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빨래기계를 안 쓰는 살림



  봄에는 이럭저럭 빨래기계한테 일손을 맡기기도 했는데, 여름으로 접어든 뒤로는 우리 집 빨래기계가 얌전히 쉬기만 한다. 우리 집 빨래기계가 그야말로 여름에는 거의 아무런 할 일이 없다. 이 여름에 나는 아침 낮 저녁 하루 세 차례씩 빨래를 하는데, 손빨래를 할 적마다 찬물로 몸을 씻는다. 이밖에 빨래를 안 할 적에도 땀을 훔치려고 몸을 씻으니까, ‘시원하게 몸을 씻을 적에 조금씩 빨래하자’는 생각이다. 게다가 햇볕이 눈부시고 뜨거운 이 여름에 빨래는 대단히 잘 마른다. 하루에 세 차례 빨래를 해서 널어도 다 보송보송하게 마른다. 다만 한여름을 지나고 늦여름이 되니 해가 차츰 일찍 지니까 다섯 시 넘어서 빨래를 한 뒤에 널면 이제는 다 안 마른다. 씻고 빨래하고 쉬고, 다시 씻고 빨래하고 쉬고, 옷가지를 개고 다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빨래터에서 놀며 젖은 옷을 내놓으니 이 옷을 헹굼질만 해서 다시 널고, 하루 내내 물을 만지니까 밭일을 한참 해도 손에 흙때가 남지 않기도 한다. 4348.8.1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하하 비빔밥



  작은아이가 아침을 안 먹었습니다. 낮에도 밥을 안 먹습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안 먹고 개구지게 뛰놀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제 작은아이한테 “밥 먹으라”는 말을 더 안 하기로 합니다. 물끄러미 지켜보기로 합니다. 날이 더워서 물을 많이 마시고 매실을 탄 물을 스스로 마십니다. 마당에서 모깃불을 태우고 마을 한 바퀴를 들고 나서 해가 뚝 떨어진 저녁, 두 아이 머리를 감기고 씻기고 한 뒤에 비빔밥을 합니다. 저녁에 지어 놓은 밥을 거의 다 비벼서 밥상에 척 올립니다. 반찬은 김치만 세 가지에 토마토를 썰어 놓은 접시 하나. 어디 두고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저녁을 차리는데 두 아이는 말도 없이 비빔밥 양푼을 바닥까지 삭삭 훑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배고팠지? 배불리 먹고 느긋하게 꿈나라로 가렴. 2016.8.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밤에 깨는 한여름



  어제 하루 손목하고 팔이 몹시 저렸습니다. 그제 저녁에 아이들하고 모과나무에 올라 모과를 딴 뒤, 어제 아침에 모과를 썰었지요. 올해 모과를 새로 썰면서 지난해 일이 떠오르더군요. 그래, 모과란 얼마나 단단한지 칼로 썰려면 손목이 아작날 판이지. 지난 7월 19일 뒤로 바다마실을 못 가서 바다놀이가 그리운 아이들이 여태 바다노래를 부릅니다. 8월 20일까지는 바닷가마다 도시 손님을 맞이하는 ‘해수욕장’으로 바뀌기에, 이동안에는 들끓는 사람 때문에 웬만해서는 바닷가에 갈 생각이 안 듭니다. 어제는 그야말로 아이들이 자꾸 바다를 조르고 또 조르기에 ‘모과를 써느라 손목힘이 많이 빠져서 자전거를 몰기 벅찼’지만, 우리가 늘 가는 바닷가 말고 다른 바닷가를 찾아보기로 했어요. 이러구러 바다마실을 마치고 맞바람을 실컷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까지 차린 뒤에는 더 기운을 낼 수 없어 곯아떨어져야 했어요. 그러나 한밤에 문득 잠을 깹니다. 하지가 지난 뒤로 해가 짧아진 결을 느꼈고, 입추를 앞두고 시골 밤은 제법 선선합니다.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어 주어야 해요. 그리고 엊저녁에 지은 밥을 냉장고에 넣어야 합니다. 자면서도 뭔가 하나 깜빡 잊은 듯해서 한밤에 일어났고, 밥냄비째 냉장고에 넣고서야 비로소 숨을 돌립니다. 2016.8.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녀왔어요



  읍내에 다녀온 저녁입니다(6월 24일). 이날 우리는 고흥에서 산 지 처음으로 군수실까지 다녀와 보았어요. 시골 군은 도시와 달리 사람이 적으니 군청 군수실이 시청 시장실보다는 여느 사람들한테 더 가깝다고 할 텐데, 그래도 선뜻 발길이 가지 않았어요. 천만 사람이 산다는 도시라면 시장실에 선뜻 들어서기는 쉽지 않겠지요. 아이들을 이끌고 읍내 우체국에 가서 책을 부친 뒤에 군청 군수실로 씩씩하게 가 보았어요. 똑똑 문을 두들기고 들어섰어요. 고흥에서 산 지 여섯 해 만에 드디어 내놓은 우리 ‘한국말사전’을 들고 들어섰어요.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지으며 살았기에 쓸 수 있던 사전이기에, 이 사전을 군수님한테도 드릴 만하다고 여겼어요. 마침 군수님은 자리를 비웠습니다. 군수실에 있는 비서한테 책을 건넸어요. 책만 건네고 나오려는데 비서 분이 아이들한테 음료수 병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시중 가게에는 없는 ‘유자 음료수’더군요. 아이들은 이런 음료수 병을 아주 오랜만에 받습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한 병씩 손에 쥐고 내내 돌아다녔고,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에서도 알뜰히 품에 안더군요. 작은 선물 하나로도 웃음이 넘치는 하루가 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어떤 선물’보다도 이 아이들이 즐겁게 하루를 짓도록 북돋우는 살림을 슬기롭게 생각하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내리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마음속으로 외치고,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소리 내어 외칩니다. “잘 다녀왔어요. 오늘 하루도 즐거워요.” 2016.8.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땀옷 빨래



  한여름이 무르익으면서 땀옷을 아침 낮 두 차례씩 빨래합니다. 저녁에 나온 땀옷은 이튿날 아침에 빨래합니다. 그야말로 한여름이네 하고 느끼며 빨래를 해서 말리고, 마른 옷을 아이들한테 새로 입히고, 또 땀에 절은 옷을 저녁에 벗겨서 이튿날 아침에 빨래해서 말리고 하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지난여름을 돌아보니 올여름 손빨래는 무척 손쉬워요. 올해부터 되살림비누조차 안 쓰고 미생물발효액에 담가서 헹구기만 하니 거의 손이 안 간다고 할까요. 게다가 내 몸에 흐르는 땀을 씻으면서 빨래를 헹구고, 다 헹군 옷가지는 마당에서 물을 짜면서 옥수수밭에 곧바로 주니까, 이래저래 ‘빨래라는 일’이 아니라 ‘여름 물놀이’ 같구나 싶습니다. 아이들은 낮잠을 재우고 땀옷 빨래를 새삼스레 마친 뒤에 나도 이제 아이들 곁에 드러누워서 등허리를 펼 생각입니다. 2016.7.3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