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엄지척 문학동네 동시집 81
권오삼 지음, 이주희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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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3.

노래책시렁 364


《너도 나도 엄지척》

 권오삼

 문학동네

 2021.6.18.



  잘할 수 있는 길이나 못하는 길은 없습니다. ‘잘하다·못하다’는 ‘잘생기다·못생기다’처럼, 사람들이 틀을 세워서 좋거나 나쁘다고 가르는 굴레나 수렁이에요. 누구를 뽑아서 일을 맡겨야 좋지 않아요. 누가 뽑혀서 어느 자리에 올랐기에 나쁘지 않아요. 해를 보고 별을 봐요. 새를 보고 비를 봐요. 들숲바다하고 풀꽃나무는 사람들이 어떤 씨앗을 심든 지켜봅니다. 누가 무엇을 하건 우리 스스로 마음에 사랑을 심고서 한 발짝씩 걸으면 됩니다. 누구를 뽑느냐가 아닌, 우리 스스로 어떤 터전을 일구려는 사랑을 서로 어깨동무로 나누려느냐 하는 마음일 노릇입니다. 《너도 나도 엄지척》을 읽었습니다. ‘엄지척’을 왜 해야 하는지 알쏭합니다. 잘했기에 엄지척인가요? 못했을 적에는요? 추킴말(칭찬)이 안 나쁘되, 섣불리 엄지척을 안 할 노릇입니다. 다독이고 달래고 함께 웃고 울며 도란도란한 길을 열어야지요. 오늘날 ‘어른 아닌 꼰대’인 분들은 ‘저쪽 놈들은 나빠!’ 하고 가르려고 하는데, 그런 말 한 마디가 바로 싸움(전쟁)입니다. 싸움말을 노래(동시)에까지 심으려 한다면, 어린이는 무엇을 배울까요? 비하고 바람이 왜 올까요? 말장난 아닌 삶읽기를 해야 하지 않나요? ‘착한마음’을 ‘훔쳐’서 주려 한다니, 너무 철없어요.



하늘에서 / 살수기 수억만 대가 / 물을 쏴아쏴아 // 선풍기 수억만 대가 / 바람을 쏴아쏴아 // 둘 다 고물인지 / 이리저리 / 제멋대로 뿌려 댄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25쪽)


양심이 없는 사람에겐 / 양심을 / 훔쳐서라도 주고 싶다 (어느 도둑 아저씨의 꿈/28쪽)


+


《너도 나도 엄지척》(권오삼, 문학동네, 2021)


다음은 제가 정한 제 동시나라 헌법입니다

→ 다음은 제가 잡은 노래나라 길입니다

→ 다음은 우리 노래나라 으뜸길입니다

4쪽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휙― 공중으로

→ 살짝 머뭇머뭇하다가 휙 하늘로

19쪽


기도할 때마다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야

→ 빌 때마다 비는 대로 이루지는 않아

→ 바랄 때마다 바라는 대로 이루지는 않아

20쪽


이 어른 덕분에 모두 무사히 여름을 넘긴다

→ 이 어른 힘으로 모두 여름을 잘 넘긴다

→ 이 어른이 있어 모두 여름을 잘 넘긴다

76쪽


태극기들이 거리에서 국기게양대에서

→ 한나래가 거리에서 나래올림대에서

→ 한날개가 거리에서 나래걸대에서

8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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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바퀴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9
박설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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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3.

노래책시렁 367


《꽃은 바퀴다》

 박설희

 실천문학사

 2017.1.31.



  놀이하는 사람이 노래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놀이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놀이도 노래도 안 하는 듯싶습니다. 곰곰이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말이 있기에,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우리말로 그리면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어린이가 아직 맞춤길이나 띄어쓰기가 덜 익숙해서 비뚤비뚤 쓰더라도, 노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노래는 언제나 싱그럽습니다. 《꽃은 바퀴다》를 읽으며 새삼스레 ‘놀이·노래’하고 ‘시·문학’을 겹쳐서 봅니다. 자꾸 ‘시’를 쓰면서 ‘문학’을 하려고 들면 딱딱하게 굳다가 담벼락을 세웁니다. 이 딱딱한 담벼락은 지난 총칼사슬(일제강점기)부터 흘러온 일본스런 한자말씨입니다. 그리고 조선 오백 해를 가로지른 중국스런 한자말씨예요. 글이 아닌 말로 살림을 짓고 살아온 수수한 사람들은 ‘한문글’은 어림도 없었고 ‘우리글(훈민정음)’조차 쓴 일이 없지만, 입으로 늘 노래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이끌었어요. 오늘 우리가 쓸 글이라면 ‘놀이·노래’여야지 싶습니다. 즐겁게 하루를 일하면서 노래하면 됩니다. 즐겁게 어린이 곁에 서서 노래하면 됩니다. 걸으면서, 버스를 타면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면서, 잠자리에 누우면서, 별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노래하는 삶이면 됩니다.



책을 사고 컴퓨터를 사고 여행을 사고 / 사고 사고 또 사는 동안 / 난 살아 있다 // 사는동안 애인 / 사는동안 죽음 // 그러나 / 부동산을 사는 동안 / 애인을 사는 동안 / 죽음을 사는 동안 (사는 동안/34쪽)


+


《꽃은 바퀴다》(박설희, 실천문학사, 2017)


울울창창 무리 지어서

→ 들빛으로 무리지어서

→ 빽빽하게 무리지어서

→ 푸르게 무리지어서

11쪽


발에 새겨진 유전의 흔적은

→ 발에 새긴 씨앗은

→ 발에 새긴 자취는

12쪽


방목의 세월 푸르게 기다려

→ 놓아준 나날 푸르게 기다려

→ 풀려난 삶 푸르게 기다려

19쪽


나뭇가지처럼 중력을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닌 걸

→ 나뭇가지처럼 끌힘을 이길 수 있지도 않은걸

→ 나뭇가지처럼 당겨도 이길 수 있지도 않은걸

20쪽


발화하고서야 수정하는 추신으로 이루어진 생

→ 터뜨리고서야 손질하며 덧붙는 삶

→ 피우고서야 꽃가루를 새로 맞는 삶

→ 말하고서야 덧보태는 살림

25쪽


내생을 기약하며 숨을 놓던 순간들

→ 다음을 기다리며 숨을 놓던 때

→ 뒷날을 그리며 숨을 놓던 무렵

48쪽


만장(挽章)이 지느러미처럼 너울거리고

→ 나래가 지느러미처럼 너울거리고

→ 날개가 지느러미처럼 너울거리고

5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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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하늘 한 하늘 창비시선 75
문익환 지음 / 창비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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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3.

노래책시렁 368


《두 하늘 한 하늘》

 문익환

 창작과비평사

 1989.6.15.



  1989년을 떠올립니다.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꼭두각시가 아닌, 옆집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높녘에 맨몸으로 걸어갈 수 있던 몸짓이 놀라웠습니다. 한겨레가 한나라로 어깨동무하면서 모든 싸움붙이(전쟁무기)를 녹여내는 길에 마음을 쏟는 할배라면, 언젠가 만날 날이 있겠거니 여겼고, 드디어 사슬 같은 배움터(의무교육 열두 해)를 1994년에 마치는데, 이해 1월에 늦봄 문익환 님이 숨을 거둡니다. 《두 하늘 한 하늘》을 틈틈이 되읽곤 했습니다. 2023년에도 새삼스레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잠꼬대’로는 꿈을 이루지 않아요. 그저 ‘잠’으로 꿈을 이룹니다. 애벌레가 고치에 깃들 적에 ‘잠’이라 합니다. 나비로 깨어나려고 오래도록 ‘잠들’어요. 워낙 사납고 캄캄한 사슬나라(군사독재)인 이 땅이었으니,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 노래할밖에 없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어깨동무는 나라(정부)가 해주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스스럼없이 숲살림에 들살림을 짓는 사이에 어느새 이루는 아름길입니다. 풀꽃나무는 서둘러 자라지 않아요. 모두 느긋이 찬찬히 자랍니다. 한겨레 한나라도 느긋이 빗물처럼 냇물처럼 바닷물처럼 나아갑니다. 너울만 치거나 눈보라만 일면 꽃이 못 피고 싹이 안 터요. 살림꾼으로 살아야 사랑입니다.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잠꼬대 아닌 잠꼬대/3쪽)


형님 형님 문석이형님 / 역사라는 게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지만 / 천년을 하루같이 느긋이 기다리는 면도 있어 / 그런대로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만 / 구들장이 들썩들썩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 화끈하게 아궁이 군불 지피고 (문석이형님/96쪽)


+


《두 하늘 한 하늘》(문익환, 창작과비평사, 1989)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 난 올해에 평양으로 갈래

→ 난 올해에는 평양으로 가

→ 난 올해까지 평양으로 가겠어

3쪽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 난 꼭두각시라고 부르지 않아

→ 난 앞잡이라고 부르지 않아

→ 난 끄나풀이라고 부르지 않아

3쪽


갓 푸르른 모란꽃 망울

→ 갓 푸른 모란꽃 망울

14쪽


따다 남은 연시 하나

→ 따다 남은 붉감 하나

→ 따다 남은 감 하나

17쪽


흰 눈 위에 제 속살 다 비우고

→ 흰눈에 제 속살 다 비우고

17쪽


그대들의 진군 앞에서 혼란의 절벽 무너지고

→ 그대들이 밀려들어 어지러운 벼랑 무너지고

→ 그대들이 나아가니 어수선한 고개 무너지고

40쪽


망막 째지는 새 날

→ 눈그물 째지는 새날

4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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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창비시선 2
조태일 지음 / 창비 / 197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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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8.

노래책시렁 311


《國土》

 조태일

 창작과비평사

 1975.5.25.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어떤 나라인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가 스스로 그린 나라”라고 대꾸합니다. 뒷짓도 뒷길도, 사납짓도 끼리질도, 우두머리도 감투도 죄다 우리가 스스로 그려서 일구어 낸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2023년 가을에 중국에서 겨룸판(아시안게임)이 열렸습니다. ‘한겨레 두 나라’가 붙은 자리를 알릴 적에, 두 나라는 ‘남한·북한’하고 ‘조선·괴뢰’라는 이름을 썼다지요. 우리나라도 1990년으로 접어들 무렵까지 으레 ‘북한 괴뢰’라 일컬었습니다. ‘두 나라인 한겨레’를 이끄는 우두머리만 서로 ‘꼭두각시(괴뢰)’로 여기지 않아요. 사람들도 우두머리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어깨동무 아닌 손가락질로 치닫고, 손잡기 아닌 갈라치기로 뻗습니다. 《國土》를 되읽습니다. 1975년에 나온 글에 한자가 수두룩합니다. 꽤 오래도록 ‘글은 한자로 써야 멋이다’라 여기는 글바치가 많았습니다. 글은 으레 사내가 쓰느라 ‘숫글 = 한문’이요, ‘암글 = 한글’이었어요. 게다가 “그 부드러운 음기와 넉넉한 시대의 목소리 … 처녀야, 처녀야, 붉은 처녀야 … 나의 이 풍부한 음기엔”처럼 순이를 노리개처럼 바라보는 글도 넘쳤다. 2020년으로 접어들어도 ‘전라도 사내’는 으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기’ 일쑤예요. 모지리는 위에만 있지 않아요. 우리가 모두 모지리에 머저리입니다.


ㅅㄴㄹ


아무리 아무리 아니라 해도 / 신문은 곧 휴지일진댄 / 알알이 태연히 잘못 박힌 活字야 / 썩은 피래미 눈깔아, 차라리 뒤집혀서 / 시커먼 覆字로 눈멀어 버려라 (버려라 타령―國土·30/64쪽)


저 세월의 시커먼 부분을 상냥하게 문지르며 / 불타오르는 붉은 스커트, / 몇 개의 나의 친밀한 반란은 그 속에 있다. / 그 부드러운 음기와 넉넉한 시대의 목소리. // 나는 무릎을 꿇는다. / 열 가지 형태의 열 가지 빛깔의 내 손끝은 / 서서히 그러나 무자비하게 / 이 땅의 내력과 너의 성분을 더듬는다. // 처녀야, 처녀야, 붉은 처녀야 / 나의 이 풍부한 음기엔 / 악의라든지 타협이 도무지 흐르지 않는다. (野戰國 딸기밭가의 이야기/14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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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십니까 수우당 시인선 10
표성배 지음 / 수우당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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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30.

노래책시렁 339


《당신은 누구십니까》

 표성배

 수우당

 2023.4.25.



  우리는 참말로 뭘 모르는 채 살아갑니다. 뭘 몰라서 나쁘지 않아요. 모르면 지켜보고 들여다보고 바라보면서 처음부터 배우면 됩니다. 모르면서 모르는 줄 모르는 채 멀뚱멀뚱 구경만 하거나 팔짱만 끼거나 등을 돌리면 철없는 굴레에 스스로 갇혀요. “모르는 줄 알다”란, ‘첫앎’입니다. 무엇을 모르는 줄부터 알아야 무엇을 배우면서 새롭게 나아갈 줄 알아보면서 스스로 길을 열고 턱을 치우고 틈을 냅니다.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짝꿍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까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어떻게 놀고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다면, 먼저 마음에 생각씨앗 한 톨부터 심어요. “난 여태까지 모르는 채 살았어! 난 이제부터 하나씩 배우겠어!” 《당신은 누구십니까》는 그대가 누구이냐 묻는 듯하지만, 곰곰이 보면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줄거리입니다. 나를 나로서 내가 바라보려니, 나부터 눈을 떠야겠다고 여기면서, 바로 나다운 내 눈망울을 헤아리려고 첫발을 뗄 자리를 어림합니다. 모름지기 누구나 스스로 ‘나사랑’을 하기에 ‘너사랑’으로 이으면서 ‘우리사랑’을 함께 봅니다. ‘나너우리’처럼 말하는 밑뜻이 있어요. 날개를 펴야 너머로 갑니다.


ㅅㄴㄹ


월마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대형 할인점 간판을 떠올리다 (나는 작아진다) 오렌지마트 빅세일마트 동남마트 한들마트 상설할인점 앞을 지나 나는 점점 작아진다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 라면과 소주 한 병 딸아이가 좋아하는 쫄쫄이와 쫀디기를 사고는 나는 점점점 작아진다 그래도 오늘은 월급날 휘이― 휘이― 휘파람을 불어요 (휘이―휘파람을 불어요/19쪽)


사실, 정말, 무책임하게도 애들이 어떻게 컸는지 몰라요. 눈 뜨는 공장이고, 눈 감아도 공장이고 (그럼, 공장이 애들을 키우고― 키웠네― 키웠어) 사실입니다 사실이에요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니까요 (정말이에요) 그래서 아내에게 더 미안하죠 (애들이 어찌 자랐는지 몰라요/37쪽)



《당신은 누구십니까》(표성배, 수우당, 2023)


화사하게 피었다 처절하게 죽는다

→ 눈부시게 피었다 눈물나게 죽는다

→ 곱게 피었다 모질게 죽는다

13쪽


오늘 해고되지 않았다면 내일 해고될지 모른다

→ 오늘 밀리지 않았다면 이튿날 밀릴지 모른다

→ 오늘 잘리지 않았다면 이듬날 잘릴지 모른다

18쪽


굉음과 굉음 불꽃과

→ 듣그런 불꽃과

→ 시끄러운 불꽃과

→ 큰소리와 큰불꽃과

21쪽


지난봄 상판床板 난간에서 용접하다 떨어져 죽은

→ 지난봄 밑판 울타리에서 붙이다 떨어져 죽은

→ 지난봄 받침 울대에서 이어붙이다 떨어져 죽은

23쪽


안전사고 따위는 짧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 작은일 따위는 짧은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26쪽


관 속에서 망치 소리가 난다

→ 널에서 망치 소리가 난다

28쪽


일 년짜리 계약서에 서명한 날

→ 한 해짜리 다짐글에 이름쓴 날

31쪽


멈추는 순간 파산破産인 자본

→ 멈추면 깨지는 돈주머니

→ 멈추면 박살나는 돈

41쪽


백합 같은 누이들 혹은

→ 나이 같은 누이나

46쪽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 어떤 말로도 풀이하지 못 하는

→ 어떻게도 풀어내지 못 하는

58쪽


별을 찾는 사람을 희귀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 별을 찾는 사람을 드물다고 여긴다

→ 별을 찾는 사람을 값나간다고 본다

66쪽


벽이라는 벽은 모조리 점령하고 싶다

→ 담이라는 담은 모조리 차지하고 싶다

7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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