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이들 창비아동문고 113
윤동재 지음 / 창비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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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7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똑같다

― 서울 아이들

 윤동재 글

 박승순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9.12.10.



  모과알은 모과나무에 달립니다. 모과알이 달리자면 모과꽃이 핍니다. 모과꽃이 피려면 모과나무가 자라야 하고, 모과나무가 자라려면 모과씨가 흙에 깃들어 찬찬히 자라야 합니다.


  씨앗은 열매가 되고, 열매는 다시 씨앗이 됩니다. 열매와 씨앗은 모두 목숨입니다. 목숨을 먹는 사람은 새로운 목숨을 잇고, 목숨을 받아들이는 숨결은 새로운 기운을 얻어 삶을 짓습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누구나 무엇이든 먹기에 삽니다. 지구별에 있는 모든 목숨은 반드시 무엇이든 먹습니다. 입으로 먹든 살갗으로 먹든, 풀과 나무뿐 아니라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 모두 무엇이든 먹습니다.



.. 서울 아이들에게는 / 질경이꽃도 / 이름 모를 꽃이 된다. // 서울 아이들에게는 / 굴뚝새도 / 이름 모를 새가 된다 ..  (이름도 모르고)



  우리 삶에서 밥은 대단히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왜냐하면 먹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고 할 만하니까요. 그렇지만 학교를 다니면 정작 밥을 가르치거나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밥 이야기를 거의 안 다룹니다. 이제는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인문계 학교는 아이와 어른 모두 손수 밥을 짓는 살림일을 몸소 하지도 않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일이란, ‘밥을 돈을 치러 사서 먹을 수 있도록 돈을 잘 버는 일자리를 얻는 길’을 알려주는 데에서 그칩니다. 어떤 밥을 먹을 적에 몸이 즐거운지 안 가르칩니다. 어떤 밥을 어떻게 지어서 먹을 적에 삶을 아름답게 가꿀 만한지 못 가르칩니다. 어떤 밥을 어떻게 지어서 누구와 먹을 적에 삶을 사랑스레 북돋울 만한지 하나도 안 가르칩니다. 밥을 지으려면 먹을거리는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조금도 못 가르칩니다.



.. 학교 오갈 때는 걷고 싶은데 / 자가용 꼭꼭 태워 줘요 // 이렇게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이렇게 자라서)



  예전에는 ‘서울 아이’만 질경이꽃을 몰랐을 테지만, 요즘에는 ‘시골 아이’도 질경이꽃을 모릅니다. 그리고,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 가운데 질경이꽃을 알아보는 사람이 퍽 드물고, 앞으로는 더욱 드물 테며, 대학교나 공공기관이나 법원이나 청와대나 국회나 신문사나 방송사 같은 데에서 질경이꽃을 다루는 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른 자리에 선 사람은 예나 이제나 무엇을 알까요? 학교에 자가용을 몰고 가는 교사는, 일터에 자가용을 끌고 오가는 어른은, 어제와 오늘 무엇을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는가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굴뚝새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굴뚝부터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비둘기나 까치나 참새쯤 으레 본다고 하지만, 이러한 새를 보면서 ‘새’를 본다고 느끼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도시에도 온갖 들풀이 돋고 시들지만, 들풀마다 어떤 이름인지 헤아리거나 살피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동시집 《서울 아이들》(창작과비평사,1989)을 쓴 윤동재 님은 〈이렇게 자라서〉라는 동시에서 묻습니다. “이렇게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되었을까요? 현대문명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할까요? 물질문명을 더욱 뽐냅니다.


  서울살이를 한숨지으며 바라보는 쓸쓸한 눈길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서울 아이들》인데, 이 동시집이 처음 나올 즈음뿐 아니라 2010년대에도 시골은 일찌감치 시골빛을 잃었습니다. 새마을운동 탓만이 아니고 경제개발 탓만이 아니며 올림픽 탓만이 아닙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삶을 안 가르치고 입시지옥만 몰아세웁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을 못 배우고 입시지옥만 배우면서 길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사랑을 못 받으면서 입시지옥 무게에 짓눌리기만 합니다.



..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 내 손잡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 모르는 것 있으면 친절히 가르쳐 주고 / 어떤 때는 어머니 대신 / 라면도 끓여 주던 우리 누나 / 고등학교 다니고부터는 도무지 / 우리 누나가 아닌 것 같아요 ..  (우리 누나)



  아이들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아이한테 사랑을 안 가르칩니다. 입시 지도만 합니다. 아이가 바라는 사랑을 찬찬히 이야기하지도 않고, 아이가 꿈꾸는 사랑을 가만히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은 누구나 몹시 바쁩니다. 오늘날 어른은 참으로 일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아주 오랜 나날을 보내는데, 학교에서는 사랑을 안 가르치거나 못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을 안 가르치거나 못 보여주는 학교 얼거리인데, 아이들은 시집이나 동시집을 읽으면서 어떤 마음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 들길을 걷다 보면 / 도랑 가로 달개비꽃 피어 있지요 / 달개비꽃 볼 때마다 / 달개비란 이름 맨 처음 붙인 사람 / 궁금하지요 ..  (누구일까)



  뜨거운 물을 단추만 눌러서 뽑은 뒤 부으면 몇 분 뒤에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은 쓰레기를 낳습니다. 다 먹은 뒤에도 쓰레기가 남고, 컵라면을 만드는 동안에 공장에서 쓰레기가 나옵니다. 냄비로 끓이는 봉지라면도 비닐봉지가 쓰레기로 남고, 봉지라면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쓰레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공장에서 만들어 가게로 나르자면 짐차가 굴러야 하고 짐차가 구를 찻길이 있어야 합니다. 공장을 돌리자면 숲을 밀어야 하고, 나라밖에서 석유를 사들여야 하는데, 석유를 뽑는 나라는 땅뙈기를 더럽힙니다. 석유를 사들이자면 커다란 배를 무어야 할 텐데, 커다란 배를 뭇느라 바다를 더럽히고, 배를 몰자면 석유를 들여야 하니 또 바다를 더럽히며, 배를 무을 때에 쓰는 쇠붙이를 파내자고 다시 숲을 더 망가뜨립니다. 적은 돈으로 사서 먹는 라면 한 봉지 때문에 지구별 곳곳을 파헤치거나 망가뜨리거나 부숩니다.


  라면 한 봉지를 사다 먹는 일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쁠 일은 없습니다. 무엇을 먹는지 느끼지 못한다면 삶이 없을 뿐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먹으면서 삶을 지으려고 하는지 깨닫지 않는다면 사랑이 자라지 않을 뿐입니다.


  배를 채우려고 밥을 먹는다면, 왜 배를 채워야 할까요? 배를 채워서 무슨 일이나 놀이를 할 생각일까요? 내가 누리는 일과 놀이는 무슨 보람이나 재미나 뜻이 있을까요?



.. 시냇가에 곱다랗게 / 피어 있는 제비꽃 / 물속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제비꽃)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똑같습니다. 학교가 아이한테 가르치는 것이 똑같고, 어른이 학교와 마을과 집에서 하는 일이 똑같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똑같이 하늘을 등에 입니다. 서울에서는 매캐한 먼지띠를 등에 인다고 할 테지만, 너른 누리에서 헤아리자면 먼지띠는 아주 작습니다. 지구별한테까지 빛을 보내는 다른 이웃 별을 헤아리자면 먼지띠는 아무것이 아닙니다.


  먼지띠가 아닌 온누리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지띠 너머에 있는 수많은 별빛과 미리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야 이웃 별을 사귑니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야 내 몸에 깃든 기운을 살핍니다.


  눈을 뜨면 어디에 있더라도 마음을 열어 사랑을 키웁니다. 눈을 못 뜨면 어디에 있더라도 눈먼 바보가 되어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못 짓습니다.


  겨울에 겨울바람을 실컷 느낍니다. 봄에 봄볕을 실컷 느낍니다. 여름에 들나물을 실컷 느낍니다. 가을에 가을빛을 실컷 느낍니다. 마음에서 자라는 꽃을 느끼면서, 들에서 피고 마당과 길가와 골목에서 함께 피는 고운 숨결을 느낄 수 있기를, 서로 이웃이요 동무인 줄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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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반 교과서 창비시선 39
김명수 / 창비 / 198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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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9



‘입시지옥 죽음터’인 학교에서

― 하급반 교과서

 김명수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3.5.25.



  노래는 모두 노래입니다. 오래된 노래가 없고 새로운 노래가 없습니다. 즐겁게 부르는 노래라면 모두 새로운 노래이고, 즐겁지 않다면 오래되거나 낡거나 묵은 노래입니다.


  꿈은 모두 꿈입니다. 오래된 꿈이 없고 새로운 꿈이 없습니다. 즐겁게 꾸는 꿈이라면 모두 새로운 꿈이고, 즐겁지 않다면 오래되거나 낡거나 묵은 꿈입니다.



.. 지금도 허리 끊어진 남북분계선 / 시계 청소를 하는 병사들의 톱에 / 아름드리 소나무는 베어져 나가는데 ..  (그 봄의 식수)



  새롭게 받아들일 때에 노래요 꿈입니다. 새로운 마음이 될 때에 노래를 부르거나 꿈을 꿉니다. 마음이 늘 새로운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마음을 늘 새롭게 다스리는 사람이 꿈을 꿉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한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이 노래를 할 적에 함께 기뻐하거나 웃지 못합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니 꿈을 꾸지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니 꿈을 꾸는 이웃이 있을 적에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면 두레나 품앗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일곱살 때였던가 / 삐라를 뿌리며 읍내 상공을 / 커다란 프로펠러 빙글빙글 돌리며 / 버짐난 우리들 머리 위로 날아가던 저 비행기 / 잠자리채 속에 사로잡았던 / 장수잠자리보다 / 더 신기하던 헬리콥터를 ..  (헬리콥터)



  김명수 님이 쓴 《하급반 교과서》(창작과비평사,1983)를 읽습니다. 어느덧 서른 해가 지난 시집입니다. 서른 해가 지난 예전 이야기를 담은 시집이라 할 수 있고, 서른 해 앞서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을 다룬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서른 해 앞서처럼 야구방망이를 골마루에서 흔들면서 엉덩이를 후려치는 교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폭력이 사라졌을까요? 요즈음은 서른 해 앞서처럼 이런 돈을 걷거나 저런 돈을 모으느라 아이들이 고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평화가 자라나요?



.. 소나무는 솔씨를 간직하고 섰으리라 / 지나간 겨울 산에 갔다가 / 내가 보았던 나무들의 작은 씨앗 / 멀리서 오늘처럼 비 오는 날도 / 비바람에 나무들 작은 씨앗들이 / 제 몸 묻어 푸른 산을 꿈꾸며 섰으리라 ..  (솔씨)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삽을 들고 운동장을 펴는 일 따위는 안 합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폐품수집을 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학급시설을 갖추느라 바자회를 열면서 학교에 돈을 바쳐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골마루에 엎드려서 양초나 왁스를 문지르면서 반들반들 빛이 나도록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학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날 학교는 어느 대목이 나아졌는가요? 오늘날 학교는 지난날 아이들이 고단하게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은 사라졌다고 할 만한데, 무엇보다 가장 큰 고단함은 사라졌을는지, 아니면 가장 큰 고단함이야말로 더 커졌을는지 궁금합니다.



.. 봄이 와도 / 봄이 와도 / 고단한 봄날 / 우리 어매 홀로 조밭을 맨다 ..  (노고지리)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크게 짊어지는 굴레는 ‘시험지옥’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가르치고 싶어서 학교에 넣지만, 막상 학교는 아이를 가르치는 노릇을 거의 못 하거나 안 합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는 ‘입시지옥’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서 시험점수를 더 받아내도록 하는 데에만 바쁜 학교입니다. 이리하여 요즈음에는 어버이 스스로 ‘삶을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대학교에 보내려는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할까요.


  그나마 예전에는 ‘아이가 동무를 사귀면서 놀도록’ 할 뜻으로 학교에 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학교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놀지 못합니다. 학교는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학교는 입시시험을 치르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 키만 크신 아버지 / 우리집 서 마지기 논농사는 어떤지요? / 제가 사는 영등포는 하늘이 어둡지만 / 흉년든 고향에도 / 하늘은 가을 되어 파랗겠지요 ..  (소액환)



  내 아이가 놀고 싶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는 놀 수 없습니다. 학원에 가야 할 테니까요. 학원에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웃학교에 더 잘 들어가도록 몰아세울 뜻이기 때문입니다. 웃학교에 더 잘 들어가도록 몰아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더 나은 웃학교를 거치고 또 더 나은 웃학교를 지나서 ‘돈을 많이 벌고 몸은 덜 쓰면서 일은 수월한 일자리’를 얻도록 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 학교라는 곳은 ‘입시시험’으로 내모는 곳인데, 입시시험으로 내모는 까닭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하려는 뜻’ 때문이고, 돈을 더 많이 벌도록 하는 일자리도 ‘나는 몸을 안 쓰고 다른 이가 몸을 쓰도록 일을 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도’록 하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 꽃들에겐 / 설운 이름 너무 많다 /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 건드리면 끊어질 듯 / 바람불면 쓰러질 듯 /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 우리는 그날을 / 새봄이라 믿는다 ..  (우리나라 꽃들에겐)



  학교를 더 다닌다고 해서 됨됨이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됨됨이를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오직 입시시험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학교이니, 더 낫다는 웃학교에 들어가도록 시험점수는 높일 수 있더라도, 착한 마음이나 바른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나 상냥한 마음이나 너른 마음이나 맑은 마음이나 훌륭한 마음이나 멋진 마음이나 예쁜 마음이나 좋은 마음이 되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그 좋다’는 대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사회에서 갖가지 사건과 사고를 터뜨립니다. ‘그 훌륭하다’는 대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정치나 경제나 문화 같은 행정을 맡을 적에 몹쓸 짓을 저지르기 일쑤입니다. ‘더 낫다는 웃학교’에는 들어가도록 길들여졌지만, 마음씨를 올바로 추스르는 길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와 대학원도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한테 ‘꿈’을 안 가르치고 ‘사랑’을 가르치며 ‘믿음’을 안 가르칩니다. 이웃이 누구인지 안 가르치고, 동무가 누구인지 안 가르치며, 사람이 누구인지 안 가르쳐요.



.. 광주에 사는 내 친구 시인 / 김장독을 파묻다가 삽날에 나온 것은 / 찢어진 비닐봉지 조각이라나 / 묻혀서도 썩지 않는 비닐봉지라나 ..  (기정사실)



  시집 《하급반 교과서》를 찬찬히 읽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만 가르치는 이 얼거리를 그대로 잇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앞날을 밝힐 등불이나 별빛’이 될 수 없습니다. 머릿속에 교과서 시험지식만 가득 채운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잘못을 더 저지를 슬픈 굴레’가 되고 맙니다.



.. 어느새 자라난 아들의 머리를 / 뒷마당에 나와서 잘라주고 있다 / 헌 신문지로 목둘레를 여미고 / 눈을 덮는 긴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 무엇이든지 잘 잘리는 / 어머니 쓰시던 큼직한 가위 ..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면서)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교과서만 가르치려 하니 뒤틀리거나 비틀립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일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학교는 다니되 삶은 못 배우고 사랑을 못 배우며 꿈이나 믿음이나 이야기나 웃음을 배우지 못하니 바보스럽거나 미련한 굴레에 사로잡힙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며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두레와 품앗이를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래가 없는 학교는 죽음터입니다. 노래가 없는 마을음 죽음터입니다. 노래가 없는 일터와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는 모두 죽음터입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노래가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제 삶자리에서 손수 길어올려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흘러야 합니다. 노래가 태어나야 하고, 노래가 자라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어야 하고,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노래를 물려받아야 합니다.


  교과서가 사라지기를 빕니다. 교과서 아닌 사랑으로, 어버이가 아이를 기쁘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빕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아니라 보금자리라는 사랑터에서 아름다운 꿈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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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 애지시선 34
김나영 지음 / 애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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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7



삶을 지으면서 시를 짓는다

― 수작

 김나영 글

 애지 펴냄, 2010.10.30.



  마당에서 마을고양이가 웁니다. 마을고양이는 저마다 우리 집을 저희 터로 삼으려고 용을 씁니다. 우리 마을에서뿐 아니라 둘레 여러 마을을 아울러 ‘겨울에도 먹이를 얻을 만한 곳’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마을고양이가 조금만 운다든지 서로 먹이를 나누어 먹는다면 시끄러울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을고양이는 서로 툭탁거립니다.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 녀석이 꼭 덩치가 작거나 힘이 여린 녀석을 윽박지르거나 때립니다.


  덩치 큰 녀석은 어째서 그 덩치로 아름다운 짓을 하지 못할까요. 힘이 센 녀석은 어찌하여 그 힘으로 어여쁜 일을 하지 않을까요.



.. 아들 녀석의 방바닥 / 여기저기 박혀 있는 얼룩들 /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질 않는다 / 몇 번 힘주어 닦아내자 그제서야 ..  (유월)



  밤에 마당에 서면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바깥이 깜깜하고 등불이 거의 없는 시골이기에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별을 보고 싶으니 별을 봅니다. 고개를 들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맴을 돕니다. 얼마나 많은 별빛이 쏟아지는지 바라봅니다. 어떤 별빛이 우리 집으로 스며드는지 헤아립니다.


  별은 별을 보려는 사람한테 찾아갑니다. 별을 보려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있을 만한 터전을 찾아갑니다. 나무는 나무를 사귀려는 사람 곁에서 자랍니다. 나무를 사귀려는 사람은 나무를 곁에 둘 수 있는 터전에서 기쁘게 삶을 꾸립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삶이 흐릅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삶길을 걷습니다. 마음이 자라는 대로 삶이 자라고, 마음이 웃고 우는 자리가 사랑이 피어나는 자리입니다.



..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가내수공업을 / 어느 날 아버지가 방안 가득 부려놓았다 / 삼십 촉 전등 아래 고무판화처럼 박혀서 / 온 식구들이 너덜너덜한 삶을 풀칠하기 시작했다 ..  (사춘기)



  김나영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수작》(애지,2010)을 읽습니다. ‘나영’은 이녁이 어버이한테서 받은 이름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를 쓴 분한테는 어버이가 붙인 이름이 따로 있고, 이녁이 새롭게 누리는 이름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나한테도 이름이 여럿 있습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지어서 준 이름이 있고, 내가 나한테 선물한 이름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한쪽 이름만 좋아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내 어버이는 이녁 사랑을 담아서 나한테 이름을 주었고, 나는 내 사랑을 실어서 나한테 새로운 이름을 선물했습니다. 두 가지 이름에는 저마다 다른 사랑과 숨결이 흐릅니다.



.. 나는 문명이 디자인한 딸이다 / 내 가슴둘레엔 그 흔적이 문신처럼 박혀있다 / 세상 수많은 딸들의 브래지어 봉제선 뒤편 / 늙지 않는 빅브라더가 있다 ..  (브래지어를 풀고)



  아이한테 ‘개구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개구쟁이로 자랍니다. 아이한테 ‘말썽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말썽쟁이로 자랍니다. 아이한테 ‘놀이순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놀이순이로 자랍니다. 아이한테 ‘책돌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책돌이로 자랍니다. 아이한테 ‘사랑둥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사랑둥이로 자랍니다.


  그리고, 아이한테 붙이는 이름은 고스란히 내 이름입니다.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가 받아먹는 이야기입니다.


  조금만 생각할 수 있으면 모두 알아챕니다. 아이한테 차려서 주는 밥은 바로 어버이 스스로 먹는 밥입니다. 아이가 지내는 보금자리는 바로 어버이인 내가 지내는 보금자리입니다. 아이한테 베푸는 사랑은 바로 어버이인 내가 나 스스로한테 베푸는 사랑입니다.



.. 그때 만일 교과서가 더 재미있었더라면 때론 별책부록 안에 더 재미있는 페이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  (그때 만일 교과서가 더 재미있었더라면)



  시집 《수작》은 곱다라니 빛나다가도 어두컴컴한 굴로 들어갑니다. 가만히 웃으며 노래를 하다가도 노래를 뚝 그치고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김나영 님이 ‘밥을 안 해도 되는 사내’라면 어떤 시를 썼을까요? 김나영 님이 ‘집안 청소를 도맡지 않아도 되는 사내’라면 어떤 시를 쓸까요?


  삶을 지으면서 시를 짓습니다. 삶을 노래하면서 시를 노래합니다. 삶을 꿈꾸면서 시를 꿈꿉니다.



.. 시 쓰는 내가 책상 하나 없다 / 나는 바닥에, 거리에, 꽃잎 위에 엎드려 시를 쓴다 ..  (극빈)



  더 낫거나 덜떨어지는 삶은 없습니다. 더 나은 시라든지 덜떨어지는 시는 없습니다. 더 나은 노래나 덜떨어지는 노래도 없습니다. 사랑을 놓고도 더 나은 사랑이나 덜떨어지는 사랑을 가르지 않습니다. 오직 삶이고, 시이며, 노래요, 사랑입니다.


  스스로 찾는 즐거움입니다. 스스로 부르는 고단함입니다. 스스로 쓰는 글입니다. 스스로 짓는 하루입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따분하면서 지겹게 하루를 보내면서 따분함과 지겨움으로 얼룩진 시를 씁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슬프면서 아프게 하루를 보내면서 슬픔과 아픔으로 어우러진 시를 씁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꽃이 되고 들풀이 되면서 꽃내음과 풀빛으로 환한 시를 씁니다. 4347.12.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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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동시집 차령이 뽀뽀 - 국영문판 바우솔 동시집 1
고은 지음, 이억배 그림,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바우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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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6



아이와 어른이 한몸에

― 차령이 뽀뽀

 고은 글

 이억배 그림

 바우솔 펴냄, 2011.12.1.



  아이는 날마다 자랍니다. 어른도 날마다 자랍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는 어느새 기저귀를 떼면서 걷고, 어느새 밤오줌을 가릴 뿐 아니라, 어느새 콩콩콩 맑은 소리를 내면서 달립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는 옹알옹알거리다가 어버이한테서 말을 물려받아 조잘조잘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는 목청껏 외칠 줄 알고, 하루 내내 웃고 떠들어도 지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까지 자랄까요. 아이는 언제까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거나 배울까요.


  나이가 마흔이어도 늙은 어버이한테는 아이입니다. 나이가 예순이어도 늙은 어버이한테는 아이입니다. 나이가 예순이어도 늙은 어버이한테는 아이입니다. 함께 늙는 아이라 할 수 있지만, 함께 사는 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누리를 함께 바라보고, 이웃과 동무를 함께 마주하며, 꿈과 사랑을 함께 키웁니다.



.. 제비집에 제비 새끼 다섯 마리 / 엄마가 먹이 찾아 / 나가 있을 때 / 찌찌배 찌찌배배 / 실컷 놀아요 / 나하고 찌찌배배 실컷 놀아요 / 그러다가 어느 날 후드둑 날아 / 저만치 빨랫줄에 앉자마자 / 기우뚱 기우뚱 / 나를 불러요 ..  (제비 새끼)



  아이는 곧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아이는 곧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새로운 아이는 이윽고 새삼스럽게 아이를 낳습니다. 어제까지 아이였어도 오늘은 어른입니다. 오늘은 아이라 하지만 모레에는 어른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이와 어른을 한몸에 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 모습과 어른 모습을 한몸에 담습니다. 어느 때에는 아이스럽고 어느 날에는 어른스럽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는 아이답고 어느 곳에서는 어른답습니다.


  아이스러운 모습이라면 맑거나 밝은 마음결이라 할 만할까요. 어른스러운 모습이라면 믿음직하거나 씩씩한 몸가짐이라 할 만할까요. 아이다운 모습이라면 쉬지 않고 웃고 노래하면서 놀 수 있는 기운이라고 할 만할까요. 어른다운 모습이라면 튼튼하고 야무지게 일하고 살림을 가꾸는 몸차림이라고 할 만할까요.



.. 까치들도 / 여름밤 풍뎅이도 / 우리집 식구 / 겨울밤 추운 달도 / 우리집 식구 ..  (우리집 식구)



  고은 님이 시를 쓰고 이억배 님이 그림을 넣은 《차령이 뽀뽀》(바우솔,2011)를 읽습니다. 고은 님은 포근하게 시를 쓰고, 이억배 님은 푸근하게 그림을 그립니다. 무척 멋스러우면서 사랑스러운 동시집입니다. 오늘날 흔히 나오는 동시집을 보면 좀 우스꽝스럽다고 할 만한 그림을 담기 일쑤입니다. 또는 도시에 있는 학교나 집에서 부대끼는 모습만 그림으로 담기 마련입니다. 동시집 《차령이 뽀뽀》는 아이와 어른이 이 땅에서 함께 사는 벗님이자 이웃이요 동무라는 숨결을 잘 보여주는 그림을 담아서 고은 님 시와 곱게 어우러지는구나 싶습니다.



.. 아가 사랑이란 / 이렇게 함께 걸어가는 거란다 / 멀리 떠나가면 / 보고 싶은 것 / 그것이 사랑이란다 ..  (사랑)



  동시집 《차령이 뽀뽀》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함께 사는 어버이 눈썰미로 바라보는 ‘새로운 삶과 사랑’을 들려줍니다. 어른문학만 하던 고은 님은 이녁 아이 차령이를 마주하면서 어린이문학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어느 누구도 하루아침에 어른이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루아침에 어른문학부터 즐기지 않아요.


  어릴 적부터 동시와 동화를 읽으면서 마음을 살찌우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면, 어른문학도 기쁘게 누립니다. 어릴 적부터 어버이한테서 사랑스럽고 꿈이 가득한 이야기밥을 받아먹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어른문학과 어른 인문책을 넓고 깊게 살핍니다.



.. 차령이는 혼자서 가수인가 봐 / 학교 숙제하면서 노래를 해요 / 노래하면서 숙제를 해요 / 그러다가 부를 노래 없으면 / 노래 지어서 / 내 마음 숲 속에 나비 한 마리 / 그렇게 노래 지어서 / 숙제 끝내고 노래를 해요 ..  (차령이는 가수)



  고은 님은 꼭 고은 님 자리에서 이녁 아이 차령이를 바라봅니다. 고은 님은 어머니 눈썰미로 이녁 아이를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하루에 맞추어 동시를 씁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사랑과 웃음을 동시로 고이 담습니다.


  고은 님네 차령이는 몇 살쯤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고은 님네 차령이가 자라는 흐름에 맞추어 고은 님은 동시뿐 아니라 청소년시도 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지구별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를 헤아리면서 시 한 줄로 노래와 이야기밥과 웃음꽃을 일구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눈 위에 / 새 발자국 / 너 혼자구나 / 한 줄 더 기다랗게 / 만들어 줄게 ..  (새 발자국)



  우리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웃 아이를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 기저귀를 갈면서 이웃 아이가 자라는 결을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가 밤오줌을 가리도록 보살피면서 이웃 아이가 씩씩하게 뛰노는 삶터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가 날마다 뛰놀면서 노래하는 하루를 같이 누리면서, 이웃 모든 아이가 언제나 맑게 웃으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는 길을 슬기롭게 찾습니다.


  차령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눈에 찍힌 새 발자국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차령이와 함께 다른 아이들도 제비집을 올려다보고, 언제나 스스로 노래를 지어서 기쁘게 흥얼거릴 수 있기를 빌어요. 차령이도 다른 아이들도 어버이한테 뽀뽀를 하고 숲짐승과 나무와 꽃을 두루 사랑하는 마음을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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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알통
서홍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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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6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 어머니 알통

 서홍관 글

 문학동네 펴냄, 2010.3.30.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안고 밤오줌을 누입니다. 네 살 작은아이가 엊저녁에 퍽 일찍 곯아떨어졌습니다. 낮잠을 거르고 신나게 뛰놀다가 저녁밥조차 못 먹고 곯아떨어졌습니다. 배고픔과 졸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졸음이 먼저라면서 잠듭니다. 이러다 보니 밤에 쉬를 누러 혼자 일어나지 못하겠구나 싶어서, 잠든 지 여섯 시간쯤 지난 뒤 잠자리에서 크게 몸을 뒤척일 때에 귓속말로 살짝 “보라야, 쉬하러 가자. 쉬.” 하고 속삭인 뒤 살포시 안습니다.


  잠든 아이를 그냥 안으면 깜짝 놀라서 으앙 하고 웁니다. 잘 자다가 움직여야 하니까요. 잠든 아이를 안을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느긋하게 몸을 맡깁니다.



.. 입관을 하는데 / 어머니는 뼈만 남은 몸으로 말없이 누워 계시고 / 관에 못질을 하기 전에 나는 어머니 얼굴을 감싸쥐었다 / 차가워진 어머니의 볼을 내 손으로 따스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  (어머니, 하관하던 날)



  밤오줌을 누이고 나서 다시 아이를 안으면, 아이는 으레 한손으로 내 어깨나 등 언저리를 톡톡 칩니다. 고개를 다시 가누어 폭 기댑니다. 자면서도 할 짓은 다 합니다. 아니, 어쩌면, 밤오줌을 누여 주어 고맙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한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오줌그릇을 비웁니다. 큰아이가 밤오줌을 누러 나오면 오줌그릇이 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줌그릇을 비우면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별이 얼마나 돋았는지 헤아리고, 구름이 어느 만큼 있는지 살핍니다. 별빛과 달빛과 구름을 모두 보면서 이튿날 날씨와 바람을 몸으로 가누어 봅니다.



.. 중학교 친구한테서 / 전화가 왔다. //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 영안실을 못 잡았다고, / 너희 병원 영안실은 비어 있느냐고 ..  (영안실)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자랍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자랍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큽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고 꿈을 물려받으면서 새롭게 큽니다.


  아이와 함께 먹을 밥을 짓는 어버이는 밥솜씨가 찬찬히 늡니다. 어버이와 함께 밥을 먹는 아이는 수저질이 찬찬히 나아집니다. 아이와 함께 살림을 꾸리는 어버이는 일 매무새가 차츰 늡니다. 어버이 곁에서 살림을 지켜보는 아이는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큽니다.


  아이 앞에서 할 만한 일을 하자고 다짐하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 곁에서 일을 배우고 놀이를 즐기는 아이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돕고 가르치고 배우고 기대면서 하루하루 삽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 남산타워에 올라가서 / 벨기에 방향표시와 국기를 보면서 기뻐하는 앤느가 / 벨기에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던가. / 동대문시장에서 / 고운 녹색 한복 한 벌 사서 맞춰입고는 / 빙글빙글 돌면서 얼마나 좋아하던지 ..  (앤느)



  서홍관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어머니 알통》(문학동네,2010)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이 시집을 읽으니 일곱 살 큰아이가 문득 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책이름 다섯 글자를 읽습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어머니 알통? 어머니 알통이 뭐야?” 큰아이는 무언가 재미난 이야기가 있으리라 여기면서 조그마한 시집이 궁금합니다. 아버지한테서 조그마한 시집을 건네받은 아이는 시집을 조금 읽다가 어딘가 어려운지 내려놓습니다. 그렇지만 책겉에 적힌 다섯 글자를 네 살 동생한테 가르칩니다. 동생더러 책겉을 보라고 부르면서 한 글자씩 차근차근 짚으면서 읽어 줍니다.



.. 누런 밀밭과 / 키 큰 포플러들이 / 바람 따라 길게 뻗은 시골길. // 버스를 잘못 내려 / 갑자기 걷게 된 / 서양의 작은 마을. / 방울새가 나를 안내한다 ..  (방울새가 없는 풍경)



  어머니 알통은 아이가 물려받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씩씩하고 튼튼한 알통을 키워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새롭게 낳은 아이가 자라면서 알통을 물려받습니다. 새롭게 자라 어른이 된 아이는 다시 새로운 어른이 되고, 새로운 어른이 된 아이는 새삼스럽도록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어머니 알통이란 어머니 사랑입니다. 어머니 사랑이란 어머니 삶입니다. 어머니 삶이란 어머니 노래입니다. 어머니 노래란 어머니 숨결입니다.



.. 고문과 학살과 일인독재의 시대가 / 태평성대였다고 / 박정희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니 // 일기장 구석에 이십구 년째 숨어 있던 표어들을 꺼내어 / 광화문 네거리에 / 플래카드로 다시 걸어놓아야겠네. // 국회를 대통령이 맘대로 해산하고 / 국회의원 삼분의 일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 이게 싫다고 말하면 / 고문하고 구타하고, 감옥에 처넣던 시절이 / 그렇게 좋았더냐고 ..  (10월 유신)



  서홍관 님은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조곤조곤 노래합니다. 슬프며 바보스러운 사회 얼거리를 안타까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시집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바보스럽고 슬픈 독재자를 바라보는 서홍관 님 눈길은, 어쩌면, 이 또한, 어머니 사랑과 같지 않을까 하고.


  어머니한테는 안 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면 열 손가락이 모두 아픕니다. 바보스럽고 우악스럽던 독재자조차 ‘누군가한테는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아니, 바보스럽고 우악스러운 독재자로 끔찍한 나날을 보낸 그이도 어릴 적에 어머니 사랑을 받아 태어났고, 어머니 사랑으로 젖을 물었으며, 어머니 사랑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서 받은 사랑’을 새록새록 되새긴다면 바보짓을 할 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에 어머니가 물려준 사랑’을 한결같이 되돌아본다면 바보짓이 아니라 사랑노래를 부르면서 살아갑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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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1-30 08:31   좋아요 0 | URL
어머니 알통이란 제목도 예쁘고 조각보의 고운 빛같은 표지도 예쁘네요~
거기다 함께살기님의 느낌글을 살포시 읽으니 미처 읽기도 전에 즐겁습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11-30 09:56   좋아요 0 | URL
이 시집을 사 놓고 몇 해째 잊고 지냈더군요 ^^;;
며칠 앞서 집안 책꽂이를 치우다가
비로소 알아보고는
바지런히 읽었습니다 ^^;;

예쁜 마음이 찬찬히 흐르는 노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