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니 가스가 다 되었네



  낮에 신나게 자전거를 몰아 바다를 다녀옵니다. 힘차게 출렁이는 바닷물에 떠밀리다가 휩쓸리다가 하며 놀던 아이들은 흙모래를 마음껏 푸고 굴리면서 놉니다. 잘 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지으려 하는데 가스불이 안 켜집니다. 왜 이러나 하고 살피니 가스가 다 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저녁 대여섯 시만 되어도 시킬 수 없습니다. 하루 지나고 나서라야 비로소 전화를 걸어 시킬 수 있습니다. 결린 옆구리를 어루만지면서 버너 불을 피웁니다. 아이고. 2016.9.2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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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쓸고 닦고 한 뒤에



  어버이로서 내가 아이들하고 누리고 싶은 소리라면 ‘사랑소리’입니다. 그런데 아직 나는 ‘잔소리’에 머뭅니다. 지난 아홉 해를 돌아보면 오늘 이 자리에서는 예전보다 참으로 잔소리를 덜 하네 하고 느끼지만, 예전보다 덜 할 뿐 아직 내 마음속에 잔소리쟁이다운 모습이 가시지 않습니다. 엊그제 두 아이를 이끌며 집안을 쓸고 닦고 하며 대견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어요. 더 사랑스레 더 따스하게, 아니 언제나 그대로 사랑스러움으로, 늘 고운 따스함으로, 한결같이 노래하는 기쁨으로 살림을 지으면 저절로 사랑소리가 되리라 하고. 2016.9.2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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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도 감기도 함께



  나는 사흘째 앓고, 아이들하고 곁님은 어제부터 감기를 옮은 듯합니다. 넷이 함께 시골집에서 골골거립니다. 아이들하고 곁님은 곧 털고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나도 얼른 털고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사흘째 코감기 목감기에 몸살이 얼크러져서 숨을 쉬기도 힘들고, 누워서 잠이 들지도 못하는데다가, 머리가 내내 지끈거려서 말을 하기도 힘든데, 이렇게 몸앓이를 하는 뜻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밤새 끙끙거리면서, 아침 낮에도 틈틈이 드러누워 땀을 내고 끙끙거리면서 이 대목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파야 하는 까닭을, 아픔을 씻거나 떨치고 일어난 뒤에는 어떠한 몸하고 마음으로 살림을 지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냥 아픈 일은 없을 테니까요. 2016.9.1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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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베기



  오른손 넷째손가락을 벱니다. 코감기가 붙어 어제 하루는 된통 숨조차 쉴 수 없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 낮으로도 콧물바람으로 지내다가, 밥을 차려 먹이고 숨을 돌리다가 참외라도 깎아서 주어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그만 칼을 놓쳤어요. 놓친 칼이 바닥에 떨어질까 싶어 얼른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칼날에 손가락이 닿았고, 살점을 푹 박으며 찌릿한 기운을 느끼면서 손을 뒤로 빼고 발을 들었어요. 손가락은 푹 베었으나 발은 칼에 박히지 않습니다. 얼뜬 몸으로는 섣불리 칼을 쥐지 말아야 할 텐데, 그나마 한 손가락만 베고 그칩니다. 밴드를 붙여 다시 칼을 쥐고 설거지를 한 뒤, 밴드를 떼어 갈고, 다시 밴드를 뗀 뒤에 자리에 누워 골골댑니다. 코감기는 어제와 대면 많이 나아서 그럭저럭 한 시간쯤 눈을 붙일 만합니다. 갑작스레 웬 모진 코감기이랴 싶으나, 몸살을 되게 하면서 다시금 새로운 살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 몸으로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2016.9.1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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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닿는 바람



  일산에서 서울로 전철을 달렸고,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 십 분 만에 고흥 읍내에 닿습니다. 읍내에서 택시를 잡아 우리 집까지 오니 밤 열한 시를 살짝 넘네요. 시외버스에서 내린 다음 택시로 고요하고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니 바람맛이 다릅니다. 참으로 달라요. 대문을 열고 나무한테 절을 한 뒤에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좀 풀어놓고서 기지개를 켜니 ‘이 시골집이란 얼마나 아름답도록 사랑스러운가’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달리거나 뛸 수 있고, 시원하면서 싱그러운 바람과 물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한가위를 앞둔 오붓한 밤입니다. 2016.9.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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