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읍내 촛불모임



  2016년 11월 3일 저녁 다섯 시 반에 고흥 읍내에서도 촛불모임을 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낮 세 시에 손전화 쪽글로 들었습니다. 어찌할까, 다섯 시 버스를 타고 나가 볼까, 아이들한테 촛불모임 모습을 보여줄까, 하고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아이들 저녁을 먹이려고 네 시 반에 밥물을 올리는데, 아이들은 뒤꼍에서 꽃삽으로 밭을 일군다면서 놀아요. 바지런히 밥이랑 국을 끓이고 반찬도 새로 한 가지를 마련해서 밥상을 차립니다. 잘 논 아이들은 해질녘에 집으로 들어와서 신나게 씻습니다. 밥상맡에서 작은아이는 몹시 졸린 눈으로 끝까지 젓가락질을 합니다. 함께 먹을 먹자니 등허리가 결립니다.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이부자리로 파고듭니다. 아이들은 저녁을 다 먹고도 스스로 입가심을 챙겨서 먹고는 조금 더 놉니다. 이러다가 큰아이가 먼저 졸립다면서 아버지 왼쪽에 눕습니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아버지 오른쪽에 눕습니다. ‘그래, 우리들은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치는 읍내 촛불모임에도 못 가겠구나. 그러나 물러날 사람은 곧 물러날 테지. 다만 그들이 그 자리에서 물러난대서 일이 끝나지는 않아. 그동안 울궈먹은 것을 뱉어내야 하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설 이들은 참다이 깨끗하면서 아름다운 나라살림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해.’ 아이들한테 정치 이야기를 어느 만큼 얼마나 들려주어야 하는가를 아직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대통령 이름은커녕 군수님 이름도 모릅니다. 삶을 슬기롭게 짓는 사람이 있으면 그분 이름을 아이들도 알고 어버이도 알 만하겠지요. 삶을 사랑스레 가꾸는 사람이 있으면 그분 이름도 아이들하고 어버이가 함께 알 만하겠지요. 2016.11.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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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다치기



  낫을 숫돌에 갈 적에는 으레 손가락으로 낫날을 꾹 누르면서 비빕니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실컷 풀을 벤 뒤 낫날을 세우려고 숫돌에 낫을 얹어서 가는데 살짝 뜨끔합니다. 뭔가 하고 손가락을 살피니 가운뎃손가락 첫마디 안쪽 한복판에 동그라미처럼 살점이 살짝 떨어졌습니다. 아차, 숫돌질을 하다가 그만 살점이 살짝 낫날에 물리면서 잘린 듯합니다. 따끔거려서 오른손으로는 낫 손잡이를 쥐고 왼손으로 낫날을 누르면서 마저 숫돌질을 합니다. 핏물이 몽글몽글 나옵니다. 핏물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피야, 이제 그쳐 주렴. 큰 생채기는 아니지만 뭔가를 쥐거나 들기에 번거롭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물을 만지기가 살짝 성가십니다. 이런 결에 큰아이하고 작은아이한테 작게 심부름을 맡깁니다. 우리 예쁜 아이들아, 이 일 좀 해 주련? 우리 착한 아이들이, 이 일 좀 도우련? 아이들은 아버지 손가락에 맺힌 핏망울을 보더니 씩씩하게 서글서글하게 야무지게 소매를 걷어부치고 일손을 거듭니다. 참으로 멋지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 2016.11.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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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거지



  엊저녁에 끝내지 못한 설거지를 새벽에 합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에 마당에서 별바라기를 하다가, 찬바람을 온몸에 안고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합니다. 막상 새벽 설거지를 하고 보면 ‘그냥 엊저녁에 마무리했어도 되었을 텐데’ 싶습니다. 그러나 엊저녁에는 이 얼마 안 되는 설거지를 할 기운이 없어요. 곯아떨어지기 바빠요. 머잖아 아이들이 저녁 설거지를 도울 수 있다면 따로 새벽 설거지를 안 할 만하겠지요. 머잖아 아이들이 새벽에 쌀을 일고 씻을 뿐 아니라, 이엠발효액도 마련해 놓을 수 있겠지요. 2016.11.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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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느긋하며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그리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곁님하고 아이들한테 선물할 이야기를 담뿍 안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바깥에서 마주하고 만나며 겪은 삶을 가만히 삭여내어 우리 새로운 살림으로 지어내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제 고요히 몸을 쉬면서 씩씩하게 거듭날 마음이 되려고 하는 길. 인천에서 서울을 거쳐서 고흥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콩콩 뛰면서 기쁘게 반겨 줍니다. 2016.10.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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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전화



  광주마실을 하며 바깥일을 보는데 아이들이 전화를 합니다. 큰아이는 아버지가 오늘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서 동생하고 어떤 놀이를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큰아이더러 밥은 잘 먹었느냐고 묻다가 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이 아이들한테 ‘밥 잘 먹는지’가 가장 궁금할까 하고 말이지요. 오늘은 밥하고 카레를 해 놓고 나왔는데, 카레가 좀 매워 아이들이 잘 먹을는지 안 먹을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작은아이는 누나를 이어 전화를 바꾸더니 오늘 누나하고 얼마나 사이좋게 재미나게 놀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이러면서 “아버지, 집에 돌아올 적에 전화해야 해.” 하고 말해요. 광주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다가 생각을 바꾸어 고흥으로 돌아가는 막차를 탔어요. 고흥 읍내에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왔지요. 밤 열한 시가 다 되는데 두 아이는 아직 안 잡니다. 늦게까지 잠을 미루면서 놀았니? 아이들은 아버지를 보더니 대뜸 “아버지 집에 오는 길에 전화한다면서?” 하고 물어요. 그렇구나. 바삐 돌아오느라 전화할 생각을 못 했네. 미안해. 2016.10.1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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