직 우리가 못 털거나 안 씻은 일제강점기 찌꺼기입니다. 그런데 세빛제비꽃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장난을 해본들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제비꽃이 왜 제비꽃인 줄 모르기에 이런 글을 어린이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쓰는구나 싶습니다. 제비꽃은, 겨울이 저물고 새봄이 찾아들 즈음 먼먼 바다를 가르면서 반갑게 찾아오는 제비가 돌아오는 즈음에 피는 새봄맞이꽃입니다.


이래 봬도 / 나, / 나무요. // 뾰족뾰족 뿔, / 보이지요? // 황소보다 / 크고 힘센 / 소나무가 될 거거든요 (어린 소나무의 각오/82쪽)


  ‘소나무’는 짐승 ‘소’가 아닌 ‘솔 + 나무’입니다. 전라도에서는 ‘부추’라 안 하고 ‘솔’이라 합니다. 이 ‘솔’은 ‘솟다’가 뿌리입니다. 그래서 ‘쏠’이라는 오랜 우리말도 있습니다. 잎이 ‘솟듯’ 나는 나무이기에 ‘소나무’입니다. 이 얼거리로 ‘송곳·솟대·솟구치다’라는 낱말이 태어났어요. 어느 모로는, 소는 뿔이 ‘솟았’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다만, 나무이름에 붙인 ‘소·솔’이 무엇인지 안 읽거나 잘못 읽으면서 쓰는 글을 어린이한테 읽힌다면, 어린이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곳에서 헤맵니다. 부디 우리 어른들이 철이 좀 들어야겠고, 철빛부터 배워야겠습니다. 네 가지 철이 어떤 결이고 길이면서 숨빛인지 모르는 채 글만 붙잡고서 씨름을 하다 보니 말장난 동시가 판치는구나 싶습니다.


길에서 차에 치여 죽는 걸 / 로드 킬이라고 하는데 / 우리말로 / 길 죽음이라고 번역해 놓은 걸 봤어 (로드 킬/88쪽)


  영어로는 ‘로드킬’이라 하는데, 우리말로는 ‘길죽음·길주검’입니다. 이 낱말은 숲노래 씨가 2007년에 지었습니다. 황윤 님이 2006년에 찍은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보임꽃이 있는데, 이 보임꽃을 보고서 처음 지은 낱말입니다. 할매할배를 비롯해서 어린이 누구나 “길에서 죽은 짐승”을 알아보기에 수월하도록 헤아려서 지었습니다. “번역한 낱말”이 아니라, 새로 지은 낱말인 ‘길죽음·길주검’입니다. 띄지 않고 붙여서 ‘길죽음’입니다. 이 낱말은 2007년부터 퍼졌습니다만, 이 얼거리를 모를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누리집에서 조금만 뒤적여도 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ㅅㄴㄹ


《오리 돌멩이 오리》(이안, 문학동네, 2020)


52편의 동시가 실려 있단다

→ 52자락 글을 실었단다

→ 52꼭지 노래를 실었단다

4쪽


다른 모양과 색깔을 갖고 싶었던

→ 다른 모습과 빛깔이고 싶던

5쪽


마음이 한결 은은해질 거야

→ 마음이 한결 부드럽지

→ 마음이 한결 나직하지

6쪽


존댓말 쓰는 꼴을

→ 높임말 쓰는 꼴을

18쪽


웃는 거야, 찡그린 거야? …에헴이야! 야옹이야, 멍멍이야? ―어흥이야!

→ 웃니, 찡그리니? 에헴이야! 야옹이야, 멍멍이야? 어흥이야!

22쪽


풀칠 검사만 통과하면 합격이에요

→ 풀만 잘 바르면 돼요

29쪽


물속 나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가

→ 물나라로 들어가는 열쇠가

42쪽


옹알이도 시작했으니

→ 옹알이도 하니

45쪽


곧 듣게 될 거라며

→ 곧 듣는다며

45쪽


봄에 출발해서 가을에 도착한

→ 봄에 떠나 가을에 닿은

→ 봄에 가서 가을에 온

46쪽


놓아두고 기다리는 중이야

→ 놓아두고 기다려

49쪽


싸 보이는 펜던트가 실은

→ 싸 보이는 꽃걸이가 정작

52쪽


둥글려 만든 거라는 걸

→ 둥글린 줄

52쪽


딸기 맛도 좀 나는 거 같았어

→ 딸기맛도 좀 나

63쪽


전교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 온터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67쪽


저에에게 100일의 시간을 주세요

→ 저한테 온날을 주세요

75쪽


매운 건 사양할래요

→ 매우면 싫어요

→ 매우면 안 먹어요

75쪽


소나무가 될 거거든요

→ 소나무가 되거든요

82쪽


우리말로 길 죽음이라고 번역해 놓은 걸 봤어

→ 우리말로 길죽음이라 옮긴 글을 봤어

88쪽


찔레꽃 식당 2호점, 3호점, 4호점

→ 찔레꽃 밥집 둘째, 셋째, 넷째

10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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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랜 사랑 창비시선 134
고재종 지음 / 창비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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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0.

노래책시렁 386


《날랜 사랑》

 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95.5.10.



  서른 해쯤 앞서 《날랜 사랑》을 처음 만났고, 열 해쯤 앞서 느낌글을 썼고, 올해에 부산 보수동 헌책집에서 이 노래책을 새삼스레 만나서 다시 뒤적였습니다. ‘서울 서초 이동도서관’에 있던 노래책은 어쩌다가 부산까지 날아갔을까요? 이음책숲(이동도서관)이란, 책숲이 없는 마을에 책을 수레에 싣고서 찾아가는 얼거리입니다. 요즈음이야 서울 서초가 가멸다고 여기지만, 예전에는 가멸지 않은 마을도 품었습니다. 온나라 어디이든 가난한 이하고 가멸찬 이가 어우러집니다. 그나저나 《날랜 사랑》은 시골에서 짓는 삶을 담습니다. 그러나 시골말로 시골을 그리지는 않아요. “서울말로 문학을 하는 시집”인 얼개입니다. 예나 이제나 시골에서도 노래를 쓰는 분이 적잖습니다만, 막상 시골일을 글로 담지는 않더군요. 다들 서울말로 서울살이를 그립니다. 풀을 ‘풀’이라 하지 않으면 뭘까요? 멧들을 ‘멧들’이라 않고, 들숲을 ‘들숲’이라 하지 않으면 뭔가요? 오랜만에 되읽은 글자락에는 어김없이 술집(주막) 타령이 깃듭니다. “문학하는 남성”은 으레 술집에을 드나든 하루를 쓰더군요. 이와 달리 “글쓰는 순이”는 술집 타령을 아예 안 쓰다시피 합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는 순이라면, 어떤 사랑을 어디에서 어떻게 노래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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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아직도 낡은 집들에 / 제 등불을 건다 / 사위 꼭꼭 조여드는 칠흑을 뚫고 / 저 산밑 제각집도 대밭 안집도 / 밀감빛 흐린 등불을 건다 (마을의 별/24쪽)


괜히 서럽고 / 괜히 그리워 / 뜨건 소주 한잔 / 날래 꺾는 것이다 (대설/120쪽)


+


《날랜 사랑》(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95)


서로의 애로와 집안의 우환

→ 서로 걱정과 집안 근심

53


사방 산천 연두초록 물감 걷잡을 수 없이

→ 곳곳 들숲 옅푸른 물감 걷잡을 수 없이

→ 둘레 멧들 옅푸른 물감 걷잡을 수 없이

66


누구도 호명해주지 않았던 궁벽의 한 생애처럼

→ 누구도 불러주지 않던 가난한 한삶처럼

→ 누구도 안 부르던 밑바닥 삶길처럼

78


적막이 산처럼 쌓이는 텅 빈 주위엔

→ 고요가 메처럼 쌓이는 텅 빈 곳엔

→ 말없이 가득 쌓이는 텅 빈 둘레엔

78


새 초록들 저희끼리만 울울할 뿐

→ 새싹은 저희끼리만 우거질 뿐

→ 푸른싹은 저희끼리만 그득할 뿐

→ 새 들빛 저희끼리만 너울댈 뿐

78


허한 마음들이야 쾡한 눈빛이

→ 멍한 마음이야 쾡한 눈빛이

→ 빈 마음이야 쾡한 눈빛이

88


거두어 봐야 냉해 쭉정이뿐이던

→ 거두어 봐야 언매 쭉쩡이뿐이던

→ 거두어 봐야 찬매 쭉쩡이뿐이던

88


나의 사랑은 가령

→ 나한테 사랑은

→ 나로서 사랑은

→ 나는 사랑이라면

104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 술집 불가엔 날나무가 탄다

→ 술집 불구멍엔 갓나무가 탄다

1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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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물리학개론
박인식 지음 / 여름언덕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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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0.

노래책시렁 385


《언어물리학개론》

 박인식

 여름언덕

 2021.2.7.



  나라를 거느린다고 내세우는 이들은 예나 이제나 우리말을 안 좋아합니다. 지난날에는 중국말을 쓰던 나라요, 일본이 쳐들어온 뒤에는 일본말을 쓰던 나라이고, 일본이 물러간 뒤에는 ‘중국말 + 일본말 + 영어’를 쓰는 나라입니다. 곰곰이 보면, 글을 쓰는 이들은 나라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기 일쑤입니다. 풀꽃나무를 품는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이 아닌, 벼슬자리를 얻거나 이름을 드날린다고 여기는 말을 붙잡더군요. 《언어물리학개론》을 한숨을 쉬며 읽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처럼 일본말을 그냥 써야 할까요? 우리말로 이름을 붙일 마음이 없을까요? ‘언어물리학개론’은 무늬만 한글인 일본말입니다. 어떤 이웃이 읽으라는 뜻으로 쓰는 말일까요? 나무한테서 배우는 사람이라면 ‘나무’라 말할 테고, 풀한테서 배우는 사람이라면 ‘풀’이라 말할 텐데, 어느 글이건 꾸미거나 덧바를 적에는 바래기 마련입니다. 치덕치덕 꾸미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내기를 바랍니다. 말을 ‘말’이라 하지 않을 적에는 덫에 갇힙니다. 말을 ‘말’이라 할 적에 왜 말이 ‘말’인지 물빛으로 알아차리면서, 사람이 어우러지는 마을이 왜 마을인지 하나씩 깨달으면서 마음을 맑게 가꿀 수 있습니다.


ㅅㄴㄹ


칼 다루기 쉽지않던 어린 시절 / 당신 곁에 연필 깎아주던 누군가 있지 않았나요 / 당신의 잠과 꿈 / 틈새 / 사각사각― / 장독대 내려앉는 싸락눈 같은 / 사랑 다듬는 소리 내려 / 쌓이지 않았나요 (연필로 쓰던 사랑/17쪽)


나무는 나이테를 세지 않는다 / 나무에게서 배운 / 내 술 / 술잔의 나이테 같은 동심원 떨림을 / 수전증으로 세지 않는다 (나무에게 배우다/58쪽)


+


《언어물리학개론》(박인식, 여름언덕, 2021)


너무 큰 존재가 다녀간

→ 너무 큰 분이 다녀간

→ 너무 큰 빛이 다녀간

14쪽


달빛의 파도가 실어다 준

→ 달빛너울이 실어다 준

→ 달빛물결이 실어다 준

14쪽


빼앗긴 동토 건넌 식민의 한

→ 빼앗긴 언땅 건넌 사슬눈물

15쪽


옆모습이 특히 아름다운 우리 동네 미녀 맹인

→ 옆모습이 더 아름다운 우리 마을 꽃장님

33쪽


마침내 일어나는 언어물리학의 연기법緣起法

→ 마침내 일어나는 말빛길 어울림

52쪽


술잔의 나이테 같은 동심원 떨림을 수전증으로 세지 않는다

→ 술모금 나이테 같은 한동글 떨림을 후덜덜로 세지 않는다

58쪽


한 움큼의 갈망도 저런 노랑으로 구워낸다면

→ 한 움큼 비손도 저런 노랑으로 구워낸다면

→ 한 움큼 목마름도 저 노랑으로 구워낸다면

71쪽


저 출토의 흙에 뿌리내린 무궁화 한 그루

→ 저 파낸 흙에 뿌리내린 한결꽃 한 그루

→ 저 캐낸 흙에 뿌리내린 하나꽃 한 그루

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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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노래 창비시선 29
박두진 지음 / 창비 / 198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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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21.

노래책시렁 305


《예레미야의 노래》

 박두진

 창작과비평사

 1981.11.20.



  아이들은 아무한테도 굽신거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누구한테나 온몸을 푹 숙이며 절을 합니다. 아이들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스스로 꿈을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모든 숨결은 하늘빛으로 태어납니다. 살갗이 누렇든 까맣든 하얗든 대수로울 일이 없어요. 다 다른 하늘빛입니다. 우리는 돌멩이나 나무토막한테 엎드려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로 스스로 품은 넋한테 비손을 할 일입니다. 나는 나한테 비손하고, 너는 너한테 비손하지요. 나무는 나무 스스로 비손하고, 나비는 나비 스스로 비손하기에 아름다워요. 《예레미야의 노래》를 모처럼 읽었습니다. 푸른배움터를 다닐 무렵에는 그저 달달 외우면서 셈겨룸을 치렀다면, 이제는 홀가분히 한 자락씩 혀에 얹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스무 살에 이르도록 글다운 글이나 노래다운 노래를 못 만납니다. 달달 외우기만 할 뿐이거든요. 스무 살을 지나면, 새롭게 굴레를 쓰며 바쁜 나머지 스스로 하루를 노래하는 마음을 잊거나 잃습니다. 예부터 누구나 살림을 짓고 아이를 돌보며 노래하는 삶이었습니다. 온삶이 노래였으니 ‘온노래’입니다. 나를 나한테서 찾는다면 말갛게 노래꽃이요, 멀리서 님을 그리면 엎드리다가 떠나갑니다.


ㅅㄴㄹ


나무는 철을 따라 / 가지마다 난만히 꽃을 피워 흩날리고, // 인간은 영혼의 뿌리 깊이 / 눌리면 타오르는 자유의 불꽃을 간직한다. // 꽃은 그 뿌리에 근원하여 / 한철 바람에 향기로이 나부끼고, (꽃과 港口/60쪽)


뽕나무밭에 혼자서 매여 있던 나귀야 / 아무것도 모르고 매여 있다가 /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왔던 너는 / 좋았겠다. / 골목으로 마을로 하늘로 높다랗게 / 호산나 호산나 소리 / 꽃비로 쏟아지는 (예루살렘의 나귀/12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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