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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을 뭉개고
나기철 지음 / 문학의전당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시를 말하는 시 68



시와 편지

― 뭉게구름을 뭉개고

 나기철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04.12.30.



  종이에 글을 적어 띄우기를 퍽 좋아합니다. 어릴 적부터 꽤 즐깁니다. 나는 혀짤배기라서 ㄹ소리를 제대로 못 내기 일쑤이고, 조금만 빨리 말해야 해도 혀가 꼬입니다. 내 말소리를 듣고 웃거나 놀림으로 삼는 이웃이나 동무가 많았어요.


  그런데 종이에 글을 쓸 때에는 아무도 웃지 않고 놀리지 않습니다. 글에는 혀짤배기 소리가 없고, ㄹ을 소리내지 못하는 일도 없습니다. 입으로 말을 할 적에는 해 본 적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글로 쓸 적에는 무슨 이야기이든 모두 할 수 있습니다.



.. 그대를 만나러 / 이 드넓은 도시 / 외딴 집 / 아무리 꽁꽁 숨어 / 간다 해도 / 거기 꼭 아는 이를 / 만날 것만 같습니다 ..  (비밀)



  글맛을 본 뒤, 글이란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말은 입으로만 할 수 있지 않고 손으로도 할 수 있으니, 말솜씨가 변변하지 못한 사람한테도 길이 있습니다.


  말을 변변하게 못하더라도 밥을 맛나게 지을 수 있습니다. 말을 시원스레 못하더라도 흙을 기름지게 가꿀 수 있습니다. 말을 똑똑하게 못하더라도 즐겁게 뛰놀 수 있습니다. 말을 또렷하게 못하더라도 옷을 정갈하게 빨아서 갤 수 있습니다. 말을 힘있게 못하더라도 살림을 알뜰살뜰 여밀 수 있습니다.



.. 저는 그저 텅 빈 가을 들녘 / 바라볼 뿐입니다 ..  (먼 길)



  내가 쓰는 글은 내가 나한테 쓰는 글월과 같습니다. 말솜씨가 변변하지 못하고 혀짤배기인데다 우물쭈물거리는 나한테, 찬찬히 기운을 내라고 북돋우는 글월과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고, 글을 쓰는 동안 새삼스레 힘을 내며, 글을 쓰고 나서 즐겁게 숨을 쉬도록 이끕니다.


  누군가는 밥벌이로 글을 씁니다. 누군가는 문학이나 예술을 하려고 글을 씁니다. 누군가는 숙제와 보고서 때문에 글을 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삶을 지으려고 글을 씁니다. 삶을 짓는 기운을 얻으려고 글을 쓰며, 삶을 짓는 슬기를 북돋우려고 글을 씁니다.


  마음밭에 심는 씨앗 한 톨처럼, 내 수첩과 공책에 또박또박 글을 씁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빙그레 웃으면서 읽습니다. 마음속으로 소리를 내어 읽습니다. 내 입은 혀가 짧지만, 내 마음은 혀가 짧지 않습니다. 내 입에서 꼬이던 소리라 하더라도 내 마음에서는 술술 풀립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읊고 외치고 노래하다 보면, 나중에 입으로 말을 터뜨릴 적에 냇물이 흐르듯이 부드럽게 말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 유리 깨지듯 우는 / 새소리 푸르름이 / 찰찰 넘친다 // 그래, 이 나무들 / 천 년 만 년 / 살 것 같다 ..  (겨울 비자림에서)



  나기철 님 시집 《뭉게구름을 뭉개고》(문학의전당,2004)를 읽습니다. 뭉게구름을 뭉갠다니, 하늘에서 뭉갠다는 소리일는지, 마음속에서 뭉갠다는 소리일는지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시를 쓴 나기철 님한테는 뭉게구름을 뭉개려는 마음이 무척 컸으리라 느껴요. 이 마음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흐르리라 느낍니다.



.. 꽃이 서른 번은 더 피었다 졌습니다. 이제 바다 물소리 가까이 들려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즐거웠습니다. 나뭇잎 몇 번 흔들릴지 알 수 없스니다. 고맙습니다 ..  (편지)



  나기철 님은 나기철 님한테 글월을 띄웁니다. 짤막짤막 끊은 글줄에 이야기를 얹어 글월을 띄웁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고 싶어 글월을 띄웁니다. 스스로 삶을 노래하고 싶어 글월을 띄웁니다. 스스로 삶을 껴안고 싶어 글월을 띄웁니다.


  먼 옛날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한 까닭이 있습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바로 나한테 들려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내 손에서 나오는 모든 글은 바로 나한테 띄우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가는 말이란, 남한테 가는 말이 아닙니다. 나한테 가는 말입니다. 오는 말도, 남한테서 오는 말이 아닙니다. 나한테서 오는 말입니다.



.. 길 가다가 문득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합니다. 누나가 어쩌면 말투하며 목소리가 꼭 그대로냐고 합니다. 누나도 꼭 그대로입니다 ..  (삼십 몇 년 후)



  글월을 적고, 글월을 읽습니다. 내가 나한테 띄우는 글월에 깃든 이야기를 새롭게 읽고, 내가 나한테서 받은 글월에 서린 이야기를 새삼스레 읽습니다. 어제 띄운 글월에는 오늘 살아갈 숨결이 흐릅니다. 오늘 띄운 글월에는 모레 살아갈 숨결이 흐릅니다.


  뭉게구름이 피어납니다. 양털구름이 피어납니다. 새털구름도, 닭털구름도, 토끼털구름도 피어납니다. 물고기 비늘 같은 구름도 피어나고, 새빨간 구름과 샛노란 구름도 피어납니다. 이슥한 밤이 지나 새벽이 다가오면 시퍼런 구름까지 피어나요. 한밤에는 달빛에 어린 어룽어룽 하얀 구름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는 저 먼 누리에서 피어나는 미리내가 구름처럼 번집니다. 수많은 별이 깊고 너른 누리에서 피우는 하늘구름이란, 별구름이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 먼 별에서 지구를 바라볼 적에도 지구는 미리내가 될 수 있을까요. 지구도 별구름처럼 다른 별에 보일 수 있을까요.



.. 여선생들 모여 조르르 웃고 몇몇 선생들 컴퓨터 앞 야후 검색 하거나 벅스뮤직 듣거나 화투놀이 하고 있다 ..  (직원실에서 김지하를 만나다)



  비는 비구름이 몰고 옵니다. 눈은 눈구름이 몰고 옵니다. 오늘 나는 일곱 살 큰아이하고 눈구름을 그립니다. 큰아이는 전남 고흥 포근한 시골자락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를 바랍니다. 서른 해나 쉰 해쯤 앞서라면, 이 포근한 시골에도 함박눈이 내릴는지 모르나, 요즈막에는 이곳에 함박눈은커녕 싸락눈이 내리기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올겨울에는 함박눈이 몇 차례 찾아오리라 생각해요.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꿈을 꾸니까요. 눈을 꿈꾸면서 그림편지를 쓰니까요. 눈구름을 신나게 그려서 집안에 붙여놓고 날마다 바라보니까요. 이 가을이 저물고 새 겨울이 찾아오면 참말 멋스럽고 어여쁜 눈구름이 우리 마을에 도톰하게 피어나리라 믿습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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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엄마도 참 문지아이들 84
유희윤 지음, 조미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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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0



빨래터 물놀이 하며 시읽기

― 참, 엄마도 참

 유희윤 글

 조미자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7.3.30.



  대나무를 베어 마당에 놓으니, 아이들이 이 대나무를 ‘출렁다리’로 삼으면서 오르락내리락 놉니다. 대나무를 베면서 잔가지를 몇 건사했더니, 대나무 잔가지는 잔가지대로 아이들이 휘휘 휘두르면서 노는 놀잇감이 됩니다.


  출렁다리 대나무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평상에 앉아 인형놀이를 합니다. 아이들 놀이는 천천히 달라집니다. 이 놀이를 하다가 저 놀이로 가고, 저 놀이를 하다가 이 놀이로 오며, 다시금 새 놀이로 건너뜁니다.


  어디에서나 놀고, 무엇으로든 놉니다. 언제나 놀고, 하루 내내 뛰놉니다.



.. 밟지 말랬는데 / 고양이가 밟았다 // 발자국은 / 꽃 모양 ..  (고양이 발자국)



  아이들더러 ‘뛰지 말라’거나 ‘달리지 말라’거나 ‘소리치지 말라’고 다그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기운차게 뛰면서 놀고, 씩씩하게 달리면서 놀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봅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아이들은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치기 어렵습니다. 학교이든 집이든 동네이든, 아이들이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치면 어른들은 어떻게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슨 말을 할까요?


  아이들한테 놀이터를 마련해 준 뒤, 집이나 동네나 학교에서 뛰지 말거나 달리지 말거나 소리치지 말라고 하나요? 아이들이 마음껏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워서 가슴이 후련하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얌전히 있거나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나요?



.. 왼쪽에 한 개 / 오른쪽에 한 개 // 주머니에 귤 넣고 / 만지작만지작 학교에 가며 ..  (귤)



  어제 낮에는 마을 빨래터를 치웁니다. 막대솔을 어깨에 짊어지고 셋이 빨래터로 갑니다. 아버지는 신나게 빨래터를 치우고, 두 아이는 하염없이 물놀이를 합니다. 먼저 샘터를 치우는데, 샘터를 치우면 두 아이는 작은 샘터에 둘이 함께 들어가서 놀아요. 아버지가 땀을 흘리면서 빨래터를 거의 다 치울 무렵, 슬슬 두 아이가 다가와서 “아버지 도와줘야지!” 하면서 거드는 시늉을 합니다.


  빨래터를 드디어 다 치우면, 두 아이는 가을에도 옷을 적시면서 물장구를 칩니다. 물을 서로 끼얹고 스스로 물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릴 때까지 놀던 아이들을 햇볕 잘 드는 곳에 서서 몸을 말리도록 합니다. 젖은 옷을 벗고 해바라기를 하면 추운 몸에는 어느새 따순 기운이 감돕니다. 알몸이 된 아이들은 시골마을 빨래터에서 마음껏 더 놉니다.



.. 옆자리 병구가 / 내 손 펴게 하고 / 올려놓았다, 꼭 쥔 제 주먹 // 주먹을 풀어 / 사탕 한 개 내려놓고 / 내 손 꼬옥 오므려 주었다 ..  (병구의 손)



  유희윤 님이 빚은 동시집 《참, 엄마도 참》(문학과지성사,2007)을 읽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엄마’와 ‘아빠’라는 낱말을 참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이 낱말 ‘엄마·아빠’는 아이들이 아기일 적에만 쓰고는 너덧 살이나 예닐곱 살부터는 ‘어머니·아버지’로 고쳐서 알려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열 살을 넘고 스무 살을 넘기도록 말을 고쳐 주지 못해요.


  아기한테 ‘맘마’ 먹자고 하던 어버이가 열 살 어린이한테도 ‘맘마’ 먹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 젊은이더러 ‘맘마’ 먹으라 하면 스무 살 젊은이는 무엇을 느낄까요? 나를 언제까지 아기로 여기느냐고 투덜거릴 테지요. 아이가 열 살이 되기 앞서 예닐곱 살부터 ‘어머니·아버지’라는 낱말을 쓰면서 ‘아기에서 벗어나 아이가 된 삶’을 깨닫도록 돕고, 열 살 뒤부터는 ‘오롯한 사람’으로 마주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말다운 말을 가르치는 일이란, 삶다운 삶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아기 말’에서 ‘아이 말’을 거쳐 ‘어른 말’을 들려주는 일이란, 아이가 앞으로 손수 삶을 가꾸도록 이끌면서 가르치는 일입니다.



.. ‘안경아, / 너도 쉬렴.’ // ‘아빠 깰 때까지 / 조용히 쉬렴.’ ..  (눈길 한 번 더 주고)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귀여운 것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학습이나 교훈이나 시험공부나 대학입시로 달달 볶아야 할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받아야 할까요. 입시교육과 학원교육을 받아야 할까요?



.. 시골집엔 / 콩을 좋아하는 콩쥐가 / 할머니랑 살지요 ..  (할머니 댁 콩쥐)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읽히는 동시에는 사랑을 실어야 합니다. 아이와 함께 즐길 동시에는 어른 스스로 짓고 가꾸며 보살핀 사랑을 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이 아름다운 까닭은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이 사랑스러운 까닭은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숨결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쁘장한 말을 쓴대서 동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삶을 아이와 즐겁게 나누려고 하기에 동시가 됩니다. 짧게 쓰거나 가락을 맞추어 쓰기에 동시가 되지 않습니다. 어른 스스로 삶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가꾸는 하루를 찬찬히 담아서 짓기에 동시가 됩니다.



.. 바람 부는 밤 / 함석지붕에 풋감 떨어진다 // 쿵. 쿵. / 잠들만 하면 또 쿵그르 // 할머니도 / 그러려니 / 할아버지도 / 그러려니 // 외양간의 누렁소도 / 멍멍이도 꼬꼬닭도 / 그러려니 ..  (산골의 밤)



  동시집 《참, 엄마도 참》은 살짝 아쉽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는 눈길이 된다면, 아이와 함께 가꿀 삶과 마을과 지구별을 더 넓게 살피는 마음결이 된다면, 한결 따사로운 이야기가 되었으리라 느껴요.


  어른이 어른 스스로 사랑하고 아낄 때에 동시를 씁니다. 아이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른 누구나 어른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꾸어야 동시를 쓸 수 있어요. 유희윤 님은 이러한 ‘사랑’을 잘 건사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이 사랑을 아이와 어디에서 어떻게 나누면서 꽃으로 피울 때에 아름다울까 하는 대목까지는 아직 못 짚지 싶어요.


  빨래터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손을 말린 뒤 동시집 《참, 엄마도 참》을 읽었습니다. 이 동시집에 이어 선보일 다른 동시집에는 ‘즐거운 놀이’와 ‘기쁜 노래’와 ‘맑은 사랑’과 ‘따스한 꿈’이 골고루 깃들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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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손가락의 자립 신생시선 36
이은주 지음 / 신생(전망)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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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2



시와 컴퓨터

― 긴 손가락의 자립

 이은주 글

 신생 펴냄, 2013.12.20.



  혼자 먹을 밥을 한 그릇 끓일 때하고 곁님과 함께 먹을 밥 두 그릇 끓일 때하고 아이들과 함께 먹을 밥 네 그릇 끓일 때는 얼마나 다른가 하고 헤아립니다. 다를까요? 다르다면 다릅니다. 그렇지만, 같다면 같습니다.


  다르다면, 혼자 먹을 적하고 넷이 먹을 적에는 밥이나 국을 끓이는 부피가 다릅니다. 혼자 먹을 적하고 여럿이 먹을 적에는 밥상에 올리는 접시 갯수와 수저 숫자가 다릅니다. 여럿이 먹기에 한결 넉넉히 찬거리를 마련하고, 여럿이 먹는 만큼 건더기 푸짐하게 넣고 국을 끓이기도 합니다.



.. 흐린 날 / 흐린 우산을 쓰고 / 흐린 케이크 가게를 찾는다 ..  (우울한 케이크 가게)



  가게에서 푸성귀를 사다가 찬거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마당이나 뒤꼍이나 옆밭에서 풀을 뜯어서 찬거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마련하든 모두 내 몸으로 들어와서 즐거운 기운으로 거듭납니다.


  다만, 집에서 뜯는 풀은 풀내음이 한결 짙습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쓰는 푸성귀는 풀내음이 무척 옅습니다. 집에서 뜯는 풀은 아침에 뜯어도 낮이면 시들시들하기에 곧바로 손질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어야 합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쓰는 푸성귀는 아침에 손질해 놓아도 저녁까지 시들지 않고, 이튿날에도 마르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게에 놓인 푸성귀는 어느 비닐집에서 가게까지 오는 동안 하루나 이틀은 걸리기 마련이고, 가게에서 더 손질해서 놓기까지 제법 긴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여러 날, 때로는 이레 즈음 시들지 않도록 여러모로 손을 쓰고 품을 들여야 합니다.


  집에서 뜯는 풀은 그때그때 먹으니, 가장 맛나게 먹을 수 있으면서, 그 자리에서 다 안 먹으면 시들고 말아 다시 흙으로 돌려줍니다.



.. 그 깨알만한 알들의 버무림, 내 손을 잡으시던 따뜻한 부고가 섬뜩하다 외할머니는 내 가슴에 그리움의 지문 하나 남기고 떠나신다 ..  (게알)



  이은주 님이 쓴 시집 《긴 손가락의 자립》(신생,2013)을 읽습니다. 긴 손가락은 스스로 선다고 합니다. 긴 손가락은 씩씩하게 제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섭니다. 우리는 누구나 제 길을 걷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서서 다 함께 어우러집니다. 스스로 제 길을 걷다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곳에서도 서로 만나고, 저곳에서도 어깨동무를 합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저마다 만나고, 함께 어우러집니다. 내 이야기를 네가 듣고, 네 이야기를 내가 듣습니다.



.. 마흔 즈음 혼자가 되고 나니 언제쯤 정말 혼자였던가, 혼미해진다 술 취한 애인이, 사람은 누구나 다 혼자야, 라고 잠꼬대를 한다 더 혼미해진다 따귀를 날리고 싶었지만 참기로 한다 손바닥이 애인의 얼굴에 닿는 순간 혼자가 아니라고 착각할까봐 두려워진다 ..  (마흔 즈음에)



  읍내 가게에 가서 장만한 큰파를 손질합니다. 뿌리 쪽을 조금 크게 자릅니다. 자른 뿌리는 그릇에 담아 물을 살짝 붓습니다. 파뿌리가 하루나 이틀쯤 물을 빨아들이도록 한 뒤 마당 둘레에 옮겨심을 생각입니다. 옮겨심은 파뿌리를 보면 이내 죽는 아이가 있지만, 기운차게 푸른 잎을 쑥쑥 올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기운차게 푸른 잎을 올리는 아이가 있으면 고맙게 푸른 숨결을 얻습니다. 파뿌리 아이들은 잎을 한 번 두 번 내주어도 다시금 쑥쑥 올라옵니다.


  비가 그친 아침에 뒤꼍으로 가서 감을 넉 알 줍습니다. 엊그제 비가 한 차례 훑고 지나갔으니 틀림없이 감이 떨어졌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제 바깥마실을 갔다가 엊저녁에 돌아왔어요. 오늘 아침에 기쁘게 뒤꼍으로 갔지요. 고맙게 넉 알을 주으면서 감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아직 두어 알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까치밥이 될 수 있고, 톡 떨어져 우리 아이들 밥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큰 묵직하고 커다란 감알을 일곱 살 네 살 아이들이 한 알씩 날름날름 먹습니다. 곁님도 한 알 먹고 나도 한 알 먹으려 합니다.



.. 남자는 씨를 품고 태어났다 씨는 낡은 어둠을 갉아먹으며 자란다 길을 거부한 뿌리만을 뻗어 얽히고설켜 한 덩어리로 숨쉰다 뿌리가 자랄수록 남자의 옹알이가 부서진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말이 되지 못한 소리의 조각들이 동글어져 봉분이 된다 ..  (붉은 혹―과지모도에게 2)



  오늘날은 컴퓨터로 글을 만지면서 책을 내놓습니다. 오늘날은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나 사진 모두 컴퓨터로 만져서 책으로 엮습니다. 오늘날은 그림도 그냥 컴퓨터로 그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책’은 손으로 읽습니다. 전자책을 읽더라도 손으로 움직여서 읽습니다.


  컴퓨터를 만질 적에도 손으로 만집니다. ‘컴퓨터로 만드는 책’이라 하더라도, 알고 보면, 언제나 우리 손으로 만드는 셈입니다.


  컴퓨터도 사람들이 손으로 만들어요. 기계가 만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컴퓨터를 만드는 기계는 사람이 만들지요. 우리가 쓰는 모든 것에는 우리 손길이 깃듭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컴퓨터도, 자판도 모두 손으로 만져서 이루지만, 연필을 손에 쥐어 종이에 찬찬히 적는 시가 된다면, 우리가 손수 씨앗을 흙에 심어서 손으로 거두어들인 뒤 밥을 짓는다면, 전기밥솥에 맡기는 밥이 아니라, 솥이나 냄비에 불을 알맞게 맞추어 스스로 끓이는 밥을 먹는다면, 시도 이야기도 삶도 책도 달라지리라 봅니다.


  책을 읽으려면 컴퓨터를 꺼야 하듯이, 시를 쓰는 사람과 노래를 읽는 사람 모두 컴퓨터를 한쪽에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을 짓는 사람과 사랑을 가꾸는 사람 모두 컴퓨터며 텔레비전이며 신문이며 모두 한쪽에 치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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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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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9



청소년은 외롭지 않다

― 난 빨강

 박성우 글

 창비 펴냄, 2010.2.26.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시골에서 어버이를 거들어 흙을 일구는 씩씩한 푸름이를 찾아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 같은 푸름이를 한둘쯤이라도 만나기는 대단히 힘들겠지요. 대학교를 마친 뒤 시골에서 흙일을 배우고 싶은 젊은이가 있더라도, 시골일을 익힐 만한 시골마을을 찾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견습 농사꾼’을 받아들일 만한 시골은 어디에 있을까요? 모심기와 벼베기부터 씨앗 갈무리와 씨뿌리기를 찬찬히 가르치면서 재워서 키울 만한 시골마을은 어디에 있을까요.


  곰곰이 살피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젊은 넋이 시골에 뿌리를 내려 시골일을 배우도록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푸른 넋이 흙을 만지며 자라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모든 푸름이와 젊은이가 도시에서 쳇바퀴를 돌도록 내몹니다. 어른도 아이도 회사원이 되거나 가게·공장 일꾼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는 길만 보여줍니다.



.. 여름방학이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왔다는 에리카와 에밀리와 카리와 캐서린 누나를 만났다 // 김치와 꽃게장과 청국장과 밴댕이젓에 하나같이 손을 대지 못하던 누나들은 고개만 절레절레, 한정식 밥상을 물렸다 허기졌을 배로 한옥마을 골목을 돌았고 은행나무 그늘에 들어 더위를 식혔다 ..  (한옥마을 일박)



  오늘날 아이들은 날마다 마시는 바람을 제대로 바라볼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날마다 바람을 마시면서도 바람맛을 안 느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바람맛을 가르칠 줄 모릅니다.


  우리는 바람을 모르고도 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바람을 배우지 않고도 살 만한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이나 운동선수는 바람을 익히지 않고도 삶을 꾸릴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람 한 줄기를 마실 수 없다면, 대학교쯤은 아무것 아닙니다. 아파트나 자가용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바람 한 줄기 누릴 수 없다면, 아파트이고 자가용이고 대단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려면, 숨을 쉬어야 하고, 숨결을 보듬어야 하며, 숨소리를 나누어야 합니다.

  목숨을 서로 아끼고 보살필 때에 아름답습니다. 목숨에서 우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나눌 수 있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목숨을 함께 지키고 가꾸면서 꿈을 키울 때에 즐겁습니다.



..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 피아노도 치고 싶고 / 시도 쓰고 싶다는 /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  (내 친구, 선미)



  박성우 님이 이 나라 푸름이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쓴 시를 묶은 《난 빨강》(창비,2010)을 읽습니다. 이 시집은 ‘청소년시’를 모았다고 합니다. ‘동시’와 ‘어른시’처럼 푸름이한테도 따로 ‘푸른시(청소년시)’가 있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이 나라 푸름이가 읽을 푸른시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입시지옥을 다루면 될까요? 학원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다루면 될까요? 부부싸움과 이혼 같은 다툼을 다루면 될까요? 이성친구를 사귀거나 이성친구 살결을 주무르는 이야기를 다루면 될까요? 젖가슴이 볼록 나오거나 거웃이 돋는 모습을 다루면 될까요?


  어떤 이야기이든 모두 다룰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른으로서 푸른시를 쓴다면, 또 우리가 어른으로서 푸름이한테 시를 한 자락 들려주려고 한다면, 겉모습을 넘어서거나 아우르거나 품을 수 있는 마음결을 들려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푸름이 스스로 마음을 가꾸고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꿈을 노래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쉬는 시간마다 가출 계획을 짰다 / 가출 계획서를 작성하기에는 /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  (신나는 가출)



  청소년한테 들려주는 시라고 하는 《난 빨강》에서는 어떤 사랑을 보여줄까요? 어떤 꿈을 밝힐까요? 어떤 이야기와 어떤 노래와 어떤 웃음과 어떤 눈물을 알려줄까요?


  푸름이는 푸름이입니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닙니다. 푸름이는 푸름이입니다. 그리고, 푸름이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도 사람이고, 어른도 사람입니다. 이리하여, 푸름이가 읽을 시이든, 어린이가 읽을 시이든, 어른이 읽을 시이든, 모든 시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곱게 여미면서 아낄 사랑을 담고, 꿈을 그리며, 이야기를 짓는 얼거리로 환하게 피어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람이 짓는 글이고, 사람이 짓는 삶이며, 사람이 짓는 말이거든요.



.. 단짝 애들은 학원으로 몰려가고 / 나는 여느 때처럼 그냥 집으로 갔다 ..  (학원)



  청소년문학은 청소년만 누리는 문학이 아닙니다. 청소년부터 누리는 문학입니다. 청소년한테만 머무는 문학이 아니라, 청소년과 이웃한 어린이한테 손짓을 하는 문학이요, 청소년과 함께 지내는 수많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문학입니다.


  청소년은 나이를 더 먹으면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성년식을 하거나 스무 살이 되거나 주민등록증을 받는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거나 술과 담배를 거리낌없이 누릴 수 있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어른이란, 철이 든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철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서른이나 마흔이라 하더라도 철이 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리광쟁이입니다. 나이가 쉰이나 예순이라 하더라도 철이 없으면 어른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바보이거나 멍텅구리입니다. 나이가 일흔이거나 여든이라 하더라도 철을 알지 못하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이란, 철을 알아 슬기로운 넋으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입니다.



.. 쉬는 날 아침에 머리 좀 빗으면 / ―넌, 아침부터 머리만 빗냐 ..  (대체 왜 그러세요)



  박성우 님은 시집 《난 빨강》에서 어떤 철을 푸름이와 나누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박성우 님은 이 시집에서 푸름이한테 어떤 철을 보여주면서, 어떤 어른으로서 이 땅에서 씩씩하고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가를 밝히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땅 푸름이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 땅 어른들이 외롭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날이면 날마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서 쳇바퀴를 돕니다. 이 나라 어른들은 외로움에 목이 말라서 인터넷에 빠지고 손전화에 사로잡힙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어버이와 둘레 어른한세터 삶을 배우니, 언제나 다른 어른들이 늘 보여주는 대로, 이성친구 살결을 비비는 짓을 사랑으로 잘못 아는데다가, 인터넷과 손전화를 들락거리면서 노닥거려야 삶이 즐거운 줄 잘못 알고, 스무 살만 넘으면 술과 담배에 절면서 살아요.


  청소년문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겉모습을 훑어서 이럭저럭 그럴듯하게 그리는 글은 청소년문학이 아닙니다. 이런 글은 문학이 아닌 관찰기, 이른바 ‘청소년 관찰기’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청소년문학을 일구어 푸름이와 함께 꿈을 꾸고 싶다면, 어른으로서 먼저 꿈을 꾸는 삶을 지어서, 즐겁게 빚은 사랑스러운 하루를 글로 담아서 보여주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푸념하지 마셔요. 아이들 앞에서 꿈을 꾸셔요. 아이들한테 돈을 주지 마셔요. 아이들한테 사랑을 주셔요.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 몰아세우지 마셔요. 아이들을 두 팔을 벌려 포근히 안아 주셔요.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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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했다 깬 것 같다 - 경남여고 1학년 학생들이 쓴 시
경남여고 1학년 학생들 지음, 구자행 엮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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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8



학교에서는 모두 똑같다

― 기절했다 깬 것 같다

 경남여고 아이들 글

 구자행 엮음

 나라말 펴냄, 2011.8.5.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나들이를 옵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예전에는 혼자 나들이를 왔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갓난쟁이를 업고 왔으며, 아이가 제법 자라 씩씩하게 걷고 뛸 적에는 아이 손을 잡고 왔습니다. 어제는 두 아이를 시골집에 두고 혼자 옵니다.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여러 책방을 둘러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살핍니다. 이 책 저 책 만지작거리다가, 이곳을 찾아온 다른 책손을 스치기도 합니다.


  아이와 함께 책방골목에 온 어머니가 많고, 때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아이 손을 잡고 걷기도 합니다. 일요일이니 아버지를 제법 볼 수 있는데, 여느 날이라면 거의 어머니만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책방골목에서 책마실을 하는 여느 어버이를 문득 가만히 바라봅니다. 내가 고르던 책을 손에 쥔 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우리 시골집에 있는 아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 이른 아침 학교로 가는 봉고 / 그 속에는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 아이들이 앉아 있다 ..  (봉고/조연경)



  어린이책을 고르는 사람은 거의 모두 어머니입니다. 아버지 가운데 어린이책을 고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어느 어머니는 이녁 곁님(아이 아버지)한테 이런 작가 저런 출판사 책이 좋다면서 찬찬히 알려줍니다. 어느 아버지는 이녁 곁님(아이 어머니)더러 마음에 드는 책은 다 골라서 사자고 말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으레 아이와 나란히 서서 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살 만한지 안 살 만한지 살핍니다. 아이 아버지는 으레 사진기를 들고 두 사람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마실을 나온 아버지 가운데 집으로 돌아가서 그림책을 함께 읽거나 아이한테 읽어 줄 분은 얼마나 될까요. 아버지는 집에서 아이와 뛰놀거나 뒹굴기만 할까요, 아니면 아이와 그림놀이도 하고 책놀이도 할까요. 아이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몫은 누가 맡을까요.



.. 옆에서 학생부장 선생님이 서 계신다. / “너 이리 와 봐. 니 치마가 규정에 맞다고 생각하니?” / “키가 커서 맞는 치마가 없어요.” / “우리 학교 교정은 치마가 무릎을 덮어야 한다.” / 하면서 5만 원이나 하는 치마를 또 사라고 한다 ..  (교복/최은영)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여느 아버지는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에 아주 크게 마음을 쏟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느 아버지 가운데 집에 오래 머물면서 아이가 자라는 결을 꾸준히 살피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 마음밭에 씨앗을 심는 아버지가 대단히 드뭅니다. 아이가 읽을 책을 골라서 선물할 줄 아는 아버지는 아주 드물고, 아이가 배울 삶과 사랑과 꿈을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밝히는 아버지는 그지없이 드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이한테 꿈을 심어 줄까요? 어머니는 아이한테 사랑을 심어 주나요? 어머니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심어 주는가요?



.. 선생님이 와 보라는 신호 / 손이 먼저 머리 위로 올라온다. / “그게 무슨 선생님 앞에서 할 소리야 새끼야.” / 선생님은 이 새끼 저 새끼 욕이란 욕 다 하면서 / 왜 나한테만 난리야 ..  (최악의 체육 시간/양정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 가운데 스스로 즐겁게 아침저녁을 짓고, 빨래를 하며, 집일을 건사하는 분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어머니 가운데 아버지더러 집밖에서만 나돌지 말고 집안에서 함께 사랑을 꽃피우도록 이끄는 분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뱃속에 아기를 열 달 동안 못 품습니다. 꼭 이 때문은 아닐 텐데, 아이를 온몸이나 온마음으로 품는 몸가짐을 못 갖추기 일쑤예요. 그래서, 어머니 자리에 있는 이들이 아버지를 새롭게 일깨우거나 가르치거나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까지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니거나 술동무와 사귀거나 인문책을 조금 읽기는 했을 테지만,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사랑할 줄 아직 모르는 아버지요 사내입니다. 그러니, 이런 아버지나 사내를 바로 어머니나 가시내가 찬찬히 일깨우거나 가르치거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 공부하다 앞을 보니 / 조그마한 아이들이 / 누워 있다. / 온몸이 뜨거운 아이 / 온몸이 차가운 아이 / 온몸이 따듯해 보이는 아이 / 그리고 누워 있다가 / 선생님에게 자주 잡히는 아이 / 아, 나도 저기 따뜻해 보이는 아이처럼 /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 누워 있고 싶다 ..  (부러운 분필/문윤경)



  경남여고 푸름이가 쓴 시를 모아서 엮은 《기절했다 깬 것 같다》(나라말,2011)를 읽습니다. 여러모로 푼더분하구나 싶은 이야기가 깃듭니다. 경남 ‘여자 고등학교’ 아닌 ‘남자 고등학교’에서 시를 쓰도록 했다면 이만 한 이야기가 나왔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합니다.


  남자 고등학생도 이웃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마음결이 없지는 않겠지요. 남자 고등학생도 너른 사랑을 마음자리에 심을 수 있겠지요. 남자 고등학생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꿈을 곱게 여밀 수 있겠지요.



.. 맑다. / 푸르다. / 내 마음과 같았으면 / 좋겠다 ..  (창밖/김지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입시공부만 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참말 바랍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모든 아이가 제 고장에서 즐겁게 삶을 배워서 제 고장에서 씩씩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고등학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서울로 아이를 올려보내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그저 시골을 떠나 도시에 있는 대학교나 공장이나 회사에 들어가도록 다그치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배워서 사랑하고 꿈꾸도록 이끄는 고등학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아빠는 늘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단다. / 내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면 / “그거 하게? / 그런 걸론 먹고 못 산다. / 니보다 뛰어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 내 꿈을 깔아뭉갠다. /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더니 / 순 거짓말이다 ..  (반어법/임성미)



  푸른 아이들은 무엇을 바랄까요? 삶을 바랍니다. 푸른 아이들은 무엇을 꿈꿀까요? 사랑을 꿈꿉니다.


  이 나라에 40만이나 있다고 하는 교사들은 부디 이 대목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요. 아이들한테 시험공부는 그만 시키기를 바라요. 아이들은 교과서를 배우려고 태어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삶을 배우려고 태어났어요. 아이들은 등급이나 성적을 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꿈을 키우려고 태어났어요.



.. 친구가 배가 고프다 해서 / 우리 집 근처 시장에 갔다. / 나는 배가 불러 / 하나만 시켜 먹으라고 하고 / 아주머니께 한 그릇만 달라고 했다. / 조금 기다리니 / 그릇 두 개가 나왔다. / 어, 한 개만 시켰는데요? / 혼자 먹으면 쓰나! ..  (시장 칼국수/이정은)



  아이들은 앞으로 돈을 잘 버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장사꾼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제 고장에서 즐겁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어야 즐겁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는 입시지도와 성적지도와 진로지도는 있지만, 삶이나 꿈이나 사랑을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푸름이가 쓴 시를 모은 《기절했다 깬 것 같다》 같은 책은, 힘겨운 아이들이 속풀이를 하도록 돕기는 하지만, 정작 어떤 꿈으로 나아갈 때에 즐겁거나 아름다운가까지 짚거나 이끌거나 돕지는 못합니다.


  아무래도 두껍고 딱딱하며 메마른 입시지옥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몸으로는 이만큼 하기도 힘들 수 있어요. 부산에 있는 작은 고등학교 한 곳에서 입시지옥 울타리를 걷어치우거나 없애기는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아이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 있습니다. 입시지옥 울타리가 아무리 높다 한들, 아이들 삶은 바로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몫은 바로 어버이와 어른한테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두 똑같습니다. 게다가 집에서까지 모두 똑같습니다. 동네에서마저 모두 똑같습니다. 다 다른 모든 아이들을 다 똑같은 틀에 가두는 사회 얼거리를 그저 팔짱을 낀 채 구경할 수는 없습니다. 이 아이들한테 시 한 줄만 맛보인 뒤 고등학교를 마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내딛으면서 아이들 손을 잡고, 둘레에 있는 다른 어른과 어버이도 눈을 뜰 수 있도록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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