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저고리 검정 치마 - 황명걸 시집
황명걸 지음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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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1



예쁜 사람들

― 흰 저고리 검정 치마

 황명걸 글

 민음사 펴냄, 2004.11.29.



  제법 굵은 빗줄기가 퍼붓는 가을 낮에 마을 어귀에 서서 군내버스를 기다립니다. 두 아이는 빗속이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비 내리는 가을날 나들이인 터라 새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따라 오지 않는 군내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틀림없이 들어와야 하는 때에 버스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불러 읍내로 나가기로 하는데, 다섯 군데에 전화를 건 끝에 겨우 한 대 부를 수 있습니다.


  군내버스를 타지 못했으니 찻삯이 더 들기도 하지만, 늘 부르는 택시가 아닌 처음 부르는 택시를 탄 터라, 여느 때보다 찻삯이 더 듭니다. 택시삯을 치르고 내리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다른 택시보다 1/3을 더 받은 오늘 탄 택시를 모는 아재는, 이만큼 삯을 받으면 돈을 얼마나 더 모을 만할까요. 오늘 탄 이 택시처럼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택시를 모는 아재는, 이녁 일삯을 다달이 어느 만큼 모을 만할까요.



.. 모처럼 서울 인사동에 출타 나왔다가 시골 수릉리 집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하고 여류 최영미가 내뱉은 〈지하도에서〉의 촌철살인적 경구의 적절함에 감탄하면서, 우리 산하의 사계를 간판그림처럼 곱게 그린 구리 어느 아파트를 지나면서는, 어지러웠던 머리가 한결 개운해진다 ..  (歸路辭說)



  고흥 읍내에 튀김닭 파는 집이 꽤 많습니다. 우리 식구는 고흥 읍내 모든 닭집에 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저곳 가 보기는 했는데, 썩 마음에 들어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데는 얼마 앞서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깊은 두멧시골에도 튀김닭을 파는 집이 있어서 아이들과 어쩌다 한 번 갈 수 있구나 싶어 ‘고맙다’고 여겼습니다. 맛으로도 값으로도 이냥저냥 당기지 않았어요. 면소재지에는 튀김닭집이 한 군데 있고, 그곳에서는 우리 마을까지 날라다 주기는 하지만, 어딘가 알 수 없이 매워 아이들이 먹지 못하고, 제대로 튀기지 않아 핏물이 돌기 일쑤이면서, 값까지 비싸서 더는 그곳에서 시키지 않습니다.


  지난달에 ‘닭집 선물권’을 석 장 얻었습니다. 어느 잡지사에서 찾아온 손님한테 취재를 받았고, 취재 이야기가 잡지에 실린 뒤, 취재를 받아 주어 고맙다는 뜻으로 ‘닭집 선물권’을 우리한테 보내 주었습니다. 백화점 선물권도 아니고 구두 선물권도 아니고 ‘닭집 선물권’이라니, 참 재미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닭집이 고흥 같은 시골에도 있나 궁금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살피니 읍내에 한 군데 있습니다.


  와, 고흥도 있을 곳은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언제 그 닭집에 갈 날을 손꼽았으며, 열흘 앞서 한 번 찾아가서 선물권을 씁니다. 이날 찾아가서 ‘고흥에 터를 잡아 지낸 지 처음’으로 ‘다시 찾아가서 맛나게 먹을 만한 닭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톡 쏘는 쐬주 한 잔에 / 감칠맛 나는 과메기 한 점을 / 생미역에 둘둘 말아 안주 삼는 / 이 한때의 살맛 ..  (과메기)



  가을비 퍼붓는 날에 바가지 택시삯을 물고 읍내 튀김닭집에 가서 느긋하게 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두 아이는 배불리 먹고 더 못 먹습니다. 곁님도 넉넉히 먹습니다. 나는 이렁저렁 즐겁게 먹습니다. 이제껏 읍내 다른 가게에서는 두 마리를 시켜야 비로소 아이들이 배불리 먹는데, 이곳에서는 한 마리를 시켜도 배불리 먹습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가게마다 무엇이 다를까요. 가게를 꾸리는 일꾼마다 무엇이 다를까요.



.. 흰 저고리 검정 치마 / 너무 아름다워 흠갈라 ..  (흰 저고리 검정 치마)



  황명걸 님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민음사,2004)를 진작 읽었습니다. 시집을 워낙 드물게 내신 할배(이제는 할배이지요)라,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틈틈이 다시 읽었습니다.


  황명걸 님이 열 해 앞서 2004년에 선보인 세 권째 시집에 붙은 이름을 읽으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열 해 앞서도 빙그레 웃었고, 열 해가 지난 오늘도 빙그레 웃습니다. 나는 이 시집을 ‘이름만 읽으’면서도 황명걸 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 하는 대목을 환하게 알아차렸습니다. 겉그림과 책 꾸밈새도 시집 이름을 잘 드러내고, 시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살렸습니다. 멋진 시집입니다.



.. 일제 시대 내가 어릴 적 / 작은 장난감 일본도를 가지고 싶어했던 나에게는 / 일 천황 군모 위의 장식 깃털이 꼭 억새를 닮아 멋있어 보였던 / 부끄러운 기억이 있네 ..  (억새)



  예쁜 아이들은 언제나 예쁩니다. 예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예쁜 어른이 됩니다. 예쁜 어른은 예쁜 아이를 낳습니다. 예쁜 어른은 예쁜 아이를 낳아 예쁜 말을 물려줍니다. 예쁜 어른은 어떤 일을 하든 예쁜 마음으로 예쁜 손길을 펼칩니다.


  그러면, 그러면 말이지요, 안 예쁜 어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 가운데 안 예쁜 아기가 있을까요? 아장아장 걷고 옹알이를 하는 아기 가운데 안 예쁜 아기가 있을까요?


  무시무시한 독재와 전쟁과 폭력 따위를 일으킨 이들도 갓 태어났을 적에는 아주 예뻤으리라 생각합니다. 안 예쁠 수 없습니다. 핵무기를 만들고 핵발전소를 세우는 이들조차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을까요. 지구를 쥐락펴락 갖고 논다는 재벌 우두머리도 두어 살 꼬맹이였을 적에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을까요.



.. 내 안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있다 / 내 안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있다 / 이빨을 드러내는 일촉즉발의 대치, 독사의 눈같이 싸늘한 반목 / 겨 묻은 개 똥 묻은 개 얼려 뒹구는 이전투구 / 남북의 팽팽한 긴장, 여야의 치사한 대결이 / 내 안에 있다. 시뻘겋게 살아 있다 ..  (내 안의 사라예보)



  우리는 모두 예쁜 사람입니다. 너와 나는 다 함께 예쁜 이웃입니다. 이 책도 예쁘고 저 책도 예쁩니다. 이 신문도 예쁘고 저 신문도 예쁩니다.


  고흥 읍내에 있는 우체국에 가면, 몇 가지 주간잡지를 여러 권 놓습니다. 가져가서 보고픈 사람은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주간잡지는 한두 달이 가도 안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잘 안 가져갑니다. 나도 이 주간잡지를 안 가져갑니다. ㅈㅈㄷ에서 내는 주간잡지가 아니지만, 이른바 ‘진보’ 쪽에 선다고 하는 이들이 엮는 주간잡지이지만, 읍내 우체국에 들러서 소포를 부친 뒤 살짝 숨을 돌리면서 이 주간잡지를 손에 쥐어 차례를 보고 몸글을 죽 살피는데, 시골사람한테 눈길을 끌 만한 이야기는 한 꼭지도 없습니다.


  시골사람한테 ‘시사’나 ‘논쟁’이나 ‘초점’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시골사람한테는 ‘땅을 가꾸는 이야기’나 ‘들을 돌보는 이야기’나 ‘숲을 사랑하는 이야기’나 ‘풀을 먹는 이야기’쯤 되어야 눈길이 갈 만합니다. 그런데, 신문이든 잡지이든 방송이든 책이든, 이런 이야기를 거의 안 다뤄요.


  대통령 아무개를 나무라는 이야기를 열 쪽 스무 쪽 채운들 나라가 달라질까요? 어처구니없는 짓이 늘 터지는 한국 사회이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열 쪽이든 스무 쪽이든 다룰밖에 없기도 할 테지만, 백 쪽 남짓 엮는 잡지 가운데 한두 쪽쯤은 ‘삶을 밝히고 삶을 손수 가꾸며 삶을 기쁨으로 짓는 이야기’를 실을 만하지 않느냐 싶어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주간잡지이든 일간신문이든 시골에서 읽히거나 팔릴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 하지만 악수하고 싶어라 / 저들의 손 뜨겁게 잡고서 / 저들의 생생한 기를 받고 싶어라 ..  (손에 관하여)



  흰 저고리가 이쁩니다. 검정 치마가 이쁩니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사람은 그지없이 이쁩니다. 한겨레 옷이기에 이쁘다기보다, 이쁘니까 이쁩니다.


  가시내는 치마저고리를 입으며 이쁩니다. 사내는 바지저고리를 입으며 이쁩니다. 그리고, 가시내도 바지와 저고리를 입을 수 있고, 사내고 치마와 저고리를 입을 수 있습니다. 옷차림이야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쁜 생각으로 이쁜 손길을 뻗어 이쁜 삶을 일구면 언제나 이쁩니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적에는 군내버스를 탑니다. 네 살 작은아이는 군내버스에 잠들고,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내린 뒤 한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잠든 아이를 가슴에 품어 집으로 걸어서 오는데, 집에 닿으니 작은아이가 눈을 번쩍 뜹니다.


  큰아이도 이랬고 작은아이도 이렇습니다. 아마, 나도 어릴 적에 이랬을 테지요. 아이들도 나도 모두 이쁜 사람입니다. 4347.11.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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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에고, 짜다 동시야 놀자 7
함민복 지음, 염혜원 그림 / 비룡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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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5



너는 무엇을 읽어서 알아채니?

― 바닷물 에고 짜다

 함민복 글

 염혜원 그림

 비룡소 펴냄, 2009.5.22.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해가 어디에서 뜨고, 해를 둘러싸는 구름은 하늘을 어떻게 덮는지 바라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어느 만큼 알아차립니다. 해는 지구에서 아주 먼 곳에 있고, 구름은 지구별 둘레에 찰싹 붙은 줄 알아요. 그러나 우리 눈은 구름과 해가 그리 멀지 않은 듯 바라보며, 구름이 마치 해를 가린다거나, 해가 구름 사이에 숨는다고 여깁니다.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눈이라면 해가 구름에 가리는 일이란 없는 줄 알아채거나 읽으리라 느껴요.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눈이라면 해가 어떻게 타오르는가를 알아채거나 읽으리라 느껴요. 더욱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눈이라면 우리가 두 발을 디딘 이 지구별이 어떠한 얼거리인지 알아채거나 읽으리라 느껴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까요? 우리는 무엇을 알아채면서 살까요? 우리는 무엇을 읽으면서 살까요?



.. 뻘은 말랑말랑해 / 발자국이 다 남아 / 어디 갔다 왔는지 / 누구와 놀았는지 / 거짓말할 수 없어 ..  (소라 일기장)



  가을이 되어 잎이 집니다. 가을이 되어 새로운 잎이 돋습니다. 겨우내 앙상한 몸으로 지내는 나무는 늦가을까지 모든 잎을 떨굽니다. 겨우내 푸른 몸으로 지내는 나무는 늦가을까지 새로운 잎을 틔웁니다.


  나무를 알려면 나무를 보아야 합니다. 나무를 제대로 알려면 나무한테 다가가서 나뭇줄기를 만지고 나뭇가지를 쓰다듬어야 합니다. 나무를 똑똑히 알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 내내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루만져야 합니다. 나무를 슬기롭게 알려면 날마다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잎과 꽃과 열매를 고루 살펴야 합니다. 나무를 사랑스레 알려면 나무씨앗을 받아서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심어서 아이한테 물려주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나무장사를 하는 이는 꽤 있지만, 나무를 알아서 나무를 사고팔지 않습니다. 나무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나무를 잘 알면서 마당이나 텃밭에 건사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 그러니까 화가는 나무를 얼마나 잘 알거나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릴까요? 나무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나무를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사진을 찍을까요? 나무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은 나무와 얼마나 이웃과 동무로 지내면서 글을 쓸까요?



.. 맨발로 뻘에 한번 들어가 봐 / 말랑말랑한 뻘이 간질간질 /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 금방 발에 딱 맞는 / 신발 한 켤레가 된다 ..  (지구 신발)



  동이 틉니다. 마을마다 닭 우는 소리가 퍼집니다. 아직 시골마을에는 닭을 치는 집이 있습니다. 개가 짖는 소리와 경운기 움직이는 소리가 함께 퍼집니다. 멧새가 이 나무에 앉다가 저 나무로 옮기면서 지저귀는 소리가 나란히 퍼집니다. 겨울 추위를 앞두고도 새는 이곳에서 씩씩하게 삽니다. 참말 새들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아주 씩씩합니다. 시골에서는 농약바람을 이기면서 씩씩합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물결을 견디면서 씩씩합니다. 새한테는 백화점이나 할인마트가 없지만, 여름에도 겨울에도 먹이를 찾아 힘차게 삶을 꾸립니다. 새는 농약과 시멘트 때문에 먹이가 해마다 줄어들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새끼를 낳아 알뜰살뜰 돌보고 아끼면서 삶을 가꿉니다.



.. 물고기들은 / 물고기들은 // 비가 온다고 말하지 않고 / 동그라미가 온다고 하지 않을까 // 봄동그라미 / 소나기동그라미 ..  (비)



  함민복 님이 쓴 동시를 모은 《바닷물 에고 짜다》(비룡소,2009)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에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가 나오고, 바다 둘레에서 먹이를 찾는 여러 목숨이 나옵니다.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이 이 동시집에 나옵니다. 이를테면, “집게야 / 너는 집이 있어 좋겠구나 // 꼭 / 그렇지도 않아요 // 우린 외식도 못하고 / 외박도 못해요(집게).” 같은 동시처럼, 바다살이를 하는 이웃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똥 싼 물 먹고 / 똥 싼 물에서 놀고 / 똥 싼 물에서 자고 / 똥 싼 물에서 산다고 // 흉보지 말아요 // 왜냐고요? // 사람들은 우리를 / 맛있다고 잡아먹잖아요(볼락의 변명)” 같은 이야기가 가만히 흐릅니다.


  《바닷물 에고 짜다》는 함민복 님이 아이들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바다에서 살거나 바다 둘레에서 먹이를 얻는 여러 목숨과 얽혀 재미나게 ‘말놀이’를 펼칩니다.


  그런데,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는 함민복 님이 함민복 님 삶을 아이들한테 보여주려는 책이 됩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외식이나 외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함민복 님이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함민복 님이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집이 있어 좋겠구나” 같은 생각도 함민복 님 생각입니다.


  집게는 집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라 해서 이러한 이름을 사람들이 붙입니다만, 집게가 참말 ‘집’을 달고 다니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습니다. 집게한테는 ‘집’이 아니라 ‘갑옷’일 수 있고 ‘옷’이나 ‘방패’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집게는 ‘집’에서 밥을 차려 먹지 않습니다. 집게는 언제나 ‘바깥’에서 이곳저곳 다니며 먹이를 얻습니다.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는 바다에서 똥을 누겠지요. 물고기라 해서 똥을 ‘싸’지 않습니다. ‘똥 싸다’는 똥오줌을 아직 못 가리는 아기가 바지에 똥을 누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물고기이든 새이든 모두 ‘똥 누다’로 말해야 올바릅니다. 화들짝 놀라서 얼른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면서 똥을 뽀직 누는 새라면, 이때에는 ‘똥 싸다’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나저나, 사람은 어디에 똥을 눌까요? 요즈음 도시사람은 모두 변기에 똥을 누고, 변기에 눈 똥은 냇물로 흘러가고 바다로 스며듭니다. 오늘날 도시사람이 눈 똥은 거름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오늘날 도시사람이 눈 똥은 냇물과 바닷물을 더럽힙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눈 똥으로 더러워지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아 사람이 먹지요. 바다에서 물고기가 눈 똥은 ‘바다에서 사는 작은 목숨’들이 즐겁게 받아먹습니다. 또는 바다밑으로 가라앉아서 ‘바다밑 새로운 흙’이 됩니다.


  더 헤아린다면, 사람은 스스로 눈 똥으로 흙을 살찌워 밥을 얻습니다. 사람이야말로 똥을 먹으면서 산다고 할 만합니다.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는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그림을 잔뜩 넣은 이 동시집은 아이들한테 어떤 꿈과 사랑을 보여주는 책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바다에 사는 이웃을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마주하거나 바라보도록 이끌 만한 책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함민복 님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알아채거나 배우셨나요. 함민복 님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알아채거나 배운 것 가운데 어떤 이야기를 이 땅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가요. 4347.11.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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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이름 한 글자 창비아동문고 139
김은영 지음 / 창비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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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4



똥 누며 보는 나무

― 빼앗긴 이름 한 글자

 김은영 글

 남궁산 그림

 창비 펴냄, 1994.12.15.



  시골집에서 똥을 누러 갈 적에는 늘 나무를 봅니다. 뒷간 문을 열면 마당에 선 후박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후박나무 가지 사이로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볼 수 있고,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구름을 볼 수 있습니다.


  박새나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찾아와서 노래합니다. 직박구리나 까마귀처럼 커다란 새가 찾아와서 노래합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나비가 팔랑거리면서 춤사위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십일월 이십일일인데, 갓 깨어난 나비 한 마리가 예쁘게 춤을 추면서 우리 집 마당에서 날아다닙니다. 어쩜 이 겨울 문턱에 깨어나느냐 싶지만, 이 겨울 문턱에도 들을 가만히 살피면, 봄까지꽃이랑 별꽃이랑 코딱지나물꽃이 핍니다. 때이른 냉이꽃이 피고 갓꽃이나 유채꽃이 핀 곳이 있습니다.


  날이 폭하거나 볕이 좋으면 꽃과 나비는 슬그머니 깨어나 눈부신 몸짓으로 고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변소 갈 때마다 / 보는 꽃 // 우물 갈 때마다 / 보는 꽃 ..  (호박꽃)



  낮에는 볕이 포근하지만 아침저녁에는 바람이 찹니다. 날씨가 크게 바뀌는 흐름입니다. 엊그제까지도 쑥쑥 올라오는가 싶던 모시풀은 이제 크게 꺾입니다. 어제그제 사이에 우리 집 모시풀은 모조리 고개를 폭 꺾습니다. 끝없이 넝쿨을 뻗던 호박도 이제 잎이 모두 시듭니다. 이와 달리 한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선보이는 유채와 갓은 새 잎이 돋으며 싱그럽습니다. 마을밭에는 배추가 알이 야무지고 넓적한 잎사귀는 소담스럽습니다.


  내가 지내는 시골이 전라남도 바닷가 가까운 데가 아닌 충청북도나 강원도 멧골이라면 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충청북도나 강원도 멧골은 요즈음 얼마나 추울까요. 벌써 꽁꽁 얼어붙을 테지요.


  강원도 위쪽 평안도나 함경도도 몹시 추우리라 생각해요. 평안도와 함경도 위쪽은 연길은 더욱 추우리라 생각해요. 시베리아는 어떤 추위일까요. 알래스카는 어떤 겨울바람일까요.



.. 뒤뜰에 감꽃처럼 / 텃밭에 깨끛처럼 / 촘촘히 피어나는 / 개구리 울음 소리꽃 ..  (시골 밤에 피는 꽃)



  도시에서 건물로 일하러 가는 사람은 건물에 있는 뒷간에서 똥오줌을 눕니다. 도시에 있는 건물은 따로 청소지기를 둡니다. 청소지기가 아침저녁으로 변기를 깨끗이 닦지 않으면, 건물 뒷간은 무척 지저분하리라 느껴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린 건물이나 도시이기 때문일까요.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왁자하게 모인 건물이나 도시이기 때문일까요.


  도시에 짓는 건물은 좁은 땅에 높다라니 올려야 합니다. 땅은 좁은데 사람은 끔찍하도록 많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좁은 땅에 높다라니 건물을 올리는 도시에서는 뒷간을 넉넉하게 쓰지 못합니다. 뒷간을 제법 크게 짓더라도 문을 꼭 닫아야 합니다. 똥을 누면서 나무를 본다든지, 새를 만난다든지, 나비와 벌을 사귄다든지, 꽃내음이나 풀내음을 맡을 일이 없습니다.



.. 내가 웃으면 / 아가도 웃어요 // 내가 울면 / 아가도 따라 울어요 ..  (아가)



  언제나 풀밭에 둘러싸인 사람은 풀내음을 맡으면서 풀노래를 부릅니다. 언제나 숲에 깃드는 사람은 숲내음을 맡으면서 숲노래를 부릅니다. 자동차물결에 휩쓸리는 사람은 수많은 자동차를 살피면서 다치지 않으려고 걱정해야 합니다. 자동차물결을 살피느라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고, 새나 풀벌레나 개구리를 살필 틈이 없습니다. 아니, 이웃이나 동무를 쳐다볼 겨를이 없고, 나 스스로 되돌아볼 틈조차 없습니다.



.. 마루 기둥 빨랫줄에 앉은 / 어미 제비 한 쌍 / 장대비 속을 뚫고 / 쏜살같이 날아갑니다 ..  (어미 제비)



  김은영 님이 쓴 동시를 엮은 《빼앗긴 이름 한 글자》(창비,1994)를 읽습니다. 조그마한 학교에서 이쁜 아이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누리면서, 김은영 님 어린 나날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동시라고 합니다. 제비를 동무로 삼고, 밭자락을 놀이터로 삼은 이녁 어린 나날을 그린 동시라고 합니다.



.. 말하기 시간에 / 공부 못 하는 우식이가 / 얼굴 붉힌 채 서 있다가 / 선생님이 다그치자 / 겨우 말했다 // 농사 지을래요 ..  (우식이)



  오늘날 초등학생 가운데 ‘나는 앞으로 농사꾼이 될래요’ 하고 말하는 어린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1%조차 아닌 0.1%조차 아닌 0.01%조차 아닌, 아니 숫자로 따질 수 없을 만하겠지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가운데 ‘내 꿈은 농사꾼이에요’ 하고 말할 푸름이는 아마 없으리라 느껴요. 대학생 가운데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흙을 일구겠습니다’ 하고 다부지게 외치는 젊은이는 있기나 있을까요.


  제도권 입시지옥 학교에서도 농사꾼이 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안학교에서도 농사꾼이 되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스스로 삶을 짓고 생각을 지으며 사랑을 짓는 길을 밝히거나 보여주지 못하기 일쑤예요.



.. 오시려거든 / 네 바퀴로 빵빵거리며 / 논둑 길 내달려 오지 말고 / 맨발 맨손으로 / 살포시 흙을 밟고 오세요 ..  (흙을 밟고 오세요)



  흙을 만지는 까닭은 삶을 손수 짓고 싶기 때문입니다. 흙을 가꾸는 까닭은 삶을 이루는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짓고 싶기 때문입니다. 흙을 사랑하는 까닭은 내 넋이 깃든 몸뚱이가 튼튼하게 서서 이 땅에서 아름답게 춤추도록 북돋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흙을 만질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와 시골 모두 흙땅이 있고, 이 흙땅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야 하며, 풀과 나무가 자라는 곳에 집을 예쁘게 지어 마을을 알뜰살뜰 이루어야 사랑스럽습니다.



.. 똥 누고 나오면서 / 달을 보아요 ..  (어디에서 달을 보나요)



  초승달이 이쁘장합니다. 반달이 아름답습니다. 보름달이 넉넉합니다. 달빛은 별빛을 가리지 않습니다. 달빛이 어우러지는 밤하늘이 초롱초롱 눈부십니다. 우리는 온누리 수많은 별 가운데 지구별에서 함께 삽니다. 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서로 돌보고 믿는 사이입니다.


  마음에서 자라는 꿈으로 씨앗을 심어요. 흙을 포근히 어루만지면서 씨앗을 심어요. 교과서나 문제집이 아니라 ‘참답고 슬기로운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 시를 써요. 문학 전문가만 쓰는 시가 아니라, 우리가 손수 삶을 짓는 나날을 고스란히 담아서 이웃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써요. 4347.11.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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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03
박세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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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5



바람을 먹으면서 산다

― 정선아리랑

 박세현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1.4.30.



  첫가을에는 들빛이 샛노랗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시골지기가 논마다 벼를 베면, 이제부터 늦가을 들빛은 싯누렇습니다. 벼알이 무르익을 적에는 샛노란 물결을 이루고, 벼를 모두 베고 꽁댕이만 남은 논은 시든 볏포기만 누렇습니다. 그런데, 시든 볏포기 사이로 새로운 줄기가 올라옵니다. 사람들은 벼알을 모두 거두었으나, 벼풀은 밑뿌리에서 새 힘을 끌어올려서 줄기를 올립니다. 이리하여, 늦가을과 첫겨울에는 들빛이 얼룩덜룩합니다. 싯누런 들녘에 푸릇푸릇 새로운 기운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잘 자란 파를 칼로 삭 베면 파는 뿌리와 꽁댕이만 남습니다. 그런데 파는 다시금 기운을 차려 줄기를 올려요. 잘 자란 부추를 손으로 톡톡 끊으면 부추는 뿌리와 꽁댕이만 남는데, 부추는 새롭게 기운을 내어 줄기를 올립니다. 



.. 청량리역은 사람의 바다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선 사람 앉은 사람. 기차 시간이 임박하자 운명의 종이 울린 듯 겨드랑에 날개를 단 사람들은 분망하게 솟구친다. 시계탑의 시계가 현재의 시각과 현재 서울의 인구를 기록하고 있다 ..  (정선 가는 길)



  들풀을 모조리 뽑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들풀을 모조리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들풀을 지심으로 여겨 없애려고 하면, 흙이 함께 죽기 때문입니다. 들풀은 빗물에 흙이 쓸리지 않도록 붙잡을 뿐 아니라, 흙에 너른 숨결이 골고루 깃들도록 돕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한두 가지 씨앗만 심기 때문에 여느 논흙이나 밭흙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인데, 온갖 들풀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서 흙이 골고루 튼튼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이 들풀은 무엇보다 우리한테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지요. 나무만 사람한테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가 함께 푸른 바람을 싱그러이 베풉니다. 우리는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언제 어디에서나 풀바람과 나무바람을 마시면서 기운을 얻습니다.



.. 정선읍에서 남면으로 가자면 / 쇄재라는 높고 아름다운 고개를 넘어간다 ..  (쇄재)



  밥을 안 먹어도 백 날이 넘도록 몸을 버틸 수 있습니다. 숨을 안 마시면 하루는커녕 한 시간은커녕 한 분을 버티기도 벅찹니다.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참을’ 뿐입니다. 참고 나서는 반드시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은 다른 무엇보다 바람을 먹으면서 흐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소담스러운 대목은 바람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챙겨야 할 밥은 바로 바람입니다. 우리가 늘 먹고 마시는 바람이 어떠한지 잘 살펴야 합니다. 나와 네가 함께 먹는 바람이 푸르고 싱그러우면서 고운 숨결이 되도록 언제나 알뜰살뜰 가꾸면서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아낙 서넛이 딸딸이에 실려 /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 산그늘이 머리 위에 얹혀 / 고운 물살을 만들어줍니다 ..  (초승달)



  박세현 님이 빚은 시를 알차게 엮은 《정선아리랑》(문학과지성사,1991)을 읽습니다. 작은 시집이 태어난 지 어느덧 스무 해 남짓 흘렀고, 이 시집은 스무 해라는 나날을 견디지 못하고 새책방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도 이 시집이 대출실적이 적으면 자취를 감추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다시 펴내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헌책방에서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시집입니다.



.. 콩 심으라면 콩 심었소 / 고추 심으라면 고추 심잖았소 / 마늘이 괜찮다면 마늘도 심고 / 당근이 더 좋다면 당근을 심은 죄밖에 없소 / 콩 심으면 콩값 떨어지고 / 고추 심으면 고추값 떨어졌소 / 이제 콩 심으시라면 팥 심고 / 고추 심으시라면 마늘 심어야 옳겠소 / 말없이 밭고랑에 들러붙어 있는 우리를 / 아예 혹싸리 껍데기로 보시는지요 ..  (혹싸리 껍데기)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시골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사는 곳이 전라남도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전라도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사는 곳이 숲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숲바람을 먹습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 어떤 바람을 먹으면서 사는가요. 이녁은 어떤 바람을 날마다 맛나게 먹으면서 사는가요. 이녁은 앞으로 이녁 아이하고 어떤 바람을 먹으면서 살고 싶은가요. 이녁 몸을 살찌우고 이녁 마음을 가꾸는 바람은 어떤 맛이고 내음이며 무늬인가요.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골고루 먹고 자라는 풀이 튼튼하고 싱그럽습니다.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비닐집에서 기름 태우는 난로가 내뿜는 뜨거운 기운과 함께 먹고 자라는 풀은 겉보기로는 멀쩡할 테지만 속은 곪습니다. 풀을 뜯는 소나 돼지가 아니라, 사료와 항생제와 촉진체만 먹고 자라는 소나 돼지를 잡아서 얻는 고기는 겉보기로는 번듯할 테지만 속은 곯지요.



.. 색종이처럼 파란 하늘입니다 / 어제 보았던 그 하늘입니다 / 하늘 위로 구름이 지나가면 그건 / 정말 멋진 그림엽서가 되고 맙니다 / 오래도록 쳐다보는 아이도 있습니다 ..  (갈래국민학교)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늘 바라보는 사람은 늘 파랗게 눈부신 시를 씁니다. 하얗게 고운 구름을 늘 마주하는 사람은 늘 하얗게 고운 노래를 부릅니다. 샛노란 나락물결을 늘 돌보는 사람은 늘 샛노랗고 고소한 이야기를 짓습니다.


  어떤 시를 쓰거나 읽고 싶은가요? 어떤 삶을 가꾸거나 누리고 싶은가요? 어떤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오늘 하루를 기쁘게 웃고 싶은가요?


  시집 《정선아리랑》에서 들려주는 숲노래가 부른 바람으로 고이 흐릅니다. 4347.11.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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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웃는 매미 문학동네 시인선 25
장대송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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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3



시와 텔레비전

― 스스로 웃는 매미

 장대송 글

 문학동네 펴냄, 2012.9.24.



  손가락을 움직여 또각또각 돌리면 텔레비전 화면이 바뀝니다. 손가락을 놀려 똑똑 단추를 누르면 텔레비전 화면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든 텔레비전이라는 기계를 두면 가만히 눕든 앉든 서든 온갖 이야기가 쉬지 않고 흐르는 물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됩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고,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춤을 추지 않아도 되며, 게다가 밥을 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멍하니 마음을 다 놓고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 저 텔레비전 / 혹시 살아 있는 척하는 거 아냐 / 실은 나도 살아 있는 척하는 것 아냐 ..  (옛날 연속극)



  학교에 가면 교과서를 줍니다. 학교에 가면 교사가 교과서로 수업 진도를 나갑니다. 학교에 가면 다른 학교로 가도록 시험문제를 알려줍니다. 학교에 가면 다음 학교가 나오고, 다음 학교에 가면 다시 다른 학교가 나옵니다. 마지막에 있는 학교까지 나오면, 이제 회사가 우리 앞에 나오고, 우리는 회사에 들어가서 예순 살 남짓이 될 때까지 시키는 일을 하면 됩니다. 시키는 일을 다 하고 예순 살 남짓 되면, 이제 회사에서 나와 연금을 받으면서 자가용을 몰고 ‘연금 쓰는 삶’을 보내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죽어서 땅에 묻히거나 불로 태워 재가 남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고 난 뒤 우리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죽어서 땅에 묻히려고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학교에 가려고 태어난 목숨일까요. 우리는 회사원이 되어 스물대여섯 살부터 예순 살 남짓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사람일까요.



.. 뻐기는 듯 걸음을 걷는 개에게 끌려가는 저 여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나보다 ..  (풍경)



  텔레비전을 켜면 지구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운동경기가 흐릅니다. 한국에서는 깜깜한 밤이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다른 나라는 환한 낮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야구나 축구나 배구나 농구나 골프나 갖가지 운동경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 하나만 곁에 두면 온갖 운동선수 이름을 꿸 수 있고, 이름난 선수가 벌이는 묘기에 가까운 몸재주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끄면? 텔레비전을 끄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야구를 마음 놓고 할 만한 빈터가 없습니다. 축구를 신나게 할 만한 빈터가 없습니다. 농구나 배구나 탁구나 골프를 할 만한 너른 터는 우리 둘레에 없습니다. 맨몸으로 할 수 있다는 달리기조차 홀가분하게 할 만한 데가 우리 둘레에 없습니다.


  헤엄을 칠 냇물이나 못이 없습니다. 냇물이나 못이 있어도 냇바닥을 죄 시멘트로 들이부었어요. 시멘트로 들이붓지 않은 냇물이나 못이 있더라도 공장과 발전소에서 뱉은 쓰레기물로 지저분할 뿐 아니라 농약에 찌들었습니다.



.. 벌써 며칠째다. 안개를 잡으려 철사 줄을 비틀다가 내 손가락이 비틀어졌다. 바지 주름을 세 줄로 잡아놓았는데도 헐렁한 자세로 서 있는 안개, 헐렁한 안개를 쳐다보다가 ..  (합성인간)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일하거나 놀지 못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손전화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켜서 ‘구경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짓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노닥거리는 짓을 구경합니다. 다른 사람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알리는 온갖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습니다.


  그러면, 우리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요. 우리 삶은 어디에 있고, 우리 사랑은 어디에서 피어날까요.


  동네에, 학교에, 마을에, 사회에, 그러니까 이 나라 어느 곳에 삶이 있다고 할는지 알 길이 없어요. 스스로 삶을 찾거나 생각하거나 바라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지네에 중독된 자네는 / 지리산을 돌아다니는 게 싫증 나면 /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에 오곤 했는데, 요즈음도 그런가 / 삼보일배는 자네 마음에 자네가 질려서였겠지 ..  (술 한잔하게나-이원규 시인에게)



  장대송 님이 빚은 시를 엮은 《스스로 웃는 매미》(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장대송 님이 오늘 누리는 하루가 고스란히 드러난 시를 읽습니다.


  장대송 님은 스스로 웃는 하루일까요? 장대송 님은 스스로 웃음꽃을 피우는 나날일까요? 장대송 님은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이 사랑을 이웃과 오순도순 나누는 삶일까요?



.. 불 꺼진 부엌, 나는 / 밤마다 방황하나니 / 정수기, 냉장고, 시계, 오븐, 정화기, 가습기…… / 그 푸른 LED 불빛 / 푸른 바다가 되어 나를 감시하나니 ..  (디지털의 흔적)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시는 삶 그대로 나옵니다. 시는 삶에서 고스란히 흐릅니다. 텔레비전을 켜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휩쓸리는 넋이 되어 시를 씁니다. 텔레비전을 끄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끄면서 다른 것을 바라보는 눈길로 시를 씁니다.


  숲에 깃들어 숲바람을 마시는 사람은 숲바람을 시로 길어올립니다. 흙을 두 손으로 만지면서 씨앗을 심는 사람은 흙내음과 씨뿌리기를 시로 추스릅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이와 함께 짓는 웃음을 시로 그립니다. 아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서 건네는 사람은 아이와 나누는 밥내음을 시로 엮습니다.



.. 서재 불을 끄고 / 책장의 책들을 더듬으며 빠져나온다 ..  (서재)



  시를 쓰는 사람이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마음을 밭으로 일구어 씨앗을 심는 넋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며 컴퓨터를 켜거나 텔레비전을 켜더라도 마음을 숲으로 가꾸어 바람과 햇볕과 빗물을 머금는 몸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래야, 시가 노래가 되니까요. 이렇게 할 때에, 시가 사랑으로 거듭나니까요.


  노래가 되지 않는 시는 어쩐지 싱겁습니다. 사랑이 되려 하지 않는 시는 어쩐지 무뚝뚝합니다. 겉으로는 웃는 얼굴일는지 모르나, 참웃음은 겉웃음이 아니라 마음 깊은 데에서 따사로이 샘솟는 속웃음이라고 느낍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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